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 예측 모형을 읽고1장 사회적 성취의 기반 ? 역량의 의미현대 시대에 살면서 민간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고위직으로 갈수록 인사 실패가 만연해 있다. 우리 사회는 유능함과 무능함의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당나라 시대에서부터 내려오던 신언서판身言書判라는 오랜 전통의 영향으로 외모와 학벌 등 사회적 성취와 관련 없는 외적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왔다. 인간은 저마다 ‘적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이 사회의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데 적성은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재능’이 뒷받침될 때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사회적 성취의 기반이 되는 4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능력ability 맡은 일을 감당해내는 힘,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적성aptitude 특정한 일에 소질이 있는 정도 또는 그에 알맞은 성격 유형재능talent 짧은 기간의 훈련에도 스스로 빠르게 숙달되는 능력역량competency 높은 사회적 성취를 가능케 하는 타고난 내적 성향4가지 요소 중 사회적 성취의 필수요소인 ‘역량’은 영어로 competency와 capability가 있고 단순하게 정의하면 ‘우수한 성과’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속성’이다. 우수한 성과superior performance란 조직이나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말한다.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이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 적성, 재능 중에서도 특별히 직무수행을 통해 우수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개인적 요소를 말한다. 지난 50년 동안 특정 분야나 업무에 역량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자신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안위를 떠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용기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4장 직업적 무능함이 만연한 이유현재 우리나라는 정치, 사법, 행정, 경제 등 우리 사회 전반이 서계차경序階差競의 함정에 빠져있다. 경영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하는 체계이자 프레임이고 이데올로기이다. 그래서 특정 시대의 조직 운영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현상을 해석하려면 먼저 그 지역과 그 시대의 경영 패러다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이 도래하고 혁신이 요구되면 정치든 사회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기존 패러다임의 파괴 없이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하다. 현대 시대에는 크게 두 종류의 패러다임이 있다. 하나는 영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앵글로색슨 모형자본중심형 조직이다.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 경영방식으로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을 설계한다. 다른 하나는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게르만 모형인간중심형 조직이다. 이는 분권화된 경영방식으로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로 조직을 설계한다. 이 두 가지 모형을 모두 경험했던 곳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이다. 초기 창업자들은 피라미드 구조 조직(앵글로색슨 모형)을 지향하였다. 장점으로는 특유의 빠른 속도로 시장을 선점하고 신속한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조직운영은 구성원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정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한계점 때문에 현재에는 사내에서 권력을 분권화(게르만 모형 지향)함으로써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인간과 조직에 관한 두 개의 모형5장 인재를 양성하는 구조와 시스템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국가조직을 포함한 모든 조직설계의 기본원칙을 분권화, 자율성, 네트워크 세 가지로 정립하였다.1) 분권화의 원칙분권화 : 권한을 나눈다, 즉 하나로 있던 권력을 나눈다.온전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직이 분권화된 상태를 말한다. 즉 민주화됐다는 말은 권한과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각각의 노드node로 분산된 상태를 말한다.다시 말하면 중앙이 없는 상태로 각각의 노드가 자율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네트워크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는 각 부처가 독립된 행정관청으로서 자율성을 가진 하나의 노드이며 그 부처 내의 여러 국·실장이라는 직무 역시 독립된 자율적 하위관청으로서 노드가 된다. 지방정부, 입법부,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부 기관은 각 노드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다른 노드와 연대solidarity와 보충subidiarity을 통해 서로 협력한다. 행정 행위의 모든 절차와 활동이 투명하게 공유되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관계자들이 다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조직 내의 각 직무가 그 존재목적, 업무범위, 재량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면 민주화된 조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각 직무담당자가 스스로 판단해 행동할 수 있는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그 역시 민주화된 조직이 아니다. 그러므로 분권화란 중앙 또는 일인이나 소수의 지배와 통제가 없는 상태, 지시와 명령이 없는 상태, 나아가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분권화된 민주주의다. 우리나라에 이런 상태의 조직이 있는가? 단언컨대 없다. 우리는 피라미드 구조로 설계된 조직 속에서만 살았다. 관념 속에서만 상상할 뿐이지 현실에서 전혀 경험할 수 없다.
지방회생을 읽고‘도쿄에서 번 돈을 지방으로 돌리는 것은 이상하다.’현재 도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내가 도시에서 힘들게 벌어서 낸 세금 및 벌이가 내 지역이 아닌 지방으로 들어가지?’ 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정말로 이 ‘벌이’는 도쿄에서만 생긴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곳은 지방이다. 다만 그 본사가 대부분 도쿄에 있을 뿐이다. 상품의 제조, 조달, 유통 등 각 지역과 연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세금이 지방으로도 적절하게 분배돼야 전체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지방창생에서는 지방의 ‘수익력’이 강조되는데, 그중에서도 관광은 사업 전개의 큰 기둥이다. 인바운드Inbound tour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라는 것은 정부 방침이 되어 지방 관광이 사업화되고 있다. 확실히 관광객이 한 사람이라도 늘면 그만큼 지방으로 들어오는 재화도 늘고 경제도 다소 풍족해진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할 때 무분별한 관광사업을 장려하는 것이 과연 지방에 어떤 이익을 초래하는지 의문이다. 무분별한 관광산업에서 생기는 이익의 대부분은 콘텐츠를 개발한 기업, 교통회사 등에 자금이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구조가 바뀌긴 어렵겠지만 현재로서는 이익을 많이 얻은 곳이 이익을 조금밖에 얻지 못한 곳에 어떤 형태로든 그 이득의 일부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전체 순환이 성립하는 것이다.수도권에서 본 지방창생‘인구감소와 도쿄일극집중을 막는 것이 지방창생의 목적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수도권 지역이라고 해서 전부 인구가 증가하는 게 아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곳은 교외 주택단지(신도시, 뉴타운 등) 그것도 고속 이동이 가능한 교통수단을 새로 개설한 장소뿐이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것만은 아니다. 1965년 전후로 개발된 초기의 교외 주택단지에서는 현재 빈집과 고령자만 살고 있고 더 이상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책들로 풀이된다. 또한 생활 수준 향상과 인구감소가 겹쳐 일본사람들은 더 이상 3K노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손을 예전에는 지방에서 온 사람들로 보충했지만 현재는 외국인에게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 진행 중이다.의존 사회로써의 도시‘도시란 의존사회다’ 도시는 농·산·어촌으로부터 인구 유입, 농산품 등을 의지해 왔다. 이것은 도시가 있고 국가가 있기 때문에 농·산·어촌도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 중앙/지방과 도시/농촌의 관계는 모두 의존적이며 그것은 나쁜 의존이 아니었다. 보다 좋게 표현하면 공생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로 나쁜 의존으로 바뀌어버린 것 같다. 지방/농촌에서도 중앙/도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도시에 과잉 의존하게 되어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게다가 경제 움직임만이 폭넓게 관찰되고 주가와 재정수지 등이 매일 숫자로 표시되어 농촌/지방의 의존만 특히 눈에 띄어 지탄받는다. 그것이 결국은 ‘도쿄가 번 돈을 지방으로 돌리는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음에 틀림없다. 앞으로는 좋은 의존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와 농촌 각각 안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국가도 성립하지 않고 도시도 형성되지 않는다. 서로 의존하고, 서로 지탱하며, 서로 보완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분업이 행해지고 국가적으로는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이다.
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1부 칸트의 인지 혁명 ? 마음 모델의 혁신 「순수이성비판」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비판 철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칸트의 3대 저작에는 모두 비판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칸트적인 의미의 비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비판critique 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어 크리네인 krinein 에서 유래한다. 이는 자른다, 특히 음식의 썩은 부분과 썩지 않은 부분을 가른다는 뜻을 지닌다. 칸트의 비판철학에는 이런 어원적 의미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인식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인식의 영역과 사유의 영역,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등을 나누는 것, 한계를 그리는 것이 칸트적 의미의 비판이다. 거기에는 또한 해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순수이성비판」 의 대부분은 우리의 마음을 가르는 과정, 의식을 해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왜 가르고 해부하는가? 의식 안에 들어 있는 인식능력을 찾아내고 그 능력의 작동원리와 한계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칸트는 인식과 관련된 모든 물음을 마음의 분석을 통해 해결해간다. 요즘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마음 이론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일체가 오로지 마음 작용에 따른 이미지일 뿐이라는 불교의 유식 이론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칸트의 의식 이론이다. 그만큼 칸트의 의식 이론은 오늘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정 정보가 스크린에 구현되는 절차를 밝히기 위해서는 그 원리인 소프트웨어를 분해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우리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형식적 원리가 의식에 선험적으로 내재한다는 전제 아래 칸트는 인식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의식에 대한 치밀한 해부작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의도는 「순수이성비판」 이라는 제목에 압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2부 칸트의 윤리 혁명 ? 덕 윤리에서 의무의 윤리로 「실천이성비판」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경탄과 전율에 빠지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저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볼수록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먼지보다 작고 가벼워진다. 광대한 우주로 생각이 확장될수록 나의 존재는 한없이 무에 가까워진다. 동물적 피조물로서의 나는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안의 도덕법칙은 이성적이고 예지적인 존재자로서의 나를 일깨우며 영원한 세계에 대한 확신을 드높인다. 나는 광대무변한 우주 앞에서는 한없는 유한성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내 안에 있는 도덕법칙을 생각할 때면 사명의 부름을 듣는다. 저 우주만큼 커다랗고 숭고한 소명 의식 속에서 전율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내 안의 도덕법칙은 자유를 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유가 나를 자연적 사물과 구별되는 인격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를 정신적으로 품위 있게 해주는 것, 신성불가침의 고귀한 인격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자유다. 내 안의 도덕법칙은 내 안의 자유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다. 자유는 나를 한없는 높이의 소명 의식으로 고양해 광대무변한 우주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인류 전체와 함께 이룩할 도덕적 사명에 헌신할 용기를 준다.3부 칸트의 미학 혁명 ? 근대 예술의 정초 「판단력비판」 전반부우리는 어떤 것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폭소를 터뜨릴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영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광대한 은유적 연락망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자극하고 공명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상을 낳는 것이다. 이런 생동하는 관념의 운동은 어떠한 언어로도 도달할 수 없고 어떠한 개념으로도 포착할 수 없다. 그것을 쫓아가려는 지성의 노력을 전적인 수동성에 빠뜨리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감성적 이념은 이런 사태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이념이라 불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 이유는 그것이 개념을 초월한다는 점, 어떤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개념의 손을 벗어나 모든 분류, 규정, 설명을 거부하되 다시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줄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는 문제로서 다가온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념이다. 이론 이성이나 실천 이성에게 이념은 현상계 저편의 예지계에, 다시 말해서 초-감성적인 세계에 설정된다. 그러나 이념은 예술작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같은 마술적인 사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념은 이제 초-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이다. 그런 감성적 이념 앞에서 판단력은 한없는 반성에 빠진다. 이때 반성이란 감성적 이념이 제기하는 물음에 부응하여 어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념은 감성적이든 초-감성적이든 언제나 새로운 입법을 요구하는 어떤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문제 앞에서 판단의 주체는 규정하기를 멈추고 반성한다. 인식하기를 멈추고 사유하기 시작한다.4부 칸트의 생태 혁명 ? 기계론에서 유기체론으로 「판단력비판」 후반부17세기 이후 근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모든 자연 현상이 기계적 인과법칙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칸트는 그런 기계론적 자연관에 유기체적 자연관을 마주 세운다. 「판단력비판」 전반부가 아름다운 것을 중심 주제로 한다면, 「판단력비판」 후반부는 살아 있는 것을 중심 주제로 한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 합목적성을 원리로 한다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 합목적성을 원리로 한다. 고대 자연관을 이론적으로 대변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4가지 원인을 통해 설명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집을 짓고자 할 때 설계도는 개념에 해당하는데, 이를 ‘형상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형상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것이 ‘목적인’이다. 집을 설계할 때는 그 집의 용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주거용인지 사무용인지 알아야 설계가 시작될 수 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좋은 집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목적인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형상보다 더 우월한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흙이나 목재 같은 재료는 ‘질료인’, 필요한 노동력은 ‘작용인’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사물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때는 이상의 4가지 원인에 따라 고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미 충분히 암시한 것처럼 이 4가지 원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인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개체에 대하여 그것의 정체성을 보존해주는 것이 종이나 형상이라면, 그 형상이 자연 전체 속에서 존재하는 의미나 변화해갈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바로 목적인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씨의 인생정원을 읽고채소밭으로의 도피“잡초라는 표현은 사실 잘못된 거야. 전혀 쓸모없는 존재라는 말로 들리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 익초라고 해야 옳지.” “어디에 유익해서 익초라는 거죠?” “두엄더미에 들어가잖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이웃 사유지와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생 울타리 부근에 나무판자로 만든 커다란 통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저곳에 묵혀두면 나중에 아주 귀한 퇴비로 쓸 수 있지. 쓸모없어 보이던 것이 그렇게 쓸모 있는 것으로 변하는 거야. 두엄더미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되거든.” “비료를 사서 쓰면 되죠.” 곤잘레스 씨는 입을 딱 벌리며 고개를 들었다. “자연에서 거저 구할 수 있는 것을 뭣 때문에 굳이 돈 주고 산다는 건가?” “직접 만든 퇴비가 상점에서 산 것만큼 좋다는 말씀인가요?” “당나귀 똥과 섞으면 최상급의 자연 친화적인 거름이 돼.” “그럼 이 채소밭은 자연에서 나온 퇴비만 쓰시는 건가요?” “물론이지. 살충제나 제초제도 전혀 쓰지 않는다네. 오직 자연이 내게 주는 것만 사용해. 거기에 내 두 손이 더해지는 거야. 언제나 그렇게 해왔어. 그런데 이제는 이 근방에서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네. 내 이웃들을 보게. 저렇게 나무니 식물들에 죄다 독을 뿌려대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는 다들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어. 그런데 요즘은 자연이 적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망치고 있더군.” “왜 그렇게 변한 거죠?” “사람들이 게을러진 탓이지. 모든 걸 쉽고 빠르게만 해결하려 들어. 물론 잡초를 뽑는 대신 제초제를 뿌리면 편하기야 하지. 문제는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파괴된다는 거야. 흙, 식물, 그러다 결국에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게 죽고 말아. 사람도 마찬가지야. 사람도 만물의 일부니 말일세.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파괴되는 게지.”독을 뿌릴 것인가, 사랑을 뿌릴 것인가“밭일의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다 좋지. 땅 파는 일, 채소를 심고 수확하는 일, 모두 다 내게는 즐겁기만 하다네.” 곤잘레스 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밭일이 영감님에게 뭘 가져다주나요? 밭일이 영감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그러니까 영감님의 삶에 어떻게 유익한지 여쭤본 거예요.” 곤잘레스 씨는 그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는 잡초를 몇 개 뽑아냈다. 그러고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제일 중요한 건 내게 먹을 것을 준다는 사실이야. 채소를 돌보고 물을 주며 사랑으로 키우는 대가로 감자와 채소, 약간의 과일까지 얻게 되지. 다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날마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도 같거든. 그것도 평생 말이야.” 이것이 니클라스가 듣고자 했던 대답이었다. 밭이 주는 교훈과 메시지를 알고 싶었다. “수십 년 동안 밭으로부터 무엇을 배우셨나요?” “모든 걸 배웠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건 밭에서 배운 거야. 예컨대 조바심을 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도.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도 진리라네. 나무를 잡아당긴다고 빨리 자라지는 않거든.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어. 나무에게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으니 아주 천천히 자랄 거야.” 니클라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금껏 그는 느림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야 했다. 교통, 경력 쌓기, 심지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세상이 몰락하기 시작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무슨 일이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나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의미 있는 뭔가를 창출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 모든 일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조바심을 치며 고통받게 돼 있어.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 들다가 생명체의 조화로운 리듬을 망가뜨리고 말지.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게 있다네. 자연도 그중 하나고, 미래와 행복도 마찬가지야.”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니클라스는 자신이 농작물을 키우는 동안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는지 새삼 떠올렸다. 예전의 그는 유기농 채소에 붙은 가격표를 보며 투덜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작물을 가꾸는 데 얼마나 큰 노고가 들어가는지 직접 목격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건강하고 행복한 식물 한 포기에 들어간 시간과 애정의 가치는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그러나 보기 좋게 포장된 채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상품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음식이 슈퍼마켓이 아닌 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어쩌면 개개인이 들판이나 집 뒤뜰, 하다못해 발코니에라도 채소를 키우는 일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 다시 말해 음식, 흙, 내면의 평화 등과 다시금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씨는 자연과의 결속이 없는 사람은 광기에 빠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언젠가 모두가 광기와 질병에 사로잡힌다면 건강하고 살 가치가 있는 세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니클라스는 정원의 혁명이 인류에게 유익하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눈먼 광기를 몰아내고 현실에 눈뜨고, 새로운 이상과 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저급한 소비행태와 치열한 경쟁, 무한 성장은 사라지고 겸손함과 협동, 지속가능성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우리는 최신 스마트폰에 열광하기보다는 단순한 삶에 대한 열정을 일궈야 한다. 더 많이 나눠야 한다. 행복과 만족감을 돈으로만 구할 수 있다거나 심오한 이론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탐욕이 아닌 관대함을, 전쟁이 아닌 교류를, 단일 품종이 아닌 다품종을 추구해야 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사용하더라도 정과 이성을 잃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달리 어떤 세상이 돼야 한단 말인가?
슬로 다운을 읽고1장 폭주 열차: 제동이 걸리다지난 160년 동안 지구상의 인구는 두 배에서 두 배, 또 거기서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짧은 세대 동안 이렇게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겪은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인구 증가 속도가 줄고 있다. 요즘은 인구증가율보다 슬로다운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 슬로다운이라는 말은 1890년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앞으로 계속 나아가긴 하지만 전보다 더 천천히 가는 것을 뜻한다. 지난 1, 2세기 동안 슬로다운이라고 할 만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더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슬로다운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면 지금 직면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가정,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이 파괴될 수 있다. 우리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가속페달을 밟는다면 재앙과도 같은 결과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4장 데이터: 더 이상 새로운 정보는 없다2018년에 포브스가 이런 보도를 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면 매일 250경 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그런데 이 속도는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더 빨라지고 있다.” 경은 10의 16제곱이다. 바이트는 단어의 한 글자 같은 256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다. 이 책에서 읽고 있는 각 글자들은 내가 지금 치고 있는 컴퓨터에서 바이트의 형태로 저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추정해 보건대, 우리는 매달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80억 자에 해당하는 아주 긴 글을 각자가 쓰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데이터들은 그 내용으로 볼 때 인류 지식의 진보에 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 쓸모없거나 중복되는 것들이다. 상당수는 이미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제작된 복제품이다. 이처럼 전 세계 정보의 양이 실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지 아닌지 이해하게 됐다면, 이제는 유용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 완전히 쓸모없는 정보를 구분해야 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정보는 쓸모없다. 나머지 정보라 해도 아주 조금 유용할 뿐이다.5장 기후: 산업, 전쟁, 탄소1790년대에는 이전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대기로 흘러들어 간 것과 비슷한 양의 탄소가 매년 배출됐다. 이것이 산업화의 시작이었다. 석탄과 다른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탄소 배출이 가속화됐음을 측정할 수 있는 첫 신호가 됐다. 당시 급격하게 성장하던 곳은 주로 유럽,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곳이 영국이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1810년까지 8년 동안 배출된 공해물질이 1790년대 전체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배출된 양보다 더 많았다. 이후 1816년까지 6년 동안 배출된 양도 이보다 많았다. 이후 6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매년 배출된 탄소량은 6배를 넘어섰다. 그러고도 속도는 계속 빨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14년~1918년 일어났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량의 면에서 그랬다. 1939년~1945년 사이 벌어진 갈등은 산업 전쟁이었다. 탄약과 폭탄, 탱크, 전함 등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실제로 세계 전쟁이었다. 지구의 거의 대부분이 영향을 받았다. 1929년 글로벌 탄소 배출량은 한해 42억t으로 정점을 찍었다.6장 기온: 재앙과도 같은 예외거의 모든 것이 슬로다운하고 있지만 딱 하나만 그렇지 않다. 계속 오르기만 하고 있는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온도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몇 년 동안, 또 몇몇 장소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 총량 자체는 계속 늘었지만 증가 속도는 줄었다. 여전히 가속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대부분이 실제로 수치가 떨어지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속도를 줄이고 있다. 이처럼 감속하고 있는 것들에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올렸던 유용한 정보의 양도 포함된다. 우리가 받는 대출액의 규모, 구입하는 책의 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아이들 수의 증가세도 감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구 온도만큼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글로벌 평균 기온이 1.5도 오른다고 해서 세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와 우리가 받게 될 피해는 온도가 상승하는 정도보다 훨씬 클 수 있다.7장 인구: 맹렬한 기세의 슬로다운일부 인구통계학자들은 인구의 슬로다운이 몇십 년 전 시작됐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슬로다운이 얼마나 빨리 일어나고 있는지는 최근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됐다. 지구 전체적으로 사람 수를 다 세었을 때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슬로다운이 더 빨리 시작됐고, 특히 이들 나라의 몇몇 도시에는 저출산 문제가 일찌감치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변화의 순간, 국제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968년 무렵이었다. 이제는 슬로다운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가 명백해졌다.10장 진보: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불안정한 시기, 지속적인 변화의 시기에는 정상적인 것이 없다. 우리가 익숙해하는 것 가운데에서도 정상적인 것을 찾아낼 수 없다. 최근 다섯 세대 가운데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세대에 속해 있는 우리들은 변칙적인 세계를 살았다. 이를 알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다른 장소에서의 변화 속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몇몇 장소는 다른 곳들보다 변화의 속도가 빨랐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곳에서 슬로다운이 시작됐다.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그리고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로 전환되는 것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일어난다. 모든 곳에서 똑같이 끝나지도 않고, 변화의 궤적도 모두 다르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보려면 지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안정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각각의 추세들은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드러난다. 거의 모든 곳에서 아이를 하나 혹은 둘만 낳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들도 이제 살아남을 확률이 보편적으로 아주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