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벡(Aron Beck)의 인지적 왜곡 사례문예창작학과 글쓰기교육전공 강**Ⅰ. 서론아론 벡(Aron Beck)은 인지치료를 개발한 학자다. Beck은 경험적인 연구를 기초하여 인지 치료를 개발하였는데 그는 인지적 왜곡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다음은 아론 벡의 인지적 왜곡의 유형을 일반 사례로 대입하여 제시한 것이다. 사례는 본인과 타인의 사례를 본 과제의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였다.Ⅱ. 사례임의적 추론정해진 시간에 통화를 하자고 약속을 했으나 해당 시간이 되어도 통화를 하지 못했다. 이럴 때 생길 수 있는 임의적 추론은 물론 상대방이 ‘바쁘거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였거나’라 추측할 수 있겠지만, ‘나와의 약속을 우선으로 생각을 안 하다니 너는 나를 무시하는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선택적 추론운전대를 잡았을 때, 운전을 하면서 칭찬받았던 것보다 교통사고 났을 때의 아픔과 고통이 먼저 떠올라 “난 운전을 못 할거야.”라고 추론한다.과잉일반화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안 다닌다거나 혹은 혼자서 밥을 먹는 모습만 보고 “따돌림 당하고 있네. 네가 그러니까 왕따 소리를 듣는 거야.”라고 일반화시킨다.확대와 축소건강염려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많이 생기는 인지적 왜곡이라 생각한다. 가령 종이에 손가락이 베였을 때 피가 흐르는 걸 보고 “어떡해. 피가 안 멈춰. 과다출혈로 죽는거 아냐?”라고 과장되게 인지하는 것이다.개인화일을 하다보면 거래처와 자금 문제로 종종 일하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한다. 이 때 문제의 원인은 분명 ‘거래처’가 제시간에 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던 것인데, 자신의 마음이 급박해지다 보니 “내가 거래처와 소통을 잘 못해서 자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야.”라고 나한테서 원인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이분법적 사고(흑백논리적 사고)완벽주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다. 어떠한 일이 맡기게 된다면 “이 일은 완벽하게 해야만 해. 안 그러면 일은 절대 해결될 수 없을뿐더러 난 무능한 사람이 될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즉,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해결 가능하고, 하지 못하면 절대로 해결을 못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잘못된 명명글쓰기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훈련도 받고 관련 자격증도 따면서 열심히 준비를 했으나 사소한 실수로 인해 “나는 이 방면에서 ‘전문가’라 할 수 없어.”라고 인지적 왜곡을 하는 경우다.
ACT(수용전념치료) 이론을 활용한글쓰기치료 프로그램 계획문예창작학과 글쓰기교육전공 강**1. 관심 가는 상담기법: ACT(수용전념치료)1) ACT(수용전념치료)란 무엇인가?ACT(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수용전념치료)가 기초하는 견해는 ‘언어가 일반적으로 인간적 고통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복종시키기 위해 고안된 중재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접근법은 관계 틀 이론(Relational Frame Theory: RFT)으로 불리는 인간 언어와 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주의 연구의 연장선상에 기초한다. ACT와 RFT 둘 다 기능적 맥락주의(functional contextualism)라고 부르는 실용주의 철학 전통에서 유래했다. 이 둘의 공통적 특징은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응용적인 것까지 통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그 중 ACT는 특정 문제(외상, 스트레스, 트라우마, 상처 등)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는 것으로, 언어와 행동을 통합하는 접근법이다.앞서 ACT는 중재 접근법이라 하였다. ACT의 중재의 목적은 반응에 대해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다. 유연성이란 현재 순간에 더욱 집중하여 접촉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 변화하고 지속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내담자에 대입하여 말하자면, 내담자가 ACT기법을 통해 상담을 진행하면서 언어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에 ACT는 내담자의 행동이나 말, 언어에서 중요하고 빠른 변화가 가능함을 가정하며 인지할 수 있게 된다.ACT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ACT 상담자들은 역설, 은유, 이야기 등과 같이 경험 과정에 중점을 둔다. 즉 정해지지 않는 비선형적인 형태의 언어를 많이 활용한다. 이 때문에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이다.2) ACT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ACT를 논하려면 그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ACT는 수용, 탈융합, 맥락으로서의 자기,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 가치 및 전념 행동과 같이 여섯 가지 핵심 과정에 초점을 둔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이는 연관성과 지속성을 확립한다. ACT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 모형은 다음과 같다.[그림 1] ACT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 모형각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1) 수용수용이란 비판단적인 알아차림의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 그대로의 생각, 감정, 경험을 적극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는 수동적인 부분이 아니다. 내담자들은 생각과 감정의 영역에서 통제의 역설적인 효과에 즉각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노출이 된다. 수용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내담자들은 자신이 행한 사건을 맥락 속에서, 단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을 연습하고 훈련한다.(2) 탈융합ACT의 목적은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 생각이 일어나는 맥락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탈융합은 관계적 학습을 통해 발생하는 유해한 맥락을 변화시킴으로 기능한다. 이를 인지적 탈융합이라 지칭하는데, 인지적 탈융합 중재에는 마음챙김 등의 기법을 통하여 연습을 할 수 있다. 내담자에게 탈융합 기술을 사용하게 되면 객관적으로 자기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3) 맥락으로서의 자기: 초월적인 자기감ACT기법 중 하나는 생각, 감정, 기억, 감각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맥락으로서의 자기감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지금-여기’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법이다. ‘지금-여기’ 관점으로 사건을 접하는 것은 의식으로, 이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관점이다. ACT 관점에서는 초월적인 자기감이 언어적인 인간 존재 내에서 형셩되고, 탈융합과 마음챙김 과정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수용’을 지지한다. ACT 중재의 목적은 내담자가 직접적으로 ‘맥락으로서의 작’의 질적인 측면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으로, 마음챙김, 명상, 경험적 연습, 은유 등으로 훈련할 수 있다.(4) 현재에 존재하기ACT는 현재 순간에 효과적이고 개방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중시한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 가지 근원인 융합과 정서적 회피를 제거하면서 내담자가 현재를 향하도록 하기 위해 이 기법을 활용한다. ACT에서는 내담자가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음챙김을 수련한다. 현재 순간과의 접촉은 행동치료의 중심을 이루는 행동적?인지적 노출을 포함한다. ACT는 심리적 유연성을 목적으로 현재 순간에 접촉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강조한다.(5) 가치ACT에서의 가치는 “목적이 있는 행위의 선택된 자질”로 정의한다. 이는 하나의 대상으로 처리되기보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나타난다. ACT는 내담자에게 선택과 추론된 판단 사이를 구분하고, 가치를 선택의 문제로 선택하도록 가르친다. ACT는 행동치료로 내담자에게 ‘행동’을 취하게끔 방향을 제시하고 목적이 있는 인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려면 해당 ‘가치’의 의미가 중요하다. 가치는 효과적인 삶의 형태를 구축하도록 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6) 전념 행동회피와 융합은 ACT기법을 활용한 치료를 할 때 방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는 심리적 장애물을 더 많이 인식하게 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방해물을 해결하기 위해 ‘전념’방식을 활용한다. ACT에서의 전념은 자신의 가치 있는 행로에 맞춰 특정 영역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으로, 이는 심리적 장애물을 예측하면서 목적을‘ 수행하는 고도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내담자의 전념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조금씩 영역과 패턴의 폭을 넓혀 간다. 내담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행동 패턴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행동 변화를 파악하면서 수용할 수 있는 자질이 생기게 된다.그림에서 보듯 6가지 핵심은 각각의 독립적인 단계가 아니다. 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섯 가지의 핵심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심리적 유연성”이다. ACT는 심리적 유연성을 본질로 삼고 이는 여섯 가지 핵심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ACT는 더 크고 효과적인 심리적 유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수용, 마음챙김, 전념과 행동 변화 과정 등을 사용한다. 이는 특별한 치료 기법이 아닌 일반적이고 통합적인 기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온 기법으로 언어, 인지, 행동치료 기법이라 생각하면 쉽다.2. 이론을 활용한 글쓰기치료 프로그램 계획ACT 이론 중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여섯 가지 핵심 과정을 포함할 수 있는 글쓰기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다음 [표 1]은 ACT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관련 활동을 예시로 작성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본 핵심 과정은 독립적인 부분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글쓰기 활동 또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반복되는 부분도 있다. 또한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 사고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그렇기에 글쓰기를 하기 전 선행작업으로 마인드맵, 브레인스토밍 등 자유연상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표 1] 여섯 가지 핵심 과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글쓰기 예시 여섯 가지 핵심 과정글쓰기 활용 예시수용상처 상황 파악하고 그 때 느꼈던 생각, 감정 등을 글로 쓰기, 일기 쓰기, 쪽지 쓰기, 마인드맵탈융합사건과 감정(마음) 분리하기, 감사 편지 쓰기, 생각을 노래가사로 쓰기, 시 쓰기, 비합리적 신념을 합리적 신념으로 전환하는 문장 쓰기맥락으로서의 자기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고 소감문 작성, 자기 자신의 좋은 점, 나쁜 점 둘 다 작성현재에 존재하기지금-여기로 시작되는 문장 완성, 현재 존재하는 생각, 감정, 기억들을 작성(알아차림), 일기 쓰기가치 파악하기브레인스토밍, 인생 길 찾기, 추모사 작성하기, 묘비명 작성하기, 버킷리스트 작성, 가치관 쓰기,전념 행동좋아하는 음료수에 관해 쓰고 이유 작성,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기‘수용’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내담자가 상처를 받았던 상황을 직면하는 활동이다. 그들이 상처를 받았던 상황을 파악하고 그 때 느꼈던 생각, 감정, 마음 상태 등을 글로 쓰는 활동을 통해 상처를 ‘수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게끔 한다. 이 때 상처, 트라우마에 관하여 바로 활동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 마인드맵, 자유연상 기법을 통하여 사고를 유연하게끔 하는 선행 작업이 필수적이다.
글쓰기의 중요성문예창작학과 강**자고로 ‘글’이란 것은 굉장한 분야라는 것을 미리 언급해두도록 한다. 이러한 대단한 존재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 또한 축복받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제부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갈 예정으로, 글쓰기의 중요성과 내게 있어서 글쓰기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것으로 장담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뭔지 아는가? 바로 고등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즉 ‘생각’이란 걸 한다는 의미다. 또한 동물은 울음소리만 낼 수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입을 이용해 이야기를 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기도 한다. 이 말은 각자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표현 방법이 대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글과 그림 등으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주제가 글쓰기인 만큼 글에 초점을 두고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 등을 글로 표현하다보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나갈 수 있으며 이는 곧 안정이 돼 정신적 건강을 얻을 수 있다.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나가다 보면 결국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또한 글을 썼던 것들은 일부러 파기시키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기록물’이라고도 칭한다. 이렇게 기록된 문서들을 추후에 다시 살펴보게 되면 그 것들이 자신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5년 전에 썼던 일기장을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다. 이걸 지금 펼쳐서 볼 때 추억 감상에 그치지 않고, 나의 미래에 대한 고찰 또한 할 수 있게 된다. 어린 ‘나’는 꿈이 확고했다.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나를 반성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미래의 나에게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글쓰기를 할 때 행복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필자는 가끔 글을 쓸 때 행복을 느낀다. 물론 슬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쓰는 글은 예외로 생각하도록 하자.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성찰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쓰든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쓰든 내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내 이야기를, 내 손으로, 평소에 사용했던 말투로 쓴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행복한가?앞서 말했듯 필자는 글쓰기의 중요성 중 하나를 자아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달픈 일이다. ‘나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은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리는 전문가 또한 없다. 분석심리학가인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도 ‘나’라는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해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는 ‘자아’가 ‘자기’로 나아가는 과정을 ‘자기실현’(개성화)이라 명명했는데, 어떻게 자기실현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현재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융은 ‘나’를 일컫는 ‘자아’와 ‘자기’를 분명히 구분지어 놓았다. 분석심리학 측에는 ‘자기’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최종 목표를 ‘자기실현’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필자는 자기실현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그 중에서도 ‘일기 쓰기’를 추천하는 바다.일기(日記)란 무엇일까?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기는 개인이 겪었던 경험과 감정의 기록이라고 칭할 수 있다. 즉 겉으로 행동했던 일부터 시작해 자신의 내면과 생각까지 써내려가는 중요한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사실 일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써내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초등학교 때 너무 강요받아서 이에 흥미를 잃고 그 이후로 아예 손을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교육적으로 일기 쓰기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기라는 것이 주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글감 중 하나인데, 강제성이 포함된다면 그에 반해 주체성이 상실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를 천편일률적으로 양식에 맞춰 쓴다거나 혹은 강요받아서 자신의 경험대로 쓰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이는 오히려 일기 쓰기의 진면모를 느끼지 못하고 ‘귀찮은 행위’라는 것으로만 인식할 수 있게 돼 결국 성인이 되고도 일기 자체를 피하고 봉인하는 것이다. 나는 추후에 어린 아이들 글쓰기 교육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하기 때문에 일기 쓰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강요하지 않게끔 교육을 해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언제까지나 주체적으로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게 지도하고 싶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일기 쓰기를 중요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일기를 글로만 쓰면 재미가 없다는 점을 아셨나 보다. 그림, 만화, 독후 활동, 만들기, 종이접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기를 학생들 마음대로 써보고 꾸며보라 하셨다. 나는 일기라는 장르 안에서도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그 때부터 알았던 것이다. 추후에 내가 글쓰기지도사가 돼 학생들에게 일기쓰기를 교육한다면 글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기를 지도할 것이다. 여담이 너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자기실현을 위해서 일기 쓰기를 추천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아무런 제약 없이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 없이 자기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생각만으로 자신이 해나갔던 것을 기록한다면 결국 소멸될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통해 기록을 보관한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그걸 보면서 또다시 꺼낼 수 있고, 그걸로 이미 성찰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자기실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기록을 통해 성찰해나가는 방법 또한 생각할 수 있겠다. 글쓰기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필수요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겪었던 경험 혹은 지식을 생각함으로 인해 새롭게 재정리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글의 재정리 기능에 의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으며 통찰력과 더불어 창의성까지 키울 수 있다. 즉 수많은 생각을 통해 정리를 해나가야 그것이 글로 써진다는 의미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떠한 경험을 해야 그것이 지식화되고 결국 그게 글의 소재부터 시작해 생각하는 과정에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바라본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가장 넓은 부분인 나무 기둥부터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세부적으로 보게 되면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그 끝부분에 열려 있는 크고 작은 열매까지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글을 쓰면서도 처음에는 뭉뚱그려 크게 생각하다가 점점 세부적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어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글을 계속 해서 추가하고 수정해나가다 보면 초고보다 더욱 깊고 새로운 글 또한 나올 수 있다. 글을 쓰면서 확실히 얻어지는 것은 생각의 깊이다. 많이 생각하고 또 깊게 성찰하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써보는 것, 이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소양이 아닐까.사실상 내가 지금까지 계속 해서 언급하고 있는 글쓰기의 중요성은 ‘나’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표현해나가는 행위를 통해 나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점 또한 알아둬야 한다. 이미 중요하게 언급했듯이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쓰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나’ 자체를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든, 비유와 상징을 이용해 은유적으로 알리든 기본적으로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의 경우에도 나의 색깔이 녹아내려가는 장르기 때문에 소설도 배제할 수 없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보면 자신이 경험했던 것 안에서 소재를 찾고 그걸 가지고 서사 구조를 구성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그걸 자기만의 색깔과 상상력을 입혀 쓰는 것이 소설이다. 수필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나’에 대한 이야기고, 시 또한 마찬가지다. 문학이라고 해서 ‘나’가 없다는 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비평문과 논설문, 사설, 신문 기사 등과 같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선적으로 쓰는 자가 본인이기에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는 건 당연지사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쓴 기사 또한 마찬가지다. 어떠한 기자가 쓰는 기사냐에 따라 내용과 어투 등이 다르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듯 글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가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나’를 표현하는 행위임을 반박할 수가 없다. 이렇게 나를 표현하게 된다면 자신의 신념 등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미래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나’라는 것을 표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의견 등을 내 목소리로 표현을 하면 된다. 여기서 목소리는 글에 쓰이는 내용, 문체 등을 모두 일컫는다.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며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내 존재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글을 통해 나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나’라는 존재와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좀더 나아가면 앞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까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글쓰기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세대 모습을 잘 잡아내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봉준호’ 감독의 작품 『괴물』, 『설국열차』, 『옥자』를 중심으로1. 들어가며세계적으로 영화산업은 꾸준히 생산되고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영상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영화 기술 또한 뛰어나게 발전하고 있는데, 영화는 기술적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기술뿐 아니라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쪽에서도 완성도를 높여야 비로소 완벽한 영화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를 총괄하는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실력 있는 연출가, 감독들이 존재하는데 한국영화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하 ‘봉 감독’)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필자가 봉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당시 시대적 현실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따뜻하면서 강렬하기 때문이다. 외신은 봉 감독을 “사회에 향한 문제의식을 작품 속 세련되게 녹여낸 감독이자 작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저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생산해냈지만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작품을 선택했다. 2006년에 한강에 ‘괴물’이 등장했고 가족 전체가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는 천만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봉 감독의 영화 『괴물』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봉준호’스러운 영화로, 그의 작품 세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판단해서 가장 먼저 소개한다. 해당 영화 안에는 가족애, 영웅담, 작품 속 세상의 붕괴, 현실 시대에 대한 비판 의식 등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장 봉 감독스럽다 할 수 있겠다. 관객들도 이 때문에 해당 영화를 유심히 관람했던 것이 아닐까? 『괴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다.다시 서론으로 돌아오자면 2013년으로 시대가 바뀐다. ‘양갱을 먹으면서 영화를 꼭 보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던 바로 그 영화다. 『설국열차』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대하리만큼 완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최근에 개봉한 『옥자』(2017년 개봉)라는 영화가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거대 돼지가 소재로 쓰인 해당 영화는 소재 선택부터 『괴물』과 연상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괴물과 거대 돼지가 달라 보이나, 현재 살고 있는 생명체가 어떤 방법이든 변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영화 『옥자』는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와의 대립으로 소규모 개봉을 했지만 적은 상영관에도 봉 감독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봉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이유로 필자는 봉 감독의 세 가지 작품인 『괴물』(2006), 『설국열차』(2013), 『옥자』(2017)를 중점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펼치려고 한다.2.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통해 알아본 그의 작품세계가. 봉준호 감독은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한다.여러 작품을 연출하고 만들어낸 봉준호 감독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가족애와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괴물』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관계가 그려져 있고, 『옥자』에서는 넓게는 주인과 애완동물, 좁게는 동물 사이에서의 가족애가 살짝 드러난다. 하지만 봉 감독은 이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방해꾼을 만들어낸다. 즉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갈등 요소를 넣는다는 의미다.『괴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염으로 인해 유전자 변형이 된 ‘괴물’이 가족 사이를 갈라놓고, 『옥자』는 사람과 사람의 대립을 통해 주인공을 괴롭힌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시련 끝에 달콤함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봉 감독은 100% 달콤함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다크 초콜릿처럼 어딘가 씁쓸함까지 곁들인 달콤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면 『괴물』에 붙잡힌 소녀의 목숨이 결국 괴물에 의해 사라졌다거나 하는 등 ‘희생’이 있기에 비로소 괴물이 사라질 수 있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뒤구인 거대돼지 옥자가 실험농장에서 탈출하는 그 장면이다. 그 때 인상 깊었던 부분이 미자와 옥자가 탈출하고 있던 중에 철조망 안에 갇혀 있던 거대돼지 부모가 자신의 새끼를 철조망 밖으로 내보낸다. 그걸 본 미자와 옥자는 감시자 눈을 피해 그 새끼돼지를 몰래 데리고 다닌다. 돼지를 식용과 물질로만 아는 인간의 잔혹함과 부모 돼지의 사랑을 대비시켰다고 본다. 부모 돼지는 자신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자신의 새끼에게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끼를 탈출시켰던 것이고, 그 것을 미자와 옥자가 알아챈 것이다. 그 때 부모 돼지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인다. 돼지가 인간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가 나온다.봉 감독의 영화를 살펴보면 어린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리고 또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어린 아이는 편부모 혹은 부모 없이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 작품 내의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 중 한 명이 없는 상황, 즉 편부모인 경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는 결핍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님한테 세상을 배우고 학습하는데 한 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생활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아이들은 두 가지 양상으로 성장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부족함 그대로 모자라게 자란다거나 다른 한쪽은 일찍이 철이 들어서 또래보다 성숙해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봉 감독의 영화 속 어린 아이들은 후자 쪽에 속한다.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나이대로 행동할 법도 한데, 어른들 앞에서 당당하고 또한 일찍 철이 든 모습으로 많이 나타난다.『괴물』에 나오는 여중생 ‘현서’도 어머니 없이 아버지, 할아버지와 살지만 씩씩하고 야무진 성격으로 나온다. 여중생이라 하면 어리광도 피울 법한데 ‘괴물’에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고 탈출하려는 용기도 보인다. ‘여장부’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봉 감독은 어린 미자라는 어린 여자 아이한테도 현서와 동일하게 ‘여장부’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결국 미자는 어른들이 돈을 위해서라면 살생을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를 했던 모습을 보고도 자신의 친구인 ‘옥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냈다. 주인공의 죽음이 희생이 되어버린『괴물』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둘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의 여자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성숙했던 모습이라는 점이다. 봉 감독은 이러한 모습을 통해 어른들의 안일하고 무지한 모습을 비판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설국열차』도 예외는 아니다. 해당 영화 또한 여자 아이와 더불어 아이들 무리도 등장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나오는 여자 아이와 아이들 무리의 위치는 사뭇 다르다. 『설국열차』는 ‘계급 사회’를 형상화해서 나타낸 거대한 상징물로 열차 끝 칸이 계급 사회의 하층민을 뜻하며 앞 칸으로 갈수록 계급이 높아지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앞 칸에 위치한 사람들이 끝 칸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힌다는 것이다. 열차 꼬리 칸은 제대로 된 음식조차 먹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핍박과 폭력을 당해가며 살아간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끝 칸 사람들과 함께 앞 칸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나타난 여자 아이 ‘요나’는 열차 안에서 태어나 자란 첫 세대의 아이라는 점이다. ‘요나’는 아버지 ‘남궁민수’를 따라 열차 안에서의 투쟁 속에서 살아남으며 결국 열차 밖으로 탈출하는 존재로 ‘요나’를 ‘희망과 미래의 세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열차의 세상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악착같이 생존해가는 모습에 『설국열차』의 여자 아이 또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설국열차』에서 눈여겨봐야 할 장면이 있다. 열차 안에 ‘교실칸’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하라는 대로 그대로 행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현실 세대의 수동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이같이 세 작품에서 보았듯 봉 감독의 여자 아이는 생존력이 강하고 대범한 모습을 띄고 있기에 필자는 ‘여장부’라 칭하는 것이다.다. 봉준호 영화는 현실 문제를 잘 담고 있다.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금까지 세 가지 작품에 대해 비교하듯 언급해 보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은 작품의 내용과 기술적인 면에서 다를지는 몰라도 그 걸 총괄해서 연출하는 감독의 성향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 세계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했기에 이 같은 비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해둔다. 소제목과 그의 여러 작품에서 봤듯 봉 감독의 영화는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화’라는 장르가 현실 비판 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봉 감독은 그 기능을 자기만의 입맛대로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봉준호는 현실세계를 영화 안에서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 속에서 부조리한 측면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물 중에서도 경제?사회적 약자인 소시민 혹은 하층민에 집중하고 있다.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세 작품 외에도 봉 감독의 작품 다수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층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봉 감독은 이러한 피지배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하게 함으로 현실 세태를 더욱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눈으로 보는 현실이 더 악랄하고 부조리하게 보인다는 것은 당연지사고 그렇게 해야만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의식을 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실 사회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이미 의식이 깨어있고 국가, 사회, 정치 등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익숙해져 있다. 정치에 관련해서도 함부로 비판을 못 했던 옛 시대와는 다르게 현실은 국민들의 의견을 겉으로 표출을 한다. 광화문에서 대규모로 열렸던 촛불 시위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민중의 소리 등과 같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뱉을 수도 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생각해보다.감히 내게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너는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이 있니?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당시에는 그 것이 ‘사랑’이라고 칭할 수 있겠으나 지나고 보면 진짜 사랑이었을까 의문점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어휘는 관념적이다.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도 다르고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등 형상화되어 있지도 않기에 파악하기가 어렵다.『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작가가 자신의 감성으로 각색한 것으로 일곱 번째 난장이인 ‘반달이’ 중점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백설공주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를 가져오되 서사적인 내용을 난장이의 행동 시점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네주었다.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의식을 잃었다.’ 부분에서 마무리했다면 해당 도서에서는 독사과를 먹어 의식을 잃은 백설공주를 발견한 난장이가 어떠한 행위를 했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인공인 반달이가 왕자를 데려오겠다고 자처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가는데 이 때 난장이와 인간의 거리감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백설공주가 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웃음기가 없이 황폐해져 있었다면 왕자가 살던 이웃나라 사람들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대비 효과는 현실 사람들의 황폐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작가의 입맛대로 에피소드를 변경한 부분도 있다. 원작에는 없던 ‘백설공주가 독장미의 가시에 찔려 쓰러졌다.’는 에피소드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백설공주를 깨우기 위해서는 장미요정의 눈물이 필요한데 이를 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반달이가 백설공주를 향한 사랑 하나로 결국 눈물을 구하고 백설공주를 살린다는 구조는 희생과 사랑을 동시에 담고 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내딛어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지켰다는 점은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반달이가 벙어리라는 설정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백설공주와는 거리가 있고 대비시켰다는 부분부터 둘은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 절실히 보인다. 반달이는 몸짓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백설공주는 그 의미를 못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결국 반달이가 죽고 진실의 거울을 통해 백설공주는 그제야 반달의 진심을 알게 되지만 결국은 그 거울을 봉인한다. 진실을 숨기고 싶다는 의도일까 아니면 진실을 그 자리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해당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먹먹함 그 자체였다. 문장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며 동화적인 내용과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져 있으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원작 동화를 가지고 이렇게 재구성했다는 점 또한 눈 여겨 볼 수 있겠다. 사실은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마지막에 진실의 거울이 했던 말이 자꾸 맴돈다.“하지만 백설공주님을 가장 사랑했던 분은…”공주의 고개가 살짝 들렸습니다.“안개숲의 안개꽃밭…“희미해진 기억이었습니다.“그곳에 잠들어계신…반달님…이십니다.”내가 해당 작품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다. 언제나 읽어도 눈물이 흐른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작품을 읽었을 때 비록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성숙해졌을 수는 있으나 감성적인 면에서는 똑같은 부분에서 자연스레 눈물을 쏟게 된다. 눈물의 킬링 파트가 아닐까 한다. 미래의 내가 읽어도 이 부분에서 잠시 호흡이 느려지면서 무의식적으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