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여 나의 산하여고은의 북한 순례기고은의 여정은 백두산으로 시작된다.나 역시도 북녘 땅을 밟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 백두산을 먼저 밟을 것이다.우리 겨레의 모토이자 기상의 응집체. 한민족 가슴가슴에 하나임을 묵어주는 민족의 어머니이자 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백두산.그러한 백두산을 사랑하여 고은은 전7권의 서사시를 지었다. 가보지도 못한 백두산을 그렇게 노래한다는 것, 정말 슬픈 일이다. 작가도 자신의 그러한 상상력을 '슬픈 상상력'이라고 말했다.그러한 상상이 실제로 보였을 때 작가는 어떠했을까?꿈이었다라고 말했다. 평양에 도착한 순간의 첫마디. "맨정신이고자 했다. 백두산에 올라간 그의 첫마디.어렸을 적부터 개마고원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북한의 하늘은 짓궂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백두산 삼지연은 원시림의 수해(樹海)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지상에서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은 외국의 것에서나 봄직한 것이어서 내 가슴속에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태고 적부터 우리네 기상이며 근원 되었던 백두산은 억겁의 세월 속에서도 내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장엄했고 변함없이 그렇게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감사했다.고은 선생님은 그 특유의 감성으로 시를 담아 내 백두산과 북녘의 모습을 시로 표현해 내셨다.그 특유의 시적 정서는 순례기 전체를 감싸며 나의 가슴에 일렁이는 그 무엇을 크게 파도치게 하셨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감동말이다. 국사시간에나 익숙했던 유적지와 지명들이 한순간에 머릿속에 들어왔다. 시험을 위해서 그렇게 입력시키던 이름들이 술술 말이다. 또한 어렸을 적 만화에서 돼지머리를 달고 나왔던 김일성과 그 조무래기 늑대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학급에는 항상 반공 란이 있었고 북한주민들은 철저히 세뇌 당하고 감시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삼일포 여행을 돕던 안내원이 알려준 은어 우심조뽀까 는 눈물이 핑돌만큼 나를 웃게 만들었다. 작가를 통해 계속되는 멋진 자연경관에 심취해있던 나에게 북한한마디에 동경하던 북한의 자연에서 인간에게로 흐르는 정을 새삼 발견하고서는 그 땅과 그 땅을 닮아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그들은 우리보다 어렵고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말이다. 유홍준 교수의 글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그들만의 순박하고 따뜻한 미소는 스스로가 세워놓은 어려움과 부딪혀 사는 우리보단 작은 여유이지만 거기서도 인간미가 배어있는 그들의 정이 부러웠다.삼지연에서 만난 한 여인이 있다. 감자꽃의 모습을 한 여인. 3년 만에 소백사는 언니를 만나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것을 1시간 반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그녀. 고은은 그녀를 백두산 지천에 피어있는 감자꼿을 닮았노라고 말했다. 그녀뿐이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들의 모습은 태생적 의지를 가진 자연의 한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서구 여러 문화와 함께하며 점점 더 파괴적이고 엽기적인, 한마디로 더 강한 자극 을 원하고 그러한 강한 자극 이 아니라면 무덤덤해져 버린 이곳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다 그렇겠는가? 또한 남한사람들의 모습에도 북한 주민의 그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TV를 통해 북한 귀순여배우가 북한에서는 성형수술이라는 말 자체가 아예 없어요. 그런 생각도 전혀 아니 절대로 못하죠 어찌보면 그렇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래할 것이다. 나 역시도 왠지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생활의 여유나 빈부차가 아니더라도 미에 대한 가치관이 전혀 다르게 변했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웬만큼 여유가 있는 집안의 여성이 아닌 이상 미추구를 위한 성형수술은 남한에서도 꿈도 꿀수 없던 사치였는데 그 몇십년의 벽이 전혀 다른 세상을 서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이질감과 다른 가치관들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그네들의 모습은 또한 자연의 하나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두메마을 내 소꿉친구들. 동네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있는 욕심 없고 순박한 모습 말이다.이산가족 상봉에서 그쪽의 그나마 지위가 있다하는 사람들산, 구월산, 송악산, 금강산, 묘향산... 산이 많은 그곳에 나무와 꽃과 물을 닮은 그들이 있다는 것은 묘한 설레임을 불렀고 그들 속에 들어있는 고구려의 기상이 남다르게 느껴졌다.민족의 시작이 그곳에 있다.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우리 민족은 그곳에서 나라를 일으켰다. 단군이 하직한 구월산엔 단군신앙의 숨결이 남아있고 비록 폐허가 됐지만 고려의 5백년 역사를 느낄수 있는 만월대. 한민족이 최초로 이뤘던 민족국가 고려의 궁터. 이뿐인가, 북에는 평양과 개성 등 그곳엔 많은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디를 가든 우선이 되는 김일성 수령님 이다. 금강산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되는 암벽에도 새겨져 있는 그 이름. 문화유산 안내문의 첫 구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의 파워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절경과 함께 꼭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민의 아버지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아버지로 자식들은 놓아주지 않을 것인가. 다시금 생각게 했다.「그동안 갈라졌던 것 흩어진 것모조리 떠넘기고그동안 무지무지하게아까운 나날들 하사로 보낸내것이 아닌마음이란 것훨훨 날려 버리고이제는 어쩔 수 없이하늘의 선녀로 내려와여기 실한 나무꾼 만나서로 익어가는 사랑의 눈으로우리 서로 바라보자」고은 금강산 中 p202고은은 대부분 북한의 자연에 대한 감상을 노래한다. 무엇보다 거기 있는 우리네 산과 들과 물을 노래한다. 그리고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그곳을 함께 거닌다.사상이 무어며 말이 조금 틀리면 어떠랴 내 조국 반쪽의 모습을 함께 하는데. 나는 이 그리움이 단순 북한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향,내 고향은 남도 끝 해남이다. 그런데도 그 반대편 끝의 북녘은 어찌 그리 내 고향과 닮았을까.내 몸에 한족의 피가 흐르기에. 우리 모두의 고향이기에 그런가 보다. 백두의 기운이 우리 한족의 몸에 하나하나 박혀있음에 언제고 그리운 곳이 그곳이겠다. 고은의 감성을 너무 받아서인지 감상문 전체에서 나의 감정이 너무 묻어나는 것 같다. 어기가 있다. 금강예찬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서 행해지고 있다.금강산의 아름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가인(歌人)들이 아끼지 않고 찬사를 보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영산(靈山), 수행의 산, 풍류의 산, 시의 산.금강산의 모습을 이렇다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그 모습은 빼어나고 칭찬받아 마땅할 만큼 아름답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지내다가는 그곳에서는 인간세상에서 볼 수 없는 신성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그 수려함 앞에 많은 가인들의 금강산을 노래했고 시인이 아닌 이들도 금강산을 만난다면 시인이 될 수 있다. 금강산하면 정철을 빼놓을 수 없고, 양무언을 비롯 수많은 가인과 선비들이 노래하였다. 김황원은 대동강을 노래하다 그 회심에 막혀 금강산에 들어가지만, 끝내 산중의 솔바람 소리를 노래할 수 없는 절망으로 내려갔다 한다. 이 뿐인가 벽하담에 원나라 사신일행 중 하나가 부처나라 땅이 여기라 여겨 다시 태어나 고려인으로 귀의하려 자살했다한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명한 한국의 금강산이 자랑스럽고 아직 38선 그곳에 있지만 마치 내 것인냥 우쭐해지기까지 하게 된다.금강예찬은 금강산을 비롯해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금강문, 강원도 남부의 소금강, 경남 거제도의 해금강, 금강봉 등에서 우리는 금강에 대한 외경을 알 수 있다.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열반, 중향, 금강, 기달 등의 이름을 갖게 됐던 금강산은 양사언에 의해서 고려말 조선초에 금강산이라는 이름으로 확실해졌다고 한다.또한 화엄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법기(담무갈)보살이 1만 2천 권속과 함께 상주하며 진리를 설하고 있다는 신앙이 12세기 중엽에 널리 퍼져서 금강산 1만 2천봉은 바로 그 1만 2천권속의 의인화라고 한다. 금강산은 종교만의 산뿐 아니라 일제 식민지시대 지사들의 산이 되었고, 새로운 역사를 위한 산의 모습이었다. 영산의 모습으로 우리를 포용하는 산.고은 선생은 금강산의 이런 모습을 금강신앙이라 말한다. 상고시대 예와 그 뒤에서도 이 산은 신앙의 대상으로 한민족에산의 모습 중 특히나 내 가슴에 들어오던 것은 만물상이었다. 작가처럼 산신령을 불러 만나고 싶은 그곳. 하늘문 지나 천선대.천선대에 올라 운문에 싸인 만물상을 향해 금강산! 금강산! 금강산 산신령! 을 부르짖은 고은 선생. 여기까지 와서 만물상을 볼수 없다는 것은 비극아닌 비극이지 않은가? 금강산은 단 5분을 허락했다고 선생은 말하지만 한 컷의 사진으로도 설레는 우리 맘은 더 간절해진다.아 금강산 일만 이천봉. 창조주도 지으신 후에 감탄하셨음이 분명하다. 슬픈 상상력을 부풀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와 진다. 금강산여행이 물망에 오르는 요즘이지만 나는 기어코 통일된 조국의 금강산을 찾을 것이다.과거 불교유적이나 금강산암벽에 새긴 글귀는 자연과 환경이 조화를 이뤄 작가가 말하듯이 무척 싱거울뻔했다 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제2의 자연이라고 하는 그것들과 비교해 금강문과 금강산 여기저기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과 김일성 주석의 이름새김은 낯설은 인간의 모습이다.북한산 곳곳에도 씌여진 이름인데 하물며 신선이 내려앉는다는 금강산에 새겨 넣고 싶지 않았겠냐마는 그 소욕(小慾)이 장엄한 금강산 앞에 더 작고 추해짐을 잊지 말아야겠다. 금강산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이다. 앞으로 통일이 돼서 우리네가 모두 금강산을 밟을 때에 큰 자연 앞에 숙연함을 잃지 말고 소욕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519년 창건됐던 신계사, 금강산 4대 사찰중 하나인 장안사는 시린 아픔의 역사의 재물로, 북한의 유적들 역시도 전쟁의 폐해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다행히 대동강변 대동문, 연광정, 을밀대 등은 잘 견뎌냈지만, 찬란한 문화유산의 파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적을 상대로 끊임없이 지켜낸 땅 그 흔적을 곳곳에서 볼수 있었다.북한은 유적과 자연을 잘 가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김일성의 이름이 빠진 곳이 없어 섭섭하지만. 나 바라는 바는 통일되어 오르는 금강산에는 지금의 설악산처럼 제2의 폐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 지역에 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