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개 방청 과제종강한 후 비가 오는 금요일 오전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방청을 다녀왔다. 지금껏 늘 장소를 답사하러 갈 때 친구와 함께 갔는데, 이번에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긴장하는 마음으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어갔다. 처음 간 장소에 완전히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들어가기 전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법원에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검색대가 있어 가방을 올려놓고 핸드스캐너로 검사를 받았다. 사전에 4층에서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이 열린다는 정보를 찾아놔서 도착하자마자 4층으로 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4층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때는 재판 중간에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아무도 재판 공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들어가면 안 되는 건지 여러 번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어떤 여성분께서 들어가는 걸 보고 뒤따라 들어갔다. 형사재판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형사재판 두 곳만 방청이 열려있고 나머지는 다 볼 수 없는 상태였다.재판은 총 5개를 봤다. 그중 하나는 다음 기일만을 정하고 바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서, 기록할 내용은 없었다. 첫 번째는 재판을 진행하던 중간에 들어간 거라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다. 사건 내용은 피고인이 매달 100만 원씩 편취하였고 피해자로부터 15회를 받아 총 1,5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은 그의 일부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후 증인 신청을 한 뒤 재판이 끝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형사재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지도, 놀랍지도 않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인터넷이나 티브이에서 접한 사건들과 너무나 다를 게 없었다. 두 번째 재판은 피고인이 이라크에서 온 사람이었다. 피고인을 위해 통역인이 재판에 함께하였으며 선서하고 재판을 시작했다. 피고인은 자동차 차량 부품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본인을 2001년생이라 소개했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피고인의 주소가 변경되면 신고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피고인의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이후에 있던 모든 재판도 동일한 순서로 진행되었다. 피고인의 생년월일과 직업을 묻고, 주소가 변경되면 신고해야 함을 알려준 뒤 재판이 시작됐다. 두 번째 사건 내용은 피고인이 술에 취해 차를 끌다가 피해자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가하고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은 이에 대해 상해는 인정하지만, 도주는 의도한 게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변호사는 피고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고인이 초범인 점, 사건 장소를 이탈했으나 다시 복귀한 점, 피해액을 상환하고 이라크 사람이라 국내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변론하였다. 검사는 징역 2년을 구형하였으며 9월 3일에 다시 재판을 열기로 하고 재판은 끝났다. 세 번째 재판은 피고인이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과 시비가 걸려서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 전치 5주의 상해를 가한 사건이었다. 검찰 측이 증거물을 제출한 뒤 2명을 증인 신청하고, 변호인과 검사가 몇 분씩 증인신문을 할 것인지 이야기한 후 다음에 재판을 다시 열기로 하고 비교적 빠르게 재판이 끝났다.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네 번째 재판이었다. 피고인은 79년생 여성으로 피해자의 주거지에서 오른팔을 폭행하거나 다른 날에도 피해자를 폭행하고, 12회차에 걸쳐 겁을 먹게 하는 메시지를 보내 협박하였다. 잠금장치를 열쇠 수리공을 통해 열어 무단침입하고 소파를 훼손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 피고인은 소파는 본인이 사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큰 죄가 될 줄 몰랐다고 발언하였으며, 피해자의 주거지에 들어간 것 또한 자신이 과거에 피해자와 함께 살 때 그곳에 두고 온 아기 수첩과 아기 옷을 찾기 위해 들어갔다고 이야기했다. 피고인은 자신의 짐만 가지고 나온 것이 죄가 될 줄 몰랐다며 호소했고, 계속해서 판사에게 억울함을 주장했다. 이 재판이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는 피고인이 우리 엄마의 나이와 같아 조금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전에 '어떤 양형 이유'라는 책에서 읽었던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라는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서 봤던 세 개의 재판에서는 피고인과 판사, 변호사, 검사 모두 너무나 덤덤해서 나까지 이 재판이 아무런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었다. 사실 마지막 재판을 볼 때도 사건이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열쇠공을 불러서 남의 집 잠금장치를 열게 했는데 그게 죄가 될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면서 말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앞 재판들과는 달리 법정이 모든 걸 해체하는 곳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건 피고인의 죄가 있다는 것과 별개로 피고인이 재판에 임하는 태도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법정에서는 죄의 유무를 떼어놓고 볼 수 없지만 무덤덤하게 있던 전의 피고인들과 달리 판사의 말을 끊고 울면서 말하는 피고인을 보며 책의 문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연인이었지만 법정에서 그들의 사랑은 해체된 후다. 피고인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법정에서 피고인의 행동은 낱낱이 파헤쳐진다. 누구나 재판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방청석을 옆에 두고 재판이 진행되는 것은 법정이 도축장이라는 말에 공감하게끔 만든다. 판사의 말을 반복적으로 끊고, 울면서 말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법정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 본 방청은 법학개론 수업 때 읽었던 판례자료보다 더 생생했고, 덜 특별했다. 수업에서 ‘피해자 반응에 특이성에 있더라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라는 판결문을 접했을 때 조금 더 법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크게 감동했다. 문학을 읽을 때만 느껴지는 감동이 있는데, 판례자료에서도 문학에서 느낀 감동과 똑같이 감동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방청을 갈 때 법정에서도 감동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법정에서는 감동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변론하며 또박또박 발음하는 모습인 변호사들이 실제로는 뭐라고 말하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말하거나 발음이 안 좋은 경우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형식적인 느낌이 강해 진정성을 느끼기보단 그냥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재판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마지막 재판에선 그동안 책이나 글에서 묘사되던 법정이 이런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고, 법정 안이나 밖에서 변호사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다. 신기했던 건 방청했던 재판 중 하나는 다음 기일만을 정하고 빠르게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던 거였다.방청이 다 끝난 후 법정에서 오전 11시 40분에 나와 집에 갈 버스를 기다렸다. 처음 가보는 길에 처음 타는 버스라서 이날은 30~40분 거리에 있는 집을 1시간이 넘어도 가지 못했다. 버스를 놓치기도 하고 버스를 잘못 타기도 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 정말 험난했다. 특히 버스를 놓친 다음 드디어 탄 버스가 잘못 탄 버스라는 걸 깨달았을 땐 차라리 집까지 걸어갈까 싶었다. 오래도록 밖에 있는 시간 동안 법정에 있던 판사나 검사, 변호사를 떠올리며 나도 그들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좋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면 법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나도 문학이랑 법만큼은 언제나 흥미롭다는 것이다. 이번에 법학개론 수업을 듣고, 법원 방청을 가면서 깨달았던 건 아직도 법과 관련된 것들을 볼 때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벅찬 마음이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를 뜨거운 마음으로 만드는 법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또 이번에는 형사재판만 열려서 민사재판을 볼 수 없었지만,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가서 민사 재판도 보고 싶다.
학과 학번 이름:1)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기(문제 인식의 이유 및 필요성)오늘날 교사와 학생 간 갈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교사와 학생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의 보호자와 교사의 갈등으로 변질되기도 하며, 혹은 보호자와 교사의 갈등이 교사와 학생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최근 SNS에서 미국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아무런 말 없이 쳐다보며 무언의 압박을 주고, 학생은 무슨 일이 있다면 말하시라며 이런 행동은 부적절하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하였으며, 이 영상 이외에도 학생과 교사의 갈등이 담긴 영상은 SNS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생과 교사 간의 갈등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요즘 것들은'이라는 말로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축소하고 마치 '요즘 것들'을 제대로 교육하면 갈등이 사라질 것처럼 여기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학생에게 교사는 기계적으로 학교 행정을 수행하며 비합리적인 잣대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존재이며, 교사에게 학생들은 경박하고 이기적이며 교사의 정체감을 위협하는 낯선 불특정 다수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특별한 노력 없이는 당연할지도 모른다.특이한 점은 모든 사람의 관계에서 '자아 노출'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학생과 교사는 친밀감을 느낄 만큼 자아 노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자아 노출'은 상호성의 규범을 염두에 두고 함께 적절히 해야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지만, 교사는 학생과 상담하는 와중에도 학생의 정보를 알아낼 뿐 학생과 비슷한 수준의 자아 노출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사는 수업할 뿐 자아 노출 하지 않으며, 학생들은 성적, 전화번호, 개인정보, 교우관계 등을 일방적으로 노출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더욱 문제가 된다. 애초에 학교라는 공간이 상호성의 규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간과되던 '자아 노출'의 정도를 맞추어 친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교사의 지식 전달 시간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수업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2) 교육커뮤니케이션 학습 내용 중 자신이 선정한 문제를 해결해 줄 특정한 교육커뮤니케이션 방식의 가치 탐구 및 의의 설명하기갈등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상호성의 규범을 지키는 자아 노출'과 '설득의 원리', '협력성의 원리'를 사용할 수 있다. 상호성의 규범을 지키는 '자아 노출'은 학생과 교사의 갈등 문제에서 친밀감을 형성하게 만들면서 기존의 자아 노출 불균형의 문제를 해소한다. '자아 노출'은 상대의 노출 수준과 유사한 정도에서 노출이 일어난다는 상호성의 규범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노출에 대한 불균형이 일어날 때 노출을 중단하고 감소시키는 쪽으로 동기화된다. 자아 노출은 '자주'와 '많이'가 아니라 '함께' 적절한 자아 노출을 해야 한다. 대인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상대방도 나와 같이 자아 노출의 의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자아 노출의 속도와 정도에 대한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의 발전은 서로에게 자아를 노출하는 정도에 비례하며 처음 관계가 형성된 후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림으로써 자아를 노출하기 시작하는데, 이 노출의 정도가 관계의 깊이를 결정하게 된다. 인간의 관계는 만남의 빈도보다 자신의 내면을 어디까지 보일 수 있는지와 관련된 자아 노출의 수위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자아 노출'은 학생과 교사가 서로 친밀감을 느끼도록 하면서 학교 내에서 이뤄지는 함께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 거부감을 줄여주고 갈등이 일어날 여지를 줄여준다. 또한 학생이 교사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교사를 인격적으로 이해한다면 설득의 원리 중 하나인 '에토스', 즉 화자의 인격과 신뢰도를 충족하게 되어 수업 시간에 학생이 집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설득의 원리'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로 이뤄지며 '에토스'는 앞하는 말하기의 요소인데, 교사의 정보 전달 시간인 수업 시간에 이 세 가지 설득의 원리를 고려하여 수업한다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에 진정한 흥미를 자극받지 못한 상태이더라도 기존의 수업에 비해 나은 수업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사는 '협력성의 원리' 중 '질의 격률'과 '태도의 격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친밀감이 높지 않은 관계에서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거짓 정보를 제공한다면 신뢰도를 크게 잃을 수 있을뿐더러,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여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협력성의 원리' 중 '질의 격률'은 진실한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고 거짓이라고 생각되는 말은 하지 말고, 증거가 불충분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며, '태도의 격률'은 명료하게 말하고, 모호한 표현을 피하는 격률이다.이 세 가지 교육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을 지켜 소통한다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제도가 만들어낸 갑작스러운 관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인간관계는 인간형성의 첫 걸음이고 사람이란 반드시 다른 사람과 서로간의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해서 한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성장 발달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친밀감을 쌓은 진정한 인간관계가 된다면 학생은 교사의 수업과 더불어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교사와 학생 간의 인간관계가 학업성취에 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들도 있는데, 한덕봉(1984)는 담임교사에 대한 인간관계의 변화 형태에 따라서 아동의 학업성취도가 변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교사와 아동 간의 관계는 단순히 교과 내용을 매개로 하는 학습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심리적 유대를 가지게 되며, 교사가 아동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아동의 학업성취도와 흥미와 동기는 달라진다고 하였다. Boocock(1972)는 교사의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가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능력을 신장시킨다고 하였다. 결국 세 가지 교육 커뮤니케하는 것이 필요하다.첫 번째 방법은 상호성의 규범과 자아 노출을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교육하고 더불어 자아개념과 자아표현을 교육하는 것이다. 학생이라는 신분 특성상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교사 또한 적절히 상호성의 규범을 유지해야 학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모두 상호성의 규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 않으므로 상호성의 규범과 자아노출, 더불어 자아개념, 자아표현의 개념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성의 규범에 따라서 자아 노출을 해야 하는구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방식과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사소통 방법과 자아노출에 대한 개념을 매 학기 초에 실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이에 대한 내용에는 '상호성의 규범'이 꼭 들어가는 것이 좋으며 상호성의 규범을 어긴 경우, 어기지 않은 경우의 예시를 들어, 과도하게 자아노출을 한 경우 상대가 부담을 느끼는 것과 상대방보다 자아노출을 극단적으로 적게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좋다. 특히 교사가 상호성의 규범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교사가 직접 교육자료를 창작하여 교육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두 번째 방식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상대방의 말하기 태도를 주기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사에 대해 평가하더라도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생각하는 일은 적고, 교사 또한 학생들에게 수업을 평가받거나 학생의 활동을 평가할 뿐 인격적으로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평가해 볼 경험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학생이 교사의 활동을 평가하거나 교사가 학생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처럼 학생과 교사의 관계도 평가하여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사의 경우 학생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 말하기 방식을 평가받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말하기 방식 또한 확인해야 한다. 아래는 평가 점검표의 예시로, 자아 노출을 할 때 내용에 들어가는 자신의 기호, 공공연한 주제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 감정, 정서, 가치관, 믿음름을 모두 알고 있는가?2. 학생(혹은 교사)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상대방의 기호)3. 학생(혹은 교사)와 영화, 사회, 문화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가?(공공연한 주제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4. 학생(혹은 교사)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는가?(감정, 정서, 가치관, 믿음, 판단)5. 학생(혹은 교사)와 친밀도를 평가하자면?(1-10)6. 학생(혹은 교사)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하자면?(1-10)7. 학생(혹은 교사)와의 인간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8. 학생(혹은 교사)와 상호성의 규범에 따라 자아노출 하고 있다고 느끼는가?9. 학생(혹은 교사)가 본인에게 자아노출 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1-10)10. 나(본인)이 학생(혹은 교사)에게 자아노출 하고 있는가? (1-10)11. 나(본인)은 학생(혹은 교사)에게 진실한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노력하는가?12. 학생(혹은 교사)은 나(본인)에게 진실한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노력하는가?13. 나(본인)은 학생(혹은 교사)에게 증거가 불충분한 것을 이야기하는가?14. 학생(혹은 교사)는 나(본인)에게 증거가 불충분한 것을 이야기하는가?15. 나(본인)은 학생(혹은 교사)에게 모호하게 말하지 않고 명료하게 말하는가?16. 학생(혹은 교사)는 나(본인)에게 모호하게 말하지 않고 명료하게 말하는가?17. 학생(혹은 교사)에게 바라는 말하기의 태도가 있는가?세 번째 방식 또한 앞선 방법과 마찬가지로, 설득의 3가지 요소를 교육한 뒤 3가지 요소를 활용하여 수업하도록 계획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앞에서는 말하기 방식과 자아노출 정도를 평가받았다면, 설득의 3가지 요소는 3가지 요소에 대해 교육받은 교사들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 3가지 요소를 담아 수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2주에 3번 이상은 자신의 수업 계획을 설득의 3가지 요소와 연관 짓는 계획표를 작성하고,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시간이 아닌 활력있는 수업 시간이 되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수업 계획표에는 자신이 가르칠 수업 내용다.
나를 이루는 슬픔나의 특징은 문학을 좋아하는 것, 무서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감성적이고 동정심을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내 특징에 대해 내가 중학교 때부터 무서워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감성적인 표현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고 했으며, 감성도 동정심도 많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나를 떠올리면 문학이 먼저 생각나고, 따뜻함이 생각난다고 했다.나는 원래부터 감성적인 표현을 많이 써왔다고 생각했다. 반면, 친구는 내가 중학교 이후로 문학작품을 많이 접하면서 더 감성적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글에 관심을 두고 글을 썼으므로 원래부터 있던 감성적 특징이 문학을 접하면서 더 강화된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다.또한 나는 일반적인 감정보다 동정심을 자주 느끼는 것 같다고 했고 친구가 보는 나는 일반적인 감정이 동정심보다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시를 읽을 때, 시인에게 동정심을 비롯한 감정을 느낀 후 작품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아 보여서 동정심을 먼저 느낀 뒤 감성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했다. 동정심은 일반적이지 않기에 감정이 동정심을 포괄하고 있는 편이 맞으며, 빈번하게 연민을 느끼더라도 친구 말대로 일반적 감정이 동정심보다 많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감정이 많으며, 동정심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다.그렇다면 나는 왜 문학을 좋아하고 무서운 사람을 좋아하며 감성적이고 동정심을 자주 느끼는 걸까?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 나는 나이에 비해 글을 잘 썼다. 생각이 깊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형제인 오빠에 비해 무지했기에 생각을 쌓는 데 집착했다. 그 결과 중학교 1학년 때는 고등학생 수준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며 국어 선생님께서 칭찬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함은 내 강점이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너는 또래와 다르다고 말하는 친구와 선생님을 마주하면서 고립되었다. 그 시절에 삶이나 행복, 선과 악 같은 본질적인 물음을 생각했는데, 그러한 질문을 함께 대화할 친구가 없었다. 심지어 매일 이해하는 위치에 있는 내가 힘든 얘기를 토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힘든 얘기를 하면 ‘그런 생각을 하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네 말과 생각은 한 번도 겪지 못한 것‘이라는 친구들의 편지는 한가득 쌓여 상자에 모였고, 편지가 쌓일수록 그들의 말대로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도 비슷한 사람이 없다는 건 바다에 혼자 둥둥 떠 있는 공포감에 견줄 정도였다. 오래전 느낀 자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식의 결핍을 채우려던 내 노력이 타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해소할 때, 정작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이유로 이해받지 못했다.이때부터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나 동경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 사람들은 특별하다는 이유로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볼 때 그의 외로움보다 돈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한다. 무서운 사람을 볼 땐 무섭다고 생각할 뿐 평범한 사람을 볼 때보다 외로움에 대해 헤아려 주는 사람이 적다. 누군가 타인이 알아주지 못할 외로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면 동정했고 금방 그 사람을 사랑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나와 동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동류이므로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그들을 사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만일 수 있으나 오만이라고 해도 이해받지 못한 외로운 사람이 줄어든다면 그걸로 족했다. 이후 내 사랑은 줄곧 '이해받지 못하는 이들' 혹은 '외로운 이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자주 보여서, 동정심은 나날이 커졌고 곧바로 사랑에 빠지는 사람으로 자랐다.문학을 좋아한 것도 비슷한 연유이다. 중학교 시절을 보낸 뒤, 처음엔 무서운 사람이나 혼자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 특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 그들에게만 동정심을 느끼고 쉽게 사랑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이해받지 못할 외로움과 슬픔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닌다고 깨달았다. 동정심을 느끼는 횟수는 늘어가고, 점차 '이해받지 못하는 모든 외로움'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무서운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가진 외로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깊숙한 외로움을 헤아리고 싶어진 것이다.문학에는 여러 세계와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윤동주 시인을 비롯한 시인들은 고통을 얘기함으로써 생을 눈앞에 데려온다. 문학인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심각하게 파고든다. 문학인의 감정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농도이지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함으로써 이해받는 시를 만드는 이들이 문학에 있다. 문학인은 타인과 다른 커다란 감수성을 가져 외로움을 지니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동류처럼 보여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또한 문학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알려준다. 나는 중학교를 벗어나면서,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문학은 나의 고독도, 타인의 고독도 이해받을 수 있는 세계이고, 내 외로움을 확장해 타인까지 안는 법을 가르치는 세계이므로 문학을 사랑했다.한때는 어른스러움을 꼭꼭 담아 세계를 마주한 적 있었다. 그때는 지나치게 어른이어서 이해받고 싶은 어린이는 감춰져 있었다. 지나친 외로움은 지나친 어른스러움과 손을 잡아 슬픔의 힘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의 슬픔은 완전한 혼자로서 세계를 마주하는 고독감을 주었다. 하지만 슬픔은 결국 내 사랑을 이뤄 내가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도록 지탱해 준 힘이 되었다. 연약한 것에 눈을 못 떼는 이유를 그저 천성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해받지 못한 과거의 나로부터 온 것이었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성숙한 낯선 이 같았지만, 동일한 결핍을 공유하며 단단히 얽매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을 안 했더라도, 네가 어른스러우니 조금 더 이해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랐더라도 분명 저절로 문학을,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에 이기지 못하는 사랑을 좋아했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 느낀 것은 ’어린 나‘ 덕분에 나는 외로움을 이해해서 외로운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슬픔은 나를 이루는 힘이었으며, 타인을 이해했으나 이해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슬픔이 오히려 슬픔마저도 사랑할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1) 행복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학기 초 내가 생각했던 행복에 대한 정의는 ‘소중한 것들과 함께 우울해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고, 수업을 들은 후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고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행복에 대한 정의가 변화한 이유는 행복에 대한 이론을 알아가면서, 행복은 주관적이어서 주체적으로 행복을 알아가려고 하고 느끼려고 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고 깨달았고, 행복을 아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성별의 역설', '웰빙의 역설', 복권 당첨자와 사고 희생자의 행복도 조사 결과 등 구체적인 연구 자료를 보면서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학기 초에는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행복에 대한 이론을 알아가면서 행복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했다. 사람은 막연한 것에는 가까워지거나 접근하기 힘든 것 같다. 행복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탓에 사람들이 행복에 도달하려고만 하고 이해하는 태도는 놓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학기 초에는 이러한 태도였지만 이론을 알게 되면서 내가 어떤 경우에 행복한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그리고 행복 등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행복을 막연한 것이 아니라 가깝게 느낄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으며,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 행복에 도달하게 되는 길이자 행복한 상태이기도 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의 경우 행복 이론을 배우면서 행복에 도달하는 것 같았고 동시에 행복했으며 이론을 더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학기 초에는 소중한 것을 소 있어야 서로 지탱하면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고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 행복이자 행복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2) 자신의 행복조건 10가지 순위나의 행복 10가지 순위는 1. 가족 2. 건강 3. 편안한 집 4. 돈 5. 성과 6. 친구 7. 시간적 여유 8. 취미생활 9. 맛있는 음식 10. 좋은 노래다.3) 나의 행복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 관계 분석과 행복 계획서나의 행복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바라보면, 취미생활이나 비가시화된 영역보다 성과와 같이 가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는 삶의 주요 목표를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며 즉각적 감각의 만족을 중시하는 쾌락주의적 행복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고 미래 목표에 초점을 두는 '성취 주의자'에 비교적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현재를 배제하지는 않고 시간적 여유와 현재의 취미생활을 행복 조건으로 둔다는 점에서는 '성취 주의자'나 '쾌락주의자' 둘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심리적 안정감 모델은 쾌락주의적 행복과 자기실현적 행복을 반영하는 정신건강 모델이다. 나의 행복을 심리적 안정감 모델로 설명한다면 성과와 가족, 친구를 통한 삶의 만족과 긍정 정서 등의 정서적 안녕감,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 주도성을 갖고 방향을 설정하며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등의 심리적 안녕감, 성과를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 안녕감이 나의 행복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할 수 있다.또한 나의 행복조건 중 '돈'은 중요도가 높다. 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아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며, 전시회나 글을 느긋하게 읽는 취미생활이 있어 돈이 많아지면 시간적 여유가 생길 거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을 때 무조건 책을 소유하고환경, 거주지 등 인구학적인 특징에서 이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 즉 행복을 느끼는 데 주요 원천은 심리적인 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돈을 행복 조건으로 꼽은 3가지 이유 역시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더라도 성품이 올바르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므로 '돈'과 사회적 인정은 무조건 인과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돈이 많아지면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아진 돈만큼 시간적 여유가 더 없어질 가능성이 더 높고, 돈이 많을수록 마음껏 책을 살 수는 있겠지만 돈이 많지 않아도 원하는 만큼의 책을 충분히 살 수 있기에 '돈'이 많다고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은 행복에 필수적이므로 돈은 행복 조건에 들어간다.나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 온 편이지만, 내가 더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4가지로 볼 수 있다.첫 번째는 '건강'이 행복조건 중 하나임에도 건강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별한 지병도 없고 정상체중이지만 체력이 없어 많은 시간을 걷지 못하고, 학창 시절 '선비'라고 몇 번 불릴 정도로 죽는 것보다 뛰는 걸 싫어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행복 조건인 '건강'과 거리가 멀다.두 번째는 '돈'에 대한 허상이 있다는 점이다. '돈'이 사회적 인정을 무조건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적 여유를 생기게 하지도 않고, 돈을 많이 모아야만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무작정 '돈'을 행복에 중요한 요소로 보고 '돈'이 행복을 가져올 거라 믿는 문제가 있다. 이는 얼마만큼 돈을 모아야 행복할지 구체적인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큰돈을 원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행복과 멀어지게 할 위험이 있다.세 번째는 '가족', '친구'가 행복 조건임에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대학생 때 만난 지인을 통해서는 관계성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나 가족을 통해서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고, 인간관계가족을 만나는 건 훨씬 힘들다. 따라서 행복조건 중 2가지를 실현하지 못하게 되어 과거보다 덜 행복하게 되었다.네 번째는 유능성과 자율성의 욕구가 잘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에 다니며 성적이나 과제물로 '성과'라는 행복 조건에 달성할 수 있으나 대부분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 취직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하다 보니 삶의 주체가 아닌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역할로 살아가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행복에 대한 나의 정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고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앎'이라는 효율성과 '내가'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주체성'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대학교는 무교임에도 들어야 하는 채플, 배우고 싶지 않은 필수 교양을 들어야 해서 비효율적이고, 다른 과목에서 유능성을 느끼더라도 채플이나 필수 교양은 그러한 뿌듯함을 상쇄시킨다. 이에 따라 유능성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심지어 행복조건 중 '시간적 여유'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므로 더 행복해지지 못하고 있다.내가 정의한 행복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고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결국 내가 어떤 상황에서 행복한지 알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설정한 행복 조건을 잘 실행하고,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나의 행복을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은 먼저 '돈'에 대한 허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돈을 행복 조건으로 생각하는 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만큼 돈이 있어야 더 큰 행복을 좇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이 사회적 인정, 시간적 여유, 소유욕을 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웰빙의 역설'에 의하면 인구학적인 특징에서 이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유의미하게 더 행복하지는 않다. 또한 소득수준별 삶의 만족도에 대한 한국행정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돈이 많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많이 높아지지는 않으므로 돈과 행복은 크게 연관이 없다. 지는 만큼 행복을 가져오는 요소는 아니기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성의 욕구, 소유욕, 사회적 인정을 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채움으로써 돈에 대한 믿음이 실은 실제적 효과가 없는 허구임을 깨달으면 된다. 따라서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읽고 싶은 책을 꼭 구매하고, 매일 30분씩 느긋하게 책을 읽는 시간을 갖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와 함께 일주일 중 가장 뿌듯했던 일을 공유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한 3주마다 지난 3주를 돌아보는 간략한 일기를 작성하면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자율성의 욕구와 유능성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유익한 활동이자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두 가지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므로 체계적으로 과제를 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꼭 해야 할 일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2일 내내 과제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루 4시간 이하로 시간을 정해 최대한 자율성과 유능성의 욕구를 채우는 활동을 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유능성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채플이나 필수 교양을 통해 느끼는 비효율성보다 효율성을 많이 느껴야 하므로 하루 30분 글 읽는 활동을 할 때 유익하다고 느끼는 글을 읽는다. 필수 교양이 유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건 그 과목을 수용하는 태도의 문제일 수 있으므로 필수 교양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유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필수 교양을 적고, 그 과목이 필요한 이유에 관해 노트에 적은 뒤 그 과목에서 배운 것을 실생활과 연관 지어 써보면서 정말로 비효율적인 과목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3주마다 지난 3주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활동 4가지를 작성하고, 자율성의 욕구, 유능성의 욕구, 관계성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했는지 분석하여 확인 절차를 거칠 것이다.또한 건강이 행복 조건이지만 체력이 약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므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한 시간씩 운동하고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나갈 것이다.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다.
기말과제제목 : 드라마 의 여성 주인공 분석: 전통적 여성상과 새로운 여성상의 양면성과목명 : 통합적사고와글쓰기제출일 :학 번 :전 공 :이 름 :[목차]Ⅰ. 서론Ⅱ. 드라마 ‘연인’의 내용과 주인공의 특징Ⅲ. 드라마 ‘연인’의 주인공인 ‘유길채’의 양면성1. 전통적 관습이 남아있는 측면2. 전통적 관습을 벗어나 새롭게 제시된 측면Ⅳ. 드라마 ‘연인’의 ‘유길채’가 전통 시대 여성 이미지로서 갖는 의미Ⅴ. 결론Ⅰ. 서론존 버거는 에서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여자의 존재는 남자의 경우와 다르며, 여성이 타인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가 여성에게 거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여성은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당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존 버거는 누드화를 예시로 여성의 대상화를 설명하는데, 누드화 속에서 관객은 남성이며 여성은 보여지는 존재로 대상화된다고 한다. ‘여성의 대상화’는 현대사회에서도 지워졌다고 보기 어렵다.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아직도 여성은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연약하며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인기작이었던 드라마 , 등은 가난한 여자주인공이 재벌 집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며 의 여성 등장인물 '배로나'는 남성 등장인물의 도움을 받아 학교폭력을 극복하고 꿈에 다가가고자 다짐하는 모습을 보인다.이렇듯 많은 드라마에서 여성 인물이 주체적이지 못한 연약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고유한 개별성을 지닌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 은 그러한 여성이 등장하는 드라마 중 하나로, 여성 주인공은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면서 때로는 전통적 여성상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졌다.이 글에서는 의 여성 주인공의 양면성에 주목하면서 에서 여성 주인공이 어떤 모습인지, 여성 주인공이 대상화를 벗어나기도, 대상화에 멈춰있기도 하는 모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아기를 데리고 도망가라고 소리친다. 또한 유기그릇을 팔기 위해 홀로 다녀오겠다고 하는 행동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전쟁이 났다는 소리에 곧바로 '이장현'을 쳐다보고, '이장현'이 '유길채'를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려고 하자 여성들만 있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장현'에게 의지하는 인물이다.이처럼 의 여성 주인공인 '유길채'는 '낮고 유약한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화하여야 한다.'라는 여성의 본분을 부정하는 듯이 오랑캐를 만난 상황에서도 목숨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인물이고, 좋아하는 ‘연준 도령’을 사로잡는 방식으로 버선을 내리고 그네를 타는 것, 본인의 입술을 주는 것을 택한 인물로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인물이다. 따라서 ‘유길채’는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여성상이면서 남성에 의한 성적 대상화 또는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면성을 지닌다.Ⅲ. 드라마 ‘연인’의 주인공인 ‘유길채’의 양면성1. 전통적 관습이 남아있는 측면앞서 본 것처럼 '유길채'는 전통적 관습과 다른 개별성을 가진 인물이면서 한편으로는 전통적 관습에 얽매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관습이 남아있는 측면은 '길채'가 '연준 도령'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지와 '연준 도령'에게 '길채'가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는 방식과 연관이 있다.먼저 '길채'는 '연준 도령'에게 유순하고 현숙한 여성으로 비치기를 원하며 '연준 도령'이 본인을 좋아하길 바란다. 하지만 '길채'는 조신하고 맑은 여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길채'가 유순히 타인을 따르거나 조신한 여성이 아님에도 '연준 도령' 앞에서 그러한 여성으로 보이길 원하는 것은 지금껏 전통적 여성관이 이상적인 여성을 '낮고 유약한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화'한 인물로 설정하고 정절을 중요하게 여겨왔기에 '길채' 또한 사대부가 여성으로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내면화한 것이다. 기존의 여성상과는 다른 인물이지만 전통적 관습을 내면화하여 매력을 호소하는 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길채'는 '연준 도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본인의 성적 매력을 강조한다. '길채'는 '연준 도령'에게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기 위해 피부가 보일 듯 말 듯한 정도로 버선을 내린 후 그네를 타거나, '연준 도령'에게 입술을 줄 것이라며 다친 척한다. 존 버거는 여성의 대상화를 이야기할 때 '여성은 오로지 남자의 성적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라고 말한다. 이때 ‘길채’의 행동은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 주체성에 주목하지 않고 남성에 의해서 정의되던 전통적 관습이 남아있는 모습이다.'길채'가 성적 매력을 어필한 것은 여성이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여성의 대상화처럼 '길채' 또한 좋아하는 남성 앞에서 대상화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문장처럼 '길채'의 행동은 '길채'가 '연준 도령'에게 자신의 특성 중 '성적인 매력'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남성이 보는 것처럼 본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다.만약 ‘길채’가 ‘여성의 대상화’와 전통적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면 성적인 매력이 아닌 자신의 고유성을 매력으로 호소했을 것이다. ‘길채’의 발랄한 성격도, 대담한 행동도 매력이 될 수 있으나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 사람에게는 매력이 되지 못한다. ‘길채’의 고유성은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연준 도령’이 전통적 여성상을 추구하는 남성임을 ‘길채’는 알고 있었을 것이며 본인이 그것에서 벗어난 인물임에도 오래도록 가치를 배워 내면화한 탓에 이상적인 여성상에 부합하고자 하고,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해 전통적 관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길채'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과 다르지만, 전통적 관습을 에서 '길채'는 '보여주는 여성'이 아니라 '행동하는 주체'로서 '이장현'에게 종속되거나,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곧 본질로 받아들이는 인물이 아니다. '길채'는 왕의 잠자리 시중을 들기 전 얼굴에 상처를 내 시중을 들지 않았는데, 이는 '길채'가 얼굴의 상처와 같이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곧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을 통해 행동하는 주체임을 나타낸다. 또한 남편의 무슨 일 없었냐는 질문에 ‘길채’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지만 '길채'는 대답하지 않으며,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행동에도 좌절하거나 목숨을 끊지 않는다. '길채'는 대답하지 않으면 오해받게 될 거라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이장현’과 재가하기로 한 선택에서도 ‘타인에게 그녀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보다 자신의 이성과 감정이 향하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길채’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길채’는 보이는 모습에 자신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으면 좌절하는 기존의 여성과 달리 완강한 개별성을 갖고 행동하는 주체이며,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측면을 갖고 있다.전통적 관습을 벗어난 두 번째 측면은 병자호란 중에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지 않았던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의미가 정의되던 전통적 관습은 여성을 아버지, 남편, 아들을 평생 섬기는 존재로 규정해 왔으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어야 하는 존재로 이야기해 왔다. 이는 '대상화'로 인해서 '일방적인 관계성'이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 불균형한 주체 중심성이 대상에게서 이성의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여 사물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라는 진미리의 주장으로 살펴볼 수 있다.남성이 아닌 여성만이 유일하게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어왔던 것은 두 성별에서 불균형하게 남성에게 주체 중심성이 있었고, 이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의 이성적 능력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남성을 위해 여성의 존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적에게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타인의 평가가 아닌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여성으로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어야 하는 암묵적인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난 여성으로서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연약하고 온순한 기존의 여성 인물들과 달리 주체적이고 대담한 인물로서 전통적 관습을 벗어나고 있다.Ⅳ. 드라마 ‘연인’의 ‘유길채’가 전통 시대 여성 이미지로서 갖는 의미드라마 의 여성 주인공 '유길채'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면성을 지닌다. '유길채'가 전통 시대 여성 이미지로서 갖는 의미는 모순되게도 '길채'가 전통 시대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벗어나지 못하는 곳에 있다. '길채'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내면화하고, 좋아하는 남성에게 성적으로 자신을 호소하며 전통적 관습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유약한 여성이 아닌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보이는 나'가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정절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기보다 살아갈 방법을 찾는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모습도 보인다. 따라서 '길채'는 전통적 관습을 완전히 벗어나지도, 온전히 따르지도 않는 인물로 어긋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어긋남'은 역동성을 부여하여 고유한 특성을 보이게 한다.존 버거는 루벤스의 그림에 그려진 여성의 어긋남을 보고 '중요한 것은 그런 어긋남 때문에 무엇이 가능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덕분에 여인의 몸은 불가능할 정도로 역동적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길채' 또한 그동안 나오던 드라마의 여주인공과 다르다.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어긋남을 보여준다. 시청자는 '길채'를 보며 '이 인물은 그동안의 여성 인물과 다른 모습이 있네?', '이 모습에서는 전통적 여성 인물과 비슷하네?'하며 '어긋남'을 느끼고, 어긋난 지점이 어디인지 찾아보게 된다. 그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유길채'가 대상화된 여성에 한정된 인물이 아니라 고유한 특성을 가진 입체적인 인격체라고 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