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나보다 똑똑한 AI와 사는 법인공지능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바둑기사를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평범한 우리들이 아니라 전문가들도 체스에 비해 경우의 수가 수만 가지는 더 많은 바둑이라는 종목을 AI가 학습하고 올바른 선택을 결정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리고 세기의 대결이 열렸다. 바둑 AI 알파고와 한국의 이세돌 9단의 5번의 대국이 열렸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4승의 알파고와 인간의 마지막 승리일 수도 있을 것 같은 1번의 이세돌 9단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이 책에서는 특이점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기술의 발전은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요즘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옆그레이드’로 진행되다가 스텝 업 하는 순간을 ‘특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불의 발견이나 전기의 발견 등과 같이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획기적인 전환점과 같은 순간들이다. 책에서 나온 예시를 보자면 미술 분야에서의 카메라의 발견과 같은 순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화가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나 카메라의 발명으로 인해 아무리 뛰어난 인간 화가도 카메라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대중들은 화가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들은 회화에 서사와 감정을 담아서 순수미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이처럼 특이점이 오는 순간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고, 지금 우리는 4차 산업의 특이점이 오는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특이점의 순간은 아마도 Chat GPT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대중들이 직접 사용해보며 AI의 발달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발달된 AI는 이제 더 이상 잠도 자지 않으며 밥도 먹지 않고 학습만 하고 있다. Chat 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특이점 이후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공지능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제 AI는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다.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는 AI의 영역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우리는 AI에 밀려 도태되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말자.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게 돼버렸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스마트폰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극소수의 전문가들이 개발을 해주고 우리는 그 과실을 따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인공지능을 관리하고 개발하는 소수의 엘리트는 특권 계급이 되어 막대한 부를 누릴 것이다.한번 상상해보자. 특이점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변화될까? AI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AI가 생산하는 지식을 이길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관련 직종에서도 사람의 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학교의 목적도 변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지금보다 덜 똑똑하게, 하지만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으로 대체될 테고, 부정과 부패를 하지 못하기에 정치의 영역도 AI가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상 AI의 지배 아래 인간들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가 언제쯤 도래할까? 2005년 당시에는 2045년쯤이라고 예상했지만 지금은 2025년으로 앞당겨서 예측하고 있다.그렇다면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을까? 컴퓨터의 세상에서는 간단하게 모든 것들을 복제할 수 있다. 복제품 사이에서 진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복사해서 인터넷에 배포한다고 가정해보자. 복사본과 진본의 가치의 차이가 있을까?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인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복제본에 비해 진본에만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독후감]작은 수집, 스몰컬렉팅버리는 게 참 어려울 때가 있었다. 나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들을 버리는 게 마치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상상하며 선뜻 손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지내오니 방은 나의 흔적들로 가득 차 버렸다. 떠나보내려 할 때는 너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보관하고 있다고 다시 들춰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혹여나 ‘언젠가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하는 나의 미련이 흔적들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훌쩍 넘었을 무렵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제목의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처럼 버리는 것을 잘 못하던 작가가 어떤 계기로 인해 물건들을 비우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다 비운 뒤 얻게 된 장점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서점에서 지나치다 만난 책인데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고, 남의 말 잘 안 듣는 고집쟁이인 내가 그날 이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추억이 깃들었다고 생각해 버리지 못한 영수증, 메모, 작은 기념품 등등. 수년 동안 찾지 않아 먼지만 가득한 것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낸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했다. 비워진 방을 보며 나의 마음도 정갈해짐을 느꼈다.이후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독립을 하고도 물건을 거의 사지 않는다. 텅 빈 방이 주는 고독이 좋다. 물건이 없어 음악을 틀면 거실에서 우퍼처럼 울리는 소리도 좋다. 거실 한가운데 누워 창밖 하늘을 보는 것도 좋다. 물건을 치우지 않아도 로봇청소기가 잘 다니는 것도 좋다. 이렇게 10년을 지냈다.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가 이 책을 만났다. 여행 가서 만난 사탕 포장지도 못 버리는 작가가 쓴 책이다. 귀여운 도장이 찍힌 영수증, 서점 쿠폰, 전시장에서 받은 스티커와 안내문까지 모두 모으는 사람이다. 지금의 나와는 결이 전혀 맞지 않는 작가지만 책을 읽으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와 같이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사진과 그림이 절반이라 읽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포장지, 영수증까지 모은다는 부분은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해서 픽 하는 웃음을 내뱉었지만, 여행지에서 사진이 아닌 드로잉을 남긴다는 말이 나를 붙잡아 두었다. 유명한 시가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처럼 나는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담는 것을 선호한다.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그곳을 보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일수록 눈으로 담아두고 싶어 한다. 햇빛이 부서지는 바닷가라던가 아기자기함이 예쁜 마을이나 푸르름이 무르익은 산도. 그런데 그렇게 한가득 눈에 담아둔 장면도 시간이 흐르면 바랜다. 바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알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자세히 보고 오래 본다는 것을. 어떤 것이 더 큰지, 어디에 위치했는지, 무엇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 그랬더니 더 아름다워졌다.
[독후감]화차산다는 것은 행복일까 고통일까.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보면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인생은 결국 고통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삶이란 끝없는 고통의 굴레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유 통에 빠진 생쥐’의 이야기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둘 중 누구 하나가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린 두 방향 중 하나의 길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한다.이선균, 김민희 주연의 영화 ‘화차’를 본 적이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 스토리도 좋았고, 김민희의 연기도 충격적이어서 꽤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한참이 지난 후에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서 원작 소설도 궁금해져 찾아보게 되었다. 소설은 500페이지에 가까운,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두께였지만 영화의 여운을 믿었고 다행히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을 펼친 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고 마치 영화의 원테이크 신처럼 한 번에 다 읽어 나조차도 놀랐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드는 감정이 미묘했는데 슬픔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연민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 스스로도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웠다.형사인 혼마 슈스케는 죽은 아내의 조카인 구리사카 가즈야의 부탁으로 사라진 약혼녀인 세키네 쇼코의 행방을 찾게 된다. 그녀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그녀의 실제 이름이 세키네 쇼코가 아닌 신조 교코인 것을 알게 되고, 여기에 얽힌 무서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진다.기본적으로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영화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구리사카 가즈야의 역할인 이선균 배우가 극을 이끌어 간다면 소설은 형사인 혼마 슈스케가 극을 이끌어 간다는 차이가 있고, 이로 인해 영화와 소설의 느낌이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이선균 배우의 ‘저는 이 영화를 멜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처럼 영화에서는 연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극 전반을 휘감고 있다면, 소설은 사건을 의뢰했던 조카 가즈야는 약혼녀의 정체에 실망을 느끼고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버린다. 그 후 혼마 슈스케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건조한 설명만이 있을 뿐이다. 이와 더불어 영화에서는 김민희 배우가 신조 교코의 말과 행동을 연기하며 그녀와 감정적인 교감을 할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신조 교코에 관련된 내용이 주변 인물들의 말과 흔적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는 감정적인 격양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익명성’이다. 소설의 배경인 1990년 초반의 일본. 각종 공문서들이 전자 문서로 변환되는 시점에 서류만 잘 구비한다면 어느 순간 본래의 나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신원을 증명해 주는 전통 사회를 지나 종이와 전자 문서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시대에 신조 교코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라고 하는 말을 실제로 실행했다.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그녀의 사정이 공감도 되었지만 자그마한 실수만 아니었다면 절대 들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소름도 돋았다. 더욱이 1990년이 아닌 2020년이라면 그때보다 더 쉽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상에 뿌려져 있는 타인의 개인 정보를 취합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타인 행세를 할 수 있다. 게다가 혹여라도 탈이 난다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을 하며 과연 무엇이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느 회사 면접장에 들어선 나. 그런데 같은 면접장에 나와 같은 이름과 같은 이력서를 제출한 다른 사람이 있다면 회사의 면접관은 둘 중에 진짜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세상은 더 발달했고 개인주의적인 사회 풍토가 만연하다고 하지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출수록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또 다른 주요한 소재는 ‘신용’이다.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 겪었던 ‘카드대란’이 일본에서도 이미 있었나 보다. 젊은이들에게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그들에게 허황된 미래를 부추기다가 결국에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드는 저주와 같은. 소설에서는 변호사의 입을 빌려 ‘신용’의 무서움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시작은 가볍지만 가벼움에 취해 반복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꼭 ‘신용카드’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처했고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은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무거운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빚 탕감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정도로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 같다.
나의 초록 목록을 읽고선물용으로 향초를 산 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자그마한 샘플을 아무 생각 없이 가방 속에 넣어놨는데 그 후로 가방을 열 때마다 향이 너무 좋았다. 무슨 향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라일락’ 향이었다. 검색을 해 보니 ‘꽃이 피면 온 집안에 자신이 꽃을 피웠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향기를 가득히 뿜어내어 존재감을 뽐낸다’라는 기고만장한 설명이 나왔다. 이것이 지금 우리 집에서 10년 넘게 나와 함께하고 있는 화분으로 라일락을 선택한 이유였다. 취직을 기념해 들인 자그마한 라일락 나무가 여전히 봄과 여름의 경계의 시기가 되면 향기로운 꽃을 피워주고 있다. 또한 나도 매주 때맞춰 물을 주고 관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이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많은 식물들이 소개되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첫째로 백서향을 꼽겠다. 향이 좋은 식물을 좋아하기에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뜻의 ‘서향’에 ‘하얀 꽃이 핀다’는 의미의 접두어가 붙은, 그 이름부터 이미 하얗게 향기로운 식물. 장미처럼 너무 익숙해져 버린 향도 아니고, 라일락이나 백합처럼 두텁고 짙은 향도 아니고, 프리지어처럼 지나치게 경쾌한 향도 아니고, 저렴한 비누나 값비싼 향수는 더더욱 아닌, 은은하게 감도는 균형 잡힌 어떤 꽃향기라니. 설명만으로도 너무나도 만나보고 싶은 식물이다. 그다음으로는 길거리를 거닐다 자주 보이는, 계란프라이를 똑닮아 그렇게 불렀던 꽃의 이름이 개망초인 것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개망초는 우리 꽃이 아니라 북미가 고향인 귀화식물로써 ‘망초’로도 부족해서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개’자를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개망초는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는 땅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에 의해 교란된 곳에서 자란다. 그래서 산책 중에 여기저기에서 자주 눈에 띄었나 보다.이처럼 우리 주위에 호기심을 자아내는 식물들이 많지만 죄다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거니와 나의 지식 부족으로 이들을 알아보고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산책로를 거닐며 주위의 식물들의 이름을 모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책에는 저자가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바이오블리츠’라는 식물 수업을 소개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탐사대작전’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행사는 전문가와 아마추어, 일반인이 함께 모여 24시간 내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생물종을 찾아내는 과학 참여 활동이라고 한다.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에서 주관하여 2010년 시작한 이래 해마다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다. 특히 2014년 서울숲에서 열렸던 바이오블리츠가 큰 인기를 얻어 그 이듬해부터 서울시에서 ‘바이오블리츠 서울’을 별도로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특정 행사에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이 든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인 식물들의 삶이 큰 호기심을 다가온다.여러 식물들을 소개하면서 모데미풀과 댕강나무의 예를 들며 저자는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를 걱정한다. 특정 서식 환경에서만 자라는 해당 식물들이 인간들의 개발에 의해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매우 슬퍼하는 감정이 글을 읽는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4대강 사업에 의해 사라진 강변의 습지에 살고 있었던 식물들의 부재에도 슬퍼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만큼은 저자가 너무 자신의 직업에 매몰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23년 봄,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물 부족 뉴스가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겨울부터 이어진 긴 가뭄에 광주지역의 상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이 20% 이하로 떨어져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만간 부분 단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 플래카드가 붙고, 지역 시장까지 나서서 물 절약에 힘써주기를 바라는 캠페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 장마철이 왔고, 2주간의 폭우로 동복댐의 수위는 높아져 장마가 끝날 무렵에는 방류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강수 시기가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있고, 이를 놓칠 경우 물 부족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댐을 만들고 관개수로를 정비하는 등의 사업이 필수적이란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저자가 걱정하는 대로 수많은 식물들이 사라질 것이다. 식물의 생존과 인간의 삶. 둘 중에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물론 정답이 없는 질문이고 그동안 양보 없는 논쟁이 벌어진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삶을 위해 일정 부분 식물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물을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없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논쟁을 하고 있는 우리조차도 인간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식물보다 우리들의 삶이 우선순위에 놓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때론 가장 식물을 위하는 방법이 가장 식물을 위협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북한을 부러워한다. DMZ 식물탐사를 통해 훼손되지 않은 식물들을 보며 북한 땅에는 얼마나 많은 식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하며. 하지만 정말로 북한이 식물들의 유토피아 같은 땅일까? 저자는 북한을 직접 다녀왔을까 아니면 그저 상상으로 말하는 것일까? 아마 우리나라보다 개발이 훨씬 덜 되었기에 당연히 식물들이 더 많이 살아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저자가 책에서 환경파괴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을 옮겨보겠다.‘자병산은 가는대나물과 벌깨풀과 왕제비꽃이 군락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주위에 시멘트 공장이 생겼고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암 채취를 위해 야금야금 허물기 시작하다 결국엔 사라져 버렸다. 이와 함께 자병산에 거주하던 식물도 같이 사라졌다. 자병산과 더불어 강원도 삼척 해안에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맹방해변이 있다. 맹방해변의 해안사구에는 고운 모래땅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는 희귀식물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는 땅에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 소식은 나에게 메가톤급 공포로 다가왔다. 탄소를 줄이는 능력이 국가의 경쟁력과도 같은 21세기에 이상기온 현상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맹방해변에 짓겠다는 정부의 이 같은 무자비한 역주행은 두 팔 벌려 막고 싶다. 또한 동해안 화력발전소 건설로 생산되는 전기를 내륙으로 보내기 위해 경북 봉화군을 관통하는 고압 송전탑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또한 산을 깎아야 가능한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을 읽고인터넷 포털 창을 열자 이번에도 금리를 동결했다는 헤드라인 뉴스가 나의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끈다. 한국은행 총재님께서는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무시할 수 없다’라며 동결 이유를 밝히셨고, 댓글에서는 ‘금리를 올려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하며 날선 글들이 오갔다. 대한민국에서 돈에 관련된 결정은 부동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반대로 어떤 결정이 되었더라도 우리들은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부터 생각한다. 최근 상영 중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이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부동산주의를 추가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언제부터 사람들이 부동산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을까? 최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집을 장만하거라’라고 자식에게 조언하던 정약용의 책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땅의 유구한 전통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즘은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근래에 부동산 가격 폭등기를 거치며 일명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생겨나고, 한순간의 선택이 향후 수십 년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연을 온갖 미디어와 SNS를 통해 너무 가까이 그리고 자주 접한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벼락 거지는 되지 않기 위해 평소 재테크라고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고 아파트를 매수하기 위해 대출을 알아본다. 이제 너 나 할 것 없이 몇억 정도의 대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기준금리가 인상인지 동결인지 하는 것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내가 거주하지 않는 투자용 집 말고 정말로 내가 살았던 집들은, 그러니까 나의 생활이 이루어진 공간은 부동산 시세표의 숫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작가가 책에 대해 설명한 ‘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라는 문장처럼 돈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추억과 경험과 감성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경우는 삶의 중요한 지점이라던가, 인생의 굴곡진 변곡점이 아니었을까? 그런 시기의 나의 삶이 오롯이 묻어 있는 집이 주는 희로애락을 작가는 본인의 삶을 비추어 잔잔히 써 내려갔다.유년 시절의 집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행운을 맘껏 즐기는 시기였다. 넓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명문 빌라라는 대구의 강남 같은 최고 학군지로 이사를 갔지만, 친구의 생일파티 사건 전까지는 자신이 부유한지 몰랐다는,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부유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흔한 클리셰 같은 부모님의 사업 실패.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수까지 하며 서울로 상경해 재개발 지역을 전전하며 살던 집들. 동생과 갈등으로 홀로 독립을 해야 하는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마침내 자신의 생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절의 집. 서른이 넘은 나이에 드디어 정신적으로도 어른이 되어 집을 꾸미고 편안함을 얻은 작가. 성숙한 자아 덕분에 자신 있게 고백도 하고 결혼도 하여 신혼집을 꾸리는 과정까지. 책의 내용에 비춰보면 작가의 나이가 40대 정도인 것 같은데, 한 사람의 40년 일생 동안의 변곡점이 어디인지 가장 잘 알려주는 지표가 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한 에세이였다.글을 보면 집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부모님이다. 물론 유년 시절 집을 옮기는 것은 부모님의 결정이기에 관련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를 보는 시각이 너무 상반적인 게 의아했다. “북성로에 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겨우 서른 살이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문장으로 엄마의 묘사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공간을 잃은, 기센 할머니의 시댁살이와 항상 반복되는 가사노동에 매몰되어 꿈도 열정도 잃어버린 불쌍하고 측은한 사람으로 서술한다. 그에 반해 아빠는 성공한 사업가로써 유복한 유년 시절을 제공하였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었을까? 중학교 이후 사업에 실패해 계속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무능한 아버지로 그려졌다. 그리고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신혼집 인테리어 공사 때 작가 본인 대신 매일 공사 현장으로 출근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마지막에 위층의 민원 때문에 계단 청소까지 직접 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아빠는 항상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기에 성공해 두 딸의 대학교 등록금, 집세, 결혼자금까지 모두 부담하고 대구 근교에 전원주택까지 지었다.’이 문장을 읽고 책을 읽으며 그렸던 작가의 아빠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실패한 사업을 일으키려 무리한 시도를 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아픔만을 남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무능해서 가진 것을 모두 날려버리고 빚만 잔뜩 남긴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고 모든 것을 베푼 아빠인데, 무엇이 아빠와 엄마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갖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아빠가 작가에게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떤 일을 해도 한 번도 혼내지 않고 예뻐만 했다는 아빠. 사업이 무너져도 스스로 재기해 어떻게든 자녀의 대학교 등록금, 생활비까지 지원한 아빠. 그 덕분에 서른두 살까지 굶어죽지 않고 작가라는 명예로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모든 지원을 받았는데도 정작 불쌍한 것은 엄마라니. 무엇이 자녀들의 뒤틀린 개념을 만들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