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물을 산출물로 변환시키는데 필요한 지식, 설비, 기법, 활동 등 “기계적”이고 “제조”라는 의미를 내포.모든 형태의 조직에 적용<중 략>기술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전략의 선택과 특정한 조직배열의 불확실성 감소를 촉진시킬 수 있음을 증명 조직단위가 수행하는 일에 의하여 차별화 되는 세가지 타입 제시<중 략>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의 요구:중개형(낮은수준)->연속형(중간수준)->집약형(높은수준)으로 증가.중개형기술 = 낮은 복잡성과 높은 형식화.법칙과 절차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조화됨.연속형기술 = 중간 복잡성과 형식화.계획과 스케쥴링이 뒤따름.집약형기술 = 높은 복잡성과 낮은 형식화 상호조정을 필요로 함<중 략>작업단위수준의 연구가 조직수준에 비해 기술–구조의 관련성이 더 높음1) 작업단위수준 연구 : 더 작은 개념, 기술의 통합개념을 가짐, 동일성이 더 큼2) 규모가 클수록 기술이 작용할 역할은 작아진다예>7.3피트 1명, 6.8피트 2명, 6.2피트 2명 VS 6.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하얀색 바탕의 파란색으로 쓰여 있는 “칭찬”이란 글씨가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물위를 뛰어 오르고 있는 고래의 모습이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책을 읽어보니 “겅호”라는 책을 쓴 켄 블랜차드가 함께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전체적 분위기와 내용이 아주 흡사했다.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타인을 칭찬할까? 이 질문을 던지는 나부터 쭈뼛대기 시작한다. 외국에 비해 감정표현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회?문화적 분위기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것은 너무 소극적인 회피 방법이다. 그렇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칭찬에 너무나도 인색한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칭찬을 하지도 않고, 고로 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얼마 전에 한 TV 방송사에서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릴레이 형식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행을 베푼 사람들을 칭찬하고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꽤 유명했었다. 그 덕분에 캠페인처럼 서로 칭찬을 하자고 술렁거렸고 초?중?고 선생님들은 너도나도 학생들에게 프로그램과 비슷한 숙제들을 내기 시작했었다. 그러했던 ‘칭찬열풍’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사그러듬과 함께 어느새 푹 가라앉아 버렸다. 칭찬이 몸에 배어 생활화가 되지 않은 이상 우리는 늘 칭찬을 소리 내어 말하고 강조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새인가 잊고 지낸 칭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스윽 끄집어냈으니 말이다.이 책에서는 칭찬의 위력을 보여준다. 씨월드의 인기 스타 범고래 샴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칭찬의 위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씨월드의 조련사들은 끊임없는 관심과 칭찬으로 식인 범고래들을 멋지게 훈련시킨다. 그들은 모든 관계의 시작은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조를 주장하는데, 어떤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수록 그 행동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한 일에 관심을 가져주면 올바른 행동을 많이 하게 된다. 또 재전환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거나 혹은 기억에 남도록 강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범고래 조련사들은 '무시하라'고 말한다. 범고래가 훈련 중에 잘못을 하거나, 쇼에서 실수를 할 경우 그들은 못 본 척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 대신 다른 부분에 관심을 유도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 가는 과정도, 충분히 칭찬 받을 가치가 있다.책에서 말하는 3가지의 방법들은 신선하고 탁월하였다. 부하직원이 실수를 했을 때 강하게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돌리며 실수한 부분을 올바르게 잡아주고 자신이 부하직원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말해주며 격려하는 상사의 모습은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뒤통수치기 반응'을 보여주며 이것을 배격하고 있는데 '뒤통수치기 반응'이란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만 보다가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행동을 말한다. 나는 주변에서 ‘고래반응’을 쓰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뒤통수치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심지어 집에서 조차도 ‘뒤통수치기 반응’만이 허다할 뿐이다.책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칭찬을 말하고 있다. 어쭙잖은 칭찬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심어린 칭찬을 말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스쳐가는 작은 칭찬에도 기쁘기 마련인데, 제대로 된 칭찬을 받았을 때는 어떠하겠는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틀려질 것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얼굴부터 틀려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동기 부여에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금전적인 보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은 기간이 다소 오래 소요되고 공정성 여부가 늘 시비에 휩싸이게 된다. 연봉제, 이익분배제, 인센티브제 등의 다양한 금전적 보상 제도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비금전적인 보상, 비공식적인 보상의 중요성과 효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고서-세븐일레븐의 IT 전략적활용-==목차==Ⅰ. 머리말Ⅱ. 본론1 . 회사의 개요2 . 7-11J의 정보화전략 배경2.1 산업구조적 배경(1) 주요제품(2) 수요구조(고객)(3) 유통구조(4) 경쟁상황2.2 기업 내부적 배경(1) 기업의 특성, 성장배경, 강점 및 약점(2) 환경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 최고경영층의 의지3 . 정보화의 진화과정3.1 수작업 및 슬립오더방식3.2 터미널 세븐 시스템3.3 종합점포시스템4 . 종합점포정보시스템의 전략적 효과4.1 기업내부적 변화4.2 기업 외부의 Entity들의 변화5 . 경쟁사의 대응과 결과6 . 시스템개발 및 운영과정상의 제문제7 . 추후의 발전과정 또는 전망Ⅲ . 맺음말8 . 경영전략=정보화전략일본 세븐 일레븐(7-11J)은 미국 사우스랜드사의 편의점이 일본 이또요카사와 제휴하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7-11은 독립된 사업주로서의 본부와 가맹점이 프랜차이즈 체인의 형태로 운영된다. 즉, 본부는 세븐 일레븐의 경영비결을 상품으로서 가맹점에 제공하고 가맹점은 여기에 대해서 가맹료나 보증금, 로열티를 지불하는 관계로 성립되는 것이다.이 7-11J이 미국 사우스랜드사와 제휴하여 그들의 노하우를 사들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그 노하우를 자신들의 풍토에 맞게 일본식으로 다시 해석하여 이용하였다. 이로 인해 고객이 증가하게 되었고, 가맹점의 수도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정보시스템의 도입이 필연적으로 대두되었다. 컴퓨터를 베이스로 한 온라인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점포의 이익상태나 상품의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POS와 EOS를 이용하여 고객층의 변화상황이나 고객층마다의 고객구매단가 등을 자료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7-11J은 소프트업이고 노하우업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부단한 혁신을 통하여 가맹점과 도매점, 제조업체 본부를 연결하는 시스템 개발이 처음부터 필수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7-11J은 종합점포정보시스템을 통하여 물류비용을 감소시키고 기존의 소매상들을 가맹점으로 유입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의 요구에 즉각 고객들이 많아진 것은 삶 속의 편리함을 찾는 욕구충족에 응답하려고 노력한 결과 신선함과 현대성이 살아나게 되고 이것이 젊은 사람들의 독자적인 시대감각, 생활감각과 조화를 이루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3) 유통구조7-11J가 1호점을 낼 당시 구색은 3천여종이었는데 3천종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려 108개의 제조업체와 도매상과 거래를 터야만 했다. 더욱이 편의점 한 점포에 대한 한 품목당 납품수량은 대단히 적을 뿐 아니라 소규모 영세매점의 태반은 재고를 쌓아 둘 만한 공간이 없었다. 또한 영세하기 때문에 종업원을 둘 수가 없고 따라서 영업시간을 길게 늘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교통정체가 극심한 환경에서는 위와 같은 다품종 소량배송을 소규모 식품소매점이 많은 거래선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은 엄청난 물류비용을 가져온다. 즉, 종래의 영세소매점이 손님이 찾는 것을 대충 다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품목수는 고작 600~700종이 한계이고 이만한 구색을 갖추려면 80개 회사와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도매상에서 실어다 주는 상품을 정리, 전시하는 것이라면 거래선 수가 적어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늘의 소비자들이 찾고 있는 ‘팔리는 아이템’을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채롭게 구색하여 자주성이나 주체성을 드러내자면 600~700종은 너무 적은 숫자라고 생각되어졌다.일본의 상품거래구조는 7-11J가 1호점을 내기까지만 해도 주류판매점, 과자점, 건어물점 등 소매업체에 대한 상품공급을 원할히 하기에 편리하게끔 짜여진 형태로 10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상태였다.제조업체 A제조업체 B제조업체 C7-11 본부가맹점 A가맹점 B가맹점 C(4) 경쟁상황처음의 경쟁대상은 슈퍼마켓, 백화점, 그리고 식품전문업체였다. 특히, 슈퍼마켓은 매장면적이 10배 이상 크고 취급품목수도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영업시간이나 취급품목의 편의성 등에서 차별화를 실시한 결과 경쟁상대는 미니슈퍼마켓에서 식품전문업체로 옮겨가게 되었다. 식품전문업체는 특정 식품에 대한 여러 가지의 노하우를 가지고 최대 경쟁상대는 소비자의 욕구변화이다”라고 생각하고 점포들의 소득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며, 적어도 유지는 시켜야 한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소규모 영세점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신념은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노하우의 개발,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이어졌다.프렌차이즈 체인으로 7-11 편의점을 전개한다는 방침이 정해진 이상, 가맹자의 재산과 생활이 걸려 있는 만큼 경영진들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가장 중요시하며, 납품업자들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게 되었다. 효율적이며 밀도 높은 상품의 배송서비스가 따르지 못하면 점포의 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식품의 청결함과 신선도에 엄격한 기준이 주어졌다. 즉, 납품규격이나 납품조건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납품업자들을 상대했고 따라서 그들의 반발과 거부도 생겨났다. 그리고 7-11J는 생산자의 일방적인 제품개발과 그것을 팔기 위한 유통지배나 시장 조작을 배제하고 시장의 요구에 기초하여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었다. 소매업이 단순히 제조업체 제품의 판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생산으로 연결시키고, 어떤 경우에는 생산 유통을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아는 것’을 기초로 판매력을 강화시키고 계획화된 발주력을 이용하여 납품업자의 조직화나 상품의 구입기획, 개발 등에 있어서의 생산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점포를 설치할 때에는 밀집출점전략을 취해서 상품배송의 효율화와 광고비용절감, 점포에 대한 본부의 카운슬러 방문의 효율화, 그리고 이미지 메이킹을 꾀한다는 것이다.3. 정보화의 진화과정3.1 수작업 및 슬립오더방식상품발주에 대해서 7-11J는 처음에는 도매점의 이름과 그 취급상품이 적힌 발주대장을 가맹점에게 주고, 가맹점이 발주할 때에는 메모에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써넣어, 그것을 기초로 개개 도매점에 전화로 주문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포가 100개를 넘게 되면 어떤 도매점의 경우 아침에 수십 점포에서 일제히 전화가 걸려, 품절을 방지하고, 재고품을 되도록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매상 및 이익을 올리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이와 같이 전산화되고 있을지라도 정보는 오직 사용자의 지식 및 경험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7-11J의 직원이 전체 점포를 지도하게 된다.가맹점으로 피드백되는 정보로는 11개 정도가 있는데, 이러한 정보에는 상품의 일별 매점시각 일람표, 정보분류별?시간대별 매상분석표, 시간대별?고객층별 판매실적료, 정보분류별 단품분석, 정보불류별 일람표, 상품폐기 분석정보, 정보분류별 10주간 추이, 단품별 10주간 추이, 일별?시간대별 단품정보, 잡지판매정보, 실적변경업무 등에 대한 정보로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정확한 판매량을 산출해 낼 수 있고, 이 산출된 예상판매량에 맞추어 물품을 공급해 나감에 따라 판매량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EOB의 경우는 전자발주대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발주전용기로서가 아니라 사무실에 있는 TC(터미널 컨트롤러)에 접속되고 있으며 이 TC를 매개로 하여 본부의 컴퓨터에 직접연결(온라인)되고 있다. 발주방법은 우선 EOB의 상부화면에 나오는 ‘발주사이클을 넣어라’라고 하는 지시에 따라서 발주사이클을 입력하고, 다음에 ‘그룹번호를 넣어라’ 라는 지시에 따라 그룹번호를 입력하게 된다. 그러면 상품명이 나오게 되는데 이때 EOB를 TC에서 분리시키고 매장으로 가서 차례차례 발주테이터의 입력을 하는 것이다.화면에는 상품명. 추장매가, 납품기한과 판매기한, 저이익율, 편수의 구별, 최저재고량, 발주단위, 최저발주량, 랭크, 납품요일, 발주 수량입력난 등의 항목과 이 밖에 지난주의 판매실적 및 판매신장률도 나온다. 이 발주 데이터는 앞에서 소개한 TC를 매개로 하여 본부에 온라인으로 보내진다. 이러한 데이터를 받은 본부에서는 도매업자에 대한 출하지시서, 배송센터로의 수령지시서, 그리고 점포별, 상품별로 배송순위의 구분전표를 작성한다. 이 밖에도 물품에 따라서는 바코드를 인쇄한 발주대장을 스캐너로 입력비스)은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장치로 목록판매, 서비스사업, 정보사업 등 새로운 사업기회를 열어주는 하부구조이다. GOT, 스캐너터미널, 제 3세대 POS단말기 도입을 비롯한 제 3차 종합점포정보시스템은 이 ISDN에 의해 비로소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우선 점포와 본사 사이의 정보교환을 위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한층 긴밀해졌고, 7-11J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 일류브랜드와 우량상품의 목록판매와 같은 국제적인 사업도 이 강력한 시스템의 구축에 의해 한층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ISDN-based 시스템은 현행 네트워크보다 30배나 빠른 회전속도를 지니며 실시간 온라인의 접속시간은 30초에서 2초로 대폭 단축되었다. 또한 데이터 전송속도는 초당 150자에서 4,000자로 증대되었다.4. 종합점포정보시스템의 전략적 효과4.1 기업내부적 변화7-11J의 종합점포정보시스템은 컴퓨터를 베이스로 한 온라인 실시간(Real Time)시스템으로 본부에서 각 점포, 지구사무소, 지역의 그리고 다시 전체의 영업실태와 매상속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동시에 전년도 동월 동일과의 대비나 전월의 동일비교가 이루어진다. 점포의 이익상태나 상품의 동향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점포나 상품에 문제가 있으면 영업사원(Field Counseller)이 각 점포와 접촉하여 문제점을 파악한다. 이를 위한 조직체계도 다음과 같이 짜여 있다.본부에서는 각 점포가 시스템을 이용한 경영활동을 잘 하는지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해서 본부는 여러 가지 지원활동도 벌이고 있다. 필드카운셀러(FC)는 평균 7개의 점포를 담당하고 있고 그 위에 지구책임자(District Manager: DM), 지역책임자(Zone Manager: ZM)등이 있어서 매주 1회 본부로 모여 점포운영상 해결해야 할 구체적 과제나 본부에 대한 건의도 한다. 본부는 이들에게 시스템의 변경설명이나 장기적인 판매촉진계획, 새로운 상품도입에 관한.
우리는 시민으로서 시민사회를 형성하여 살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가 형성되기까지는 서구사회,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사회에서 시대의 변화를 가져오게한 시민들의 혁명이 있었다. 그들의 혁명정신으로 인하여 우리는 시민사회 형성을 촉진시킬수 있었으며, 시민문화를 이룩해 나아갈 수 있었다.앞으로 시민사회의 특징과 시민혁명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혁명이었던 5. 18을 고찰해 봄으로써 시민혁명에 대한 의의를 살표보도록 하자.1. 시민과 시민혁명16∼18세기 간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국가가 절대주의체제의 왕정하에서 이른바 절대왕정이 수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왕정하에서 귀족들은 관료로서 또는 군의 상층부에서 지배권을 행사하였고, 이들과 결탁된 지주와 특권상의 계층은 면세와 특권으로 상류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이러한 절대주의 체제를 해체로 이끈 것은 시민층의 대두였다. 이러한 시민들은 12, 3세기에 들어오면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중세적인 신 중심의 사고방식이 세속적인 물질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현세적방향인 현실긍정의 사고방식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이러한 사고방식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의 의식구조를 변형시켰고, 지리상의 발견으로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면서 지금까지 종교적 사고방식에 의존했던 중세적 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식구조의 변형은 비판정신을 낳게 하고, 과학에 대한 신망이 싹터 종교에 의존한 종래의 생활태도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였다.그리하여 인간은 자유정신을 갖게 되고, 군주의 절대권에 대한 도전과 특권계층에 대한 불만으로 사회개조를 요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무엇보다 상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그들의 물질적 향상은 신분적인 변화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징조는 당시 유럽 각지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이들은 경제적 실력이 증대함에 따라 당시까지 허용되지 않던 정치참여를 강력히 요구하고, 또한 자기들이 정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까지의 지배자층인 왕, 귀족 등의 특권신분과, 왕권른 특수성도 가지도 있다. 영국혁명은 종교문제와 의회의 권리문제가 표면에 나타나 있고, 미국혁명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독립혁명의 성격을 지녔으며, 프랑스 혁명은 왕권과 귀족세력에 대한 반항이 강하였고 동시에 외국과의 전쟁과 결부되어 있었으므로, 과격성을 띠고 있다.시민문화는 시민혁명에 의해 이룩된 것으로 역사적 전화기에 일어나 일종의 부르죠아 혁명으로 자본가 계급이 일으킨 혁명이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지배계급인 봉건세력에 대해 피지배계급인 자본가가 일으킨 혁명이다.이러한 혁명에 의해 경제체제상 봉건제도를 타도하고 자본주의의 길을 텄으며 사회생산력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시민혁명은 민주주의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왕정을 폐지하고 의회주의를 확립함에 있어 주권재민의 원칙을 밝혔다는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그리고 시민중심의 국가체제를 확립함에 있어서 시민이 국가의 주인공이 된 근대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출현시켰다는 데에 또한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다. 즉 종래의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여 정치, 경제체제의 변혁을 초래하여 자본주의질서를 확립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풍조를 출현시켰다.그리하여 이른바 근대 문명사회를 성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회의 우위권의 확립으로 인간의 기본권이 확립되고 종래의 특권계층이 폐지되었다는데 큰 의의를 찾을수 있다. 그리고 시민혁명은 서양 근세가 낳은 역사적 산물로서 자유주의정신의 발로이기도 하다.그리고 시민혁명은 과거부정을 통한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였고, 국가형태의 변혁을 요구한 정치투쟁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이 정치적으로 실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혁명은 근대화를 지향하는 신시대의 개막으로서 시민세력의 성장으로 산업사회로의 전진하게 되었다.시민혁명에 의해 절대주의체제는 해체되고 시민중심의 정치체제가 확립되고, 종래의 봉건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사회로 변혁됨과 아울러 산업사회로 발전되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빈부의 계층이 나타나 노동문제와 사회주의를 불러 일으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고 랑케(L. V. Ranke)가 역사적 사실이란 '있는 그대로,' '일어난 그대로' 記述하면 얻어진다고 하는 무리하리만큼 소박한 문제인식을 하였는가 하면, 크로체(B. Croce)는 역사적 사실이란 '해석일 뿐'이라고 하는 또 다른 극단적인 문제인식을 제시하기도 하였다는 점을 살펴보면, '사실'의 규명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잘 알 수 있다.5.18이 왜, 어떻게 일어났으며, 한국정치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 역시 관점에 따른 실재의 사회적 구성이라는 조건을 피할 수 없다. 과학이란 파슨스(T. Parsons)의 지적대로 "실재에 대한 인식방향의 선택적 체계"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카아(E. H. Carr)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립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결코 이치에 닿지 않는 오류라고 한다면, 역사가란 불가피하게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5.18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의 해석이 1970년대를 전후하여 좌파적 '자코뱅적 해석'으로부터 우파적 '수정해석'으로 변화하듯이, 역사적 사건의 이해란 연구자와 시대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18이 왜 광주에서 일어났느냐? 신군부의 등장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제약결과로 볼 것이냐 국내의 제 사회세력간의 힘의 불규형관계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이냐, 그리고 5.18을 시민항쟁으로 볼 것이냐 민중항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계급항쟁으로 볼 것이냐 등의 논의를 두고 이미 다양한 견해들이 표명되어 있다. 기존의 입장들을 수정 또는 보완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될수록 5.18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2) 5.18의 원인5.18은 신군부의 권력의지와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의지가 맞부딪힘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의 구속이 자극제가 되긴 하였으나, 이는 김대중 구속 그 자체에 대한 단순 대응 탓이 아니라 김대중 구속이 개시된 충정작전은 전국의 대학가를 군이 통제하고, 여하한 학생시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서울의 봄에 터져나온 학생시위를 빌미로 삼은 것이다.그렇다면 왜 하필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는가? 박현채와 같은 관찰자들은 군이 유독 광주지역에서 대학생들의 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함으로써 항쟁의 과격화를 의도적으로 유도하였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는 진압군의 과잉대응이 시위를 격화시키긴 하였으나, 그와 같은 '음모론'은 대체로 진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ⅰ)신군부는 집권의 최대 걸림돌이 학생시위일 것으로 짐작하여 5월3일부터 충정훈련을 실시하고 있었고ⅱ)5월13일부터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시위가 5.15 서울역 시위로 격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5.17사태를 일으켰으며,ⅲ)유독 광주지역에서 5.17에도 아랑곳없이 학생시위가 지속되었다는 사실등을 연결시켜 보면, 시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충분히 예측된 것이었다. 10.26이후 권력장악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온 신군부는 12.12에서 5.17로 쿠데타의 강도를 높이면서 집권기반을 다져왔다. 권력강화를 위해 삼청교육대와 같은 탈법적인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았던 신군부임을 이해한다면, 만일 대규모 학생시위가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과잉진압'은 발생하였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2광주의 민주화의지오히려 광주사태의 발생원인은 5.17조처에도 아랑곳없이 민주화를 위한 외침을 수그러뜨리지 않았던 광주지역의 대학생들과 시위 초기부터 나타난 진압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사태가 험악하게 진행될수록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거들고 나온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의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신군부의 단호한 집권의지는 서울의 봄이 '5.15서울역 회군'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것과 달리 광주에서 16일 전남대, 조선대, 광주교대 등 광주시내 9개 대학 및 전문대 생들의 횟불시위를 서두로 연일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강력한 진압의지를 보이는 시범적인 곳으로 광 끝난 후 50여명의 교수들이 학생들의 앞장에 서서 함께 금남로를 걷는 민주화 행진이 있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한 민주화행진은 "4.19교수단 데모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양성우, 김남주, 문병란, 송기숙 등을 중심으로 한 민중문화운동 역시 이 지역의 민주화운동에 무시못할 기여를 하였다. '문학의 무기화'를 내건 이들 광주 전남지역 문인들의 활동은 전국적 차원에서 민중문학운동을 벌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모태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광주재야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 등에 민중문화운동을 불러 일으키는 중심축이 되었다. 민중의식의 형상화와 확산에 지식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유신체제하에서도 끈질긴 저항의식을 표출해 온 이 지역의 학생, 기층민중, 그리고 지식계층이 80년 5월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5.15서울역회군이래 전국의 대학들이 잠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광주지역에서 5월 14일 이후 시위가 계속된 것이었다. 16일 횃불시위후 학생들은 헤어지면서 월요일인 19일부터 시위를 재개하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그동안 정부측에 비상계엄 해제와 정치일정단축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시간을 주고, 연일 계속된 시위로 인한 피로도 풀며, 전국의 다른 대학과의 보조를 위해서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휴식기간중이라도 휴교령이 내려진다면 즉각 오전 10시에 전남대 정문 앞에서 모일 것을 약속하였는데, 그러한 약속에 따라 18일 아침 전남대 정문 앞에는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들에 대한 충정부대 진압군들의 과격한 진압이 5.18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일단 양측의 충돌이 시작된 이래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오히려 대학생들과 시민을 자극하여 끈질긴 저항을 야기하였고, 무력진압의 '본떼'를 보이려고 벼르던 신군부에게 이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이었다.시위대와 계엄군의 충돌과정에서 사태를 급속하게 진행시킨 중요한 요인이 김대중구속사건이었다. 광주전남지역민들이 그간 느껴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