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사회복지행정의 전달체계의 특징】1.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사회복지행정이란 사회복지정책을 구체적인 사회복지서비스로 옮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정과정에는 인력과 재정을 바탕으로 한 조직구조와 관리운영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사회복지행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클라이언트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회복지행정의 전달체계가 어떻게 구축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클라이언트의 선정, 수혜 자격 요건의 설정, 서비스 내용과 방법에 관한 사회복지정책들이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사회복지행정의 전달체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사회복지행정의 전달체계란, 사회복지의 조직적 환경인 중앙에서 지방일선에 이르는 모든 공적, 사적 사회복지조직(기관 및 시설)과 이들 조직의 서비스 전달망을 말한다. 이러한 전달망이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달체계의 구성 단위인 조직과 인력들이 적절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통합적인 전달체계의 확립은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인 사회복지행정의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2.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중요성사회복지에 있어서 전달체계란 또는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수혜자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직을 통해서 실천할 것인가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는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자인 공·사 기관과 수혜자인 클라이언트를 연결시키기 위한 조직적 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전달체계는 조직체인 모든 공·사 기관들이 정부의 정책 혹은 민간기관의 방침에 따라서 그 조직에 속해 있는 인력이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성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므로, 사회복지행정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달체계의 활동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한편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분석할 때, 그 차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구조·기능적 차원과 운영주체적 차원으로 대별할 수 있다. 1 구조·기능적 차원에서 직접 전달하는 집행체계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2 기능에 따라 분류하면, 서비스의 전달업무를 원활히 하기 위한 행정기능과 클라이언트나 소비자의 욕구에 응하여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3 운영주체에 따라서 정부(중앙정부와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이 직접 관리, 운영하는 공적 전달체계와 민간단체와 개인이 직접 관리, 운영하는 사적 전달체계로 나눌 수 있다.이러한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분석차원에서 볼 때,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행정체계와 집행체계의 부분(sub-system) 혹은 단위(unit)를 구성하는 공·사 복지조직들이 체계화된 구조를 갖추어야 하고, 단위조직들이 행정기능과 서비스제공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여야만 자원의 낭비와 서비스의 중복 및 누락은 물론 사회적 역기능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통합적인 사회복지행정 전달체계의 확립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복지행정 수행에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볼 수 있다.3.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원칙국내·외의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원칙을 종합하여 보면, 사회복지행정 전달체계의 원칙들을 행정조직의 구조적인 측면과 서비스의 관리운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조직구조적인 측면에서는 1 권리성의 원칙 2 전문성의 원칙 3 통합성의 원칙 4 접근용이성의 원칙 5 기능분담의 체계성 원칙 6 지역사회 참여의 원칙 7 문화적 특수성의 원칙을 들 수 있고, 관리운영적인 측면에서는 1 평등성의 원칙 2 포괄성의 원칙 3 책임성의 원칙 4 재활 및 자활목표의 원칙 5 계획성의 원칙 6 적절성의 원칙 7 지속성의 원칙 8 가족중심의 서비스 제공 원칙을 들 수 있다.4.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실태1) 민간(사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사회복지서비스는 공식적으로 조직된 활동으로 전달주체 또는 운영주체는 정부의 공적 전달체계 외에 민간(사적)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사회의 사회복지가 국가의 관여에 의하여 기능으로 제도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간 사회복지 조직에 의한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 존재와 활동이 필요하다.2) 민간(사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필요성첫째,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많은 경우 수혜자의 자격기준을 심사하여 선별적으로 제공하므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 다. 둘째, 민간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는 정부가 제공할 수 없는 보다 다양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셋째, 클라이언트나 소비자로 하여금 그들의 기호나 지역적, 시간적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공적 기관과 민간 기관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넷째, 정부가 새로운 사회복지서비스 도입을 위한 정보 제공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 다섯째, 자원봉사자, 재정적 후원자, 운영자 등 민간의 참여욕구는 민간기관에서 적절히 수렴하거나 민간 기관의 설립을 통해 충족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여섯째, 민간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는 정부의 사회복지 활동에 대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민간 기관에 의한 사회복지 활동은 정부의 사회복지비용을 절약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필요하다.3) 민간(사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조직구조민간 사회복지조직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주민조직과 그리고 사회복지법인, 재단법인 및 사단법인, 종교단체, 법정단체 및 기타 특수법인, 등록단체나 그 법인 또는 단체가 사회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시설과 기관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민간 사회복지조직은 공적 사회복지조직처럼 특별한 상의하달식의 전달체계를 구축하지 않고 있다. 단지 민간 사회복지조직은 행정당국의 지도감독을 받아 서비스를 전달하는 사회복지법인(사회복지기관 및 시설)과 행정당국의 지도감독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민간 사회단체나 기타 법인체 등에 의해 사회복지서비스가첫째 유형은 전통적인 사회복지기관협의회로, 일반적으로 대도시에 존재하는 복지협의회의 대부분은 이러한 형태이며 우리 나라의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전신(前身)인 한국사회사업연합회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두 번째 유형으로는 지역사회복지협의회를 들 수 있다. 이는 전문 혹은 비전문 개인회원과 사회복지기관의 단체회원으로 구성되며 포괄적인 의미의 사회복지 증진에 관심을 갖고, 사회복지기관들의 프로그램을 기획·조정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과 함께 사회행동 등에도 참여한다. 우리 나라의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각 시·도의 사회복지협의회가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세 번째 유형으로는 이른바 전문분야협회 를 들 수 있다. 이 협의회는 앞에서 말한 두 협의회 유형 중의 하나의 기능적인 형태로서 소협의회 혹은 독립기구로서 존재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가정 및 아동복지협의회, 레크리에이션과 집단지도협의회, 보건문제, 정신위생, 재활, 청소년비행예방, 청소년 서비스분야 등의 기관협의회를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분야에도 각종 직능단체협의회가 있는데,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사회복지협의체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민간 사회복지부문의 서비스 전달체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 번째 유형인 지역복지협의회라고 할 수 있다.4) 민간(사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문제점(1) 조직구조상의 문제점첫째, 대부분의 민간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들이 그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상당부분을 정부의 보조에 크게 의존하고 그 운영에 있어서 지도·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결과로 그들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클라이언트의 요구보다는 정부의 지시 에 따르는 경향이 많아, 민간부문의 장점인 자율성과 창의성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다.둘째, 민간 사회복지복지시설 가운데 수용시설은 정부의 지원수준이 낮고, 시설의 종별·지역별 분포가 불균형하며, 재정상태 및 전문인력 확보가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저소득층 주민의 이용시설인 사회복범적이고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기관별 대동소이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셋째, 민간 사회복지조직 중 수용시설은 지역사회에 바탕을 두고 지역주민의 참여와 함께 시설의 개방화와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시설의 서비스와 지역사회의 서비스가 제대로 연계되지 않아 수용자가 통합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2) 관리운영상의 문제점첫째, 사회복지복지조직들의 협의기구와 조정체계의 역할과 기능이 미약하다. 즉 수용시설의 경우 사회복지복지시설의 이슈나 문제에 대하여 정부나 국민에게 사실을 홍보하고 정책건의를 하는 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이용시설의 경우, 기관들 간의 협의 조정체계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아 서비스간의 연계가 부족하며 이러한 결과로 프로그램의 중복과 누락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둘째, 사회복지복지서비스의 양적, 질적 수준이 빈약하다. 이용시설의 경우 양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내용도 학습장소 제공, 일회적인 상담, 일회적인 행사참가가 대부분으로 서비스의 지속성이 문제이다. 또한, 수용시설의 경우 정부보조금이나 기부금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의 제공에 필요한 재원이 빈약하여 대부분 만성적인 재정난에 봉착되어 있으며, 특히 단순 수용보호사업만으로는 클라이언트의 건전한 인격형성, 사회생활 적응능력의 배양, 자립, 자활 등과 같은 클라이언트복지 목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3) 전달인력상의 문제점첫째, 민간 사회복지복지행정 전달체계의 공통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가 비전문인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용시설은 수용시설보다 그래도 낫지만 서비스에 적합한 전문가의 숫자가 부족하여 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재원확보를 위하여 보여주기식 프로그램 운영 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의 효과성에 대한 평가가 요청된다. 수용시설의 경우도 대부분의 시설이 빈약한 운영비 때문에 적합한 전문인력을 고용할 수 없거나
독ㆍ소 불가침조약I. 서론독ㆍ소 불가침조약은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Ribbentrop, Joachim von)와 소련 인민위원회 의장 겸 외무인민위원 몰로토프(V. M. Molotov)가 조인한 상호불가침조약으로, 이 조약으로 동유럽에서 독일과 소련의 세력권 분할이 확정되었다.그리고 이 조약은 독일로 하여금 폴란드를 침공하여 전쟁을 촉발하게 만든 조약이다.독ㆍ소 불가침조약의 초기 협상은 1939년 4월 소련에 의해 시작되었다. 소련은 독일과 서방이 마찰을 빚고 있을 때 이것을 악용하지도 않았으며 또 독일과 소련의 관계가 장차 우호적인 발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우회적으로 외교를 전개하였다. 즉 무력행사와 침략은 주로 서방측에 그 책임이 있으며, 소련과 독일간에 근본적인 분쟁의 씨는 없다고 말하며 독일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소련은 한편으로 영국과의 협상을 진행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과의 교섭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한편 볼세비즘을 인류문명의 파괴자요, 불구대천의 적으로 규탄하던 히틀러에게 있어서 소련과의 협상이라는 것은 기괴한 것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미 폴란드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ㆍ소 관계를 촉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독일은 소련이 서방측과 군사협정을 중심으로 한 협상을 개시했던 8월 16일 독일외상 리빈트로프를 모스크바로 보냈고, 몰로토프는 독ㆍ소간의 세력범위를 확정을 내용으로 하는 의정서 체결에 동의하였다. 이에 따라 8월 23일 오후 리벤트로프가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그날 밤에 불가침조약이 조인되었다.이러한 독ㆍ소 불가침조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II. 본론1. 독ㆍ소 불가침조약 체결 과정1) 영국, 프랑스와 소련간의 교섭의 실패서유럽과 소련간의 교섭은 1939년 4월부터 시작되어 독ㆍ소 불가침조약의 서명을 위하여 리벤트롭 독일 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4월 14일 프랑스 정부가 소련 정부에게 동맹 교섭을 제의함으로써 소련과 서유럽간의 의 침략 위협을 받는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서로 지원하는 군사협정을 체결하되 이 협정 대상에는 발틱 해와 발틱 제국들도 포함시켜야 된다는 반대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5월 3일 리트비노프가 돌연 사임하고 그 후임에 몰로토프가 취임하게 되자 소련과 서유럽간의 교섭은 난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리트비노프는 집단안보론자이며 영국, 프랑스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나 몰로토프는 그렇지 못하였다. 5∼6월간에 교섭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7월 1일 영국과 프랑스는 발틱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는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 대한 침략 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곤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소련은 7월 24일 정치협정을 잠시 미루고 군사협정부터 체결하자고 제안하였고, 영국ㆍ프랑스도 이에 동의하였다.8월 12일부터 모스크바에서 군사협정 체결을 위한 영국ㆍ프랑스ㆍ소련 3국의 군사대표자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 회의에서는, 소련측이 만일 독일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국군이 독일국경으로 진격하기 위해 부득이 발트 3국,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국토를 일제히 통과해 지나가야 하므로 소련에게 그러한 지역국가들의 국토내에서의 군사행동권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히 폴란드측의 반대{) 폴란드는 소련군이 일단 폴란드 국토 내로 진입하게 된다면 다시는 철군해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18세기말의 폴란드 분할을 에카테리나(Ekaterina) 2세의 러시아가 주도했다는 사실과, 제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에 러시아와 폴란드가 전쟁을 치루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에 부딪혔던 영국과 프랑스측은 소련의 그러한 요구에 대해서 난색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회의는 21일까지 연기하기로 하였다. 프랑스 대표단은 보프르(A. Beauffre) 대위를 바르샤바로 급파하여 폴란드 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 그러나 폴란드는 끝내 거부하였다. 21일 저녁 소련의 보로실포프 장군은 프랑스 대표단에게 프랑스 정부만의 보장으로 불충분하고 폴란드 정 1939년 4월 17일 소련의 제의{) 소련은 독일과 전체주의적 동질성에 입각하여 독일에 접근하여 양국 사이에 폴란드를 재분할함으로써 구러시아제정령의 일부이던 동부 폴란드를 수복하려고 결심했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이날 독일주재 소련 대사 메레칼로프(A. F. Merekalov)가 독일 외무성 정치담당 외무차관 바이츠잭커(E. von Weis cker)를 면담하였다. 면담의 목적은 독일에게 병합된 체코의 군수회사인 스코다(Skoda)사와 기왕에 체결한 계약들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독일의 동의를 얻고자 한 것이었다. 회담 도중에 소련 대사는 소련은 독일과 서방이 마찰을 빚고 있을 때 이것을 악용하지도 않았으며 또 독일과 소련간의 관계가 장차 계속 우호적인 발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매우 우회적인 외교 언사로써 소련은 독일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5월 3일 돌연 리트비노프가 물러나고{) 권달천, 「제국주의와 1, 2차 세계대전 - 서양 현대사 강의」(도서출판 늘함께, 1993),p. 374리트비노프가 유대계 러시아인이므로 장차 소련이 반유대주의국가인 독일과 외교교섭을 시도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를 해임하게 된 이유의 하나였다. 이 리트비노프 대신에 그동안 대외강경주의정책을 표방해 왔던 몰로토프 수상이 외상직을 겸무했다는 사실은 소련의 대외정책이 강경노선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몰로토프가 외상에 취임하였다. 독일은 이것을 소련의 독일에 대한 우호적인 접근신호로 받아들였다.그러나 독일은 몰로토프가 등장한 이후에도 관망하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에 소련은 다시 외교적인 행동을 시도하였다. 5월 17일 베를린 주재 소련 공사 아스타호프(G. A. Astakhov)는 다시 독일 외무성을 방문하여 양국간에는 아무런 적대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5월 20일 몰로토프 외상은 경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예방한 슐렌부르크(F. W. von der Schulenburg) 독일 였다. 몰로토프는 독일 정부가 1926년의 양국간 우호조약, 그리고 이 조약을 보완한 1931년의 의정서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간주하느냐고만 질문할 뿐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독일이 소련과의 교섭을 서두르게 되었다. 7월 24일에 영국, 프랑스가 소련과 군사협정 체결을 교섭한다는 것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이 발표되자 독일 외무성의 경제 전문가인 슈누레(J. Schnurre) 박사는 아스타호프 공사와 장기간의 회담을 갖고 독일은 영국보다 더 많은 것을 소련에 줄 수 있다고 밝혔다.이 회담을 계기로 양국간의 교섭은 급속히 진전하였다. 독일 외무성은 슐렌부르크 대사로 하여금 몰로토프를 만나 교섭하도록 훈령하는 한편 리벤트로프 외상 자신이 8월 2일에는 아스타호프 공사를 불러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날에 벌써 양국간의 세력범위 문제가 거론되었다.영국과 프랑스가 모스크바에서 군사회담을 개최하던 8월 12일 바로 그날, 베를린에서는 아스타호프가 리벤트로프를 예방하고 양국간의 고위 회담의 장소를 모스크바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런 제의에 리벤트로프는 자신이 그곳에 가겠노라고 답변하였다.8월 18일 몰로토프는 불가침조약의 체결 그리고 세력범위의 확정을 내용으로 하는 의정서 체결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19일 슐렌부르크 대사는 몰로토프를 만나 리벤트로프 외상이 26일 혹은 27일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문제를 타결하였다. 그런데 독일은 9월 1일에 폴란드를 침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소련과의 조약 체결이 시간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20일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어 리벤트로프의 방문을 22일이나 23일로 앞당겨 줄 것을 요청하였다. 스탈린은 23일이 좋겠다고 동의하였다.그리하여 리벤트로프는 1939년 8월 23일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하였고 도착 직후 회담이 개최되어 그날 저녁 양국간의 역사적인 불가침조약이 조인되었다.3) 독ㆍ소 불가침조약의 내용독ㆍ소 불가침조약은 8월 24일에 발표한 독ㆍ소 불가침조약(1939년 8월 23일)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리투아니아는 독일의 영향권 하에 둔다.(2) 폴란드 영토를 재조정하는 경우 독ㆍ소간의 영향권 분할은 나류ㆍ비스탈ㆍ상 (Narew Vistule - San)을 경계로 하며, 추가로 두 나라간의 이익을 위하여 폴란드를 독립국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폴란드의 국경문제는 앞으로 정 치적 진정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여하한 경우에 있어서 두 정부는 이 문제를 우호적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3) 독일은 소련의 베사라비아(Bessarabia)에 대한 이익을 인정하며 독일은 이 지역에 대해 정치적 이익을 갖지 않는다.4) 독ㆍ소 불가침조약 이후 다른 나라의 반응독ㆍ소 불가침조약으로 독일이 정식으로 소련과 제휴하게 되자 1937년 11월 이래의 독ㆍ이ㆍ일 삼국방공협정은 그 존속의의를 전적으로 상실하게 되었다. 기고 독일의 이러한 마키아벨리즘외교로 인해 대소 반공전선이 약화되어 이ㆍ일 양국이 크게 당황하였는데, 특히 그 동안 일본은 1935년 5월 이래의 독ㆍ이 군사동맹에 가입함으로써 삼국동맹을 완성시켜 보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독ㆍ소 불가침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입었고 1939년 8월 28일을 기해 히라누마키이찌오로 내각은 총사직하고 말았다.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군비허약 때문에 개전을 원치 않고 있었으므로 히틀러의 급진적인 대폴란드침략정책에 크게 당황하면서도 한편 이탈리아를 반독으로 이끌어 가려던 영국측의 유인책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냉담했다. 독ㆍ이 군사동맹 즉 강철동맹의 규정에 따라 8월 25일 폴란드 침공개시에 관한 히틀러의 사전통보를 접하게 된 무솔리니는 좀 더 일찍 통보해 주지 않았던 것을 나무라면서 자기는 이미 5월에 동 동맹을 체결할 때 전쟁발발을 1942년 이후로 가정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이탈리아가 전쟁준비를 완료할 수 없으므로 독일이 당장 폴란드와 개전하게 되더라도 이탈리아는 참전할 수 없다고 히틀러에게 회신했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크게 당황하게 되었다. 한편 조기에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손님과 주인- 『손님』을 읽고 -처음에 몇 장 읽으면서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주인공 - 극중에서는 '손님'의 자격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 류요섭이 목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책 내용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으면 잘 안 읽는 편이다. 솔직히 종교와 관련되어 나오는 부분은 읽지 않고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네들만의 단어로 나열되어 있는 듯해서 읽으면서 이해도 잘 되지 않고, 읽었다고 해서 이해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교적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경건하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꼼꼼히 읽다가 지레 지쳐서 포기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번에는 다 읽어보기로 했다. 감상문을 써야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샀으니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요섭의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두고 그 며칠 사이 요섭은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요섭은 고향에 형 요한의 유령과 함께 동행한다. 요섭은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고향인 황해도 신천 찬샘골로 향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형의 헛것은 계속 나타나 과거로 그들을 불러들인다. 요섭은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1950년 인천상륙 이후의 끔찍했던 45일간의 기억을 떠올린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지만 사실은 우익기독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 서로를 죽이고 죽던 유령들이 요섭에게 떠올라 저마다 그때를 이야기한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고, 이들의 화해로 끝이 난다.처음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도대체 무엇이 '손님'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기독교가 있고 그들이 말하는 사탄 - 공산주의(?) - 가 있었고, 그네들의 싸움에 희생된 이들이 있었고, 작가는 희생자들을 굿이라는 형식으로 달해주고 있다는 것이다.나중에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읽은 뒤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손님'이 '기독교'와 '맑스주의'라는 것을 알았다. 순간, 나는 '맞다, 맑스주의였네, 그게 - 공산주의 - 가 그거였다.'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말하는 돌 깨지는 소리였다. ^^;'손님'이 이 둘이라면, '주인'은 뭘까? 우리나라가 아닐까...... 이 땅에 '손님'으로 와서 이 땅의 '주인'을 다 죽이고 나눠놓더니, 이제는 자신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손님'과, 예전에는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주인'이 되어버린 '손님'의 눈치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손님'에게 주체성을 빼앗겨 버린 '주인'의 잘못을 꼬집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 왜 이렇게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마을에서 아침 저녁으로 얼굴 맞대면서 살던 사람들끼리......한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흔히들 말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들을 서로 죽이고, 한 마을을 피바다로 만드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것이든지간에 이데올로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빨갱이고 예수쟁이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텐데, 서로 자기들이 기득권으로 나서려다가 그렇게 피바다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얻은 건 뭘까.......소설에서 국한하지 않고 본다면,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으로 인민들이 평화로운지, 또는 남한에서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로 국민들은 행복한지 의문스럽다.소설에서는 '손님'의 희생자들이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화해를 해나가며, 여기에 굿이 더해지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굿을 그냥 쉽게 지나쳤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는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뜻으로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하여 썼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책을 읽으면서 느끼지만, 특히 역사를 기본에 깔고 있는 소설들에서는 작가가 쓰고 있는 형식, 대사체, 장소, 사건 등이 다 새롭게 느껴지고, 그렇게 엮어 낸다는 것에 대해 감탄을 한다. 작가가 그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뿐만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의 그 철저한 계산에 정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