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란 무엇인가?- 전자 문화 속에서의 독서의 가치1. 들어가며 - 일상화된 전자 문화 속, 독서란 무엇인가?컴퓨터가 품어내는 더운 열기 속에 무언가 바쁜 듯 눈앞의 모니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활자들을 마냥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모니터 옆에는 모니터를 향해 열을 올리는 주인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나의 인간관계를 중매하는 핸드폰이 벌써부터 내일을 위해 전자로 된 빨간 피를 충전하고 있다. 지금부터 몇 시간 후 나는 나의 이메일로 내가 쓴 글의 초안을 발송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시간 뒤에는 전자로 된 에너지를 머금고 녹색 생명으로 환생한 핸드폰이 나의 관리자로서 내 귓전을 시끄럽게 할 것이다. 이렇게 나의 문자생활, 언어생활, 그리고 이것을 통한 사회적 관계는 이미 전자혁명의 위대한 적자(嫡子)들이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오늘날의 전자매체와 그로 인한 인간의 문화적 변동에 대해 분석하는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는 이미 전자문화가 문자문화를 능가했으며, 그로 인해 언어행위인 대화를 비롯한 일상적 행위 속에서 문자 문화적 사유가 퇴보하고 전자 문화적 사유가 대두함으로써, 근대적인 이성이나 복잡한 사고보다는 즉각적 반응이나 감각이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문자문화를 낳은 활자와 독서, 그리고 그 대중적 양식인 문학은 점점 소외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은 더 많이 출판되고, 독서의 가치에 있어서도 적어도 관념상으로는 인정받고 있지만, 텍스트의 형태나, 텍스트가 담고 있는 내용, 그리고 사람들의 실제적 독서 모습과 문화는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즉 문자언어와 문자로된 텍스트는 여전히 존재하되, 그것의 본질적 성격은 완전히 변화했다는 것이다.이처럼, ‘현대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들은 감각적 행위와 즉시적 감정에 치중하는가?’, ‘무엇이 현대인들을 대중화된 소비문화로 이끄는가?’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분석하였으며, 그들의 생각에 .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 텍스트를 읽거나, 학문적 탐구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던 것 같다. 허나 지금은 도서관을 수험준비, 자격증 등의 현실적인 학습의 장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현실적의 삶을 위한 수단적 독서 외에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개인을 수양하고 ‘책속의 길’을 찾는 독서를 하는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현실세계에서의 안정에 이르는 길이 될 수는 있지만, 영혼의 탐구를 통한 자기에의 정체성에 이르는 길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즉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독서의 목적이 각종 텍스트를 읽음으로서 스스로의 의미구성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의 삶을 윤택하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데 있다면, 현실의 모습은 독서의 본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서의 목적 변화 역시 현대의 전자문화 속에서의 인문학의 위기, 독서와 문자언어의 약화가 크게 동떨어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따라서, 이 글의 화제는 인문학의 위기, 이성적 사고의 종말, 문자언어의 세력약화 등의 주된 원인이라는 이러한 전자문화 속에서, ‘독서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먼저 ‘독서’에 대한 개념을 밝히고, 그 ‘독서’의 대상에서 문자언어와 매체언어를 포괄하였으며, ‘독서’의 성격으로 인한 전자문화 속에서의 독서의 가치에 주목하였다.2. 독서의 개념과 전자 문화 속에서의 ‘문자언어’와 ‘매체언어’전자 문화 속의 독서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독서의 본질적 개념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전개될 논의가 독서의 본질적 개념과 그 특성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독서는 문자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여, 텍스트를 이해하고, 추론을 통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텍스트에 대해서 평가하는 인지적 과정이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문자나 문장 등에 대해 주목할 뿐 아니라, 텍스트의 중심내용을 판단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텍스트의 의미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알 수 있다.또한 독서는 능동적 의미구성 과정이다. 독자는 텍스트에 담겨진 내용을 상향식 정보처리를 통해 텍스트의 내용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독서의 상황, 목적, 그리고 필자나 텍스트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하향식 정보처리를 통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한다. 독자는 독서의 상황이나 자신의 목적을 고려하고, 필자와 텍스트에 대한 배경지식을 활성화함으로써 텍스트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독서는 독자가 독서를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지적 과정이자,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해 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와 같은 독서의 개념이 과연 현대의 전자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잘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걱정스럽다. 오늘날은 근대가 양산한 문자언어의 대표적 양식인 문학, 즉 시와 소설보다 시각을 비롯한 즉각적 감각에 의존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부각되고 있다. 이를 문자문화가 쇠퇴하고 전자문화의 도래로 해석하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자언어가 담당하는 역할을 매체언어가 대체하고, 그것의 가치가 동일하다거나 더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이끌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분명 시각적 영상과 이미지에 치중하는 매체언어를 처리하는 인지적 과정과 활자를 지각하고 이를 언어적 사고를 처리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문자언어의 인지적 과정은 그 본질이 다르다. 또한 그 성격을 따지자면, 문자언어의 처리가 더욱 고차원의 정신적 과정이다. 따라서 ‘대체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전자문화가 시대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두고 ‘문자언어의 고차원성’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전자문화 속에서도 언어로 구성된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혀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텍스트의 종류’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방법’이라는 독서 수 있다는 특성에서 시작해 본다.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그 속에 담겨진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우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배경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 한편, 능동적인 독자는 텍스트 속에 담겨진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삶과 세계에 관련지음으로서 배경지식을 효과적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독서를 통한 적용으로 우리의 삶이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이것에 대한 쉬운 예는 문학작품이나 일상적 광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문학작품을 보면, 문학작품이란 필자가 스스로의 문제의식이나 가치관을 담아 사회의 모습을 본떠 만든 텍스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자신의 상황이나 배경지식을 통해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읽음으로써, 그 속에 담겨진 세계나 주인공들을 삶을 이해·공감하는 지식적·정서적 체험을 하게 되고, 그 세계와 삶을 자신의 삶이나 세계와 관련지어 적용해 봄으로써 자신의 삶과 세계의 모습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다양한 매체에서의 일상적 광고들을 보면, 그 광고 문구 하나하나에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광고에서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자들의 소비욕구을 강하게 충동하는 문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광고에서는 사회의 가치관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문제의식 등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구들을 통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문제의식 등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사회나 세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지식과 정보의 획득이라는 측면만 놓고 본다면 문자언어와 매체언어가 차이점이 특별히 없다. 오히려 후자가 그 경제성과 용이성만 따진다면 더욱 우수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획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이해’로 끌어올 수 있는 행위이다. 이것은 문자언어와 매체언어의 차이점이라기보다는 독서 행위 자체의 성격에 기반한 것이다. 즉 독서(문자언어나 매체언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즉 독서가 이해하는 과정이지만, 그 이해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매개로 필자와 독자, 그리고 독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서는 텍스트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그 텍스트에는 필자의 사상이나 가치관, 그리고 사회의 가치관이나 문제의식 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독자는 이러한 텍스트에 대해 스스로의 배경지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독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독자는 텍스트 속에 담겨진 필자의 사상이나 문제의식, 동기 등에 대해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다. 또한 텍스트 속에 담겨진 사회의 모습을 자신의 사회적 상황과 관련지어 새로운 가치관이나 지향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필자와 독자 사이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독서는 능동적 의미구성행위이자 의사소통행위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독서는 사회문화적 과정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독자는 독서라는 의사소통행위를 통해 필자가 구성한 의미와, 자신이 구성한 기존의 의미와 텍스트를 통해 새롭게 구성한 의미를 서로 협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의미의 협상은 독자가 독서를 하는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독자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상황이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필자와 텍스트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필자와 독자와의 시간적 차이가 클수록 크게 나타나고, 텍스트가 쓰여진 시기의 독자와 지금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오래된 텍스트인 연암 박지원의 글에 대해서 독자는 필자의 문제의식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서 수용하기도 하지만, 독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이나 맥락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독자가 박지원의 글을 읽고 느꼈을 생각이나 감흥과 현대의 독자가 느낀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이렇게 볼 때 독서는 텍스트를 통해 필자와 독자 간의 의미의 협상이 지닌다.
1. 작가 및 창작배경(1) 임춘 (林椿, 1150년경~?))임춘은 고려 의종?명종 때 문인이자 학자로, 호는 서하(西河)이다. 일찍부터 유교적 교양과 문학을 익혀 한문과 당시(唐詩)에 능하였고, 입신할 것을 생각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과거에 여러 번 낙방했을 정도로 벼슬과는 인연이 적었다. 1170년(의종 24년) 정중부의 난 때는 재산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피난하여 간신히 목숨만은 건졌다. 이처럼 가난하고 불우한 일생을 보내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했던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강렬한 현실 지향의식을 표출했다.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30세에 세상을 떠난 뒤, 이인로가 그 유고(遺稿)를 모아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 6권을 엮었다. 작품에 , 등이 있다.(2) 의 창작배경임춘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매우 공고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비록 그의 생애에서 관직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으며, 무신란과 몽골의 침입이라는 국 내?외적 혼란 속에서 평생을 유랑과 가난 속에서 보냈지만, 당시의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과거에 응시하고 자천서(自薦書)를 올리는 등 현실을 지향하였으며, 참여에의 강한 욕구를 지녔던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임춘의 문학은 유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울분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절실한 묘사가 중심을 이룬다. 이는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비판이 현실지향의 투철한 자아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그의 한시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十載崎嶇面撲埃 십재기구면박애 고달픈 십 년간 나그네 신세에 얼굴은 먼지 뿐長遭造物小兒猜 장조조물소아시 오랫동안 조물주의 시기 받았네問津路遠?難到 문진로원사난도 나룻터 물어도 길이 멀어 뗏목이 이르기 어렵고燒藥功遲鼎不開 소약공지정부개 仙丹 언제 익으리 솥은 열지 못하네科第未消羅隱恨 과제미소나은한 과거에도 아직 한을 풀지 못했고離騷空寄屈平哀 이소공기굴평애 이소에는 하릴없이 굴평의 한을 부쳤네襄陽自是無知己 양양자시무지기 양양이 워낙 지기가 없어서 인지明主何會棄不才 명주하회기부재 총명한 임금이 언제 재주 없다고 버렸던가. - 서하집 권3이 시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는 자신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좋은 운세가 아직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즉 나룻터는 멀리 있어서 뗏목이 찾아오기 어렵고, 선단은 아직 익지 않았으므로 솥은 열 수 없다. 그러므로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아직은 어찌할 수 없으나, 나에게는 재주가 있으므로 참고 견디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그의 처지와 현실 지향적 성향에 의해 그의 가전 성립의 동인(動因)을 이러한 곤궁의 처지가 시대에 대한 불만과 울분의 간접적 표현인 풍자로 나타났다고 보는 견해(김현룡,1974, 고경식, 1982)가 있는가 하면, 이러한 차원을 일단 초극하여 순수한 신흥 사대부의 새로운 문학표현의 욕구로서 보는 시점(조동일,1971, 김창룡, 1995)도 있다. 여기서 임춘이 술이며 돈의 의인화 과정에서 주인공의 선계는 긍정적으로 다루었던 반면, 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인공 본전과 평결에서는 대체적으로 부정적?비판적 관점으로 다루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가전’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새로운 문학으로서의 가치도 분명 존재한다.따라서, 의 창작배경과 관련하여 임춘은, 신흥 사대부로서의 사물에 대한 관심을 기본적 바탕으로 하여, 정치적 혼란 속에서 유학자(지식인)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비판적(풍자적) 의식을 ‘의인화된 전기’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던 것으로 보인다.2. 작품구성 및 해석(1) 작품구성)은 의인화된 술의 생애를 전기형식으로 쓴 것이므로, 사마천의 史記 중 ?列傳?의 구성인, ‘-(선계)--(종말)-(후계)-’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서두 : 주인공의 신원 소개 (관등성명, 자호, 출신지, 국적 등)- 선계 : 주인공의 앞의 항렬, 조상- 사적 : 일의 자취, 업적- 종말 : 주인공의 마지막 길, 죽음- 후계 : 주인공의 뒤의 항렬- 평결 : 사마천의 논평구성구분내용도입서두선계麴醇字子厚(국순자자후) : 국순의자는 자후이며 ~爲竹林遊以終其身焉(위죽림유이종기신언) : 죽림에서 놀려 자기의일생을 마쳤다.국순의 자는 자후.90대조 모(牟) : 후직을 도와 벼슬을 얻고 국씨를 하사받음.5대손 : 성왕을 보필, 강왕 때 금고(禁錮).아버지 주(酎) : 위나라 때 이름을 날림. 진나라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죽림에 은거.전개사적종말醇器度弘深(순기도홍심) : 순은 도량이 넓고 깊어 ~一夕卒(일석졸) : 하루 저녁에 죽었다.도량이 넓고 기운을 북돋아 임금을 비롯하여 모두의 흠모를 받음.권세를 얻자 향락만을 일삼고 돈을 밝혀 비난받게 되어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죽음.후계無子(무자) : 아들은 없고 ~子孫復盛於中國焉(자손부성어중국언) : 자손이 다시 중국에 번성하였다자손은 없음.먼 친척 청(淸)이 당나라 때 출사(出仕)하여 자손의 번성함.평결평결史臣曰(사신왈) : 사신이 말하기를 ~有足信矣(유족신의) :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도다.” 하였다국순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헌.(공) 성품이 맑고 도량이 넓어, 사람의 기운을 더함.(과) 사리판단을 흐려 왕실을 어지럽힘(2) 작품 해석1) 서두?선계순의 조상은 역사적 삶의 과정 속에서 아무런 인격적인 결격이 없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국순의 선조에 대해 백성들에게 공헌함이 있고 청백한 기상을 자손에게 끼쳐 주었던 인물들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국순의 선조인 모가 식량으로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술이 되어 사람들을 감화시켜 태평성대를 만드는 모습이나, 그의 5대손과 아버지 ‘주(酎)’의 청렴한 모습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2) 사적?종말전반부에는 국순에 대한 부정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국순은 국량과 풍미가 뛰어나 일찍 “국처사”라는 이름의 영예와 함께 상하 모든 계층이 선망하고 사모하는 대상이 되었으며 관상가 등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군주에게 쓰여 지고 점점 출세하여 촉망받는 신하로까지 상승하였으며, 손님 접대, 노인을 받드는 일, 조상 제사, 종묘 제사 등 술이 쓰이는 모든 장소에서 긍정적으로 활약한다. 여기까지가 본전의 약 2/3에 달한다.
정 과 정 (鄭 瓜 亭)은 작자가 명확하게 알려진 고려가요로서, 작자인 정서(鄭敍)가 유배지에서 자신을 다시 불러주지 않는 임금에 대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선처를 구하는 노래이다. 정서가 당시의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 하에서 권력에서 밀려나고 유배를 떠나게 되는 과정과 유배지에서 노래를 짓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高麗史 나 高麗史節要 등의 문헌에서 전하고 있다.여기서는 그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작가 및 창작배경’에서부터, ‘작품구성 및 작품해석’, ‘전승양상 및 의의’에 대해 정리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가지 쟁점사항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1. 작가 및 창작 배경(1) 정서 (鄭敍,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호는 과정(瓜亭)이다. 음보(蔭補))로 벼슬이 내시낭중(內侍郞中)에 이르렀다. 공예태후(恭睿太后: 仁宗妃) 동생의 남편으로서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문장과 묵죽화(墨竹畵))에 뛰어났다. 1151년(毅宗 5년) 폐신(嬖臣)) 정함(鄭?)·김존중(金存中)의 참소로 장류(杖流))될 때 왕으로부터 곧 소명(召命)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소명이 없자 연군(戀君)의 정을 가요(歌謠)로 읊었는데, 이를 악학궤범(樂學軌範) 에서는 곡조의 이름으로 이라 하였고 후세인들은 그의 호를 따서 이라 불렀다. 후에 1170년 정중부의 난에 의해 의종(毅宗)이 축출되고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사면되어 다시 등용되었다. 저서에 과정잡서(瓜亭雜書) 가 있다.(2) 창작 배경의 작자와 창작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高麗史 俗樂條 項에서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 중 일부를 살펴보면,은 內侍郞中 鄭?가 지은 것이다. 서는 瓜亭이라 自號했고, 外戚과 혼인을 맺어 仁宗의 총애를 받았다. 毅宗이 즉위하자 그의 고향인 東萊로 돌려보내면서 이르기를 “오늘 가게 된 것은 朝廷의 의논에 몰려서이다. 머지않아 소환하게 될 것이다.” 서는 동래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나 소환명령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문고를 잡고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극히 悽悲하다. - 高麗史공예태후는 장남인 의종의 됨됨이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慮太子 不克負荷”라 하여 왕위 계승의 적격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차남인 경을 후계자로 삼아 대를 잇고자 하였다.) 따라서 의종은 동생인 대령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도량이 넓어서 뭇사람의 마음을 얻고 있는(有度量 得衆心)” 대령후와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② 힘의 대립구조 (정치세력간의 갈등 구조)의종 (총애?신임) 정함, 김존중, ...vs공예태후, 대령후, 정서, 최유청, ...☞ 의종 5년, 정서는 의종이 가장 꺼리는 대령부 경과 밤중 은밀하게 연회를 즐기며 놀았다는 혐의로 김존중을 비롯한 뭇 대신들의 참소를 받아 태형을 받고 동래로 유배됨.☞ 의종 11년, 거제현으로 사배(徙配), 최유청(정서의 매형) 좌천, 대령후 경을 귀양 보냄.③ 정서의 처세관 부족여러 문헌에 전해지는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정서는 대령후와 결탁하여 모반을 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참소 당했던 내용도 모반이 아니다. 하지만, “성질이 경박하고 재주가 있었다)”라는 정서의 인물평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어지러운 정국이나, 의종과 대령부와의 미묘한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반대세력에 있던 김존중과 정함 등에게 자신의 허점을 드러냄으로써, 의종과 대립관계에 있던 대령후와 함께 권력에서 축출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서가 유배를 가게 된 이유는 의종이나 반대세력의 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세사에 조심하지 않고 풍류만을 즐겼으며, 대령후와 친하게 지내면서 의종과 대령후의 관계를 고려하여 스스로를 처신하거나, 그 대립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지 않은 정서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기도 하다.이러한 이유로 권력에서 밀려난 정서는 자신의 유배지에서 자신의 딱한 처지와 결백을 호소하는 노래를 짓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이다. 정서는 1차적으로 동래로 유배되고, 다시 의종 11년에 거제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의종 28년, 정중부에 의한 무신난이 일어남에 따라 의종이 ‘前腔?中腔?後腔?附葉?大葉?二葉?三葉?四葉?五葉’으로 되어 있다.)하지만 ‘眞勺’의 실체에 대한 문제, ‘三眞勺’과 ‘眞勺3’에 대한 개념, 그리고 ‘眞勺’을 언급하고 있는 조선시대 실록이나 악서 등에 대한 해석과 같은 문제가 남아 있다.(2) 가사형식 및 작품해석① 내용전개은 단연체로 되어 있으나, 작품을 내용의 전개에 따라 편의상 세 개의 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Ⅰ (前腔) 내 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① 내가 님을 그리워하며 울고 지내니(中腔) 山 졉동새 난 이슷?요?다 ② 산 접동새와 난 비슷합니다(後腔)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③ 사실이 아니며 모든 것이 거짓인 줄을 아!(附葉) 殘月曉星이 아?시리?다 ④ 지새는 달과 새벽 별만이 아실 것입니다Ⅱ (大葉) 넉시라도 님은 ?? 녀져라 아으 ⑤ 죽은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 싶구나(附葉) 벼기더시니 뉘러시니?가 ⑥ 내 죄를 우기던 이, 그 누구였습니까(二葉) 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다 ⑦ (나는) 과실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三葉) ?힛말러(마리)신뎌 ⑧ 사람들의 거짓말이었구나!(四葉) ?읏브여(븐뎌) 아으 ⑨ 슬프구나, 아!(附葉) 니미 나? ?마 니?시니?가 ⑩ 임께서 저를 벌써 잊으셨습니까Ⅲ (五葉)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⑪ 아! 님이시여 돌려 들으시고 아껴주소서- Ⅰ은 전체의 서사로 볼 수 있으며, ①~②에서 임과 떨어진 채 애타게 임을 그리는 화자의 상황을 접동새로 비유함으로써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③~④에서는 새벽녘을 지키는 ‘잔월효성’이 ‘아니시며 거츠르신?’을 모두 알고 있음을 내세우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Ⅱ는 자신의 충성과 결백에 대해 구체적으로 부연하면서, 임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이고 있다. ⑤에서는 죽은 넋이라도 임과 함께 하겠다는 충성을 보이고 있고, ⑥~⑨에서는 자신은 죄가 없으며, 뭇 사람들의 참언에 의해 이렇게 임과 떨어지게 되었다는 슬픈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그리고 ⑩에서는 오래지 않아 불러 주신다면 언약만을 믿고 떠나 다. 따라서 밤을 지새며 새벽을 밝혔던 ‘잔월효성’은 접동새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모두 듣고 지켜본 존재라는 측면에서 접동새의 이미지와 잔월효성의 이미지가 긴밀하게 연결된다.② 작품의 표면적 구조 - 임과 나의 관계 및 대립구조은 임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신하가 임금을 그리는 내용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夫婦關係 - 君臣關係’의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부관계는 남녀간의 수적적 관계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수직관계는 ‘신하와 군주’라는 군신관계에 대응된다.) 또한 떠나간 임을 그리워한다는 측면에서 변함없는 사랑은 신하의 임금에 대한 충성과 대응된다.또한 임과 나를 가로막는 존재인 ‘벼기더시니’와 같이 임과 나 사이를 시기 모함하는 자와 나는 서로 대립하는 구조로 나타나 있으며, 이는 ‘정서를 모함한 자들’과 ‘정서’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③ 향가와의 관련성은 신충이 지은 향가 와 주제 및 형식상으로 유사한 측면을 보이며 10구체 향가와의 관련성에 의해 향가와 고려가요의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향가계 여요’라고도 불린다. 이에 대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공통점차이점내용형식내용형식정치세력의 갈등으로 인해 물러나게 된 자아가다시 불러 주겠다는 임금이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대한 한탄11행에 해당하는 ‘아소 님하~’의 부분이 향가의 낙구와 형태적으로 유사(감탄사)감정을 직접적으로드러내지 않음 /감정을 직설적이고진솔하게 드러냄11행으로 되어 있음(그러나 8,9행을하나로 보면 10행)임금에 대한 변함없는충성과 그리움단연체감탄사의 위치가 다르다(향가-9행,정과정-11행)후렴구 없음정과정은 감탄사가3,5,9행에 나타남이와 같이 의 곳곳에서 ‘향가계 여요’로서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지만, 와 은 각각 향가와 고려가요로서 그 정서의 표현 양상이 매우 다르다. 의 정서표출방식이 우회적, 간접적, 내면적임에 비해 은 직설적, 직접적, 외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주로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정서의 국면을 조정하는 방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① 이제현 (李齊賢, 1287~1367)의 한역시憶君無日不霑衣 政似春山蜀子規爲是爲非人莫問 只應殘月曉星知 - 益齊亂藁 4, 小樂府님을 생각하여 옷을 적시지 않을 때 없으니, 봄철 산 속의 접동새와 같도다.옳고 그름을 사람들이여 묻지 말라, 새벽달과 새벽별만은 알아주겠지.⇒ 정과정 의 처음 4행을 정확하게 한역하였음.② 이숭인 (李崇仁, 1349~1392)의 시琵琶一曲鄭瓜亭 遺響悽然不忍廳俯仰古今多少恨 滿簾疎雨讀騷經 - 도은문집 권3정과정 한 자락을 비파로 타는데, 그 소리 처량하여 차마 듣지 못 하겠네.고금을 헤아림에 새록새록 한 솟으니, 성긴 비 가득한 주렴에 이소경)만 읊조리네.⇒ 이숭인은 고려 말 대학자로서 고려삼은 (牧隱 李穡, 圃隱 鄭夢周, 冶隱 吉再 또는 陶隱 李崇仁)의 한 사람이다. 중국 사대부들도 그의 저술을 보고 탄복하는 자가 많았지만, 서너 차례 힘든 유배생활을 겪어야만 했다.③ 이익 (李翊, 1629~1690)의 시鄭瓜亭何處 정서는 어느 곳에 정자를 세웠던가畵省與玉堂 화성과 옥당 부근인가遠在赤日初昇碧海傍 멀리 붉은 해 돋는 푸른 바닷가라네徵書不下歲月忙 소환의 교서는 내려오지 않고 세월만 빨라無限榛?天一方 개암나무, 씀바귀 끝없이 무성한 하늘 한 모서리手中琴一張 손에는 거문고 한 장聲聲掩抑幽憂長 소리소리는 깊은 시름 누르는 듯 이어지고上絃??韻苦篁 상현소리 시끄러우니 부대끼는 댓잎이요下絃切切離群羊 하현소리 절절함은 이별하는 양떼들이라一彈再彈雲飛揚 한 번 타고 두 번 타니 구름은 날려가고流風捲入天中央 불어온 바람 하늘 가운데로 몰려들며溟濤微興鶴回翔 파도는 잔잔히 일고 학은 빙빙 날아 도는데金鷄釀淚騰扶桑 황금 닭 눈물 흘리며 동쪽에서 솟아난다?門九重儼紫皇 궁궐 정문 아홉 겹에 장엄할사 자황이여覆盆難回日月光 엎어진 동이 안엔 일월 빛도 못 드는가夢中一曲奏君王 꿈에 한 곡을 임금께 연주했더니侍女低?摠斷腸 시녀들 모두 애간장 끊어진 듯 고개를 떨구더라君不見江南女兒歌折楊 그다.)
독서란 무엇인가?1. 들어가며우리와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독서란 무엇인가? 독서는 우리의 일상을 통해 널리 이루어지는 언어행위 중 하나이다. ‘독서(讀書)’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 책을 해독하는 것’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렇다면 책 속의 텍스트만을 읽고 해석하는 것만이 독서의 개념인가? 독서의 개념에 대해 정의하기 위해서는 ‘독서행위’라는 것의 본질을 밝히고 그것이 일상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독서는 인간이 행하는 표현과 이해라는 언어행위 중 ‘읽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서행위에 대한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읽기’의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읽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는 독서에 대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읽는 행위, 그 자체라는 전제로부터 접근하도록 하겠다. 먼저 독서행위 자체에 주목하여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떠한 과정인지에 대해서 개념적으로 정의한 다음,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밝히고, 그것이 이루어짐으로써 가지게 되는 독서의 성격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2. 독서의 개념 - 문제해결을 통한 능동적 의미구성행위로서의 독서독서는 문자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텍스트를 이해하고, 추론을 통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텍스트에 대해서 평가하는 인지적 과정이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문자나 문장 등에 대해 주목할 뿐 아니라, 텍스트의 중심내용을 판단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텍스트의 의미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추론을 통해 필자의 의도나 목적을 알아내고 텍스트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서 텍스트에 담겨진 정보를 재조직하기도 한다. 또한 텍스트의 통일성과 응집성 등에 대해서 평가하고, 텍스트의 신뢰성이나 타당성, 그리고 그것이 독자에게 표현되는 과정에서의 전달효과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이렇게 텍스트를 이해하고 추론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독서가 인지적 과정임을 보여준다.독서의 이러한 인지적 과정은 반드시 독자의 문제해결과정을 필요로 한다. 즉 텍스트의 중심내용이나 주제를 파악하는 것, 필자가 생략한 내용이나 숨겨진 의도를 추론하는 것, 글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것, 신뢰성과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 등은 독자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서 텍스트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독서는 인지적 과정이자 문제해결과정임을 알 수 있다.또한 독서는 능동적 의미구성 과정이다. 독자는 텍스트에 담겨진 내용을 상향식 정보처리를 통해 텍스트의 내용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독서의 상황, 목적, 그리고 필자나 텍스트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하향식 정보처리를 통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한다. 독자는 독서의 상황이나 자신의 목적을 고려하고, 필자와 텍스트에 대한 배경지식을 활성화함으로써 텍스트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내용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독서는 독자가 독서를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지적 과정이자,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해 하가는 인지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3. 독서의 성격1 - 지식과 정보의 확대를 통한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그 속에 담겨진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우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배경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 한편, 능동적인 독자는 텍스트 속에 담겨진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삶과 세계에 관련지음으로서 배경지식을 효과적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독서를 통한 적용으로 우리의 삶이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이것에 대한 쉬운 예는 문학작품이나 일상적 광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문학작품을 보면, 문학작품이란 필자가 스스로의 문제의식이나 가치관을 담아 사회의 모습을 본떠 만든 텍스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자신의 상황이나 배경지식을 통해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읽음으로써, 그 속에 담겨진 세계나 주인공들을 삶을 이해·공감하는 지식적·정서적 체험을 하게되고, 그 세계와 삶을 자신의 삶이나 세계와 관련지어 적용해 봄으로써 자신의 삶과 세계의 모습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다양한 매체에서의 일상적 광고들을 보면, 그 광고 문구 하나하나에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광고에서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자들의 소비욕구을 강하게 충동하는 문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광고에서는 사회의 가치관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문제의식 등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구들을 통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문제의식 등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사회나 세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4. 독서의 성격2 -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문화적 과정으로서의 독서와 공동체의 문화 형성앞서 독서가 능동적 의미구성행위라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능동적 의미구성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즉 독서가 이해하는 과정이지만, 그 이해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매개로 필자와 독자, 그리고 독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서는 텍스트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그 텍스트에는 필자의 사상이나 가치관, 그리고 사회의 가치관이나 문제의식 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독자는 이러한 텍스트에 대해 스스로의 배경지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독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독자는 텍스트 속에 담겨진 필자의 사상이나 문제의식, 동기 등에 대해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다. 또한 텍스트 속에 담겨진 사회의 모습을 자신의 사회적 상황과 관련지어 새로운 가치관이나 지향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필자와 독자 사이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독서는 능동적 의미구성행위이자 의사소통행위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독서는 사회문화적 과정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독자는 독서라는 의사소통행위를 통해 필자가 구성한 의미와, 자신이 구성한 기존의 의미와 텍스트를 통해 새롭게 구성한 의미를 서로 협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의미의 협상은 독자가 독서를 하는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독자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상황이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필자와 텍스트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필자와 독자와의 시간적 차이가 클 수록 크게 나타나고, 텍스트가 쓰여진 시기의 독자와 지금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오래된 텍스트인 연암 박지원의 글에 대해서 독자는 필자의 문제의식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서 수용하기도 하지만, 독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이나 맥락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독자가 박지원의 글을 읽고 느꼈을 생각이나 감흥과 현대의 독자가 느낀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Alberto Manguel, 정명진(譯), “마지막 페이지”『독서의 역사』, 세종서적“독서의 역사와 독서행위”“그래서 나는 야심만만하게도 독서가로서의 나 개인의 역사에서 벗어나 독서 행위의 역사로 나아가려 한다. 아니 여러 독서의 역사 중 하나로 나아가려 한다...궁극적으로 독서의 역사는 아마도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일 것이다. 심지어 독서의 역사의 출발점까지도 우연적이이야 한다(40쪽)”망구엘은 이 대목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소박한 진리를 “1장”이 아닌 “마지막 페이지”라는 책의 시작에서 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야심만만하게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독서행위가 개인적인 영역에 치우친 독서였다는 문제의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페이지” 전체의 논지로 볼 때 독서의 역사라는 행위 자체가 흔히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는 ‘정치사’, ‘문화사’, ‘비평사’와 같은 시대의 흐름(연대기)로서 쉽게 설명할 수 없다는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서적의 일반적 순서(머리말-본문-맺음말과 같은)를 따르지 않은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이러한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독서의 역사는 일정한 정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들 각자의 인식과 경험에 의해 우연적으로 구성된 역사라는 것이다. 확실히 독서행위라는 그 출발점이나 독서행위의 가치관, 습관과 같은 요소들은 정치적 역사나 문학사의 연대기와 같은 체계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러한 이야기를 망구엘은 첫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몇 가지 예를 인용하면서 다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독서행위 그 자체처럼...독서의 역사는 章을 뛰어 넘기도 하고 대충 훑거나 선별해 일고 또다시 읽기도 하면서 판에 박힌 순서를 따르길 거부한다.(43쪽)”독서의 역사가 가진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독서의 역사를 이야기함은 첫 번째가 그 자신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할 필요성(21쪽)’일 것이고,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저자는 자신이 독자로서 읽어온 “독서의 역사”라는 자신이 해석한 텍스트를 독자와 공유하면서 대화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한다.우연찮게? 이미 책의 시작에서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을 내려버린 저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매우 통찰력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독서의 역사라는 텍스트는 그 텍스트의 주된 의미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으며, 그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인에 따라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위 교과서에서 이야기는 독서의 역사라는 텍스트는 ‘독서행위의 향유층의 확장’이나, ‘글쓰기와 읽기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 등과 같은 의미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고, 그밖에 이 책에서 제시된 예들을 보면 ‘글쓰기나 독서의 책임 의식’, ‘책의 분류법’ 등과 같은 의미들을 통해 얼마든지 또 다른 ‘독서의 역사’라는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개인은 그들 나름의 인식이나 경험을 통해 이보다 더 다양한 의미들 -책의 재질, 여백과 같은 물리적 차원에서부터 책 자체의 상징적 의미와 같은 정신적 차원까지- 을 담고 있는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은 독서의 역사에 대해 필자가 생각하는 기본 입장인 개인적 역사와 우연에 의한 역사의 진행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 들어 소위 인류의 역사에서 최초로 문자를 기록하고 읽는 능력을 가진 자가 다수의 그렇지 못한 자들 위에서 권력을 지니게 된 것으로부터,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이 후에 훈고학을 발전시키고 유학자들이 역사의 주류로 등장하게 된 사건이 있었고, 그리고 최초로 성서가 루터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평민들이 교회의 권력에 의심을 품게 된 사실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쇄술이 발달되어 폭넓은 계층의 독서와 창작이 가능해져 온 현상들은, 일정한 정치적 행위나 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발생하거나 역으로 독서행위의 확장에 의해 정치적 현상이나 문화의 형성이 야기된 것으로서, 이는 일정한 역사의 흐름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서 행위(정확히 말하면 개인 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의 독서행위) 자체는 우리가 소위 근대적이라고 부르는 패러다임의 하나인 거대담론의 영역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제까지 독서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도외시 되었던(‘독서의 역사’라는 연구자체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 자체의 개인성이나 우연성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며, 저자는 이에 대해 책에 실린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의 ‘독서의 역사’로서의 특성을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독서행위가 일정한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흐름과 관계맺음을 통해 우연성과 개인성뿐만이 아닌 인과성과 보편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을 단순히 우연성의 한 사례나 개인적 역사의 일부로 규정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일정한 보편적이고 인과적인 역사가 모두 개인적 동기나 우연성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판명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