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용주의(개혁과 민주주의)1. 실용주의미국의 철학사상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상은 오늘날 실용주의로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실용주의는 미국인이 추구하는 현실주의, 생활 본위, 상대주의적인 철학과 맞아 떨어져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 나라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윤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은 실용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문화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인들만 해도 그들의 철학적 지향을 말해달라고 하면 거의가 실용주의자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들이 의미하는 실용주의가 실제적인 것을 찬양하고 이론적인 것을 조소하는 것이라면 정확하게 대답한 셈이지만, 사실 실용주의의 개념은 이보다 복잡하다.실용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는 실용주의가 하나의 이념이기보다는 과정에서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 유럽에서부터 있어왔던 세계의 근원이나 자아의 개념을 묻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인간생활을 위한, 그리고 실제 행위를 위한 일련의 지도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근원을 파고들고 본래적인 가치를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기 위한 경험을 중시하였다. 또한 행위 그 자체에는 선악이 없으며 그 결과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종래의 칸트의 선의지로 일컬어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했던 입장과 달리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더라도 결과에 따라서 선악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리 판단의 기준은 일상 생활에서의 실제적 유용성에 있다. 이를 언론사상에 대입시켜 보면 통하는 것만이 진리라고 볼 수 있는 데 가령 언론인들이 허위적으로 기사를 쓰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 기사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주장이다. 또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단순한 절대주의, 고정된 원칙이나 허식적인 절대론 등에 기초한 현실을 배척하였다. 이는 다양성으로 연결되는데 다양한 요소들간의 균형, 공익을 위한 상호균형 등을 유지하는 것으로 여러 민족이 뒤섞여 있는 미국의 기본적인 신념사상이 될 수 있는 이유로 볼 수 있다. 실용주의를 라 하더라도 진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처럼, 진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소용이 되는 결과가 있어야만 하며, 인간생활에서의 유용성을 떠난 진리는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제임스는 실용주의가 우주의 문제에 대하여 답을 제공하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으며, 대신에 그 용어가 나타내 주는 것처럼 행동의 지침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실용주의자는 실험실이나 편집실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며 안락의자에 앉아 명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실용주의에서 말하는 진리를 실제로 작용하는 것이며 도덕적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상대적이든 아니든 간에, 실용주의의 창시자들인 퍼어스, 제임스, 존 듀이는 모두가 대단한 도덕성을 지니고 자유와 민주주의와 정의의 근본원리에 철저했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제임스는 그의 실용주의 이론에서 감성적 이해와 정신적 사고 그리고 종교적 표현의 풍부한 여지를 발견했던 종교적 신비주의자였다.2. 인민주의19세기의 미국 농민들은 괄목할 만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되풀이하여 일어나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이에는 지력의 쇠진, 자연의 변덕, 자급자족도의 감소, 그리고 충분한 법적 보호와 원조의 부족과 같은 몇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과잉생산이었다. 철도가 부설되고 대평원의 인디언들이 점차적으로 보호 지구로 옮겨감으로써 서부지역에의 정착을 위한 새로운 터전이 열린 가운데, 1헥타르당 농작물 산출량을 크게 증가시킨 농기계의 개량과 더불어 경지 면적은 19세기 후반 전체에 걸쳐 급속히 늘어났다. 미국의 농산물의 많은 부분이 팔리던 국제시장에서 캐나다, 아르헨티나 및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들의 진출은 미국 농산물 수급에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정착민들이 서부로 더 멀리 진출하면 할수록, 그들은 생산물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동시에 보호관세가 부과되는 결과로 농민들은 공산품에 더 비싼 값을 치렀다. 남부에서의 가장 큰 변화가 소작제도인데, 소작인들은 종자와 필수적인 영농 보급품론의 내용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어떤 때는 언론인을 단순히 비신자로 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단자나 종교생활의 적으로 간주했고 때로는 악마의 협력자로 보기도 하였다.인민주의자들이 내세운 집단주의는 언론의 지지를 별로 받지 못했다. 역사가들은 인민주의 운동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인민주의 운동이 미국의 이상이 배반된 데 대해 민주적이며 급진적인 분노의 폭발이라고 하였다. 또한 인민주의자들이 전통가치의 파괴자일 뿐만 아니라 반개인주의적이고 반유태적이며 매사에 부정적인 국수주의자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인민주의는 혁명운동의 요소를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화이트가 개혁을 진정으로 환영했던 때는 인민주의가 1890년대에 쇠퇴하고 혁신주의라는 도시의 세련된 지성주의가 그것을 대체하였을 때였다. 그에 의하면 혁신주의자가 수영하는 인민주의자를 붙잡아 은화의 자유구조라는 닳아빠진 팬츠를 제외하고는 모든 옷을 훔쳤다 는 것이다. 훗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의 의견을 수긍하여 혁신주의가 인민주의의 직계 후손으로서 인민주의의 반기업적 전통 위에 건설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혁신주의가 혁명적이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반기업적이라는 생각까지 부저하고 있다. 개혁은 더 이상 전원적이며 지방적인 것이 아니라 도회적이고 전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혁신주의는 언론인의 사회구원정신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는데 특히 전국적인 지적 엘리트의 위치를 자력으로 확보하여 그 자신이 힘과 영향력을 가졌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3. 혁신주의 시대테오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혁신주의자의 영웅으로서 개혁언론인들이 몹시 찬양했던 루즈벨트는 자신을 바로 국민의 자비로운 보호자라고 생각하였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플라톤의 이상국가 개념을 말하는 것인데, 이상국가에서 일종의 자비로운 경찰력을 의미하는 보호자 는 주로 국민에게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힘과 용기를 지닌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정의를 보장하였던 강화되었고 새로운 법규가 채택되었는데 아동 노동의 연령 하한선을 올렸고, 근로 시간을 단축시켰고, 야간 작업을 제한했으며, 아동들을 반드시 취학시키도록 규정했다.혁신주의 운동은 그 자신이 혁신주의 역사가의 전형으로 추앙 받는 잭슨 터너에 의해 유포된 새로운 역사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프론티어는 훌륭한 삶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것은 흘러간 과거에 대한 국민적 염원 속에 자리잡고 그 분위기는 도회생활의 불안한 소요와 좌절에 의해 부추겨졌다. 혁신주의자들의 영웅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루즈벨트였는데, 그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에 이룬 개혁은 후임자들 보다 오히려 적었지만 그의 지도력은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그는 프랭크 노리스와 같은 소설가난 윌리엄 제임스가 요구한 위대한 지자의 이미지에 맞아 떨어졌다. 루즈벨트는 적어도 그가 추문폭로가 들에게 등을 돌리기 전까지는 그들의 총아였고 영어의 귀재로서 부드러운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불편 부당한 공무원제도로를 확립하고 독점자본의 무제한적 위력에 종지부를 찍는 진보적 개혁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루즈벨트는 아메리카의 영광과 일반 미국인의 강인한 정신을 거듭 호소했으며, 이들 보통사람이 프론티어의 실용적 인간의 정신으로 위대한 미국을 만든다고 보았다.4. 황색 저널리즘19세기의 마지막 10년은 미국 언론이 내용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기사내용은 야하고 편집은 그보다 더욱 야했던 황색언론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언론, 그 중에서도 특히 잡지가 놀랍도록 성장한 시기였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사회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과학기술의 급속적인 성장에 힘입어 이루어진 빠른 산업화는 대량시장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대중은 새로운 사회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최신의 상품을 소비하고자 했으며, 부자와 유명인에 관한 새로운 기사 읽기를 희망하였다. 미국의 미래는 정말로 밝게 보였으며 브룩스 아담스만이 이 새로운 제국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미국인은 정말로 하느님의 백성인 것처럼 보였다. 여하튼 이것이 무렵부터 마마, 눈 과민증 등의 신체적 질환에 시달리는데 이러한 그의 신체적 장애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헤름홀쯔(생리학자 및 심리학자)나 분트(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같은 당대의 유명한 심리학자들과 교류한다. 1869년 다시 하버드로 돌아온 그는 의사 면허를 따지만 그의 나쁜 건강은 그를 우울증에 빠뜨린다. 하지만 그는 이때 자신의 철학을 일으키며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1972년경에는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어 하버드대에서 생리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이때 가르친 중요한 과목이 '생리학과 심리학의 관계'로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분야였던 실험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1978년부터 쓰기 시작한 "심리학 원론"는 12년 동안이나 걸린 역작이었는데, 이 책은 아직도 심리학의 고전으로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읽혀지고 있다. 1878년 앨리스와 결혼한 그는 건강이 훨씬 회복되어 이때부터 교수로서, 저자로서, 강연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다. 1882년 부모의 사망에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그는 슬픔과 절망, 그리고 그의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하는지를 체득한 것 같다. 1890년 후부터 그는 비록 심리학자이기를 그만 두지는 않았지만 주로 철학적 사고에 몰두했다. 1907년에 하버드대를 퇴직한 그는 1910년 8월 26일 뉴햄프셔의 그의 저택에서 68세의 일생을 마감한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한 인간은 세 가지 측면에서 특징 지워진다. 첫째는 신경쇠약적인 제임스로서 불안정하고, 가끔 섬뜩할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기분이 잘 변하며, 지적인 엄밀성에 대해 반감을 갖는 측면이다. 둘째는 광채나는 제임스로서 생생하고, 마음씨 좋고, 사랑스럽고 민감한 측면이다. 셋째는 둘째의 측면이 첫째의 측면과 통합됨으로써 그의 정신성이 전체적으로 더욱 심오해지고 풍부해진 측면이다. 이러한 다양한 제임스의 측면이 바로 그의 역작 심리학 원론에서 잘 드러난다. 심리학이란 당시만 해도 그리 많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에(현대 심리학의 시초다.
대중사회 : 자본주의와 진화론낙관주의역사 변화의 전반적 과정에 관한 견해로서, 현실은 언제나 보다 좋은 이상적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는 견해이다. 낙관주의는 선의지가 궁극적으로 악을,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확신이며,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 사회발전과 도덕적 진보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비관주의의 반대이다. 하나의 사회적 태도로서 그리고 하나의 철학 및 윤리학적 견해로서 낙관주의는 사회-역사적 진보와 도덕적 진보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천적 정향의 한 도구로서의 낙관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는 자신들의 욕망과 계획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 준다. 이런 이유로 해서, 낙관주의는 개인의 행위에 있어서 건설적인 토대로서 여겨진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은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는데 도움이 될 뿐아니라 긍정적인 인격 특성들을 촉진하게 만든다. 윤리학의 역사에 있어서, 낙관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제시되어 오고 있다. 예를들어, 관념론자인 플라톤은 절대적 정의와 선의 존재를 비록 관념의 세계로 국한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인정했다. 경험 세계에서는, 인간을 관념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인 그 이성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덕스러울 수도 있다고 보았다. 유덕하고 행복한 삶의 기초가 관능적 충동과 행동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데 있다고 본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여타 고전 철학자들에게는 실재론적 측면이 보다 강하게 배어 있었다. 비록 기독교 도덕과 중세 철학이 악은 궁극적으로 극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지만(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 선의 승리는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고 그 승리는 다음 세계로 이관된 것이었다. 현 세계에서의 삶은 비애와 고통의 그것이며, 원죄와 죄의식이 인간 본성의 본질적, 본유적 속성이라고 선언되었다. 근세에 있어, 라이프니쯔(Leibniz)는 절대적 낙관주의 개념을 지지했다. 그는 세계가 불완전한 존재들로 깃들어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무한하고 완사회의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중사회의 복음과 관련하여 온갖 논의가 19세기의 마지막 30여년 동안에 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수단에 관한 것이었지 목적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이가고 부르는 것을 충실히 믿고 있던 사람들의 희망과 낙관은 수정이 됐을망정 외면되지는 않았다.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들 자신이 과학을 존중한 사람들이었고 기회와 진보의 세계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꿈꾸었고 이제 그 꿈은 가까이 왔다. 언론인의 사상이란 대부분 독장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19세기의 위대한 언론인들이 미국 철학에 공헌한 바는 그 독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에 우리가 흔히 홍보라고 부르는 바로 그러한 점에 있다.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 언론인의 신념체계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주의 깊게 간직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이데올로기란 대부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만 때로는 그 조용함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가슴속에 잠겨 있는 개념과 태도이며, 이것은 거의 사상과 의식적 철학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미국인들, 그중에서도 미국의 편집인들은 자신들이 영국의 사상과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이 함께 실험되고 있는 일종의 실험실에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사상은 언제나 경험에 의해 수정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는 그대로 남아 변하지 않고 미화 된다.윌트 휘트맨과 아메리카의 복음믿음은 19세기 미국의 신념체계에서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이 믿음과 함께 미국 특유의 낙관주의가 나타났다. 유럽의 오래된 나라 사람들에게는 신세계의 그 어떤 것도 이 낙관주의가 풍기는 분위기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없었다. 버트린드 러셀은 19세기를 자유주의적 낙관주의의 사대 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미국은 그러한 낙관주의의 가시적인 상징이었다.철학적으로 낙관주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특별한 과 나무와 사람들이 그의 흥미를 더 끈다고 했다. 4년 뒤 《풀잎》의 서문에서 휘트맨은 모든 픽션과 소설보다 진짜가 우월함 을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이다. 역사를 적절히 말해주는 순간 소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휘트맨은 독자들에게 촉구하는 다음의 말에서 언론인의 사실과 시인의 상상력 그리고 미국의 이상을 함께 연결하고 있다. 당신은 더 이상 사물을 간접적으로 얻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모든 측면을 듣게 될 것이고 당신 자신의 그것을 걸러 내게 될 것이다.휘트맨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미지는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비롯한 일반 미국인의 가치체계로 스며들어 갔다. 휘트맨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개척자를 이상화한 점에 있어서 새로운 것은 전혀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은 결국 개척자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휘트맨은 새로운 무언가를 보태었다.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미지에서 중심적인 인물은 분명히 건축인 -목수와 벽돌공- 이었다. 그러나 이 건축인은 서부개척자의 통나무집 뿐만 아니라 도시의 구조물도 건설했다. 휘트맨의 이미지에서, 구체적으로 마천루 속에 나타난 것이ㅣ든 목장 속에 나타난 것이든 가에 프런티어의 도전이 끌어들인 새로운 민주적 인간 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토크빌이 미국에서 탐지했던 평등사상을 뛰어넘어, 휘트맨은 박애사상과 미국인의 형제애 그리고 다양함 속의 일치 또는 하나 속의 다수 를 찬양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당대의 사람들을 뛰어 넘어 - 은유로서 또 현실의 이미지로서 -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형상을 그려냈으며, 그것은 신성한 개인과 그 개인과 똑같이 신성한 통일된 사회질서를 함께 영원히 포용하게 하는 것이었다.휘트맨의 이미지에서 민주주의는 완전한 개인주의 와 집단의 개념 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여기서 위대한 단어 는 단결이었다. 그는 남북전쟁에 대해 쓴 글에서,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이상가들의 부름을 좆아 고향을 실제로 떠났던 미국인의 수는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종종 미국 언론에 의해 광범위하게 전파된 그 신화는 제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분명한 것은 이 신화가 역사상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이민을 미국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다.이민이 미국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것은 단지 미국의 인구를 몇 배로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사람과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하나의 사회질서 안에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 가를 미국은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화의 과정에서 언론은 필연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언론의 실제 관행뿐만 아니라 그 사상까지도 영향을 받았다.이민의 물결이 있을 때마다 영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신문에 대한 수요가 일어났다. 외국어로 된 신문이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조셉 퓰리처를 비롯해서 미국의 가장 뛰어난 언론인 중에는 자신의 언론인 경력을 외국어 신문에서 처음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신문은 영어가 부족한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쉽고 단순한 영어를 강조함으로써 수백만의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나갔다. 이것은 볼테르와 루소의 승리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문맹자도 즐길 수 있도록 제목과 컷, 사진에 비중이 두어졌고 새로운 과학기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개념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액션과 극적인 사건이 뉴스 의 주 메뉴가 되었다.미국이 처음부터 이민의 땅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혁명 기간이 끝날 무렵의 미국은 문화적으로 영국적인 데에 만족하고 있었다. 언어에서 제도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미국은 영국적이었다.미국이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거대한 용광로 라는 비유가 나타난 것은 이때 쯤이었다. 아마도 용광로 라는 이미지를 창안해 낸 사람은 그릴리의 《뉴욕 트리븐》에 기고도 했던 에머슨이었을 것이다. 1855년에 에머슨은 이른바 무지당으로 몰려든 인종됨으로써 모든 철학적 자유주의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던 것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 되었다. 즉 어떤 인간도 자기 동료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으며 그가 행한 일은 그보다 나은 사람까지 포함하여 다른 모든 사람이 행한 일 만큼이나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다윈 이전의 구 철학적 낙관주의는 인간에 대한 특별한 믿음, 즉 우리의 삶은 목적이 있는 것이며 단순히 영웅적인 고통감내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믿음에 근거하였다. 철학적 낙관주의자에게 인생은 결코 비극적인 체험이 아니라 긍정적이며 좋은 것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인간으로 행동함으로써, 각자는 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지상에서 그 대가를 수확하는 것이다.19세기 언론은 인간성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으로 충만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그것이 잘 되느냐, 그것이 국가의 부와 힘을 증대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좋은것 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것 이었다. 사회진화론은 진보와 성장이라는 종교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하였다.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름하에 스펜서와 그 동료들은 다윈의 생물학적 통찰력을 사회구조에 접합시켰고 이것은 미국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는데, 미국은 이미 사회진화론의 토양이 준비되어 있었고 대중언론의ㅣ 편집인은 그 대열에서 결코 뒷줄에 물러서 있지는 않았다.적자생존 이라는 이 유감스런 말을 처음 도입하여 인간의 발정에 적용한 사람은 스펜서 였다. 진화의 개념은 결코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이미 고대 희랍인들도 이 개념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에 적을할 수 있는 종만이 그러한 변화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다윈의 자연도태 가 스펜서에게는 적자생존 이 되었다.적응 할 수 있는 종만이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다윈의 이론은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로 고쳐졌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가장 잘 적응할 수 없는 종은 멸망하고 만다
주제 : 광고 속 남성과 여성이미지와 그 해결방안1. 서론2. 본론⑴ 광고와 성의 관계⑵ 광고속의 남성⑶ 광고속의 여성⑷ 섹스 어필 광고의 문제점과 대안3. 결론※ 참고자료광고 속 남성과 여성이미지와 그 해결방안서론우리는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광고의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공기와 수질의 오염이 물리적인 오염이라면 광고는 정신적인 오염을 가져다 준다고 할 수 있다.시간이 지나고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광고의 수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예전의 광고에 대한 비판들은 과대광고나 허위광고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광고의 표면적인 목적에만 치중하여 어떤 특정한 광고가 얼마만큼 진실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가에만 관심이 모아졌으나 이제는 광고에서 남성과 여성이 상품과 아무 관련 없이 다만 장식적인 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인간이 여타 동물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성(性)에 대한 차이에 있다고 한다. 동물에게 '성'이란 자연이 허락한 기간, 즉 암컷이 임신 가능한 시기가 되고 수컷이 발정기가 될 때 종족유지를 위해 하는 교미의 의미지만 인간에게 '성'이란 성교를 통해 종족을 유지하는 의미 이외에도 그것이 쾌락추구의 한 방법이 된다. 인간은 성에서 '생식'이외에도 '유희'를 찾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단지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태적 우월의 입장에서보다는 성의 능동적인 주체자로서 '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이란 우리에게 여전히 닫혀 있는 문화였기에 커다란 치부로 간주되어 왔고 그래서 약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성'이라는 부분을 치고 들어오는 어떠한 것에도 확고한 주관을 갖지 못해 끌려 다니는 실정이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면에서의 아킬레스건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 사회에서 까놓고 말하기가 금기시되는 '성'을 매개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추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평가가 나올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는 대량소비의 촉진제로서 광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광고는 여성을 비하, 왜곡시키는 정도가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 비해 크다. 특히 여성의 신체를 일부 노출시킨다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묘사해서 눈요기 거리나 성적 대상 정도로 전락시키는 등 여성을 시선 끄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본론-광고와 성의 관계⑴ 광고와 성의 관계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은 물론 사회생활의 모든 부분을 상품가치로 전환하였으며, 인간의 성까지도 상품화시켰다. 인격적인 부분이어야 할 성이 상업적 전략에 의하여 하나의 상품으로서 판매되는 것이다. 이제 성은 스트레스 해소에서부터 사교, 오락, 유흥, 퇴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된다. 또한 성은 인간의 가장 감각적인 부분을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시키려는 상품광고의 상업주의와 결합하여 소비전략의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다. 성이 인간적인 속성을 상실한 채 사물화되고 객체화되는 것이다.우리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모델이 등장하는 자동차 타이어 광고', '구두의 선(線)과 여성의 몸매가 비유되어 번갈아 클로즈 업(close-up)되는 광고', '남녀의 벗은 상반신이 나오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어느 컴퓨터 신문광고' 등등의 광고를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접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기는 이런 상품광고는 여성의 성적 매력과 에로티시즘을 부각시켜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사물, 이미지 또는 익명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런 광고도 있다. '여성의 68%가 경험이 있다. 여성의 99%가 관심이 있다.' 수영복을 입은 여자의 전신사진 옆에 새겨진 이 문안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여성의 성 겸험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비치료와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료수를 선전하는 광고 문안이다. 이러한 광고는 상품광고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성의식을 유포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우리 사회는 성에 대한 은폐와 상품화라는 상준이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를 대신하여 대중매체가 유일하게 '성교육'을 담당하고 잇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중매체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정직하고 바람직한 성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들은 스스로의 상품화와 이익을 위해 성을 부정직하게 이용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대중매체로부터 성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정보를 주입 받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⑵ 광고 속의 남성현대의 광고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반영하듯 남성은 더욱 남성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하고 광고에서처럼 이상적 이미지의 남성상에 미치지 못한 남성들로 하여금 열등의식을 갖게 하고 상대적으로 콤플렉스를 유발시키는 것들이 많다. 여성이 가사노동자로 그려진다면 남성은 직장에서 능력있는 남성으로 그려질 것이고,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으로 제시된다면 남성은 늠름하고 건장해야 하는 것으로 의식을 심어준다. 광고는 남성의 지적인 면의 우월함을 무기로 삼아 그것을 뒷받침해주듯 광고의 웅장한 배경음악과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 나레이터 기용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남성 우월주의 그 자체를 보여준다. 즉 광고는 공격성, 무모함, 힘, 야성을 남성의 매력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광고 속 남성상은 자동차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광고에서조차도 그런 강력한 성능을 가진 자동차의 모습도 강인한 남성상이라는 것을 반영해준다.⑶ 광고 속의 여성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여전히 여성을 어머니, 주부, 아내의 고정 관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라든지 성적 대상물로서만 인식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이미지 생성을 통해 수용자로 하여금 가부장제 가치관을 내면화하도록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광고는 여성의 육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키고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정당화하며 사람이 광고메시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광고에서 여성상은 현모양처형, 소비적이고 호사스러운 여성, 성적 대상인 여성, 남성에 의존적인 여성, 탈 고정관념대체로 바닥이나 침대에 눕거나 기대는 포즈로 나오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했다. 고프만은 광고에서 남성과 여성의 손동작의 비교는 상당한 흥미를 가져다준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손은 무엇인가를 쥐는 형태라서 힘이 있어 보이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기능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여성의 손은 자신들의 몸을 만지거나 쓰다듬는 모습들을 하며 목적 없이 방황하는 감정적이고 육감적인 손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역동적 여성의 모습은 광고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보조적, 종속적 역할의 여성들이 다수라는 것도 덧붙인다. 여성들의 눈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여지고 있음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혹은 전혀 초점이 잡히지 않은 채 꿈꾸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재현되었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백치미를 풍기거나 혹은 환영에 사로잡힌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존재인 셈이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나름대로 세상관을 갖는 것이 끊임없이 거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여성의 몸은 곧은 채로 재현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항상 어딘가에 기대어 있거나 구부러진 모습이다. 여성들이 반라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거나 육감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들인 것에 비해 남성은 곧은 이미지와 강한 근육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이미지는 항상 자신이 없는 모습이거나 숨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는 존재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현대의 광고에서는 여성 운동의 발달과 함께 광고 속의 여성상에 대해 다소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광고에서 그려지고 있는 여성의 역할은 크게 직장여성, 가정주부, 성적 대상의 유형으로 구분되고 있고 이것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광고 속에서 묘사되어 온 여성의 대부분은 철저한 성역할 분리 위에서 가정주부, 어머니, 아내이거나 아니면 성적 대상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역할은 대체로 장식적·수동적·소극적·낭만적·의'성'이라는 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건전한 논의와 대화 속에서 성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단순히 광고가 바르게 발전하는 것의 책임을 광고업자들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눈으로 광고맨이 날조한 거짓말에 질서, 정직함, 공평성을 추궁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은 외설적인 것을 훌륭하고 존경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단순히 홀리기 쉬운 것을 세련되었다고 말하며, 거짓과 기만이 버젓이 진실로 통하고 있는 점을 폭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사색적이 되어 광고를 한층 비판적인 눈으로 보아야 한다. 광고가 아무리 교묘한 설득으로 우리를 현혹한다고 해도 칼자루는 소비자가 쥐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잠재된 힘을 여기에 모아야 할 것이다.얼마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미디어에 상영되고 있는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광고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이 심각성은 남녀비율에 따라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양측 다 기업이 상품을 팔기 위해 하는 행동임에는 어느 정도 동감을 했지만 현재의 광고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기 때문에 광고회사 측에서는 거부감을 줄이면서 광고효과를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또한 필자의 경우 많은 광고들이 성을,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다루지만 섣부른 접근은 오히려 광고 효과를 떨어뜨린 경험이 많다. 잡지를 넘기다가 너무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속옷 차림의 여성들을 상기시켜 보면 어떤 것이 속옷 광고이고, 바디 로션 광고인지 헷갈리게 되고, 더더욱 그것이 어떤 회사의 무슨 제품인지는 도무지 아리송하게 된다. 성적인 광고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할 사항은 그 광고가 아마도 천편일률적인 성적 광고의 도식에 이름을 하나 더 올리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소비자가 그 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제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오렌지 주스의 광고에서 `따봉`이라는 말은 빅히트를 치며
차례Ⅰ. IMT-2000의 개념 등장배경Ⅱ. IMT-2000의 역사Ⅲ. IMT-2000의 국내외 현황①미국의 IMT-2000현황②유럽의 IMT-2000현황③일본의 IMT-2000현황④국내의 IMT-2000현황· 한국통신의 IMT-2000현황· SKT의 IMT-2000현황Ⅳ. IMT-2000의 미래 IMT-2000의 서비스 발전단계Ⅰ. IMT-2000의 개념IMT-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2000)은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발히 연구중인 이동통신 서비스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나의 단말기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화된 글로벌 멀티미디어 서비스이다. IMT-2000은 국제 간의 이동(global roaming)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 표준이 정해졌으며, 현재 동기식 방식과 비동기식 방식을 모두 수렴하는 방향으로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IMT-2000은 수백 Kbps 에서부터 2 Mbps까지 고속 데이터 전송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전 세계적 표준화 및 동일주파수를 활용하여 세계적인 로밍이 되고, 고품질의 음성, 인터넷, 영상 등 멀티미디어통신이 가능하다.동기식과 비동기식동기식과 비동기식은 데이터 전송방식부터 다르다. 동기식의 경우 미국이 지구상공에 쏘아 올린 저궤도위성을 이용해 송신측과 수신측의 시간을 맞춰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반면 비동기식에서는 위성을 거치지 않고 기지국과 중계국만 거쳐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저궤도위성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중국 러시아 등은 동기식 채택을 주저하고 있다.흔히 동기식을 미국식, 비동기식을 유럽식이라 부른다. 동기식 원천기술은 미국 퀄컴이, 비동기식 원천기술은 에릭슨 노키아 등 유럽 업체들이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가입자수에서도 미국은 동기식, 유럽은 비동기식이 강하다. 그러나 IMT-2000으로 넘어오면서 퀄컴도 비동기식 기술을 일부 개발했고, 유럽업체들도 부분적이나마 동기식 준화 기구들이 참여하여, 고정통신 및 이동통신과 국가망 및 사설 망이 유연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Global Service(Roaming)가 가능한 범세계적 복수 표준화 설정에 합의하였다.1980년대 중반 아날로그 셀룰러 이동전화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국가별로 서로 다른 시스템의 운영으로 인한 이동성의 한계 및 기술제약의 한계발생▼'국제전기통신연합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을 중심으로 단일기술표준과 공통의 주파수 대역사용 및 광대역화 및 디지털화된 미래이동통신을 검토▼국경에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서도 운용되는 하나의 보편적인 이동전화기술인 FPLMTS(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시스템)의 개발가능성을 연구하는 그룹을 설립,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Ⅲ. IMT-2000의 국내외 현황1. 각국의 IMT-2000 현황① 미국의 IMT-2000 현황미국은 아날로그 셀룰러와 디지털 셀룰러에 이어 PCS라는 서비스를 도입함으로서 IMT-2000 도입에 소극적인 국가로 분류돼 왔다. 특히 WARC-92에서 IMT-2000용으로 분배된 대역의 반정도를 PCS에 할당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IMT2000 도입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몇 다지 점에서 이를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첫째는 PCS대역은 2004년까지 사용하도록 경매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IMT-2000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기를 유럽에서도 2005년경으로 보고 있으므로 미국이 IMT-2000 도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두 번째는 미국의 PCS 관련 기술 조건은 상호 간섭을 주지 않도록 최대 출력을 제한하고 있는 이외에 특별한 기술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IMT-2000이 2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이 진화할 수 있는 구조로 된다면 시장 상황에 따라 PCS사업자는 언제든지 IMT-2000 시스템 설치가 가능하나는 점이다. 초기 IMT-2000 서비스에 대한 도구가 나타난다면 PCS사업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Up grade 하여 IM 'UMTS Task Force Report'를 통하여 이러한 단계를 거쳐 2002년경의 IMT-2000 도입과 2005년의 본격적인 서비스를 예상하고 있다.③ 일본의 IMT-2000 현황일본은 IMT-2000을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로 2000년 이후 이동 통신의 수요를 감당할 주파수 자원의 부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이외에도 일본 독자적으로 개발한 2세대 디지털 시스템인 PDC와 PHS이 국제적인 사용에 있어 GSM 등에 비해 뒤쳐짐에 따라 독자적인 개발보다는 국제협력에 의한 IMT-2000 개발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인식한 결과도 또 다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93년부터 IMT-2000을 준비하는 조직을 갖추어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은 기고문을 제출했고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연합, 자4신의 안을 표준화하려 하고 있다. 현재 일본 국내의 IMT-2000 표준화추진인 우정성을 중심으로 ITU-R 부분을 담당하는 전파산업회(ARIB)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IMT2000 연구개발의 주체는 우정성 산하의 RCR(Research and Development Center for Radio System : 무선분야) 및 TTC(Telecommunication Technology Committee:유선분야)로 RCR은 1993년 4월 IMT2000 연구위원회 편성(4개 분과위원회)하였고 TTC는 제2기술분과 위원회 아래 FPLMTS 작업반을 편성(3개 그룹)하고 있다. RCR의 4개 분과위원회는 ITU 기고문 작성 및 국제 협력 작업반을 운영하는 표준화 분과 위원회와 R&D 가이드 라인 개발 및 R&D 활동을 촉진하는 기술개발 분과 위원회, 위성시스템 조사 및 개발을 담당하는 이동통신 시스템 분과 위원회, 전파특성 실험 및 무선접속 실험을 하는 실험 분과 위원회의 4개분과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TTC는 Network Service 그룹, Network Security 그룹의 3개 그룹으로식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하여 세계적 수준은 못되지만 국내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3개의 서비스 사업자가 선정될 경우 한국 통신과 SKTELECOM, LG로 그 대상이 축약되면서 LG를 제외한 한국 통신과 SKT는 동기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비 서비스 사업자 3사 모두가 비동기식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때부터 삼성의 행보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동기식으로 갈 줄 알았던 서비스 사업자들이 비동기식으로 몰리면서 삼성은 IMT-2000사업에서 설자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긋이 사업자 선정을 기다리던 삼성은 이때부터 동기식에서 쌓은 노하우를 누리기 위해 비동기식 반대를 선언한다. 그리고 비동기식 단말기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초강경 수를 던진다. 하지만 서비스 사업자들을 동기식으로 돌리기엔 시간이 늦은 감이 있었다.우리나라는 비동기식보다 동기식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서비스 사업자 모두가 비동기식 일색으로 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업계자율에 맡겼던 정책을 뒤집고 정부가 나서게 된다. 정부는 IMT-2000사업자 선정에서 업계자율에 맡겼던 기존 방침을 바꾸어 1동, 2비동기식으로 사업자 선정을 하기로 정책을 바꾸기에 이른다. 하지만 서비스 사업자들은 비동기식 우위론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처음부터 비동기식으로 방향을 잡았던 LG를 제외하고, 한통과 SK의 경우도 동기식으로 방향을 선회하지 않은 것이다.한통과 SK는 서로 동기식을 상대방에 떠넘기려하게 된 것이다. 사업계획서 제출일 이 다가옴에 따라서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서비스 사업자들과 접촉해 동기식을 권유하지만 기업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자신들이 동기식으로 갈 경우 상대방도 동기식으로 가는 조건을 내세우는 등 물귀신 작전을 펼치면서 비동기식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하나로통신이 중심이 된 한국 IMT-2000이 사실상 포기를 선언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3개의 사업자가 2장의 비동기식 사업권을가지고 있다.하나로통신의 사업 신청은 몇 가지 넘어야 할 과제가 남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과연 하나로 통신의 사업계획서 신청을 대주주인 LG와 SKT가 인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 11월 13일에 일단락 되었는데 결론은 이것이다. 이사회는 하나로통신 사업신청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LG측의 입장인 데이콤의 남영우 이사(데이콤 부사장)는 반대를 나타냈고, SK텔레콤을 대표한 박명욱 이사(SK텔레콤 상무)는 입장표명을 유보했으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들은 하나로통신이 제출한 동기식 IMT2000 사업추진계획에 대해 동의를 표했다.이로써 하나로통신은 사업자 선정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과연 하나로통신의 사업계획서를 컨소시엄형태로 인정할 수 있냐는 것이 과제인데, 이것 역시 정부가 일반 국민들에게 사전 공모한 예비주주(개인주주)들을 컨소시엄으로 구성, IMT2000 사업권을 신청한 하나로통신에 대해 컨소시엄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IMT-2000 사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한국통신의 추진현황우리나라의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주도해 온 한국통신은 IMT-2000 분야에 있어서도 1996년부터 가장 많은 준비와 투자를 해 왔다.21세기를 주도할 국민기업으로서 국민들에게 저렴한 고품질 유무선 통합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해 온 한국통신은 꿈의 이동통신이라 불리는 IMT-2000 사업을 위해 오래 전부터 자체 기술개발에 주력해 왔다. 이러한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최고의 사업계획서를 준비하였고, 최고의 서비스를 위하여 최고의 파트너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였다.1996. -비동기 셀 탐색 알고리즘 국제 특허를 포함한 총 138건의특허 확보1998.8동기식 IMT-2000 실험시스템 개발1998.12비동기식 IMT-2000 실험시스템 개발1999.4IMT사업추진단 발족2000.1IMT사업추진본부 확대 발족2000.3- 10.최고의 사업계획서 작성2000.8템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