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인물재평가.hwp
- 최초 등록일
- 2017.10.22
- 최종 저작일
- 2017.10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번 한국사 과제로 “한국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어떤 인물을 재평가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 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 흥미를 느꼈던 점과 사극으로 자주 접할 수 있었고 현대에 와서 드라마, 영화, 서적 등에서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광해군’에 대해 자세히 파악해보고 조사해보기로 했다.
5000여년 가량의 역사를 지닌 조선 왕조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나 불행한 삶을 마감했던 왕이 3명 있다.
바로 단종과 연산군, 그리고 지금 내가 재평가 하려고 하는 광해군이다.
그중 광해군은 쫓겨난 이후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조선후기에 나온 역사책이나 개인 문집을 보면 광해군에 대한 표현은 “혼군”이나 “폐주”라고 불리어졌다.
과연 무엇이 이렇게 광해군을 평가 절하되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과연 광해군은 정말 그렇게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였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 광해군은 새롭게 재평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7C 조선은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왜란의 상처로 온 나라가 피폐하고 민심은 흉흉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을 안정시켜야 할 중앙 정치에서는 붕당으로 인한 당파간의 논쟁으로 제대로 된 정치운영이 되지 않고 국가의 기반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에 대외적으로는 당시 동아시아와 절대 강자 명나라가 쇠퇴하고 북방에서 여진의 후금이 강성해지면서 국제관계가 매우 복잡해지며 급변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조선을 통치하던 왕이 바로 광해군이다.
그는 왜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조선을 재건해야 되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과제를 안은 군주였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광해군은 여러 개혁정책을 펼치려 하였고 왕권강화를 단행해 왕권의 기반을 다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실리 외교” 라 불리는 명과 후금사이의 외교 정책으로 조선사회의 안정을 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1623년 서인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인해 역사의 패배자로 격하되고 말았다.
참고 자료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저자 오항녕|너머북스 |2012.09.08
네이버 지식백과- 광해군 [光海君]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