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헌법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1. 서구의 헌법, 왜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에야 헌법을 생각하게 되었나? - 정치적, 국가론적 관점에서 근대의 시작: 주권 개념 창출 - 근대 주권국가 탄생 이후에 헌법이 탄생할 수 있었다. - 군주와 국가의 분리, 국가가 일정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이해. - 국가 과제의 확장: ‘정의로운’ 질서의 유지 -> 헌법의 발전 2. 우리의 근대는 언제부터인가? -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는 유기성이 낮고 전체 역사의 분기점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 없다. - ‘근대화’라는 표현: 합리주의(=근대정신) 정착, 제도와 문물의 개혁 3. 우리는 언제부터 헌법의식을 갖게 되었는가? -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근대 의식 부족 -> 헌법 의식 결여(근대 법제 도입: 19세기 말) - 개항 이후 조선 지배층이 가장 충격 받은 것: 과학기술, 근대적 법제 (국제법: 각 국가의 주권성 강조) - 갑오개혁, 광무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헌법 의식이 부족했던 이유: 1. 유교적 가치관 / 2. 군주제의 한계 내에서만 생각 / 3. 국민들의 낮은 역량 - 일제에게 투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국가 질서에 대한 고민 시작. Ⅱ.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절 근대적 문물과 법제의 도입 1. 조선 말기의 정치적 변혁과 개항 이후 근대 법제의 도입 - 사건: 1894~96년 갑오개혁, 1897년 광무개혁, 1905 을사늑약, 1910 경술국치 - 정치상황 =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내부개혁에는 성과가 있었지만, 쇄국 정책을 지속하여 세 계사 흐름에서 고립, 낙후. - 개항 후 서양 열강은 불평등한 조약으로 이권 침탈, 대한제국은 여전히 지도층조차 개혁과 개 방을 두고 분열. - 근대 법제의 수용 양상: 국가의 기본 틀 유지, 소규모 개혁. 학교 설립. 2. 갑오개혁과 홍범14조, 그 역사적 의의와 한계 - 홍범14조(1895): 제2차 갑오개혁에서 구성된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 주도 - 의의: 우리나라 최초로 헌법의 성격을 가지는 법령. - 갑오개혁 평가: “갑오개혁은 19세기 이래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내재적 개혁의 흐름이면서도, 청일전쟁의 결과 동아시아에 형성된 일본 중심의 근대적 제국주의 질 서 속에 조선이 편입된 과정을 법제화한 양면성을 띤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개혁 + 일본 중심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
웅진 코웨이는 국내 환경 가전 분야의 선두 기업이다.1989년, 건강하고 편리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혁신을 목표로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하였고, 지금은 국내에서 이 분야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자랑하는 기업이 되었다. 특히,국내 렌탈 사업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데, 업계 최고 수준의 R&D역량과 견고한 서비스‧영업 조직에 힘입어 렌탈 계정 수는 지금도 계속해서 증가하고있다.코웨이의 성장을 이끈 핵심 사업은 정수기 렌탈 사업이다. 환경 기업을 지향하는 코웨이는 설립 초기인 1993년, 회사 자체 환경기술연구소와 수질분석센터를 세워 정수 기술 개발에 힘썼다. 환경기술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자동 순환 기능과 3-way 밸브 방식을 개발하는 등 정수 기술 혁신을 이끌었고, 1996년에는 수질분석센터가 정수기 업계 최초로 환경부 인증 식수 수질검사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품질 관리 시스템을 인정받았다.이와 같이 제품의 질을 높이는 한편, 1998년에는 코디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렌탈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코디란 정기적으로 고객을 방문하여 제품을 관리하고 추가 서비스를 판매하는 인력으로,코웨이의 사업 전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2022년 기준 인당 약 470개 개정을 관리하는 코디는 기업과 고객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렌탈 고객의 해약을 방지하고 중복 판매를 촉진한다. 이처럼 우수한 품질과 체계적인 고객 서비스를 바탕으로, 코웨이는 615만 개 이상의 국내 렌탈 계정을 보유한,국내 정수기 시장 점유율의 40%를 차지하는 기업이 되었다.코웨이의 해외 법인들 역시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설립된 태국 법인을 시작으로 현재는 말레이시아와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미국,그리고 네덜란드에 법인이 있는데,이들의 2015 ~ 2022 합계 매출 성장률은 706%에 달하며 2022년 기업 총 매출에서 36%를 차지한다.
[한국사 서평 과제]최호근,『역사 문해력 수업』역사 문해력 수업: 해결된 고민과 새로 생긴 과제들라틴아메리카 지역 전문가가 되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이 지역 문화와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 고등학생 때부터 목표로 삼고 있는 진로이다. 주된 관심사는 이 멀고 낯선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가령,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회적 불평등 구조는 1492년부터 300여 년 동안 이어진 식민지 시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식민지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사회 뿐만 아니라, 대항해 시대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와 제국주의 시대 열강의 역사 역시 알아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이와 같이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멀리 떨어진 한 대륙에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느낀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나는지역을 막론하고 풍부한 역사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과거 이야기들을 묶어내면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과 비교하는 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이번 학기, 군 생활을 하며 2년 동안 멀리했던 학업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시점에, 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다. 한국사, 서양사, 대한민국 헌법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경제발전사까지 함께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조금 벅차긴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지식을 쌓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몇가지 의문 내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는 새로 배운 역사 이야기들 중 상당수가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 이상 복잡해질 무렵 “역사 문해력 수업”이 내 손에 들렸다. 저자가 책머리에 밝힌 집필 의도 대로, 나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이전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아예 접하지 못했던 많은 생각거리들을 만났다. 그 때마다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나가면서, 역사 공부에 관해 가졌던 불편한 마음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저자가 독자들과 나눌 첫 번째 이야기로 택한 것은 역사 공부의 가치였다. 나는 이 주제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에 대해 명확히 정립하지 못한 것이 내 회의감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 공부에 처음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라틴아메리카라는 낯선 지역과 관계된 역사를 알게됨으로써 그 곳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었던 매력적인 경험이다. 이처럼 역사 탐구의 출발점이 깨달음에 대한 희열이다보니, 나는 그 어떤 역사 이야기를 접하든지 항상 유익한 깨달음이나 교훈을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일깨워준 대로, 역사는 그리 친절한 스승이 아니었다. 삼국사기가 기전체 형식으로 쓰였고, 고려의 통일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신라를 본위로 서술했다는 등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깨달음 혹은 교훈을 주는지 그닥 와닿지는 않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와 같은 경험이 축적되었고, 결국 역사 공부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동일한 사건, 인물, 행동에서 얻어내는 교훈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역사 자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승 역할을 하기 어렵다.(p59)”는 것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과거를 읽는 독자로서 역사로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교훈들을 이끌어내는 것이(p59)”라고 말했다. 7장에서 소개된 역사학자 칼 베커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역사 서술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사가다!(p331)”라고 역설했다. 시대와 세대, 심지어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필요에 따라 역사 이야기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역사적 교훈만 좇았던 나의 강박이 역사가 서술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달았고, 한편으로는 분명한 위로를 얻었다. 일부 역사들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현대적 깨달음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역사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이야기는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전문 역사가의 학문 활동 절차를 다룬 3장과 객관적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주제로 한 7장에서 소개된 막스 베버의 비대칭 비교 연구 방법은 내게 또 한 가지 위로를 주었다. 사회과학과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위대한 학자 베버는 자신이 해소하고자 하는 의문에 근거하여 필요한 자료만 선별했다. 그러다 보니, 베버의 제한적 역사 연구는 자신이 집중하는 문제 외에는 동시대의 많은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저자는 베버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변호한다.“엄청난 자료의 바다에서 표류하거나 익사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로지 내 문제의식에 충실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비대칭 비교뿐이었다.(p151)”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이를 기록한 역사 역시 어지럽게 얽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발생한 모든 변화를 설명하겠다는 실현불가능한 목표는 내려놓고, 직접적으로 필요한 자료만 활용하여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양이 너무도 방대하다는 것에 압도되며 회의감을 느끼던 찰나에, 이러한 연구 방법은 한 줄기 강렬한 빛으로 느껴졌다. 나는 목표를 수정했다. 지금까지 나는 단순히 역사 지식을 많이 쌓아 똑똑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가장 큰 목표는, 막스 베버처럼, 복잡한 세상의 한 자락이라도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수용하는 것으로 상당 부분 덜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낯선 개념을 계속해서 소개함으로써 내 마음을 다시 복잡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라는 제목의 2장에서 경성 사실과 연성 사실에 대해 말했다. 그에 따르면, 특정 시점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준 상징적 행위와 믿음이 있다면, 이 역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과학의 눈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가령, 무당을 통한 망자와 생자의 해후 및 이로써 유가족이 위안과 안녕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냉전체제와 반공체제 속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폭력이 대부분 은폐되고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기록한 사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사적 영역에서 진행된 상징적 행위들이 그 당시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성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벅찬 지금의 나에게는 연약하게 남아 있는 부드러운 사실에 주목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한 가지 신호만 발신하는 과거 시대의 공식 기록들 틈새에서 희미하게 발신되고 있는 또 다른 신호들을 감지하여 되살리고자(p95)” 애쓰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라는 구절은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4장에서 소개된 ‘역사적 시간의 세 가지 층위’도 예비 문화연구자로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깨달음을 주었다. 브로델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짧은 기간 지속하는 ‘파도의 시간’과 서유럽, 동아시아 같은 중간 수준의 공간적 차원에서 중기적으로 유지되는 ‘해류의 시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해구의 시간’을 구분했다. ‘장기 지속’의 개념을 고안한 그는, 거대한 지리 환경이 인간 활동의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을 지배하는 행위 주체라며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역사를 이와 같은 시간적 층위로 구분하여 살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내 앞에 나타나는 식하는 탐구자가 되려 한다. “침묵하는 구조 속에서 구조화된 인간의 삶과 그 구조의 틀 속에 갇혀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p218)”는 문장을 학습과 연구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더 섬세한 문화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나는 아직 역사를 잘 모른다. 역사 사건들에 대한 지식도 볼품 없고,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시간도 적다. 이런 내가 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하는 이 시점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고민을 해결해주었고, 앞으로 계속될 역사 공부의 방향과 지침을 설정해주었다. 사료 비판과 비교 작업의 유형 등 전문 역사가의 학문 활동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게 해주었다. 5장과 6장에서는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나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을 품게 하기도 했다. 아직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역사가 순환하는 것인지, 진보만 하는 것인지, 진보와 쇠락을 거듭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인류 역사가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세계정신이 자신의 본질인 자유를 의식해가는 과정인지, 계급 투쟁의 역사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주장을 펼쳤던 각 사람은 자신의 풍부한 역사 지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관통하고 조직하면서 시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존경심이 든다. 그리고 나도 이들과 같이 내 나름의 방식대로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싶다. 물론 그 결과가 헤겔과 마르크스처럼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지적 탐구 여정을 통해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연구자로서 보람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그 지혜를 통해 내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라도 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 이 책 ‘역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사회·관계에 대한 신뢰가 서유럽, 미국보다 낮다. 그러나 이 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가정을 중요시 여기며 대가족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가난해도, 사회를 믿지 못해도 스스로를 행복하다 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Beytía, 2016)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느림에서 빠름을, 빠름에서 불변을군대는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 문화의 변화 속도는 여타 사회집단들에 비해 매우 느리다. 오늘날 기술 환경 및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는 기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조직 문화의 적극적 개편을 추동하고 있지만, 군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포화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무기와 폭력을 다룬다는 조직의 특성으로 인해 수직적 의사소통 체계와 빈틈없는 통제 및 보안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매일 다짐하고, 내 주장을 앞세워 논쟁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농업적 근면성의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삶에 스며들지 못하고 군 특유의 문화에 대해 답답함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1년 간의 적응을 마친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화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건 왜 하면 안 되는 거지?’ 의 스트레스는 계급과 함께 승화되어 “그건 하면 안 되는 거야!”의 희열로 변했고, 무엇을 하든 내 생각을 내세워 도전하기보다는 안전한 것으로 이미 판명된 기존의 방법에 기대어 안락함을 느낀다. 이렇듯 계급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가던 나에게 한국 최고의 데이터 분석가는 경고한다. “그냥 하지 말라”고. 무엇이든 관행이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 그냥 하는 식으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다고 말이다. 충격이었다. 하루하루 다시 군대 밖 세상으로 나갈 것을 고대하고 있지만, 나는 사실 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으로 갈아입고 있던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며 나름 잘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서는 저자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지나온 변화상과 앞으로의 모습 구석구석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가 지난 십수 년 동안의 데이터로부터 얽어낸 우리 시대의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다. 먼저는 공동체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기존의 사회가 분화되어 혼자 하는 일의 다양성이 확장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류 수명의 증가로 동시대 문화를 향유 하는 세대가 다양해진다는 것이며, 셋째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타인과 관계 맺기에 대한 피로도의 증가로 인해 무인화 혹은 비대면 방식이 확산한다는 것이다. 2010년에만 하더라도 식당에서는 4인 상을 기본 구성으로 했지만 2020년에는 ‘혼자’와 각종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결합어인 ‘혼○’가 65개가 될 만큼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다. 나아가 전통적으로 매우 강력한 결합력을 지녔던 가족 공동체까지도 이제는 서서히 와해되고 있는데, 이는 곧 한국의 부실한 사회 보장 제도가 지금껏 의지했던 효도라는 사회적 시스템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장수의 기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이제는 노년층이 사회적으로 도태되지 않도록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직업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빠른 속도로 감소하여 적극적인 재교육의 필요성이 심화되고 있다. 직업 수명을 단축하는 것은 첨단기술로, 공장과 마트, 렌털 서비스와 보험 설계 등 점차적으로 분야를 넓혀가며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수록 인건비는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노동 시장에서 사람이 끼어 들 자리를 없애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노동은 너무 고귀해져서 도처에 널려있는 과학기술로 대체되는 것이다.지나온 십여 년의 변화상 곳곳을 구체적인 사례들로 살펴보며 새삼 놀라기를 연속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밀려와 나를 힘 빠지게 했다. 이 모든 내용이 실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혼자’, ‘장수’, ‘과학기술’ 모두 예전부터 들어와 익숙한 키워드들이다. 그러나 저자가 내게 이해시키고자 했던 것은 사회 변화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 그 자체가 아니라 속도와 정도에 관한 문제였다. 약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단어들에 익숙하긴 했지만 이로 인해 급격하면서도 전면적인 생활 방식의 변화를 겪었던 적은 없었다. 기존의 관행이 가진 힘이 아주 강하여, 도입해볼 가치가 있었던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도 무시당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19라는 전 세계적 위기를 만난 순간, 기존을 지향하는 관성은 힘을 잃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건 아니건 변화는 강요되었고,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삶의 모습들로 채워졌다. 한순간에 국내외 여행이 제한되고, 많은 회사원들에게는 물리적 공간으로의 출근이 금지되었으며, 이유를 불문하고 여럿이서 모임을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한국 사회의 공동체들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속도로 결속력을 상실했고, 혼자 혹은 자신이 원하는 매우 소수의 인원들과만 행하는 소규모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는 광범위한 산업들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령, ‘프라이빗’ 여행의 욕구를 실현한 ‘차박’은 자동차라는 공간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온전한 생활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을 열었다. 방법도 잘 모른 채로 어쩔 수 없어서 시작한 재택근무였지만, 공간에 구속되지 않는 업무처리의 자유로움과 효율성을 경험한 일부 사람들은 여가활동에 대한 투자를 증대하거나 여러 회사를 동시에 다니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혼자’의 증가라는 기조로 서서히 진행되던 생활 방식의 변화를 혁신의 수준으로 가속화 했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성장한 의료 시스템은 수명 연장에 더욱 기여할 것이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 비대면 및 무인화 방식의 가능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높아졌다. 즉, 코로나 19로 10년 후의 미래가 한 순간에 앞당겨졌고, 지금과 같은 혁신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게 된 세상은 계속해서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조망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했을 모습이지만, 예상보다 일찍 마음의 준비 없이 맞게 된 생활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기존의 삶을 떠받치던 여러 전제에 대한 강한 의심을 낳았다. 회사라는 공간으로 출근한다는 개념이 흔들리고 학교 역시 전면 온라인 수업의 경험을 해 본 이상, ‘학생은 학교를 가야 한다’라는 믿음이 여전히 굳건할 수는 없다. 온라인을 통한 학교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머지않아 현실을 모르는 자들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앞당겨온 미래와 그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전제들을 보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결국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의 출발점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직업에 대해 전제했던 생각은 이미 많이 깎이고 깎여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고, 자동화될 수 있는 모든 일은 목표로 삼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동성의 시대에 적합한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직장에 다니면서 쉬는 시간 및 퇴근길에 배달일 혹은 다른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블로거 혹은 유튜버로서도 살아가는 일부 현대인의 모습을 예로 들며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바로 잘 적응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직업이 평생의 삶을 보장해줄 수는 없음을 인식하고 계속해서 서로 다른 직업을 찾아나서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명한 생활상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어 전공자로서 언어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군에서 지원하는 기회를 얻어 지게차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역 후 인터넷 쇼핑몰 창업을 위해 준비하면서 미국 주식에 대한 강의까지 듣고 있는 현재의 내 삶을 긍정할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인간의 항구적 관심사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언급하며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나’가 될 필요성을 역설한다. 자동화 및 무인화의 시대이자 시공간의 제약이 약해진 시대에서 어정쩡한 중간은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 혹은 기술에 밀려 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이 다양화되고 있으니 그에 맞추어 여러 종류의 일에 손을 댄다는 식의 대처는 지금 당장에는 현명해 보일지언정 점차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통의 기술자는 기계로 대체되고, 보통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매자는 AI로 대체된다. 그러니 이제는 어떤 것이든지 내가 선택한 길에서 독창성을 갖춘 최고의 주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먼 옛날처럼 한 분야에서의 완전성을 갖춘 장인이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키워드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