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스포츠와 대중매체 그리고검도가 나가야할 방향목 차Ⅰ.서 론Ⅱ.본 론1. 스 포 츠 에 서 의 매 스 미 디 어 의 특 성2.스 포 츠 와 매 스 미 디 어 의 상 호 관 계3.스 포 츠 에 서 매 스 미 디 어 의 역 활4. 매 스 미 디 어 가 스 포 츠 에 미 치 는 영 향5. 매 스 미 디 어 가 검 도 에 미 치 는 영 향5. 매스 미디어와 검 도 의 미 래Ⅲ.결 론#참 고 문 헌과목명검 도학 과학 번이 름제출일담당 교수Ⅰ.서론오늘날 매스미디어는 스포츠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시적차원에서 공생관계로 각색되는 매스미디어와 스포츠의 결합은 전세계적으로 최근 사회문화적 행위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케이블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의 도입은 스포츠채널을 수용자 흡입력이 높은 전문채널로 만들어 냈으며 특히 위성의 동시간대 중계기능은 스포츠행사를 빅미디어 이벤트화 시키면서 이러한 모습을 확대시키고 있다. 올림픽과 더불어 월드컵 축구경기는 미디어와 스포츠의 결합이 얼마나 다양한 요인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문화생산 복합체인지를 잘 예시해주고 있다.이처럼 오늘날 스포츠에게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필자는 추진 과제였던 “대중매체가 검도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를 좀더 확대시켜서 스포츠와 대중매체의 관계, 역할, 영향 등을 살펴봄으로서 주제에 접근하였다. 다소 주제를 벗어나는듯 하지만, 주제를 좀더 심도있게 다루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서 이러한 방식으로 주제를 해결하고 끝으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검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겠다.Ⅱ.본론1)스포츠에서의 매스미디어의 특성스포츠의 상업성과 매스미디어는 스포츠 사회학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진 화제이다.매스미디어는 첫째,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둘째, 세계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해석하는 기능,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오락과 흥미를 제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매스미디어는 우리들과 세계의 사이에서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제공해주는 교량역할을 하고 기 때문이다.그들의 선택 때문에 사람들은 읽고, 듣고, 보는 것이 제한되어 진다. 또한 매스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소에 의하여 그들의 사고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2)스포츠와 매스미디어의 상호관계이렇게 스포츠 산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매스미디어는 스포츠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스포츠는 인간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형화된 사회체계로서 그 자체에 메시지를 지닌 매체이다.매스 미디어는 신체적, 시간적, 사회적 거리가 협소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신속하고 동시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 체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미디어는 신문, 잡지, 책과 같은 인쇄매체와 라디오, TV, 영화와 같은 전자매체로 구성되어 있다. 미디어 범위가 크기 때문에 머지않아 사회제도로서 정보 준비, 지위상승 또는 사회통합, 미적경험 준비, 그리고 일상생활의 현실로부터 도피기제 제공을 포함하는 다양한 욕구를 제공받는 것으로 사람들을 전환시킬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대중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형화된 사회제도로써 그 역할의 중요도가 높아질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스포츠에의 가장 큰 참여는 TV, 라디오, 책, 잡지를 통해 일어남을 알 수 있는데, Robinson은 미국 성인의 30%가 매일 TV 스포츠를 시청한다고 보고하였고, Kenyon은 그의 연구 표본의 50% 이상이 스포츠를 라디오에서 듣거나 TV를 통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본다고 하였다.많은 스포츠 사회학자들이 스포츠와 매스 미디어의 상징적 관계를 연구하였으며 스포츠와 여가의 수단으로서 매스 미디어 등의 선행연구들은 여가활동의 수단으로써 스포츠와 관계된 매스 미디어를 선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많은 학자들이 관람 스포츠 소비에 따라 제공받는 기능의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 일례로 Brill은 관람 스포츠는 대중의 공격적인 투쟁성의 완화를 위한 중요한 욕구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또한 Gerth와 Mills는 ‘대리 성분’ 요인을 제공하게 된다. Elias와 Dunning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욕구는 스포츠 소비의 발생요인과 사람들을 위한 만족스러운 흥분에 의한다고 제안하였다. 즉,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스포츠 팬들은 스포츠 경기를 간접적으로 관람함으로써 대리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미디어를 통해 스포츠 팬들에게 제공되는 미디어 스포츠는 현대사회에서 큰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3)스포츠에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여태까지 우리는 스포츠에서의 매스미디어가 무엇인지 그 특성과 상호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 실체를 알아보았다.우리가 여태까지 고찰해와 수정해나가며 매스미디어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지 알아보자.스포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이다. 마치 인생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처럼, 가장 요구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오늘날 스포츠는 인종, 언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장 강력한 우리생활의 일부로서 전세계에서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이 한 장소에서 같은 종목을 겨룸으로써 지구촌의 모든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은 스포츠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더욱 가속화 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지 백년이 넘었고, 1969년 일간 스포츠 신문이 창간된이래, 스포츠 서울, 스포츠 조선을 비롯한 많은 신문과 스포츠 잡지가 스포츠의 인기를 대행해 왔다. 또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스포츠 위상을 세계에 떨쳤고,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을 자랑하고 있다.그 동안 나는 스포츠가 매스미디어에 의하여 종속되어 왔다고 생각했었다. 매스미디어는 스포츠를 보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미디어를 통해서 그 흥미를 더해준다. 한마디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통하여 광고료라든지 시청료 등의 이익을 챙긴다. 이익을 위해서는 올림픽경기, 월드컵 축구경기, 박찬호 선발 등판경기, 선동렬,간판을 설치하면서 거액의 스폰서를 챙기게 되는 이익이 있다.이러한 결과에서 서로 기술의 발전이라든지 자본의 축적을 꾀할 수 있지만 스포츠의 기본 이념인 아마츄어리즘이 파괴되고 스포츠가 상업화로만 흐른다는 비판이 대두되게 된다.그렇지만 이 글에서 말하듯이 아마츄어는 매스미디어로 인한 상업화에서 관련성이 줄어든다.그래서 프로와 아마츄어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고 스포츠와 매스미디어는 인간적인 정서를 배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공생하고 발전하여야 한다.4)매스 미디어가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인쇄매체와 전자매체는 미디어에 대한 스포츠의 경제적 의존성 때문에 각기 다른 정도로 일정하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는 방송 프로그램의 보다 비중있는 부분이 되었으며, 케이블 TV의 등장과 일간신문의 보도량의 증가로 미디어는 스포츠에의 의존이 증가하게 되었다. Lever와 Wheeler의 연구에 따르면 1900년에서 1975년까지 스포츠 보도량이 9%에서 17%롤 증가하였다고 한다. 지역, 국가, 국제적 뉴스와 비교하여 스포츠 뉴스는 14%에서 52%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몇몇 유럽국가들은 매일 신문에 스포츠 지면을 배정하고 있으며 북미의 케이블 TV 방송망은 시청자의 독점을 확보하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디어의 스포츠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스포츠에 대하여 많은 부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TV 주도 이전에 규칙, 구조, 그리고 시간계획의 변화는 스포츠 개선이나 게임의 참여 증가로 언급된다. 그러나 TV 부상에 따른 변화는 시청자를 유입하거나 방송에서 더많은 수익을 생산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Kaempfer와 Pacey의 연구에서는 1978년 대학 축구 방송이 40% 증가한 반면, 그에 따른 관중은 2.6% 감소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TV 방송의 증가가 관중을 안방의 시청자로 유입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McPherson이 제시한 미디어에 의한 스포츠의 영향에 관한 몇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축구, 하키, 농구경기의 동점 경기에서 크게 반영하고 있으며, 스포츠 상품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스포츠 상품이나 스포츠 문화의 발전에는 스포츠를 널리 산재해 있는 대중들에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달시켜줄 수 있는 스포츠 매체의 영향이 크다. 스포츠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달수용되고 있음은 여러 선행연구에서 발견되고 있다.Shecter에 따르면, 미디어는 스포츠 현장에서 간과하기 쉬운 이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재현(replay)시켜줄 수 있으며, 스포츠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재생시켜주고, 경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통계적으로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고 하였다. Voigt는 관람유형의 분류에서 직접관람에 따른 경험과 신문이나 잡지에 의한 경험, 그리고 TV, 라디오를 통한 경험 등을 제시하였다.스포츠 인쇄매체는 스포츠 팬들에게 개인적으로 직선적인 이미지를 통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며, 아나운서에 의해서 전달되는 라디오는 청취자에게 친숙하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청자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데 높은 오락성을 제공함으로써 스포츠에 대한 갈증을 유발시켜 다른 스포츠 미디어의 수용 욕구를 초래, 결국 신문, 잡지 등의 구매욕을 촉진시켜준다고 한다. TV는 여타 매체에 비해 종합적인 기술을 통해 메시지를 제공하므로 경기장면을 보다 현장감있게 다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행동의 전달이 용이하므로 스포츠를 관람하는 스포츠 팬들은 전문해설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또한 현대의 방송매체의 양상은 인기 프로스포츠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아마추어 스포츠가 상대적으로 빈축하게 되었다.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점유도가 증가함에 따라서 매스 미디어는 스포츠를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용하여 임의로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역작용을 조장하지만, 특정 스포츠의 보급과 스포츠 참여 인구의 증대,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 고조 등과 같은 측면에서 유익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5)매스미디어가 검도에 미치는 영향1990년 초부터 생활체육의 급격한 확산과 대중매체의 영향에 힘입어 검도는 생활체육의 한 종목으로서 대중들.
나는 24세, 대학생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로 썬키스트 쥬스와 슬라이스 햄, 치즈를 바른 빵을 즐겨 먹는다. 필립스 면도기로 면도를 하며, 손에는 스와치 시계를 차고, 폴로 티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나이키 신발에 라이프 가드 가방을 매고, 집 앞을 나선다. 물론 이동하는 동안 귀에는 소니 CD플레이어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매이션 주제가나 최신 유행팝송이 흘러나온다. 내가 이번에 읽었던 '21세기 우리 문화'란 책에 나온 서울의 주인공과 똑같이 외제로 둘러싼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내가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국산품 애용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가의 외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는 '매국노'와 비슷한 취급을 받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국산품을 사용하는지를 선생님께서 수시로 검사하셨고, 일본에서 아버지께서 사 오신 필통을 무심코 쓰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그 필통으로 선생님께 한 대 얻어맞은 가슴아픈 기억도 있다.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됨에 따라, 점점 우리 사회에는 글로벌 시대라고 하는 강대국의 헤게모니가 숨어 들어간 '세계화 시대'라는 멋진 슬로건이 우리의 문화 뿐 아니라 정신을 완전히 파고들게 되면서, 내가 가끔 외제를 쓰면서 느껴왔던 약간의 부끄러움마저 이제는 자랑스러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히려 순수 국산이라고 하는 프로스펙스는 촌스러움으로 느껴지고,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렌지족'이 아닌 '멋진 놈들'이며 나도 돈만 생기면 저 외제 스포츠카를 꼭 살 것이라는 결심을 하는 등, 내 자신의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길가다 공연을 하는 장구, 징, 북 등의 신명나는 소리는 무조건 '시끄러운 소리'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인상이 써지기 일쑤이고, 그런 것이 즐겁고 신난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외국인들이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오히려 내 눈에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에 내가 음악회를 갔을 때, 교향악단의 멋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조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교양 없는 사람들로 내 눈에 비쳐진다. 물론 나도 가끔은 무척 졸릴 때가 있지만, 조용한 가야금 소리에 조는 사람은 당연할 지라도 고급 클래식을 듣는데 조는 것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교양 없는 사람으로 비쳐질까봐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참고 견딘다.이렇게 나의 인식이 '서양식(미국식)=선진 문화·세련된 문화, 우리 나라식=구닥다리 문화·촌스러운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것은 나의 잘못만은 아니며, 또한 나만의 문제는 아닌 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 문제라고 생각한다.우리 나라 역사를 훑어보면, 우리 나라는 수많은 외적들의 침입을 받았고, 그 침입을 통해 많은 외국 문화가 우리의 삶 속에 투입이 되어왔다. 물론 외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많은 조상들이 피를 흘려야 했으며, 또한 조상들의 이런 희생도 헛되이 외적들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침범 당해버린 사례가 상당히 많다. 가깝게 일제 시대에만 해도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투사들이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만 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지금은 물론 '대한민국은 자주 독립국이며...주권을 가진다.'라는 헌법에 수록되어있는 것처럼 우리는 외국의 침입을 받지 않고 우리의 고유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명실상부하게 독립국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정신은 이미 서양에게 쇠뇌 당해 버렸다. '서양은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도 앞서나가는 데 반해 아직 동양은 기술도 덜 발전하고 문화도 서양에 비해 뒤쳐져 있으며, 아프리카는 아주 미개한 야만인이다. 따라서 서양의 앞선 문화를 가능한 한 빨리 동양이나 아프리카로 널리 전파시켜서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야 한다'는 '종속이론'에 기초한 수많은 서양의 학자들이 쓴 책을 읽거나 또는 그들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것은 서양의 것보다 미개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솔직히 나부터도 길을 지나가다가 금발머리에 코가 크고 눈이 파란 미국인을 보면 괜히 움츠러드는 반면, 키 작은 동남아인들이나, 이와 눈만 빼고 모두 까만 아프리카 인들을 보게 되면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들을 '미개인'처럼 쳐다보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서양의 노예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퍼뜩 깨닫게 된다.우리의 것이 더 미개하고 서양의 것이 더 우수하다는 것은 정말 제국주의적 시대 발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가들이 그렇고 우리의 선생님들이 그렇고, 우리의 지식인층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순진한 시민이나 학생·어린이들 또한 정말 서양이 우수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하는 광고문구처럼 우리의 것만을 고집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생각하다보면 '우리가 일제 치하를 겪어야만 했던 것은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야. 그때 쇄국 정책을 썼더라면 우리가 일제의 침입을 받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쇄국정책만으로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바램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방식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열강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현대 우리사회는 이제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갈 수는 없는 '국제화 시대'가 되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일본 문화 개방 결사 반대'또는 '외국 문화는 우리의 정신을 좀먹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다시 우리의 것으로 회귀하자.'라는 맹목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의 것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것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우리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시키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전통 문화'라고 하는 것은 꼭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고유문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우리의 전통 문화적 사상이라고 하는 '유교사상'이나 '불교사상' 모두 우리 조상으로부터 나온 사상은 아니다. 이것들이 전통사상으로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시대는 이렇다할 '토착화'되어 우리의 정신을 하나로 통일 시켜줄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섞여서 '우리 나라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포장되어 어떤 것도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실로 현대는 '문화 정체성'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중·고등학교 시절의 우리의 우상이었던 서태지가 '하여가'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다. 태평소라는 음악책에서만 구경할 수 있었던 우리 악기와 풍물을 서양의 음악과 접목시킨 새로운 시도였다. 또한 한복은 불편하고 실용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탈바꿈하기 위해 나온 생활한복도 그 동안의 나의 우리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한 몫 하였다. 물론 이런 '퓨전' 현상이 상업적인 요소에 의해 나온 새로운 상업전략일 수도 있고 자칫하면 이 역시 이도 저도 아닌 짬뽕문화로만 취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나마 우리의 것을 대중에게 조금씩 인식시켜 우리의 것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 실용성에서 뒤쳐진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하는 것조차 이미 '서구화'에 완전히 쇠뇌당해버린 우리의 정신을 조금씩이나마 회복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우리가 현재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정체'하도록 한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의 책임이며, 모든 국민의 의식전환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개혁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학연·지연 문화를 탈바꿈하기 위해서 지식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사회에서 유명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다.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 밖의 '뜨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는 유명 대학 교수 밑의 제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유명한 교수 밑에서 레슨을 받기 위해서는 거액의 레슨비를 지불해야만 하며, 실력이 있더라도 그 든든한 'Back Ground'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이다.또한 우리의 전통 무예라고 자랑할 수 있는 태권도조차도 학연·연고주의에 물들어 그 문화 자체에 커다란 이미지 손상을 가하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 주체로 국기원에서 열린 대회에서 2001년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4.16∼19)의 심판 구성과 판정에 문제점이 있어 경기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태권도협회, 심판 구성 및 판정 문제시인- 동아일보 2001/04/24(화)이렇듯 우리 나라의 문화를 대외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앞장 서야할 지식인들이 자신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오히려 우리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끔 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앞서 우리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도록 여러 방면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제자백가 諸子百家주(周)가 동으로 천도한 후부터는 종주권(宗主權)이 쇠약해짐에 따라 제후들이 방자하게 되어 약육강식이 잇달아 일어남에 중국 천하는 소란하게 되었다.이시기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또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 부르며, 중국사상의 개화 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사기(史記)』에 의하면 제자백가를 음양가(陰陽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의 6가지로 분류하고, 『漢書藝文志』에 의하면, 6가 이외에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시부가(詩賦家), 병가(兵家), 수술가(數術家). 방기가(方技家)의 8가를 추가하고 있다. 그런데 제자백가들은 모두 이위기를 구출하려는 의도와 목적아래서 일어난 것이며, 철학사상에 특히 기여한 것은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등이다.유가 儒家유가는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말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걸쳐서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의 한 학파에 불과하였으나, 한왕조(漢王朝)의 권력의 안정과 함께 그 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 중시되어 중국(中國)의 정치사상 중에서 정통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리하여 중국에 왕조 정치체제가 존속한 2천년 동안 유학은 국가의 질서를 뒷받침하는 교학(敎學=儒敎)으로서 종통사상의 지위를 계속 점거(占據)하였던 것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에 유학은 각 시대의 정치 상황이나 다른 사상관계에 대응하여 그 내용을 변화, 전개하고 있다. 「유(儒)」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유약(柔弱)」을 의미한다든가 「수(須)=턱수염,에 통하여 老人」을 의미한다든가의 말이 있어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묵가(墨家)나 법가(法家)와 같은 타학파들이 이하 서술하는 것 같은 성격의 학파를 가리켜서 붙인 명칭인 듯 하다.유가 사상의 특질을 요약하면 공자의 仁은 인간심정에 고유한 자애의 마음을 확충하는 것 , 즉 극기복례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룬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인이란 사람을 고유하므로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 드러난다 하여 선천적 良知良能設을 주장하였다.전국시대말의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맹자와 순자는 도덕 뿐만 아니라 경세사상을 부르짖음으로써 왕도 정치에 있어 인민의 경제적 생활기반을 마련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또한, 유가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學, 환언하면「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학문이며, 그것에 향한 실천이라고 도 할 수 있다. 「자기 (己)를 修한다」함은 개개인에 있어서의 도덕을 신뢰하여 그것을 정직하게 신장(伸長)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孟子의 性善說은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그러므로 유가에 있어 자기의 도덕성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君子라 하여 존중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인이라 하여 배척된다.「德」 의 양성을 위해서 유사는 「배우는」일과 「아는 」일을 중시한다. 그 학습 대상은 궁정(宮廷)같은데 보존돼있는 옛 예악의 관례나 故事를 전한 『시경(詩 )』, 『서경(書 )』 등의 고전이다. 그것들의 전통을 배움으로써 그 형식에 포함된 古人의 정신을 획득하려 한다. 따라서 유가는 전통에 대하여 급격한 파괴를 시도하지 않는다.전통적 형식을 보수(保守)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가해 나가려고 한다.그 점은 「천(天)」이나 「鬼神」(死後의 靈魂)에 대한 태도에도 一貫되어 있다.인간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人力을 초월한 「천의 위력」이나 「鬼神」의 재앙 등은 무시해야 할 것이나 유가는 전대 이래의 그것들에 대한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天은 역시 운명을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요, 귀신은 공경하여 멀리 해야 하는 것으로 그친다.그렇지만 유가의 이상은 이러나 「나를 닦는다」는 일만으로는 안 된다.『大學』에 있는 것과 같이 「몸을 닦는 일(修身)」로부터 시작하여 「집을 가지런히(齊家)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천하를 평(平)하게 하는 데(平天下)」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경「사람을 다스리는」일이 학문 쓴다. 따라서 「교화의 학」으로서의 유교는 결코 개인의 정신적 구제를 목적으로 삼는 종교와는 다르다. 사람다스리는 것을 구극(究極)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자계급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정치에 대해서는 용감하게 비판을 가하는 일도 있으며 신구왕조의 교체를 혁명(革命)이론에 의하여 정당화하는 역할도 과감히 한다.이상과 같은 성격을 갖는 유가사상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전국시대에 있어서는 당연히 타학파의 맹렬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예컨대 혈연관계를 중시하고 예악 등의 의례를 존중하는 학설은 겸애(兼愛)와 상현(尙賢), 비악(非樂), 절장(節葬) 등을 주장하는 묵가에 의하여 비판되고 인간의 도덕성에의 신뢰에 기초를 두는 학설은 군주권력의 일원적 강화를 지향하는 법가에 의하여 배격되었다. 또 치자의 일원이 되어 이상적 정치 실현에 광분하는 태도는 인위적인 노력의 한계나 허무함을 깨달은 도가로부터 조소를 받았다.유가사상은 또한 타학파의 비판 공격에 견디기 위하여 타학파의 학설을 장치를 섭취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전국말의 순자는 법가나 도가의 이론을 교묘하게 유가의 체계속에 받아들였으며, 한 대의 동중서는 음양오행설이 나 천인상관설을 대폭적으로 채택하여 시대의 요청에 순응하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유가의 경전으로는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예기(禮記) 』,『춘추(春秋)』의 5경이 있다.도가 道家도가는 일명「황로학(黃老學)」「노장학(老莊學)」이라고 한다.도가의 시조 老子는 무위(無爲)자연(自然)을 주장함으로써 유가의 예악(禮樂) 형정(刑政) 형식주의를 반대하고 영아( 兒)의 천진으로 복귀하여 무위자연의 사회를 이룰 것을 주장했다. 노자의 이른바 도덕은 보통 말하는 도덕이 아니고, 유가의 이른바 인의(仁義)란 도덕의 상위에 있는 것으로서의 도(道)를 말하는 것이다.따라서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形而上學)적 본체임과 동시에 인성론(人性論)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다음 전국시대에 莊子가 나와 도가철학의 인식론적 이론의 사상은 인간에게 분수를 지켜 체념으로 일관할 것을 가르쳐, 정치의 어지러움에 대해서는 은둔자(隱遁者)의 생활을 하면서. 일견(一見) 소극적인 태도에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을 가르쳐 절대적인 가치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현상세계의 어쩔 수 없는 모순이나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버리는 지혜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사상은 후대에 있어서 문학자에게 많이 애호되었다. 예컨대 도연명(陶淵明)-서기365~427년-의 시에 보이듯이 훌륭한 인생의 지혜를 말하는 문학작품을 낳았다.장자는 제물론(諸物論)과 양생주론(養生主論), 소요유론(逍遙遊論)이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생(生)하므로 만물은 나와 일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체의 이(理)에 어둡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만물을 차별하여 시비를 벌이고 있다. 그것은 천지만물의 전체를 버리지 않고 한 국부(局部)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한 가지여서, 죽는 것은 다만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의 현상은 한편으로는 가한 것이 있으면 한편으로 불가한 것이 존재한다.제물론에서는 어느 날 장주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나비가 된다. 그 때에 장주가 나비로 된 것인지 나비가 장주로 된 것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었으나 참으로 유유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 말을 하여 제물의 경지를 설명하였다.묵가 墨家묵가는 묵자(墨子)-기원전 5세기 전반-를 시조로 겸애(兼愛)를 주장하여 유가의 형식주의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천(天)이 만민을 겸애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도 서로 겸애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리사욕을 타파할 것을 역설하였으며, 절검(節儉)과 근로(勤勞)를 내세웠다.묵가는 천귀(天貴)-하느님-사상을 신념으로 하는 종교이며, 또 3표(三表)논리로써 경험을 중시하는 실증주의(實證主義)의 입장을 취한다. 이 경향은 후세 별묵(別墨)이라 불리우며, 논리학파와 사공파(事功派)로 분파되었고, 사공파는 다시 전도파, 실행파 및 기타로 나누어졌다. 실행파는 묵자의 역행주의(力行主義)를 이어 허행(許行), 진하였다. (節葬論). 유가가 인간의 도덕적 실천(실천)을 중히 여기면서도 오히려 인력으로는 어떻게 하기 어려운 천도나 천명을 인정하는 데 반하여, 묵가는 일체 명(命)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非命論), 인간의 행위의 선악은 모두 귀신에게 감시 받으며, 귀신은 정확하게 그에 대응하여 상벌을 내린다고 한다. (冥鬼論) 유가가 개개인의 도덕적 자각을 인정하는데 반하여, 묵가는 하위자(下位者)는 상위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며(尙同論), 인간 중의 최상위인 천자도 천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天志論)법가 法家관자(管子)를 시조로 신불해(申不害), 상앙(商 )을 거쳐 한비자(韓非子)-기원전 280~233년경- 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법가는 정치철학과 그 실천으로써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어 천하통일을 도모하려는 학파다. 관자는 공리(功利)와 법치(法治)를 겸한 사상가이며 또, 실행가였다. 신불해는 패도의 술에 밝고, 상앙은 패도의 법에 뛰어났으며, 이 술과 법은 한비자에 이르러 종합되어져 형명법술(刑名法術)의 학으로 완성되었다.한비자의 학은 유, 도, 법의 종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봉건제에서 군현제로 이행하고 있었던 전국시대에, 씨족제적 봉건국가의 유지를 목적으로 유가의 덕치 사상에 반대하고 새로운 법치사상에 의하여 중앙집권국가를 만들려고 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들은 사상가로서 학파를 형성하였다기보다 실제 정치가로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문헌상으로 그 자취를 살핀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전국 시대때 처음으로 법치를 주장한 사람은 이회, 오기, 신불해, 상앙 등이 있다. 그들은 법가의 선구자들이다.이들 사상을 집대성한 사람이 전국말기에 나타난 韓非였다. 그는 법 권술 권세를 중시하여 중심에 법을 두고 권술과 권세를 유기적으로 결부시켰다. 신불해의 권술에 대한 생각, 상앙의 法에 대한 생각, 신도의 권세에 대한 생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법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는 원래 유가의 순자에게 사사하여 그 예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한비의 생각은 중앙집권을 도모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