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증산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2.11.01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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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강증산(姜甑山)의 생애
2.강증산(姜甑山)의 사상
(1)천지개벽(天地開闢)
(2)천지공사(天地公事)
가.해원(解寃)
나.상생(相生)
다.보은(報恩)
라.원시반본(原時反本)
본문내용
⊙강증산(姜甑山)의 생애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증산은 신미(1871년) 음력 9월 19일 전북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客望里)에서 태어났다.(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본관은 진주이며 본명은 일순(一淳), 자(字)는 사옥(士玉)이며 증산(甑山)은 그의 호이다. 부친의 이름은 흥주(興周)이며, 어머니의 성은 안동 권씨(權氏), 이름은 양덕(良德)이다.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道典)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권씨의 태몽에 갑자기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 몸을 덮으매, 온 세상이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고 이로부터 잉태하여 13개월만에 그를 낳으니, 이때 권씨의 나이 스물 두살 이었으며, 출산 때에는 그의 아버지가 두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산모를 간호하는 것을 비몽사몽간에 보았는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고 밝은 기운이 집을 둘러 하늘로 뻗쳐올라 7일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학문적 소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빈곤 때문에 일찍 학업을 중단하고 14 ∼17세 때에는 남의집살이와 나무꾼 생활도 하였으며, 21세에 결혼한 후 처가에서 훈장 생활도 하였다. 1894년에 동학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이 혁명은 실패할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동학 혁명 후에 나타난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보고서 인간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종교를 세울 결심을 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