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호*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문학] 자연주의 평가A좋아요
    목 차1.자연주의의 개념2.자연주의와 사실주의3.자연주의 문학의 발생 -실험소설론과 졸라의 과학4.자연주의의 성립 배경1산업주의적 사회 변동2유물론과 사회주의3진화론적 인간관4실증주의5자연주의 사상6정치적 배경5.자연주의 문학의 특색6.독일의 자연주의7.자연주의와 상징주의8. 주요작가 연구1아르노 홀츠 (Arno Holz)2하우프트만 (G. Hauptmann)3슈더만 (Sudermann)1.자연주의의 개념자연주의(自然主義,naturalism)라는 용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용례도 다양하기 때문에 프로테우스적 성격을 가진다. 문학에서는 1870년 이후의 소설 및 연극의 지배적인 특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지만 「자연주의」는 문학에서보다 철학에 먼저 사용된 말이다.원래 자연주의란 유물주의(唯物主義,materialism), 쾌락주의(快樂主義,epicureanism), 혹은 여러 형태의 세속주의(世俗主義,secularism)를 뜻하던 것으로서 고대 철학에서 사용되던 말이며, 이러한 본래의 의미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사상가 홀바하(1723-1789)는 "18세기의 자연주의는 인간을 가지(可知)적인 현상 세계, 즉 초경험적(超經驗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우주, 그 안에 홀로 생(生)을 영위해 가는 것으로 파악하는 하나의 철학 체계이다."라고 설명했다. 19세기 프랑스의 언어학자요, 실증주의(實證主義) 철학자인 리트레(1801-1881)까지도 철학적 용어로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의 의 자연주의 항목을 찾아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이러한 철학적 의미는 문학가들도 사용하고 있다. 19세기 전반의 문학 비평가 센트 뵈브(1804-1869)는 18세기의 사상을 유물론(唯物論) 내지 범신론(汎神論) 및 자연주의와 동일시한다. 자연주의의 전성기라 할 19세기 후반에 철학자 카로(1826-1887)는 유심론(唯心論)의 대립 개념으로서 「순수하고 단순한 자연주의-물리화학(物理化學)주의의 이론」이라고 말한다. 자연주의라는 말은 박물학그 방법을 문학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졸라의 동향(同鄕)의 오랜 친구인 알렉시스(1849-1901)는 자연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자연주의는 사물을 생각하고 보고 숙고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어떤 독특한 작문의 스타일보다는 사물의 이해를 위한 분석의 필요성을 뜻한다.여기에서 자연주의 실험적 방법과 인간관에 대한 선입견, 곧 인간의 환경결정론을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철학적 가정, 곧 테느(1828-1893)의 환경결정설의 패턴을 선입관으로 하여 현실을 보는 것이다.사실주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자연주의는 관찰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과학자와 똑같은 입장에서 모든 현실을 실험대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의사가 인간을 해부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인간 사회를 해부한다. 또한 사실주의가 감각적인 데 반하여 자연주의는 실험적이다. 자연주의는 생물학이 사용하는 방법을 작품에 사용한다. 졸라의 이나 는 그러한 방법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사실주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내는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어떠한 통일성이 없는데 반하여 자연주의는 과학자와 똑같은 태도로 모든 현실을 해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주의는 허무 같은 것으로 기울어지기 쉽고 자연주의는 어떤 이상 같은 것을 꿈꾸게 된다.3.자연주의 문학의 발생 -실험소설론과 졸라의 과학문학에 있어서의 자연주의는 영국의 워즈워즈로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프랑스의 루소에 이르러서 봉오리 졌다. 이때에 있어서 자연주의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뜻으로서의 자연이란 곧 낭만주의 문학을 가리킨다. 즉, 낭만주의는 처음부터 자연주의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워즈워즈나 루소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선구자인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기의 자연주의를 낭만주의의 반동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낭만주의의 연속으로 보기도 하여 전혀 모순된 더 조직적인 양상을 띄었다. 산업주의가 빚은 이러한 사회 현실은 자연주의 소설의 취재원이 되었다. E. 졸라의 「돈」, T. 드라이저의 「자본가」, F. 노리스의 「문어」와 「탄갱」등은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을 주제로 했고,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등은 노동자들의 곤경을 그렸다. 또 에밀 졸라의 「숙녀 백화점」, A. 베네트의 「클레이행어」는 유산 계급의 부의 축적과 노동 계급의 투쟁을 동시에 보여준다.이 시대의 관심은 결코 천상의 신이 아닌 재물과 권력, 그리고 이에 부수되는 성의 소유 문제였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가치와 구체적인 실제 결과를 중시하는 실제성이 신봉되었으므로 이러한 실제성을 충족시키기에 취약한 어떤 이상주의나 꿈도 배척 당했다. 자연주의의 이같은 극단적인 경향은 산업주의의 감응인 동시에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지나친 이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문학상의 자연주의는 극단의 반낭만주의인 동시에 극도로 경직된 사실주의적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2유물론과 사회주의유물론은 자연주의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경향에 속한다. 자연주의의 유물론적 경향의 형성 배경에는 콩트, 테이느 외에도 다윈(1809-1882), 스펜서(1820-1903), 밀(1806-1873), 나아가서는 마르크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 등 여러 정신적 지주들이 있다.다윈의 진화론은 생물계에서 유리한 특성이 살아남고 점차 지배적이 된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유리한 특성을 지닌 인간의 지배적 발전에 희망을 주었으며, 동시에 19세기 말 업적 위주의 경쟁사회에서 자본과 권력 쟁취를 위한 경쟁욕을 불러 일으켰다. 스펜서는 도덕에 관한 생각들도 결국 유전된 유용성의 경험에 기반 한다고 설파했다. 그에 의하면 개체 및 그룹의 자기 보존에 기여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그것을 해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밀은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행위의 가치는 그것이 사회를 위해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최다수의 최대 행복이 도덕적것이 전부이다. 19세기 중엽에는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 철학, 심리학, 문학은 물론 신학에까지 적용되었다. 철학의 과학적 방법은 실증주의를 낳았고 이 실증주의는 사회학의 창시자인 A. 콩트의 저술들 속에 자세히 진술되어 있다. 그는 진화론적 사고를 받아들여 인류의 사고력 성숙 단계를 셋으로 갈랐다. 첫째는 신비 사상을 낳은 신학적 사고의 단계, 둘째는 형이상학 시대의 추상적 사고의 단계, 셋째는 과학 시대의 실증적 사고의 단계이다. 콩트에 따르면 실증주의적 사고는 신학적, 형이상학적 사고의 모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이다.실증주의는 과학적 방법을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본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몸소 관찰할 수 있고 관찰된 것으로써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고 실증주의자는 주장한다. 모든 현상을 인과론적 관점에서 해명하려는 실증주의자들의 태도는 과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콩트가 에서 말했듯이 실증주의는 모든 현상을 일관된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보며 그 목표는 이러한 법칙을 정확히 찾아내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있다.이른바 "고등 비평"도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문학 작품을 분석할 뿐 아니라 이러한 분석 방법은 성경에도 적용되었다.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 신성불가침의 신성한 기록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과학적 실증주의의 방법으로 인간 탐구를 할 때 인간은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되고 그의 행동은 기계의 작동과 같은 것이 된다. 인간은 더 이상 자유 의지와 창조적 상상력의 주체일 수 없고 그의 행동 또한 유전과 환경과 시대에 지배당하는 결정론적 반응에 불과하다. 자연과학적 결정론자 H. 테느는 「영문학사」 서문에서 충격적인 발언들을 했다. 그는 인간을 `톱니바퀴 장치를 가진 기계'로 덕과 부덕은 `설탕과 황산 같은 생산품'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문학의 특징을 규정하는 요인으로 종족, 시대, 환경의 셋을 들었다.이러한 풍토에서 나온 것이 C. 베르나르의 유명한 「실험 의학할 것인가에 의하여 공화국의 존재가 결정된다. 자연주의가 아니면 공화국은 멸망할 것이다.그 이유로서 졸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분석이나 실험을 존중하는 과학적 내지 자연주의적 공화국만이 근대 국가를 조직할 수 있다.테느의 영향 밑에 자유정치학파가 형성된 당시에 있어서는(1874) 이러한 관념 연합은 당연한 것이다.자연주의는 제 3공화국의 기반이 잡힐 무렵에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다. 1820년대에는 노만 주의가 왕당파였던 것같이 1880년대에는 자연주의가 공화파가 되는 것이다. 상원은 공화파가 차지하고 라 마르세즈의 국가가 다시 울리기 시작하며 선거에 의하여 새 정치가들이 등장한다. 급진사회당이 결성되고 조금 뒤에는 사회당이 나타난다. 졸라는 자신이 공화파임을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의 소설 「목로 술집(1877)」과 「나나(1879)」는 자연주의를 공화주의의 이론으로 구체화하여 제시한 것이다.5.자연주의 문학의 특색1과학적이다.과학적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것을 뜻한다. 작가는 자신을 작품 위에 나타내지 않 고 인과법칙에 따른다. 즉 작가의 의견을 말하거나 작가가 어떤 해결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자와 같은 태도로 인간 심리를 그리고 생리학자와 같 은 태도로 생리 현상을 그려야 한다. 졸라의 작품에서처럼 병적인 현상을 그린 것 도 많다.2세밀하고 정확하다.과학적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세밀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도 자연주의 문학의 특색이다. 자연주의 작품은 거의 모두가 정확을 기하기 위해 모델이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닐 것이다. 플로베르는 식물학에 관한 글 6행을 쓰기 위해 3권의 전문 서적을 읽었고 식물학자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았고 그 밖의 전문 학자에 3통의 편지로 문의했으며 또 앵무새에 관한 글을 정확하게 쓰기 위해 박제된 앵무새를 사서 연구했다고 한다. G. Hauptmann은 「직조공」을 쓸 때 직조공의 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고 한다.3暗面(암면)을 묘사한다.자연주의 이전의 문학에서는 성욕을 추한 것으로 보고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을다.
    인문/어학| 2002.05.16| 16페이지| 2,000원| 조회(929)
    미리보기
  • [국제 외교] 9.11 테러 이후 한반도 정책 변화 평가B괜찮아요
    1.2002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탈-탈냉전의 전략적 환경과 한반도미국의 고위 외교관들과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9.11테러 이후 세계가 변했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랄프코사 CSIC 퍼시픽 포럼 소장은 이를 “탈-탈냉전(post-post cold war)”시대라고 명명하였으며 , 파월 국무부장관도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9.11 이후의 국제정치의 변화의 핵심은 미국 외교정책 우선순위(priorities)의 조정과 새로운 동반자관계의 형성이다. 먼저 반테러가 미국 외교정책에서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게되었다. 리처드 하스 미국무부 정책기획 국장은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 모델을 제시하는 〈9.11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논문에서 반테러에 최우선 순위(top priority)를 부여하고, 그 외에 대량 살상무기 비확산, HIV/AIDS퇴치, 자유무역의 증진, 지역분쟁의 해소 등을 차례로 열거하였다.미·러 및 미·중 관계의 근본적 변화와 일본의 역할증대는 탈-탈냉전의 시대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러시아의 앞마당 격인 중앙아시아에 미군의 진주를 허용한 것이나, 중국이 서부지역의 테러와 분리주의를 우려하여 반테러 국제연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에 따라 미중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중국은 WTO에 가입하였으며, 2008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이 절실한 입장이다.이러한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북·중·러의 ‘반MD 북방 삼각동맹’까지 거론되던 분위기는 일시에 반전되었다.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도 미국이 주도하는 반테러질서에 편승하여 군사적 역할 증대를 의미하는 ‘보통국가’로 진입할 기회를 포착한 것으로 지적된다. 향후 사태의 전개에 따라서는 미·일 동맹이 반테러전의 주력군으로 자리매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 중 하나는 부시행정부의 외교노선이 반테러전을 계기로 ‘다자주의(multilateralism)’로 복귀할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다. 9.11 이후 부시행정부가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포기하고 다자주의로 복귀할 것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다.▶2002년 위기의 서막(1994년과 2002년의 비교){비교분석대상1994년2002년미국외교정책의 최우선순위핵비확산반테러미국 행정부내의 역학구도강온파의 대립-상대적 균형강온파의 대립-강경파 주도미국 행정부의 노선민주당 클린턴 행정부-다자주의-국제주의공화당의 부시 행정부-일방주의-미국적 국제주의한반도 주변국의 입장주변국의 긴장고조 반대-중,러의 협상 촉구-일본, 취약한 연랍 정권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중·러의 반테러 국제연대 동참-미,일의 동맹강화(고이즈미 친미내 각)북한의 정치 체제 및정책 결정과정김일성 수령제-김일성의 유일지도김정일 신군정치체제-김정일의 지도+군부의 영향력중재자카터 전 미대통령?남북관계대결국면화해국면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1994년 위기시와는 달리 북한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모되었다. 핵과 미사일 문제와 달리 테러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와 중국 등 북한의 오랜 동맹국들도 북한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1994년과 달리 반테러전을 군사적 진출의 호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반테러의 국제정세에 편승하여 ‘보통국가’를 달성하려는 고이즈미 내각의 적극적 입장은 최근 조총련 압수 수색과 북한 공작선의 격추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북·중·러의 ‘반MD 삼각동맹’까지 거론되던 분위기는 일시에 반전되었다. 오히려 세계는 미·영·일의 ‘신보수주의 삼각동맹’의 형성을 목도하고 있다.2.9.11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테러와의 전쟁은 세 가지 전선에서 전개되고 있다첫째,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카에다의 지지기반을 파괴하고, 그들을 숨겨 주고 테러행위를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는 일이다.둘째, 아프가니스탄이 다시는 오사마 빈 라덴의 동조자들을 위한 안전한 은신처가 되지 않고, 마약이나 난민, 또는 이 지역에 대한 위협의 출처가 되지 않도록,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경제적 재건에 대한 노력이다.셋째, 아프가니스탄이나 알카에다에 나 오사마 빈 라덴에 고착되지 않은 전 지구적인 위협의 근절이다.3.테러리즘, 미래, 그리고 미국의 외교정책▶미국의 정책적 대응2000년도에 발생한 전 세계 모든 테러활동의 약 47%가 미국시민이나 재산을 표적으로 자행되었다는 국무성의 자료에서도 나타나듯이 국제 테러리즘의 주요표적이 미국의 정책이나 이해관계, 그리고 시민들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9.11 테러사태 이전까지 이러한 활동의 대부분이 외국땅에서 일어났었다. 테러리즘을 주로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태로 여겼던 미국의 관점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극적으로 반전되었다.미국은 국제 테러리즘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활동과 국제 협력 및 건설적 개입에서부터 경제 제재, 비밀작전, 예방안보적 조치들, 그리고 군사력의 사용에까지 일련의 대안들을 사용해왔다. 이 중에서도 경제제재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반테러의 수단으로 가장 자주 사용해온 것이다. 국제 테러를 지원하는 각 나라의 정부들은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이들 나라에는 군수품 수출이 완전 금지되고 있다.UN은 1988년 팬암 103기 폭파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결정했는데, 이는 테러활동에 공모한 나라에 대해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부과한 첫 번째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딜레마근대정치의 맥락에서 테러리즘과 싸우려 할 때, 국가는 ‘테러리스트, 테러집단 그리고 그 지원조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대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최대화하는 것’간의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즉 어떤 조직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국가적 후원도 받지 않는 순수한 개인차원의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호메이니 사망성명이 발표되자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에 반대하여 미국의 서점들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듯이 개인이나 ‘부티크’테러리즘, 혹은 ‘자발적’테러활동에 의한 위협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미국의 조직적·프로그램적 대응미국의 반테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명령체계는 최상위의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안보회의(NSC)장관급 위원회, 그리고 NSC 부장관급 위원회의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NSC 부장관급 위원회의 대표는 정부 부처간 고위조정기관인 ‘반테러 및 국내안보 정책 조정위원회의 의장을 맡는다.매년 1월말이면 ‘수출관리법’ 제 6조 j항에 따라, 상무장관은 국무장관과 협의하여 테러지원국 리스트를 의회에 제출한다. 리스트는 지속적 가공의 산물이다. 국무부는 1년 내내 전세계의 테러활동 데이터를 수집하여, 11월부터 공식적으로 리스트를 재검토한다. ‘수출관리법’제 6조 j항에 따라, 매년 새로운 리스트가 연방명부에 공표된다.
    사회과학| 2002.05.13| 3페이지| 2,000원| 조회(646)
    미리보기
  • [그림동화] 그림동화 연구 평가A좋아요
    1.들어가며.아동기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문학양식 중의 하나가 동화이다.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동화 중의 하나인 아동과 가정을 위한 동화(Kinder und hausmaerchen)의 편찬자인 그림형제는 처음부터 아동을 독자로 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오늘날 접하게 되는 그림형제 동화는 점차적으로 아동에게 적합하게 수정 작업을 거친 작품이다. 따라서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림형제의 동화를 접하게 되면, 동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잔혹한 행위나 성적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다음에서는 그림동화, 특히 헨젤과 그레텔에 나타난 잔혹행위의 의미들과 작품의 주요 소재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의미들에 대하여 고찰해 보겠다.2.줄거리어느 숲 근처에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남매가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와 계모가 살고 있었다. 그 해에 큰 흉년이 들어 살림이 궁하게 되자 계모는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숲 속에 버리자고 말한다. 아버지는 계모의 성화에 못 이겨 그렇게 하기로 한다.그 말을 엿들은 오빠인 헨젤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잔돌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워 넣었고 이튿날 잔돌을 길에 떨어뜨림으로 해서 버림받은 숲에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하지만 두 남매가 돌아오자 계모는 문을 열어 주며 화를 낸다. 그날 밤. 계모는 다시 애들을 버리자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이번에도 계모의 성화에 못 이겨 그렇게 하기로 한다.이번에 헨젤은 빵 조각을 몰래 뜯어서 길에서 떨어뜨린다.그러나 낮에 떨어뜨려 놓은 빵 조각을 새들이 모두 주워 먹어 버려 그들은 어두운 숲 속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이튿날 눈을 떠보니 하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있다. 새를 따라 가보니 새는 사라지고 조그마한 집이 보인다.그 집의 지붕은 케이크, 벽은 쵸코렛, 창문은 사탕 그리고 문은 과자로 만들어져 있다.헨젤과 그레텔은 너무 배가 고파 지붕과 문을 먹기 시작한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나온다."이리 들어와서 먹어라."헨젤과 그레텔은 배가 터져라 실컷 먹고 난 후 잠이 들어버린다.할머니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마녀였다. 할머니는 헨젤을 광에 가두고 살을 찌운 후에 잡아먹기로 한다. 그레텔에게는 집안 일을 시킨다. 할머니는 하루하루 헨젤의 팔을 만지면 살이 쪘는가를 확인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눈이 나빴기 때문에 헨젤이 내민 가느다란 뼈가 헨젤의 팔로 여기며 헨젤이 살찌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하루 이틀, 기다림에 지친 할머니는 헨젤을 잡아먹으려고 그레텔에게 물을 끓이라고 한다.그레텔은 슬피 울며 불을 피운다. "불은 잘 타고 있겠지.? "네, 잘 타고 있지만 할머니가 한번 봐 주세요." 마녀가 불 가까이에서 불을 들여 볼 때 그레텔은 힘껏 할머니를 불 속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그레텔은 광으로 가서 헨젤을 구한다.둘은 마녀의 보물을 꺼내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을 껴안고 기뻐한다, 그 동안 계모는 세상을 떠났다.헨젤과 그레텔이 가지고 온 보석을 기반으로 세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3.‘헨젤과 그레텔’에서 엿 볼 수 있는 잔혹 행위동화의 기본적인 구도는 갈등과 갈등의 해결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화에서 잔혹 행위는 갈등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갈등 그 자체, 그리고 갈등의 해결책으로서 나타난다.1부모의 잔혹 행위일반적으로 동화에는 이상적인 세계상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부모상 또는 모범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동화 속에서는 계부나 계모가 악역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헨젤과 그레텔’ 역시 표면적으로는 계모가 두 아이를 죽이려는 악역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판에서는 계모가 아닌 생모로 기술되어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아마도 이는 부모에 대한 이상적인 환상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나 추정될 뿐이다.이 작품에서 부모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자식을 버리게 된다. 계모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나, 아버지의 동의하에 모든 일이 행하여진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처음에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 결국 아내에게 설득 당함으로써 자녀를 맹수에게 잡혀 먹힐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 팽개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숭고한 모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를 계모로 표현을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계모만이 아닌 친아버지도 본인을 위해서 자녀를 유기하는 공범자로 가담하기 때문에 책임은 부모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2마녀의 식인 행위마녀에게 붙잡힌 두 아이는 단지 ‘맛있는 요릿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마녀는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즉, 식인 행위는 이로부터 구해지기 위한 전제가 되고 있다. 언제 잡혀 먹일지도 모르는 위기감이 주인공에게 유리한 서사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3잔혹 행위의 극복방법‘헨젤과 그레텔’에서 두 남매는 놀이를 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연습하게 된다. 아직 어린 그레텔은 오빠인 헨젤에게 의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고, 헨젤은 마녀에게 잡혀있어도 그레텔을 믿고 안심할 수 있게된다. 또한 마녀가 죄 값을 치르는 과정에서 사악한 존재인 마녀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하며, 자신을 버린 부모를 결함이 있는 인간으로 인정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과정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4.가부장적 요소가 숨쉬는 ‘헨젤과 그레텔’ (여성학적 관점에서..)‘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계모는 두 아이를 산 속에 버리자고 제안한다.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는 계모의 계책을 막기 위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으나 민담 속에서는 조금도 잘못을 추궁 받지 않는다. 즉 나쁜 아버지는 없고 사악한 계모만 수없이 나타나는 것이다.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아버지에게는 악하면서도 선하기도 한 양가적인 면이 허용되는 반면에, 계모에게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동화에 나타나는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남성의 이미지는 실제의 남성 주인공에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늑대와 용과 같은 동물에게 전가되어 나타난다. 말하자면, 동화 속에 나타나는 실제의 남성은 선량하게 묘사되지만 반대 면에 여성의 경우는 마녀나 계모에게 보여지는 바와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실제의 동화 속 인물로 재현되어 나타난다.이처럼 그림 동화의 등장 여성들이 공주, 마녀, 계모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범주화되는 것은 시대적 배경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림 형제가 전래 민담을 수집하고 정리한 19세기는 유럽의 시민 계급 사회가 한창 번창하던 때였다. 전형적인 시민 계급 출신인 그림 형제는 동화를 지으면서 시민 계급의 감각에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시민 사회 이데올로기에 부합되는 부분만을 첨가시켰다. 예컨대, 시민 계급의 감각에 따라 거친 내용들은 가감 없이 삭제되면서, 당시 시민 계급의 이상으로 간주되던 이데올로기들은 새롭게 각색되어 동화에 첨부된 것이다.이는 바로 '가족, 시민 사회, 국가'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확립이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중요한 제도가 바로 결혼이다. 이 결혼의 결정권은 항상 남성이 쥐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런 저항 없이 순종적으로 다소곳한 여성이 선호되었으며, 그것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장 좋기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잠에 취해서 남성의 선택과 결정을 기다리는 여성이 선호될 뿐이었다. 가부장제의 중요한 제도인 결혼에서 여성의 의사와 결정은 논외의 일이다. 여성은 그저 남성에서 남성으로, 즉 아버지의 손에서 남편의 손으로 건네질 뿐인 것이다. 이러한 제도로서의 결혼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그림 형제의 민담은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서, 그리고 그녀들을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여 미화시켰다. 19세기 이전 전래 민담에는 사회 계층간의 첨예한 갈등 문제가 자주 등장했으나 그림 동화 이후에 이 부분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를 극명히 알 수 있다5.‘헨젤과 그레텔’과 파시즘의 유사성Iring Fetscher는 ‘헨젤과 그레텔’을 파시즘적 박해에 관한 이야기로 비유하였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시민의 빈곤함으로 아동학대죄를 범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가난해서 아이들을 숲 속에 내다버린다], 노파를 가마속으로 밀어버리는 잔인함, 강제수용[마녀의 집에 붙잡힘], 남의 희생을 통해서 얻게 되는 부유함[마녀의 보석을 훔쳐 부자가 됨] 등이 20세기 독일의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특성과 유사하다고 보았다.6.주요 소재 분석1계모이 이야기에는 특별히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판에서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에 버리자는 제안을 한 사람은 두 사람의 생모였다. 하지만 친어머니가 자식을 버리자는 제안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이유 때문에 1840년에 발표한 제4판에서 계모로 바뀌게 되었다.2흉악한 마녀와 과자로 만든 집아이들을 유괴해서 잡아먹는 마녀의 이미지는 사랑스런 소년을 유괴하여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다가 무참하게 살해해버린 중세 프랑스의 귀족 질 드 레를 연상시킨다.과자로 만든 집은 ‘음식에 대한 욕망과 그 욕구에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편안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과자로 만든 집은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의 상징이기도 하다.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매달려 응석을 부리는 상태의 표현인 것이다.달콤한 과자로 만들어진 집에 끔찍한 마녀가 산다는 것은 상당히 상반된 이미지를 풍기는데, 이는 ‘달콤한 이야기에는 독이 있다’거나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로 볼 수도 있다.3숲
    교육학| 2002.05.13| 5페이지| 2,000원| 조회(1,141)
    미리보기
  • 고쳐 쓴 한국현대사 평가B괜찮아요
    [고쳐 쓴 한국현대사]-식민지배와 민족해방운동의 추진 & 식민지 문화정책과 저항운동1. 1910년대 상황과 무단통치의 실상191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힘의 재편기였으며 아시아 약소민족들은 반침략 반봉건운동을 전개하던 역사적 변혁기였다. 즉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러시아혁명(1917)을 거치면서 기존의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재편되는 한편 아시아 여러 민족들은 19세기 이후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강점당했던 국권을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과 독립의식이 고양되던 '눈 뜸과 투쟁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중국의 신해혁명(1911)은 이러한 의미에서 1910년대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우리 민족사의 경우도 일제의 폭압적 식민지배가 자행되었으며 이에 저항하는 민족운동과 독립투쟁이 국내외에서 강고하게 전개되었고 그 결과의 결실이 바로 3.1운동이다.익히 아는대로 1910년대는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점당한 식민지시대 제1기에 해당되며 이 시기 식민지 통치의 성격은 한마디로 무단통치였다. 일왕에게 직속되었던 조선총독은 예외없이 일본 육해군 대장 출신의 군인이 임명되었고 그에게는 '식민지 조선'의 입법·사법·행정 및 군사에 관한 전권이 주어져 마치 중세시대 전제군주와 같은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에서 총독이 할 수 없는 일이란 단 한 가지 '여자를 남자로,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없을 뿐'이었다.1910년대 식민지 통치의 무단성은 헌병경찰제에서 잘 드러난다. 식민지 조선에서만 유일하게 실시되었던 헌병경찰제는 조선에서의 치안 책임자인 경무총감과 헌병사령관을 한 사람에게 겸임시키고 헌병에게 경찰의 일반 치안권을 부여했던 강력한 군사통치방법이었다. 일제의 헌병과 경찰에게는 범죄즉결처분권과 민사소송조정권을 비롯해 세금 징세권, 산림, 위생감독권, 집달리권과 벌금 및 구류권 등 30여 종에 이르는 법 집행권을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다. 심지어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던 태형제(苔刑 시행권을 헌병경찰에게 부여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중세 봉건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 근대적 통치 방법이 '동양의 유일한 문명국'이라 자임하던 일제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이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경찰과 헌병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헌병분견소, 순사주재소, 파출소 등을 설치하여 조선인의 일상생활을 감시·감독하였다. 이 시기 조선에서의 치안책임 총수였던 초대 경무총감 겸 헌병사령관이었던 아카시 겐지로(明石元二郞)는 그의 자서전에서 조선 통치 비법으로 '기포성산'(碁布星散)의 방법을 이용했음을 자랑삼아 기술하고 있다. 즉 그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통치비결이란 '마치 바둑판에 바둑알 깔아 놓듯 가을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처럼' 한반도 전역에 무수한 경찰서와 순사주재소 및 헌병분견소 등과 같은 무단통치 도구를 설치해 통치했던 것이다. 예컨대 1910년 그 해에 이미 전국에 분견소를 653개처 설치하고 2,019명의 헌병을 배치했으며, 이듬해에는 935개처 7,749명으로 1년 사이에 헌병수를 무려 3배나 증가시켰다. 경찰관서와 경찰 수도 1910년에 481개소에 588명이었던 것이 그 이듬해에는 678개소에 6,222명으로 크게 늘렸다. 이같은 헌병경찰의 증가는 이후 더욱 늘어나 1918년에 이르면 13,380명에 달했으며, 이밖에도 일본 정규군 약 23,0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한마디로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은 오늘날 계엄령하의 상황이었으며 한반도 전체가 창살없는 감옥과 같은 '병영국가'(Garrison State) 바로 그것이었다. 이같은 무단통치의 성격은 국권강점을 전후해 반일민족세력을 단숨에 제거할 목적으로 획책한 '의병대토벌전'과 안명근·양기탁 사건, 특히 병탄 직후 반인륜적인 고문방법을 동원해 '총독암살미수사건'(105인 사건)이라는 허구적인 사건을 조작, 반일 민족세력을 제거하려한 사례에서도 일제의 무단통치의 실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뿐만 아니었다. 각종 법적 장치를 통해 일체의 사회활동을 통제한 점과 식민지 경제침탈 행위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에 집회·출판·언론활동 등 한인들의 사회활동 일체를 정지시켰던 것이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지세제도의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토지조사사업(1910∼1918)을 획책, 일인들의 토지소유를 합법화하는 한편 무려 272,000정보에 달하는 농경지를 국유지에 편입시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헐값에 불하하는 등 조선의 경제구조를 식민지 수탈체제로 뒤바꾸어 놓은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밖에도 회사령(1910년), 어업령(1911년), 광업령(1915년) 등을 공포하여 민족자본의 발전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는가 하면 조선교육령(1911년), 사립학교규칙(1911년), 심지어 서당에 관한 규칙(1918년)과 '신사사원규칙'(1915년)을 공포하여 고유한 민족교육을 차단하는 등 1910년대부터 이미 민족말살정책이 획책되었던 것이다.이렇듯 일제의 무단적인 식민통치로 한반도 전체가 창살없는 감옥과 같은 '병영국가화'한 상황 아래서 이에 대응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무단통치기 10년간 일제는 '조선과 조선인' 전체를 무차별적인 탄압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이전보다 반일의식이 더욱 고양되었다. 그 결과 한인사회의 응집력과 민족적 일체감은 더욱 공고해졌다. 3.1운동이 그 이전의 분산적이며 계몽적 단계에 머물던 민족운동의 양태를 극복하고 계층과 종파를 초월한 전 민족적, 전 계층적 민족해방운동으로 운동성을 한 단계 제고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1910년대를 마감하며 터져 나온 3.1운동은 그 이전까지의 '세류'(細流)와 여러 모양의 민족운동의 물줄기를 하나로 모아 '대하'(大河)를 이룬 한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자, 민족해방운동이라 할 수 있다.2.문화 통치의 실상3·1 운동으로 일제는 종래의 무단 통치에 의한 한민족의 지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한국인을 우매한 민족과 같이 인식하여 무단적 탄압으로 쉽게 지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일제는 한민족의 강한 독립 의지와 강력한 항일 운동이 엄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과정에서, 전 민족적이며 전국적인 대규모의 독립 운동이 일제 경찰이 알지 못하는 속에서 일어난 데 대해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하여 일제는 한민족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소위 문화 정치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는 겉으로는 한민족에게 문화 활동을 허용하고 자유를 보장하여 한민족의 생활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는 식민지 통치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은 한민족의 회유와 가장된 유화 정책으로써 한민족의 일본인화를 촉진하며, 친일파를 양성하여 한민족의 내부적 이간을 꾀하는 고등 술책이었다. 또, 한민족에게 어느 정도의 언론의 자유를 줌으로써 이를 통해 표출되는 동향을 파악하려는 교묘한 정책으로써 몇 개의 한글 신문을 허용하는 등 식민 지배를 완화시키는 체하였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식민 통치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였다.일제의 소위 문화 통치는 그들의 가혹한 식민 통치를 은폐하고 한민족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한민족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는 교활한 식민 통치 정책이었다.3.침략전쟁기의 수난1930년대 이후 침략전쟁 시기로 접어들면서, 일제는 조선사람들로부터 전쟁에 대한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이른바 내선일체 라는 것을 내세워,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 즉 군국주의 일본인의 아류로 만들려는 정책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조선민족 전체를 2등 일본인 으로 만들어 그 정치. 문화적 독립성과 저항성을 박탈함으로써 침략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민족말살정책이었다.대표적으로 조선어 말살정책과 창씨개명을 들 수 있다. 또 조선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 이른바 일선동조론 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학설이다. 이것은 침략전쟁 막바지에 내선일체 및 동조동근론 으로 바꾸어 조선사람들의 민족의식을 잠재우고 일본정신 을 주입하는 데 이용했다.이 시기의 일본은 국가 자체가 파쇼체제가 되어갔다. 그리하여 일본은거쳐 중일전쟁(1937)을 일으킴으로써 침략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고, 마침내 연합군을 상대로 태평양전쟁(1941)을 도발하기에 이르렀다.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국가의 총 역량을 침략행위에 기울이게 되고 자연히 식민지인 한반도는 일본의 대륙침략의 전진기지 즉, 병참기지화 되었고 전시 총동원체체가 실시되었다. 일본제국주의가 중일전쟁을 도발한 후 만든 국가총동원법이 조선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일제는 전쟁에 대한 선동과 일제에 대한 애국심 고취를 목적으로 지방조직까지 관리하여 전체 조선인을 침략전쟁의 광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한반도의 병참기지화 정책과 더불어 일본은 전쟁인력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하여 조선청년들에 대한 강제징집제도를 실시할 것을 검토하고 우선 지원병의 형태로 모집하기 시작하여 1944년 징병령이 실시되기 전까지 약 1만8천명 가량의 조선 청년이 일본군에 지원하기에 이른다. 이후 징병령이 실시되고 약 20만명의 조선청년들이 징집되어 침략 전쟁터로 끌려갔다. 이외에도 일제 전시체제 하에서 조선인들은 모집, 징용, 보국대, 근로동원, 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강제 동원되어 노동력을 수탈 당했다.4.식민지 문화정책과 저항운동-우민화 교육과 언론 정책일제는 정치적, 사회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을 못지않게 문화면에서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 민족의 활동을 통제하였다.먼저 교육에서는 우민화 교육을 통하여 이른바 한국인의 황국 신민화를 꾀하였다. 이와 같은 목표에 따라, 우리 민족은 우리말 대신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당하였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는 그들의 침략 정책에 맞도록 편찬되었다. 그들은 사립 학교나 서당 등 민족주의 교육 기관을 억압하였고, 다만 초급의 실업 기술 교육을 통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에 유용한 하급 기술 인력의 양성만을 꾀하였다.중·일 전쟁 이후에는 더욱 혹독한 식민지 교육 정책이 실시되었다. 즉, 일제가 내세운 내선 일체, 일선 동조론, 황국 신민회와 같은 허황된 구호 아래 우리말과 우리 역사의 교육은 일체 금지되었으며, 이되었다.
    인문/어학| 2002.04.29| 5페이지| 2,000원| 조회(763)
    미리보기
  • [매스컴] 여론 읽기 혁명
    여론 읽기 혁명 - 손석춘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신문의 사명이라고 부르면 과장된 것일까. 어찌되었던 신문은 이 세상을 담아내며 일상적인 것들에서 비일상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신문을 읽어내는 것은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고, 아울러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덧입혀주는 것이다. 누군가와 마땅히 나눌 이야기가 없을 때 신문은 좋은 이야기꺼리가 된다. 일상을 벗어난 색다른 소재를 안겨주는 것이다.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때, 종종 신문에서 봤다는 것을 먼저 밝히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말이 신빙성있는 것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문에 대해 높은 신뢰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기사화되는 과정이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나 그것이 활자화되어 드러난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인들이 언론에 갖는 신뢰감은 언론인에게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지녀야하는 존재임을 인식시켜주는 기제로 작용한다.한편 언론에 대한 신뢰감은 언론인이나 언론매체 자체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이 힘은 언론 자체가 지닌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들로부터 오는 힘이다. 그런데 지난날의 언론은 이러한 힘이 자신들의 것으로 착각하였다. 더욱이 언론에 대한 신뢰만 있고 그것을 비판할 줄 모르던 독자들은 이러한 언론의 성향을 극대화시켰다. 언론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졌다. 단지 오늘날에는 신문이 영상에 비해 낡은 미디어로 치부되어 그 영향력을 무시당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신문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신문은 세상을 읽어낸다. 그리고 신문은 힘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잘못 결합되었을 때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이 두 문장을 교묘히 연결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맥이 성립한다. '신문은 자신의 힘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읽어낸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지배되던 귀족사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언론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힘을 이용해서 거대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면 과거 소수의 귀족과 다를 바 있겠는가.민주제 사회에서 시민은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그것이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모두 관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모두 언론에 맡겨 놓은 상태다. 우리는 언론이 우리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 줄 것이라 믿고, 언론에 의지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성실히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언론조직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조직이 있다. 예를 들자면, 신문사 안에는 나름의 소유구조가 존재하며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얼마 전 크게 공론화되었던 중앙일보 사태는 이같은 소유구조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중앙일보가 홍사장을 모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신문사가 사주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있었다. 중앙일보 기자들 대다수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정당한 것에 대해 발언하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을 대변한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언론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은 사회 내에 산재해있다.언론이 사회 내의 여러 집단의 영향을 받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언론이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을 용인하게 해주는 방패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대표팀 축구감독이었던 차범근에 대한 언론의 평가를 보자. 대표팀이 승전하고 있을 때의 차범근은 거의 영웅과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대표팀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순식간에 졸장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언론이 한 인간에 대해 월권을 행사한 사례다. 어떻게 한 인간의 위상이 영웅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졸장으로 바뀔 수 있겠는가.우리는 언론이 지나치게 힘을 발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무관심한 채 넘어간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재는 게 편이지'하고 쑥덕이는 정도에 그치며, 차범근에 대해서도 인간적 연민은 보이지만 그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언론이 그렇게 공표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같은 우리의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언론이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제는 여론이 언론에 대해 조작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 수법이 교묘해졌다.우리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여론과 정세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신문은 우리에게 정제된 세상을 보여주며 신문사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익숙해진 우리는 신문을 읽을 때 그다지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문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해줄 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독자에 대해서 이와 같은 일반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 안에 이같은 일반론을 적용할 수 없는 비판적 사고를 겸비한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이제 우리 안에 열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먼저 우리가 언론이 지니는 힘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의 가능성이다. 어떤 사실에 대해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불치병은 무엇 때문에 아픈지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치료할 수 없으며, 아픈 곳의 원인을 알면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아프다고 느끼는 자체가 그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하는 첫걸음이 된다.다음으로 언론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이다. 어떤 일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몇몇의 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 운동의 경우, 오래도록 선각자 몇몇의 목소리만 있었기에 사회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여성 운동을 하는 이들이 '드센 여자'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운동이 보편화된 지금 여성 운동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 적어졌음은 다수의 참여자들을 인식함에서 비롯된 것이다.아울러 비판적 글 읽기가 가능한 독자 수의 증가도 또 하나의 가능성라 말할 수 있다. 얼마전 조선일보 오피니언란에 칼럼에 쓴 글이 2년전에 썼던 글과 거의 동일하다는 내용의 항의성 짙은 의견이 개제된 적이 있다. 그는 과거의 글을 그대로 모방하여 쓰는 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임을 지적하며 이에 대해 사과를 요청했다. 물론 이같이 꼼꼼히 읽는 독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언론인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독자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열렸다. 이같은 변화의 물결 가운데에서 과거 권위주의적인 언론 행태는 이제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독자 중심으로 매체가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가로쓰기 편집을 하고, 섹션을 구분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격적인 내용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점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변화와 언론인 개개인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물론 언론 조직과 언론인 각자가 동시에 변화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언론 조직과 그 속에 속한 개개인이 우선적으로 변화를 갈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조직 내에서 안주하기를 원하지 스스로 변화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는 낯설음이며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정된 상황 가운데에서 불안정한 상황으로의 전환은 결단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이러한 결단을 가능케하는 것이 바로 독자들이다. 독자는 언론인 개개인을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동시에 최고의 대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상업주의적 성격을 띄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상업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윤 추구를 위해 노력함을 의미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독자의 관심을 살피게 됨을 말해준다. 결국 독자들이 끊임없이 언론 개혁을 부르짖어야 할 필요성이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다. 지속적인 관심만이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
    사회과학| 2002.04.03| 4페이지| 1,000원| 조회(38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8
8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4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3월 29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22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