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로 세계를 지배하고있는 크고 거대한 하나의 이념이다. 하지만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생겨남’이 있으면‘사라짐’또한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세계에게 큰 경제발전을 안겨다 주었지만, 21 세기로접어든 지금 많은 회의 또한 안겨다 주었다.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비롯해서 수많은문제를 세계를 향해 던지고 있다. 세계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여기서 이 글은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성리학’의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잘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자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재산의 사유 인정’이다. 물론 이 정의는 정확한 정의가아니다. 어떠한 단어의 개념은 사회가 변하면서 그 단어의 개념 또한 변한다. 하지만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공통적으로 ‘개인’의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한다.
쿳시(Coetzee)의 『포』(Foe)는 디포(Defoe)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를 다시 쓴 작품으로 원작과 상호텍스트성을 가진다. 원작의 서술자인 크루소(Crusoe)의 서술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부인, 아내 혹은 미망인과 같은 단어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원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그들은 물품과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크루소(Crusoe)의 섬으로 실려가기까지 한다.1 반면 쿳시에 의해 재탄생된 『포』에서 여성 서술자인 수잔바턴은 프라이데이, 크루소(Cruso)와 같이 이름을 갖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원작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시대 즉, 18세기의 여성상을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그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는 바로 글쓰기이다. 여성의 글쓰기는 당시의 여성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어느새 시간을 빼앗겨 버렸다. 우리는 우리가 시간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우리를 이끌고 있다고 종종 느낀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의 노예이다. 우리는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내 우리를 쫓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시간의 노예로 전락시켰는가? 무엇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것인가?나는 그것을 과학의 발전이라고 본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자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세계는 경쟁사회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원을 더 가지려면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은우리의 삶을 지배해 버렸다.우리의 삶을 지배한 것은 경쟁뿐만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핸드폰과 휴대폰 역시 우리의 삶을 빼앗아 버렸다. 특히 스마트폰은 컴퓨터와 핸드폰의 경계를 허물면서 우리의 삶을 더 효율적으로 빼앗았다. 우리는 잠시라도 스마트폰을 벗어나지 못한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터넷서핑, DMB 등은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접촉하면서 살고 있다.
서경덕은 다른 학자들과 달리 책에서 이치를 찾지 않았다. 이이는 서경덕을자득지학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터득해 학문을 했다. 그는 진짜로 중요한 일은스스로 알아내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특히 18세 대학을 공부하다가 격물치지라는 대목에서 학문의 방법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즉, 알기 위해서 사물에대한 연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원진 사람-사물 같은 본성(본연지성), 사람-사물 다르고 사람-사람과 사물-사물 같은 본성(본연지성), 사람-사람과 사물-사물 다른 본성(기질지성). 이의 근본은 하나지만, 기를 초월하여 존재하거나(본연지성), 기로 인해 존재하거나(본연지성), 기와섞여 존재하는 것도 있음(기질지성).본연지성-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 사람은 본연지성을 가지지만 사물은 기질지성만 가짐. 그래서 다름. 이가 기 속에 있지만 기와 구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