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영국에 있었던 나는 겨울과 여름, 두 번에 걸쳐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 흔히들 프랑스를 자유의 나라라고 말하듯이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오자 런던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느낄수있었다. 물론, 겨울의 파리는 런던못지않게 살을 에는 듯이 추웠었고, 여름의 파리는 그때의 기후가 이상했던 탓인지 예년보다 낮은기온이어서 내려쬐는 태양빛을 생각하고 가져간 옷들을 무색하게 할만 했지만 런던과 파리는 무척이나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프랑스를 자유의 나라라고 연상하게되는 커다란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그들의 역사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었던 민중, 부르조아, 노동자의 혁명을 이끌어내고 왕족과 귀족을 대거 처형하여 공화정을 세운나라, 자유???평등?박애의 나라가 프랑스이다. 그래서인지 파리에서는 자유로움이 뭍어나왔다.프랑스에 가졌던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처음 드레퓌스사건이라는 것을 접했을때 프랑스에서도 이성에 반하고 집단적 발작에 가깝다 할만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었고 당시 처음에는 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고서는 진실을 바로보기를 거의 모든 프랑스인들이 거부했었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도 새로운것이었다. 그리고 왜 그들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1890년대, 1900년대의 프랑스, 그리고 전세계를 논쟁속에 휩싸이게했던 하나의 사건, “드레퓌스 사건”의 더 자세한 내막에대해 궁금증이 생겼다.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작은마을 알자스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드레퓌스, 그는 어째서 “자유,평등,우애”의 대혁명의 나라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 불리우는 이 프랑스를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고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리고 100년도 더지난 지금도 여기저기서 회자되며 수많은 논문과 저서의 주인공이 되지않으면 안되었는가, 이 유태계 프랑스인 군인에게 우리는 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가,1870년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하고 알자스-로렌지방을 양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인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쓰라린 기억이었다. 으며 프랑스인들은 무분별한 언론에 노출되어 이성을 잃어가는듯했다. 반유태계 신문들뿐만아니라 정치적 편향을 보이지않았던 [르 쁘띠 주르날]을 비롯하여 보수적신문인 [에꼬 드 빠리], 카톨릭계 신문인 [르끄롸]등 이제는 그성향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드레퓌스의 유죄를 단언하고 나섰으며 아무런 증거도 없이 드레퓌스가 병력동원의 규모, 시간, 밀집지역에 대한 정보를 적에게 팔아넘겼다라든가 최근에 일어난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반역행위의 책임을 모두 그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드레퓌스는 프랑스 국민을 파멸시키고 프랑스 영토를 차지하려고 획책해온 국제적 유태인 조직의 스파이’라고까지 보도했으며 모두들 입모아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했다. 프랑스를 휩싸고 돌던 반유태주의의 열풍과,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위한 한 정치가의 방종, 그리고 언론의 연이은 오보와 매도가 프랑스 전역에 바람을 일으켰고 언론의 계속되는 여론조작과 그로인해 덩달아 무분별해진 흥분한 프랑스인들은 죄없는 한 장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프랑스는 드레퓌스에게 진술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재판을 끝내버렸다.95년 1월 드레퓌스는 군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는 박탈식에서 이렇게 외친다.“병사들, 지금 당신들은 무고한 군인의 군적을 박탈하고 있소!무고한 사람을 불명예로 몰아넣고 있단 말이오! 프랑스만세, 프랑스 군대만세! 나는 무죄요!”프랑스 만세를 외치는 그에게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냉담했다. [에꼬 드 빠리]는 “그 음울하고 무용한 의식보다는 차라리 린치를 가하는 편이 목적에 더욱 부합되었을 것이다...드레퓌스는 일부 군중의 마음에 의혹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복수를 한 것이다” 라고 논평했으며 카톨릭계 신문 [라끄롸]는 “프랑스 만세!하는 그의 외침은 유다 (예수의 열두제자중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넘긴 인물)의 키스였다”라고 평했으며 [라 리브르 빠롤르;자유언론]는 “한 개인이 개인적인 범죄의 대가로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 아니다. 그 종족 전체의 수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리와 유태인을 군과 공직에서 추방해야한다는 주장이 연일 신문을 뒤덮었다. 물론 당시의 모든 프랑스가 진실을 외면한것만은 아니었다. [르피가로]는 드레퓌스의 결백과 에스테라지가 진범임을 최초로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진실을 외치는 그소리는 반유태주의 신문과 이미 여론에 조정당하고있던 프랑스인들의 외침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에스테라지는 만장일치로 무죄선고를 받고 오히려 드레퓌스를 옹호하고 나섰던 피가르 중령이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반유태주의 언론과 이미 진실을 파악할 힘을 잃어버린 허울뿐인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는 열광했다.민주주의의 고향이라 불리우던,자유의 나라 프랑스,수많은 민중들이 혁명의 제물이 되며 지켜낸 그명성이 유럽무대에서 퇴색해 가고있었다. 이제 그 자유의 나라, 평등과 박애의 바람이 부는 나라 프랑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 이상 프랑스는 존재하지 않았다.세계의 언론은 드레퓌스 사건을 일제히 보도하며 “프랑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쳤다. 이제 프랑스는 세계의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한 기자는 ‘사기꾼들이 사기를 예찬했고 협잡꾼들은 협잡기념비를 세웠다’고 개탄했다.프랑스는 둘로 나뉘었다. 양심적 지식인과 법률가, 공화주의자와 일부 진보적 정치인들, 소수의신문이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계의 지식인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그러나 보다 많은수의 공화제와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반대하는 왕정복고주의자와 옛귀족들, 군부, 반유태주의에 몰두한 과격 카톨릭 주의자, 보수적인 정치인들, 군국주의자들 및 다수의 신문이 재심을 반대하며 유태인의 음모와 국가안보를 위해 군의 위신을 존중해야한다며 군중을 선동하고 나섰다. 강한 프랑스 원하고,보불전쟁에서 패하고 독일에게 위협받는 나약한 프랑스를 살릴길은 강한군대뿐이라 생각했던 프랑스인들에게 군법회의의 결과를 되돌려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었으며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재심 반대파의 편에서 그들의 조국과, 그조국의 군대를 옹호하고 나섰다.“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있었다고 떠들어댔다. 이제 세계는 모두 알고있었다. 드레퓌스는 무죄이며 그의 군적을 박탈하고 악마섬으로 몰아넣은 것은 체면을 지키고자했던 군부와 반유태주의사상,그리고 반유태주의 언론의 주도아래 결집한 광분한 프랑스국민이라는것을.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는 모르고있었다. 전세계가 알고있으며 나락에 떨어진 프랑스의 자유와 지성을 애통해하고있었으나 대혁명을 주도해 그들의 나라를 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만들었던 깨어있는 프랑스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으며 아집과 독선에 눈이멀고 반유태주의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기를 거부하는 프랑스만이 존재했다. 흥분한 군중들은 ‘졸라를 죽여라!’ ‘유태인을 죽여라!’‘군대만세!’를 왜치며 폭동을 일으켰고 수많은 유태인을 죽이고 유태상점을 공격했으며 졸라의 집으로 몰려가 돌을 던졌다. 불과 100여년전에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세계의 역사를 진보의 걸음위에 얹어놓았던 혁명의 프랑스인들은 이제 그들의 역사를 잊었다. 그들은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했던 그 목소리로 이제는 프랑스를 국제적 비난속에 파묻히게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프랑스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사태를 숨죽이고 바라만 보았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졸라에게 보내는 찬사를 성명서로 만들어 서명했다. 프랑스는 이제 완전히 두진영으로 나뉘었으며 프랑스라는 드라마의 무대에서 전세계의 문명인들이 관객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배우가 되어가고있었다."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나는 그것을 맹세합니다! 거기에 나의 생명을 걸고 나의 명예를 겁니다! 이 엄숙한 시간에, 인간의 정의를 대변하는 이 법정에 서서, 이 나라의 화신이 되고 있는 바로 배심원 여러분들 앞에서, 전 프랑스 앞에서, 전세계 앞에서 나는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맹세합니다. 나의 40년간의 노작을 걸고, 그 노역으로 얻은 권위를 걸고 나는 맹세합니다. 드레퓌스는 무죄라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한 나의 명예를 걸고, 프랑스 문학의 신전에 이바지했던 나의 그러면 훌륭한 정의의 병사외에는 아무도, “내가 여기 있다”고 대답할 권리가 없을 것이다“졸라는 다시 펜을 들었다 .전 세계의 프랑스 대사관 앞에는 항의군중이 몰려들었고 이듬해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보이콧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모든 것에 대한 보이콧 결의가 곳곳에서 채택되었다. 세계의 유력언론들은 ‘드레퓌스가 아니라 프랑스가 범죄자’라는 사설을 실었으며 끌레망소를 비롯한 양심적인 정치가들이 정부를 공격했다.드레퓌스는 상소를 포기해야만했다. 그것이 특별사면을 얻기위한 필요불가결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특사를 요청하는 것은 무죄를 인정받는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포기하는것이었다. 에밀 루베의 대통령령이 발표되었다.‘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보고에 의거하고 1875년 2월 25일 법 및 법무장관의 견해에 따라 다음 사실을 공포한다.1항-드레퓌스에게 1899년 9월 9일 렌 군사법정이 언도한 금고 10년형의 잔여 형량을 면제하고 군적 박탈을 해제한다.2항-국방부 장관은 본 대통령령의 시행을 책임진다. 파리, 1899년 9월 19일,’드레퓌스는 공개 선언문에서 명예없는 자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확언했다. “나는 온프랑스가 결정적인 판결에 의해 나의 무죄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사람이 범한죄를 나에게 씌우는 프랑스 국민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때라야만 나의 마음은 진정될것입니다.”졸라는 “싸움은 이미 끝났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들은 이제 지저분한 방법으로 정직한 사람과 도둑에게 똑같은 특별사면을 내린것입니다”라고 했다.드레퓌스가 특사를 받아들임으로 진실의 승리를 위해 싸워온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다. 클레망소는 특사는 당당하지 못한 이기적인 행위라고 비난하였고 ‘드레퓌스가 드레퓌스 자신을 염려하는 것은 좋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염려하겠다’라고 말하였고 피가르 중령은 자진해 군대를 떠났으며 졸라는 [로로르]에 에밀루베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일반사면에 의해 강제로 종결된 드레퓌스 사건의 첫국면은 이제 끝났이었다.
장미의 이름,,나에게 참으로 많은 화두를 던져준 책이었다. 과연 나는 이책에서 무엇을 보고있었던가,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섣불리 읽을 수 없는 에코 특유의 기호학적 수사법으로 나열된 문장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대화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중세라는 시대와 현대와의 연결의 고리, 아마도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서 책장을 덮고 나서야 진정으로 이책을 다시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자신과의 대화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영상과 궁금증속에서 다시한번 장미의 이름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1932년 이탈리아 태생, 움베르토 에코..9개국어를 능통하게 하고 기호학, 철학, 역사학, 미학, 문학과 언어학뿐 아니라 퍼스널 컴퓨터 까지 지식을 쌓은 대학자라는 이사람은 그의 그 방대한 지식을 추리소설이라는 틀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있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2년 반만에 써내 1980년에 출판한 그의 처녀작 장미의 이름은 분명이 어느정도는 추리소설의 외관을 갖추고 있었으나 그속에는 단순히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많은 생각의 고리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내가읽은 판본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이윤기씨가 번역한 것으로 900쪽 분량의 2권짜리 책이었다.중세 수도원의 묵시록에 바탕을 둔 연쇄 살인 사건을 철학,논리학, 신학, 기호학의 이론들로 재구성하여 표현해 중세인들이 인식하던 당대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장미의 이름의 첫 제목은 수도원의 범죄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이 제목이 독자의 관심을 미스테리 자체에만 쏠리게 할 가능성이 많고 액션으로 가득찬 황당무계한 책으로 오해할까 두려워 파기했다고 한다. 또한 멜크의 아드소라고 하고싶었던 것은 당시 이탈리아의 출판업자들이 고유명사로 된 책 제목을 좋아하지 않아 망설이고 있던 차에 단테의 신비스러운 장미나 장미전쟁, 장미 십자회등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누적되어온 장미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장미의히를 최고 통치자로 선출했으며 그 2년후인 1316년에 요한 22세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얼마후 1322년 루드비히가 프리드리히를 거세하자 교황 요한 22세는 황제가 둘일때 보다 하나일때 더욱 위협을 느꼈으므로 루드비히를 파문하기에 이른다.그해 5월 체제나 사람 미켈레의 주도 아래 열린 페루지아 소형제회 총회에서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재산이나 봉물을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았다는 명목아래 그리스도의 청빈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에대해 교황 요한 22세는 사도헌장 [아드 콘디토렘 카노눔]을 반포하여 페루지아 총회에서 언급한 사용은 곧 소유라고 주장하고 이듬해 11월 12일 [쿰 인테르 논눌로스;Cum inter nonnullos]를 제정하여 청빈을 주장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이단으로 몰게된다. 이에 반해 1324년 5월 22일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황제는 [작센 하우젠 선언]을 반포하여 페루지아 총회를 지지하고 나섬으로서 다시한번 교황권과 황제권은 대립하기 시작한다.이러한 상황에서 1327년 11월, 페루지아 총회이후 아비뇽으로 소환 명령을 받은 미켈레는 신변의 위험을 느껴 교황측 사절과 황제의 사절이 한곳에서 협상하는 자리를 만들어 이를 통해 양자의 실세를 서로 인정하고 차후 협상을 통해 이탈리아인이 프랑스로 들어갈 경우 교황측으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다라는 복안을 생각해낸다. 이첫모임을 주선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이 바로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 황제 루드비히의 직속 신하이자 화자로 등장하는 아드소의 아버지와 친구였던 사람, 그리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사람인 것이다.성서해석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종교계가 매우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영국출신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로 로저베이컨의 사사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 윌리엄은 회의 장소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으면서 황제와 교황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던 베네딕트 수도회의 한 수도원을 선정하였고 사절단이 도착하기며칠전 먼저 그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죽음 호르헤 사이에 언쟁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베노는 베렝가리오를 의심하고 윌리엄은 베노를 의심하는 가운데 윌리엄은 베렝가리오를 심문함을 통해 아델모와 그가 좋지못한 관계, 즉 동성애 관계에 놓여있었음을 알게된다. 또한 호르헤의 말에따르면 진리도 증거하고 허위도 증거하는 곳인 장서관은 이교도의 서적도 보관하고 있다는 그 특성으로 오랜세월동안 출입이 통제되어왔고 장서관으로 통하는 통로자리또한 난방을 허술히해 접근은 차단해 왔음을 알게된다. 내게는 정말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었다. 장서관이 무엇인가, 서책을 보관하고 그것을 통해 지식을 전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곳의 출입을 통제하고 책의 대출또한 사서의 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면 과연 그곳은 무슨 지식을 전하려고 하고있는 것인가? 책이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야 그 빛을 발할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가? 장서관의 어둠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많은 책들은 자유를 원하지 않았을까?만과이후 ‘장서관은 미궁이다’라고 말하는 그라타페라타 사람 알리나르도에게 납골당을 통해 장서관으로 들어갈수있다라는 말을 들은 윌리엄과 아드소는 몰래 장서관 침입을 시도하고 문서사자실에서는 괴한에게 윌리엄의 안경을 도난당하고 장서관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장서관을 지킨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장서관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많은 함정들과 만나게 된다. 장서관의 미궁에서 겨우 빠져나온 두사람은 베렝가리오가 종과성무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원장의 말로 그 괴한의 정체가 베렝가리오라는 것을 알아낸다.Secretum finis Africae,,우상위의 손길이 넷의 첫 번째와 일곱 번째에 작용한다?3일째 되던날 사라진 베렝가리오의 방에서는 피묻은 천조각이 발견되고 그는 종과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드소는 장서관의 서책보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수도원 장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침묵과 어둠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을 것이다. 장서관은, 수도사들의 접근을 저지함으로써만 그 지식을 보존할수있다. 학문이란 값비싼 옷과 같은니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일, 일상 생활의 습관처럼 한부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커가면서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물론,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따위는 아니다. 그러기엔 신을 부정하기엔 내게 각인된 신의 존재가 너무 큰것일지도. 하지만 의문이 든적이 많았다.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 그리고 천주교, 그들이 믿는 것은 결국 같은 하나님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그렇게 나뉘어있으며, 다른 교리들을 설파하고 있는것인가?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같은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인간의 생각으로, 그들의 이기심으로 같은 하나님을 두고 서로 자신만의 영역을 정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그리고 그하나님이 진짜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걸 신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그리고 한밤중, 마치 묵시록의 예언이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듯 불타는 별이 강과 샘에 떨어진다고 경고하는 세 번째 나팔소리에대한 말을 듣고 베렝가리오의 시체를 욕장에서 발견하게 된다.다른 진리, 혹은 진리의 다른 모습, 부끄러움을 모르는 돌이 광야를 구른다..넷째날, 세베리노의 발견에서 힌트를 얻어 베난티오와 베렝가리오에게서 손과 혀가 검은 것을 발견한 윌리엄은 독극물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레미지오를 추궁해 그가 목격했던 베난티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베렝가리오의 법의속에서는 도난당했던 안경을 되찾게 된다. 6시과 이후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사절단과 교황의 사절단이 잇달아 도착하고 교황측의 이단심판관인 베르나르기와 윌리엄사이에는 묘한 적의가 감돈다. 그리고 베난티오의 암호를 해석한 윌리엄과 아드소는 종과이후 아드소로서는 세 번째이긴 하지만 두 번째로 장서관 탐험에 나선다. 장서관에 올라가 미궁의 도면을 만들고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속한 레오네스LEONES에 해당되는 방들은 장서관의 설계자가 위서로 여겨지는 서책을 두려고 만든 방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한밤중 살바토레는 몰래 여자를 데리고심판관들의 요구에 의해서 범인이기로 의무지워진, 그들의 임의에의한 선택받은 희생양일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레미지오에게 죄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는 분명 수도사로서의 의무를 저버렸으며 옳지 않은 행동들을 했다. 그러나, 그가 죄를 받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목까지 그는 짊어져야 했으며 그것에대해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할 조건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예수님, 그러나 그의 종교는 그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친구조차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들을 과연 한 종교의 사제라고 칭할수 있을까? 프란체스코회, 베네딕트회, 그리고 수많은 교파들, 그들은 궁극적으로는 한 하나님을 믿고있었다. 다만 접근하는 방법상의 차이가 약간 있었을뿐, 그들은 결국 한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아니였던가? 황제측이던, 교황측이던 결국은 모두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있지 않았던가? 그런 그들이 원했던 것은 결국 무엇이었나? 자신들만이 진실이고, 자신들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다른것들을 배척해나가고 있는것, 그것이 과연 진실된 종교라고 할수있을지, 중세의 종교관에대한 심한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9시과에 원장은 윌리엄에게 사건의 조사를 그만둘 것을 요구하게되나 그는 그말을 듣지 않고 종과 이후 아드소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피니스 아프리카에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내어 다시 장서관 침입을 시도한다.바빌론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Est ubi gloria nunc Babyloniae?7일째 되는날, 한밤중에 아프리카의 끝에서 만난 사람은 호르헤였다. 결국 6일동안 5명의 수도사를 살해한 사람은 성직자는 웃어서는 안되며, 지식은 돌고도는것, 새로운 지식이란 생길수 없다고 믿었던 장님 노인 수도사인 그, 호르헤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웃으시매 일곱신이 나타나 세상을 다스렸고, 홍소를 터뜨리시매 빛이 생겨났으며, 두 번째 홍소를 터뜨리시매 물이 생겨났고, 그분이 웃기 시작한지 이레째 되는날 영혼이 생겨났으니,,, 그는 웃음에대해 예찬한 아리스토텔레스다.
- 영국인,그들에 대하여-보수적이지만 창조적인 영국인, 그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선 영국이라는 곳에 대하여 좀더 정확한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정식 국명 -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짧은 명칭 - UK 또는 영국영국 제도 - 최대의 섬인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는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가 위치하고 있다. 두 번 째로 큰 섬에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별개의 국가)이 위치하고 있다.근해의 작은 섬들로는 와이트 섬, 앵글시 섬, 오크니 섬, 셰틀랜드 섬, 헤브리디즈 제도 등이 있다.영국의 가장큰 지형적 특징은 섬나라라는 것이다.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나라는 항상 대륙의 정복자의 야심을 돋구기 마련이다. 그탓에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도 그예외일수는 없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섬의 남쪽이 부드러운 평야이고 북쪽 스코틀랜드 지방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즉, 대륙에서 바로 보이는 남쪽이 부드러운 평야 지대여서 끊임없이 다른 민족의 침입을 받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래서, 영국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곳은 로마의 정복, 북도이칠란트 작센 지방에서 건너온 앵글로 색슨족의 침입, 스칸디나비아에서 건너온 바이킹의 침략, 덴마크 지방에서 몰려온 데인족의 침략, 북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노르만 족의 침략등 외적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항복,화해등을 거치는동안 켈트인, 로마인, 앵글로 색슨, 데인 노르만등 여러민족이 뒤섞여 복잡한 인종구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여러민족의 문화와 성격이 뒤섞여 복잡한 영국인의 성격을 만들어 냈다고 할수 있다.1991 년의 인구 통계를 보면 3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소수 민족 집단에 속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들 중에는 카리브 해 지역, 남부 아시아 아대륙(인도), 유럽 여러 지역,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주민들이 포함되어 있다.영국은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와의 끊임없는 분쟁과 교류 가운데서 이루어진 나라이다. 세계의 강대국들에 비해서 국가의지저분한 호색한이라고 생각하며 독일인은 과대 망상증이 있고 요리솜씨가 형편없는 말잘듣는 족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의 유럽에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며 이탈리아인은 신경질이 많고 거짓말을 잘한다, 스페인사람은 게으르고 러시아인은 음흉하고 스칸디나비아인, 네덜란드인, 벨기에와 스위스인 등은 아둔하다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더멀리떨어져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으며 미국인과 호주인은 천박하고 캐나다인은 따분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모두 수수께끼 같은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다.그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정중하기는 하지만 멸시가 담긴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기네가 원래부터 잘난 족속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영국식 영어에도 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물씬 풍겨난다. 영국에서는 외국학생을 overseas student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다로 에워싸인 그네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은 모두가 바다를 건너서 영국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영국의 내무부가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alien마치, 외계인처럼 취급하는 느낌을 주는것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신문중 하나인 타임즈의 이름에도 그들의 오만함이 스며 있다. 영국이 전세계의 정세에 대하여 정론을 주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계표준시의 고향인 영국이 한국이 위치한 곳을 극동이라고 부르는것도 영국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시각이다. 모든 판단과 시각 그리고 시간의 기준점을 영국으로 설정하고 있는데는 분명히 오만함이 있는것이다.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 면전에서는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그렇지 않은척을 하다가 뒤돌아서면 침을튀기며 이러쿵 저러쿵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불편과 인내를 감수하면서 답답할 만큼 표현을 안하기 때문이다.스코틀랜드 사람와,,잉글랜드스코틀랜드에서 일반에게 공개하는 대지주들의 저택에 돈이 많은 외국인은 선호하는 반면 가난한 외국인에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영국에서는 잉글랜드와 그 외지역이 나뉘어 지역주의를 나타내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진다. 북부인들은 남부인들이 부정부패를 밥먹듯이 저지르고 마피아의 극성을 용납하고 북부인이 열심히 일해서 벌어들인 것을 뜯어먹고 사는 아랍인 피가 섞인 농투산이라고 보며 남부인들은 북부인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인의 피가 섞이고 반쪽짜리 교육밖에 받지 못한 지저분한 촌놈으로 간주한다.외향성(Outwardness),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연령층을 막론하고 영국인들은 세계 구석구석으로 여행을 즐겨 하며 수입의 일부분을 저축, 해외여행 경비로 충당하거나 1년 내내 휴가계회을 수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매년 2,100만 명이 외국으로 휴가여행을 나가며 주로일년에 한번씩 영국인들은 상당히 긴 가족 휴가를 간다. 비행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영국 해변 휴양지로 여행을 갔으나 오늘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 태양열이 강렬한 지중해를 찾아간다고 한다. 영국인은 외국에 가서도 마치 자기 동네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본토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으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해변의 한쪽을 차지하고서 하루종일 영국에서는 잘 보기힘든 햇볕을 즐기며 밤이되면 마시고 춤추며 야단을 떤다. 휴가가 끝나면 그들은 콧잔등이 벌겋게 되어 설사와 알콜중독이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새로운도전에 응할 준비는 항상 갖추고 있다.도전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특성은 그들의 레저와 오락에서도 엿볼수 있다.영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필수적인 경쟁적 요소를 가진 레저도 일종의 도전이며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비오는 날에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우비를 차려입고 하이킹을 한다. 하지만 다른나라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산책, 하이킹은 마치 극기행군을 연상시키는 것들이다. 투지를 불태우며 비닐에 넣은 지도를 목에다 걸고 산을넘고 골짜기를 건너 장애물을 뚫고 오솔 except change)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영국인은 새로운 사회 현상을 겪을 때마다 신기함에 쉽게 매료되지 않고 그것의 발전적인 요소를 원용하여 전통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그들의 보수주의란 과거에만 얽매이는 보수주의가 아닌 전통과 변화, 발전을 함께 꾀하는 보수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선조로부터 물려 받은 물건들을 계속하여 쓰는 일이 허다한 반면에 그들의 생활 속에는 혁신주의적 기질을 숨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은 곳도 비틀즈의 노래가 처음 시작된 곳도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반한 사람 역시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이를 증명해 주기에 충분하다.우리가 잘 아는 영어 속담이 있다.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이 속담을 영국에서는 moss를 단일 직종에의 장기 근속에 따르는 이득이란 뜻으로 해석되어 변하면 장기 근속에 따른이득이 없다란 뜻으로 180도 변한다. 이 속담의 해석만큼 영국의 보수주의에 대해 더 설명 할 예가 있을까 싶다.그들은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무척 완고하다 이것은 지난날이 현재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존중하며 보수적이어서 세상은 나날이 변하는데 영국의 전통은 뿌리 깊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것은 영국의 어느 도시, 어느마을에나 널려있으며 호황을 누리는 골동품 상점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인의 가정에는 낡은 물건들로 가득하며 이런 고물들을 그들은 세월의 도전을 견디고 내려온것들이기에 대접하는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유행이나 현대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번쩍거리는 것은 천박하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녹슬고 손때 묻은 물건은 높이 평가한다.그들은 또한 친지와 친구들의 신분에 변화가 일어나는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재산도 새로 벌어들인돈보다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돈, 즉 물려받은돈을 벌어들인것보다 좋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며 전통의 유래 따위는 중요시 대한 대표적인 예로 영국에서는 경찰이 되어서 제일 먼저 받는 훈련이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란다. 높은 헬멧을 쓰고 뒷짐을 지고 보통사람이 걷는 속도의 절반으로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뛰는 것은 금물, 그것은 경찰이 뛸 경우 시민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이라니 그야말로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 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국의 경찰은 비무장이다. 가까운 프랑스만 해도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영국의 경찰은 권위나 물리적인 모습보다는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쓴다.최신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인프랑스인은 영국인들과 다르게 실험정신이 강하며 유행을 좇는일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고체계와 혁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핵에너지와 철도 시스템과 정교한 기계장치를 가지고 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신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 페인트가 마르지않은 새제품을 즐겨산다. 영국인은 상품광고를 잘만들었다고 칭찬하면서도 물건은 사지 않는 반면 프랑스인은 광고 그자체는 예술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그물건을 사는 일에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그들에게 인생이란 변화가 빠르고 활기차며 최신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말로 파세 즉 한물간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로도 통한다.반면 그들은 전통에도 충실하다. 혁명을 무척 좋아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서 흠집을 잡아서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벌이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급격한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격식을 지키려고 하며 심지어 이런 태도는 여름휴가에서까지 나타난다.감정의 억제(Inhibitions) ,냉정(Phlegm),프라이버시 존중영국인은 일반적으로 잘 참으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라틴 계통(프랑스, 스페인)보다 덜 정열적이며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다.영국인은 내면으로는 조소를 할지언정 겉으로는 항상 조용히 침착하게 대응하는 냉정함이 있다. 영국인의 냉정함, 감정의 억제를 비유하는 것으.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르노삼성자동차 SM5그 동안 자동차 광고라고 하면 대부분 역동적인 주행장면이나 다이나믹한 장면이 주를 이루었다.그러나 SM5는 정적인 이미지로 승부를 걸었다. 품질위주로 자동차를 선택하는 최근 소비자의 경향에 삼성은 차별화된 마케팅인 “Better & Different”를 내세우며 '타는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고 '타면 탈수록 가치를 느끼게 하는 차'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위해 노력한다. '세대 뛰어넘어 신뢰받는 차 표현' 이것이 이번 삼성자동차의 CF목표이다.르노 삼성자동차가 2002년형 SM 5를 출시하면서 부정적인 고정 관념 속에 갇혀 있는 국내 자동차에 대한 시각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제품력으로 뒷받침되는 자신감으로 당당히 도전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SM 5 생각에 동의합니다'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광고대행사 웰콤이 선보인 이번 CF는 "크기만으로 차의 가치를 평가해선 안된다. 제대로 만들었다면 잔고장이 없어야 한다. 앞뒤 뿐 아니라 옆 위 속까지 안전해야 한다. SM5의 생각입니다!" 라는 카피를 통해 SM 5의 생각을 전제한뒤 이를 소비자가 동의하는 각각 세가지 상황을 설정했다.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지만 바로 그 뒤를 이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닌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저도 SM5 생각에 동의합니다' 라는 멘트는 광고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뜻하게 해 준다.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이번광고'부자'편에서는 SM5가 비록 중형차이지만 다른 대형차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느 겨울 오후, 눈으로 뒤덮인 집 앞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다정한 한때를 보내던 아버지와 아들이 SM 5의 생각을 듣고 눈덮인 후드 위에 서명과 손도장을 찍는 모습을 담았다.'립스틱'편에서는 커리어우먼을 등장시켜 여성 고객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커리어우먼이 자신의 모습을 콤팩트 거울에 비춰보며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가 그때 들려오는 SM 5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립스틱으로 차 유리창에 서명을 한다.'꼬마'편은 오솔길에 서 있는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꼬마소녀가 SM 5의 생각을 듣고 유리창 입김 위에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그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의를 표한다. 오솔길 옆, 정차된 차 안에서 아빠가 오기를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 소녀를 등장시킨 '꼬마'편은 SM5가 '세대를 뛰어넘어 신뢰를 받는 차'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그러나 이 광고는 창의적인 소비자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수용자를 생산해낸다. 광고에서는 공통적으로 SM5의 생각을 들려준뒤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질문에 모델들은 한결같이 대답한다. '저도 SM5생각에 동의합니다'라고..광고를 보는 소비자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모델들이 동의한다고 한것처럼 자신도 그러한 듯 고개를 끄덕였을것이다.이는 소비자를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아닌, 그저 잘 만들어진 광고한편을 보고 거기에 항상 같은대답으로 동의하는 소비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당연한 듯 그것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2%부족할때..2%부족할때..사람이 갈증을 느끼기 시작하는때가 몸의수분이 2%부족할 때 부터라는데서 이름을 따왔다고한다. 이제품은 여중,여고생을 메인타겟으로 하고있으며 서브타겟으로 남중,남고생을 정했다.처음 광고 컨셉은 물처럼 보이지만 물이아닌음료로 출발하여 전지현 김효진편의'넌이게 물로 보이니?' 핑클의 '날 물로보지마' 최진실,최진영의 '난 노는물이 달라'등 수많은 스타들의 유행카피를 배출해내었다.론칭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매출이 조금씩 하락하자 광고대행사에서는 계속해서 소비자의 기억속에 남는 광고와 2%를위해 광고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처음의 육체적 갈증에서 심리적 목마름으로 컨셉을 전환함과 동시에 정우성,장쯔이라는 빅모델을 영입하고 영화 예고편형식이라는 새로운 광고형식을 만든것이다.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2%부족할때라는 카피를들고 나옴으로써 하향곡선을 그리던 매출곡선을 급반등시켜 매달 100억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놀라운 광고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현재 방송되고있는 광고는 가수 '유미'의 1집 타이틀곡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뮤직비디오와 동시제작한 정우성,전지현편이다.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해선 안되는 사이로 만난다면...이라는 컨셉으로 전지현의 '날 사랑하지마~'라는 절규와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그리고 연이은 '사랑은언제나 목마르다..2%부족할때'라는 카피는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