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세이카 료켄 지음 / 김윤경 옮김나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입에 올리는 편이었다. ‘죽도록 힘들어’ 내지 ‘이러고 있을 바엔 죽는 게 낫지’ 라던지 ‘아, 죽을 것 같아.’ 등의 표현을 종종 입에 담는 편이었다. 이것저것 무서워하는 것도 많아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겁많은 걸로 유명한 내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다른 것들과는 달리 한번 겪으면 모든 게 끝나는, 죽음만큼은 쉽게 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책이었다.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제목과 내용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아이바 준의 시점에서 서술되는데, 소설 대부분의 내용은 아이바 준이 한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의 죽음을 막아내고, 삶의 즐거움을 선물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제목은 ‘내 죽음’이기에 아이바 준의 죽음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설의 제목이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가 아니라 ‘어느 날, 네 죽음에 내가 들어갔다.’가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바는 이치노세의 죽음을 막아내기 시작한다. 아니, 돌려내기 시작한다. 이치노세가 기억하지 못했을 뿐, 소녀는 다리에서 뛰어내렸고,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이바가 죽은 소녀를 위해 다시 시간을 돌렸을 뿐. 시간상의 제한이 있었기에 자신의 잠을 줄이고, 한정된 시간을 오로지 소녀의 죽음이 뉴스에, 신문에 나오는지 확인하는 데 사용하며 그렇게 죽은 소녀를 살리고, 살린다.중간쯤 읽었을 때, 사신에게서 후회할 거라는 경고가 나왔을 때, 아이바 역시 죽음을 결심했기에 은시계를 얻었음이 기억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은시계는 아이바가 3년 뒤 자신의 죽음과 시계를 바꾸었을 뿐이었다. 즉, 자신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삶의 미련 또한 없었던 그가, 소녀의 죽음은 번번이 없는 일로 만들면서 자꾸만 소녀에게는 살아야 한다는 미래를 선물한다는 것이었다.이상했다. 자신의 인생은 진작에 포기한 자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게 꽤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일 이치노세였고, 그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아이바가 말리는 그 행위를 비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내 기준으로는 이상한 일이었다.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아이바의 집에 이치노세가 드나들게 됨으로써 이치노세의 자살 횟수가 줄어든다.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이치노세가 점점 아이바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아이바 역시 전과 달리 자신의 시간을 자살 속보에 쓰지 않고도 소녀를 돌보게 된다. 소녀에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여러 곳에 데려갔던 것보다도 더 확실했던 방법.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주어지면서 심적 안정감이 왔던 것일까. 등교를 하는 대신, 아이바의 집으로 출석 도장을 찍던 이치노세는 어느 순간 다시 공부를 잡게 되고, 또 어느 순간 고등학교라는 꿈을 꾸게 된다. 등교 거부를 하던 소녀가 고등학교를 생각하게 되었고, 가족이라고 엮여있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쳐올 공간이 생겼으며, 하고 싶었던 것을 숨기던 아이가 한곳 두곳, 가고 싶은 것을 먼저 말하기 시작한다.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소녀와 달리 아이바는 점점 소녀에게서 자신이 멀어질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소설의 후반부였다.아이바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이치노세에게 사용함으로써 마지막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관계를 끝내기 위해 몇몇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결국 이치노세에게 상처만을 주었을 뿐, 소녀를 떠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치노세가 아이바에게 연애 감정을 갖기 시작한 것은 소설 중반부 정도부터였으나, 아이바가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것은 후반부였다. 둘이 서로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소설 초반부에서 예상 가능했다. 다만 로맨스 소설보다는, 서로 정신적인 지주 위치에서 머무르길 바라던 내 작은 기대는 무너졌지만, 이로써 방법은 예상하지 못해도 확실한 해피엔딩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소설의 마지막은 둘의 관계가 반전된다. 이치노세가 유난히 더 아이바를 찾아오고, 자꾸만 어딘가를 가자고 하며 힘겹게 들어간 고등학교 수업을 빼먹는 시간이 종종 찾아왔다. 소설은 아이바의 시점으로 지속되기에, 이치노세가 아이바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는 주어진 3년이라는 시간이 다 닳기 전에 아이바는 자살을 시도했고, 아이바와 동일한 조건으로, 사신과 계약한 이치노세가 아이바를 되살리고 있었다.한 소녀를 살리는데, 시간을 모두 사용하고 후에 그 소녀가 자신을 구원하게 되는 아이바와 자신을 끝없이 구원해 준 사람을 역으로 자신이 구원하게 되는 이치노세. 둘의 관계는 ‘너’도 없었고 ‘나’도 없었다. 소설의 제목과 내용이 모순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사그라들었다. 결국 마지막엔 둘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신이 포기하게 되고, 둘의 삶이 지속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장식한다.예상했던 줄거리였고, 알고 있었던 해피엔딩이었음에도 이 소설을 읽는데 조금의 긴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수월하게 읽히지 않았던 것이 아닌,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느라 속도가 좀 느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치조 미사키 지음 / 권영주 옮김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분명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말을 모두 무시할 만큼 최악이었던 경험들. 그런 경험들이 지난밤 꿈속을 찾아오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각하곤 했다. 왜, 이런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걸로도 모자라 자꾸 되새겨지는지. 지워지면 좋을 텐데, 기억하지 못한다면 좋을 텐데. 아직 해가 뜨지 않았던 그 이른 시간에 물 한 모금을 삼켜내며 그렇게 지워지길 바라는 기억들이 있다.그러나 그와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은 기억도 분명 존재한다. 너무 행복했던 하루는 내가 내뱉었던 말 한마디조차도 소중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던 그런 날들. 이 책의 아이는, 이런 기억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였다. 기억이라는 것이 본래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남고 지워지는 것이라 하지만, 그런 확률조차 적용할 수 없는 아이.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아이였다.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는데, 그 속에서 유일하게 멈춰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침이 이어진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자신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려고 하는 것조차 버거운 나날이 계속된다. 이건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매일 아침 일어나 기억에도 없는 과거의 내가 적어놓은 일기를 읽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런 삶이 살아있는 사람의 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만일 나였다면, 진작에 그 끈을 놓아버리지 않았을까. 나와 달리 이 책 속의 아이는 용감한 아이였다. 매일 아침 좌절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내일의 자신을 위해 다시 기록한다. 아이는 아마도 여느 어린 학생들처럼 모험심이 뛰어난 아이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줄타기하는 듯 아슬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새로운 인물을 들일 생각 따위 하지 못할 테니까.같은 반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거짓 고백을 한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남자아이를 자신의 아슬한 일상 안으로 끌어당기는 아이가 대단하다 느꼈고, 안쓰럽다 느꼈다.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알고 싶은 감정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분명 책의 전반부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이 대부분이었다.책 속의 두 아이가 생각보다 어여쁘게 다가왔다. 풋풋한 첫사랑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렸고, 순수했으며, 귀여웠으나 그 어느 책 속의 연인보다도 슬픈 사랑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을 알기엔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으나, 그들이 먼 미래에 자신들을 되돌아볼 때면, 그건 분명히 사랑이었다고 생각할 감정이었다. 그저 어여쁘기만 하면 참 좋았을 텐데, 책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또 다른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기억이 사라지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고, 느낌일까. 여자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자에게 말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여자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일기 속의 나일 뿐, 미처 적어두지 못했던 수많은 대화, 행동, 표정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면 그건 또 얼마나 큰 참담함으로 다가올까.무미건조한 삶에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함을 깨달았다. 그 속에서 가족과의 관계를 완화하며 삶을 바꾸어간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이 되었을 때, 여자아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아이의 일기장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게 하리라 그렇게 결심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행복했던 순간을 기록하게끔 만드는 것. 어린아이에게서 꽤 깊은 배려심이 나왔다고 느꼈다.어떻게 보면 참 암담한 상황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예쁘니까 그렇게라도 오래도록 둘이 있다 보면, 언젠가는 여자아이의 병이 고쳐지지 않을까 싶었다. 한 편의 동화처럼 둘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을 바라던 내 희망을 작가는 깔끔하게 무시하며 새로운 반전을 적어두었다.여자아이는 병을 고친다, 기적처럼. 어떠한 특별한 계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마도, 이 지점이 이 책이 유치하다 평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적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병은 고치니까. 둘은, 행복할 일만 남았을 테니까. 다만 여자아이가 병을 고치는 시점이 남자아이가 돌연 숨진 후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