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 재정문제

저작시기 2017.10 |등록일 2018.11.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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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앙리 4세 ~ 루이 13세 치세 동안의 재정문제와 그 해결
Ⅲ. 루이 14세 치세 동안의 재정문제와 그 해결
Ⅳ. 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부르봉(Bourbon) 왕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선정으로 칭송받는 앙리 4세와 그 심복 쉴리 공작이 주도한 각종 정책에 힘입어 프랑스는 순조롭게 왕권 강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기틀이 되는 재정적 기반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섭정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실정 이후로, 루이 13세와 루이 14세가 즉위했던 프랑스의 17세기 절대왕정은 다양한 재정문제를 직면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는 그 정당성을 위해 절대왕정 시기의 사치와 향락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18세기에 이르러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되는 왕족들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민생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방탕하게 살았으며, 이것이 프랑스 백성을 궁핍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재정문제의 원인이 그러한 왕족의 낭비벽에 있는 것이라고 보기가 쉽다.
그러나 실상으로는 17세기의 절대왕정이 직면한 재정문제의 원인은 ‘전쟁’에 따른 과소비와 그 해결의 실패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절대(absoulte)라는 형용사를 붙일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룩하기 위해 근대의 유럽 군주들에게는 상비군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러한 상비군은 대내적으로는 중세 봉건제 사회까지 왕 못지않은 권력을 휘둘렀던 귀족의 사병제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대외적으로 외국과 전쟁을 하고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이 컸던 것이다.
앙리 4세와 쉴리 공작이 설립한 재정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반복해서 이루어진 전쟁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화하기란 거의 불가능이었다. 따라서 17세기를 대표하는 루이 13세와 루이 14세, 그리고 그들을 보필한 대신들은 이 비용을 어떻게든 감당하기 위한 여러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큰 기준으로 그 대안은 세수입 증강, 관직매매, 세금 선납제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17세기에 들어와 처음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공작이 시도한 해결책은 당연히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것이었다. 국왕의 주요 수입은 역시 세수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7세기 초기 세금은 점차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수입만으로 전쟁 지출을 감당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세를 높이는 방법은 프랑스 국민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 증거로 프롱드 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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