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절대왕정의 특징 - 절대군주와 관직매매에 따른 부패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9.05.30
- 최종 저작일
-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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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절대 국가의 등장 배경
Ⅲ. 프랑스의 절대군주들
Ⅳ. 프랑스 절대왕정기의 부패 - 관직매매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절대왕정은 암흑시기라고 평가되는 중세의 붕괴 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정치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절대 국가가 등장 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등장배경을 무엇일까?. 또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가장 대표적인 왕인 ‘태양왕’ 루이14세가 “나는 국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절대주의 사상을 뒷받침해준 것은 왕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이다. 그 시기에는 끊임없는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계층 간의 갈등, 잦은 자연재해로 그야말로 아비규환 [阿鼻叫喚] 이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국왕들은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어떻게 아비규환의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굳혀갔는지 알아보자.
더불어 프랑스 시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희대의 망언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면 프랑스 절대왕정 말기가 얼마나 부패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 절대왕정기의 부패 중에서 관직매매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Ⅱ. 절대 국가의 등장 배경
절대 국가의 등장 배경으로는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 째로 가장 큰 배경으로 중세유럽을 받치고 있던 봉건제가 흔들렸다. 봉건제의 붕괴 원인 이유로는 영주의 경제력 약화이다.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부추긴 노동력부족과 물가상승이다. 당시 경제의 주축인 농업의 수확량은 인구에 미치지 못했고 사람들 역시도 출산을 조절하지 못하였다. 당시 한집에 스무 명이 넘는 아이가 출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인구는 항상 적었다. 그 이유는 인구가 늘어나면 수요가 증가했고 항상 식량이 부족했다. 그 이유는 곡식이 부족하니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의 평균 수명은 대략 20살~25세 정도였다. 흉년이 들면 곡물 가격은 상승하는데 밀소비자는 호밀을 구입하고 호밀소비자는 더 싼 곡물을 구입하게 되면서 결국 고급 곡물보다 질 낮은 곡물의 가격이 더 빨리 상승한다. 영주들이 노동을 더욱 착취하면 농민반란으로 이어졌고 영주들은 이것을 막기 위해 국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참고 자료
이주영 『서양문명의 역사』 삼영각 2008
조르주 뒤비,로베르 망드루 ° 김현일 옮김 『프랑스 문명사 (下) 17세기-20세기』까치 1995
임승휘 『유럽의 절대 군주는 어떻게 살았을까?』민음인 2011
임희완 『서양사의 이해』박영사 2002
백인호 『프랑스 절대왕정기의 부정부패』한국사 시민강좌 제22집, 일조각 1998.2, 203-217 (15 p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