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북학의
- 최초 등록일
- 2004.05.11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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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일은 느낌 그대로 적은 것이고, 직접 서술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보실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가벼운 글입니다.
목차
박제가의 북학의 내용과 정치적 함의
본문내용
박제가는 1750년(영조 26)에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였으나 서자의 신분과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어려운 생활로 인해 매우 소극적인 성격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해‘열 한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묵동 집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필동으로, 거기서 묵동으로 갔다가 또 필동으로 전전하며 간신히 연명해 돌이켜 생각하기에도 끔찍스럽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어려운 삶과 신분으로 인해 그의 개혁적인 사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제가는 대표적인 실학자 박지원을 선배이자 스승으로 모시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교조적이고 모방적인 학문을 거부하고,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고자 하였다. 1777년 정조때 '서얼허통법'의 반포로 서얼들이 하급관리에 고용되면서 박제가는 1779년에 이덕무, 유득공, 서리수등과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임명되고, 국왕의 총애를 받는다. 정조의 파격적인 인사정책에 힘입어 관리로서 그의 이상을 하나하나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진북학의」를 상소문 형식으로 작성하여 왕에게 올려 개혁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비록 집권보수세력에 의해 뜻이 제대로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개혁은 지금 시대에 적용해 본다 할지라도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주칠성 『실학파의 철학사상』(예문서원, 1996)
박제가지음 박정주옮김 『북학의』 (서해문집,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