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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강좌중국사 요약 - 몽고 제국의 형성과 발전
    강좌중국사 요약 - 몽고 제국의 형성과 발전
    -몽고 제국의 형성과 발전-머 리 말-13세기초, 칭기스한의 등장으로 몽고족 통합 후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거대 제국 형성.-유럽인은 몽고를 지옥을 의미하는 '타르타루스'에서 비롯된 '타르타르'라고 표기함.-몽고제국의 출현 : 심리적 충격 + 직?간접적인 피해 + 피지배 국가들의 역사발전에 영향을 끼침.-칭기스한의 일족 : '황금씨족'이라 부름. '한(khan)'이라는 칭호는 그들의 전유물이 됨.-본고에서 논의할 문제.①칭기스한의 몽고제국이 강력한 정복국가로 변신한 과정.②세계정복을 가능하게 한 제국구조.③정복전쟁은 어떻게 수행 되었는가.④여타 유목국가의 경우보다 성공적이고 파괴적이었던 이유.⑤몽고제국의 분열원인은 무엇인가.Ⅰ. 요(遼)의 성립과 중세정복국가의 출현-중국의 역사 : '전형적인 중국왕조' + '정복왕조'-정복왕조론 : 중국의 문화 + 이민족의 문화 ⇒ 문화접변 ⇒ 제 3의 문화 이룩.-고대 유목국가 ⇒ 중세 정복국가 : 역사적 필연성, 시대적 성격의 근본적 차이 이해할 필요성.-야율아보기 : 916년 '요' 건국. 장성이북의 유목민족 중 최초로 중국식 국호 사용.?중국적 왕조 지향?Why? - 당의 기미지배의 영향, 남몽고 초원지대의 생태적 특이성, 아보기의 건국과정.※당의 기미지배 : 부족내·부족간 대표를 통해 유목집단들 통제, 그 대표의 권력 기반을 당의 지지와 원조에 바탕을 두게 함. 당에 대한 의존을 불가피하게 하고 초부족적인 유목국가 형성방지.-거란의 8부족장들의 당 내속. 8부족 연합체 결성-야율아보기의 8부족연합체 붕괴, 군주가 전제적 권력 장악.?경제적 기반 : 각종 수공업과 농경의 중심지 '한성', 소금을 공급.거란족의 거주지인 송막지방이 동남몽고의 중초원지대에 속함. ⇒ 농목복합지대.?군사적 기반 : 탈 부족적인 성격의 군대. 군대의 지휘관들은 아보기와 혈연 관계아님. 개인적 후 원과 충성이었음.?중국적인 정치이념에 익숙. 한인지식층들의 자문을 통해 중국적 전제왕조로의 지향 싹틈.?건국직후 '부족해산', '분토정거' 단행.-유목군주 : 재화의 '분배자'로서 자신의 지위 유지, 정복군주 : 재화의 '축적자'로서 지위 보장.-유목국가의 한계 : 중국을 지배할 경우 군주권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부족들의 반대로 유목국가 형태로 남게됨.Ⅱ. 몽고제국의 형성.1. 칭기스한 등장 이전의 몽고고원.- 에 실위족의 일부로 처음 등장.? 양은 기르지 않고 오직 돼지고기만을 먹고 삶. ⇒ 유목민이라고 보기 어려움.? 초부족적 군주권의 출현 ×? 유목생활× , 여름에만 이동하는 반정주적 생활 + 수렵위주의 혼합경제 영위.- 7세기 전반 : 기미지배 → 유목민족의 사회내적인 분화. 9세기중반: 위구르의 멸망, 유목민족의 대규모 이동.- 9세기 후반~10세기초 : 몽고족의 이동 후 풍부한 목장지대의 환경 속에서 수렵 ⇒ 유목 전환.-몽고족의 사회구성 : 아일(개별 유목가호), 오복(아일의 모임), 퀴리엔(수백~수천가구 모임, 민족 이동의 단위), 울루스 or 이르겐(가장 큰 사회구성 단위)- 사회적 분화 : 빈목과 부목의 차등 생김. 노얀(정치군사적 우위 점한 계층), 하라추(일반 유목민).- 몽고초원에서 유목제국 형성하지 못한 이유 : 요와 금의 북방 장악 ⇒ 한인왕조에 약탈 후 화친 방식의 무용. 한인왕조의 이이제이 전략주효.- 의형제?맹우 : 사회구성원들 간에 방어와 보호 기능 수행. 연령결사의 특징. 탈부족적 성격.?테뮈진(칭기스한)이 가장 잘 이용. 더욱 강화하여 정복군주로 변모함.2. 칭기스한과 몽고제국의 건설.★칭기스한의 등장과정.- 칭기스한 : 1162년 몽고족의 보르지기드씨에 속한 예쉬게이의 맏아들로 태어남.- 1170년 예쉬게이 독살후 36여년간 일족으로부터 소외받으며 힐둔산에서 은둔함.- 보오르추와 맹우 맺음. 토오릴과 자무가 와 의형제 맺음.? 힘이 커지자 이들과 대립하여 승리함. 이후 몽고사회에서 의형제 관계 소멸.? 맹우관계 변화 : 수평적 관계 ⇒ 수직적 관계? 칭기즈한 즉위 후 : 맹우 ⇒ 막우★1206년 '대몽고제국' 탄생.- 칭기즈한의 천호제 : 천호장과 만호장을 칭기즈한이 직접 임명. 천호장과 만호장은 대다수 막우.- 친위대 : 천호장?백호장?십호장의 자제들로 구성. 천호장보다 높은 지위 부여.?질자군(質子軍). 천호장 이하 각 수령 견제. 군주에 대한 개인적 충성 강화.- 몽고제국의 경제적 기반은 유목적.- 칭기즈한은 유목세계의 군주. 전쟁 역시 유목적인 약탈전.- 권력기반 : 재편된 부족구조 + 탈부족적 군사력. 고대 유목국가와는 다름.? 칭기즈한의 후계자들은 정복국가의 맹아를 안고 있음.- 칭기즈한은 유목군주 ⇒ 정복군주로 이행하는 과도적 위치.Ⅲ. 중세정복전.★몽고제국의 의문점들.- 13세기 몽고족의 세계정복전쟁은 규모면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 정복전쟁이 수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수행.- 열등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제국 형성.- 칭기스한 사후에도 제국이 유지 되고 더욱 팽창.⇒ 몽고족의 정복전쟁 과정을 통해 파악.1. 약탈적 전쟁.- 칭기즈한 시기의 대외원정 : 약탈전쟁으로 일관- 약탈전쟁 : 영토의 장악과 인민의 직접지배 X , 필요한 물자 획득, 상대방을 군사적 굴복.★몽고의 대외 원정①서하 원정 : 1209년 몽고의 최초 원정. 금 공격 이전의 측면 위협 방지. 서하의 항복 얻어냄.1226년 칭기스한의 마지막 원정. 서하의 물자와 병력 조달 거부에 대한 응징.→ 원정 도중 칭기스한 병사. 서하왕조 멸망.동서 교통의 요지인 서하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기위한 전략.②금 원정 : 1211년 금 정벌. 항복 받아냄.금의 수도 변경 → 배신행위로 간주. 1215년 금의 중도 함락. 황하이남 정벌 시작.③서방 원정 : 서방과 교역을 위해 사신단 파견. 사신단 귀환도중 오트라르에서 몰살.칭기스한의 1219~1223년간 서방 원정. 유목전술의 극치를 이룬 것으로 평가.- 약탈전쟁의 결과 : 도시의 파괴, 인구의 감소.- 몽고군의 약탈 패턴 : 약탈 →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고 죽임 → 성 파괴.- 몽고군의 전쟁 패턴 : 공격 → 불지름 → 도륙 → 약탈 → 떠남.- 몽고군이 잔인한 방법을 사용한 이유 :①직접적 지배 필요성 못 느낌.②정주지역의 인간생명, 문화에 대해 무관심과 경멸감을 가짐.③정주민의 몰살 : 저항세력의 재집결 방지.④살육과 파괴 : 정복되지 않은 인근 주민들의 공포 유발, 자발적 항복 유도하는 일종의 심리전.2. 정복전으로의 전환.- 칭기스한 사후 대외원정 : 약탈적 전쟁→직접적 지배·적극적 관리, 정복전.- 칭기스한 시대 다루가치 : 군정+민정→정복지의 질서유지, 반란 방지.※다루가치? 정복지역에 파견하는 행정관. 일종의 총독관. 몽골인과 색목인만 임명됨.- 외괴데이의 대외원정 : 1236년~1242년까지 러시아 및 동유럽 초토화.- 묑케의 치세 : 제국의 영토 최대 확장.? 외괴데이 가문→톨루이 가문으로 군주의 자리 이동.? 동생들을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대외원정 지시.→가문의 영향력 강화.? 1260년, 나자렛 근처 마믈룩 군대에 몽고군의 최초 패배(아인 잘루트 전투).? 1259년, 묑케의 죽음.→몽고제국의 분열, 팽창의 중지.- 적의 근거지는 철저히 파괴 But, 무분별한 폭력사용의 절제.- 전쟁 형태의 변화 요인① 정주국가에 대한 약탈과 화친이라는 유목국가의 대응방식이 적용될수 없는 정치적 상황 발생.② 정복전을 부추기고 이념을 제공해준 '문화적 중개자들'의 등장과 그 역할.? 정복지역의 정치적 공백현상. 색목인들에게 행정적 업무 수행하게 함.- 군주권의 변화? 칭기스한 : 영원한 하늘 소망. But, 처음엔 평화적인 교역과 외교를 희망.군주의 칭호 : 한(qan) 사용. 복수형의 유목세계의 군주.? 칭기스한 계승자들 : 세계제국의 유일무이한 군주.군주의 칭호 : 하안(qa'an) 사용. 단수형의 유일무이한 최고 지배자.? 전쟁형태의 변화 : 정복지에 대한 통치정책에 반영.Ⅳ. 몽고제국의 통치구조.- 초원지대와 농경지대에 대한 지배구조.- 초원지대의 지배구조는 관련자료가 거의 없음.- 농경지대의 지배구조 : 묑케시대에 수탈체제가 완성됨.1. 정복지 수탈체제의 정비.- 외괴데이의 정책 : 북중국에 대한 호세(戶稅)를 원칙으로 하는 세제 확립.? 1230년 십로징수과세소 설치 : 중앙에서 각로(各路)에 징수담당 관리 파견.몽고왕공들의 통제×, 유목귀족의 독자적 물자기반 약화→중앙집권화 도모.? 1233년 효과적인 징수 위해 호구조사 실시. 1234년 금 멸망 후 호구조사 재 실시.? 신세제 실시 : 세량(稅糧)·과차(科差)·잡세(雜稅) 납부.- 세량 : 정세(丁稅)와 지세(地稅)로 양분. 둘 중 많은 것을 납부.- 과차 : 사료(絲料)와 포은(包銀) 둘 다 납부.특징 : ① 합호제(合戶制)→단호제(單戶制)② 균등세→차등세.- 오호사제(五戶絲制)의 실시 : 유목적인 몽고사회의 특유의 분봉제도.? 몽고귀족들에게 투하호(投下戶, 일종의 식읍) 분봉. 토지와 인민을 사여.? 정복의 수확을 같이 향유해야 함.- 특징① 자의적 착취 + 정주지대의 관행 존중, 체계적 징수.② 한인세후들의 세력 삭감. : 외괴데이의 호구조사와 세제개혁으로 약화.※한인세후? 향촌의 자위를 위해 조직된 소규모 무장집단. 지방의 지휘권 장악한 한인 유력자들.- 외괴데이 정책의 목적? 칭기스한의 나라 유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체계적 수탈 필요, 몽고귀족 약화→군주권 강화, ?진수군 설치, 창고 설립, 역참 건설.2. 묑케의 개혁과 제국행정.- 외괴데이 사망 후, 몽고의 정치적 혼란.- 묑케의 즉위 후, 군주권 재확립. 행정체계 정비할 필요성 절감.① 대대적인 호구조사 실시 : 효과적인 조세 징수 중요. 황제직속의 호구 감소 ↔ 투하호 증가.결과 : 황제직속 호구 증가. 투하호 삭감. But, 호구조사 마무리 후, 몽고 귀족에게 분봉 실시.② 세제개혁 :세량-중국의 전통적인 부세의 연장 내지 수정. 2배로 증가.과차-몽고인 특유의 부정기적 공납에서 연유된 것. 호당 5량 → 호당 6량으로 증가.
    인문/어학| 2022.12.28| 6페이지| 1,500원| 조회(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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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강좌중국사 요약 - 호한체제의 전개와 그 구조
    강좌중국사 요약 - 호한체제의 전개와 그 구조 평가A+최고예요
    < 호한체제의 전개와 그 구조 >* 오호?북조 시대- 중국의 서북방에 거주하던 호족들이 후한 말 이후 대거 이동하여중국 내지에 최초로 국가들을 세웠던 시대(= 호족의 통치시대)* 호한체제 이론- 호한간의 충돌과 반목이 종국적으로는 융합이라는 단계를 지향한다는 전제가 바탕- 호한(胡漢) 양 민족이 한 지역, 한 통치체제 내에서 병존하여 하나의 문화체제를 형성해 가면서 충돌?반목?융합하는 즉, 호한문제를 기축으로 돌아가는 모든 사회현상을 지칭cf) 흡수 이론 / ‘민족모순의 극소화 및 계급모순의 확대’ 중심의 중국학계의 연구 경향Ⅰ. 호한관계의 전개1. 호한분치체제하의 한인* 선우정치 - 선우 밑에 좌우현왕을 하부구조로 하고 좌우현왕 및 그 하부조직을 흉노족 및 여타 호족으로 편성하여 선우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배정하는 것But 흉노지배층 및 민중들의 심한 한화현상 / 정권 내 인민구성의 문제(한족 ?)* 호한분치정책 - 한족의 통치체계와 호족의 통치체계를 병립 이원화시키는 것⇒ 흉노적 세계와 한적 세계의 양립을 보여줌* 종실적 군사봉건제 - 오호국가에서 종실제왕이 각각 병권을 장악한 것* 후조정권 - 대한인(對漢人) 초납책 : 한인사족의 우대책 → 전조와의 경쟁에서 우위 차지* 전연정권 - 한인들의 조국인 동진에 대한 근왕정책을 채용 → 수많은 한인유민이 초납함But 오호 전기 정권의 한계 : 한족적인 것과 호족적인 것의 양립이 엄존 ⇒ 종족간의 모순2. 호족군주의 통일지향- 당시 ‘이적은 중국의 정통천자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이 뿌리 깊게 존재함* 전진의 부견 - “이적군주는 통일천자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을 철저히 부정㉠ 종족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관리임명의 보편적 원리인 수재탁수책을 채용㉡ 한인들의 전진정권에의 귀속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심도 있는 한화정책을 채용㉢ 호호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화융지술을 채용해 이족을 회유하고 우대함㉣ 사민정책 ? 호한분치정책 및 본족민 위주정책을 포기 ⇒ 종족?계층 간의 차이를 초월㉤ 부락해산 조처 ? 오호국가로서는 최초로 단행3. 한인사족의 화이관념- 한인사족에게는 화이관념이 강렬히 남아있음 ? 호족정권에의 참여가 떳떳하지 ×But 화이관념보다 보가?보신이 중요했기 때문에 호족군주를 택하게 됨- 한인사족을 초납하기 위해 호족군주는 조폭성을 버리고 예교적 군주로 변모해야함4. 북위국가의 제단계① 부락해산- 북위가 오호제국과 현저히 다른 점 : 부족제도의 탈피 ? ‘부락해산’ 조처로 보는 견해- 부락해산 : 부락민을 경사지역에 분토정거하고 부락민에 대한 족장의 지배권을 박탈하며, 동시에 부락민을 편호화 하는 것.? 각 부족을 보다 작은 단위로 나누어서 ‘분토정거’, 즉 목지의 범위를 정해서 천사,즉 정해진 지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는 형태But ‘부락해산’ 조처에 의해 구래의 부족제도가 완전히 소멸한 것 ×→ 부락해산 후에도 부족제의 본질인 부족상호간의 결합관계가 사회적 실태로서 존속② 사민정책- 화북통일 과정에서 대규모의 사민정책 실시 ⇒ 통일국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줌- 제 5대 헌문제 시대 : 평제군 설치 ⇒ 피정복민 중 적성이 강한 자들을 수도 근방에집주시켜 이들을 군현제로 재편하려는데 목적 有? 사민정책이 군현제와는 다른 보다 예속성이 강한 국가직영에 의한노예제 혹은 소작제로 보는 견해가 제고됨5. 국사사건과 한인사족* 한인사족의 탁발국가에의 참여 → 유목국가의 탈부족적인 정치과정의 문화적 매개자 역할⇒ 북족세력을 대표하는 북족구신과의 알력 피할 수 ×* 중원정벌이 본격화됨에 따라 산동귀족의 정치참여가 현실화 됨 ex) 최굉, 최호* 국사사건 : 태무제시대, 한인사족의 대거등용 → 최호-한족 중심의 문벌사회의 재건 도모→ 한인 고문사족이 정치적 지위를 독점하는 북위 사회구조 자체의 혁명 시도⇒ 북족세력의 노골적인 반감을 초래 ⇒ 최호 - 주살됨☞ 호?한 양 관료집단의 종족적 모순과 갈등관계의 극대화로 빚어진 대충돌 사건* 북위 정부에서 활약했던 한인사족 - 고윤- 당시 시대상황에서 한인사대부가 지향하는 본연의 이상을 실현해간 자로 평가- 유와 완의 방법으로 예교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종생의 과업으로 생각- 5호 16국 이후 폐지되었던 향학을 각처에 건립 → 문치적 분위기로 전환- 항구적인 처벌원칙을 세우기 위해 율령의 제정에 노력함6. 효문제와 한화정책* 성족상정표면적 : 정치력으로 무인사회 내부에 문벌제도를 적용시켜 한인귀족과의 공치체제를 성립내면적 : 선비지배층을 선비족 하층민과 제북방인으로부터 절연 내지 유리시킨 조처⇒ 호한의 지배층을 일원화시킴* 이풍역속⇒ 단순히 한화만이 아닌 유목민의 한화를 통한 호족국가가 갖는 특징인 약한 군주권을강화시키려는 목적이 복재되어 있음이 뚜렷함 ex) 낙양 천도Ⅱ. 호한체제의 구조1. 균전제도- 중국 역대 토지제도 사상 갖는 독특한 위치 : 토지공유주의, 균분주의라는 원칙의 투영cf) 서주의 정전제의 이념 : 왕토왕민사상과 균분사상 ? 한전제, 둔전제, 점과전제에 영향- 북위시대 : 토지공유제적 균전제 ? 탁발족의 유목민적인 토지공유사상- 계구수전 → 과전제 → 치전제 → 균전제* 계구수전- 국가가 토지를 몰수하여 공전으로 만든 다음 백성들의 수대로 나누어주는 방식- 호구조사 / 균등분배 / 나누어준 땅이 군주의 것이라는 전제- 북위의 성립기, 대규모의 사민조치 → 사민들은 계구수전이란 형식으로 농경민으로 종사- 북위 황제가 기반으로 한 비유목적 경제력 ⇒ 계구수전2. 북위제왕의 농목적 성격* 유목형 군주- 군주라는 지위를 그 스스로 주체가 된 외전에서 획득한 약탈품의 분배를 통해 유지- 친정 → 약탈 → 반사행위 / 군주 계승의 원칙 × , 용감성과 군사적 지도력 중시* 북위시대(유목군주 ? 한족군주)- 1대에서 7대까지 장자상속제 → 전통적 유목형 군주체제로의 일탈- (북위의 거의 모든 제왕들이 직접 정벌에 참가)→ 전반기 : ‘친정 → 약탈 → 반사’의 공식 이행 / 후반기 : 공식의 형해화 ? 진휼* 가한의식- 가한 : 흉노의 ‘선우’와 함께 북방유목민의 통일군주의 영호- 선우호의 권위하락의 결과 ⇒ 농경국가의 황제호와 대적할만한 칭호가 필요 → ‘가한’호- 〈목란시〉에서 북위황제를 ‘천자’ 혹은 ‘가한’이라 부름 ? 가한의식? 북위군주는 농경과 유목형을 고루 겸유한 ‘농목형’의 군주상을 보여줌
    학교| 2022.12.28| 4페이지| 1,5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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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강좌중국사 요약 - 황제지배체제의 성립과 전개
    강좌중국사 요약 - 황제지배체제의 성립과 전개 평가A+최고예요
    황제지배체제의 성립과 전개머리말-중국 고대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황제지배체제의 통치구조는 이후 전근대 중국사의 전시기에 걸쳐 통치제도의 핵이 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적 질서의 구심점으로 역할, 동아시아 역사 전개 및 주변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그렇다면 황제지배체제는 당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어떻게 성립하였으면 어떠한 과정을 밝아 정착되어 갔는가. 그리고 당시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외관상 진의 성립과 함께 시작된 황제지배체제지만 체제가 정착하는 데는 진한 시기까지 상당한 시간 걸린다. 그리하여 각 시기의 구체적인 실상들을 통해 고대황제지배체제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각 시대의 황제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Ⅰ. 황제칭호의 이해와 신비주의적 황제관의 전개1. 진 제국 시기의 황제 관념1)황제관념의 연원 - 帝라는 문제는 갑골문, 금문에서 신격을 지칭하는 문자로 사용초기 :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절대적 신 → 서주 : 인격 신 → 제자백가 : 성인군주진시황 : 황 - 신하들이 천황(天皇)·지황(地皇)보다 위의 태황(太皇)이라는 용어 건의제 - 상고시기의 ‘제(帝)’라는 호칭-전국 후반 진(秦)과 제(齊)나라에 일시 사용인간적 존재라는 의미 내포.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 현실적 의미.2)통치행위의 특징①신비주의 색채 : 극묘를 건설, 아방궁의 구조 내밀화, 선인·불사약을 찾음.②독신(瀆神)적 행위 : 2차 순행 중 장강을 지날 때 돌풍을 만나 곤욕을 치르자 보복으로 상산의 나무를모두 베어 버림, 5차 순행중 해신과 싸우는 꿈을 꾼 뒤 사람을 시켜 대어를 잡게 함.※ 신비주의 색채 + 인간중심주의 입장3)신비주의·인간중심주의 입장을 취한 이유①자신이 이룩한 업적의 무한한 자신감 - 인간중심주의②신하들과 민간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분위기 - 주술의 신봉·토속신앙4)산천제례 - 통치의 정당성 확보①당시 널리 퍼져 있는 민간 신앙과 산천제례의 밀접한 관련②황제가 제례의 주관자임을 밝히는 자리※ ⇒ 자신이 황제의 적임자임을 과시③항우 격파 이후 황제 등극 : 전국시기 각지의 무축들의 주술로의 경도현상2)문제① 통치 안전 후 상제제사의 규모 확대, 오제묘와 오제단 설치②상고의 제사에 천자들이 상제제사에 친림하였다는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이들 교제에 직접 참가⇒ 한대에는 황제라는 용어와 천자라는 용어가 함께 사용3)무제- 주술과 제의가 유행①교제에의 친행을 회복②명산대천 제례 가운데 주요한 것을 황제에 다시 귀속상제 대우격인 후토제사와 이들의 상위신격인 태일제사가 채택③태산봉선 감행 - 봉선의식과 명당을 건설하여 이곳에 태일·오제·후토 및 고황제의 사우함께 둠④태일제사 : 북극성을 태일의 정(精)으로 보고 주변의 별들을 삼공, 정비, 후궁, 번신에 해당한다고 봄* 현상의 제(帝) → 천상(天上)의 제(帝) → 태일로 제 관념이 확대 ⇒ 황제 관념의 절대화 시도4)한 왕조 수명(受命)론· 동중서 - 황제관념과 천자관념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 개인으로서의 황제가 아닌 제도로서의 황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그러나 무제는 태일신앙을 황제관념과 직결시켰으며 봉선의례의 감행으로 보아 왕조 수명론에 의지하지 않고 절대적 존재의 황제론을 추구3. 왕조 수명론과 천자적 황제론1)무제 이후 - 유교적 소양의 관료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정례를 갖추지 못했던 제의들을 정리하여 모으고, 주술적 요소가 짙던 여러제사들을 폐지결국 후한 초 남북교에 상제·후토제사를 모으는 형태로 정착2) 태일제사의 폐지①유가적 천자관(하늘로부터 수명을 받아 통치)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이유②북교 제의의 일부로서 자리 잡아 황제의 절대화와는 무관하게 천신의 일종으로 제례③왕망·광무제 단계에 이르러 명백히 천에 의해 황제의 지위는 오르는 천자적 황제관이 확립3)수명론의 대두①왕조 수명론 - 황제를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제도로서 수용한다는 의도②혈통주의 - · 전한초 이래 군국들이 고조(유방)의 묘가 모셔짐· 왕망의 찬탈에 이용· 유수의 한 왕조 재건에도 이용 - 천는 제신에 비견되는 질서의 주재자가 아니라 천명의 수탁자로서 현실세계를이끌어가는 가부장적 군주6)황제관념상의 두드러진 변화①혈통중심주의의 유한 왕조 수명설, 이와 표리 관계에 있는 천자적 황제관 가부장적 황제관②현실상의 배경 : 황제관념은 제민지배체제가 기초· 전한 중엽 항촌 사회의 경제발전 → 호족 출현(선거를 통한 관료의 진출)→ 새로운 황제관념체제 필요(유가적 군주관)Ⅱ. 황제권력 - 민간 질서의 전개와 가부장적 황제관1. 진의 황제권력 -민간질서1)가부장적 황제관- 가족주의적 국가관과 표리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후 전근대의 거의 전시기에 걸쳐 지속하면서 황제지배를 관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 전국시기 전제군주정의 전개에 주목, 각 국가 군주와 사종자들 사이의 주객관계· 이후 연구자들 - 가족관계를 그대로 국가구조에 연결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 진의 경우 이런 흐름으로 전제군주정의 완성 - 그 사회적 조건으로 가부장적 제의 해체를 들고 해체가 본격화된 계기가 상앙변법이라는 연구· 가부장적 사회관계는 국가권력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보고 국가권력으로 연결되는 것으로서 수령제라는 개념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2)진제국의 형성과정을 통한 가부장적 주객관계①종법제의 뒤떨어진 시행이 상앙변법에 의해 국가체계정비의 계기②종족 관계가 해체 - 개별가족의 배출 증가 방향③진율을 통해 가부장적 가족제를 인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족제를 인정하는 내용이 보여지는 것은 가족 단위로 구성된 소농들의 부세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해서이다.④‘검수(黔首)’의 사용 - 종래의 민의 일반화된 용어인 ‘백성’을 ‘검수’로 고쳐 부름. 이는 백성이라는 용어에 내포한 가족·종족의 개념을 탈피하여 모든 국가구성원이 황제 지배하에 놓이기 위한 새로운 용어를 찾기 위함3)향촌의 구조와 질서①향촌질서는 가족제의 외연 - 가족관계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면 자연 향촌질서에 대한 개입도강화②진율 - 향촌하부 단위 ‘리’의 경우 : 전과 노가 있어 현정과 리를 연결하는 역할※이렇듯 두(竇)황후(皇后)를 세우면서 천하의 환과고독과 80세 이상자 및 8세 이하의 고아에게 포백과 미육을 하사, 민작의 사여※ 구휼·상부상조의 형식으로 향촌사회의 공동체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제례의 규제를 통해 황제가 관여할 수 있는 관행을 성립시킴.2) 황제의 작위 사여- 여자에의 우(牛)·주(酒)사여는 이사에서 행해질 연화 즉, 대포의 주육을 하사· 한대 : 음사가 금지된다던지 무축들이 향리의 제사에서 차츰 배제되는 경향3) 가부장적 온정주의- 장자에만 사여된 경우, 장자가 다른 사여 대상자보다 우대되는 경우①전한 후반의 변화 : 선제(宣帝) 지절(地節)4년에는 부모 및 대부모 즉, 조부모에 대한 복상(服喪)을 위해 요역(?役)을 감면케 하는 내용의 조서와 부자·조손·부부간의 범죄·은닉을 용인하는 내용의조서가 공포②국가권력의 양보· 능읍을 조영하면서 동시에 시행하였던 능읍에의 사민(私民)이 기존의 종족관계를 파괴하고 이주자를 선영으로부터 유리시킴으로써 가족윤리를 훼손한다는 비난-전면폐지· 각지 군국에 설치되었던 고조, 무제의 제사가 친족만을 제사지내는 가족윤리에 위배된다고 해서 철회4) 연속성 - 진·한 시기의 향촌내의 공동체적 질서에 대한 황제의 입장-①수용의 표현 - 사여형식· 향리의 자율적 질서나 가족 내부의 가부장적 권위도 황제의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따라 사여 → 상황에 따라 황제의 지배에 대한 제약이 가능함을 시사②무제 :· 흉노와의 전쟁중 무공작을 신설 - 진의 상벌체계에의 회귀현상,한왕조에서의 사작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혜시로서 부여되는 사여의 일종· 고민령을 공포, 고발에 의하여 은닉재산을 몰수 가능→사오의 연좌제에 근거 - 제민지배를 지향하는 황제지배※혈통주의에 입각한 왕조수명론 및 천자적 황제관이 자리를 잡았음을 반증5) 변화의 배경진제국 - 계층의 미분화전한 중엽 이후 - · 향촌사회의 유력층으로 호족대도호족 ⇒ · 세력의 기반을 공고기 하기 위하여 가족 윤리의 중요성 강조· 관도(官途)를 통하여 황제권력에 접근·변화에 영향인민부국강병 달성, 경전지사의 육성을 목적으로 추진· 고안된 동기 군사적 목적 - 강병을 위해 실시된 군공작에서 참수일급에 대하여작일급이 수여, 사여된 작에 대하여 형벌 면제의 특권이 주어짐과 동시에 전택의 하사2)공전의 사유화와 수전제· 공통점 : 전제 군주를 이전의 공동체적 기능의 가장 중요한 계수자로 파악· 차이점 : ①공전을 이용한 전제 군주화 - 사유화를 통한 권력 창출②수전제 - 균분의 실천을 통하여 전반적인 공동체 기능의 수행자· 한계 : ①공전을 이용한 전제군주화 - 공·사전을 막론한 토지제도 전반에 대한조망이 결여되어 있는 점②수전제 - 전국형의 전제 군주권 단계에서 나타났던 동원체제의 일환으로서 토지제도를 파악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 황제지배체제의 이해※ 토지의 균등 분배를 실현한 전국형 전제군주체제 아래에서도 이미 분배된 토지에의 사적 점유가 나타나 황제 등장시기에는 상당한 정도까지 이러한 현상이 진행된 상태였고 전제군주도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여 공전의 가산화 및 확대작업을 진행시킨 것임.3)호족의 대두 - 황제와 소농민 사이의 관계에 변수①변화 - 사적 점유의 용인과 확대. 사전은 가작·용작·노예노동 등의 방식으로 경작되어 호족의 경제적 기반②황제 권력이 취한 대응 자세 - 수전제의 고수, 한전론의 논의, 왕망의 왕전제· 무제 때 자산세가 중과되고 고민령이 시행→ 중가(中家)이상의 가족 반 이상 파산⇒ 국유라는 원칙에 근거를 두고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4)토지의 사유화에 대한 황제지배체제의 태도①사회적으로 토지의 사유화가 당연시되었으나, 적어도 이념적으로 황제권력의 뒷받침을 위해 토지국유 개념이 필요②자산의 세를 중과, 사부(私富)의 억제, 경작지 이외의 토지에 대해서 국유의 원칙, 무제의 염철 전매※ 사부의 억제를 통해 소농민의 안정을 취하면서 적어도 개념상의 국유화를 강조함으로써 황제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2. 부세제도· 진의 경우 - 추고와 같이 수전을 기반으로 한 전세와 군사적인 용도에 기원을 둔 부 등이 확인· 한의 경우 - 전부여
    학교| 2022.12.28| 7페이지| 1,5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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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중국사 요약 - 당 전기 지배층
    당 전기의 지배층-구귀족(舊貴族)과 관료기반의 확대-?머리말?중국사에서 수당사회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하나. ‘당?송 변혁’을 전제로 송대 이후와 비교 (당조 율령체제 붕괴에 초점)-둘. 수당제국의 성립 근거를 통하여 파악 (남북조이래 귀족제의 변질과정에 초점)☞서로 다른 초점이긴 하나, 별개로 다루기보다는 규합하여 파악해야 한다.?수당의 지배체제인 귀족제국 율령관제의 실질적 해체기는 언제인가?-하나. 안사의 난-둘. 당 중기 사직의 설치와 이들에 의한 벽소(?召)의 원외관제(員外官制) 확장BUT, 당초 이래 귀족제의 쇠미와 함께 관중집단(關中集團)의 괴멸과 분화로 율령관제가 변화를 보였다는 의견이 주목받고 있음.?수당귀족제론의 검토?수당대를 고대로 볼것인가 중세로 볼것인가?☞당시 지배층인 귀족의 사회적 특권에 따라 귀족즉기생관료론(貴族卽寄生官僚論)과 중세귀족제사회론(中世貴族制社會論)으로 나뉨.?귀족제사회론가 내등 “(귀족 계층이 명망가로 몇 대째 관리를 배출하고 있으므로) 육조시대에서 당의 후가까지는 귀족제의 시대이다.”?궁기시정(宮崎市定) 의 ?구품관인법의 연구?에서는 북주정권이 귀족제도를 배척?파괴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여 지배층을 ‘군벌적 귀족’으로 표현.☞귀족제에서 관료제로의 이행기를 ‘당송변혁기’로 상정하여 오히려 내등의 중세귀족제사회론을 보강.?1950년대 후반에 들어와 중세귀족제사회론은 귀족즉기생관료론에 의하여 심한 도전을 받게 됨.(이들의 이론은 전전직전(前田直典)의 수당고대설, 서도정생(西嶋定生)의 고대국가 권력구조론에 있었음.)?도전을 받게된 중세귀족제론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체계화 시킴.-당시 지배계층인 귀족층이 국가권력의 존재에 의하여 비로소 성립할 수 있었는가-아니면, 그 존재형태에서 관료적 성격을 가진 것인가1960년대말에는 중국 중세사 연구회를 조직하여 육조?수?당의 문화를 연구함.?지금까지 위진남북조?수?당의 귀족제의 연구는 수없이 이루어졌지만 ‘귀족’, ‘귀족제’의 개념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와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음.☞귀족이 당시의 지배층을 의미하는 용어로 보편화 되어있었기 때문논자에 따라서는 ‘정치집단’, ‘통치집단’, ‘지배집단’, ‘관료집단’으로 통칭. 서구학자들은 ‘Ruling class’ 로 사용.?물론 중국사에서는 관료제에 대한 개념도 모호하여 국가, 시기별로 구분지어 파악함.?이에 웨슬러(Weschler)는 당조 지배집단을 귀족제로 보는견해에 반대, 이를 국가권력하여 두어진 ‘국가귀족적 관료’의 관료제로 보고있음.?당대의 관료제를 일면에서 파악하고자하는 이유는 관료층의 기반이 두텁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는 곧 서민에대한 대폭적인 관로(官路)의 개방을 의미 (=귀족제의 근본적 부정)?당대는 또한 엄밀한 문서행정이 획기적으로 발달.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정비 없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사분란하게 시행.?귀족의 관료로의 유도1. 관중집단(關中集團)과 산동귀족(山東貴族)?당초의 지배층: 서위 우문태의 ‘관중본위정책(關中本位政策)’으로 규합된 관농집단(關?集團).=관농호한민족(關?胡漢民族)의 무력재지자(武力才智者)로서 이(李)씨를 옹립.☞이들은 후에 3성6부 9시의 장?차관에 영진(榮進)하는 등 지배계급에 포진하였는데, 당조 창업후인 무덕 연간에도, 태종대인 정관 연간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당초는 위진남북조 이래 문벌존중 기풍이 강하게 남아 산동귀족?관중귀족?대부귀족?강남귀족으로 병칭되었는데 이들 중 산둥귀족들이 특히 문벌을 과시함.?산동귀족이 특이한 존재였던 이유는...☞오호이래 수많은 전란속에서도 가업을 전승시키며 한족사인간의 혼인에 의해 한족 가족제도를 유지, 종족의 단결로 지위 보전을 꾀하였기 때문BUT, 산둥귀족은 왕조변혁에선 항상 소외되었음. 다만 사회적 존중을 받는 위치.2. ?씨족지(氏族志)???성씨록(姓氏錄)?의 편찬??씨족지?: 산동귀족이 사대부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데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표시.태종 또한 산동 명족은 가문의 고상함만 과시하고, 현실정치실력에 비하여 과분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며 반발.?비판의 대상은 산동 명족의 박릉최씨, 범양노씨, 조군이씨, 영양정씨 단 4성 뿐이었음.☞현실적 권위에 기초한 권력관계 대응, 신제국의 질서를 강화하려는 태종의 의도BUT, ?씨족지?의 편찬은 문벌부정이 아니고, 오히려 문벌에 적합한 질서를 부여.??성씨록?은 당시(측천무후) 지배층의 정치적 입장을 위해 ?정관씨족지?를 개편한 것.?이런점에서 ?씨족지?, ?성씨록?의 편찬은 오히려 산동귀족들을 자체출신이나 과거(科擧)를 통하여 사관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당조 지배계층인 관중집단보다 우세한 관료군을 형성.3. 과거우위 정책의 구현?당의 과거 공거(貢擧)-명경과, 수재과, 진사과가 존재 (이후 고종초에 수재과는 폐절)?귀족은 문학, 한인은 경학이라는 위진이래의 전통이 여전하여 귀족은 문학에만 치중하였으나 무후 이래 경학존중 풍조에 쐐기를 박아 문장위주의 진사과를 우대. (반면 명경과는 급격히 쇠퇴)-진사과를 우대하자, 문장에 뛰어난 산동사인들이 출사하여 고관독점.?주목해야 할 점은 위진 이래의 귀족제를 기초로 한 율령관제와 관료제로 향하는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점.☞고위 품관의 자손을 문음으로 기거(起家)하여 기존 관중집단의 관료귀족제적 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는데, 문음 기거 때문에 진사합격자와 명경합격자가 낮은 관직에 등용되어야 하는 현격한 이율배반이 일어남.?문음 때문에 귀족의 자제들이 학업을 버리고 편이한 출세만을 바라보자 끝내 문음의 존재가치는 땅에 떨어짐.☞그럼에도 귀족들은 문음출신을 대량으로 중앙관서에 진출시켜 기존 정치집단의 존속을 꾀함. 수적으로도 과거출신자는 연 200~400명, 비과거 출신자는 연 1000여명에 득관하게 됨.
    학교| 2022.12.28| 2페이지| 1,5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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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강좌중국사 요약 -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
    강좌중국사 요약 -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 평가A+최고예요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1. 머리말- 제자사상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사상 전체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전제.- 제자사상은 선진 제자서로 알려진 문헌을 통하여 접근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문헌과 저술자 개인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되기 어려움. Ex) 노자와 노장사상의 성립시기- 제자서는 개인의 저작이라기보다 한 학단의 문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편찬, 추가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제자서로 제자사상을 복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음.- 유파별 사상체계의 구성은 개인이나 학파가 논리적으로 일관된 순수한 이념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전제로 나온 분류이기 때문에 분류의 개념이 애매하다.※ ‘유가’에 속한 인물과 저작에는 일체의 비유가사상이 있을 수 없으며, 비유가계열의인물과 저작에도 유가사상이 포함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특정 주제나 분야별로 접근한 분류체계는 종합적인 접근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나, 실제로는 대부분 개인, 유파별 연구를 집성한 성격에 불과하며, 해당 분야나 주제의 논리적 체계를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재구성한 예는 거의 없다.- 지역, 문화배경으로 접근한 분류체계는 사상의 특색을 지역문화와 환경의 측면에서 설명하였으나, 지나치게 문명비판적인 점을 강조하였다.- 계급론적인 분류는 시대의 사회경제사 연구의 불충분, 그 시대의 공통과제를 간과한 결과 자료를 억지로 종합하려는 한계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2. 사학의 성립과 그 논증법- 상?주시대와 춘추전국시대의 지식 전달방법의 비교구 분상?주시대춘추전국시대지식집단씨족사회의 장로를 중심개인 및 개인의 학단을 중심(몰락귀족, 하급사인층)지식내용6예 :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씨족성원의 역할로 기대된 실제적인 기능다양한 지식과 원리교육목적씨족구성원이 되기위한 교육개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원리 모색교육방법스승(씨족장로) 중심의 일방적인 교육스승과 제자의 문답식 교육, 강설교육대상씨족 내부의 구성원유교무류(有敎無類) : 다양한 신분과 지위- 사학집단 : 개인(스승)을 중심으로 모여 교육과 생활을 함께하는 집단.※ 지식의 전달이 스승과의 문답 또는 강설로 이루어진 점, 제자들이 대부분 원지에서 선생을 찾아온 점, 문자매체(비단,죽간,목독)와 문자의 제한을 받아 독서를 통한 지식의 습득에 어려움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야 함.- 사제관계 : 사적이고, 정적인 성격이 강해짐 ⇒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가 확립, 제자의 공순한 자세가 미덕으로 여겨짐 ⇒ 선생의 강설에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움. ?- 문답체 : 변증법적인 실천의 논리지만, 형식논리의 분석을 배제 ⇒ 순수한 학문의 발전 저해- 교사(스승)들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모색하기 위해 많은 논리법칙이나 개념을 부분적으로 채용하여 전개.(p.166~167 참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선왕들의 선례를 강조 ⇒ 논리의 진실보다 전통의 권위에 중심을 놓게 됨.※ 문제점 ① : 현실개혁이 이상적인 과거의 재현을 의미함 ⇒ 진보와 발전의 개념이 결여※ 문제점 ② : 모든 가치의 궁극적인 재단자 '제왕' ⇒ 정치와 도덕의 합일론 ⇒ 권력에의한 도덕의 지배 ⇒ 대제국의 출현과 함게 관학으로 통합되어 재편성3. '인간의 발견'과 그 한계- 전통적인 상?주시대 질서의 동요① 왕권의 약화 : 주왕의 무력화로 천(天)과 귀신들의 권능과 존재에 대한 회의주의.② 씨족질서?읍공동체의 해체 : 소농경제의 성립과 집단의식 이완, 개인의 능동적인 활동의 영역 확대.③ 수공업의 발전 : 사물의 속성과 원리에 대한 인간의 주체적인 탐색 ⇒ 인간과 자연에 관계가 재정립.※〈순자〉천론편 : '천'은 그 자체의 원리로 움직이는 자연현상에 불과, 인간사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길흉화복이 좌우됨.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해야 함.- 춘추전국시대의 인간중심주의와 과학정신에 대한 탐구에 비해 당시 과학지식의 수준이 뒤떨어짐 ⇒ 신화적인 세계관과 주술은 여전히 성행, 제자사상에 큰 제약을 줌.※〈묵자〉비명편 : 개인의 화복, 역사의 흥망치란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묵자〉명귀편 : 귀신의 존재를 역설, 인간의 행위에 상벌권을 행사하는 지상신의 개념을 주장.※〈순자〉천륜편 : 기우제, 불제 및 점복 자체는 아무 소용이 없으나, 정치적인 수단으로는 유용.- 노장사상의 인간관 : 우주와 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체득한 사람(천인,지인,신인)은 무한한 정신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 그러나 과학적인 입증을 할 수 없고 이 원리를 깨닫는 것도 극소수이며 이를 타인에게 전수할 수도 없음 ⇒ 독립한 인간의 주체를 발견할 수 없는 한계- 춘추전국시대의 소농경제의 취약성으로 인해 일정규모의 집단으로 조직(전국시대의 수전제도와 향리조직)되어 통제를 받음.- 수공업도 국가의 관영산업정책으로 인해 노동주체로서의 장인의 성격이 크게 약화됨.※ 개인의 자립성 및 자율성이 제약됨 ⇒ '인간의 발견'을 자극하는 효과가 미약해짐.4. '사인(士人)의 학(學)'과 그 논리- 본고의 사인 : 지식을 배경으로 지배층의 일원으로 자임하며 정치에 참여하거나 참여를 욕구하는 사람.- 제자학 :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자,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사인(士人)의 학(學)' : 사인들이 자신의 자질을 배양하고 정치?사회적 역할을 정립하기 위한 수단.- '치자(治者)의 학(學)' : 지배?피지배의 정치?사회적 구조의 정당성 역설, 군주의 존재의미 강조.※ 사마담 : 음양가?유가?묵가?명가?법가?도가 또한 바른 정치를 실현하고 하는 점에서는 모두 같지만, 각기 다른 방법을 따르고 강조한 점이 서로 다를 뿐이다.※ 순자 : 인간은 집단 생활을 통해서만 자연을 정복할 수 있고, 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군주.※ 묵자 : 만인이 서로 투쟁하는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천자를 세워야한다.- 정치나 행정이 그 고유의 기능이 필요하다고 주장 ⇒ 치자와 피치자의 사회적 분업 강조.- 사인층이 국정의 전문가 또는 사회의 지도자로서 불가결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정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 ⇒ 사인층의 특권과 부귀 요구.- 사인층은 특권적인 지위를 계급지배의 정당성으로 합리화 ⇒ 군주권에서 연유.- 군주에 대한 피치자적 입장 : 군주권의 절대성을 제약할 수 있는 논리를 모색.※ 천하위공의 논리 : 천하는 만인의 천하이며, 군주권은 천하의 공의를 실현하고 만인의 이로움을보장하기 위해 부여된 것임으로 공공목표에 부합하는 목표내에서만 행사해야 함.- 대부분의 제자들이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를 민생의 안정과 보호로 설정 ⇒ 군주의 의무로 강조※ 사인층도 군주에게 '민(民)'의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피치자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권익을 확보하는 논리로 이용함. 전체 인민의 이익과는 관련이 적음.- 사인층이 군주의 정치에 참여하면서 피치자의 입장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 모색① 사인 자신이 출사를 주체적으로 선택? 군주의 강요나 세속적인 명리보다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의 유무에 따라 군주를 선택.? 군주와의 공치자라는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행동규범을 정립하려는 노력.② 군주가 사인의 협력을 획득하기 위해 사인을 각별히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 불신지신(不臣之臣)의 논리 : 사인은 군주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신하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군주를 보좌하는 사우 또는 빈객으로 예우받아야 함.③ 관료의 성격을 일반 백리와 사대부로 구분하여 사대부만 사인의 세계로 설정? 관료 전체를 군주의 사우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존재로 규정하게 되면 사인은 결국 피치자의 입장으로만 정치에 참여하게 됨 ⇒ 군주와 예적인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관료론을 제시.-《예기》예운편의 대동세계 : 현능자로 자임한 군주와 사인층의 계급적 지배(온정적 지배)를 정당화한 관념의 세계.5. 통일과 전쟁의 논리- 선진 제자들의 이상국가 : 중국의 통합왕조(‘천하’,‘중국’,‘구주’)- 왕도론자들의 통일의 방법 : 인정을 통한 통일(민심을 귀의시키는 군주가 천하를 통일한다)※ 당시 인민이 타국의 군주에게 귀의하는 것이 가능하였는가?※ 인정을 실천하는 군주 이외에 모든 군주가 폭군이여야만 가능한 통일론-《여씨춘추》맹추기 탕병편 : 천하통일만이 궁극적으로 전란을 종식할 수 있고, 천자는 무력투쟁의 최후 승리자로 서술.※ 무력에 의한 통일이 분열에 따른 전쟁은 종식할 수 있으나, 평화를 보장하는 선정이 된다는 보장은 없음.- 통일의 주체는 무력과 인정을 겸비한 인자(仁者)?의자(義者)여야하고, 통일전쟁은 폭군과 그 지지세력을 제거하는데 국한되어야한다는 주장 ⇒ 인군(仁君)에 의한 해방전쟁
    인문/어학| 2022.12.28| 5페이지| 1,500원| 조회(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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