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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신화 속 '악한 여성인물'이 보여주는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 <삼승할망본풀이>의 동해용궁따님아기를 중심으로
    제주 신화 속 ‘악한 여성인물’이 보여주는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의 동해용궁따님아기를 중심으로목차서론: 우리는 왜 동해용궁따님아기에 주목해야 하는가본론: 1. 육지의 물의 여신의 특징2. 동해용궁따님아기의 특징결론: 동해용궁따님아기가 보여주는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서론신화 속에는 물을, 그리고 물에 비유되는 여성성에 대한 근원적 사고가 보존되어 있다. 가부장적 규범성의 문제가 육지 신화와 제주 신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발현되는가의 문제는 각 문화 속에서 ‘물’이라는 원소가 어떻게 다르게 상징되는가에 연관된다.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육지와는 다른 환경적 제반을 지녔다. 따라서 같은 ‘물의 여신’이라 해도 육지냐 제주냐에 따라 그 신격의 성격이 차별성을 보이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육지의 ‘물의 여신’들은 남성 인물의 어머니나 배우자의 역할로 자애롭고 현명한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이는 대체로 가부장제의 성역할에 부합하는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제주 신화 속 ‘물의 여신’들은 남성 인물들과 동등한 주신(主神)적 면모를 갖고 있다. 육지 ‘물의 여신’과 여러 부분에서 변별적 특징을 갖고 있는 제주 물의 여신의 한 사례로 의 동해용궁따님아기가 있다. 동해용궁따님아기에 대한 별칭은 다양하다. 저승할망, 새 생명을 낳지 못 하는 불행한 물의 여신, 추방된 여신, 저승에서 아기를 돌보는 여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승할망’에게서 우리는 물의 여신의 진정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속 동해용궁따님애기의 특징을 육지의 여성 수신들과 비교해보고, 나아가 현대에 존재하는 물을 모티프로 하는 여성과 비교하여 제주 여성 수신의 진취성과 자주성을 재조명해보겠다. 이를 통해 추후 우리가 만나게 될 일탈적 여성 서사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본론1. 육지의 물의 여신의 특징육지의 신화에서 우물, 강의 여신이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남성인물의 어머니나 아내와 같은 조력자적 위치에서 존재하며 건국신화 속에서 고는 그의 딸인 용녀와 결연하여 데리고 온다. 용녀는 오자마자 개주 동북산 기슭에 은주발로 땅을 파고 물을 길어 썼는데 그 우물이 지금 개성의 큰 샘[大井]이다. 용녀는 또 송악의 침실 밖에 우물을 파고 그 우물을 통해 서해 용궁을 드나들었는데 그 우물이 광명사(廣明寺) 동상방(東上方)에 있는 북쪽 우물이라고 한다.③ 학산마을에 한 처녀가 우물의 물을 바가지로 뜨니 그 속에 해가 담겨있었다. 물을 버리고 다시 떴는데도 또 해가 담겨있어 그냥 마시니 태기가 있어 남자아이를 순산했다. 그러자 처녀의 부모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아이를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버렸는데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학과 산짐승들이 모여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는 비범한 인 물이 될 것을 알고 데려다 키웠는데 그가 바로 범일국사이다. 그는 후에 죽어서 대관령 성황신이 되었다고도 한다.④ 속 유화(柳花):-해모수왕이 웅심연에서 유화 자매를 보고, 좌우를 보며 “저 여자를 얻어서 왕비를 삼으면, 가히 자손을 둘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내용을 보면, 수신의 딸들에게서 ‘물’이 상기시키는 풍요의 코드를 읽었음을 알 수 있다.-고대의 경우 인물의 이름이 그 인물의 성격을 대변하는데, 유화의 이름을 직역하면 ‘버드나무 꽃’이 된다. 버드나무, 즉 물을 인격신화한 양상이 보인다. 유화의 원형상징은 그 식물의 속성을 바탕으로 한 나무의 원형상징을 포함하고 있는데, 버드나무라는 수종의 특징(물, 봄, 여성적 이미지)들과 결부되면서 물의 신인 하백의 딸로 설정되었다.-유화가 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다섯 개의 곡식 낟알을 주었다. 다섯 개의 낟알이 상징하는 토지의 수태능력은 이 전설에서는 여성, 즉 물의 여신인 주몽의 어머니와 직접 관련이 있다.-주몽은 어머니인 유화의 능력을 이어받아 수생생물로 강에 다리를 만들고 비류국을 물에 잠기게 하는 등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신(水神)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유화는 아들인 주몽에게 자신의 수신적 면모를 넘겨주고 이후 서사에서 퇴장한다.이처럼하는 여성 즉 모성의 생명 원리와 결부된다. 이처럼 내륙 지방에서 물의 여신들은 물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근거하여 자애로운 존재로 그려진다.전세계적인 흐름에서 여성 중심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로 바뀌면서, 여성영웅은 사라지거나 죽고 남성영웅이 등장한다. 여성 창세신이 남성 배우자를 만나고 남성신의 배우자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고 이어서 아이를 낳는 어머니 여성신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강력한 힘을 가진 거대한 신이 부속적?종속적 존재로 그 신격이 축소되며 동시에 점차 부드럽고 자애로운 여성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 물의 여신 역시 ‘물’이라는 원소의 양면적 힘이 거세된 채, 오직 물의 생산적 측면에서만 추앙 받아 여성신의 그 강하고 두렵고 무서운 힘, 위대함은 해체되었다.문학, 철학, 교훈서 등은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는 인류학자 아드너의 ‘침묵집단(muted group)’ 이론과 관련되는데, 그녀는 전통적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은 일종의 ‘침묵 집단’이었다고 말했다. 나아가서 여성에 대한 언급 자체도 드물었다. 그러나 규범은 그렇게 단순하게 물화되지 않으며, 수많은 여성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향의 압력으로 나타난다. 압력은 단일하게 작용하지도 않고 그것에 저항하는 방법도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물의 신은 ‘어머니 여신’으로서 남편이나 아들의 존재를 통해 신화 속에서 본인의 존재를 유지했다.2. 동해용궁따님아기의 특징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져 있으며 오직 바다라는 ‘물길’을 통해서만 밖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반대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바다는 제주인들에게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걸게끔 했다. 바다는 양면적인 얼굴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이 제주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여성의 자주성이 육지에 비해 강했다. 이런 연유로 제주의 여신들은 육지에 비해 가부장적 왜곡을 덜 받으며 원형적 신격을 비교적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바다의 신이 생산과 풍요를 주재한다는 생각은 생명 탄생의 신이 로 완전한 풍요와 힘을 지녔기에 하늘, 땅과 동등한, 개별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제주신화의 ‘물의 여인’들은 이런 바다의 성격을 본인의 신격으로서 수용했다. 이들은 ‘자애롭고 지혜로운 어머니나 아내’이기보다는 본인의 생래적 치유력과 원초적 생식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생산의 근원인 자궁에는 양수가 있고 양수가 인류를 키웠다. 물은 인류의 원형질로서, 물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죽은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물의 신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생명을 잉태시키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남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서 공포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원초적 어머니는 창조와 파괴자의 양면성을 가지며 모든 생명의 창조자, 육성자이면서 생명을 매장하는 묘지를 의미한다. 모성 원형의 성질은 도움을 주는 본능이나 충동이고, 비밀스러운 것, 감추어진 것, 어둠, 심연, 죽의 자의 세계, 삼켜버리고 유혹하는 것,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듯 모성원형은 양면적인 측면이 강하고, 사랑, 희망, 도움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죽음, 삼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 올가미 같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여성성에서 탄생한 것은 단순한 모성이 아니라 생명, 창조, 공포, 파괴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 전체이며, 여성성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이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이 곧 남성 권위에 대한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불안이 무참한 처벌과 응징으로 이어진 역사 또한 뿌리 깊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 산신 신화 역시 이러한 역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동해용궁따님아기는 옥황상제가 보낸 명진국따님아기와의 승부에서 패배해 저승할망으로 신격이 축소된다. 남성중심적 가부장제는 여성 인물의 단일한 이상적 형태를 제시해두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의 발언권을 박탈하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특히 ‘물의 여인’은 그들이 가진 강력한 생명력에 대한 남성사회의 반발과 불안에 의해 그 신격이 심하게 훼손되어 강한 규범의 압력 농사를 하여 물산을 풍족하게 함으로써 문명을 여는 기초를 마련한다. 벽랑국은 바다 어디엔가 있는 가상의 공간이고 당신본풀이의 예에 따르면 용왕황제국과 같은 곳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세 공주는 당신본풀이에 등장하는 동해용왕 따님아기와 상통하는 면모를 지녔다.옥황상제라는 절대권력 하에서의 명진국 따님아기와 동해용궁따님아기라는 두 약자들끼리의 충돌은 결국 최초의 삼신이었던 동해용궁따님아기를 저승의 신으로 신격을 옮기게 한다. 그렇게 최초에 신성한 존재로서 독립적으로 제주땅에 살아 숨쉬었을 동해용궁따님아기는 구삼승할망이 되어 아기에게 병을 주고 잡아가서, 저승에서 아이의 사령(死靈)을 차지하는 신이 된다.기존의 논의는 를 생명신과 죽음의 신의 대립구조라는 틀로서 두 인물의 승패를 논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생명과 죽음의 대립구조가 아니다. 본인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나가야 하는 동해용궁따님아기의 이야기와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삼신으로 이 땅에 도래한 명진국따님아기의 이야기는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여성 개인과 이를 밀어내려는 거대한 남성 권력의 대립이다. 즉 바다라는 원형적, 자연적 여성성에 대한 가부장적 문화의 부정과의 대립이다. 부인과 아이를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임박사와 동해용궁따님아기에게 매를 맞은 명진국따님아기는 옥황상제에게 도움을 청한다. 옥황상제라는 남성적 권력자를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 관계망 속 바다라는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등장한 여성 인물의 위치는 불합리한 약자의 위치에 있다. 조력자도, 동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동해용궁따님아기는 애초부터 옥황상제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적 권력을 대표하는 명진국따님아기와 똑같은 수준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승부에 응한 셈이 된다. 동해용궁따님아기가 명진국따님아기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결과 탄생은 이제 자연에서 가부장적 문명사회의 영역으로 편입하게 된다.그러나 이때 동해용궁따님아기의 패배자 서사에서는 “나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비춰진다. 가부장에서 쫓겨나 다시금.
    인문/어학| 2022.03.18| 6페이지| 2,5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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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저항 서사 은희경 <아내의 상자>와 한강 <채식주의자>
    여성 저항 서사「아내의 상자」와 「채식주의자」1. 서론2. 본론2-1. 관찰자이자 아내 혐오자로서의 인물 ‘남편’2-2. 중심적 인물이자 자기 혐오자로서의 인물 ‘아내’2-3.「아내의 상자」,「채식주의자」와 ‘다락방의 미친 여자’3. 결론서론2015년 ‘강남역 사건’ 이후 한국에 ‘페미니즘 리부트’가 도래했고 이후 페미니즘은 거대한 사회담론이자 시대정신이 되었다. 자연스레 한국 문학에서 ‘여성 작가-여성 서사’에 대한 수요와 요청도 많아졌다. ‘여성’이 시대 문학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면서 문학에서 여성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야기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본고에서 살펴볼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두 작품은 각각 1998년 제 22회 이상문학상,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우리 문학사에 있어 영향력을 갖춘 작품이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적 남성성이 가진 폭력성을 고발하며 이에 반발하여 추동된 여성인물의 저항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는 남편의 시점에서 아내의 불임과 변화, 불륜 그리고 가정 파탄의 과정을 냉소적인 어투로 서술한 단편소설이다. 한강의「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점의 「채식주의자」, 형부의 시점의「몽고반점」, 언니 인헤의 시점의 「나무 불꽃」 총 삼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 연작소설이다. 세 인물이 중심인물 영혜의 삶과 갑작스런 변화를 들여다봄으로써 서사가 진행된다. 이 두 작품은 비록 남성의 목소리로 서사가 전개되지만 가부장적 억압이 여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해 깊게 천착해 형상화한 소설로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두 작품 모두 저항하는 여성의 형상화나 취급에 대해서는 ‘실패한 탈(脫)가부장 서사’라는 비판 역시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두 작품은 이외에도 동세대 여성작가에 의해 쓰였다는 점, 관찰자인 남편의 시점에서 중심인물인 아내에 대해 소설이 전개된다는 점, 여성이 본인 내부에 내(「채식주의자」 12쪽)아내들의 ‘변화’ 이전에 그들은 아내 역시 이런 일정한 상식적인 아내의 규격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난’해보이던 아내가 변화하자 는 크게 당황한다. 아내의 변화를 존재론적 각성이 아닌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아내의 변화에 대한 의 공통적인 태도는 침묵하기, 참기, 일에 몰두하기, 습관적으로 무관심하게 행동하기, 타협하기, 종국에는 각각 처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이혼(「채식주의자」)하거나 아내를 본인의 승인 없이는 퇴원 불가능한 정신병원에 수용(「아내의 상자)」)등 아내와 아내로 인한 벌어진 일련의 ‘비정상’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내와 를 ‘분리’한다. 그렇게 아내와 영혜는 이해받지 못 한 채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는다.두 작품 모두 남편인 시각에서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두 작품 모두 의 목소리로 의 존재성을 억압한다. 라는 억압 하에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 인물들은 영혼, 정체성, 내가 누구라는 자각마저 상실하며 ‘미친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를 고통 받는 피해자로 인식하도록 한다.「아내의 상자」의 소설의 시작은 ‘나’가 아내와 살았던 집을 정리하며 분노하는 독백 장면으로 시작되며 결말은 아내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다 해방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 사이의 소설의 내용은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적대감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 하는 이방인스러운 면모를 부각시킨다. 아내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건조한 어조와 더불어 ‘나’의 판단과 해석에 의해 서술해 아내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증폭시킨다.「채식주의자」의 소설 역시 화자 ‘나’는 “그러나 나는 왠지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채식주의자」p.15)”고 고백하는 등 아내의 기행에 대해 적나라하게 서술하며 지극히 경계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이러한 접근은 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독자들에게 있어 ‘미친 여자’에 대한 어떤 반감을 자아내는데 기여하며 종종 ‘성공’한다.이러한 의 공통적 행보와 더불어 가 인 인간이 아닌 가정부/섹스토이/자궁이라는 여성혐오적인 남편의 시각에 가두려고 하는 시선 속에서, 아내는 자기 자신을 표출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며 ‘아내’라는 이름 속에 자신의 정체성의 전부를 갈아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편과의 관계 속 자기 존재의 소멸의 끝에 ‘아내’는 각각의 방식으로 저항한다.서술자 가 가지는 몰이해가 갖는 죄악성은 더욱더 드러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며 아내를 ‘혐오’함으로서 자기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고 자기 자신의 태도를 변명한다. 그리고 마치 그런 ‘미친 여자’된 아내를 완강히 거부하며, 아내를 정신병원에 넣거나 이혼한다. 가부장적 폭력이 가한 억압은 결국 그녀를 저온도 고온도 아닌 무기물적 미온을 지닌 물건이나 폭력성에 대한 반감으로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는 인물로 만들었고, 아내는 이제 타의에 의해 ‘상자’에 갇히거나 자의에 의해 ‘식물’이라는 환상에 갇힌다. 그러나 마치 자아를 잃고 마치 물건처럼 변한 채 “잘 정리(「아내의 상자」 49쪽)”된 아내는 스스로의 힘에서 상자에서 벗어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다. 또는 식물로서 조용한 저항을 이어나간다. 는 가정이라는 밀실에서, 정신병원 또는 ‘식물 되기’라는 밀실로 옮겨졌을 뿐이다. 가부장제는 그렇게 상자 속에 수납된/식물이라는 정체성에 스스로를 감금한 여자의 속내를 헤아릴 상상력 자체가 없는 듯 군다. 저항하는 여성은 “돌연변이 유전자”라고 치부하고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버리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친 여자’는 그렇게 의 서사 속에서 분명히 피해자지만, ‘불편한’, ‘위협적인’ 따라서 ‘불온한 가해자’로서 다뤄진다.2. 중심적 인물이자 자기 혐오자로서의 인물 ‘아내’:관찰자이자 서술자, 파괴자, 혐오자인 남편인 와 달리 는 관찰대상이자 서술대상이며 파괴되는 자, 혐오당하는 자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남편이 아내를 타자화된 혐오를 가했던 것과 달리 아내는 자기혐오적인 내향적 폭력의 성향을 갖춘다는 점이다. 「아내의 상자」의 한다. 아내와 영혜는 타자에 의해 소모되는 자신의 존재성을 보존하고 외적·내적 폭력성을 밀어내기 위해 더 내적인 영역으로 도피하거나 나아간다. 「아내의 상자」의 방의 구조와 방에서의 아내의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아내에게 부여된 이러한 수동적·내향적 속성은 이후의 서사에서도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며 아내의 행동을 제약하는 물밑작업과 장치로 여겨진다. 영혜의 방 역시 도피처가 되지 못 하고 서사 속에서 배제된다.아내와 영혜는 각각 과면증과 불면이라는 수면장애를 겪는다. 일반적으로 수면은 여러 상징적, 은유적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는 신체적 반응 중 하나이다. 수면은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투영해주는 꿈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며 동시에 ‘현실과 분리된 도피처’ 또는 ‘죽음의 형제’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수면은 내밀하고 개인적인 일로서 바깥으로의 폭로나 바깥과의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속성을 지닌다.아내에게 잠은 그 누구도 방해하고 침범할 수 없는 내밀한 세계, 자기만의 공간이다. 아내의 수면은 ‘나’와 아내에게 동시에 죽음을 연성시킨다. “아내는 이 의자에 웅크리고 낮잠을 자곤 했다. 의자 속에 깊숙해서 무덤처럼 편안하다고 했다.(25쪽)) 아내는 자주 기이할 만큼 깊은 수면에 빠지는데 이러한 과면증의 이유는 “웬 잠이 그렇게 깊어?라고 물으면, 베란다에서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잠이 와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31쪽)”라는 아내와 ‘나’의 대화를 통해 단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내는 표준적이고 도식적이며 폐쇄된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깊은 단절감과 피로를 느끼며, 이는 곧 수면으로 이어진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더욱이 아내는 ‘나’와 부부싸움을 했을 때, 불륜을 들켰을 때마다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즉 아내는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에 대한 수동적인 저항으로서 수면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내는 수면이라는 스스로의 필름을 끊어 버리는 방식의 행동에 깊이 빠져들며, ‘상자’라는 은폐된 공간 속에 기르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보며, 통통하고 애교 있는 강아지는 살아남고 마르고 경계심 많은 강아지는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를 넘어 마른 개가 통통한 개에게 뻔뻔스레 달라붙어 기생한다며 빨리 죽기를 바란다. 이윽고는 “개들은 왜 자살 같은 걸 안 하나 몰라.(40쪽)”라며 화를 낸다. 아내로 상징되는 마른 개는 세상에 대한 예민하고 경계적인 시선을 내보이며 세상의 외곽으로 내쳐진다. 반면에 세상의 규칙에 잘 따르고 상식적으로 적응하는 강아지는 토실하게 살이 찐다. 후자의 개는 ‘남편’이다. 강아지에게 먹고 살려면 성격부터 고치라는 옆집 아이의 목소리는 아내의 마음에 깊게 파고든다. 그날 밤 ‘아내’는 무슨 생각인지 나에게 성관계를 요청한다. 비굴한 ‘자기 처벌’ 정서가 엿보이는 장면이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몸처럼 싸늘하기만 하다. 그 방증으로 아내의 몸은 전혀 달아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자기 처벌과 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자 하나 이에 실패한다.영혜에게 학대받는 개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 영혜는 자신을 문 개가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보신탕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어린 영혜는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아버지의 달리는 오토바이에 묶인 채 죽어가는 개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52쪽)”라고 괘씸하게 생각한다. 저항도 하지 못 한 채 잔인하게 죽어가던 개의 모습과 개고기를 먹은 기억이 중첩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영혜가 아버지의 폭력을 받아들이며 홀로 참아내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개는 영혜의 자아투영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피해자 본인에게조차 내재화된 가해자성을 띄는 폭력은 꿈을 통해 각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영혜는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을 내재화하려 노력했던 「아내의 상자」의 아내와 달리 가족들 보는 앞에서 자해까지 하며 타자화된 자기 자신을 격렬하게 거부한다.두 작품 속 각각의 여성인물은 자기 내부에 축적된 폭력성과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미친 여자’가 되어 간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은 방된다.
    인문/어학| 2022.03.18| 8페이지| 2,5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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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 보조사 문법론
    보조사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한 보조사의 정의는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이다. 통사론적으로 모든 문장은 서술어와 서술어가 요구하는 보충어, 그리고 그 외에 서술어가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화자가 필요에 의해 부가적으로 첨가한 성분인 부가어로 이루어져있다.보조사는 격조사와 유사하게 대체로 체언과 다른 조사 뒤에 붙으며 때때로 부사어 뒤에 붙기도 하는 등 다양한 결합관계를 보인다. 문법 성분(문법 관계)을 표시하기 위한 격표지 격인 격조사와는 달리, 격을 표시하는 기능은 하지 않는다. 대신 해당 대상과 관련된 다른 의미, 즉 정보 구조적 의미, 대안 집합적 의미 등을 전달한다. 보조사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문장 내의 이웃하는 언어 성분들과 상관하는 통사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보조사의 범주 목록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상이하다. 보편적으로 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보조사는 {은/는}, {도}, {만}, {부터}, {까지}, {조차}, {마저}, {나}, {나마}, {라도}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야}, {야말로}, {커녕}, {밖에}, {뿐} 등 다양한 보조사가 윤택한 언어생활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각 보조사의 특징과 들여다볼 만한 논의 지점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먼저 보조사 {은/는}은 한국어교육에서 주격조사인 {이/가}와 함께 초급 단계에서 학습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은/는}은 쉬이 격조사로 착각받기 쉽다. 그러나 보조사 {은/는}과 주격조사인 {이/가}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살펴보면 이들이 어떻게 분별되는지 알 수 있다.(1) 강아지가 사료를 먹는다.(2) a. 강아지는 사료를 먹는다.b. 심지어는 선산까지 팔아먹었다.c. 나의 마음만큼은 너에게 줄 수 없어d. 고흐는 귀를 자르고는 소리를 질렀다.e. 부모란 자식에게 무엇인가는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주제였다.보조사 {은/는}과 주격조사인 {이/가}가 포함된 이와 같은 용례를 살펴보면 (1)의랄 함유량은 많다.’의 경우 내포절의 주어로 ‘-은/는’를 사용되었는데, 이 문장은 일반적으로 언어 상식으로는 올바른 문장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15) a의 용례의 경우 {다른 과목}에 들어갈 수 있는 여러 대한 집합{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 영어, 수학, 과학 등}과의 대조를 나타내는 접속문이므로 주절과 종속절 모두에 {은/는}이 와도 자연스럽다. (15) b는 부사절 내포문으로 종속절??에 {은/는}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또한 어이진 문장 중에서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은 연결어미 뒤에 {은/는}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16) a. *사과는 빨갛고는 원숭이의 엉덩이는 빨갛다.b. *논에는 벼가 자라고는 밭에는 감자가 자란다.왜냐하면 {은/는} 발화에서 특정한 어느 부분이나 그 부분들을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언어 전략이 실현하며 선행절과 후행절의 층위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등한 접속문의 경우 선행절과 후행절의 의미상의 대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문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종속절에서는 문장의 연결어미 뒤에 {은/는}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다.또한 아래의 용례에서 주절에서 {은/는}을 통해 ‘먹기는 먹었으나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는 내용을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강조와 대조의 의미로 사용되는 {은/는}은 선택함으로써 화자가 사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 등의 사태에 대한 시점을 드러낼 수 있다.(17) 먹기는 먹었는데, 어제 메뉴보다는 맛있진 않았어.또한 ‘아니다, 되다’ 등의 서술어 앞에 오는 명사에 붙어 사용되는 {은/는}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 보어가 되는 대상을 나타내는 문장의 주어에는 {은/는}을 사용하게 된다.(18) 당신은 사람이 아니다.(19) 종인은 내년에 스물여덟 살이 됩니다.아래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게’, ‘-고’, ‘-(으)며’, ‘-(으)면’, ‘-(으)니’, ‘-아/어’, ‘-지’ 등 연결어미 뒤에 쓰일 때는 강조를 나타낸다.(20) a. 죽기를 }은 나열관계, 목적관계, 인과관계의 연결어미 뒤에는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조건관계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면’은 의미적 특징 때문에 (10)-b처럼 한정의 {만}과 같이 나타날 시에 비문이 된다. 그리고 (10)-ㄹ처럼 상황관계의 연결어미 뒤에서는 선행절과 후행절의 의미관계의 특징상 보조사 {만}과의 결합에 제약이 있다.보조사 {만}’은 여러 부사와 자유롭게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부사에 연결될 때는 (11)-b처럼 적극적 의미를 지닌 ‘오래’, ‘자주’와 같은 부사에 연결되지 못하는 제한이 있다. 이는 {만}은 시간부사에 연결될 때 그 시간의 짧음에 대한 최저 한정의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11) a. 잠깐만 만나자.b.*자주만 만나자.보조사 간의 결합 양상은 ‘부터’, ‘까지’, ‘뿐’, ‘밖에’ 등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12) a. 이 사람까지만 사진을 찍도록 해주겠어요.b. 너뿐만 아니라, 나도 망했다.{만}은 어미와의 결합에서도 자유롭다.(13) a. 너만 행복했었다.b. 강아지만 춥겠더라.(13)에서 보조사 {만}은 선어말어미 ‘-었-’, ‘-겠-’, ‘-더-’에 연결되어 있다. 예문을 보면 (13)-a에서 보조사 ‘만’은 ‘-었-’과 결합하여 과거 사실을 표시하고 있고, (13)-b에서 보조사 '만'은 '-더-'와 결합하여 추측과 과거 회상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14) a. 너만 보이더라.b. 나와만 사랑하자.c. 나만 사랑하니?d. 나만 바라봐라.이처럼 보조사 {만}은 평서문 종결어미(a), 청유문 종결어미(b), 의문문 종결어미(c), 명령문 종결어미(d) 등 각각의 종결어미와 자유롭게 결합한다.2) 도(1) a. 종인도 밥을 먹었다.b. 종인은 밥도 먹었다.c. 수학을 잘 하는 너도 이 문제를 풀 수 없구나.d. 하나도 안 예쁘다.e. *하나도 예쁘다.f. 하나도 모른다.(1)-a에서 밥은 종인 이외의 사람도 먹었으며 종인 역시 밥을 먹은 축에 속한다는 의미이다. (1)-b에서 종인이 한 행위 중에는 같이 어떤 일이나 상태 따위의 범위의 시작임을 드러내고 싶을 때는 후에 ‘까지’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2) a. *우리 노래부터를 부르자.b. 요즘은 개나리가 피고 난 후부터를 겨울이라고 보는 것 같다.{부터}는 때에 따라서는 명사구에 관련되기도 하고 문자에 관련되기도 하는데, b와 같이 명사구에 관련될 때에만 목격적 조사 ‘를’, 즉 구조격 조사와 중첩되어 사용될 수 있다. 즉 b의 {부터}의 작용역은 명사구인 ‘개나리가 피고 난 후’이기 때문에 문장이 비문이 되지 않고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5) 조차(1) a. 그는 신발은커녕 양말조차 신지 않은 모습이었다.b. 강아지는 너무 어려서 이유식조차 삼키지 못 했다.(1)-a에서 {조차}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양말도 신고 있지 않음을 추가로 나타내고 있고, b는 이유식이라는 아주 먹기 쉬운 음식도 삼키지 못 하는 극단적인 상태를 나타낸다.(2) a. 세훈조차 키가 190cm를 넘지 못 한다.b. 세훈은 김밥은커녕 라면조차 조리하지 못 한다.c. 그는 세훈에게조차 이기지 못 했다.(2)에서 알 수 있듯이 {조차}는 문장 내에서 체언과의 연결에 있어 주격, 목적젹, 부사격과 연결될 수 있다.(3) a. *어디조차 예뻐?b. 내가 너 하나조차 못 당해낼까?다만, 의문대명사 ‘어디’와 결합할 때, (3)-a처럼 긍정적 의문문에서는 불가능하지만 b처럼 부정적 수사의문문에서는 가능하다.(4) a. 너에게 멸치를 먹이기조차 쉽지 않다.b. 바람이 울음조차 멈췄다.(4)처럼 명사형 어미에 제약 없이 연결된다.(5) a. 그 아이가 이제 가엾게조차 보인다.b. 상심했는지 더 이상 밥을 먹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c. 글씨를 쓰다가조차 손가락이 아프리만큼 손가락이 망가졌다.d. *너처럼 아름다우면서조차 키도 큰 애는 잘 없다.a의 용례와 같이 {조차}는 부사형 어미 ‘-게’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연결어미와도 부드럽게 연결되나, d의 용례와 같이 나열관계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면서’와의 결합에서는 제약이 나타나기부정대명사에 연결될 수 있다.(4) a. 아무나 나 좀 도와줘b. 무엇이나 부탁해.c. 그 남자는 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는 남자이다.a의 문장은 누구라도 좋으니까 도와달라는 의미, b는 모든 것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c는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서는 ‘그 남자는 그 대상이 어떠하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는 ‘그 남자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사람이다’ 등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다. 이처럼 부정문에서 쓰이면 중의성이 생기게 된다.(5) a. 웃기나 해b. 나는 그의 해맑음이나 믿는다.c. *그의 얼굴을 보면나 웃음이 난다.d. 그런 성적으로나 앞으로 취직이나 하겠니.a와 b의 문장은 명사형 어미 ‘-기/음’에 연결된 문장인데 모두 성립한다. c와 d는 보조사 {나/이나}가 연결어미에 연결된 문장이다. 이 중에서 c와 같이 조건관계를 나타내는 연결어미에는 결합하지 못 한다.(6) a. 많이나 먹어둬.b. 가끔이나 자주 네 생각을 해.c. *오래나 밥을 먹었다.{나/이나}는 (6)-a, (6)-b의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부사와의 결합에 있어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c와 같이 시간부사 뒤에 붙어 쓰인 문장은 비문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유사하게 시간부사가 등장하는 b 문장은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가끔’과 같은 소극적 의미를 지닌 부사는 허용되되, ‘오래’와 같은 부사는 허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이외에도 {나/나마}의 문법적 특성 중 언어습관으로 굳어진 ‘혹시나’, ‘역시나’, ‘너무나’에 대한 논의가 있다.(7) a. 돈까스 김밥이 역시나 김밥 중에 최고로 맛있다.b. 혹시나 오늘 점심에 돈까스 김밥을 시켜먹어도 될까?a의 문장에서 ‘역시나’는 김밥 중에서 돈까스 김밥이 맛있다는 화자의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b의 문장에서 ‘혹시나’는 점심 때 돈까스 김밥을 먹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나/이나}는 보조사와의 결합에 있어서는 주로 ‘부터’, ‘까지’와 결합하는 형식이 가장 많이 발견되며
    인문/어학| 2022.03.18| 25페이지| 2,500원| 조회(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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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라랜드(2016)> 영상 미학 감상문
    영상 미학 감상문영화의 도입부는 영화의 주제에 관해 강력한 단서들을 흩뿌린다. 라라랜드의 도입부는 특히 화제가 되었는데, 이 영화의 도입부가 ‘롱 테이크’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롱 테이크란 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쇼트는 10초 내외인데 비해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진행되는 것을 롱 테이크라고 한다. 카메라는 긴 도로 위를 차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이동한다. 차양막 하나 없는 더운 여름, 꽉 막힌 교통체증,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각각의 차 속에 있는 여러 엑스트라들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기 위해 하나의 차가 프레임의 중앙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짧게 라디오나 CD플레이어를 통해 노래가 흘러나온다. 랩, 뉴스, 팝송 등 각기 각색의 취향과 인생들이 그 속에 담겨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서서히 이동해 한 여성의 노랫소리에 주목하며 ‘미디엄클로즈업’ 구도로 찍는다. 꿈꾸는 듯한 그녀의 표정과 함께 꿈을 좇아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해준다. 그녀를 시작으로 다양한 색채의 옷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가난하고 고되고 꿈은 멀지만 그 꿈에 대한 열정을 좇으며 나아가겠다는 노래의 내용. 클로즈업 샷, 미디엄샷과 미디엄 롱 샷, 롱샷을 어지러이 오가며 인물들의 역동적인 춤동작과 밝게 빛나는 표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엑스트라들은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는 높은 채도의 옷을 입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춤추고 노래한다. 꿈을 꾸는 듯이 티 없이 맑은 그들의 표정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여기서는 색(色) 또한 중요한 표현 요소로 작용한다. 미각을 압도하는 화려한 색들은 그들의 빛나는 꿈을 보여준다. 꽉 막힌 도로 위의 선명한 원색의 옷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개성과 꿈, 희망을 상징한다. 채도 높은 원색의 색깔은 불타는 열정, 에너지, 힘과 확신 같은 것들이 실현될 것만 같은 느낌을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까지 전한다.그리고 그들은 다시금 차에 탑승하고 화면 정중앙에 영화의 타이틀다.바리스타에게 병원에 간다고 둘러대며 오디션을 향해 바쁘게 가던 미아는 손님과 부딪혀 커피를 가슴에 쏟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카메라와 영화 캐스팅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 앞에서 연기를 하는 미아의 모습이 보인다. 푸른색 배경의 차가운 사무실 안에서 푸른 색 점퍼를 입은 미아가 열심히 연기를 한다. 라라랜드에서 푸른색은 절망감과 우울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요소이다. 오디션 날 커피를 쏟고 푸른색 점퍼를 껴입은 미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울’ 그 자체이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이 캐스팅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것임을 암시받을 수 있다.이 오디션 씬에서 오버더숄더샷을 통해 연출가는 캐스팅 관계자의 표정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미아의 표정과 태도, 캐스팅 관계자의 목소리나 대사 정도에만 의지해 구체적인 분위기를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점점 고조에 오르는 미아의 연기만을 집중하며 카메라는 점점 미아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그러나 미아의 뒤 창문으로 또 다른 관계자가 등장하며 미아의 캐스팅은 실패한다. 캐스팅 관계자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심드렁하고 사무적인 캐스팅 관계자의 목소리와 당혹스러워하는 미아의 표정만으로 이 캐스팅이 불발될 것임을 강력히 말한다.캐스팅룸에서 나온 미아의 모습은 미디엄 롱샷으로 비춰지며 복도에 나열된 미아와 같이 흰 와이셔츠를 입은 또 다른 후보들이 프레임에 가득히 비춰진다. 우울한 빛의 푸른 조명이 미아의 마음을 대변하듯 미아가 가는 길을 은은히 비춘다. 의 유명 배우의 붉은 색의 옷과 미아의 푸른색의 옷, 조명은 대비된다. 미아에게 성공과 욕망의 빛은 붉은 색이다. 그러나 미아는 그 색깔에 도달하지 못 한 채 푸른 옷을 껴입고 푸른 조명 아래에서 그저 미래를 꿈꿀 뿐이다.그 다음 장면 미아는 자취방에 도착하고, 씻고 나온 미아에게 친구들은 파티에 가자고 제안한다. 미아가 거절하자 친구들은 ‘군중 속에 누군가 한 사람이 너를 찾아내주기만 한다면, 너는 스타가 될 거야’라고 노래.위에서부터 차례로 , , 그리고 차가운 한색의 풍경 속의 미아의 모습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보여준다. 장소의 크기는 강조되며 미아의 모습은 아주 작게 비춰진다. 이런 연출은 타고 온 자동차가 불법주정차 단속에 걸려 견인되어 집까지 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미아의 곤란함과 당혹스러움을 나타낸다. 계속해서 배우 데뷔에 실패하며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미아의 현 지점과 이 장면은 시청자의 마음속에서 막막하고 차갑게 다가가며 겹쳐진다.그리고 카메라는 관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모습이 그려진 벽 앞에 서 있는 미아의 모습을 미디엄 샷으로 찍는다.미아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한 레스토랑 앞에서 멈춰 선다. 문의 붉은 색의 빛이 미아를 둘러싸고 그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미아는 레스토랑의 문을 연다. 익스트림 롱 샷을 통해 잡히는 화면의 구도는 아이러니하다. 마치 비상 탈출구처럼 보이는 레스토랑의 가게 문, 그리고 미아가 꿈꾸는 시점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의 벽화가 한 화면에 롱 샷으로 잡힌다. 한색의 차갑고 괴로운 현실 속 탈출구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아는 한 피아니스트를 발견한다.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많은 손님이 있지만 미아의 시선은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낸 선율을 만들어내는 피아니스트에게로 고정된다. 미아는 ‘군중 속의 누군가’를 찾은 것일까?그리고 그 다음 순간 카메라의 화면이 흔들리면서 과 같이 남성 주인공 세바스찬의 시점샷이 보여진다. 시점샷으로 대사를 연습하고 있던 첫 장면의 미아가 보인다. 이제는 여주인공인 미아가 타자로 비춰진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이제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워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영화는 인물이 아닌 사물이나 배경을 단편적으로 비추는 기법을 통해 세바스찬이 어떠한 인물인지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재즈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남성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단면들 속에서 시청자는 그의 꿈 역시 이뤄지기 요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얼마전 사기를 당해 빈털터 둘은 언덕에 가게 되고. 롱숏의 프레임 속에서 두 인물을 둘러싼 아름다운 배경이 돋보인다. 푸른색과 붉은 색이 섞인 노을 속에서 둘의 사랑은 피어오른다. 구체적인 사랑의 개연성은 부드럽고 조화로운 색채의 풍경이 대신한다.세바스찬은 미아가 일하는 카페에 찾아가고, 함께 길을 걷는 씬은 롱숏으로 비춰준다. 이 롱숏의 비교적 넓은 배경은 ‘미아의 배경’을 잘 보여준다. 세트장과 카메라, 여러 촬영장비, 좋아하는 배우, 감독 등 미아가 자신의 배경으로 삼고 싶었던 장면들. 이러한 배경 공간은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미아가 자신은 사실 재즈를 싫어한다고 말하자 세바스찬은 그녀를 재즈바로 데려간다.세바스찬의 설명에 맞춰 재즈의 연주자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며 눈으로 재즈를 감상한다. 영화와 재즈는 롱샷, 클로즈업을 통해 각각 서로의 세계에 침투한다.데이트 도중 미아는 2차 면접에 대한 통지를 받고 기뻐한다.시점샷은 미아의 긴장감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한 카메라, 미아에게 관심이 없는 듯 타자를 치는 캐스팅 당담자의 손, 그리고 차가운 캐스팅 당담자의 시선. 차가운 푸른 색 계열의 조명 속에서 미아는 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아가 한 마디 시작하자마자 면접은 끝난다. 그리고 카메라는 분노와 실망감으로 뚜벅뚜벅 카메라를 걷는 크로즈업하며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카메라가 흔들린다. 카메라의 구도는 그녀의 감정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저조한 기분은 돌아가는 길에 세바스찬과 함께 가기로 한 극장을 발견하고 나아진다. 이러한 시점샷은 미아의 시점에서 세계를 보여준다. 관객은 미아가 보는 모든 것을 느끼고 볼 수 있어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그러나 미아의 남자친구와의 선약 때문에 미아는 약속 장소 대신 남자친구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이야기의 주제는 서로의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업과 엘리트 생활에 대한 자랑 얘기뿐이다. 클로즈업 샷은 따분하고 불편한 듯한 표정 미아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별들이 빛나는 우주 속에서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을 실루엣 조명으로 비추며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란 마치 별빛이 빛나는 하늘 속을 춤추듯 황홀하며 몽환적이라는 듯이 말이다.고전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둘의 키스 장면이 줌잉되며 하나의 장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인연을 맺는 과정은 끝이 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이루어졌으나 이들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 한 꿈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계속된다.계절은 어느새 여름, 둘의 사랑은 순조롭고 열정적으로 무르익어 간다. 색이 없던 세바스찬의 방에도 벽화가 그려지고 형형색색의 꽃이 장식되는 듯 색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둘은 아직 꿈을 이루지 못 했다. 미아는 세바스찬의 말에 영감을 얻어 1인극을 준비하고, 세바스찬은 재즈클럽을 열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무겁게 이 둘을 짓누른다.미아와 미아 부모님의 통화를 듣는 세바스찬의 얼굴을 미디엄 클로즈업을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사랑에는 돌봄과 애정에 헌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바스찬은 여전히 아무것도 이루지 못 했다. 변변찮은 고정 수입이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세바스찬의 불안감과 착잡함이 한 마디 대사 없이도 잘 보인다. 시점샷을 통해 세바스찬이 보고 있는 시야를 비춰주는데, 전화기를 들고 복도를 서성이는 미아의 모습과 천장의 얼룩을 보여준다. 하얀 색의 천장의 얼룩은 그의 괴로운 심정을 보여준다.세바스찬은 차가운 푸른 계열의 옷을 입고 동창이 제안한 ‘메신저스’ 밴드 일자리에 나선다. 꿈이 아닌 미래와 생계를 위해서. 둘은 각각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세바스찬은 원하지 않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음악일을 통해, 미아는 1인극을 완성하기 위해서 카페 캐셔 일을 그만두고 고군분투한다. 미아는 전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두 사람의 사랑을 처음 확인했던내린다.
    독후감/창작| 2022.03.18| 17페이지| 2,5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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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1. 소설 의 핵심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이 소설의 ‘진짜’는 마지막 두 개의 단락에 있다. 그 이전까지 이야기의 중심은 ‘혜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돌지만, 단 한 번도 혜미가 직접적인 주체가 되어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두 단락은 전부 혜미의 언어이다. 그렇기에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마지막의 두 단락에서 일종의 ‘반전’이나, 저자에 대한 오묘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든지 나를 쉽게 자를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혜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제까지 혜미의 반대편에 서있는 ‘은영’에게 마이크를 쥐어준 저자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혜미는 은영의 생각대로 괘씸한 사람이었을까?비정규직 사무보조인 ‘혜미’는 은영이 다니는 직장에 적을 두고 있으나, 은영을 비롯한 사람들은 혜미를 직장 동료라기보다는 조직 바깥의 존재처럼 여긴다. 이유는 태국 바이어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왜 미스 혜미는 참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은영이 “혜미 씨는 파트타이머예요.”라고 발언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혜미’는 아르바이트생, 즉 비정규직이기에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타인의 입을 빌려 농담거리나 안주거리처럼 소비된다. 이후에도 서사 전개의 구심점인 혜미는 마치 바깥의 존재처럼, 혜미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되거나 또는 은영의 시점에서 추측되고 재단된다. 혜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진실’은 혜미 이외에는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런 은영에게 혜미는 바이어 접대 자리에서 자신의 월급에 버금가는 비용이 소비된 것은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날의 회식은 ‘바이어 접대’라는 명목을 취하고 있으나 사실 사장의 즐거움을 위한(“그러자 사장도 그 사실을 재미있어 하며 다른 약속이 없는 직원들을 불렀다. 신임 사장은 틈만 나면 회식 자리를 만들며 직원들과 스킨쉽을 하려 했다.”)자리였다. 은경을 비롯한 은경의 회사는 ‘합리성’을 말한다. 그렇기에 별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이 알바생의 노동시간을 멋대로 단축하고 그만큼 적은 월급을 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혜미를 자른다. 이 합리성은 회사, 즉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면 높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갑의 입장에서의 합리성이지, 혜미에게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 사회 전체가 사실 혜미에게는 타당하지 않고, 불공평하다. 애초에 야간대학에 나와 마땅한 스펙도 없는 혜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알바에 전전해온 혜미는 2년이 채워지기 전에 또다시 정규직이 아닌 실업자 또는 퇴직자가 되었다. 혜미가 나간 자리에는 ‘서울 시내의 좋은 대학’에 다니는, 혜미처럼 생계의 수단이 아닌, 아르바이트 자리로서 일을 할 것 같은 청년이 채운다. 야간대학을 나온 혜미는 돈 때문에 오전 근무만 하는 것이 곤란했다. 작가가 은경의 시각에서 보여주었듯이, 자본의 시각, 갑의 시각에서 이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몹시 간단하고 때로는 편리한 듯이 보인다. 부당한 요구에도 불만 없이 따르고, 월급 이상의 일을 하는 직원은 매력적으로 보이나 그것은 자본의 욕심이다. 서술 방식에서도 드러났듯이, 서사는 물론 자본의 세계에서 바깥의 존재여야 했던 혜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은경의 직장은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다.왜 혜미는 저토록 돈 앞에서 단호하고 자기 방어적이어야 했을까? 혜미는 은경의 의심대로 거짓말을 했을까? 혜미는 태업을 했을까? 혜미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똑바른 대답을 하기는 곤란하다. 나 역시 혜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자본이라는 권력 바깥에 있는 존재를 바라볼 때, 자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똑바로 직시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이것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버스 파업을 뉴스에서 보았을 때, 버스 운전기사 노조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자본에서 제시하는 시각대로, 시민들의 불편에만 주목하곤 한다. 혜미에 대해 은경을 포함한 우리가 범한 오류와 잘못,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이며, 잘못이다. 자본과 개인, 누구의 시각을 갖출 것인가?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나에게 자본주의적 시각이 내재된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 그런 질문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반전’은, 그런 의심을 환기해주는 신선함이 있었다.2. 혜미의 태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먼저, 가난한 사람이 비굴하게만 그려지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미디어에서 가난이란 키워드는 비굴함과 엮여 표현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의 태도란 그런 것이어야만 할까. 착하고 약해서 동정심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최소한 자기 밥그릇 챙길 수 있는 약자도 이 세상엔 존재한다. 이미 작가는 혜미가 이제껏 순탄한 아르바이트 생활을 해오지 못 했다는 것을 말했다.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전개인 것이다. 은경의 ‘동정심’은 자본주의적 계산속에 의해 금방 자취를 감췄으며, 은경 역시 자신의 이득(연봉)을 위해 혜미를 자르기로 결정했다. 누구나가 이타심보다는 자신의 이득을 바라보며 사는 세상인 것이다.퇴직금, 서면 통보서, 경력증명서, 4대 보험 이 모두는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이다.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혜미를 비난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는 없다. 또한 사무보조의 업무에 직원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커피 따위를 내오는 일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직원들은 혜미가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하지 않고, 태업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혜미의 월급은 그렇게 크지 않다. 냉정하게 계산한다면 혜미는 하루 5만 5천원어치, 월 165만원어치의 일을 할 의무를 가지며, 혜미는 그 정도의 업무를 수행해왔다고 판단된다. 혜미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으로서, 나름의 무기를 갖고 생존에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은경과, 은경의 시각으로 혜미를 바라봐 온 독자인 내가 혜미의 단호하고 이성적인 태도에 괘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심코 ‘알바생 주제에 원하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만약 혜미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다면, 우리 안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2.03.18| 3페이지| 1,500원| 조회(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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