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완용의 생애
2. 독립협회 초대위원장 임명
3. 한일합방조약 체결
4. 3.1운동 경고문 발표
본문내용
1. 이완용의 생애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이호석과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0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의 양자가 되었고, 1807년에 양주 조씨 병익의 딸과 결혼하였다. 188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쳤다.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 주차미국참찬관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이조참의를 지냈다. 같은 해 12월에 다시 참찬관으로 미국에 갔다가 1890년 10월에 귀국하여 우부승지, 내무참의, 성균관 대사성, 공조참판, 육영공원 판리, 외무협판 등을 거쳐 학부대신이 되었다.
1895년 8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바로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했는데 미국으로 가려다가 당분간 정세를 관망하는 사이에 아관파천이 있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불려간 그는 친러파로 변신하여 외부대신 및 농상공부대신 서리가 되었고, 탁지부대신 서리, 학부대신 서리 등을 겸하는 한편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하고 학부대신, 평안남도 관찰사, 중추원 의관, 비서원경, 전라북도 관찰사, 궁내부 특진관 등을 거쳤다.
러일전쟁이 일본 쪽에 유리하게 되자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하여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주동한 이완용은 그 공으로 의정대신 서리 및 외부대신 서리가 되었다가 을사보호조약의 결과 조선의 통감이 된 이토의 추천으로 의정부 참정대신이 되었다. 또 이토의 요청에 의해 통감부 농사과 촉탁 조중응을 법부대신으로, 일진회 고문 송병준을 농상공부대신으로 하고, 임선준을 내부대신, 이병무를 군부대신, 이재곤을 학부대신, 고영희를 탁지부대신으로 하는 내각을 조직했다. 그리고 곧이어 의정부를 내각으로 바꾸게 되자 이완용은 낸가 총리대신이 되었다.
참고 자료
김윤희 저, 이완용 평전, 한겨레출판. 2011.
정운현 저,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인문서원, 2016.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친일파 99인, 돌베개, 1993.
최용범 지음,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페이퍼로드, 2007.
박은봉 지음, 한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