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책, 『샤나메』 속에 나오는 세 가지 시대: 신화의 시대, 영웅의 시대, 역사의 시대Ⅰ. 서론1. 간략한 소개‘왕들의 책’ 혹은 ‘왕의 책’이라는 의미를 지닌『샤나메』는 창세부터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전까지 기간 동안 이란의 건국신화와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또한 아랍의 지배가 시작될 즈음인 1010년, 이란의 시인 피르다우시가 35년에 걸쳐 6만 행에 이르는 페르시아어 대구 형식으로 완성 시킨 방대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중요성 외에도 샤나메는 거의 순수한 페르시아어로 쓰여 아랍어의 영향을 입은 페르시아어를 되살리는 구심점이 되었다. 이 방대한 작품은 페르시아 인들에게 문학적인 걸작으로 여겨지며 이란의 역사, 문화적 가치와 고대의 신앙(조로아스터 교) 등을 반영하고 있다.2. 배경줄거리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샤나메』를 뒷받침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특히 샤나메는 페르시아의 고대 신앙인 조로아스터교를 바탕으로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샤나메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정신적 배경이 되는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후기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우주론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빛인 오르마즈드와 그 아래 어둠인 아리만의 투쟁으로 인식한다. 결국, 아리만은 물질세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오르마즈드가 만든 함정을 피할 수 없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한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이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때 인간은 선을 선택하여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러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샤나메에서도 이라는 이원론적인 큰 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Ⅱ. 본론1. 세 개의 시대 : 줄거리ⅰ) 신화의 시대이 장대한 이야기는 최초로 페르시아 왕좌에 앉은 카이우메르스가 세상의 주인이었다는 것부터 시작된다. 카이우메르스(샤)는 짐승까지 그를 받들 정도로 권력이 막강했는데, 악의 신 아리만은 이를 시기하 격분한 대장장이 카와는 사람들을 모아 페리둔의 왕국을 찾아간다. 그 사이 페리둔은 자라 청년이 되고, 어머니에게 자신이 젬쉬드의 자손이라는 사실과 조학의 악행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된다. 페리둔은 그 괴물을 땅에서 뿌리 뽑게 하겠다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조학의 궁전으로 쳐들어갔고, 왕좌를 차지했다.이처럼 샤나메의 첫 부분은 신화 속 신화로, 신 오르마즈드가 카이우메르스를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리만(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샤나메의 중심 배경이 되며, 실제로는 위에서 말했던 ‘조로아스터교’가 이에 해당한다.ⅱ) 영웅의 시대샤나메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인물과 여러 영웅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을 전부 다 말하기엔 시간이 한정적이므로 가장 주요하게 등장하는 ‘루스템’을 중심으로 하여 그에 대한 줄거리를 정리해보겠다.사실 여러 샤들의 곁에 함께 했던 루스템이야말로 영웅 중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루스템은 책의 초반부터 나와 대적 관계인 투란과의 전쟁에서 여러 번 승리를 끌어냈으며, 잘못된 길로 가는 샤를 바른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600년 동안 이루어진 그의 일화 중 부분을 말해보기로 하겠다.루스템은 페르시아의 영웅인 잘과 뱀 왕 자하크의 후손인 루다베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이다. 루스템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인 잘의 일화를 이야기해야한다.잘은 태어났을 때 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에 그의 아버지인 사움은 아들을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 났다고 여겼고, 흰 머리를 불길한 징조라 여겨 아들을 알베르즈 산에다 내다 버린다. 그런데 잘을 발견한 불사조 시무르그는 그를 둥지로 데려와서 키운다. 이후 사움은 잠을 자다가 꿈을 꿨는데,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를 다시 데려온다. 이때 시무르그는 자신의 가슴 깃털을 잘에게 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불에 던지라고 한다.루다베와 결혼한 잘은 아내가 아이를 잉태했으나,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안절부절못했다. 이에 시무르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루스템을 낳는다. 루스템은 그녀의 지성에 매혹된 루스템은 타흐미네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했다. 타흐미네는 루스템에게 라쿠쉬를 되찾게 했고, 루스템은 무사히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이때 타흐미네는 루스템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영지로 돌아가는 길이 워낙 험해서 타흐미네는 루스템과 함께 돌아갈 수 없었는데, 이에 루스템은 아내에게 자신의 마노 팔찌를 주며 이것이 자신의 아이의 증표라고 한다.루스템이 떠난 이후 타흐미네는 아들을 낳는다. 아들의 이름은 소랍이었다. 소랍은 아버지 루스템을 닮아서 힘이 장사였고, 그대로 투란의 용장으로 자란다. 장성한 소랍은 루스템을 만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쳐들어간다. 소랍은 적을 무찌를 때마다 루스템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후질이라는 페르시아인을 생포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전장에 왔는지 궁금했던 소랍은 후질에게 루스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후질은 소랍이 루스템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그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다. 아버지가 전장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 소랍은 그 자리에서 후질을 죽였고 곧바로 페르시아 진영으로 쳐들어간다. 소랍의 기세에 페르시아 군대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에 카이 카우스는 루스템에게 소랍과 맞서 싸우라고 명한다. 루스템은 군대를 이끌고 소랍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러다 루스템이 소랍을 내동댕이치게 되고, 땅에서 떨어진 소랍은 등이 부러져 치명상을 입는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소랍은 루스템에게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친 이유는 어디까지나 아버지인 루스템을 만나고 싶어서였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죽으니 한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분명 자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며 루스템을 만나면 자신이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모험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달라고 한다.소랍의 말을 들은 루스템은 그제야 소랍이 자기 아들이었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타흐미네에게 준 증표를 발견했고 통곡했다. 루스템은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카이 카루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개종하게 되었다. 민족적인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피르다우시는 페르시아어로 샤나메를 기록하면서 이란의 민족 정체성을 살리고자 했을 것이다. 악의 무리인 아랍 왕으로부터 선의 무리인 페르시아를 살리기 위한 신화이자 영웅담, 그리고 역사인 것이 바로『샤나메』이다.2. 인물① 루스템 (선): 세이스탄의 펠리바인 잘과 카불의 공주 루다베의 아들로, 샤나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 격의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코끼리를 혼자 제압할 정도로 용맹하고 기개 있으며 아흐라시얍이 군대를 이끌고 이란에 쳐들어왔을 때는 자신의 망아지인 라쿠쉬(=번개)와 함께 그를 손쉽게 제압한다. 그 후로도 하얀 악마와 맞서 싸워 악마를 처치하고 마친데란의 왕도 손쉽게 굴복시켜 이란의 전설적인 영웅이 된다.② 페리둔 (선): 빛과 지혜의 신인 오르마즈드가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태어나게 한 인물로, 샤나메의 대표적인 선인 중 한 명이다. 아버지가 일찍이 조학의 뱀에 의해 희생되고, 황소를 지키는 수호신에 의해 길러진다. 조학의 뱀 때문에 아들들이 죽은 또 다른 피해자 대장장이 카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조학을 물리치면서 영웅이 된다. 500년 동안 오로지 선한 일만 하며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힘쓴다.③ 조학 (악): 악의 신인 아리만의 꼬임에 넘어가 악행을 저지르고 아리만이 입을 맞춘 후 어깨에 뱀이 생겨 뱀 왕이 된다. 뱀들의 먹이를 주기 위해 매일같이 사람들을 살해하고 천년 동안의 폭정으로 온 나라를 두려움과 절망 속에 빠뜨린다. 하지만 젬쉬드의 후손인 페리둔에 의해 고통 속에 말라 죽는다.④ 사이야우쉬 (선): 카이 카우스와 페리둔의 혈족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란의 왕자이다. 루스템의 왕국에서 여러 가르침을 받은 후 누구보다 강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했다. 왕좌를 물려받은 후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으나 카이 카우스의 부인인 수다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갖은 모함을 받게 된다. 카이 카우스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으나 평화 협정을 파기하의 자손이다. 700년 동안 선한 영향력으로 굳건히 나라를 다스리지만, 끝내 악마들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일들을 벌인다. ‘페르세폴리스’라는 도시를 세운 이후 모두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자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며 자만심으로 가득 찬다. 결국, 신은 변해버린 그로부터 손을 거두어들이고, 사악한 아리만의 힘이 온 세상에 미치게 된다.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본래 선인이었다가 악마의 도움을 받고 완전한 악인으로 변해 보다 입체적인 인물상을 보여 준다.▲ 샤나메 가계도(일부 등장인물만 나오기 때문에 참고만 해주세요.)3. 미디어 활용ⅰ) 게임 : 주인공이 나쁜 악의 무리 자파와 부하들을 소탕하고 공주를 구출하는 모험 이야기페르시아의 술탄이 원정을 나간 사이 고관인 자파는 쿠테타를 일으키고 공주에게 자신의 왕비가 되라 하지만 공주는 이를 거절한다. 분노한 자파는 공주에게 1시간의 유예를 주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죽는 저주를 걸어버린다. 그리고 그를 막아선 공주의 애인은 자신의 부하와 각종 함정, 마법들이 지키고 있는 던전에 던져버린다. 애인은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이처럼 샤나메의 영웅 모험담과 사랑 이야기는 마법과 융합하여 판타지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여내 활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공주를 구하는 기사도(부마)의 모험 이야기 구조가 자주 등장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는 너무 뻔해지고 있다. 이 둘의 위치를 전복시키거나 함께 협력하여 서로 나아가는 색다른 방식의 이야기도 필요할 것 같다.ⅱ) 동화 모험왕 루스탐은 ‘루스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이다. 라쿠쉬의 이름이 락슈로 나오고 루스템의 이름은 루스탐으로 나온다. 그 외 루스템이 당나귀로 변한 악마를 잡는 이야기, 위험에 처한 왕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 등을 조금씩 각색해서 만들어졌다.요즘은 종이책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보는 이들이 많다. 다.
프로이트『예술, 문학, 정신분석』:「작가와 몽상」분석 정리프로이트는 문학 소재를 선택하는 조건들과 문학적 형상화에 관련된 예술의 본질 등에 대해 빼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결코 창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문학적 성향의 최초의 흔적들을 찾아야 한다면 어린아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어린아이들의 ‘놀이’ >어린아이가 가장 애착을 느끼고 몰두하는 것은 ‘놀이’이다. 놀고 있는 아이야말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면에서(그 세계의 사물들을 새로운 질서에 맞춰 자신의 취향에 따라 배치하고 있다는 면에서) 마치 한 사람의 시인처럼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놀이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감정을 놀이 속에 쏟아 붓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진지함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유희 세계에 모든 감정을 부으면서도 아이는 현실과 유희 세계를 구별할 줄 알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가시적이고 촉진할 수 있는 사물들을 상상적인 대상과 상황들로 연결 짓기 좋아한다. 즉, 몽상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놀이’를 하는 아이가 창조적 작가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서 어린아이의 놀이와 작가의 창조 행위 사이의 유사성을 알려 주는 흔적이 있다. 놀이(SPIEL), 희극(LUSTSPIEL), 비극(TRAUERSPIEL) 그리고 이러한 극들을 공연하는 사람을 배우(SCHAUSPIELER)라고 하는 언어의 철자 속에서 이를 알 수 있다.성인의 ‘몽상’ >성인이 된 아이는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몸소 체득한 것을 통해 수십 년 동안 현실을 이해하려고 정신적으로 노력해도, 그가 어느 날 현실과 유희의 대립을 다시 무너뜨리는 정신적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어른이 되었지만, 옛날에 자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놀이에 몰두하곤 했는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는 현재의 일들을 어린아이의 놀이와 동일시함으로써 짓누르는 삶의 중압감에서 빠져 나와 ‘유머’라고 하는 고급스런 쾌락을 얻기도 한다.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청년이 되면 놀이를 중단해 놀이에서 얻는 쾌락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번 경험한 쾌락을 포기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이미 그 쾌락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사실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지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대상을 바꾸었다는 말은 즉, 단념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념이 아니라 한 대상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대체 작업이다. 청년 때에는 현실적인 대상과의 고리 외에 아무것도 포기한 게 없다. 놀이 또한 포기 한 것이 아니라, 이제 놀이 대신 자신의 몽상을 따라갈 뿐이다. 그것은 흔히 비몽사몽이라고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걸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 이런 몽상의 세계를 그려본 적이 있다. 다만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중요성을 낮게 평가했을 뿐이다.성인의 몽상은 어린아이의 놀이보다 관찰하기 어렵다. 아이는 혼자 놀기도 하고, 다른 아이와 어울려 폐쇄된 정신적 시스템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심지어 어른들을 위해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어른들에게 놀이를 숨기지 않는다. 반면에 성인은 자신이 빠져 있는 몽상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고 한다. 몽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적 삶으로 여겨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이 그런 몽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완벽하게 유사한 몽상적 창조물들을 볼 수 있다는 느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어린아이의 놀이는 욕망에 의해 인도(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욕망) 즉, 자라서 어른이 되겠다는 욕망에 의해 인도된다. 아이는 ‘어른인 것처럼’놀며 어른들의 삶에서 그가 배운 것들을 놀이에서 모방하기도 한다. 이는 아이가 자신의 놀이를 숨겨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나타낸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성인의 경우 사람들은 더 이상 그가 놀이를 하지 않기를, 혹은 더 이상 몽상을 좇지 않기를 바라며 그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욕망들 중에 어떤 경우에도 숨겨야만 하는 욕망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자기의 몽상을 유치하고 해서는 안 될 것인 듯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놀이의 동기와 공상의 동기는 다르다. 놀이의 경우에는 커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동기로 드러나고, 따라서 남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공상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남들 앞에 감추고 싶은 욕망을 동기로 한다 부끄럽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그 욕망이 에로티시즘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어떻게 해야 비밀에 가려진 몽상에 대해 알 수 있을까?프로이트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여신이 있어 자신들이 무엇으로 괴로워하며 무엇으로 즐거워하는 지 말하는 것을 책무처럼 부여받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을 쉽게 말하자면 정신과 의사들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자들로서 의사를 찾아가 고백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정신적 치료를 통해 원상태로 돌려줄 것을 기대해 환자들이 자신의 몽상까지 털어놓는다고 한다.몽상의 특징 >행복한 사람들은 몽상을 쫓지 않는다. 오직 만족을 모르는 자들만 몽상을 쫓는다. 즉,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몽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말이다. 모든 몽상은 욕망의 완결이며, 만족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보정(보태어 가지런히 정돈함)이다. 또한 몽상은 고정 불변하는 게 아니라 변화무쌍한 삶의 여러 인상들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개인적 상황들이 변화할 때마다 같이 변화한다.몽상은 세 개의 각기 다른 시간 사이를 재현 행위의 세 순간 사이를 떠다닌다. 정신활동은 현재의 인상에 밀착되어 있는데, 이 현재의 인상이란 개인이 품고 있는 어떤 큰 욕망을 일깨우는 한 계기이다. 이 계기에서 시작해 정신 활동은 이전에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돌아가며, 대부분 욕망이 충족되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되돌아간다. 정신 활동은 이때 미래와 연관된 상황을 창조해 내며, 이 상황이 욕망이 충족되는 상황이다. 더 정확히는 백일몽 혹은 몽상이라 할 수 있다. 욕망은 현재의 계기와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해 욕망이 출발되었던 흔적들을 정신 활동 속에서 드러나게 한다. 즉, 욕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시간대를 통과한다.시인, 놀이와 몽상 >프로이트에 의하면 ‘시인이란 이상한 인간’이다. 이때의 이상함은 단순한 기이함이나 비현실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것은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처럼 시인은 공상(몽상)을 즐기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몽상의 세계에 빠지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의 세계에서 맡은 바 사회적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따라서 시인이 이상한 인간이라는 말은 어린이처럼 놀이의 세계에 집착하고, 몽상을 즐기는 어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놀이와 몽상의 관계이다. 놀이란 무엇인가. 프로이트에 의하면 놀이의 특성으로는 세계를 자기 마음에 드는 새로운 질서로 바꾸어 놓는 것. 그런 행동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놀이의 반대물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좀 더 압축하면 욕망에 의한 세계 변형, 진지성, 반현실성을 말한다. 몽상 역시 욕망에 의해 세계를 변형하며, 현실과 대립되는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만든다. 그런 점에서 몽상은 놀이의 세계와 유사하다. 그러나 놀이의 세계는 현실과 대립되면서 동시에 현실과 연결되지만, 몽상의 세계에는 그런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놀이와 몽상이 보여 주는 이런 특성은 또한 진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몽상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 놀이는 진지한 행위의 세계이다. 즉 그들은 놀이에 온갖 정열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른이 진지하게 대하는 것은 몽상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적 현실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 진지하게 놀이를 하며 자란 성인은 어린 시절의 놀이와 일상적 현실의 삶을 비교하는 경우 아이러니를 체험한다.
문예미학과 비평최진영『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중심으로문학과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문학과 심리학은 오래 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문학이 심리학 연구의 제재가 되는 가하면, 심리학은 문학 연구를 위한 보조 과학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문학의 읽기에서 심층적인 읽기가 필요한 이상, 문학의 심리학적인 읽기, 그것도 정신 분석학 및 분석 심리학적인 읽기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진영의『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분석하기에 앞서, 먼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서 나오는 용어 및 내용을 잠시 보겠다.리비도(libido)는 생의 본능인 관능적 에너지를 말한다. 이 에너지는 생물학적이나 물리, 화학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 에너지이며, 인간 활동의 전 영역에서 표출되지만 특히 성적 활동에서 많이 표출된다. 따라서 리비도의 핵심을 성적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이 리비도가 자기 자신의 내부로 표출되는 것을 ‘자기애narcissism’라 하고 유아기의 애정 대상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고착fixation’이라 하며, 과거에 지향했던 대상으로 되돌아가 애정을 나타내는 것을 ‘퇴행regression’, 또 이런 에너지가 억제당하는 것을 ‘억압repression’, 이타적으로 다른 고차원적인 대상을 향하는 것을 ‘승화sublimation’라 한다.이드(id)는 완전히 무의식적이며, 모든 리비도의 원천이고, 여러 선천적 본능의 원천이다. 비논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동물적이고 맹목적으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드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외부 세계와 투쟁하는데, 이때 맹목적으로 쾌락만 추구하므로 현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자아(ego)가 등장한다. 자아는 이드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적절한 방향으로 돌려놓아 현실적인 충족을 추구하게 한다. 자아의 일부는 의식적이며 또 일부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또한 자아는 현실 원리에 충실하므로 현실에 대한 인식 과정, 즉 합리적이고 지각적인 기능이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초자아(superego)는 사회의 도덕이나 금기, 그리고 부모에게 받은 도덕 교육을 토대로 형성된다. 초자아의 기능은 이드와 자아를 비판하여 사회규범에 맞는 생활을 해나가게 하는 데 있다.소설의 간단 줄거리 >겨울날 홀로 여관에 간 원도는 여관집 주인이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온다. 여관집 주인은 여기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며 원도에게 주의를 주러 몇 번이나 원도 방을 들락날락 거린다. 그리고 원도는 그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을 찬찬히 곱씹는다.“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을 찾아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끝내야만 한다고 생각한 원도는 살갗을 찢어내는 차디찬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골목길에 불법 쓰레기처럼 처박힌 신세가 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또한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로 길거리와 여관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된 이유, 육신조차 검붉은 피를 목구멍으로 밀어내며 자신과의 동거를 진저리나게 거부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부도가 난 집안과 그로 인해 아내와 딸과 갈라선 것,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사이에서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모르는 것, 자신은 챙겨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만 챙겨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전 여자 친구 유경과 원도를 선택하지 않은 그녀, 그리고 장민석. 소설은 원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로 돌아간다.소설을 읽으면서 원도의 내면이 크게 세 가지로 분리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어떠한 행위를 하는 원도 그 자신. 두 번 째는 원도 자신이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그에 반박하는 또 다른 자신(소설에서는 이를 굵은 글씨로 표시한다). 마지막은 장민석이다.굵은 글씨, 원도의 ‘이드’ >의식의 가장 큰 영역인 이드는 전통적으로 정신 분석학적 이론에서 가장 많은 다양한 명칭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조차 아담에 관한 구절을 통해,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식적 충동은 다소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죽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내가 되어서 너는 모른다 그것을 알아내라는 죽은 아버지의 저주 같고, 아니, 너는 그것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 같고, 나는 정말 알 수 없어요, 아버지,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만족스러웠던 순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부분굵은 글씨(본고가 원도의 이드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설의 처음부터 나오는데, 원도가 여관을 찾아가는 부분이다. 원도의 이드는 계속해서 원도를 부르며 그를 여관으로 이끈다. 여관이라는 장소는 소설을 읽다보면 원도가 자살을 하게 되는 장소가 되는데, 소설 도입부에서 이드(굵은 글씨)가 여관을 보며 ‘저곳이다’라고 하는 것에서 원도의 무의식적 충동이 생각과 달리 그를 이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이드는 계속해서 원도에게 ‘왜 죽지 않았는가’를 묻는데, 이 물음은 원도의 모든 행동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그가 기억을 회상하는 데에 원동력이 된다.그런데 왜 그랬어. 죽은 주제에 죽지도 않고 지금까지 내게 왜. 믿어라. 무엇 때문에? 내가 뭔데? 당신은 뭔데? 우리가 대체 뭔데! 질문은 너의 일이 아니다. 무엇을 왜 믿으라는 것인지는 다음 문제다. 그보다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다.-「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부분소설 속에서 원도의 이드가 형태를 갖추고 마치 타자인 마냥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원도의 ‘죽은 아버지’이다. 원도의 죽은 아버지는 죽어서도 원도 앞에 나와 ‘만족스럽다’라고 말하는데, 언뜻 보면 그것은 그저 환영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죽은 아버지가 보이는 것은 환영이 아니며, 원도가 자신의 이드와 마주보는 행위이다. 위의 소설 부분처럼 이드는 원도의 생각을 부정하기도, 밀어붙이기도 하며, 또한 통제하기도 한다.원도의 자아, 장민석 >이드는 사회적인 제약을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활동하는 무의식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제어하는 정신적인 요인이 요구된다.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제어하는 정신적인 힘이 곧 자아이다. 이것은 이드와 같이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드의 본능적 충동이 파괴적 행동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통제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이드는 길들이지 않은 열정으로 향하는 데 반해, 자아는 이성과 신중을 지향한다. 쾌락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드와 달리,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서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한다.즉 자아는 이드를 현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그리고 자아는 이드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적절한 방향으로 돌려놓아 현실적인 충족을 추구한다. 또한 자아의 일부는 의식적이며 또 일부는 무의식적이다.장민석은 원도의 이드를 제어하는 자아이다. 원도가 죽은 아버지의 말에 따르지 않고 제어할 수 있는 이유는 장민석의 기억 때문이다. 장민석은 원도 속에 존재하는 환상 같은 존재로 원도라는 인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동된다. 뿐만 아니라 장민석은 성찰적 사고에서 원도의 타자이며, 원도가 가진 리비도의 퇴행이라 볼 수 있다.원도라는 인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써의 장민석을 살펴보면 이렇다. 원도는 장민석이 온 이후로 장민석이 되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의 관심이 온전히 장민석에게로 쏠리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관심을 되찾기 위해 원도는 장민석을 따라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그녀’에게 더 집착하는 이유도 장민석 때문이다. 이렇게 원도는 장민석이 가지던 것, 가지게 되는 것을 하나하나 뺏고 싶어 하며, 이것으로 그의 어린 시절 및 청년 시절은 장민석과 얽혀있다는 게 보인다.원도의 이러한 행동들은 성찰적 사고로서 장민석을 원도의 타자로 만들기도 한다. 성찰적 사고에서 화자는 타자와 마주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지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는 장민석이 원도에게 원동력을 심어주는 이유와 같으며, 심지어 원도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환상으로 나타나 그를 압박할 정도이다.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원도의 ‘초자아’ >자아가 이드를 통제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초자아는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초자아는 ‘도덕적인 모든 제약의 대표, 즉 완전성을 추구하는 충동의 옹호자로서, 우리가 인간생활에서 보다 차원 높은 것이라고 일컫는 바에 대해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초자아의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성욕 도착증이나 오이디푸스 본능과 같은 것을 통제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초자아의 도덕적 기준은 부모를 통해 형성된다. 즉, 부모는 사회가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상을 주고 나쁜 행동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 벌을 주는데, 이것이 초장의 활동 기준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아는 자칫하면 자아 이상(ego-ideal)에 빠지게 되고, 이드와 마찬가지로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소설 속에서 원도는 장민석만 진짜 친아들처럼 좋아하는 어머니와 눈앞에서 본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겪었다. 더구나 죽은 아버지는 원도와 함께 죽으려 했으며, 그 후 원도는 다른 아버지에게 억압 받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본 결과 원도의 초자아가 잘 형성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초자아의 도덕적 기준은 부모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좋은 행동을 하든, 나쁜 행동을 하든 모두 장민석과 비교되며 차별받던 원도는 초자아의 도덕적 기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 결과 원도는 어른이 되고나서 횡령을 하게 되며, 살인혐의로 쫓기게 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발제문“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간된 그 어떤 책도 이 책만큼 전대미문의 사회적 폐단에 관해 이토록 활발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럼으로써 노동계 내에서 광범위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책은 없었다.(p.374)”Ⅰ.귄터 발라프1942년 독일 부르샤이트에서 출생하여 김나지움 재학 당시부터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961년에 출범한 노동자들의 글쓰기 모임이자 노동문제를 다룬 작가들의 결속체인 “61그룹”의 대표적인 르포 작가였으며, 직접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산업 현장에서 체험한 사실들을 보고한 “산업르포”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 후 20대 초반 2년여 동안 다섯 군데의 공장 및 산업단지에서 보조노동자로서 겪은 체험과 화학공장 등에서의 경험을 쓴 기록물을 연이어 펴냈다.스스로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 사회 속에서의 훼방꾼”이라고 자처하는 발라프의 이런 활동은 주류사회와 갈등을 빚었으며, 독일 통일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되었다. 1993년 9월, 로부터 구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에서 비밀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적 있으며, 모함과 무고를 주장하여 소송 제기했고 2004년 12월에 함부르크 지방법원에서 어떤 혐의나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발라프의 잠입 르포 활동은 2000년대에도 계속되었는데, 흑인으로 ‘변신’하여 독일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를 폭로하고 『암행기자 권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발표하여 파장을 일으켰다.아래 링크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와 관련한 귄터 발라프 영상이다.https://youtu.be/di4j1VsvCoMⅡ.책 내용1.기획의도『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치ㆍ경제 규제 철폐와 고용의 유연화가 초래한 하도급 및 용역 노동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다. 르포기자 귄터 발라프는 인권이 없는 현장으로 잠입 취재를 하여 외국인 용역 노동의 실태를 낱낱이 보여준다.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해지고 걸음 : 「실전연습」, 「걸음마를 떼다」, 「정치적 성수요일 집회에 참석하다」귄터 발라프는 터키인 ‘알리’로 변장한 후 귄터 발라프일 때 자주 갔던 술집에 갔다. 변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실험이었다. 다행히 알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후 알리는 기민련(기독교민주연합)의 거물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득을 보게 된 사람들과 승리를 축하하는 콘라트아데나워기념관에 갔다. 알리는 한 여자의 경멸의 찬 눈을 받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알리는 헬무트 콜(역사적인 독일 통일을 이끈 인물)이 승리 연설을 하는 동안 연단 바로 옆까지 갔다. 기념관 안에 있는 보안 담당 직원들 전원이 신분위장자를 색출해내는 훈련을 받았어도 아무도 변장한 알리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알리는 더 이상 누군가 정체를 알아볼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광고를 낸 후 알리는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거의 대부분이 시급 5~9마르크(1980녀대 환율로 대략 1마르크는 우리 돈으로 400~500원 정도)인 막노동이었다. 알리는 그중 몇몇 일을 시험 삼아 해봤다. 쾰른 외곽 지역의 한 별장에 있는 승마교습소 보수작업을 했을 때, 알리는 구조물 위에서 머리를 위로 치켜들고 천장 청소 작업을 했다.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폴란드인들은 모두 불법노동자였으며 알리하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여주인마저 알리와의 접촉을 일체 피했다. 어느 날 경보장치가 작동하지 않자 당연히 터키인들이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알리는 혐의를 받게 됐다. 무시하는 태도가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급변하자 결국 알리는 몇 주일 후 그 일을 그만두었다.성수요일 집회에서 기사당(기독교사회당) 총재 프란스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함께 알리는 7,000명의 손님들 앞에 서게 되었다. 거기서 알리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전염병자 신세가 되었다. 또한 비어 있는 자리 중 한 곳을 발견하고 간신히 좌석 끝에 걸터앉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일부러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은 섭씨 180도에 달았다. 거기다 안전대책은 전혀 없었다. 원래 일할 때 장갑을 껴야 하는데, 장갑이 또한 없었다. 장갑을 끼면 일이 더뎌지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첫 근무가 새벽 2시 30분에 끝나기에 알리는 집에 가려 했다. 그런데 매니저가 그런 알리를 보고 어떻게 시간도 되기 전에 퇴근할 생각을 하냐며 야단쳤다. 알리가 규정을 따랐을 뿐이라고 반론을 제기해봤지만, 매니저는 바깥 청소는 했느냐며 쌀쌀한 날씨에 얇은 셔츠 바람으로 알리를 내보낼 뿐이었다. 심지어 손님들한테도 알리는 무시당했다. 술을 좀 마신 취객들은 먹다 남은 포테이토칩이 든 봉지를 알리의 발 앞에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했다. 알리의 터키인 여자 동료들의 고층은 더 심했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성희롱을, 외국인으로서 놀림을 당했으며 재떨이가 발 앞에 던져지는 일도 수차례 겪었다.맥도날드에서 일을 그만두고 알리는 건설현장으로 갔다. 하청회사 1층 사무실로 들어온 알리는 칠판에 “이 회사는 고용인들을 합법적으로 신고합니다!”라고 적힌 글을 봤지만, 아무도 알리에게 근로증명서에 대해 묻지 않았으며 굳이 알리는 이름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 알리는 건설현장에서 현장감독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했으며, 독일인 동료들에 비해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일을 하는데도 “병신 같은 터키 놈”이라고 욕을 먹었다. 또한 금요일마다 일을 끝낸 후 저녁까지, 몇 시간씩 급료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가운데 몇 군데는 몇 주일 전부터 막혀 있었으나 배관공들의 일당이 너무 비싸 그들을 부르지도 않았다. 결국 알리가 걸레와 스펀지, 통을 들고 오줌을 치우는 동안, 화장실을 이용하던 독일인들한테 오줌하고 똥 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나는 건 터키 놈들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알리는 가톨릭교회에서 행운을 찾아보려 했다. 구걸이나 무언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세례를 받으려 한 것이었다. 알리가 세례를 받으려는 이유는 기회주의 때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의 삶과 행동에 대해 배우고, 확신을 갖고 싶었을지 않기 위해 어눌하게 독일말을 했다.)비용이 많이 드는 운반용 관 쪽으로 그의 관심을 유도했다. 어떻게든 비싸게 팔려는 속셈인 것이었다.맥도날드, 건설현장의 노동자로서 경험을 다룬 에피소드와 세례 신청을 두고 벌어진 성직자들과의 경험, 그리고 죽을병에 걸린 이주 노동자로 관을 사러 나선 상황 속에서 알리가 당하는 인종차별을 볼 수 있다. 즉, 위 에피소드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문제와 가장 인간적인 가치를 대변해야 할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인종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부분이다.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 「가장 더러운 쓰레기 속에서」, 「인간 실험에 지원하다」, 「알리의 승진」, 「직원 총회를 열다」, 「방사선에 노출되다」, 「현실을 연극 무대에 올리다」알리는 석면 가공과 브레이크 라이닝 작업을 하는 유리트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했다. 건강에 심각한 해를 미치는 작업장인지라 주로 터키인들이 일하고 있다고 알리의 터키인 친구들이 말했다. 석면 가공에 관한 엄격한 안전규정들이 있었으나 그곳에서는 효력이 없는 규정에 불과했다. 암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미세 먼지를 막는 마스크를 공장에서 제공하지 않아 돈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착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서 알리가 경험한 하도급 불법 용역 노동의 구조는 이랬다.“아우구스트-티센 제철(ATH)은 1974~1985년 사이에 정규직 노동자만 1만 6,500명을 해고한다. 그러면서 ‘티센사는 뒤스부르크에서만 400개에 이르는 이른바 하청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다.’ ‘하청 회사들은 임금이 더 적게 나가고 열의가 있으면서 빨리 구할 수도, 또 빨리 해고할 수도 있는 용역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때그때 노동자를 끌어모으는, 오물 제거 전문 용역 회사 ‘아들러는 노동자를 렘메르트에 팔아넘기고, 렘메르트는 다시 ATH로 팔아넘긴다.’ 티센사가 노동자 한 사람에게 지불하는 돈은 일에 따라 시간당 ‘35~80마르크’인데, 중첩되는 고용 관계를 거치며 최종적으로 노동자에게 ‘동냥처럼 던져주는’ 돈은 10 서로 다른 네 가지 약제 혼합에서의 비교 생체사용 가능성 연구에 관한 실험대상자 정보”였다. 페노바르비탈은 사람에게 중독성이 강한 바르비투르산 계열의 화학성분이었다. 이미 성분이 밝혀져 취급하지 말아야 할 의약품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의약품에 대한 실험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리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알리는 부작용으로 인해 실험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알리에게 즉각 유혹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완전히 입원’하는 조건으로 15일에 2,500마르크를 준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알리는 유혹적인 고액의 돈이 필요 없었기에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바이오디자인 같은 기업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실험실로 몰려들게 하는 경제 위기를 악용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이오디자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실험용 인간들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게다가 바이오연구소는 계약서에 “즉각적인 해약 통보를 할경우 바이오디자인주식회사는 실험대상자에게 실험을 하는 데 발생한 경비에 대한 배상을 당사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로 위협하기도 했다. 피실험자에게 재갈을 물리는 계약서는 관례에 어긋나지만, 바이오디자인은 노골적으로 무시했고 그로 인해 실험용 인간들은 부담을 느끼며 부작용이 나타나는 어떤 경우든 이를 감수해야만 했다.인간 실험을 그만두고 다시 용역 노동장으로 돌아왔을 때 알리는 도박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러가 그의 비서이자 운전기사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운전기사 자리를 꿰차려는 속임수를 써보기로 한 것이다. 알리는 아들러에게 임금 문제로 찾아가겠다 했고, 늘 그렇듯 아들러는 아주 불쾌해하며 도대체 며칠 동안이나 일을 하러 나오지 않을 생각을 했느냐며 알리를 몰아세웠다. 알리는 사과를 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문제 있어요. 내가 당신 도와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알리에게 아들러는 의아해했고, 이내 알리는 동료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돈을 받지 못해 앙갚음하려고 하는데나눴다.
흔들리는 어깨 위에서: 『설이』 독후감사람들은 기본적인 가족 형태를 부모와 자녀 구성으로 인지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부모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충족되어야 하며, 한 사람에게도 장애가 없어야만 비로소 ‘정상’적인 가족 형태라 생각하게 된다. 그 때문에 조부모님하고 손자만 살거나, 부모님 둘 중 하나 이상이 없거나, 기본적인 가족 형태를 갖췄으나 가족 구성원 중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상’에서 탈락하여 곧바로 ‘비정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한 번 비정상으로 낙인되면 사람들은 그 ‘가정’을 동정하기 시작한다.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배려라 생각하며 무심코 그들을 동정하거나 어딘가 다른 취급을 하게 되는 것이다.배려도 동정도 아닌 시선을 받고 자란 아이는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웅크린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화를 내면 왠지 자신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말갛고 순해 보이는 게 싫어지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닫거나, 화장하거나, 쌓이고 쌓여 폭발하며 사람을 무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취한다. 소설 속 주인공 ‘설이’가 바로 이러한 아이였다.『설이』는 눈이 내리던 새해 첫날에 과일 바구니에 담겨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소녀의 이야기이다. 신년 방송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내용이 나가면서 설이는 많은 사람의 주목과 기부를 받아 풀잎 보육원에서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녀에게 부모는 없었으나 다른 보육원 아이들보다 더욱 자신을 챙겨준 보육원 원장님, 친이모는 아니지만 무엇을 하든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하며 옆에 있어 주는 이모. 그리고 이상적인 부모를 떠올리게 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원 원장 곽은태 선생님이 있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늘 상위 성적을 받았고, 용돈이 필요하면 외부 공모전에서 상금을 타며 나날을 보내던 설이의 인생은 13살 세 번째 파양을 맞이하고부터 큰 변화를 겪게 된다.설이는 시간이 더 지나면 좋은 곳으로 입양 갈 수 없다는 보육원 원장님의 말로 인해 졸업을 6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가게 된다. 그곳에서 설이는 수많은 학부모의 눈살 앞에서 학교에 어울리는 학생인지 아닌지 판가름하기 위해 테스트를 봐야 했고, 뻔히 학교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모든 게 괜찮다는 듯 늘 웃기만 하는 담임 선생님 때문에 스스로를 지켜야 함을 깨닫게 된다. 설이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공모전 상금으로 구매한 화장품으로 치장한 후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그런 설이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았으나 학원에 다니지 않는데도 그녀의 성적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걸 보며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설이의 옆자리이자, 곽은태 선생님의 아들 시현으로 인해 설이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꺼내지는 영상이 학교에 퍼지게 된다. 이에 분노한 설이는 시현에게 달려들었고, 갈비뼈에 금이 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사회통합전형으로 학교에 들어온 설이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자 곽은태 선생님 부부는 설이의 위탁부모가 되기로 했고, 그렇게 설이는 시현과 함께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설이는 그토록 상상해 왔고 꿈꿔왔으며 언제나 바라왔던 이상적인 부부인 곽은태 선생님네로 가게 되었지만, 꿈에 부풀어 있던 건 얼마 가지 못했다. 좋은 학원에 다니게 해주고, 등하교할 때마다 차로 데려다주었는데도 설이의 꿈은 식어만 갔다. 어른들의 행동에 설이의 의견과 자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만 만나면 한없이 아이들을 위하고 생각해주던 곽은태 선생님에 대한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시현의 아버지가 되어 늘 시현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모습에, 설이는 그토록 간절했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설이는 시현이 왜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 삐뚤게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어딘가 흔들림 없는 곳이 있을 거라고 간절하게 꾸었던 꿈을 저버리게 되었다.이후로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며,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설이는 대부분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한결같이 사랑을 베풀어준 이모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설이의 모습을 보며 시현네 부부 또한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소설 『설이』는 새로운 가족 형태와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준다. 시현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설이는 자꾸만 곽은태 선생님 부부의 아이가 되고 싶어 했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했다. 혹 시현과 자신(설이)은 같은 보육원 바로 옆에 함께 있었는데, 자신이 잠깐 기저귀를 갈러 사라진 사이 곽은태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시현을 고른 건 아니었을까. 곽은태 선생님 부부는 자신처럼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하니 위탁 부모가 아닌 정말로 입양을 해주지 않을까. 사람들이 자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도 곽은태 선생님 부부는 시현을 선택할까 등. 이처럼 설이는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고 엉덩이춤을 추는 곽은태 선생님의 진짜 아이가 되고 싶어 했고, 그에게 입양이 된다면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 줄거리에서도 말했듯이 곽은태 선생님은 집에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엉덩이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었고, 견고해 보일 것만 같던 어깨는 진짜 아들 시현과 함께 있을 때마다 흔들렸다. 이를 본 설이는 그제야 돈이 많고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해주는 것만이 부모의 사랑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