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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노인과 바다 독후감
    노인과 바다 독후감
    노인과 바다 쿠바 근처의 바다에서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인이 있다. 그러나 그가 물고기를 잡지 못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불운한 사람이라 불렀고 그런 이유로 그는 어린 조수와 함께 배에 탈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그는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 운을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운이 그를 찾아왔다. 그의 미끼를 물어온 놈은 아주 큰 물고기인 것이 분명했다. 노인은 아주 큰 청새치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싸움을 시작했다. 며칠에 걸친 싸움 끝에 노인은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싸움과의 시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청새치의 살점들을 상어들에게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노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노인의 배와 함께 남아있던 것은 청새치의 커다란 머리와 푸른 꼬리, 그리고 살점이 다 떨어져 하얗게 드러난 뼈뿐이었다. 감상 물고기를 잡지 못한 지 84일째. 노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다에 배를 띄웠고 그동안의 불운을 청산하게 될 순간과 마주한다. 무거운 입질의 순간에 노인은 기쁜 마음을 뒤로 한 채 신중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놈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인이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은 노인이 비록 며칠에 걸려서라도 그의 조각배보다도 큰 청새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노인은 낚싯줄의 무게를 견딤으로써 상처를 얻었고,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으며 먹는 것도 부실한 채였다. 그런 인내의 시간을 지난 후에 결국 노인은 청새치를 죽이는 것에 성공하였다. 성공한 줄로만 알았다. 청새치를 잡기 위해 멀리까지 나아갔던 바다에서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은 노인이 청새치에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노인은 상어들을 상대하며 지쳤다. 돌아온 집에서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 여기지만 노인은 과연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어내었는가. 분명히 성공이라는 결과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공은 다음 실패의 과정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성공했던 흔적은 남아있으니 이것은 반쪽짜리 성공인가? 이는 꼭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기 전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에피소드의 연결성을 떠올리게 하였다. 일상은 다 읽은 소설처럼 책장을 덮는다고 끝이 나버리지 않는다. 어제의 결과는 오늘의 과정이 되어 내일이라는 새로운 결과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매 일을 너머 매 순간에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성공은 실패를, 어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결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한 성공과 실패의 축적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라고 대답할 것인가.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는 상대적인 것이 아닌가? 같은 결과물이 누군가에게는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실패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공의 뒤에는 실패가, 반대로 실패의 뒤에는 성공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여 얻어낸 청새치를 잃고도 다음 낚시를 위한 준비를 하는 노인은 어쩌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완벽한 성공도 완벽한 실패도 없다. 모두 다른 결과이자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실패의 순간에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성공의 순간에 너무 안도하지도 말아야지. 그저 원하는 것을 위해 견디며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어떨까.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도 할 테니까.
    독후감/창작| 2025.11.04| 2페이지| 1,000원| 조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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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젊은 예술가의 초상 독후감
    젊은 예술가의 초상 독후감
    젊은 예술가의 초상제목은 작가를 지칭하는 표현에 불과한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사전 정보에만 의존한 채 표지를 넘길 때 그런 생각을 하였다. 단어 그대로 나이가 어리고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 즉, 작가 본인의 모습.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맞으면서 틀리다 생각한다. 작가를 지칭하는 동시에 이 글에 공감하며 어쩌면 작가처럼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을 이들을 표현하는 말.젊음은, 예술가는 과연 누구에 의해 정의되는가. 스물은 서른보다, 서른은 마흔보다 젊다. 영원히. 대단한 작품을 내보여야만 예술가인가?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누군가는 예술가라고 칭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이십 대의 청춘과 열정에 집착한다. 그것이 젊음의 끝자락이라 생각하기에.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유명한 예술가처럼 될 수 없음에 좌절한다. 그런 성공을 거두어야만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책 속의 주인공은 가족, 종교와 국가로부터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회, 기성세대가 쥐여주는 지도, 종교가 옳다고 말하는 것들. 그것을 벗어나면 그들은 왜 옳은 길을 가지 않으려 하는지 다그치며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옳은 길과 옳지 않은 길, 이 두 가지 길만이 존재하는가. 분명한 것은 세상이 이분법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으며 위안을 얻고 동시에 안도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앓아온 혼란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선택은 옳은 것인지, 그렇다면 옮은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반대로 타인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 애초에 그에 대한 명확한 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는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수없이 재고 따지며 스스로 갉아먹고 그 고통에 찡그릴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길을, 언제 완성이 될지 알 수 없는 나의 자아를 위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일 테니.유독 겹치어 많은 공감을 끌어낸 주인공이었다. 집단에서 소외되어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충만한 소속감을 느껴본 적도 있었다. 부모의 상충하는 가치관을 모두 따라가기에는 벅차고 힘들었으며, 이해할 수도 없었다. 등 떠밀려 앉아있던 예배당에서는 숨이 막히는 공기에 눈을 데굴데굴 굴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역겨움을 느꼈다. 예민한 감각들과 거기서 비롯된 성정은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자아를 확립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듣고 보고 느끼며 수집한 것들을 내보일 때면 웃기게도 사회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르소나가 습관을 넘어선 것은 꽤 오래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것은 이제 페르소나가 아닌 나의 정체성인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결코 나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헷갈려 자주 의심한다. 영원히 자아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 또한.그렇다고 하여 의심을 주지 않는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모두 반항하던 순간들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페르소나를 벗고 있었다. 페르소나가 나의 자아가 아님을 확인받은 순간에 안도해야 하는가, 여전히 정립되지 못한 자아에 불안해야 하는가. 자아를 확립한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이 그들의 착각일 확률은 없는가. 의심은 끝이 없고, 지금의 순간에 이것은 나의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자 나의 자아 확립을 방해하는 것임을 깨닫는다.그러니 너무 불안에 떤다거나, 성급하게 군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 의심과 불안의 무게와는 별개로 혼란은 계속될 것이고, 감정에 치우쳐진 반항은 나를 위한 반항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사실들을 안다. 그 사실들이 꾸준히 쌓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나는 주인공처럼 속박을 모두 내던지고 나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아마도 이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과 그로부터 내가 도망하고 싶어 하는 것들의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기. 아마도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이 다짐을 모두 뒤엎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것은 어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되겠다.줄거리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를 반영하는 주인공 스티븐 데덜러스의 20살 이전의 삶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을 억압하고 있는 국가, 종교와 가족 등에 대한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모두 제임스 조이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의 따돌림 생활, 권위에 맞선 경험으로 영웅으로 추대되었던 때, 식탁 위로 던져지는 어른들의 의견 싸움, 성적인 끌림과 매춘, 죄책감에 이끌려 향한 종교, 고해성사, 종교인과 예술인이라는 갈림길, 친구들과의 싸움, 예술가가 되기 위한 독립. 나열되는 에피소드들 속에는 주인공의 생각과 깨달음이 나타나며 동시에 그것들을 서술하는 문장 속에서 그의 예술적인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주인공은 반항을 통해 그것들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벗어나며 자신만의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고자 한다.세상에 옳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 이 두가지 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수많은 길이 존재할 뿐. 나는 안도를 얻는다. 내가 옳은 길을 향하고 있는지 수없이 재고 고민하며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후감/창작| 2025.11.04| 3페이지| 1,000원| 조회(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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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독후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독후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줄거리작가 박완서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자서전처럼 쓴 어린 시절의 글이며 성장소설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겪고, 그 후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작가 본인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아주 어릴 때 지냈던 박적골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순수한 듯하나 마냥 순수한 것은 아닌 것 같은 어린 작가의 모습. 이후 자식들을 위한 상경의 꿈을 가지고 있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가게 된 것. 원하지 않았고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름 잘 지나간 서울에서의 학교생활과 그런 중에 광복을 맞이하던 순간. 이후 대학생이 되자마자 한국전쟁 시작된 한국전쟁 속의 작가와 가족들의 모습들이 서술되어 있다. 이후의 전쟁 상황과 20대의 작가에 관한 이야기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진다.독후감싱아가 무엇이지? 처음 접하게 된 단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일으켰다. 싱아는 신맛이 나는 풀로, 데쳐 먹거나 쌈, 샐러드를 해 먹기도 한다고 하는데, 주로 산에 많은 편이나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는 설명을 보게 되었다. 이후 이 책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목 속의 싱아가 마냥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존하여 쓴 글을 소설이라도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아주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쓰지만, 기억은 불확실성을 지녔기에 기억과 기억 사이의 연결고리는 상상력으로 연결하였다는 말도 함께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 구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작가의 기억 속 사실들과 그에 대한 감상들의 나열이기에, 그 사이에서의 상상력이라 한들 사실 속에서의 연결고리가 그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 구분하기 어려운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을 살아본 적도 없으니. 덕분에 소설 같은 작가의 기억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기억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척하는 주관적인 것의 산물이라 생각하기에, 책의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도 이 소설을 씀으로써 새로운 기억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소설 초반부의 박적골의 모습은 세상과 조금은 동떨어지진 모습으로 일제 강점기라는 임을 잊게 하였다. 동시에 나의 어릴 적 조부의 동네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산속에 있는 작은 동네에 물건 하나 사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30분이나 나가야 했다. 마루에 앉아있으면 담벼락 너머로 밭일이나 성묘를 끝내고 길을 넘어오시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부엌 구석에 앉아 큰어머니들의 잡담을 엿듣다 먹을거리를 얻어먹던 기억이 있다. 작가의 기억 속 순간들과 순간 속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사실적이라 매우 생생하게 다가왔고, 덕분에 쉽게 몰입하며 빠르게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후 서울의 모습부터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서울을 향한 열정이 독하게 느껴졌다. 딸이 신여성이 되기를 원하던 어머니. 어쩌면 훨씬 편할 고향에서의 삶을 버리고 바느질로 아들과 딸을 뒷바라지하는 삶. 바라던 대로 아들을 총독부에 취직시키고 딸을 대학교까지 보내며 새집을 사서 이사하기까지 하는 어머니. 작가의 시선에서 쓰였음에도 얼마나 그 의지가 강한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작가가 느꼈던 어머니의 모순적인 순간들도, 그에 대한 작가의 감상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그러나 작가 본인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등 떠밀림에 고향을 떠나야 했고, 문 안의 학교에 다녀야 했고, 그래서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채 겉도는 작가의 외로움을 보았다. 그 서울에서 싱아에 대한 구절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통해 싱아는 작가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매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싱아를 먹고 싶어 하던 구절에서 후에 싱아를 보았으나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먹지 못하는 과정까지는 작가가 결국에는 조금씩 서울에 적응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던 작가가 점점 혼자에 적응하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과 함께였다.
    독후감/창작| 2025.11.04| 2페이지| 1,000원| 조회(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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