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발생과 기원시조의 발생과 기원에 대한 논의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국문학계가 풀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선행 연구 업적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발생 시기를 추정한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선행 형태의 탐색을 위주로 한 것들이다.) 권두환, 「시조의 발생과 기원」,『신편 고전시가론』, 새문사, 2002, p.308발생시기의 추정시조 형식의 연원은 아주 오래 되었으리라 보아 마땅하지만, 오늘날 시조라는 이름으로 널리 일컫고 있는 문학 갈래는 고려 말엽으로 보는 것이 시조학계 전반에 걸쳐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 전기 사람들) 을지문덕, 성충, 최치원 등이 지었다는 시조도 몇 편 전하지만, 모두 후대의 의작으로 보는 것이 관례이다.) 조동일,『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1994, p.203조동일은 고려 후기에 이르면 시조를 남겼다는 작가) 우탁, 이존오, 이조년, 정몽주, 이방원 등가 많아질 뿐 아니라, 우탁(禹倬, 1262∼1342)이 지은 라고 불려진 두 편을 예로 후대인의 의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늙음을 한탄하는 사연을 묘미 있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뚜렷한 개성이 인정된다. 이러한 노래를 우탁에다 가탁해서 지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자료를 실은 여러 시조집에서는 한결같이 우탁이 지었다고 하거나 작자를 표시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다른 사람을 작가로 잡은 것은 하나도 없다.春山에 눈 노기다 빛람 건듯 불고 간 딪업다져근듯 비러다가 밑리 우희 불이고저귀 밋팅 힝 무근 서리링 녹여볼까 힝노라한 손에 가시를 들고 힝 한 손에 막딪 들고늙다 길 가시로 막고 오다 白髮 막딪로 치랴팅니白髮이 제 몬저 알고 즈림길로 오더라하지만 백제의 성충이 그 비장한 최후로 인하여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기에 후대인의 의작을 의심했듯 이방원의 「何如歌」나 정몽주의 「丹心歌」의 경우도 의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게 된다. 이에 따라 현전하는 자료를 대상으로 작가와 작품의 창작년대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을 예로 들어 주장한 15C발생설이 있는데 지나치게 실증적인 자료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李鼈의 「藏六堂六歌」와 같이 이 시기보다 앞선 작품이 발견되기만 하면 쉽게 부정될 수 있다.앞서 말한 13세기발생설과 15세기발생설 이 두 주장은 구체적인 작가의 등장을 곧 시조의 발생 시기와 연관지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구체적인 작가의 등장은 장르 형성기에 이루어지기보다는 다음 시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권두환,「時調의 發生과 起源」,『고시조 연구』, 태학사, 1997, p.11 참조따라서 최근 시조 발생론 자체에 대한 연구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일단 확실한 논거를 확보하고 있는 16세기를 기점으로 삼아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방법과 시각을 동원하여 그 이전 시기를 재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선행형태의 탐색시조의 발생시기를 구체적인 작가의 등장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논의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시조의 형식이 한시 혹은 불가에서 연유했다는 외래기원설과 민요, 향가, 고려가요 등 전통적인 우리 시가의 형식에서 연유했다는 재래기원설로 집약된다.) 권두환,「時調의 發生과 起源」, 앞의 책, p.12 재인용외래기원설의 대표격인 한시기원설은 한시의 형식이 절구의 4행은 그 의미상 전개가 기·승·전·결의 4단계로 되어 있는데 시조의 3장도 그와 같다는 점과 시조의 한 구가 7음절을 기준으로 구성되고, 또 중장의 첫구가 5음절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한시의 7언 또는 5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한시에 현토하거나 한시를 번역하여 만들어진 시조가 많다는 점 등을 주요 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기·승·전·결의 구성은 문학 일반의 특성이므로 굳이 시조 형식의 연원이라고 내세우기는 어렵고, 7언 절구에 토를 달아 시조를 만들 경우 그 한 구가 최소한 8음 내지 9음으로 구성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등임을 들어 부인될 수 있다.) 권두환, 앞의 책 p.13참조김대행,《시조유형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6, p.p 46-47 참조재래기원설 중 시조의 연원을 찾는 견해로서 가장 많이 제시된 것이 향가연원설이다. 향가가 의미상 3개의 단락으로 되었다는 점이나, 향가의 삼구육명의 뉘앙스가 시조의 삼장육구와 비슷하다고 한 데서 나온 추리이나 향가의 의미상 3분절과 시조의 그것과는 통사적 대응에 무리가 많을뿐더러, 더군다나 삼구육명이라는 말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조의 형식과 관련시켜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김대행, 앞의 책 p.48 참조최근 재래기원설에 대한 논의 중 크게 주목되는 것은 「북전(北殿)」기원설이다. 「북전」은 고려후기 충혜왕 때에 궁중에서 연행되었던 악곡인데 그 곡에 붙여 부르던 노랫말이 온전하게 전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던 작품이다. 세조 때의 음악을 반영하고 있다는 『大樂後譜』에 그 악보가 전하고, 성종 때 원 노랫말이 음란하다고 해서 고쳐 쓴 노랫말이 『樂學軌範』에 전한다. 또 조선전기에 편찬된 국악자료인『琴合字譜』와 조선후기에 편찬된 시조집 『靑丘永言』,『海東歌謠』등에 '북전'이란 곡조명과 그 곡조에 붙인 노랫말이 남아 있다.성호경은 이들 노랫말이 조선초의 사대부들에 의하여 속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 노랫말들에 순서를 부여함으로써「북전」의 원형이 다음과 같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권두환, 앞의 책, p.8 재인용(1연)흐리누거 괴어시든 어누거 좃니져러젼칭젼칭로 벋늬믓 젼칭로셜면짜 가싶론 딪 범그러 노니져 -(『琴合字譜』,『平調北殿』)(2연)누은들 짜이 오며 기딪린들 님이 오랴이제 누워신들 어늬 짜이 힝마 오랴칭하로 안즌 곳에셔 긴 밤이나 새오쟈 -(朴氏本『海東歌謠』)(3연)空房을 겻고릴동 聖德을 너표릴동乃終始終을 모링잎건마링다當시론 괴실싶 좃짜노이다 -(『琴合字譜』,「羽調北殿」)(4연)잎자 내 黃毛試筆 墨을 뭇쳐 窓 밧긔 디거고이졔 도라가면 어들 법 잇거마다아므나 어더 가뎌셔 그려보면 알리라 -(珍本『靑丘永言』)(5연)(? 아소 님하 원대평생에 여힐싶 모링옵새)성호경은 앞의「북전」2연과 4연이 시조집에 수록되어 있는 현실을 존중할 때 각각의 단락별로 해체되는 과정에서 시조형이 성립되었다는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이러한 시도는 시조의 자수율에 얽매여서 유사한 형태를 찾는 일에 골몰했던 논의나, 단순한 율격론적 대비만으로는 시조의 기원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정보화 사회 : 신화와 진실서 론서 론 -오늘날 '정보' 란 단어와 더불어 '정보사회'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말도 드물 것이다. 우리 일상에 속에서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전자미디어 및 정보통신 기술이 일상 생활에까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일반인들도 '정보화' 의 변화를 점차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국제화, 지방화, 정보화, 개성화 등등 무수한 변화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고 있다. 이중에서도 정보화의 물결은 모든 변화를 주도하는 큰 흐름으로 부각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 아니 세계는 정보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정보사회가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재택 근무, 홈쇼핑, 원격교육/의료, 화상전화 등 일상 생활에서부터 산업 및 행정·정책에 이르기까지 전혀 새로운 정보기술 덕분에 이 고달프고도 불안한 산업사회로부터 벗어나 안락한 사회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선진 각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정보화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공 부문을 막론하고 그 비중이 더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1980년대 중반이후 정부의 홍보, 기업의 광고 및 언론매 체의 선전을 통해 정보사회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한국사회 전반에 넘쳐흘렀으며, 개별 시민에게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정보화에의 적응 필요성이 쉴새 없이 강조되었다. 정보화정책의 초기단계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이 발간한 {2000년을 향한 국가장기발전구상}(1985) 이라는 거창한 책자는 2000년의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고도 산업 및 정보화사회", "평준화와 다양화가 병행하는 사회", "국제화 된 사회"로 특징짓고 있다. 동보고서는 2000년에 이르면 "컴퓨터의 보급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수집, 처리 및 활용이 개인, 가정, 기업 및 사회전반의 활동영역에 급속히 보급되고 생활양식에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매우 편리한 생활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정보사회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펴고 있다. 또한 체신부사회가 '체제단절' 이냐 아니면 사회와 '연속성' 을 보이느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정보사회의 허와 실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룰 예정이라 두 번째 담론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앞서 Hamelink가 언급한 비관론적 시각에서 언급된 다소 추상화된 정보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본론에서는 정보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을 정보사회가 제시한 긍정적인 면과 더불어 다루어 보고자한다.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 일화를 떠올려보자.1981년 당시 CNN 방송 회장이었던 테드 터너는 말했다. "신문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종이신문은 향후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라는 의견에“화장실이 있는 한, 종이신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 “야구장에서 TV를 깔고 앉을 수 없지 않습니까?”라는 다소 유머스런 의견들이 신문의 사장설에 반론을 제기했다. 실상 지금 그의 말은 틀린 것이다.이처럼 정보사회의 첫 번째 동인이라 여길 수 있는 정보기술의 발달은 폭발적인 뉴미디어 생산을 가중시켰다. 이런 연유로 신문의 사장설, 라디오의 죽음 등이 거론되었으나 현재 과거의 예측대로 진행되어진 것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보의 물결 속에서 그것의 허와 실을 밝혀내기란 그것이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에서 보여지는 정보사회의 쟁점 및 역기능을 살펴보는 것은 정보사회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라 믿는다.이 글에서는 정보와 정보화, 정보사회 등의 개념과 의미를 간략히 고찰해 봄으로써 정보사회의 실체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정보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검토함으로써 정보사회의 의미를 재성찰할 수 있는 문제 제기로 삼고자 한다.본 론 -본 론정보와 정보사회의 개념정보의 개념(『정보사회론』,전석호, 나남출판)정보의 원어는 중세 라틴어인 imformaio에서 출발한다. 당시의 의미는 주어진 어떤 '형상', '구성' 또는 '교시' 등을을 동질화시킨다는 문제가 있다.직업적 정의정보사회의 출현에 대한 흔한 척도 중의 하나는 직업의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보업무와 관련된 직업이 지배적이 될 때 '정보사회'가 등장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사무직원, 교사, 법률가 그리고 연예인 등이 광부, 제철노동자, 두부노동자 그리고 건설노동자들 보다 많을 때 '정보사회'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직업분포에서의 변화는 '정보사회'에 관한 가장 영향력있는, 즉 다니엘 벨 이론의gortladlke. 벨은 '화이트칼라 사회'(그리고 정보노동)의 등장과 산업노동의 쇠퇴를 통하여 계급에 기반한 정치적 갈등의 종언, 보다 많은 공동체적 의식, 그리고 성별간의 평등성의 확장 등과 같은 중대한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이러한 '정보사회'에 대한 직업적인 척도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은 먼저 노동자들을 특정한 범주에 할당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정보노동자'의 정확한 비율을 보여주는 통계적 수치는 연구자들이 범주를 구성하고 사람들을 할당하는 복잡한 과정을 은폐하고 있다. 또한 직업이 어디로 가장 적절하게 범주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자의 인식 결과인 단정적인 수치들에 대하여 회의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들은 다양한 업무를 동일한 범주로 할당함으로써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동질화되는 문제를 초래한다. 이에 따라 전략적으로 핵심적인 정보직업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공간적 정의'정보사회'에 대한 공간적 개념은 사회학과 경제학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핵심은 지리학자들의 공관에 대한 독특한 강조에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지역을 연결하고 시간과 공간의 조직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보 통신망(network)이다. 이에 따른 정보유통의 양과 속도의 증가를 새로운 유형의 사회의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는 지리학자들의 공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관련이 있는데 모든 것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지만, '통신망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공관과 시간의 특성이 변형되어 왔 재형성(reshaping)하는 정도로 평가한다. 동시에 구조론자들은 정보기술로 인한 변동과정을 거부하는 회의적이나 비판적 입장을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20세기 후반의 정보기술은 전례없는 경제적 산업구조의 변모를 초래했으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사회변동을 주도시킬 만한 요인적 잠재성이 매우 높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정보화에 따른 사회변동의 모습정보화가 초래하는 사회변동을 아래 표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고 이런 변화에 따른 정보화의 쟁점과 역기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기존의 패러다임새로운 패러다임중심적 특징에너지 및 자원 집약적 대량생산 기술(산업 기술)지식 집약적 다품종 소량생산 기술(정보통신 기술)정부 정책시장 보호와 정부 개입 : 사회기반시설(도로, 철도 등)자유화와 규제 완화 : 새로운 사회 기반시설(정보고속도로)산업 구조제조업, 재화 취급 중심서비스업, 정보 처리 중심기업 활동독점과 수직적 통합경쟁과 네트워트적 협력고용 구조육체 노동자(기능공) 중심경영자·전문직·기술직 중심 : 판매직·사무직의 비중 증가노사 관계연공급, 직무급 중심 : 중앙 집중적 단체 교섭직능급 중심 : 분산적 단체교섭국제 관계냉전체제, 보호주의 무역시장의 세계화, 기업활동의 세계화 정보화에 따른 사회변동의 모습「제1장 정보화와 현대사회」,『정보사회의 이해』,권태환·조형제·한상진 편, 1997, 미래M&B, p49정보화에 따라 국가는 국민경제의 새로운 사회기반시설인 정보통신을 본격적으로 정비하고 확충하는 '국가정보기반'(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 정보고속도로)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단기적 이윤 확보가 불확실해 투자를 꺼리는 민간기업들을 새로운 정보통신기반의 확충에 참여토록 유도해준다.또한 정보화에 따른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산업구조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보화에 따라 기업들은 특정 부문의 시장을 지배해온 대기업들이는 사안들을 국제규모의 연합체나 조직에 그 권력을 양도하는 상향초월운동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대의민주제의 경직성과 비융통성을 드러내 주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투표율의 저하, 무소속 의원의 증가 그리고 정치적 무력증, 무관심 및 냉소주의의 증대가 나타남을 들고 있다.또한 미래사회에서는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운영을 위해 결정해야할 사항의 수 또한 증가하게 하며, 결국 이를 소수의 엘리트들이 모두 해낼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의 권한의 광범한 확대와 일반시민들의 민주적인 정치참여를 통하여 분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21세기의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첫 번째는 다수결원리와 소수세력이 융합한 '소규모 다수결주의(mini-majortarian)'로서, 다수결주의의 결과인 가짜의 다수파로 의견의 차이를 호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규모 집단들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 위에 소수파가 다수파를 형성하도록 전체 체제를 근대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두 번째는 대표자에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가 대표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반직접민주주의(semi-direct democracy)'의 원리이다. 마지막으로 '결정권의 분할decision division'을 제안한다. 이 원리는 결정권의 집중을 분산시켜 결정권이 소속된 곳에다 그것을 이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이와 같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근거로서 토플러는 직접민주주의를 제한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게 한 산업사회 초기의 제약조건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네이스비트 또한 토플러와 마찬가지로 대의민주제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주장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정치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참여의 증가는 식견 있고 교육수준이 높은 시민들이 정치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기회도 증가시켜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단순히 정치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행동파 주주, 노동자, 소비자 및 지역사회의 지도발하나
어쩔 수 없는 순환의 함정-『파리대왕』을 읽고 -'83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책표지의 문구에 압도되어 잔뜩 긴장을 하고 첫 장을 느끼던 내 손은 어느새 마지막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이대로라면 너무 암울한 것이 아닌가?먼저 작가인 William Golding 을 살펴보자.그는 1940년에는 영국 해군에 입대하여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침몰시키는 전투에 참가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로켓 발사 전함을 지휘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교직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 있어 2차대전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했으리라 여긴다.전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전쟁기간동안 독일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와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던 대학살은 비인간성의 극치였다. 그런가 하면 바로 뒤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무차별한 대량살상과 파괴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결정체였다. 양자 모두 어린이를 포함하여 죄없는 자까지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류역사 및 근대성의 종말을 의미한다. 서구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온 근대성의 이념에 대한 회의 내지는 절망감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성의 무한한 향상과 개발을 유토피아로 설정하였던 근대성의 이념은 붕괴되고 인간 존재란 무엇이며, 인간 본성이란 과연 선한 것인지, 그토록 신뢰해오던 인간 이성이란 무엇인지, 인간가치란 존재하는 것인지,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인지 등의 물음을 우리는 자기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다.William Golding 자신도 2차 세계대전을 직접 치르면서 인간의 본성이 과연 선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또한 인간의 문화가 이룩해 놓은 문명이 William Golding 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책장을 하나 하나 다시 넘겨보기로 하자.William Golding 은 『파리대왕』을 출간한 것은 1954년이다. 그가 책을 쓰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문명에 덜 찌든 아이들을 문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이였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재앙 중 가장 참혹한 핵전쟁을 피해 소개(疏開)된 아이들이 이 책을 만들어 나간다.우린 이것을 사용해서 딴 아이들을 부를 수가 있어. 모이게 하는 거야. 이 소릴 들으면 이리로들 올 거야.(중략)어린이들은 메가폰을 들고 있던 어른들에게 그랬듯이 그에게 순순히 순종하였다.) William Golding, 『파리대왕』, 청맥, 1983, 이후 인용문은 모두 같은 책(p27, p30)랠프는 '소라(조가비)' 의 권위를 이용해 회합을 가지고 처음에는 제법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질서와 이성의 상징인 소라 나팔로 소년들을 모아서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두목 랄프를 선출하고 현재상황에서 가장 긴급한 두 가지 일, 즉 구원을 청하기 위해서 불을 계속 피우는 일과 먹고살기 위해서 짐승을 사냥하는 일을 분담한다.사냥꾼 집단을 지휘하는 소년은 잭이다. 그는 랠프 식 질서를 경멸하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량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사냥을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와 지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이들의 사냥은 처음에는 식량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사냥을 위한 사냥, 파괴와 살생에 대한 본능적 욕구 충족 행위로 변한다. 이런 점은 이성을 존중하는 랄프 일당과 충돌의 원인이 된다.두 명의 정치적 카리스마. 구조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신중한 랠프와 사냥을 강조하는 정열적이고 충동적인 잭. 경험과 감정, 성향이 다른 둘은 서로 각자의 세력을 구축하는데 고립된 상황에서의 '생존' 의 문제는 대부분의 소년들을 잭의 둘레에 사냥을 위해 모이게 만든다.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라를 가진 랠프를 물리치고 많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한 그는 어떻게 자기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을까? 제일 먼저 먹을 것에 대한 문제를 멧돼지 사냥으로 해결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사냥 패거리로 모이게 만들고, 얼굴을 피와 재로 장식하면서 수치심과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된다. 마스크의 역할은 일종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유니폼과 같은 역할인 것이다. 아, 타간의 구별을 통해 잭이 가지는 권력체계가 공고화된다. 또 하나는 짐승의 존재를 부각시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가진 체제를 정당화 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구조를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을(문명 사회로의 회귀) 강조하는 랠프는 고립된 섬에서 사냥(생존)을 우선시하는 잭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 원시적 형태의 권력은 1차적으로 생존과 직결되는 가치를 토대로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돼지는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 통통한 머리 속에서 한 걸음씩 착실하게 사고를 진행시킬 수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대장이 못되었을 뿐, 그러나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집에도 불구하고 돼지는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랠프는 어느새 사고 능력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타인의 사고 능력을 식별할 수가 있게 되었다. (p.p 123-124)너는 로저를 잘 몰라서 그래. 정말 끔찍스러운 애야. (p 304)두 진영에는 각각 대표적인 추종자가 있다. 돼지는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랠프에게 가장 합리적인 조언을 한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도수 높은 안경은 지성의 상징이며 이것을 이용해 불씨를 만들어 구원의 희망을 이어가지만, 안경을 사냥꾼들에게 빼앗긴 돼지는 거의 앞을 분간하지 못하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올바르게 판단하고 조언은 하지만 스스로 행동할 용기는 없고 육체적으로는 병자이기 때문에, 일단 잭 일당의 공격 목표가 되자 여지없이 파괴당해서 생명까지 잃고 마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인 존재가 로저이다. 그는 잭과 한 편이 되어서 직접 파괴 행동을 하는 하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소년다운 데가 별로 없고 항상 그늘에 숨어 있다가 자기 역할이 필요할 때가 되면 나타나서 가차없이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할퀴는 발톱이 있고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으며 발자국을 남기지도 않았고 게다가 동작이 무디어 쌍둥이 형제를 따라잡지 못한 짐승이라고? 짐승 생각을 아무리 해 봐도 사이먼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영웅적이면서 동시에 병든 인간의 모습 뿐이었다. (p164)사이먼은 가장 독특한 존재이다. 그는 소년들이 이룬 집단에서 동떨어져 혼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가 랠프나 돼지와 다른 것은 이성적 분석을 시도한다든지 사회의 규범을 통해서 현실을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직관적 지각을 통해서 인간 사회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년들이 정체 모를 '짐승' 이라고 무서위하는 것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 나무에 걸려 죽은 시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진정한 '짐승' 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배설물이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간의 내부에 있다. 우리 자신이 '짐승' 임을 인지한 사이먼은 그러나 그를 '짐승' 으로 잘못 알고 공격해 오는 사냥패들에게 죽음을 당한다.맹자는 과거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하다. 사람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물치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물은 없다." 고 말하며 성선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파리대왕』에서 보이는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으로 묘사된다. 어쩌면 인간의 문명이란 것이 인간이 악하다는 전제에 의해 인간들에 의해 마련된 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마저 쉽게 붕괴될 수 있음을 작가는 시사한다.종교를 예로 들어보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로서는 종교가 인간들의 의지력을 다독거리고자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도구로 여긴다. 이런 종교에 대한 믿음은 커지면 커질수록 스스로가 만들어낸 힘에 의해 인간의 본성을 이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게 한다. 하지만 그런 믿음에 앞서 일차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거나 혹은 생활의 풍족과 마음의 안정으로 인해 외부의 규제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문명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들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의해 발생한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갖가지 무기로 결국 인간 스스로를 살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소년들은 무인도로 오기 전 그들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보아왔던 규칙과 관습과 가치의 경중완급을 흉내낸다. 제법 그럴싸하게 해나간다. 선거를 해 우두머리를 뽑고 규칙을 정하고 의견을 모으고 봉화를 만들어 구조를 바란다.하지만 생존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에 닥치자 모든 것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과연 인간은 본디 선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생각은 작가와 더불어 그렇지 않다이다. 물론 악하다고도 보지 않는다. 인간의 심성을 선과 악 둘로 이분하기엔 뭔가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기에 본디의 심성은 이기심이라는 악이라고 불릴만한 성향이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형식에서의 외딴방제주도에서 시작하는 외딴방의 글쓰기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해 독자의 보편적 시간관념을 흔들어 놓아 다시금 앞장을 들추게 만든다. 이러한 과거를 현재형으로, 현재를 과거형 으로 구성하는 기술 형식은 읽는 것 보다 보는 것 에 익숙한 독자를 프레임의 이동이 자유로운 영화의 장면으로 끌어들여 적지 않은 양의 장편을 단숨에 읽게 한다.이제야 문체가 정해진다.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 외딴 방이 다시 갇히지 않게. 그때 땅바닥 을 쳐다보며 훈련원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큰오빠의 고독을 문체 속에 끌어올 것. (1 권. 47)이런 독특한 기술 형식을 신경숙은 책의 47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문득 언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책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란 짐작을 책의 서문이 가능케 한다.나의 큰오빠, 나의 외사촌, 지난 79년에서 81년까지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그녀들, 최홍이 국어선생님. 그리고 나, 여기 머무는 동안, 내게 과거가 될 수 없는 희재언니에게. (책의 서문)과거를 현재형으로 보여줌으로써 신경숙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독자로 하여금 책이 수월하게 읽히길 바란 것만을 아닐 것이다.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라고 묻던 하계숙에 대한 답변처럼 시작하는『외딴방』은 신경숙에게 79년에서 81년 사이의 시간적 공간 속에 외딴방의 모습과 공존하는 희재언니를 어렵사리 들춰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신경숙은 어느 정도의 비겁한 형식을 통해 자신의 묻어두고 싶은 과거를 드러내는 부담을 덜어낸 것이란 생각도 들게한다. 다시 말해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에 대한 대답 으로 자신이 직접 과거를 말하는 곤란함 대신 신경숙 자신도 자신의 과거를 영사기로 돌린 채 하계숙을 비롯한 독자들과 함께 바라보는 글쓰기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여진 외딴방의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느끼는 부담감을 고스란히 받아내지 않아도 되는 완충작용을 하는 것 같다.이렇게 택해진 형식은 소설의 시점을 1인칭적 3인칭 혹은 3인칭적 1인칭 시각을 지니게 만들었다.하지만 과거는 현재형으로, 현재는 과거형으로 의 원칙은 부담의 가중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용기를 북돋우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흔들렸다. 특히 희재언니의 죽음을 집필하기 직전에 "얼굴과 마음이 다 퉁퉁 붓는 느낌이다. (...) 그래 그날 아침 이야기를 하자, 해버리자"(2. 220-1)는 현재형이고 "그날 아침 골목에서 그녀를 만났다."(221)로 시작되는 바로 다음 토막은 과거형이서, 애초의 집필 방침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이 글이 마무리 되었을 때 이 글이 과연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주앉아 있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도 계속 도망칠 것 같다. 틈만 나면 다른 이야기 속으로 건너가려고 할 것 같다. 벌써 기승전결의 이야기 형식을 내 손에서 놓 아버리고 있질 않나. 가장 접근하기 쉬운 그 형식을 놓아버리고 어쩌자는 것일까(1. 86)신경숙은 희재언니에 대한 기억을 마음의 음지로부터 꺼내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다. 자신의 글쓰기가 기승전결에 의해 결국에는 드러내야만 하는 희재언니를, 결국 처음에 자신이 의도한 결과에 접근하기 가장 쉬운 형식을 놓아버림으로 해서 꺼내 놓을 자신감을 상실한 자신에게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백로의 비상과 함께 훌훌 털어 버림으로써 결국에는 기승전결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외딴방」의 문체는 단문. 아주 단조롭게. 사진 찍듯. 선명하게 의 의도대로 짧고 간결한 인상을 풍긴다. 또한 유신말기의 억압상과 민중의 빈곤, 노조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YH사건, 12·12와 5·18에 이은 광주학살과 삼청교육대 등등을 망각이라는 지병을 지닌 머릿속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세세한 기록을 들춰가며 기술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