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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 감상문) 대니쉬 걸 감상문
    (영화 감상문) 대니쉬 걸 감상문
    나를 찾는 여정영화 을 보며은 최초 트랜스젠더 릴리 엘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릴리 엘베는 덴마크 출신의 화가로 활동을 했고 당시 그는 가르다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게 된 그는 5차례의 성전환 수술을 받고 완전한 여성의 몸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고,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은 제목 그대로 ‘덴마크 여성’을 뜻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릴리만 생각하기 쉽지만, 가르다도 대니쉬 걸에 해당된다. 단순히 제목을 릴리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라 가르다까지 포함한 이유는 그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가르다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이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할 때, 그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녀가 대체로 행동하기 쉬운 쪽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기엔 남편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행동일 것 같은데, 가르다는 에이나르를 떠나지 않는다. 이를 단순히 희생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가르다는 에이나르 때문에 고통받으며 뒷바라지하는 불쌍한 여자가 된다. 하지만, 가르다의 감정은 단순히 희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에이나르와 가르다는 풍경화가로서의 유명세가 부담스러워, 초대받은 자리에 릴리로 여장을 한 채로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은 이 놀이를 즐기면서, 옷과 구두, 화장, 여성의 행동까지 따라하기로 한다. 그러다 남편은 여성인 릴리의 존재를 깨닫고, 점점 릴리의 모습을 세상을 살고자 한다. 가르다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의 반응을 보이다가, 포용을 하게 된다. 단순히 희생보다는 언젠가 남편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한 것이었다. 하지만 릴리와 함께할수록 그녀는 에이나르가 단순히 게임을 하고 있거나,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된다. 릴리와 같이 세상이 대하는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성전환 수술을 한 후에는 그녀를 그 자체로서 인정하게 된다. 릴리와 함께하게 되면서 생기는 그녀의 변화에 동참하게 된다. 가르다의 심경변화는 이해가 갔기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과 이란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모든 삶이든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의 테레즈처럼 캐롤을 만나, 의 릴리처럼, 모델을 우연치 않게 하게 되면서 외면해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하게 되는 것처럼. 이걸 알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을까.영화를 보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해 의문이 생긴 지점이 있었다. 릴리가 자신의 여성성을 학습해가는 과정이었다. 릴리는 영화 중반부에 나체의 상태에 구두, 스타킹과 드레스를 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유곽에 가서 여성들의 동작을 따라하고 배운다.. 또한 여성의 모습을 연습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되고 싶었던 여성은 당시 사회가 부과한 젠더인가란 생각과 사회에서 주어진 여성의 모습을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란 물음이 생겼다.
    독후감/창작| 2022.04.07| 2페이지| 1,5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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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감상문) 돌로레스 클레이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영화감상문) 돌로레스 클레이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친절을 바라지 마세요.김복남과 돌로레스는 가정폭력 피해자다. 영화는 이 주요 여성들의 변화 기록이자, 폭력에서 탈출기이다. 두 인물들은 사뭇 다르다. 김복남은 남성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다. 반면 돌로레스는 때로는 남편의 폭력에 폭력으로 ‘더 이상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대응하는 비교적 강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서 탈출을 위해서 궂은일을 하며 통장에 돈을 모은다. 복남과 돌로레스는 둘 다 섬에서 거주한다. 돌로레스가 살고 있는 섬은 자유로이 이동할 수는 있지만, 복남이 사는 ‘무도’는 그렇지 않다. 완전히 패쇄적인 공간에서는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개인의 일은 존재하지 않고 공유된다. 섬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떠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은 타지에서 온 사람이거나 남성이다. 남성은 탈출구를 막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도망갈 곳이 없음’을 경험하게 된 복남의 유일한 희망은 서울에서 온 해원이다.만종은 어부지만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고, 조는 알코올 중독으로 무능력하다. 가지고 있는 건 없는 그들은 집에서 아내를 팬다. 하지만 폭력은 남성이기에 합리화된다. “여자는 남자 좆을 물고 살기 편해” “남자가 없으면 안 돼”로 남성은 여성보다 필요하고,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수리하는 게 남성처럼 보이기에 합리적인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붕 밑에서 힘을 쓰며 시멘트를 만들고 있는 복남을 보기만 해도 남성만이 힘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성을 체화한 사람들은 비단 남성만이 아니다. 만종의 고모를 주축으로 동네 여성들은 남성성을 신봉하며, 폭력에 동조하고, 언어적 폭력을 가한다. 이들 왜곡된 여성상을 가지고 있다. 조는 티비 속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을 보며 돌로레스와 비교를 한다. ‘못생긴데다가 요리도 못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만종은 성매매를 하고, 마을 여성들은 해원에게 떠나기 전에 철종을 위로 해줄 것을 종용한다. 철종은 해원에게 풀을 주면서, 관계 맺으려고 한다. 그는 풀(물질)을 주면, 그 대가로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딸을 성폭행한 후 매니큐어를 선물한 만종, 할머니의 목걸이를 어린 딸에게 쥐어준 조는 폭력을 대가로 포장한다.남성들에게 학대를 당하던 여성들은 응징을 다짐한다. ‘딸’은 그녀들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복남은 남편이 딸에게 손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래도 아빠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저버리게 되고, 탈출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거기다가 연희는 만종 때문에 죽는다. 돌로레스는 남편이 딸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통장에 마련했던 돈을 찾다가, 남편이 훔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딸을 잃은 복남, 딸의 학대를 알게 된 들로레스는 ‘딸로 인해’ 복수를 시작한다. 폭력에 대항하는 기제가 ‘모성’이기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두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이의 고통’은 기폭제이긴 하지만, 그녀의 무수한 폭력의 경험과 분노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식이 죽은 엄마가 독기 품어서 하는 일’, ‘엄마는 위대하다’는 식으로 이전의 그녀들의 고통을 간과하고, 참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도노반 여사는 돌로레스에게 “때때로 미친년이 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라며 남편을 응징할 방법을 제시해주고, 자신의 유산을 남겨준다. 그들은 남편에게 학대당하거나, 버림받은 상처를 공유하였기에 의지했다. 딸의 말대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리고, 엄마를 외면하던 딸은 엄마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보듬어준다. 반면 복남에겐 의지할 사람이 없다. 그녀 주위엔 모두 적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오랜 친구 해원마저도 동지가 될 수 없다. 어릴 적 복남이 폭행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모습처럼, 성인이 돼서도 결정적인 때 복남을 외면한다. 연희의 죽음을 제대로 입증할 마지막 희망까지 저버린다. “넌 너무 불친절해.” 그런 해원에게 복남이 하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 지점이 답답했는데, 영화마저 피해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친절’을 기대하라는 것 역시 피해자에게 무력함을 주는 말이다. 그리고 폭력을 보고서 대항하고 연대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다. 피해자가 목소리 낼 때 ‘피해자에게 왜 친절하지 않은지’를 묻지 않고, ‘왜 그녀들이 분노를 하게 되었는지’를 들어야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자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독후감/창작| 2022.04.07| 2페이지| 1,500원| 조회(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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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다큐감상) 말하는 건축 시티홀 감상문
    (다큐감상) 말하는 건축 시티홀 감상문
    서울 시청사는 2005년에 계획이 시작되어 2012년에 완공이 된 건물이다. 이 건물이 지어 지기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다. 2005년에는 설계사가 준비하고 그 작업을 같이 할 대형 건설 사와 팀을 이루어 경쟁을 벌여 당선하는 식으로 새 시청사 건물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리하 여 삼우, 삼성 물산 팀이 만든 항아리 식 디자인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문화재청 심의에서 시청사 위치와 근접한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독후감/창작| 2022.04.07| 2페이지| 1,500원| 조회(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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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감상) 안토니아스 라인 감상문
    (영화감상) 안토니아스 라인 감상문
    안토니아스 라인 감상문안토니아는 엄마 장례를 위해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임종까지도 아버지가 생전에 창녀들과 놀았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한다. 다소 연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연기는 정신까지 피폐해진 내면의 상처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다니엘과 안토니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여성에게 폭력적이다. 카페에서 있는 남자에게 여자는 욕정을 풀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니엘에게 아들 신붓감이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자는 자신의 딸 디디를 남자들의 희롱 대상이 되도록 앞장선다. 디디는 오빠 피터에게 강간당하고, 미친 입술은 괴롭힘 당한다. 남성의 사회 속에서 여성, 장애인 등은 배제되고 희생당한다.안토니아가 꾸린 공동체는 그들이 꾸린 사회와 정반대다. 바즈가 안토니아에게 청혼을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필요하지 않다며 거절한다. 그 이후 바즈 가족과도 식사를 같이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안토니아의 딸 다니엘은 남편 없이, 테레사를 낳고 키운다. 테레사는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고 사라를 임신한다. 시몬은 아이의 아빠로 사라를 돌보지만, 그가 아빠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피터에게 강간당한 디디, 미친 입술, 바즈의 가족, 레타, 과거 신부님과 모두 음식을 나눈다. 서로 도와주고 지지를 해주는 의미에서 이 공동체는 가족이다. 안토니아의 가족은 결혼하지 않고, 남편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며, 혈연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비춰주는 안토니아의 식탁에는 앞서 언급한 남성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가족은 공동체에서는 남성들의 사회와는 다르게 배타적이지 않다.다니엘이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하자, 안토니아는 도시에 나가서 좋은 아빠감을 찾자고 대답한다. 남편이 없는데 키울 수 있을까 우려가 아니라, 좋은 남편감이 아니라, 아빠감을 찾자는 말이 재미있었다. 다니엘, 테레사 모두 출산을 경험한다. 그에 비해, 다니엘이 남편감을 찾기 위해 찾아간 임산부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로선 레타도 임산부들 중 일부라고 느껴졌다. 레타는 다니엘이 남편감을 찾기 위해서 갔을 때 만난 사람이었다. 후에 신부님과 매년 임신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매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건 건강에 너무 안 좋고, 남편의 정욕 때문에 출산 기계처럼 희생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13명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기 직전, “더 낳고 싶었는데.”라는 말처럼 진정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타는 사회적 요구에 희생당한 쪽보다는 욕망을 실현한 쪽에 해당되는 것일까?영화에서 여성을 가지고 있는 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찍었던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영화 속 여성의 신체는 정육점에서 살코기가 부위별로 판매가 되듯 조각나 있다. 카메라 속 여성은 관음적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에서는 여성의 표정, 가슴 등이 클로즈업되지 않고 누군가의 섹스를 도촬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임신을 하기 위해 물구나무를 하는 다니엘이 풀 샷으로 잡히는데, 섹슈얼하게 보이지 않았다.페미니즘을 접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과정이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때에도 분명 기회가 있었지만 중도에 포기했었다. 무시하며 지내던 것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고, 매일 불편함과 마주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세상이 페미니스트를 사회의 악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시선이 화가 났고 동시에 좌절감도 들었다. 편견과 차별을 마주하고 대립하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하고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됐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부딪히자!’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친구와 여성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 친구는 요즘 보도들이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남녀 균형이 맞지 않고 남성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그동안의 사회가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목소리가 이제야 드러나는 거라고, 더 들려야 한다고, 페미니즘은 네가 말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발언권을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안토니아의 공동체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나도 외면 받았던 목소리들을 건져내고 억압에서 벗어나 나와 주위의 건강한 욕망을 실현할 생각에 힘이 생긴다.
    독후감/창작| 2022.04.07| 2페이지| 1,5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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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감상) 영화 캐롤 감상문
    (영화감상) 영화 캐롤 감상문
    나를 찾는 여정영화 을 보며영화 은 동성애, 은 성전환에 대해 이야기, 즉 성소수자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영화 모두 시간을 내서 보고싶은 영화였는데, 각각 영화가 유명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으로 끌려왔었다. 그보다 이 영화들이 관통하는 핵심인 바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란 궁금증이 컸다.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성소수자가 겪는 삶과 정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었다.은 1950년 미국에서 살던 두 여인,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이다. 백화점에서 처음 만난 둘은 캐롤의 장갑을 계기로 해서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점심 식사도 같이하고, 캐롤의 집에도 초대받았던 테레즈는, 자신의 집에 캐롤이 온 날 서부로 같이 여행을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테레즈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 캐롤은 아이의 양육권을 주지 않으려는 남편을 피해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 여행은 캐롤의 남편 하지에 의해 중단된다. 이들은 잠시 헤어지게 되지만 끝내 둘을 선택한다.이 영화의 제목이 인 이유는 아마 이 둘의 정체성을 끌어내는 데에는 캐롤의 역할이 강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테레즈는 여행 말미에 “항상 모든 것에 ‘예’라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는 그녀의 행동을 잘 설명해준다 그녀는 남자친구 리처드의 청혼을 듣고도 미지근한 반응이고, 그가 캐롤과 사랑에 빠졌냐는 질문에도 아니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점심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도 어려워한다. 이런 일련의 모습처럼 테레즈는 비교적 수동적인 인물이다. 반면, 캐롤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캐롤과의 만남을 항상 주도한다. 처음 점심식사를 요청하는 것도,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도, 여행을 제안하는 것도 그녀이다. 이런 그녀의 적극성은 둘의 감정에 믿음을 주게 된다. 여행 후, 잠시의 헤어짐을 고한 캐롤에게 테레즈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자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캐롤은 양육권 분쟁중인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다시 그를 직면하기 위해 여행에서 돌아온다. 여행을 떠나면 현실로 돌아오듯, 남편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흠결로 잡은 그를 직면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젠더는 사회 문화적인 압력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폭력으로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편인 하지는 단순히 그녀의 성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권을 담보로 그녀가 자신을 부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이성애자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된 것이었다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남편과 변호사들 앞에서 캐롤이 내리는 결정이었다. 대체로 작품 속 여성이 부모인 경우, 모성애를 결부시켜서, 모든 결정 속에서 자아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에서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진정한 모성애이다는 식의 교훈을 주지 않는다. “나를 부정하며 산다면, 린디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는 말을 하며 딸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전제로 양육권을 포기하게 된다. 동성애를 도덕성 결여라고 전제한 양육권 포기는 한계로 볼 수 있지만, 캐롤이 그것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의미가 있었다. 이로써, 그녀는 자유로워진 것이다.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은, 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50년대에도 동성애가 양육권 결격 사유인데, 요즘 사회에도 이가 양육권 분쟁의 결격사유가 되는지, 실제로 동성애자가 아이를 양육시킬 때, 이성애자인 부모가 키울 때와는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였다. 또한, 영화속에서 캐롤이 총을 겨눌 때 왜 총알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독후감/창작| 2022.04.07| 2페이지| 1,500원| 조회(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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