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독후감

목차

없음

본문내용

한국전쟁의 잿빛 배경 속에서 신앙과 양심이 부딪치는 순간을 그린 장편을 읽고 나니 마음 한쪽이 오랫동안 식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다. 총성과 폭격이 도시의 숨결을 바꿔 놓은 자리에서 사람들은 먹을 것과 안전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말의 의미와 진실의 방향까지 잃어버린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겉으로는 질서가 돌아오는 듯 보이는 시기인데도, 길모퉁이마다 의심과 공포가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누군가는 믿음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다르게 말한다. 진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갈래갈래 흩어지면서, 사람의 얼굴은 어느새 서로를 견디기 힘든 거울이 된다. 나는 그 얼룩진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다.

소설의 중심에는 12명의 목사가 처형당한 사건이 놓여 있다다. 총살의 흔적은 차갑고 분명한데, 그 죽음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말해진다. 누군가는 순수한 희생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정치가 만든 상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남아 있는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숭고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 누군가는 거짓이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순간을 끝까지 질문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 사건을 둘러싼 말과 말 사이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사람의 숨이 맺혀 있다. 그 숨은 눈처럼 사방에 쌓이고, 이야기를 듣는 이의 어깨까지 무겁게 만든다. 내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무게가 점점 더 선명해졌 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시선은 군의 정보요원으로 일하는 젊은 장교의 눈에 기대고 있다다. 그는 교회와 권력, 군인과 시민, 신앙과 이념 사이를 오가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진실은 한 가지 색을 허락하지 않는다. 목숨을 잃은 12명에 대한 추모와 그 죽음을 해석하려는 정치의 언어가 뒤섞이면서, 조사라는 행위도 어느 순간 도덕의 심판이 되고 살아 있는 이의 양심을 흔드는 거울이 된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