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흥사(大興寺)
- 최초 등록일
- 2006.03.25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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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흥사의 개관 역사 가람배치 문화재들을 설명했습니다
목차
대흥사의 연혁
대흥사의 가람배치
대흥사의 문화재
본문내용
1.개관
대흥사는 우리 국토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 줄기의 ‘너무내’라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별 구림이 장춘 동에 속하고 현재 대한 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대흥사는 본래 ‘한듬절’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두륜산(頭輪山)의 원래 이름이 한듬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한자와 섞여서 ‘대듬’이라고 부르더니 나중에 대둔산(大芚山)이라 불리게 되었고 한듬절은 ‘대듬절’에서 대둔사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대둔산은 중국 곤륜산(崑崙山)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여기서 다시 뻗은 태백산 불기의 끝이라는 뜻에서 백두산과 곤륜산에서 하나씩 따서 두륜산(頭輪山)이라 하였던 지명이 일제시대 때 지명을 표기하면서 ‘륜’자를 바꾸어 두륜산이라 하였고 대둔산은 대흥사로 고정되었다. 1993년 두류산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하였다.
1605년 1월 청허당 서산대사가 입적을 압두고 대둔산은 오랫토록 보전이 잘될 것이고 자신이 출가 한 곳이 지리산이고 임금님의 덕이 온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발을 두륜산에 둘 것을 유언하자 사명당과 처영 스님이 이 뜻을 받들게 되어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순조 (純祖) 3년 (1823년)초의선사(草衣禪寺), 수룡선사가 편집하고 기어, 호의가 교정한『大芚事誌』는 그전부터 내려오던 대둔사에 관련된 책들의 내용을 살리면서 오류를 교정을 살린 책으로서 자료를 수집한 혜장(惠藏)선사는 대둔사의 창건연대를 신라 말기로 잡았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유물로는 응진전 앞 삼층석탑(보물320호), 북미륵암 마애불(국보30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등 모두 나말여초의 시대 것이기에 라말 여초에 창건된 절이라고 여겨진다. 임진왜란 이후에 서산대사의 의발이 모셔지면서 대둔사의 사세는 크게 일어났으며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대 종사(宗師)와 13대 강사(講師)를 배출한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면모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석불.대원사 1996
대흥사 대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