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의 유명론과 실재론을 대표적 세 학자를 중심으로 서술하시오.중세의 유명론과 실재론을 논의한 대표적 세 학자는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윌리엄 오캄이다. 해당 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중세를 통해 고대와 근대를 연결하는 데에 아주 중요하다. 중세의 결정적인 역할이 고대 헬레니즘의 사상을 잘 흡수하고 이것을 발전시켜 근대에 전해준 것이기 때문이다.먼저 중세 전기의 안셀무스 Anselmus는 플라톤의 전통을 계승한 실재론의 대표 학자이다. 실재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로부터 세계가 탄생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가령 빨간 사과를 볼 때, 빨간색이라는 개념이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이미 빨갛다고 하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인 이데아에 실재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을 동굴의 그림자에 비유한 플라톤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다. 안셀무스는 여기에 계시와 이성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다. “나는 알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말에서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안다는 것은 지식(현실)의 세계이고, 믿는다는 것은 신앙(이데아)의 세계를 의미한다.그러다 11세기에 접어들어 십자군 운동이 부흥했다가 실패하면서 아랍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문화적 교류가 발생한다. 이때 아랍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아랍의 과학 문명이 전파되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인 유물론과 플라톤의 사상인 실재론이 만나 혼합되었는데 그 중심에 온건한 실재론을 주장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중세 중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는 아퀴나스는 플라톤의 전통을 계승한 실재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계승한 유명론을 적절히 종합시킨 온건한 실재론을 내세웠다. 그는 보이는 현실 세계 속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내재해있다고 설명한다.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것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세계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종합론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아퀴나스의 중요한 사상으로 ‘신 존재 증명’이 있다. 이는 5가지 이론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함이다. 아퀴나스는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비교하면서 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였다.그 5가지 중 첫 번째는 운동이다. 이 세상 모든 물체는 고정불변하지 않고 움직인다. 그런데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존재가 바로 신이다. 두 번째는 인과성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과적이다. 고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때 모든 결과를 산출해내는 가장 근원적인 최초의 원인이 신이라는 존재이다. 세 번째는 필연성이다. 모든 것이 필연적인 근거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우연성 속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필연성이 바로 신의 존재이다. 네 번째는 완전성이다. 인간은 물론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변화한다. 반면 완전한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만물은 완전하고 불변하는 존재인 신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렇게 모든 불완전한 것의 근원이 되는 완전한 존재가 바로 신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규칙성이다. 이 세계의 만물에는 법칙과 규칙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규칙성을 창조한 것이 바로 신이다.중세 후기의 윌리엄 오캄 William Ockham은 유명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현실주의에 기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유명론은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전체적인 개념을 형성한다.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 보편적인 것은 명사,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로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실재론과 달리 유명론은 우리가 빨간 사과를 보고 ‘빨갛다’고 하는 것은, 빨간색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빨간색을 지닌 사물들에 이름을 붙인 것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캄은 초월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를 모두 인정하였다. 하지만 두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현실 속에서는 신을 인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렇듯 오캄은 이중적으로 진리를 설명하였다. 진리의 체계에는 초월적 진리도 있고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있다고 설명한 오캄은, 초월적인 것이 현실적인 차원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설명한 아퀴나스를 비판하였다.2. 헬레니즘의 4가지 논리구조를 설명하시오. (연역, 귀납, 역설, 변증의 각기 의미와 성격에 대해 설명해야함.)헬레니즘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4가지 논리구조는 연역, 귀납, 역설, 변증이다. 헬레니즘은 전체와 개체라는 두 가지 영역이 작용하는 이원론적 사고가 중심이다. 이러한 헬레니즘 전통 안에서 인간의 사고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진다. 바로 전체적 관점과 개체적 관점이다.이 이분법적인 전통 사고 방식은 위의 4가지 논리구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첫 번째로 연역법은 전체주의를 강조하는 방법론이다. 전체주의는 전체를 통해 개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숲을 통해 나무를 보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는 일반적인 대전제에서 구체적인 사례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역법을 이용한 예시이다. 이러한 연역적 사고가 정치에서는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자는 평등주의의 입장으로 나타난다.두 번째로 귀납법은 개체주의를 강조하는 방법론이다. 개체주의는 개체를 통해 전체를 본다. 즉 나무를 통해 숲을 보는 것이다. ‘칸트는 죽는다. 데카르트는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다. 고로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가 모여 전체적인 일반 명제를 이끌어낸 연역법을 통한 결론이다. 또 귀납법은 정치로 보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자는 자유주의의 입장이다.세 번째로 역설법은 전체와 개체를 갈등 관계로 보는 입장이다. 전체와 개체 사이에는 연결점이 없으며, 둘은 그렇게 공통분모 없이 평행하게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쪽을 배제함으로써만 나머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신은 무한하고 나는 유한하기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신을 설명할 때 ‘나는 신이 아니다’라는 부정의 문장으로 설명하게 된다. 어떤 것을 설명할 때 서로를 통해서는 설명 불가하니까 ‘아니다’로 설명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역설의 논리이다.하지만 연역법과 귀납법은 한 가지에 치우쳐 나머지 하나를 놓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두 입장 모두 극단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연역법의 전체주의는 개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귀납법의 개체주의는 전체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역설법 또한 전체와 개체가 팽팽히 맞선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그래서 대립하던 전체주의와 개체주의의 관점이 손을 잡아 종합된 것이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화합주의이다. 이는 양보, 관용, 배려를 통해 설명된다. 전체와 개체가 팽팽히 맞서는 게 아니라. 전체와 개체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니까 연결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둘이 팽팽하게 끝까지 역설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대화하면서 양보하니까 연결된다는 것이다.이 네 가지 논리구조 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변증법이다. 근대 이후에 철학 체계, 인문학의 체계가 변증법의 구조로 발전돼나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변증법, 자본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가 모두 변증법적인 논리 체계 속에서 발전했다. 연역, 귀납, 역설이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이라면, 변증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배려하자는 화합의 관점이다.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원리가 바로 변증의 원리이다. 변증의 원리로 접근할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게 되고 공통 분모를 발견하게 된다. 변증이라고 하는 사고가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을 주고 있는 헬레니즘의 전통 사고이다.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말로 표현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말도 있다. 나의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은 행동으로 표현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사고와 언어는 이 헬레니즘의 4가지 논리 구조 중에 한 가지로 구성되고 표현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떠한 인간의 사고 체계도 이 네 가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나아가 크게 보면 경제제도, 정치제도도 헬레니즘의 전통 속에서 형성된 4가지 사고 구조가 인간의 사회 구조를 형성한 모습이다. 이렇듯 인간의 생각은 인간의 행동뿐 아니라 사회의 인식, 구조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모두 인문학의 논리 구조를 전제로 이루어져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