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에 대한 상반된 평가
- 최초 등록일
- 2020.12.20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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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물 선정 이유
2. 광해군에 대한 혹평
3. 광해군에 대한 호평
4. 광해군에 대한 견해
본문내용
1) 인물 선정 이유
조선시대 폭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왕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 그는 예민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할 만큼 훌륭했다. 실제로,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한 문헌에서도 그에 대한 혹평이 존재하지만 굉장히 호의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그에게 왜 폭군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는지, 반대로 어떤 훌륭한 업적을 남겼기에 오늘날 재평가되고 있는지 조사해 보고 나의 견해도 덧붙여 보고자 광해군을 주제로 선정하였다.
2) 광해군에 대한 혹평
(1) 광해군의 무리한 토목공사
광해군이 ‘폭군’ 혹은 ‘혼군’으로 불리게 된 원인 가운데 중요한 것은 토목공사와 관련된 것이다.예로부터 토목공사를 자주 벌였던 임금치고 말로가 좋았던 사람이 별로 없지만,광해군은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유례가 없을 만큼 궁궐 등 왕실과 관련된 건축물을 새로 짓고 화려하게 꾸미는 데 열심이었다.그는 1608년 즉위 직후 종묘의 중건을 마쳤고,부왕 선조가 시작한 창덕궁 중건사업을 재개하여 1611년에 완성,이어했다.창덕궁 중건을 마친 뒤에는 다시 창경궁을 중수하는가 하면 돈의문 안에 경덕궁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정원군의 사저가 있던 인왕산 부근에 왕기가 있다는 풍문을 듣고 인경궁을 지었고,북학 자리에는 자수궁을 짓는 등 궁궐 공사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