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너의 “교육의 과정”과 우리나라 교육과정과의 관계1. 교육의 과정 내용 요약가. 서론여러 교육 사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교과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론에서는 우즈 홀 회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 회의의 주제였던 교과의 구조화의 의의와 목표를 밝히고 있다. 교과의 구조를 학습하는 것은 사물이나 현상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학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루너는 이런 수업이 잘 수행될 시, 학생 개개인이 최적의 지적 발달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그 결과, 현대의 복잡한 기술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보다 잘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였다.나. 구조의 중요성학습 관점에서 구조의 역할, 구조에 있어 교수의 핵심 내용을 서술하기 위한 방식을 말하고 있다. 지식구조의 역할은 4가지가 존재한다. 지식구조의 역할은 첫째, 교과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둘째, 세부적인 것을 구조화된 전체의 패턴 속에 기억해 두면 잊혀지지 않는다. 셋째, 기본적 원리를 이해하면 그와 유사한 것도 이해시켜 주는 모형을 학습할 것이 되므로 전이가 가능하다. 넷째, 고등 지식과 초보적 지식 사이의 갭을 좁힐 수 있다. 지식과 구조를 교수의 핵심 내용으로 하기 위해서는 각 학문 분야에서 가장 유능한 학자와 과학자가 교육과정 설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고, 그들은 유능한 현장 교사와 아동 발달 전문가와 협동하여 어떤 교과의 구조를 어떤 방법으로 교수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다. 학습의 준비성"어떤 교과든지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어떤 아동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가설은 교육과정의 성격 및 유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설에 대해 브루너는 아동의 지적 발달, 학습 행위, 나선형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먼저 지적발달 과정에 관한 것이다.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아동은 각 단계에 색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깨닫고 이를 설명하고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아동 연령층에게 교과를 가르치는 일은 아동 개개인에 맞게 교과의 구조를 알려주고 지각하도록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즉 교과의 구조를 아동의 지각방식에 맞도록 번역하는 문제인 것이다.두 번째로 학습 행위에 관한 것이다. 지식을 적용하거나 다루는 방식이 문제 사태에 비추어 봤을 때 적합한가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탐구학습의 의미는 '지식의 구조'에 비추어 비로소 올바르게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지식의 구조란 어떤 것이며 구조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업방법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가 하는 점들을 고려하여 탐구학습의 의미를 규정해야 한다.끝으로 나선형 교육과정이다. 브루너는 특정 연령이 되었을 때 어떤 내용을 어떤 자료를 이용하여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 학문의 개념이나 원리, 또는 태도, 사고방법 등이 학생의 발달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그 지적 성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점점 세련된 형태로 가르쳐지도록 계획된 교육과정을 교육의 과정에서는 "나선형 교육과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라.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브루너는 지식의 획득과 보존을 위하여 분석적 사고뿐만 아니라 직관적 사고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기존에 중시되었던 분석적 사고와 비교할 때, 직관적 사고는 일반적으로 명확하게 계획된 단계를 따라 진행되지 않고, 전체 문제의 전반적인 지각을 필두로 한다. 직관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계획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모르게 문제를 해결한다. 이러한 과정의 생각은 분석적 사고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직관적인 방법으로 얻은 결론은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분석적 사고를 함께 진행하여 두 가지 방식으로 검증을 해볼 필요성이 있다.마. 학습동기브루너는 학습동기에 있어서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에 대해 내재적 흥미를 북돋우는 것, 학생들에게 '발견의 희열'을 느끼도록 하는 것, 가르치려는 내용을 아동의 사고방식에 알맞도록 '번역' 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학습내용에 대하여 아동의 흥미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며, 그와 함께 지적 활동 일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브루너는 외적동기설와 대조적인 내적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학습의 동기가 수동적인 아동을 길러내는 것을 지양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교과가 학습내용에 대한 내재적 흥미의 기초를 발판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다양하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바. 교구수업에서 사용되는 교구로 영화나 텔레비전, 녹음기 마이크로 필름 등을 이용해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자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있다. 또한 학생들이 특정 현상의 내면에 숨어있는 구조를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교구가 있으며 학생들로 하여금 사물의 개념구조를 느끼도록 하는데 사용되는 교구(계열화된 프로그램)가 있다고 제안한다.교사가 사용하는 교구는 학생들의 경험하는 범위를 확장하고, 학생들의 학습내용에 내재해 있는 구조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학습내용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브루너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는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그 경험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가지 교구를 잘 활용함을 통해 비약적인 교육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사. 교육의 과정의 재음미을 발표한 후 10년이 지난 뒤에 교육을 넘어 미국의 다양한 산업 및 분야의 방향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브루너는 특히 교육문제에 있어 교육은 개인의 장래를 보장해주기도 하는 동시에 타인을 경쟁자로서 밀쳐내는 성격을 가진 정치적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학문의 구조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 교육과정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 교육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듀이가 진보주의 관점에서 지식의 외부적 기능을 강조한 반면, 브루너는 지식의 내부적 원리를 강조하였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교과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말이 와 닿았다. 또한 나선형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발달과정에 맞춰 공부를 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정치와 시민교육 제9장 소감문9장에서는 책 전체를 읽으면서 가장 바람직한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생각한 숙의 민주주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셉 베셋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숙의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 이론들의 문제점으로부터 숙의를 통해 벗어나고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접근을 말한다. 숙의 민주주의자들은 기존의 민주주의 이론들의 기능 대한 전반적인 성찰을 강조하였다. 첫번째로 시민들이 숙의롤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에 있어 신중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능이다. 두번째로 민주주의 이론은 기존의 민주주의 관점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도록 하는 과정을 돌아보게 하는 기능이 있다.이제 이러한 숙의 민주주의가 등장한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자. 피시킨에 의하면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들로는 정치적 소외감, 전문성과 배경지식이 부족한 채로 이루어지는 토론 등이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신우파의 자유 민주주의와 신좌파의 참여 민주주의의 조화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조화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존 이론에 대한 성찰이 기존 민주주의 이론으로의 회귀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기에 기존의 이론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페팃은 고대 직접민주주의의 시민들처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권자들에게 통제권이 주어진다면 모든 권력은 자의적으로 행사될 것이라고 보았다.숙의 민주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순기능으로는1)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이루어지는 공적 숙의는 개인들의 이해한 바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복잡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힘을 준다.2) 공적 숙의를 통해 각 집단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각 집단들이 어떤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3) 공적 숙의는 양적 언어를 질적 언어로 바꾸어 이성적 판단에 도움을 주며 집단적 판단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들이 있다.혹자는 숙의 민주주의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러나 돌아가더라도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기존의 이론들은 그동안의 단원들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였다. 시민들이 함께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정치적 관점들에 대하여 성찰하며 자신들이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깨닫는 다면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져 더욱 적극적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는 참시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와 시민교육 제8장 소감문8장에서 저자는 소비에트 경제가 붕괴된 이후의 민주주의를 서술하고 있다. 소비에트 경제는 페쇄성이 특징이었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체제 안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소비에트가 기술적 측면에서 혁신이 없고 경쟁력이 부족한 상태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한편 냉전시대를 대비하여 군수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술 관리비용 또한 막대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안에서의 시민사회조직 그리고 저항운동을 막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에트는 붕괴하게 되었다.이에 따라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의 몰락을 근거로 서구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우위를 점하는 가치라고 주장하면서 이의 보편화를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의 동력원을 이념갈등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역사의 종언은 이데올로기 갈등의 종식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라 자유주의가 승리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이와는 다르게 캘리니코스는 오히려 세계가 자본주의를 거쳐서 마르크스주의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다. 빈부 격차의 심화, 초국가적 기업의 성장, 서구 중심부의 빈곤과 나머지 지역 간의 삶의 균형 불균형등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나는 이 역사적 흐름을 보고 “과연 한 사회가 추구하던 가치가 그 사회가 몰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열위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적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개인 들간에 발생하는 경제적 부와 권력의 차이를 간과하여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단점이 있고, 사회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사회적 불안정이 초래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역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활발하면서 단순히 물질적인 교류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교류도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화가 급격이 일어나고 있다. 이 세계화도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지역마다의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치의 다원화가 촉진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효율성, 그리고 편리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세계화, 혹은 지역 블록화가 일어나게 된다면 이 또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시가 브렉시트이다. 처음에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하여 유럽연합에 가입하였으나 경제적 연동성 차이로 인하여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히 경제 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 차이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와 시민교육 제7장 소감문이 단원에서는 신우파와 신좌파의 대립으로 정치적 이상이 양극화가 된 양상을 보여준다. 신우파는 민주주의에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최소 국가’, 자유 방임, 자유 시장을 추구하며 자유주의의 대의를 이루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노직과 하이에크가 있다. 노직은 개인 이외의 정치적, 사회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분배를 결정하는 그 어떤 일반원칙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오로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기여하는 제도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가 중시한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의 개념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한편 하이에크는 대중 민주주의를 주장하였으나 몇몇 위험 요소들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자의적이고 억압적인 다수 지배의 경향,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수에 의한 지배가 그 대리인에 의한 지배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파와 정부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한다면 개인들은 강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이러한 일반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민주주의는 원래의 추구가치인 자유와 충돌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 그리고 다수파의 개입은 개인들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도움이나 규칙을 제공하는 데에 그쳐야 한다고 하이에크는 주장하였다.한편 신좌파는 현대 민주주의의 전제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잘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종, 성, 계급 등 인간에게 있어 선천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한 불평등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좌파학파인 페이트먼에 의하면 국가는 시민사회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들이며, 오히려 국가와 민주주의는 더욱 결속력을 높여야 한다. 의회, 국가 관료제, 정당등의 책임감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성을 높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는 것이 신좌파학자들의 주장이다. 또다른 신좌파학파인 맥퍼슨은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참여민주주의가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향상시킨다고 보았다.나는 두 학파중 신좌파의 의견을 조금 더 지지한다. 현재 대부분의 정부들이 복지를 보장하는 적극적 정부형태의 형태를 띄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6장에서 언급된 법인 민주주의와 같이 경제적 권력들이 정책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들을 위한 정치가 계속 펼쳐지는 상황속에서 정부가 최소 국가의 형태만을 띠고 있다면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져 정치적 무관심을 띠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신좌파처럼 국가 기관, 특히 이스턴의 민주주의 환류과정에서 산출 역할을 담담하는 국가 기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