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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박하사탕 감상문
    박하사탕 감상문
    주인공 영호는 매우 불행해 보인다. 주위의 폭력성에 길들여지고 순수함을 잃어 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동시에 무기력하다.자신의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 발전하기보다는 예전의 행복했던 시기의 자신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는 소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회의 폭력성과 냉혹함에 그대로 무너져 갔다. 거대한 사회의 톱니 바퀴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는 정말로 나약해서 그렇게 불행한 결과를 맞이했던 것일까. 그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자신은 정말로 순수해 보인다.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는 행복함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한 상태이다.사회가 그렇게 냉정하고 냉혹할 줄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시기였다. 무방비상태의 그는 군대의 폭력성을 배우고 사회를 배워 나가면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정말로 사랑했던 첫사랑,순임 대신에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군사정권과 자본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주인공 영호는 점점 소외되어가고 거칠어진다.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어떤 특정한 인물의 삶이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라 느꼈다는 점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에서 소시민은 항상 무방비이며 길들여져 간다.육체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인 폭력은 그들은 사회에서 분리시키고 삶에서도 분리시킨다.귀했던 카메라를 순임에게 받고 판 뒤, 그 돈으로 빵과 우유를 사먹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슬펐다. 자신은 꿈을 가지고 싶었지만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서는 안된다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경찰 회식 자리를 갑작스런 군대식 경례로 망친 그의 행동은 그런 뜻이었다고 생각된다. 군대식의 강압에 길들여진 자신이 밉고 사회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무엇을 쫓고 있는지도 기억 나지 않으면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화는 말하고 있다.사회가 이끄는 대로 걸어가지 말고 저항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걸어가라고.가만히 있어도 시대의 폭압이 상처를 입히고 만다. 눈치채지도 못하게, 상처 입히고 상처 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에 우리는 항상 자유롭지 못하며 울분을 참고 살아간다. 참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폭력을 퍼뜨린다.영호가 그렇게 소외되었던 것은 군사정권이었고 경제의 침체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지금도 우리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존재하고 우리도 모르는 새에 당하고 있다. 성공한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해진 길로 걸어가라는 압력도 폭력이며 남과 다르면 안된다는 집단 의식도 폭력의 일종이다.무언의 압력 속에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보다는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먼저 의식하고 만다.
    독후감/창작| 2021.11.14| 1페이지| 2,5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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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 독후감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 독후감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사회사상사-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 사치를 부리고 사치는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전제에 주목을 해 보면 사랑이란 권력욕이란 점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지배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는 사랑이라는 욕망이 그 과정에서 부리는 사치로 인해 더 거대해져서 시장을 확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회적 현상을 추적해보면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권력을 유지하기위해,또는 권력을 정당화하기위해 서민과의 차이를 두려는 생각으로 사치는 시작되었다.'출세'와 '성공'은 오늘날의 개인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별로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자아성취감을 중요시하더라도 그것은 직업적 성공으로 이어져 부를 이루게 된다.인생의 최고 가치를 경제적,직업적 성공에 두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입장이 되었다.그러나 중세 시대의 대다수 사람에게는 돈 벌고 부를 축적한다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그 시대에는 누군가가 부자가 되면 부당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치부되었다. 그럴 만한 지위에 있는 영주나 귀족만이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부 자체에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먹고 살기위해서 부지런 했던 농노들이 대부분이었고 죽도록 일했으나 대부분 최소한의 생계유지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소수의 부자 상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사회의 '필요악'으로서 예외적인 존재였던 것이다.이렇게 엄격한 신분제로 묶여 있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랐던 것이 봉건제와 공동체가 해체되자 바뀌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은 하늘에서 땅 위의 일로 내려왔다.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이 발생하고 중세 교회의 보편성과 획일성이 깨졌다.고리 대금 금지와 공정 가격을 가르치던 교회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사람들의 경제적 사고 방식은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프로테스탄트의 교리에는 달라진 세상에 맞는 인생관이 들어 있었다.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신의 부르심'이란 용어를 '직업'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낱말로 바꾸어 놓았다. 갤빈은 사람들이 수도원에 가지 않고도 속세에서 신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다고 가르쳤다. 다른 많은 교파들도 갤빈의 뒤를 따랐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박스터는 이렇게 설교했다."만약 신께서 여러분에게 다른 방법에 비해 합법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덜 수지맞는 방법을 택한다면,그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거절하고 여러분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며, 여러분이 신의 종이 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자본주의 정신이 생겨났다. 성공과 부자로 이르는 길 위에 놓인 종교적 양심의 가책은 깨끗이 치워졌다. 노동과 직업은 비천한 것이 아니라 신성한 것이 되었다.'시간은 돈'이라고 한 프랭글린의 말이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도 유명한 명언으로 등장했다.교회에서의 사치도 근 부분을 차지했다. 교회 건물을 짓는 사치부터 아무런 노동도 없이 얻는 금전적 이득까지 생산적이지 못한 그들의 행태는 종교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심지어는 신성화되었다.이 책에서는 사치의 증거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하여 설명하였는데 거기에는 교회에 들어가는 돈도 귀족들의 의,식,주와 공공장소, 궁정생활에 필요한 부수적인 돈도 들어가 있었다.사치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는 듯 그들은 열중했고 그리 부정적인 인상을 주지도 않았으니 더욱 더 넓은 분야에서 사치가 이루어졌고 섬세화 되었다. 세분화된 사치는 그것을 만드는 공장을 더 많이 만들게 하였고 다른 나라와의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하게 되었다.확실히 서양에서는 사치가 경제발전과 자본주의 형성에 미친 영향은 그다고 생각된다.그러면 동양에서는 어떨까.예를들면 중국에서는 강남지방에서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텄다고 한다. 중국을 뒤흔드는 차상,견상,염상들이 기득권을 가지기 위해 조합을 만들고 특허상인 조합은 13개가 되었다.중국의 땅덩어리로 보면 거대한 상인 단체였던 것이다.이 씨앗이 미처 뿌리를 내리기 이전에 자본주의가 들어왔다.이 자본주의는 중국에서 널리 퍼졌던 유가와도 연결되는 관계로 거부감은 없었으나 공산주의로 그 기운이 쇠하였다.대체로 동양에서의 자본주의는 관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였다. 서양에서 들어온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정부에서는 정책을 만들고 시장에 관여하여 자본주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서양에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로 국가에서는 보조하여 맞추는 형상이었다.
    독후감/창작| 2021.11.14| 2페이지| 2,000원| 조회(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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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니체 사상의 예술적 의미
    니체 사상의 예술적 의미
    니체 사상의 예술적 의미개 요1.서론니체사상의 배경2.본론니체사상의 해석3.결론니체사상의 예술적 반성과 의미1.서론니체사상의 배경독일 철학의 전화 시기를 만들었고 지금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의미를 가지는 니체에 대해 알아 보려 한다. 지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어떻게 해석 되고 있으며 발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니체는 그 때까지 나왔던 거의 모든 사상을 부정하고 그 위에 자신의 사상을 쌓았다.니체가 사상을 펼쳤던 시기는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농장이 아닌 공장으로 바뀌고 기술발전을 이뤘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산업혁명으로 기계화 되고 공장의 소품화되어가는 자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목사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목사의 딸인 어머니의 아래에서 니체는 후에 신학을 전공할 만금5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니체가 사상을 확고히 한 후에 기독교 교리를 거부한 것은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의 바탕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외의 다른 사상들도 이러한 분석아래에 이루어졌다고 짐작한다.니체의 가정은 매우 완고했으나 어느 정도의 세속적인 생활양식도 없지는 않았다. 니체의 아버지는 음악적 재능이 상당해서 궁정 내의 여러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이 재능은 니체에게 전해져서 니체는 어렸을 때부터 작곡도 많이 하였고 예술에서의 중요성을 말할 때음악을 특히 강조 하였다. 그리고 니체 사상을 상징하는 신으로서 디오니소스(음악의 신)을 말하기도 하였다. 슐포르타라는 학교에서는 조그만 예술 및 문학 서클인 '게르마니아'를 만들었는데 어린 시절의 친구들만의 작은 모임이었다.모임의 빈약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를 예약하여 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서 니체의 음악적 취미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여 그때까지 고전음악밖에 몰랐던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예술에 접근하게 되었다. 후에 바그너는 니체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를 함께 하였다.리하르트 바그너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하이프해 동안 숭배해온 바그너가 이렇게 까지 쇼펜하우어를 옹호해준 것을 니체는 자신의 길을 확신시겨5주는 행복한 계기로 파악하였다. 젊은 고전문헌학자인 니체에게 철학에 대한 정열을 불러일으긴5 것은 그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고 바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세계였다.』이후로의 바그너와 교제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토론과 함께 니체의 일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여기서 잠깐 쇼펜하우어에 대해 알아보면『쇼펜하우어는 5ㅏㄴ트와는 달리 이성이 사물의 현실적 본질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목표를 설정해주는 데 무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성은 기껏해야 인간이 자기의 의지 자체에 의해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삶 그 자체는 긍정할 만한 것이 못 되며 인간은 영속적 의지와 맹목적 산물인 충동을 단념할 때만 구원을 얻는다. 이기주의가 인간의 천성이며, 이것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도 규정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구원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두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도덕적 행위, 곧 의지의 포기이며, 다른 하나는 미의직관이다.』이것은 니체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창조적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함을 니체는 주장했는데 그 창조란 예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위에서 말하는 의지의 포기는 생의 본질을 고통으로 여기고 여기서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해탈을 요구하는 불교가 아닐까 생각된다.또 다른 하나는 미의 직관인데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형식이며 그 중에서도 음악은 절대적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음악은 현실과 사물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음악이 인간에게 통찰과 인식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음악이 울리고 있는 동안 인간은 공간,시간,인과성 및 모든 유한한 욕구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의 체험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그것은 삶의 고뇌와 자연적 욕구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지 못한다. 그것은 타인의 안녕을 위한 도덕적 행위가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개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반대입장을 취하였다. 그것에 대항하여 새로운 삶의 이해와 역사이해가 설정되었는데 니체는 훗날 되풀이 해서 이것에 "디오니소스적"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다.먼저 니체는 "아폴론적"과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대칭된 두 개념의 의미를 전개한다.이 두 용어는 니체의 모든 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아폴론은 이성적인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본능적인, 음악적인 신이다. 니체는 특히 디오니소스를 강조했는데 그렇다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대립적인 신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디오니소스의 본능적인 ,격정적인 면을 아폴론이 적당히 제한하는 함께 하는 신인 것이다.2.본론니체사상의 해석니체의 사상을 말할 때 흔히 말하는 니힐리즘,허무주의는 종종 그 비관적인 성격으로 인해 오해되어왔다.그러나 니체의 사상은 오히려 허무주의와 반대의 방향을 보고 있다.니체는 허무주의가 서구 문명자체라고 생각하였다."허무주의자의 눈은 추한 것으로 이상화된다.","허무주의자란 존재하는 세계에 관하여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당연히 존재하여야만 할 세계에 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그러한 인간이다.","허무주의는 아무런 원인도 아니고 퇴폐의 논리에 불과할 뿐이다.","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 형식은 영원한 무이다."니체의 표현은 인간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진단이다.구체적으로 허무주의를 대변하는 것들을 플라톤주의와 기독교로 본다.니체는 이것을 은폐된 낙관주의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플라톤주의와 기독교는 소위 최상의 가치들을 가장 옳고 참다운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특히 기독교는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어떠한 반격도 토론도 허용하지 않는다.무조건 믿어야만 한다. 무조건적 믿음은 그 가치에 대해 더 이상의 생각을 허용하지 않고 ,반성이 없는 가치는 발전도 없는 것이다.니체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입장을 은유적으로 다음처럼 표현하고 있다."일곱 가지 고독으로부터의 경험,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 귀, 가장 먼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지금까지 침묵하던 진리에 대한 새로사람들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할 것이다.자신이 당연스럽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의 자세를 가지는 것은 철학자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무엇이든지 반성과 회의를 가져야만 거듭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적극적으로 찬양하였던 바그너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회의와 반성을 거쳐 일어났던 일이다.니체는 바그너의 극이 기독교적 교리를 그대로 따르고 독일의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데 불만을 터뜨렸다. 바그너가 쓴 이란 극은 연극효과를 위해 기독교신앙을 사용했고 반그리스적 이상을 찬양했기 때문에 이 오페라를 파렴치한 작품으로 생각한 것이다. 바그너가 이 오페라를 작곡했을 때부터 둘의 관계를 정신적으로 끝이 났다. 니체는 이에 대한 실망감을 란 책에서 밝히고 있다."삶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에 늘 필연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어야만 했다.경멸과 영원한 부정의 무게에 짓눌려, 무가치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은 기독교다. 그리고 순수히 예술적인, 반기독교적인 가르침과 평가는 디오니소스적이라 부른다."그 당시 바그너의 인기는 굉장했는데 전쟁 후 힘을 잃고 산업혁명으로 다시금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 독일국민들에게 5근 힘이 되어 주었다.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최면적이고 무대적 취향, 즉 몹시 관대한 감수성에 의해 보호받지 않으면 인정될 수 없는 하급음악이라 하였다. 바그너는 음악가가 아니라 배우이며 수단으로 음악을 선택했을 뿐, 독일만을 위한 음악이라고도 했다. 독일인의 정의 -복종과 성실-만을 필요로 했다.이 때는 비교적 독일이 강성한 시기였고 이러한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이러한 반유대주의와 독일적 민족주의는 더욱 심해져서 니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치의 출현을 낳기도 하였다.나치는 니체의 인간 개조적 성격의 사상을 잘못 해석하여 우성인자를 만들어 내는데 골몰하였다.사실 니체 사상에서 이러한 성격은 생물학적 개조가 아닌 정신적인 발전이었다.정신적인 부분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디오니소스라는 신에 적대시되고 억압되어온 자연도 집을 나간 탕아인 인간과 다시금 화해의 축제를 벌인다.""영겁회귀"라는 개념을 알아보면 동일한 것의 무한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끊임없이 환생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 "힘에의 의지"이다."운명애"에 대한 개념도 설명했는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이것은 모두 함께 설명되는데 영원회귀 운동 자체는 허무적이지만 인간이 인간의 운명을 극복해 가는 의지를 갖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으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의지가 곧 운명애인 것이다. 운명애는 운명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운명애를 인정한다면 자칫 숙명론에 빠질 수 있다. 숙명론은 영겁회귀와 운명애를 대응하는 개념인데 인간이 그것에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 현존재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비극이 있음으로해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종합적으로 설명하자면 초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인간이 지향해야 할 초인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고 완전한 허무주의자로서 허무주의를 극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영원회귀를 확신하며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힘에의 의지가 세계의 본질임을 깨닫는 사람이기도 하다.니체는 초인을 저서,"짜라투스트라"에서 밝히고 있다. 4부로 된 철학적 산문시로 1883-85년에 저술된 이 저서는 니체 자신의 이상적 분신인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초인,권력을 향한 의지, 영원회귀등 니체의 중심사상을 교설한 설교집의 모습을 띠고 있다. 제1부에서는 10년간 산상의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는 깨달음을 얻고 인간세계에 내려와 초인의 이상을 논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는 말은 기독교적 신이 죽었다는 말로도 해석 되고 니체 이전까지의 모든 사상을 부정하는 말이기도 하다.니체의 문체는 매우 왜곡이 심하고 음악적이고 시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제 2부에서는 영원회귀의 사상이 그의 내면에서 성숙해가나, 이를 세계에 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성숙한 침이다.
    인문/어학| 2021.11.14| 9페이지| 2,500원| 조회(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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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백남준의 새로운 시각
    백남준의 새로운 시각
    예술마케팅백남준 전시회를 봤을 때 처음 느꼈던 느낌은 명상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문명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가진 텔레비전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명상적이고 자연적이라는 느낌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촛불"이라는 작품은 속이 텅 빈 텔레비전 안에 초가 하나 타고 있는 작품이다. 현대적인 텔레비전과 전통적인 초의 만남이라는 의미말고도 텔레비전이라는 소재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상 매체라는 것으로 박에 생각하지 않았던 텔레비전을 초가 타고 있는 공간의 나뉨으로 보는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그래서 가끔 텔레비전을 볼 때 마다 그 화면을 지우고 안에 타고 있는 초를 상상하게 된다.명상과는 거리가 먼 현란한 색채들의 향연과 눈을 감고 명상하게 되는 공간은 결국 같은 공간이다. 이렇듯 같은 사물은 여러 의미와 생각에 따라서는 사용처도 느낌도 달라지게 된다. 그 안에 있는 초는 일정 시간이 되면 다 타고 없어진다. 그러므로 계속 초를 갈아주지 않으면 않 된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동은 관객과의 소통을 이야기 한다. 작품과 대중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였다. 예술가와 관객은 서로 약간씩은 속고 속이며 자기만족을 한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인가?"라는 말이 많이 인용되었듯이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관객과 관객과의 소통을 생각하는 예술가한테는 사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미술관에 걸려있었고 좋은 평론을 들었다고 해서 자기 이해를 넘어서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작품을 이해한 듯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백남준은 조롱하는 듯하다.이해되지 못하는 작품은 나에게 의미없는 작품이다. 나에게 있어 이해되지 못하는 작품보다는 나와 뜻이 통하는 작품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의미없는 작품이라고 해서 그 작품 자체의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허위허식을 버리는 백남준의 정신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버림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유이다.그의 작업은 대부분 TV가 사용되었다. TV를 오브제로 사용하는 것은 주로 비판적인 시각의 작품이 많다. TV만큼 그 단점과 장점,폐해와 위력을 가지고 있는 매체도 없을 것이다.TV는 종종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고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의 시각은 새로웠다. 물질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매우 인공적인 TV의 공간을 자연과 닮은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계문명과 자연이라는 대립적인 소재의 결합은 많은 의미가 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사고라는 느낌으로 다가 왔다. TV말고도 주로 소리가 나는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을 하는 백남준의 작업방식으로 하여금 감각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백남준은 사물을 악기에 배치하여 소리를 물리적 공간 속에서 시각화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구체적인 시점과 행동, 상황을 지시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개입할 것을 예측’하는 실험들을 진행한다.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신구 세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기존 사회질서에 반대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백남준에게 비디오는 부조리한 세상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중요한 도구였다."TV정원"을 처음 봤을 때 거기서의 TV는 기계 덩어리가 아니었다. 나에겐 꽃으로 보였다. 빛을 발하며 정글에 묻혀 있는 꽃과 같이 주변의 나무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TV는 어차피 기계이기 때문에 나무와 어울려 있다고 해서 금속이 풀잎으로 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공간을 보여 주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독후감/창작| 2021.11.14| 2페이지| 2,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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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섹스,거짓말,그리고비디오테이프] 감상문
    영화[섹스,거짓말,그리고비디오테이프] 감상문
    문학과 인생앤은 부부관계에 불안을 느끼고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존은 처제인 신시아와 불륜관계에 있지만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신시아는 존을 사랑해서 만난다기 보다는 언니인 앤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것 뿐이다. 항상 정숙하고 얌전하며 예쁘고 인기도 많은 언니에게 질투를 느끼고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그 와중에 존의 학창시절 친구인 그래함이 이들의 관계에 끼어들게 된다. 그래함은 일정한 직업도 집도 없이 최소한의 짐과 자동차만을 가지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다. 그는 개인적인 프로젝트인 '섹스에 관한인터뷰를 테이프로 찍는다. 인터뷰의 상대자는 항상 여성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섹스가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를 말한다. 앤은 이러한 그의 무분별한 삶의 방식에 당황하고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남편인 존과 다른 성격에 호감이 갔던 것이다. 존은 예의가 없고 강압적이며 배려심이 부족하다. 그래함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앤은 새로운 부분에 대해 당황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신시아가 그의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고 앤은 그 사실에 놀라고 불안 해한다.이 프로젝트에 혐오감을 느낀 앤이었지만 존과 신시아의 관계를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홧김에 자신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앤은 테이프를 찍으며 거꾸로 그래함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의 대답을 통해서 그를 이해하게 된다.인터뷰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굉장히 솔직했다. 신시아는 자신의 첫 성적 경험이 8살이었다고 말하고 자신의 성향과 존과의 관계까지도 털어놓는다. 성에 대해 터부시하던 앤도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성적인 부분과 자신의 느낌,인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녀들의 인터뷰는 성에 대한 문제가 그녀들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제까지 그녀들은 인생에서 성에 대한 문제를 솔직하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에서 터부시되었기 때문이다.존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며 이 테이프를 보고는 그래함에게 과거의 자신이 저질렀던 배신을 이야기하고 돌아간다.새삼 숨겨두었던 자신의 배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복수라고 해석 되어진다. 존은 자신이 소유했다고 믿었던 두 명의 여인을 모두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자신을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여자이고 신시아는 성적인 욕망을 풀기위해 만나며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해어질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존은 의 주인공과 비슷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아내의 배신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배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점이다. 존은 영화 내내 아내의 정숙을 의심하지 않으며 순수하다고 믿고 있다. 남성우월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존은 성과 사랑이 일방통행이 아니라 주고 받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앤은 그래함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숨겨졌던 부분을 그에게 보여 주고 또 그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다. 상호교환을 하는 두 사람의 교류는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바뀐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랑과 성적교류의 시작이다. 관심을 가지게 되면 상대방에 대해 애정이 생기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관심에서 모든 것이 발생하며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관심도 생기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애정이 생기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1.11.14| 2페이지| 2,0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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