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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위대한 개츠비 독후감 서평 스콧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독후감 서평 스콧피츠제럴드
    F. 스콧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닉 캐러웨이의 관점에서 개츠비와 그의 주변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관찰자적 서술로 담아낸다. 세계 1차 세계대전 이후 과열된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저마다 하나씩 아메리칸 드림을 품었다.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 그것이 곧 개츠비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바다. 개츠비의 종말처럼 아메리칸 드림에 현혹된 사람들의 끝에 남은 것은 허황과 사라진 믿음이었다. 사랑했던 연인 개츠비와 데이지는 이별 후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우연히 만난다. 그들의 만남의 다리가 된 사람이 바로 닉 캐러웨이였다. 닉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하게, 편견없는 시선으로 개츠비라는 인간의 폄하된 낭만을 알아봐준 친구였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는 파멸로 끝나고, 데이지는 자신의 남편 톰과 원래의 인생을 다시 살아간다. 닉은 개츠비의 위대한 낭만을 기억하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예일 대학교의 풋볼 선수로 활동한 톰은 데이지의 남편이다. 그는 폭력적이고 거만하다. 아내 데이지를 두고 정부와 남몰래 떳떳하지 못한 유희를 즐기는 등 극히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데이지 역시 남편과 결이 다르지 않다. 작품에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에 관해 두 사람이 식사자리에서 생각하는 바를 나누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여기서 톰은 백인을 지배 인종이라 칭하며 다른 인종이 세계를 제패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데이지는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백인이 아닌 인종들은 꾹꾹 밟아 버려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톰과 데이지, 이 두 사람은 재산을 과시하고, 물질적 가치와 향락을 쫓는 거만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개츠비의 기억 속, 그가 사랑했던 과거의 데이지는 현실이 아닌 이상적 이미지로 왜곡된 상태였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라는 사람은 사랑, 이상, 꿈, 그의 삶을 지탱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개츠비의 이러한 이상은 결국에 무너지고 만다. 데이지는 그의 이상 속 존재하는 구원자도, 순수함도, 희망도 아니었다. 이상이 무너질 때 사람은 비로소 파멸한다. 개츠비의 육체적 죽음과, '데이지'라는 그의 이상 중 무엇이 먼저 무너졌는지 알 수 없다.데이지는 머틀을 차로 쳐 죽이고 만다. 머틀의 남편 윌슨은 아내를 잃고 큰 상실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 뺑소니범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처음에 그는 톰을 찾아 간다. 톰과의 대화 후에 윌슨은 뺑소니범이 개츠비라는 오해를 한다. 톰은 윌슨의 분노 앞에 침묵한다. 증오하는 개츠비를 남의 손을 빌려 죽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남몰래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사실 머틀을 죽인 사람은,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은 데이지였다. 그러나 데이지가 아닌, 개츠비가 윌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희생 앞에 침묵한다. 그녀는 개츠비의 죽음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 사랑은, 이상은, 믿음은 힘이 없었다. 개츠비의 죽음은 데이지의 배신으로 더욱 비극을 맞는다.왜 책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일까? 사랑이나 이상 따위를 믿는 부자, 개츠비는 어리석었다. 낭만적인 사람이었고,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지만 낭만은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병폐로 취급된다. 산업사회에서 낭만은 힘이 없다. 그럼에도 개츠비는 희망과 꿈, 순수함을 가지고 자신이 사랑한 이상을 용기있게 쫓았다. 스스로 낭만이라는 약점을 택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약함을 스스로 택한 개츠비의 낭만이 그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허락한 것이 아닐까.그러나 또 한가지 드는 의문은 이 소설에서 진정한 사랑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라는 것이다. 정부와 아내를 동시에 기만한 톰은 아닐 것이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아니면 그는 애증의 관계인 남편 톰을 더 사랑했을까. 개츠비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순정을 겁 없이 쫓은 남자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개츠비는 어리석고 바보 같지만 동시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허락 받았다.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과 혼돈의 시대에 흥분한 이들의 이야기와 갈등을 다룬 책이다. 작가의 인생을 읽고 나니 개츠비와 작가가 겹쳐 보였다.
    독후감/창작| 2023.04.13| 2페이지| 1,0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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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제임스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독후감
    제임스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독후감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를 읽고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필명이었던 스티븐 데덜러스와 흡사한 이름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이다. 자아를 탐색하는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은 자전적 소설의 형태다. 작품의 배경은 아일랜드가 독립운동하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 가운데 정치 사상이 대립했던 가족들의 갈등이 작품에 등장한다. 스티븐은 그가 속한 가정, 학교, 사회 속에서 자신의 창조성과 자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클롱고우스를 다니던 유년기부터 예수회 명문 학교 벨비디어 칼리지로 편입하고 이후 사제라는 진로를 잠시 생각하지만 결국에 포기한다. 그는 사제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억압의 사회에 갇힌 지혜로운 소년이 자신의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 모색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에 스토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아일랜드 독립 당시에 독립을 지지한 세력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국가적 내분은 가정의 내분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외부 갈등 상황을 목도하며 섬세한 성품을 지닌 주인공 스티븐 역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예수회 학교에 들어가지만 또래와 어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스티븐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말하길, 그 역시 아이들의 흥겨운 놀이판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스스로 음울한 존재임을 깨달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대신에 그가 선택한 것은 고독의 기쁨이었다. 철저히 스티븐이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읽어낼 때 주인공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래에 비해 성숙한 감수성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종교의 요구에 부담을 느끼고 일찍이 고뇌한다.성장과정에서 그는 점점 활달한 성격으로 바뀐다. 그러다 사창가를 가는 등 도덕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티븐은 고해성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개선했다고 생각한다. 자문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일랜드에서 예수회 학교를 다니며 자란 소년에게 종교란, 신의 존재랑 그의 가치관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였다. 그러던 와중에 교무주임 신부는 스티븐에게 사제로 진로를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소년의 인생에서 사제의 근엄한 목소리는 어느 정도의 무게였을까.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이 단락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사제는 스티븐에게 말한다. 사제라는 소명을 받는 것은 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가장 큰 영광이노라고. 엄청난 권세. 과연 이렇게 사제의 권위를 칭송하는 사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했을까. 추상적 언어로 가득한 그의 말은 읽는 내내 거부감이 느껴졌다. 사제라는 인물은 신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라기보다 권위를 앞세워 자신을 포장하는 일종의 권력과 폭력으로 느껴졌다. 결국 스티븐은 사제로 진로를 정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 회의감을 느낀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역시 그의 목을 옥죄는, 사상이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다. 스티븐은 자신을 찾기 위해 독자적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국적, 종교, 가족 등 외부의 어느 요소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 그는 떠난다.자유를 찾아, 사회적 규율을 버리고 자아를 택한 스티븐을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배신자.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대신에 그를 비난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코 그것에 묶여 자신의 새로운 성장 앞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한 소년의 내적 성장을 차근히 따라가는 과정 속에 느낀 것은 결국 자신 안에 모든 인생의 답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어른은 그에게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자유는 그래서 더 가치있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니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예술가란 직업은 특별하다. 사제가 아닌 예술가를 택한 스티븐, 그는 자신의 길을 창조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선택한 예술은 사회나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였던 것이다. 때문에 스티븐은 예술가가 될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의 인생에 한 발 짝 다가선 기분이었다.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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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읽고용의자의 죽음으로 30년 전 종결된 살인사건이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하고 들고 나서며 사건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한다. 신뢰란 무엇인가, 선한 거짓말은 존재하는가. 나비효과에 의한 기막힌 우연을 소설에서 다룬다. 서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살인사건의 피고인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 사건의 진상에 뒤틀린 오류가 있음에 동으하고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협력한다는 설정이다. 나카마치라는 형사는 두 사람의 협력에 대해 마치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백조와 박쥐의 관계와 같다고 소설에서 평한다. 선과 악은 때로 그 가장자리를 맞대고 있어 명백하게 선을 그어 잘라내는 것이 어렵다. 회색지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딜레마는 범죄에 서사가 붙는 것에 무감각해진다는 점이다. 허구임에도 범죄는 범죄다. 마음 한편으로 주인공 범죄자를 변호하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죄 추리소설에서 펼쳐지는 서사가 그토록 매력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통 추리소설에서는 범죄자와 피해자, 그 당사자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이 소설은 주변인물들, 유족 등 남겨진 이들이 겪는 상처와 슬픔이 소설의 주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선과 악은 상대적이다. 회색지대의 딜레마를 깊이 파고든 작품이다.소설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은 구라키 다쓰로라는 인물이었다. 친절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사람. 그렇다면 그는 선한 사람일까. 구라키 다쓰로는 아사바 모녀, 30년 전 종결된 살인사건으로 긴 시간 고통을 받은 그들의 슬픔에 자신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거짓으로 자신이 30년 전 범죄자였다는 거짓말을 한다. 또 한 명의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시라이시의 죽음까지. 자신이 죽이지 않은 2명의 사람을 죽인 범죄자로 거짓 자백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타적 행위였다. 비록 그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설정이 있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거짓 누명으로 불명예 속에 살아야 했던 아사바 모녀의 슬픔에는 공감하면서 왜 자신의 선택 뒤에 남겨진 죄 없는 제 아들의 고통은 미리 헤아리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 점에서 구라키 다쓰로는 좋은 사람인가?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선악 판단은 이토록 애매모호한 지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복수를 위한 범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일정 부분 자의적인 선악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때로는 명백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해석되는 사건도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감히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주체일까. 소설을 읽으며 선과 악, 회색지대, 착한 거짓말은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해 계속해 고민하고 나만의 답을 내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책을 놓기 어려웠다. 빠르게 읽어낸 책 중 기억에 남는 또 한 가지의 키워드는 신뢰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자백함에도 구라키 다쓰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아들 쿠라키 가즈마는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의 자백에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최선을 다한다. 아버지는 절대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설령 그가 가족일지라도 완벽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그토록 신뢰한 적이 있는가, 타인에게 나는 온전한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던가. 내 삶에 대한 성찰도 뒤따랐다.피고인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협력한다는 매력적인 서사 아래에서 나비효과라는 키워드를 기억하며 글을 읽는다면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선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결론도 나왔다. 나비효과에 의해 그 선한 의도는 변질된 결과로 다른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직과 신뢰라는 가치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색지대에 대해 뒤따르는 고민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후속작을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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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알베르 까뮈 페스트 독후감
    알베르 까뮈 페스트 독후감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읽고죽음은 곧 삶의 숙명이다. 불가피한 운명 속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인간이 마주하는 숙명적 질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을 의미하지 않는다. 질병, 전쟁, 폭력 등 부조리한 현실의 고난의 총체를 상징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페스트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를 지탱하게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이야기한다. 기자 랑베르, 성직자 파늘루 등 소설에서 페스트를 마주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목도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떠올리게 한다. 의사 베르나르 리유의 시점에서 연대기의 형식으로 오랑 시에 발생한 페스트를 목도하고 기록한다. 페스트는 곧 인생이다. 전염병이 끝나도 우리의 삶에는 또 다른 형태의 죽음과 폭력이 남아있다.소설의 배경인 오랑 시는 현대사회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권태에 절어 장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 사람들은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사랑을 나누고 쾌락과 젊음을 칭송한다. 권태로울 정도로 평화로운 오랑 시에 갑작스러운 절망이 찾아 온 것은 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피를 토한 채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은 쥐의 사체를 의사 리유는 발견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무감각한 대응을 보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종기가 몸에 난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다가 죽음에 이르자 더 이상 방관한다고 끝날 일이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된다. 의사 리유는 오랑 시에서 페스트 환자를 치료한다. 그것은 그의 숙명이자 의무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성실한 의사로 묵묵히 일을 한다.코로나 당시의 사회가 소설을 읽는 내내 겹쳐보였다. 코로나로 혼란한 시대 속에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과학적인 방법이든, 종교적인 사고로든 코로나의 원인과 이것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끝없는 토론을 나누었다. 그러나 목적을 알 수 없는 토론의 끝에 우리가 얻은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결국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떤 방법으로든 질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것, 삶이 주어졌다면 끝내 살아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진리는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칭찬을 받을 만한 것 따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나온 결론에 불과했다.페스트가 오랑 시의 시민들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또 한 가지를 더 꼽자면 그것은 육체적 존재와 애정의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페스트가 끝나고 격리된 사람들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다. 잃어버린 일상에 포함되는 것은 단순히 건강한 신체 따위로 요약되지 않는다. 관계, 사랑, 애정, 그 모든 교류의 단절. 그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21세기 사회 속에 보이지 않는 페스트는 무엇일까. 페스트는 첫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일종의 메타포다.소설에서 말하길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내면에 페스트를 지니고 살아간다.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병독을 품고 살아가는데 그 삶의 숙명 속에 우리는 끊임없이 피로를 느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병독을 퍼트리지 않기 위해, 또 스스로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아둥바둥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타인에게 페스트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소설 속 타루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타인의 죽음에 묵인하는 것, 타인을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것, 사회의 폭력에 침묵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페스트의 일종이다.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페스트의 숙명 속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정하지 않고, 끊임 없이 발버둥치며 인생이란 그런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삶을 마땅히 살아내야 하며, 결코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페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인간의 부조리를 탐구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는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만든 책으로 기억된다.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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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나쓰메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독후감
    나쓰메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독후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읽고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일본 사회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속 주인공 고양이는 위선과 개인주의로 점철된 인간사회의 모순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한다. 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사회를 통찰한다는 것, 허풍과 잘난 체하는 인간의 부끄러운 속내를 미물에게 들킨다는 것은 우스꽝스럽지만 고양이가 전하는 교훈과 대사 속에 뼈가 있다. 소설의 첫 대목에서 고양이는 서생이라는 제 주인은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영악한 족속이라 평한다. 많은 고양이를 만났으나 이런 등신 같은 족속은 없었노라 하는 녀석의 넋두리가 한 편으로는 마냥 귀엽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인간과 고양이를 비교하는 대목도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인간은 이기주의에서 나온 공평의 의미를 고양이보다 잘 알고 있을지라도 지혜의 면에서 보건대 고양이보다 한참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을 쏟고, 만사를 복잡하게 여기는 인간의 사고가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법 하다. 인간에 비해 고양이는 단순하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나쁜 의미는 아니다. 먹고 싶을 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은 생각컨데 '자유'다. 또 다른 의미로는 '솔직함'이다. 반면 고양이의 입장에서 제 주인과 같은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존재다. 인간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세상에 차마 보일 수 없는 제 속내를 어두운 골방에서 뱉어내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이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다.고양이의 주인은 위장병을 달고 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남들에게 숨긴다. 고양이는 주인의 고통을 비롯해 각종 희노애락을 유일하게 훔쳐보는 친구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미물은 인해한다. 위장병을 혼자 걱정하면서 남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하는 주인을 보고 고양이는 오기를 부린다며 비웃는다. 주인의 이런 행태는 변명을 해서라도 제 체면을 지키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욕구를 거스르면서까지 대외적인 평판을 중요하게 여길 정도록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존재란,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숙명 속에서 자신의 진솔한 모양을 감히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이들이라는 의미기도 하다.작가 소세키는 일본의 천황제 중심의 국가주의 속에 종속된 일본인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이 작품을 썼다. 지독한 개인주의 속에서 윤리적 가치관을 상실하고, 위선과 겉으로 교양을 과시하는 것에만 갇힌 사람들을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비판이 주로 향한 대상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돈을 제일 중심으로 하는 물질주의적 사회 속에서 다른 윤리적 가치를 뒤로 밀려나기 일쑤다. 소설은 변화하는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고고한 척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사회와는 구별된 체 교양스러움을 과시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풍자와 해학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일본 소설을 하나 꼽자면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주저 없이 고를 것이다.작가의 허무주의적 태도는 소설의 전반에 나타난다. 고양이가 인간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곧 작가의 시선이다. 인간의 술을 먹었다가 실수로 물독에 빠져 죽는 고양이의 인생, 그럼에도 달관적 태도를 보이는 고양이의 종말은 양가적 감정을 들게 만든다. 덧없는 인간사를 비판한 고양이의 유쾌한 재치, 그러나 그 고양이의 끝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때 인간과 고양이는 완전히 구별된, 다른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책의 말미를 읽어갈 쯤에는 주인공 고양이가 인간의 위선적 사고를 일부 모방하는 듯한 느낌 역시 들었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기발한 재치와 세밀한 묘사가 일상적인 사건들과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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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다자이 오사무 사양 독후감
    다자이 오사무 사양 독후감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고시대의 패망 속에 낙오자로 사는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주변의 시선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몰락한 자아일 것이다. 과거의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주인공 가즈코와 나오지는 일본의 구시대 귀족, 일본의 패전 아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화족 가문의 사람들이다. 소설은 이들의 삶이 현실을 마주하는 가운데 어떤 대응을 하는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지독하게 슬프고 비극적인 소설이었다. 인간이 망가지는 것이, 인생이 파멸의 나락 가운데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에 대해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이 소설은 가즈코라는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 이를테면 어머니나 남동생 나오지 등에 대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다룬다.돈이 없다는 것은 몰락한 귀족들에게 아마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비참한 지옥과도 같았다고 가즈코는 소설에서 말한다. 인상 깊은 구절이 많았는데 그 중 몇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학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문이란 허영의 별칭이라고 소설에서 말한다. 패망한 사회 속 몰락한 귀족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자살이라는 행위가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원책으로 묘사된다. 일본 사회에서 자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당시 시대에서 어떤 의미였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라는 인물 역시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약 중독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오지의 마약 중독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그 근원을 물음할 때 결국 그 역시 일그러진 자아를 인정하지 못하고 도피한 패배자였음을 알게 된다, 가즈코와 남동생 나오지는 몰락한 시대 속에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이후의 서사의 전개 속에서 그들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나오지는 자살을 택한다. 그는 결국 죽음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 그러나 가즈코는 일종의 혁명가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소설 중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향한 외사랑을 했노라고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과 혁명이라고 말한다. 가즈코는 결국 시대 속에 변모함으로써 생존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동생 나오지와도, 그녀의 어머니와도 다른 캐릭터다.가즈코가 사랑했던 우에하라라는 인물과의 관계도 기묘하다. 그는 유부남이었다. 우에하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우에하라의 부인은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가 사랑했던 여자였다. 끔찍하게 뒤얽힌 관계 속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우에하라는 가즈코에게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들은 아주 잠깐의 행복을 함께 누렸다. 그러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는 자살했던 것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누구도 인간으로부터, 관계로부터 구원받는 인물은 없었다. 그것이 파멸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허례의식을 내려놓지 못한 가족들, 그들은 바로 가즈코의 가족들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몰락한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도피한다. 죽음으로 도피하고, 고작 하루의 사치를 더 누리는 것으로 불행을 미루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자신들 앞에 있었던 어떤 불행도 피해갈 수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패전의 일본 현실 속 시대 분위기와 작가 특유의 문체와 스타일이 묻어난다. 사양 역시 인간실격처럼 지독하게 슬프고 고독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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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히가시노 게이고 라플라스의 마녀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 라플라스의 마녀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모든 물리현상을 과학적 계산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소설의 전제다. 라플라스의 마녀, 마도카는 비현실적인 현상을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설명하고 이용한다. 그것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과학적 이론을 이용한 흥미로운 추리 소설 이상의 의미다. 인간은 원자다. 이 문장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소설에는 마도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하라 박사라는 뇌의학계의 권위자다. 마도카는 소설의 제목이 말하는 라플라스의 마녀다.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기이하고 놀라운 존재.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은 지구과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다.온천지에서 황화수소 중독으로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단순사고라고 판단하지만 유사한 사고가 또 다른 온천지에서도 일어난다. 같은 식으로 황화수소 중독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사건이 반복되자 이것을 단순 사고로 치부할 수 없었던 형사 나카오카가 아오에 교수에게 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본격 시작된다. 형사에게 사건의 조사를 의뢰받은 아오에 교수가 진상을 밝히려고 갈 때마다 마도카, 그 의문의 소녀와 그는 마주친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불신하고, 또 신뢰하며 협력한다.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 그가 말했듯이 날씨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과 영향력을 가진다. 오늘도 하루 사이에 급변하는, 예측할 수 없는 이상기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마도카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부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예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 어쩌면 날씨는 인간이 예측하기 가장 까다로운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도카, 소설의 라플라스의 마녀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기술의 진보가 엄청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내고 물리적 현상을 모두 설명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원자의 움직임에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를 빗댄 표현이 매우 흥미로웠다. 원자의 작용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작동한다. 어쩌면 소설에서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평범한 원자, 즉 범용한 인간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범용한 인간들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다정한 인정과 존경을 표한다. 이것이 소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사건을 다 해결하고 아오에 교수가 혼자 생각에 잠기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소수의 천재들만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형사 나카오카가 한 노력은 의미가 전혀 없는 무용한 노력에 불과할까? 결론은 아니다. 인간은 무의식 중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간다. 그 연쇄적인 반응의 몫을 철저히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범용한 인간, 나카오카와 같은 인물들의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히가시노 게이고의 기존 범죄추리랑은 결이 다른 소설로 정말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마력의 태동이라는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소설 마지막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다케오에게 마도카가 했던 말. 다케오는 마도카에게 미래는,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라플라스의 마녀는 답한다. 그 대답을 듣지 않는 편이 더 행복에 가까울 것이라고. 우리의 미래는, 라플라스의 마녀가 본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독후감/창작| 2023.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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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독후감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독후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부끄러움’이 결여된 사회 속 다자이 오사무의『인간실격』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한 허무주의, 자기연민 이상의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에 대해 회피로 점철된 실패자의 변명이라고 비난하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한 이해와 일본 패전 후 사회 분위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곱씹어 볼 때 단순히 패배자의 넋두리로 치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이 살아본 적이 없는 타인의 인생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과 답답함, 약간의 슬픔을 끊임없이 느꼈지만 설령 허구일지라도 그 인물의 인생을 감히 비판할 수 없었다.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패전 후 사회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도저히 맨 정신으로 살아낼 수 없었던 사람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때때로 자살이 처세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으로 여겨지곤 했는데 작가 역시 그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실제 자신의 인생에서 여러 차례의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성공한 자살 끝에 사망한다. 소설의 주인공도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을 패러디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계속해 자살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일본 사회에서 그동안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이해할 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단순히 현실도피자의 우둔함으로 자살을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국 살아내기 힘든 현실, 우울에 빠진 패배한 사회 속에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사회의 패전 후 모습들을 그의 작품 속에 담아낸 것이다.소설 제목인 ‘인간실격’의 의미에 대해 계속해 생각했다. 소설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실격의 사전적 의미는 ‘격식에 맞지 않다’, 혹은 ‘기준 미달로 자격을 잃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인간다움의 상실 가운데 주인공은 스스로 ‘인간다움’이라는 명칭을 포기한 것이었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지만, 인간을 차마 단념할 수 없었던 주인공이 선택한 방법이 ‘익살’이었다는 것도 우습다. 익살스러운 척, 바보인 양, 남들을 웃기며 겨우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 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라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우울, 긴장 등 부정적인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차라리 별난 아이로 남들을 우습게 하기를 선택한 삶은 텅 빈, 공허한 삶이다. 그는 스스로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라 칭한다.우리는 부끄러움이 상실된 사회를 살아간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부끄러움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조하고 끝없이 반성하는 가운데 스스로 ‘인간실격’이라는 깊은 좌절을 느끼고서야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패전 후 일본 사회에서 스스로 ‘인간실격’이라 칭한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이 어쩌면 유일한 인간다움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소년은 하녀와 머슴에게 어린 시절 겁탈당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한다. 결국 그가 고민을 토로할 수 있는 그늘이 되어줄 동력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면 주인공의 인생은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속이면서도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고, 심지어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주인공 소년은 그러한 인간을 난해한 것이라고 칭한다.익살을 이용해 학교에서도 인기를 얻고 어울리며 살아가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끊임없이 되살아 나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타케이치라는 학급 친구에게 하루는 그러한 자신의 익살, 속임수에 대해 간파 당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밑바닥을 들킴으로써 유일하게 그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인생과 가치관을 투영한 주인공의 인생은 작가의 생애에 대해 공부할수록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쩌면 현대인은 모두 익살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행복도 불행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정확히는 끝없는 절망감 속에 생을 마무리한 한 사람. 그 인생을 엿보며 일본 사회의 풍조와 분위기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23.04.05| 2페이지| 1,0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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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독후감 서평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독후감 서평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사랑하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노력하며 완전범죄를 꿈꾼다. 이시가미라는 한 남자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결말을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전개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긴장과 고도의 몰입감을 가지고 읽어내기 충분했다. 용의자 X, 이시가미는 천재 수학자다. 그의 똑똑한 두뇌 회전은 완전 범죄로 모든 것을 은폐하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막으려는 천재 물리학자의 등장이 없었다면 모든 일은 아마 이시가미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소설의 주인공, 이시가미의 행보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그의 완전범죄를 조금은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의 범죄를 옹호할 수 없었다. 초반에 그는 단순히 범죄 은폐를 돕는 동력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에 숨겨진 또 하나의 트릭은 나의 사고를 순간 정지시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저지른 끔찍한 또 하나의 범죄를 용서할 수 없었다.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책은 추리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입문작이어서 더 특별하다. 처음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이후에도 그의 다른 책을 여러 권을 읽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 중 가히 이 책을 1등으로 꼽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한 용의자의 헌신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와 닿아 있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천재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숨막히는 두뇌싸움은 무엇이는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가 겨루면 누가 이길 것인가 라는 오랜 난제의 결말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기사를 이용해 이시가미는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른다. 즉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퇴로를 스스로 막아 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주인공 이시가미가 끔찍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을 범죄의 길로 몰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든다는 것이 극도로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를 위한 행위,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푼다는 것은 제 3자에게 악을 가하는 것과 같은 법이다.작품의 다양한 설정 중에 용의자 X가 수학을 전공했다는 것, 그가 천재 수학자라는 설정이 곧 주인공 이시가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시가미는 한 모녀의 살인 범죄를 은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지만 그것을 이용해, 그것을 약점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의 로맨스를 꿈꾸지 않는다. 소설 중의 대사를 빌리면 그는 명백하게 그녀들과 어떻게 되고자 하는 욕망은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에게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가치관 아래 수학이라는 학문을 바라보는 이시가미의 태도가 겹쳐 보인다. 그는 모녀에게 이 일을 빌미 삼아 어떤 수작이나, 협박을 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음의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수학도 똑같다는 것이다. 다만 숭고한 것은 그에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존엄성에 상처를 입히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이시가미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다만 책을 읽으면서도 아직 남는 의문은 이시가미의 사랑은 정말 진정한 사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가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 심지어 살인을 저질렀고 대신 누명을 뒤집어쓰기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제 3자를 죄 없이 죽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내가 아는 사랑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참된 태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만든다. 다만 이시가미가 매력적인 캐릭터이며, 결말을 알 수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여운을 남기는가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독후감/창작| 2023.04.05| 2페이지| 1,000원| 조회(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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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호밀밭의 파수꾼 독후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독후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열여섯의 남자아이 홀든 콜필드는 꽤나 예민하고 제멋대로이며 솔직한 아이다. 미국 상류층의 자녀로 아버지는 잘 나가는 변호사다. 그러나 그는 네번째로 학교를 퇴학당하고 퇴학 통보가 집에 알려지기 전에 먼저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사흘 동안 결국 할머니께 받은 용돈 등 수중에 있는 돈을 들고 뉴욕거리를 헤매는데 그의 이 짧은 일탈과 방황의 시간을 담고 있다. 그 사흘의 시간을 감히 '일탈과 방황'이라고 명명하고 요약하는 것에 대해 홀든이 불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지만 단순히 요약하자면 그렇다. 그 시간동안 과거 만났던 여자아이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이전 학교에서 만났던 선생님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나는 홀든의 그 예민한 감수성과 더럽고 이상적이지 못한 사회에 대한 솔직한 분노의 표출이 마음에 들었다. 홀든이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말 친해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막히지 않고 재미있게 읽혀가는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홀든은 갑작스러운 극단적 사고의 회로를 돌리곤 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생각의 극단으로 치닫는 그의 사고방식이 나와 닮아 있어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마음 한편에 든 생각은 '고작 열여섯 사춘기의 그럴 법한, 방황의 시간에 대한 회고'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었는데 '고작' 그리고 '그럴 법한'이라는 수식어로 홀든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정의하고 폄하하려고 했던 나의 위선을 정확히 3초 뒤 깨닫고 반성했다.이 연극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에 햄릿과 결투하게 되는 오필리아의 오빠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의 부친이 여러 가지 충고를 늘어놓는 장면이었다. 부친이 수다스러운 충고를 늘어놓을 때 오필리아는 오빠하고 장난을 치면서 오빠의 단검을 칼집에서 빼 보기도 하고 아버지 충고에 귀를 기울이려는 오빠를 놀린다. 그 장면은 좋았다. 정말 아찔하게 재미있었다. 사실 그런 장면은 흔하지 않다.이 연극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에 햄릿과 결투하게 되는 오필리아의 오빠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의 부친이 여러 가지 충고를 늘어놓는 장면이었다. 부친이 수다스러운 충고를 늘어놓을 때 오필리아는 오빠하고 장난을 치면서 오빠의 단검을 칼집에서 빼 보기도 하고 아버지 충고에 귀 기울려는 오빠를 놀린다. 그 장면은 좋았다. 정말 아찔하게 재미있었다. 사실 그런 장면은 흔하지 않다.나는 홀든이 이렇게 마이너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나는 홀든을 닮았다. 햄릿이라는 연극 속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주요한 장면을 사랑하기보다 이런 꽤나 쓸데없고 보잘 것 없는 장면의 웃음을 사랑한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 속 이 문장을 사랑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홀든이 햄릿이라는 연극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이라고 고백하는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주인공에 매력을 느꼈다."이렇게 말했더구나.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책 중 대사의 일부다.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말이다. 고귀한 죽음은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라고 하니 우리는 그럼 성숙한 인간을 추구해야 할까? 그럼 우리는 비겁한 인간이 된다. 그럼 우리는 고귀한 죽음을 택하고자 노력해야 할까? 그럼 우리는 미성숙한 인간이 되고 만다. 이 끝없는 딜레마는 작가의 문체나 스타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의 작가 J. D. 샐린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을수록 주인공 홀든이 작가의 자아를 투영한 인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한 것처럼 작가 샐린저는 그의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이라는 남자아이와 참 닮아 있었다. 작가는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자신의 사진이 책의 뒤표지를 가득 채운 것에 부담을 느껴 모두 빼 달라고 했단다. 주인공 홀든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작가와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웃음이 났다.결국 3쇄부터는 사진을 그의 간곡한 요구로 모두 뺐단다. 샐린저는 희곡과 영화 등과 관련한 작품 활동도 했지만 상업주의가 횡행하는 영화사업을 경멸하고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했는데 이 부분도 홀든과 닮은 점이다. 소설 속 홀든은 영화라면 진저리를 낼 정도로 싫어하니 말이다. 알 수록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나는 소설 속 홀든의 솔직함과 예민함을 사랑한다. 그래서 샐린저라는 사람도 꽤 마음에 든다. 홀든이라는 근사한 소설 속 인물을 창조한 작가이자 샐린저는 홀든이니까.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좋아하는 노래 중에 ‘너는 나의 문학’이라는 박소은의 노래가 있다. 나는 그 노래의 가사가 좋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 노래의 가사에 등장한다. '너는 나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 노래를 듣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에 더 흥미를 느꼈다. 책장을 헤매다 겨우 찾아낸 책은 꽤나 닳아 있었다. 고전이 주는 여운이 특히 매력적인 책이다.
    독후감/창작| 2023.04.05| 2페이지| 1,0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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