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날 연극을 보고.... 중국어과 200201464 백영미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연극을 본 것은 이번이 네 번이다. 그러나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나 돌날 같은 정기 공연은 처음이었다.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에 많이 실망을 했던 나는 이번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로 놀러 가는 기분으로 연극을 보러 갔다. 그래서 연극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다. 운 좋게도 관람석 앞쪽 두 번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앉아있는데 영화평론가 이무형씨도 오셨서 깜짝 놀랬다. 왠일...연극이 괜시리 기대가 되었다. 사회자의 간단한 설명 등이 있었고 이어 깜깜해지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다.첫 등장은 무대의 불이 꺼지고.. 한줄기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가운데 사진사가 나와 아이의 장난감을 흔들며 여기를 쳐다보라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조금 뒤..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며 공연의 전반부인 제1장이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과 함께 시작된다.제1장은 돌잔치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정숙과 이를 돕기 위해 모여든 여자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주 내용으로 한다. 30대 중후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젊음을 외쳤던 정숙과 친구들은 이제는 삶에 찌들려 젊음의 비전을 상실하고 안정된 기반도 갖지 못한 채, 불안정하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한탄해 한다.제 2장.. 본격적인 돌잔치의 시작. 잔치판에서 술을 마시고 화투판을 벌이는 남자들과 음식을 장만하고 나르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십대에 지녔던 꿈의 상실이 어떻게 굴절되었는지, 삶의 피로와 이기심이 어떻게 현실 속 에 나타났는지를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적응한 사람과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비로 남자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남성과 여성의 대비가 또 한 켠에서 그려진다. 남편(지호)의 친구 성기는 부모님이 갑작스런 행운으로 땅 부자가 되어 친구들 앞에서 한껏 거드름을 피운다. 그런 성이기의 비위를 맞추며 어떻게든 성기의 회사에 납품을 해보려는 달수.. 그리고 미선.. 성기는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즐기려는 듯 한껏 더 거드름을 피워본다. 이와는 상반되게 안 팔리는 시인인 강호는 그냥 자신의 신세를 좋은 웃음으로 넘기며 한껏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 보려 하고, 회사가 망해 다단계판매업에 뛰어든 경우는 술에 취해 정숙에게 자기네 세제를 사용해 보라며 떼를 쓴다. 그 와중에 친구들에게 집안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뽐내려는 듯 지호가 정숙에게 윽박을 지른다. 결국 참던 정숙이 한마디를 하자 지호가 화를 내기 시작했고 둘을 말리려 애쓰던 강호와 친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호는 잔칫상을 엎어버린체 2차를 가자며 친구들을 몰고 나간다.제 3장.. 잔칫상이 뒤집어 지고 어수선한 아파트에 뒤늦게 찾아온 옛 친구 경주.. 이런 경주 앞에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절망스러워 하는 정수의 푸념을 경주는 다 받아준다. 또한 옛 추억을 들추며 남편 지호를 사이에 둔 경주와 정숙의 미묘한 삼각관계의 실체가 언급된다. 이때, 2차를 갔던 지호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돌아오고, 서로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자괴감 속에서 지호와 경주는 격하게 싸운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며 경주의 칼을 맞고 쓰러지는 지호의 말소리로 돌을 맞은 이날의 주인공 혜진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3장이 끝난다.에필로그.. 지호의 친구인 시인 강호를 통해 릴케의 이 낭송된다. 친구들과의 2차를 끝내고 집에 가던 중 강도를 만나 칼을 맞았다는 지호의 문병을 가려는 친구들.. 하지만 그 자리엔 시인인 강호와 다단계 판매업을 하는 경우만이 있을 뿐이다.영화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처음에 극장에 들어갔을 때는 매우 더러운 집안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그리고 도구나 군데군데 있는 물건들이 모두모두 한 집안의 생활을 그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세세하게 신경 써서 어느 하나 소홀 한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 모습이었다. 연극 시작 후, 돌날 준비를 위해 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할 때, 실제로 부치개를 하고, 대사를 하다가 정말 태우고, 기름을 엎지르고 이런 것들은 놀랄 만큼 사실적이었다. 그리고 연극이 시작됐을 때 이런 것들은 모두다 빛을 발휘하였다. 살아있는 연극을 본 느낌이었다.역시 소극장이라 그런지 배우들이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들어왔다.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먼저 앤드러니커스때에는 무대에 아무것도 없이 대사로서 장소가 어딘지 알 수가 있었지만 돌날에서는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무대자체도 생활에 있는 모든 것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지만 앤드러니커스에서는 무대에 소품들이 아무것도 없었었다. 소극장에서인지 배우의 몸짓, 대사, 표정까지도 눈에 들어왔고, 상을 엎을 때는 객석에 앉아있던 나까지 움찔했다. 정말 연극의 제1명제인 관객이 연극에 무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앤드러니커스때와는 비교도 안됐다. 정숙의 슬픔과 아픔들, 지호의 아픔, 이를 둘러 싸고 있는 모두다 하나씩 아픔과 결점을 가지고 있는 등장 인물들의 슬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오는 것 같았다.돌날에서는 조명의 역할은 앤드러니커스 때 보다는 없었던 것 같다. 앤드러니커스때는 조명의 색 변화로 많은 것을 나타냈었지만, 돌날에서는 생활과 같은 조명에 천둥 묘사의 조명, 그리고 지호와 경주의 싸움 장면에서만 어두운 것으로 나타내어져서 조명의 역할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또 앤드러니커스때 선생님이 지적하셨던 아이를 가짜가 아닌 듯 포대기로 가리는 것을 이번 연극에서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보이는 장면에서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포대기로 둘러싸여 단지 아이라는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그 아이가 가짜라는 생각을 극장을 빠져 나오기 전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내 자신이 진짜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