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과] 친일파 이완용
- 최초 등록일
- 2004.09.1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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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미국통에서 친러파·친일파로
2) '을사조약' 체결의 주역으로
3) 3․1 운동이 일어나자 세 차례의 경고문 발표
3. 결론
본문내용
한일'합방'조약 체결 당시의 내각 총리대신으로, 매국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이완용의 생애는, 일단 관계로 나아갔다가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후 미국통의 외교관리가 되었다가 아관파천, 러일전쟁 등을 계기로 친러시아파·친일파로 변신해 가는 과정과 친일파로 변신한 후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 매국의 원흉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 대가로 일본 제국주의의 귀족이 되어 반민족행위를 계속하면서 잔명을 보존하던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자를 경덕, 호를 일당이라 한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우봉 이씨 호석과 신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에 양주 조씨 병익의 딸과 결혼했으며, 1882년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이조참의를 지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