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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현대기업경영의 문제점 평가A좋아요
    1. 서론1997 년 한국은 IMF 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과소비와 유흥문화의 과대팽창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원인은 기업들에 있다고 해다 과언이 아니다. 재무구조가 건실하지 못한 기업들은 차례로 도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한국 기업의 문제점들을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되짚어보려고 한다.2. 본론-1) 정경유착한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정치는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정당의 활동이 헌법에 의해서 보장되어있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올바른 경쟁을 통한 기업활동도 보장이 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는 정치와 기업이 끈끈히 연결되어서 사회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을 운영하고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당원들만의 당비로는 충당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특혜를 약속하고 기업인들에게 불법으로 자금을 받는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 이러면서 줄을 잘 댄 일부 기업들만이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으로 살아남아 결과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총체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정경유착의 매력은 서로가 좋은 win-win 전략이라는 점이다. 한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법적, 정치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데 이를 폭넓은 인맥을 보유한 정치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다면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과 정치인이 각각 보유한 재력과 권력이 조화를 이룰 경우 그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최근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 , 김대중 현 대통령의 2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벤처비리에 연루되어서 구속이 되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있었다. 이른바 정치권과 일부 기업인이 손을 잡은 게이트 사건들이다. 나의 생각에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 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시절이었던 자유당정권 - 민주당정권 - 5·16 군사정변 - 공화당정권을 거치는 동안 부정축재 J정부 집권초기 2 년 동안에 김홍업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16 억원, 삼성그룹으로부터 5억원 등 도합 21억원을 '활동비' 명목으로 받아 사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대목에 대해 대가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순 증여세 포탈혐의로 김홍업씨를 기소했다. 뇌물이 건네진 시기는 더욱이 뇌물이 건네진 시기는 IMF 위기 발발의 주요 책임자가 과잉, 과오 중복투자를 일삼은 재벌로 판단, 재벌들에게 부실 자회사 정리, 빅딜 (사업 맞 교환)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재벌들은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고, 권력심층부에 줄을 대기 위해 분주했다.정주영 명예회장이 맨 처음 10 억원의 뇌물을 건넨 시기는 98년 7월로 밝혀졌다. 이 시기는 98년 6월18일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재벌이 정부의 부실 계열사 퇴출 압력이 밀려 20개 계열사를 퇴출 시킨 직후였다. 그러나 당시 퇴출된 계열사는 대부분이 구멍가게 수준의 계열사들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형식적 구조조정에 대한 나라 안팎의 비난여론이 대단하던 시기였다. 재벌들은 이 같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요로와 접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더욱이 당시는 이른바 정부의 '빅딜' 압박이 대단하던 시기였다. 중복과잉투자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동일투자부문을 한 재벌이 맡도록 한다는 정부의 이 구상이 밝혀지자, 재벌들은 서로 주요산업부문을 배정 받기 위해 치열한 막후로비를 펼쳤다. 이 같은 빅딜 전쟁은 현대그룹이 LG반도체, 기아자동차, 한남투신 등을 잇따라 따냄으로써 외형상 승리한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인수들이 현대의 몰락을 자초했다. 이 정황으로 볼 때 정주영 명예회장이 김홍업 씨에게 돈을 건내고 빅딜의 반대급부를 따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비단 뇌물을 준 것이 현대뿐이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대선 전에 김대중 후보에게 승부수를 띄움으로써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 경와 개발 욕구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가지고 오게 한다. 점점 한국이 깨끗해지고 있기에 희망을 가지지만 정치인들도 정당하게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기업인들도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을 하여야 할 것이다.-2) 무리한 사업확장한국에만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재벌' 이란 단어이다. 재벌의 뜻은 " 거대 자본을 가진 동족으로 이루어진 혈연적 기업체군" 이다. 한국에서의 재벌은 근세 이후 일제강점기 - 8·15광복 - 6·25 전쟁까지는 재벌이 형성될 만한 경제적 여건이나 풍토가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 규모가 확장되고, 또 일부 건설업체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조선(造船)·자동차·전자·철강·항공·운수·식품업체들이 성장하여 삼성, 현대, 대우, 엘지, 쌍용, 한진, 효성, 선경, 신동아, 두산 같은 재벌들이 자리를 굳혔다. 여러 재벌 중 삼성의 사례를 들어서 무리한 사업확장의 사례를 보고자 한다.삼성그룹은 무역·기계·조선·건설·전자·화학·섬유·제지·유통·호텔·광고대행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업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초대 그룹 회장인 이병철(李秉喆)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것이 삼성그룹 형성의 효시이며, 1952년 삼성상회를 삼성물산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함으로써 삼성물산(주)이 탄생하였다. 1953년 제일제당(주)을 설립하여 식품업계에 진출하고, 1954년 제일모직(주)을 설립하여 섬유업계에 진출하였다. 이어 1972년 제일합섬(주)을 설립하여 섬유업계에 기반을 굳혔다. 1960년대 말부터 경공업소비재 분야에서 중화학공업 분야로 사업기반을 넓혀 나갔으며, 삼성물산(주)은 1975년 종합무역상사(지정 제1호)로 지정을 받아 수출확대에 주력하고 있다.1996년 (주)삼성자동차 설립, 1996년 사업구조 개편으로 계열사는 50 개사에서 24 개사로 조정되었다. 1997년 5월 (주)제일제당과 신세계백화점(주)이 그룹에서 분리·독립하였고, 1999년 4월에는 중앙일보사(주)와 보광(주)이 계열 분리하였다. 또한 20을 뒤집어서 본다면 기업의 전문성이 결여된다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경쟁 시대이기 때문에 시장의 단위가 국가 단위이다. 세계경쟁이란 말은 시장의 변화속도가 빠르고 세계적이란 것인데 많은 투자가 필요한 변화를 위한 대응에 거대 기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종합적 기업이 된 것은 무리한 사업의 확장으로 인한 것이다. 삼성이 1996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할 당시 우리나라의 자동차기업은 현대. 기아, 대우, 쌍용, 아시아 사(社)까지 5개 기업이었지만 시장의 조사를 미흡하게 한 탓인지 삼성자동차는 적자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르노 사에 팔리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삼성 그룹은 많은 손실을 입었다. 다행히도 사업구조 개편으로 각 분야별로 계열사 분리를 했지만 아직도 기업의 주력이 무엇인지 그 분야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 분야에 집중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 정수기 산업에 뛰어든 엘지전자, 대우전자, 효성, 코오롱, 동양 등 거대 기업들은 한 우물만을 파온 웅진 코웨이와 청호 나이스가 시장의 70 % 이상을 점유하면서 전문 기업의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보일러 산업에서도 린나이, 귀뚜라미라는 전문 기업이 버티고 있어서 대기업이 참여할 틈이 없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도 거대한 조직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적합한 전문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3) 족벌 세습과 황제 경영한국의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하면 현대, 삼성, 엘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대 기업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벌 2세들이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늦어도 1990년대에는 전문 경영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적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너 시스템을 고수하다가 낭패를 보았다. 물론 창업자의 경우 여러 상황들을 겪으면서 생긴 기업 경영의 노하우가 있고 기업을 창시할 당시는 환경의 변화도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업자의 구구식 경영으로 기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전문 경영지식과 실무 경험을 갖추지 못한 2세 경영자들이 창업자와 비교해서 대외에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단기차입, 상호지급 보증들을 통해 끌어들인 엄청난 자금은 결국 기업과 국가의 위험을 초래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한국기업의 총수들은 회사의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계열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부당한 내부자 거래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등기이사도 아니고 지분도 없는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서 실적이 부진한 사장을 질타하고, 경영 방향을 지시, 결정하고 있다"면서 "재벌들의 이 같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태는 정권 말기에 들어오면서 재벌 개혁이 약화되어 가고 있고 총수들이 계열사 지배권이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1% 도 안 되는 그룹의 지분을 가진 총수의 말 한마디로 여전히 수십개 계열사의 중요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그들 스스로 시장 경제의 원리를 뒤엎는 것이다.5% 에도 못 미치는 지분만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전체를 사유물화하고,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여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나아가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없이 총수의 지위를 대물림하고, 그리고 공익재단을 단지 상속세 회피 수단 및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전락시키는 우리 나라의 재벌 총수들이 한 순간에 나아질 것이라고는 바라기 힘들다. 상속·증여세법의 완전 포괄주의로의 전환은 재벌총수들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이러 한 개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종업원도 자신이 속한 기업에 대해 일체감을 갖고 못할 것이며, 그 어떤 국민도 생산적 복지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4) 자산의 편법증여엘지그룹의 증여는 도를 지나친 정도이다. 얼마 전 발표한 한국의 젊은 부호 50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엘지그룹에 관련된 사람이 7명 정도 있었고 그 중에는 4살 7 살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돈들은 다 어디에서 렸다.
    경영/경제| 2002.11.04| 6페이지| 1,0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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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사상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그래서 다섯 가지의 역사관의 유형들 중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대하여 조사하기로 생각했다. 그럼 이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관하여,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생존수단들을 생산해내는 방법이야말로 역사변화의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 사상의 의미는 그것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데, 그의 정신구조는 19세기 중엽의 독일에서 형성되었으며 역사주의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는 일찍이 진보개념과 연관된 사상전통도 접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두 사상이 상호작용하여 생겨난 결과물이다. 이 말은 단순히 마르크스가 역사주의와 진보사상의 다양한 요소들을 혼합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전통이 이미 융합되어 있던 것을 취하여 손질하여 내놓았다는 말이다. 마르크스 이전에 두 전통이 융합되었던 것은 헤겔의 사상체계였는데, 그의 전체를 포괄하는 철학은 1831년에 그가 죽은 이후 10년 동안 독일의 놀라운 사상체계로 군림하였다. 1837년에 베를린의 법학도였던 마르크스는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헤겔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되었다 고 썼다. 비록 헤겔이 「역사철학강의(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World History)」로 가장 유명해졌지만,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헤겔주의 세계관의 전체 내용과 연관되어서 발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알기 위해서는 헤겔철학에 관한 개괄적인 이해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헤겔주의적 바탕헤겔철학은 칸트철학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났는데, 헤겔에 따르자면 경험을 넘어서는 실재란 없다. 헤겔은 실재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이 실재하는 것이다 라는 공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실재 세계가 정신을 통해 인식될 수 있으며, 정신이란 실재세계에 존재하는 전체라는 것이신 혹은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절대적 관념론자로 분류된다. 정신의 관념이야말로 외부세계의 유일한 원인이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켰는데, 그는 변증법을 상반되는 것을 종합 속에서 파악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였다. 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과정에서도 어떤 계기는 그것과 반대되는 계기에 의하여 대체되고, 다시 이 계기는 상반되는 계기의 종합에 의하여 대체된다. 그러면 이 통합은 다시 새로운 국면의 첫 계기가 된다. 정·반·합 이 세 가지가 한 짝을 이루는 변증법은 세계사의 다양한 부분에서 규칙적으로 발견된다. 이 패턴은 진보사상의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다. 변증법에는 직선론적 맥락이 흐르고 있고, 성취되어야 할 목적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또 확고한 가치체계를 내포하고 있다.1843년에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 비판(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헤겔주의와의 관계를 청산하였다. 헤겔의 법철학 비판 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주의의 국가란 보편적인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기는커녕 기득권의 이익을 따라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란 헤겔이 시민사회 라고 불렀던 경제적 개인주의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역사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에 따르자면, 우리는 국가를 칭송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민주주의 를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역사는, 인민 대중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어떠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싹트고 있음을 본다. 비록 마르크스는 헤겔주의적 방식으로 사고하고 표현하였지만 헤겔로부터의 지적 독립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이론마르크스가 역사과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할 때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는 전제이다. 마르크스에 따르자면, 인간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의 주장과 같이고, 때문에 인간활동의 본질적인 형태는 생산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필요가 인간을 노동하도록 자극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역사적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하였다.마르크스의 역사이론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첫 번째 요소로부터 나온다. 인간이 자신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방식인 생산양식이 인간생활의 모든 측면을 규정한다. 생존수단을 창조하는 노동이야말로 삶을 결정짓는 방식이다. 마르크스는 단순히 경제활동이 사회생활의 유형을 야기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사회생활이란 본질적으로 필요를 만족시키는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특한 생산양식은 인간과 자연세계와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들의 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말은 은연중에 정신이 세계를 창조한다는 헤겔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가 역사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마르크스의 역사이해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특징은 시대구분의 체계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특정한 역사시점에서 생산 양식의 발전이 사회의 법적, 정치적 구조의 변화를 앞지른다. 그러면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전체 상부 구조가 급속하게 변형된다. 그러한 사회혁명들은 역사의 단계들을 구분지어준다. 각 단계에서 분업은 상이한 생산양식을 소유한 사회집단들, 즉 마르크스주의 사상에서는 계급 간의 갈등을 야기한다.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고대, 봉건, 부르주아 국면이 이미 출현하였다. 부르주아 단계는 계급 투쟁이 발생하는 최후의 단계이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노동자 계급이 전위대로 나서는 혁명에 의하여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은 인구의 대다수이므로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다가올 사회주의 사회 내의 다른 집단과 적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진보사상의 특징적인 일직선론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이런 역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는 마르크스의 공리를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경제력이 인간과 분리된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력이 사건들의 과정까지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생산과 관계있는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인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은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역사과정은 다른 어떤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사용한 법칙들(laws)'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에게 법칙이라는 말의 의미는, 경향 이라는 동일시 할 수 있다. 법칙들이란 사회적 경향을 일반화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제한하는 사회흐름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역사 에세이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인간 마음대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인간은 자신들이 선택한 환경 안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에게직접적으로 주어진,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환경 안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이전 세대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활동한 것이 역사과정을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왔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법칙이란 단지 인간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방식에 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운명이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의 형성자라는 자신의 최초의 전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엥겔스의 역사이론마르크스주의를 살필 때 마르크스 외에 한 명의 중요한 사람이 더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프리드리히 엥겔스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처럼 헤겔주의를 확실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두 사람 모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국가가 소멸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했지만, 마르크스가 항상 국가는 폐지되리라 는 헤겔주의적인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엥겔스는 국가가 시들어 버릴 것이라고 생물학적 은유엥겔스의 사상에서는 자연과 역사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둘 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에 있다.엥겔스는 또한 마르크스 사상 중에서 실증주의적 경향을 강화하였다. 철학은 정적인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변화하는 실재를 파악하는데 적합한 것은 오직 변증법적 사고뿐이라고 엥겔스는 주장한다. 철학의 전제조건들을 버리고 변증법의 통찰력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학문분야에서도 연구를 통하여 세상에 관한 참된 실증적 지식 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에 따르면 역사와 자연은 필수불가결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둘은 전적으로 유사한 연구대상이라는 것이다. 엥겔스는 자신의 관점을 당대의 실증주의 이론가들의 관점에 접근시킴으로써 마르크스를 넘어서 나아갔다.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의 정치적 저작에서 경제적 토대로부터 나오는 법률적, 철학적, 종교적 사상과 관습의 파생물에 주된 강조를 두는 데 열중하였지만 그것들의 형태가 경제적 토대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경제와 무관한 영역들은 그들 자체의 고유한 내적 동인을 발전시킨다. 어떤 특정한 영역이 생산영역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영역은 상대적으로 더욱 독립적이다. 따라서 무역 형태는 생산양식을 밀접하게 따르고 있는 반면 철학과 종교는 생산양식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정도가 훨씬 적다. 게다가 정치, 법률, 철학, 종교는 다시 경제적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엥겔스는 그의 말년에 점점 더 명백하게 나타났던 경향들, 즉 유물론적 역사 개념을 경직된 공식처럼 적용하려는 경향과 싸우려고 노력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서술역사서술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용하는 일은 20세기까지도 매우 드물었다. 러시아와 러시아 공산주의의 위성국가들을 제외하면,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곳은 아마 프랑스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시민계급의 봉건귀족에 대한 반란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은 특히 정통적인 역사해석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가장 큰 공헌된다.
    인문/어학| 2002.10.25| 5페이지| 1,000원| 조회(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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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평가A좋아요
    Ⅰ. 인식론이란 무엇인가?인식론(epistemology)이라는 용어는 지식을 의미하는 희랍어 episteme'와 이론을 의미하는 희랍어 logos'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로서 인식론(epistemology)이란 한마디로 말해 인식과 지식에 관한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안다 고 말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식론은 지식에 관한 지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식론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인가 아니면 단순히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서의 세계인가? 라고 물음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지식에 대한 두 종류의 이론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이론들은 지식의 주관성이나 객관성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Ⅱ. 지식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경험론과 합리론지식에 대한 이론은 자연스럽게 이론상 그리고 역사적인 계기에 의해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뉘어진다. 합리론은 어떤 관념들이나 개념들이 경험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며, 어떤 진리들은 이성만으로 파악된다고 믿는다. 반면 경험론은 모든 관념과 개념들은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며 진리는 경험에만 의존해서 입증해야 한다고 믿는다. 합리론이나 경험론이나 모두 상대방 학파의 기본적인 도구를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는다. 두 학파간의 논쟁은 필연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에 대한 문제를 두고 생겨난다.필연적 지식 혹은 선험적 지식은 의식 밖으로부터 주어진 지식이 아니고 경험에 의존하는 지식도 아니다. 예를 들면, 고양이는 검다 라는 명제는 검은 고양이 의 정의(定義)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참이다. 이러한 것이 분석명제인데, 이런 명제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된다. 경험적 지식 혹은 후천적 지식이란 경험을 따라서 온 지식 혹은 경험에 의존하는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책상은 갈색이다 라는 종합명제는 경험에 의해 나온 지식이다. 검은 고양이는 검다 라는 분석명제와는 달리 책상은 갈색이다 evidence)의 문제 에 있어서 종합적이면서 필연적인 증거들을 인정하며 경험론자들은 종합적이면서 경험적인 증거들만 인정한다. 또한 확실성의 문제는 어떠한가? 경험적인 지식은 확실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증거와 어느 정도의 증거가 요구되는가? 오류론은 어떤 경험적 판단도 확실한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즉, 모든 경험적 판단명제들은 오류일 수 있으며 개연성을 가질 뿐이라고 본다. 반(反)오류론은 어떤 경험적 판단은 확증적으로 확실하다고 보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한 방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라는 따위의 명제이다.필연적 지식에 기초가 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세 가지 사유의 법칙들이다. 이 법칙들은 누가 무엇에 대하여 사유하던 간에 언제나 전제가 되고 있다. 첫째는 동일률(同一律, Law of Identity)이다. 어떤 실체이든간에 그것은 그것이 아닌 어떤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명제에 적용시키면 이렇게 된다. 만약 한 명제가 참이면 그 명제는 참이다. 만약 p이면, p이다. 둘째는 모순율(矛盾律, Law of noncontradiction)이다. 어떤 실체도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어떤 것이 아닌 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을 명제에 적용시키면 이렇게 된다. 한 명제가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라는 것은 참이 될 수 없다. p이면 not p일 수 없다. 셋째는 배중률(排中律, Law of Excluded middle)이다. 어떤 실체이든지간에 A이거나 A가 아니거나 이다. 모든 것은 A이거나 not A이거나 이다. p이든지 not p이든지이다. 이 사유의 법칙들은 논리와 추리의 많은 법칙들 가운데 세 가지이다. 이것들은 증명되지도 반증되지도 않는다. 이것들을 설명하려면 이미 이것들을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들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 된다. 이것들은 모든 합리적 사유와 논술에 있어서 전제되어 있다.합리론은 사유의 법칙들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유의 법칙들은인식과 지배를 추구하게 됨에 따라 추구되고 있는 지식의 본질과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 관해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실험적 방법이 발전하고 다양한 형태의 경험론이 대두함으로써 인식의 원천과 진리의 본질에 관한 이론들은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서양 철학에서는 직관론자들과 관념론자들의 인식론이 강세를 보여왔으나 20세기에 와서는 이것들이 전체적으로 쇠퇴하고 다양한 형태의 실재론이 등장하였다. 실용주의, 현상론, 실증주의, 분석철학 등이 그러한 실재론에 해당한다. 이것들 가운데서 가장 최근에 등장하였고 아마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분석적 인식론들이다. 실증주의는 논리학, 과학, 언어분석의 발전을 경험론의 전통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은 논리실증주의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회의주의는 전체로서의 지식의 가능성과 사물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로서의 지식의 가능성을 모두 부정한다. 대신에 회의주의는 개별적인 지각 내용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형태의 회의주의가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어떤 점에 있어서 지식을 불신하거나 지식의 범위를 흄이 지각들의 흐름 이라고 부른 것에 제한시킨다. 서양 회의주의의 최초의 위대한 대변자는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였다. 현대 회의주의는 논리실증주의와 다른 형태의 분석철학 등과 관련을 맺고 있다. 대륙의 합리주의는 직관을 강조하는 데 반해 영국 철학의 전통은 순전히 경험론적 인식론을 발전시켜왔다. 경험론적 인식론은 오캄의 유명론과 베이컨의 철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칸트에 있어서도 역시 이 전통은 근대 인식론을 위한 영감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흄 이후 영국 경험론은 실용주의, 실증주의, 현상론, 분석철학 등의 현대 경험주의 학파들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인식론은 모두 인식의 대상이 지각 내용이나 감각 재료 등 경험을 통해 주어진 것들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사물들은 우리에게 나타나 보여지는 것으로서의 사물들이다. 사물들은 논리적인 구성물들이다.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유용한 개념일는 것이다. 인식자와 그의 세계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서양의 직관주의는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베르그송과 같은 사상가들에게서 종결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대륙 합리주의의 인식론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객관론적 관념론은 대륙 합리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데카르트와, 칸트를 거치는 그의 추종자들은 과학에 의해 탐구되고 있는 세계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사유의 과정과 정신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어떤 지식은 자명하고 정신에 이어서 생득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즉 선험적인 것, 경험에 의하지 않고 알려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지식은 모든 지식의 기초를 형성한다. 또한 세계는 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성은 그것에 접근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발달한 것으로, 대부분의 스콜라 철학의 인식론으로서 중세 후반에 융성하였다. 그리고 현대 토마스주의 철학에서 부활되어 다시 주장되고 있다. 토마스주의는 경험이란 지성으로 하여금 인식가능한 실재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매개라고 믿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이 실제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현대 인식론으로서 인식론적 실재론은 당시에 풍미하고 있었던 관념론, 특히 헤겔주의에 반박하여 미국의 제임스와 영국의 무어가 반론을 폄으로써 시작되었다. 현대 실재론은 플라톤의 실재론과 구분된다. 현대 실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가 아니라 물질적인 대상들과 관계들의 독립적인 실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실재론적 인식론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들이 있다. 상식적인 실재론과 같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서부터 가장 약하게는, 인식에 있어서 정신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보는 비판적 실재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인식론적 실재론은 객관적인 물질 혹은 실체, 과정, 사건들로 구성된 중성적인 세계가 인식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입장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인식론의 발전을 크게 합리주의와 경 참·거짓의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지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큐로스 학파에 의해 전개되었다. 중세철학의 유일한 목표는 합리적 논의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정당화시키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자연과학은 쇠퇴하였다. 이러한 자연과학을 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14세기의 움직임은 형이상학 분야에서 이성의 적합성을 의심한 회의주의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지성에 의해 알려지는 보편적 개념이 지식의 참된 대상이라는 생각은 도전을 받게 되고, 참된 대상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근대와 현대의 경험주의를 주창한 대표적인 철학자들로는 베이컨과 로크, 흄을 들 수 있다. 베이컨은 새로운 과학을 위한 방법론으로 경험적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개별적 관찰에서 일반화로 나아가는 귀납법이다. 그는 감각에 주어지지 않는 것은 지성에 주어지지 않는다 , 감각에는 오류가 없다 는 에피큐로스의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감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로크의 경험론은 당대의 여러 비판자들 중 특히 버클리에 의해 난점들이 부각되었다. 버클리가 로크의 표상이론을 극복한 방법은 물질세계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였다. 버클리는 관념이 물질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로지 관념뿐이며,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 세계 자체의 차원에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주의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지식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길이란 존재하는 것, 실재하는 것은 관념을 소유하는 정신뿐임을 주장했다. 버클리는 존재는 주관적·개별적 정신 안의 관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관념을 창조해내는 어떤 보편적 정신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주관주의나 상대주의의 문제를 피하고 있다. 흄은 관념이 물리적 대상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버클리의 생각을 거부했다. 로크의 표상이론은 외부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는데, 들이다.
    인문/어학| 2002.10.21| 5페이지| 1,000원| 조회(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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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역사관] 기독교 역사관 연구 평가A좋아요
    Ⅰ. 서론기독교사관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4년동안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질문인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 기독교와 역사이해 과목을 수강하면서, 그리고 이 과제물을 통하여 기독교사관의 정립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대를 가져본다.이 글에서는 기독교(역)사관이 무엇인지 알기 이전에 먼저 세계관과 기독교사관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기독교유신론,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에 대하여 알아보고, 기독교사관 이외의 다른 유형의 사관들에 대하여 알아본 후, 마지막으로 기독교사관이란 무엇인지 성경구절들에 근거하여 알아볼 것이다. 세계관과 사관, 기독교세계관과 기독교사관­이것들 사이의 상호연관성과 미세한 차이점들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의 최선을 다하여 이 글을 쓸 것이다. 자료는 거의 대부분 문헌조사를 통해 확보하였는데, 글 중간중간에 참고도서를 언급할 것이다. 너무나 다양한 책들이 있어 참고하는데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선별하는 과정에서 약 5∼6권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모쪼록 금번 기독교사관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나의 학문적·신앙적 발전이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Ⅱ. 본론제 1 장 기독교세계관제 1 절 세계관기독교세계관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세계관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세계관을 의미하는 독일어 Weltanschauung 은 Welt(세계) 와 Anschauung(직관) 의 합성어로서 직관적이고 관조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관은 사람마다 갖고 있는 하나의 관점, 즉 전제(presupposition)를 말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제임스 사이어는 세계관이란 이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관적이든 비일관적이든)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옳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틀릴 수도 있는 가정) 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세계관과 현대사상, IVP, 1996, p.20또한 세계관은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유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넷째, 인간은 주위의 세계와 하나님 그 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 안에 심어 주셨으며 능동적으로 인간과 교통하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은, 비록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지만 훼손되었다. 한편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구속하시고 선을 회복시키는 과정을 시작하셨다. 물론 인간은 이 구속의 사실을 접하고 그 구속을 거부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이 다섯 번째 명제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 가 창조되었고, 타락했고, 구속되었고, 영화되었다 는 것이다. 이 말은 기독교사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독교사관에 대하여 언급할 때 말하도록 하겠다. 여섯째,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과 함께 누리는 생명의 문이든지, 인간의 갈망을 궁극적으로 채워주실 유일하신 분과 영원히 갈라서는 문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일곱째, 윤리는 초월적이고, 선(거룩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하고 있다. 여덟째, 역사는 직선적인 것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켜 가는 의미 있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역사는 직선적 이라는 말은 인간의 행위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의미 있는 연속의 일부라는 뜻이다. 역사는 돌이킬 수 있는 것도,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순환적인 것도 아니다. 또한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어느 곳인가로 향하는, 알려진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목적론적(종말론적)인 것이다. 시작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위도 아시고 또 인간을 다스려 가시는 것이다.이상에서 기독교세계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유신론의 여덟 가지 명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위의 명제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면, 기독교유신론의 역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역사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고스(의미 그 자체)인 하나님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계고,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서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창조·타락·구속의 개념은 기독교세계관을 이해하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며, 이 개념들은 별개의 것들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이루는 것들로, 결국 기독교세계관의 핵심인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의 문제와 연관된다. 따라서 창조·타락·구속의 개념은 기독교세계관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세계관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제 이 세 개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창조(Creation) 이다. 우리는 창조된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한 창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신 하나의 문화명령으로 이어진다는 것과 하나님의 자기계시로 나타난다는 것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렇듯 기독교세계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에 의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창조사실은 기독교세계관의 기초이다. 이 세상이 아무 의미 없이 있게 되었다거나, 우연히 생겨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타락(Fall) 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계에 영향을 미쳤다. 아담의 타락은 지상적인 창조의 전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창조계 전체를 오염시키는 대재난이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죄로 오염되고 훼손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는 구속(Redemption) 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파괴되고 훼손되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훼손된 창조계의 영역을 자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회복시키시는 구속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구속이 창조계의 회복이라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 개념에서 잘 드러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계의 회복과 하았다. 둘째는 진보사관이다. 진보사관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인데,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인류는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을 만나게 되었다. 이 사관은 콩도르세와 콩트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이들은 인간에 의한 역사의 진보를 강조하며 인간 이성에 기초한 역사의 낙관론을 제시하였다. 셋째는 역사주의이다. 역사주의는 역사의 진보와 보편을 강조한 진보사관과 달리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독일의 랑케(Ranke)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역사주의자들은 보편적인 이념보다는 역사의 개체성을 강조한다. 역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는 오즈왈드 스펭글러(Oswald Spengler)인데, 스펭글러는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에서 역사의 순환과 필연성을 논하고 있다. 스펭글러는 운명을 강조하며, 역사의 목표와 목적을 거부하는 무목적성(無目的性, purposelessness)을 주장하고,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자아를 강조한다. 넷째는 마르크스주의사관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인간 욕구의 필요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그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있다. 또한 역사의 모순과 부패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나치게 경제적인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이해한다.제 2 절 기독교사관이제 기독교사관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여러 장에 걸쳐 기독교사관의 이해를 돕는 기본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는데, 특히 기독교유신론과 기독교세계관에 대하여 살핀 제 1 장 2절과 3절의 내용은 기독교사관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기독교사관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기독교사관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 기독교사관의 전제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기독교사관에는 창조사관, 섭리사관, 종말(목적)사관, 구속사관 등의 전제들이 있는데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다.첫째, 구속사관이 전제된다. 구속사관은 역사가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고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면서 역사의 주관자로 선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과 끝이며 역사의 섭리자이심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심판과 은혜의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역사를 통하여 구속하신다는 사실이다.셋째, 창조사관이 전제된다. 앞서 기독교세계관을 살펴볼 때 창조 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창조사관이란 한마디로 영원한 창조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전도서 12:1에서 저자인 솔로몬은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솔로몬은 창조자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절대자인 하나님을 전능자·초월자·주권자 등 수많은 명칭들로 부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창조자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저자의 잠재의식 속에 창조사관에 대한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넷째, 종말사관이 전제된다. 종말사관은 목적론적 사관이라고도 부르는데, 역사가 하나님의 분명한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전진한다는 사관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는 역사를 창조부터 심판에 이르는 하나의 드라마로 보았다. 즉,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종말론적인 이해란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이 나타나게 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말한다. 루터의 종말론은 역사의 의미와 목적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루터에 의하면 역사와 세상은 종말에 이르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지막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시대의 또 한 명의 종교개혁가인 칼빈도 종말사관을 강조하였는데, 하나님 나라(the Kingdom)'의 .
    인문/어학| 2002.07.12| 7페이지| 1,000원|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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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신앙의 눈으로 본 역사 - 요약 및 서평 평가A좋아요
    1. 역사에의 초대 : 그리스도인의 소명역사란 사람들과 시대에 관한 연구로서, 시대를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이다. 더 나아가 역사는 시대를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의 기억이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여러 지체(members incorporate)'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리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한, 우리가 알고 있다 고 주장하는 것과 우리의 역사적 관점이 옳다 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겸손의 미덕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신앙적 결단과 역사적 연구를 통합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연구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을 연구하는 것은 시간과 영원 사이의 철저한 단절 때문이다. 영원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우리는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객관적 실재(과거)와 우리의 주관적 신앙 사이에서 조화를 찾아야만 한다. 역사가 칼 베커(Carl Becker)는 과거라는 존재는 단지 역사가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카아(E. H. Carr)는 역사 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재구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역사연구는 어느 정도 주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상 나타난 모든 종교적 표현들을 반드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어떤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종교적 동기 때문에 유발된 행동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증하는 해석에 대하여 개방적 태도를 취한다. 역사적 사실들은 단순히 스스로를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각자 이미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사상의 해석적 틀의 관점에서(from an interpretive framework of ideas) 역사적 사실들을 대변하는 것이다.인간의 과거를 탐구하는 공통근거는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할 때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 때가 전부터 거기에사이의 사회적 긴장의 고조이고, 다른 하나는 넓게 펼쳐진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경제적·군사적 필요였다. 그리스-로마의 도시국가 와 히브리-기독교의 지파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는 이상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고전적 문화와 대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그 자신이 고전화 되었다. 로마가 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단지 로마가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초대교회 사도들의 선택과 순교와 관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점차 교회 안에서 권위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훈련과 치리의 문제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역사과정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사회과학적·분석적 표현에 의하자면 교회가 운동(movement) 에서 기관(institution) 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정경화 작업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몇 가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을 세웠다. 정경으로 선택될 수 있는 문서들과 사본들은 교회 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사용되는 것들이어야만 했고,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따르는 문서들이어야만 했다. 그뿐 아니라 사도들이 기록한 문서들이거나 그들이 인정한 문서들이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서는 교회가 결정한 경전이라는 말이다. 성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리 역시 교회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결정한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신조는 영원히 기독교 신앙의 표준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를 그 신앙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종교개혁 이래로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를 위해 행한 노력들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콘스탄틴의 노력 덕분에 기독교가 복음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려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는 신앙을 위해 더없이 위대한 일을 했다고 본다. 이러한 다수의 입장은 콘스탄틴 황제의 보호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그러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콘스탄틴 황제를 평가함에 있어서 소수의 입장은 콘스탄틴 황제 때부터 교회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념적 사회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르네상스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개인을 인간의 이상적 모습으로 환영하였다고 말한다. 특히, 중세의 소박한 신앙구조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 의하여 깨어졌으며, 그 이후에는 순진한 중세 시대의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종교와 세속성 사이의 실제적인 균열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과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일어났다.토마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의 제목이 뜻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완전한 곳 이든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곳 이다. 「유토피아」는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관하여 오늘날까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생각, 즉 아메리카는 낙원이며 동시에 바보들의 낙원이든가, 아니면 낙원과 바보들의 낙원 가운데 어느 하나라는 두 가지 생각을 보여준 것이다. 발견 의 문자적 의미 가운데에는 당시까지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수많은 고전적 사본들을 되찾게 된 것도 포함한다.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권위에 대항하였던 반란자들이었고 북부 르네상스의 가장 좋은 예는 에라스무스였다. 인문주의자들은 제한적 인문주의자와 철저한 인문주의자로 나눌 수 있는데, 제한적 인문주의자들은 잘못된 권위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반란을 일으켰으며,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반면 철저한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권위가 당시의 권위보다 반드시 좋다고 인정하지는 않았으며 보다 자유로웠고, 개인이 중심이었다. 인문주의를 또다른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자기 주장을 확실히 드러내는 새로운 패턴이었다.당시에 그들 개신교 신자들(종교개혁자들)은 좀더 나은 어떤 것을 위해 그 당시의 권위에 대항하였던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문주의의 방법을 따랐다. 즉, 그들은 고대의 자료들 속에 들어있는 지혜가 중세 기독교보다 월등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론은 다수 그리스도인들(카톨릭 신자들)과 소수의 인본주의자들(세속적 자유주의자주의가 반드시 세속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 운동을 그 상황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런 세속성이 르네상스­종교개혁 시대에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인문주의 속에는 세속화할 만한 가능성이 항상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과학적 혁명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속화의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구조와 체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것들도 마찬가지로 포기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뿐 아니라 공산주의도, 보수주의뿐 아니라 자유주의도, 우리의 민족주의적 아집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민족주의적 아집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과학은 인생철학이 아니라 자연세계를 연구하고 묘사하며 알 수 있는 방법이며, 귀납(歸納, induction)과 연역(演繹, deduction)에 의존한다. 과학(방법)과는 대조적으로 합리주의는 하나의 세계관이며, 우주론이다. 합리주의는 과학에 기초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학으로부터 끌어낸 필연적인 결론은 아닌 것이다. 과학혁명은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하여 갈릴레이, 데카르트, 베이컨, 뉴턴에까지 이어진다.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격적으로 개입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목적에 따라 영광스럽고 복잡한 세계를 창조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당신께 요청하면 당신은 나를 위해 그 패턴을 바꾸어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이 세계에 대한 합리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사이의 갈등은 과학이 합리주의로 바뀔 때 일어난다. 왜냐하면 합리주의는 과학처럼 방법이 아니라 세계관이며 우주론이기 때문이다.현대성의 뿌리를 찾아보면, 대략 1350년부터 1750년까지 세 단계를 거치는 변화의 과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화의 첫 단계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였는데, 인문주의자들은 권위를 의심하였으며 중세의 규정된 행동과 믿음으로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두 번째 단계는 개신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으로부터 현대의 합리주의로 에 앉았던 반면에,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른편에 앉았다. 혁명의 세 번째 단계는 1792년∼1795년의 국민회의 기간이었다. 1793∼1794년의 기간은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혁명에 대한 후대 해석자에게는 혁명의 정점 혹은 최하점으로 평가가 갈리는 시기이다. 아직도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혈연적으로 계승되는 군주제, 고정된 사회계급, 그리고 모든 기독교의 특권적 위치 등으로 이루어진 옛 체제 는 도전을 받았고 결국에는 밀려나게 되었다. 새로운 체제들은 나라마다 달랐지만 옛 질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기독교적인 근거에서 계몽주의의 급진적 양상에 반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중산층의 공화정을 무조건적으로 축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2. 산업혁명 : 세계관의 시험대산업혁명은 혁명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대대적인 사회적 변화를 초래한 사건들 중의 하나였다.산업혁명은 좀더 길고 오랜 과정, 곧 오늘날 학자들이 경제적 현대화 라고 부르는 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경제적 변화는 서양 역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서, 중세시대의 해체와 르네상스의 새로운 정신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전통사회로부터 현대사회로 변천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단순사회로부터 복합사회로, 시골에서 도시로, 지역사회로부터 국가사회와 국제사회로 변천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모든 사회가 현대화하는 과정은 종교적인 미신 타파, 인간의 자기 주장, 합리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조작능력에 관한 신뢰의 증가의 과정이다. 영국은 실질적인 부(富)를 창조한 최초의 국가였으며, 또 그것을 상당히 광범위하게 분배한 최초의 국가였으며, 영국은 과학과 공학기술에 대한 관심의 중심지였다. 영국인들은 헤일브로너가 지적한 새로운 인간들 을 출현시켰는데, 이들 상업 부르주아 계층이 부(富)를 창조한 것은 그들의 실제적인 목표, 즉 권력의 창조를 위한 부수적인 것이었다.베버의 요점은 하였다.
    독후감/창작| 2002.07.11| 14페이지| 1,000원| 조회(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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