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지개혁 연구1. 서론한국 현대정치사에 있어서의 네 차례의 전환기적 계기 중 농지개혁은 한국전쟁, 권위주의적 산업화, 민주화의 첫머리에 있어서 크게는 현대사의 전반에 걸쳐, 작게는 산업화의 실행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정치학회 김유남 편, 『한국정치연구의 쟁점과 과제』 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의 해체 (김일영) (한울아카데미, 2001)해방 직후 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는 토지문제였다.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중 80% 이상이 소작 내지는 자소작농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모든 고통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농민의 빈곤과 고통은 해방과 더불어 토지개혁의 요구로 폭발하였고 토지개혁의 실시는 민족의 당면과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요구와 더불어 토지개혁은 근대사회로의 나아감에 있어서 중세 봉건적 생산관계의 잔재의 근본적 청산 그리고 이것의 해결 없이는 민주주의적 경제재건이라는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해방 초기 좌·우익을 막론한 각 정당·사회단체 중 토지개혁을 언급하지 않는 자가 없는 형편이었다.이 글에서는 해방 후 농지개혁을 미군정 하에서 행해졌던 토지정책과 이승만 정권에서의 농지개혁법안의 개정과 실행이라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서 언급하려 하며 이러한 농지개혁의 성격과 실시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견들을 다뤄보고 이러한 이견들이 나오게된 배경을 통해 실질적으로 농지개혁이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후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에 미친 영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전개에 있어서 농지개혁의 성과의 측면을 봉건적 잔재의 청산이라는 측면과 구체적으로 농민에게 있어서의영향성이라는 부분으로 나누어 농지개혁이 이후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의 영향에 대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2. 해방 후 토지문제의 실상일제하 한국농업은 반(半)봉건적 지주적 토지소유가 지배적이었다. 봉건적 대토지소유와 함께 생산과정의 개인적 성격, 즉 토지가 없거나 지주가 존재하고 남한 전 농가의 약 70%는 토지가 전혀 없거나 이와 근사한 상태인 것이다.1정보 미만의 토지를 경작하는 농가가 전 농가의 68%를 점하고, 특히 0.5정보 미만 경작 농가가 35.5%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한국인 농가의 토지소유만을 고려하면 1정보 미만의 토지를 소유하는 농가가 전 한국인 농가의 무려 80%에 달한다는 사실은 절대다수 한국인 농민이 처한 영세경영의 심각성을 한층 더 뚜렷이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해방 직후 한국에는 일제하 반봉건적·식민지적 토지소유의 연장선상에서 한편으로는 계급으로서의 지주가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 토지가 없거나 토지가 적은 농민이 압도적으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반봉건적 토지소유와 그에 따른 지주층의 가혹한 봉건지대 수취, 영세농 경영의 정체와 몰락에 있어서 농지개혁은 한국의 농민들로 하여금 농지의 소유와 자립적 영농의욕을 고취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국에 있어서의 농지개혁의 필요성은 경제적으로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데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반봉건적·식민지적 토지소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농민적 요구였고, 다른 하나는 자립경제를 이룩하기 위한 국민경제적 요구였다. 하지만 토지개혁문제를 둘러싸고 지주층의 지배를 유지코자하는 세력진영과 끝까지 토지개혁의 실현을 관철하려고 하는 세력진영과의 대항관계는 초기 미군정의 토지개혁 전개과정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논의 없이는 흔히 일컬어지는 해방 직후의 정치 사회적 혼란의 내용과 성격이 정확히 밝혀질 수 없을 것이다.3. 농지개혁의 전개1) 미 군정의 토지개혁1945년 9월 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해외의 임정 이나 국내의 인공 을 과도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직접 군정 을 실시하였다. 미군정의 토지정책은 2단계로 실시되었다. 첫째 단계는 군정법령 제9호 에 입각한 것으로 소작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소작료의 상한만을 제한한 조치인 것이다. 둘째 단계는 전면적인 토지개혁의 요구에 대응한다는 의미와 미국의 대한 정책을 반영하는 것으로 미군정이 농을 지배하였고, 각 집단과 계층들을 정치적 성향의 양 극단(극보수와 급진주의 등)으로 분리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요소였다.{) 박현채, 『경제적 측면에서 본 남북분단의 역사적 경과』 (까치, 1985), p79 재인용미군정은 농민의 열망이 위험 수준에 오른 1947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적극성을 띄게 되는데 그 해 9월 미군정은 농지개혁안 초안을 입법의원 측에 제시한다. 그 내용은 '유상매상·유상분배'를 기초로 한 것이었는데 '유상매상·유상분배'의 내용이 우익정당들이 주장해 온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입법의원에서 심의를 회피하게 되자 미군정은 1948년 3월 23일 군정법령 제173호로 중앙토지행정처의 설치를 공포하고 군정법령 제2호 '적산에 관한 것'에 의해 접수하여 군정법령 제52호에 의해 설립된 신한공사에서 관리하던 귀속농지를 이 법안에 따라 단독으로 분배하였다.분배된 농지는 논 189,518(205,988) 정보·밭 56,036(62,631) 정보 : 합계 245,554(268,619) 정보고 분배받은 농가수는 727,632호로 호당 평균 3단보 정도였다.{) 농림부, 『농림통계연감』(1952)(괄호 속은 분배대상 농지, 나머지는 정부수립 후로 미루어짐) 이것은 1945년 말 현재 총경지 면적의 11.6%, 당시 소작지의 16.7%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신한공사 총소유지 324,464정보의 76%에 해당되는 것이었다.미군정의 이러한 농지개혁은 몇 가지 부분에서 부작용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 첫 번째는 토지개혁 요구를 포함한 정치·사회적 격동에 대응하여 위기에선 반봉건적 지주제를 미군정 자신의 위로부터의 강제적인 개혁에 의해 타협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미군정 토지정책은 기본적으로는 반봉건적 지주에의 본질을 잔존시키면서 점령정책의 협력계층으로서 지주세력을 지지 보호하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미국의 대한정책 의도를 관철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인·한 현물의 형태를 띄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지주방매농지가 싼값으로 살 수 있는 처음의 기회였으며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농지방매 현상은 오히려 농민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된다.2) 농지개혁이승만 정권하의 농지개혁은 크게 농지개혁의 분배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는가 그렇지 않은가와 분배를 통해 봉건적 잔재가 청산되었는가와 그렇지 않은가의 논의로 귀결된다. 여기서는 농지개혁의 분배가 광범위하게 이뤄지지 않았으며 봉건적 잔재 또한 청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가지는 황한성의 글을 기초로 하여 농지개혁의 주체와 내용, 결과의 측면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반론의 글을 통해 한국에서의 농지개혁이 어떠한 모습을 띄고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한다.프랑스혁명 후 성립된 분할지 소유의 본질적 성격이 아래로부터의 농민의 주체적 문제해결에 의한 농민적 진화의 길과는 달리, 위로부터 미군정 지주적 상층부 및 보수적 관료 집단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전후 미국의 극동전략의 핵심은 극동지역에 있어서 공산주의 및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을 제압하고 이 지역을 자기영역 내에 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미군정은 이와 같은 극동정책과 관련하여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단정의 정치 사회적 격동에 대응하기 위해 귀속농지 분배를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 조치 를 전개하게 된다. 이러한 미군정의 토지정책 및 그에 따라 기본적 방향이 제시되는 정부수립 후의 농지개혁이 갖는 성격은 미군정의 점령정책의 정치 지향적 성격에 비추어 식민지 반봉건사회 및 그 기저로서의 봉건적 토지소유의 철저한 청산으로서의 내용을 가질 수도 없었고, 농업생산력의 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한 것일 수도 없었다.{) 최장집 편, 『한국현대사』 한국농지개혁연구(황한상) (열음사, 1988)미군정은 국내 공산주의·급진적 민족주의 세력의 물리침과 함께 전면적 토지개혁 요구를 포함한 정치사회적 격동에 대응하여 위기에 선 반봉건적토지제를 위로부터의 개혁 에 의해 타협적으로 해이에 지주의 개별적 판매농지가 57만 3천 정보로 1945년 현재 소작지 면적 147만 정보의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일부 지주층은 영농하는 친척, 친지 기타 기존의 소작인에게 명의만 소작지 소유권을 이전하고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사실상으로는 비합법적인 소작관계를 유지한 경우가 상당수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이점은 전 농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소작농가 중 52.1%가 농지개혁 이전에도 소작농이었다는 1974년 한국가농의 농지임차 관계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99년 농림부 자료 : 전체 150만 농가의 19.7%(29만여가구)가 소작농 또는 자소작농소작준 지주의 농지 구입시기 (건수별){농지개혁 후 새로 사 준 것농지개혁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새로 사 준 것과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알 수 없음. 대답 없음549(40.9%)712(53.1%)47 ( 3.5%)34 ( 2.5%)계1342(100%)말하자면 현재 총 소작건수의 반 이상이 농지개혁 이전부터 지주가 갖고 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이와같이 농지개혁 전에 이미 해방 당시에 비해 소작지의 자작지화, 소작농의 자현상 작농화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주의 소작지 방매현상과 소작관계의 내밀적 지속의 심각성을 명백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농지개혁을 통해 분배된 농지(사실 당초 해방되어야 할 농지의 38%에 불과하지만)를 받은 수배농가 조차도 소작인에 매우 불리한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에 의한 지가상환부담의 과중으로 인하여 상환지연은 물론 일부는 수배농지의 불법전매 또는 소작관계의 재현으로 되거나 농업노동자로 전락 또는 이농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므로 음성소작관계의 존속이나 농지개혁 이전의 지주의 토지방매현상, 분배농지에 대한 형식적인 소유권 이전에 의한 자작농화를 가지고 자유로운 농민적 토지소유(분할지적 토지소유)의 확립 혹은 봉건적, 반봉건적 토지소유의 청산으로 볼 수는 없다. 비록 농지개혁에 의해
서론스타란 가장 일반적인 표현으로 대중의 큰 인기를 누리는 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스타 시스템이란 그런 스타를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체제를 말한다. 스타와 스타 시스템은 일반인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스타란 것이 상품에 기반한 자본주의 문화, 즉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대중 문화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대중들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점에서 실상은 대중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모든 사회현상들이 그러하듯 스타와 스타 시스템을 접근하는데 한가지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실상을 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스타와 스타 시스템도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스타 시스템에 관련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측면에 대한 논의와 그런 현상들이 어떻게 대중문화에 작용하며 형성되는가에 관한 논의를 특히 한국의 사례를 들어 하려고 하며, 그것에 덧붙여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있는 팬, 팬클럽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하려 한다.스타와 스타 시스템의 일반적 의미그런 주 논의에 앞서 우선은 스타와 스타 시스템이란 것에 대해 일반적인 의미에서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스타와 스타 시스템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는 위에서 이미 살펴봤지만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스타 시스템이란 "인기 있는 영화배우를 중심으로 기획·제작함으로써 흥행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상업성 위주의 영화시스템"을 말한다. 이는 스타와 스타 시스템이 처음에는 영화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스타란 배우에 국한시키지 않고 모든 대중의 인기를 받는 인물들을 총칭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스타 시스템이란 말은 주로 연예계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스타를 생산해내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하고 있다.스타시스템의 발생배경스타 시스템이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타를 생산하고 관리하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러한 스타시스템은 왜 만들어한편 스타를 관리하고 선전하는 부서를 체계화 시켰다. 이런 체계는 거대 영화제작사들의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발전을 이루었는데 스튜디오 시스템이란 제작, 배급, 상영 등 전 부분을 영화사 측에서 수직적으로 통합한 체계를 말한다. 이런 체계에서 스타란 영화사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지고 관리되어지는 하나의 문화 상품이었으며 스타 시스템이란 거대 영화 산업에 의해 스타를 만드는 과정이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스타란 자연히 포장되고 왜곡된 상품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Thomas Harris가 그레이스 켈리와 마릴린 먼로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스타가 영화사에 의해 포장 왜곡되어지고 상품으로서 관리되는 지를 밝힌 바가 있다. (Thomas Hrris, "The Building of Popular Imzge: Grace kelly and Marilyn Monroe", 1991)또한 전속제란 제도에 의해 스타는 철저하게 소속사에 갇혀있어야 했다. 즉, 스타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작사 측에 더 많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대공황으로 인한 영화 산업의 적자 시기와 텔레비젼의 등장으로 인해 영화사 측에서 스타를 전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비효율성이 인식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헐리우드는 오늘날에까지 이르는 텔런트 에이전트 등의 거간 제도를 확립시키게 된다. 이런 거간 제도에서 스타 시스템은 크게 스타, 매니저, 탤런트 에이전시, 제작사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에이전시에서는 스타와 제작사를 연결시켜주며 매니저는 스타의 공적 생활과 관련하여 스타만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스타가 과거에 비해 제작사에 대해 자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된다는 점에 있으며(비록 그것이 에이젼시를 거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일정 기간의 계약에 의해서 성립된다.) 자신의 관리는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우리나라의 스타 시스템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사례는 어디까지나 외국의 사례이다. 이러한 거간스타는 수명이 굉장히 짧다. 이는 가수의 경우에는 특히 심한데 불과 몇 년전의 순위 속의 가수를 지금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비해 영화 스타의 경우 비록 인기 순위는 바뀐다 해도 스타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일회적이고 극히 대중적인 성격이 강하다.또한 새로 생겨난 에이젼시나 매니져도 과거에 텔레비젼 매체에서 행하던 스타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의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곧 스타를 제작사나 대중과 중개하는 역할이 아닌 오히려 상업적으로 스타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스타는 소외되고 대중의 의향마저 한 쪽으로 치중하거나 왜곡된다.) 스타가 제작과정에서 소외되는 과정을 코믹하지만 신랄하게 비판한 글이 딴지 일보라는 인터넷 신문에 올라와 있다. 2000. 10월 둘째주 "고발 음반 기획의 허상을 말려주마" 기사 참조.더 나아가 이런 스타 시스템에서 중개자들은 스타를 대중에 가장 잘 영합하는 스타로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스타를 스타 자신과 분리시키고 대중과도 분리시킨다. 결국 스타는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개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의도는 왜곡, 변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타는 중개자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또한 중개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중개자들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상업적인 이득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인해 대중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타를 지워버리는 것이다.이미지를 통한 스타 만들기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스타시스템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최소화함으로써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헐리우드에서는 이렇게 스타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스타들을 특정 스타일의 이미지를 갖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스타의 이미지를 전형화시킴으로써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특정 퍼스낼러티를 가진 인물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사의 홍보담당자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스타의 이미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고정된 이미지와 다른 역할의 역을 맡을 경우 대중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토마스 해리스가 말한 이미지 메이킹의 과정은 한국에서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의 TV, 영화 스타 중 고정화된 이미지 가지고 있는 스타를 몇몇 뽑아 비교해 보았다.대표적인 예로 김혜자를 들 수 있다. 전원일기를 통해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 상'으로 친숙한 김혜자 씨가 실재로 수 십 년간 담배를 펴온 골초이며 제대로된 음식 하나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혜자 씨가 어떠한 연유로 인해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김혜자 씨가 수 십년 간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안정적인 연기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마약복용 혐의로 인해 물의를 빗고 있는 황수정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예이다.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꾸준히 밀고 나갔던 황수정 씨는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술, 담배를 못하고 남자친구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드라마에서 노출이 있는 수영복 촬영을 거부하는 등 자신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었다.유지태의 경우도 위와 비슷하다. 그동안 남자 배우의 경우 남자다움, 마초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유지태의 경우는 사회적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다정한 이미지를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얼마 전 개봉한 '봄날은 간다'에서는 인상적인 눈물 연기를 통해 '남자의 눈물엔 향기가 있다) 한겨레21 384호 (2001. 11. 22) 커버스토리'는 말과 함께 "섬약하고 눈물 많은 유지태는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새 남성상의 아이콘이 돼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물론 유지태의 경우 기존 스타 시스템에서 추구했던 이미지가 사회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지 않는 이상적인 형태였던 것에 비해 변화하는 일반인의 인식에 맞춰진 새로운 형태의 이미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어떻게 보면 H.O.T는 나오는 순간부터 성공을 약속 받았는 지도 모른다.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획사와 철저한 계산 하에 만들어진 이미지로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였다. H.O.T가 10대들의 취향에 가장 어울렸다는 것 또한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런 부분은 방송사 측에서도 원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H.O.T가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3개 방송사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10대의 취향에 적합하다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공연히 얘기해지는 음반회사와 방송계의 뒷거래 또한 한 몫 했을 걸로 생각된다. 어떤 데뷔 가수가 음반 발매하면서부터 3개 방송사에 겹치기 출연을 할 수 있을까? 음반회사와 방송사의 뒷거래는 생소한 얘기가 아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방송계와 가요계를 떠돌고 있는 얘기들이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각 방송사마다 밀어주는 가수들이 하나씩은 있었고 이렇게 H.O.T는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스타시스템이 빚는 가요계의 비극' (최고의 10대 우상으로 떠오른 H.O.T는 음반기획사에서 철저하게 만들어진 스타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은 스타시스템으로 인한 가요계의 문제점과 H.O.T가 스타로 만들어진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95년 가을 가수 이수만이 설립한 SM기획은 새로운 그룹을 구 상했다. 10대들의 왕성한 음반 구매력을 감안해 10대팀을 생각했다. 먼저 공개오디션, 헌팅, 소개 등 모든 경로를 총동원했다. 1차로 문희준, 강타 , 이재원 등 고교생 3명을 뽑았고 장우혁과 재미교포 토니 안을 추가해 5 명을 채웠다. 다음은 교육. 춤은 호텔무용수 출신의 박재준, 노래는 작곡 가 유영진, 의상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코디네이터였던 고경민이 맡았 다. 춤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는 10대들의 정서에 맞게, 의상은 힙합풍에 유아적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그리고 각각의 고유 캐릭터를 만 들었다. 남성(강타), 미소년(이재원), 반항(장우혁), 지성(토니안), 유머(문이다.
대중예술의 이해 REPORT드래곤 라자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과 목 명:담 당 교 수:소 속:성 명:학 번드래곤 라자 는 몇 가지 부분에서 기존의 한국 판타지 소설과 비교되는 특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출판과 베스트셀러 진입으로 인해 통신 연재가 한층 활발해 졌고 통신 연재 소설 출판 붐이 일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통해 한국의 대중적 판타지 소설 장르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된다. 드래곤 라자 가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판타지 소설이 비슷한 내용전개와 배경, 형식을 답습하며 하나의 경향을 쫓아가고 있었던데 비해 이 소설은 독특한 내용 전개와 개성 있는 캐릭터, 철학적 주제를 담으면서도 무겁지 않는 이야기 전개에 있다.드래곤 라자 는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의 경우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며 복수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곤 한다. 또한 판타지 소설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면 상당히 복잡하고 번거로운 작업이 될 수 있다. 창조된 세계의 역사적 배경이나 그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일일이 이야기되어야 하며 수많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내면심리에 대한 묘사도 까다롭다. 3인칭으로 쓸 경우 그는 음침하고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다. 라고 말하면 되지만 1인칭의 경우 그의 외모나 말투, 행동을 통해 성격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 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것이다. 개별 등장인물들이 각자 개성적일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인간 외의 종족들의 성격에도 독특한 색채를 부여하고 있고 장면의 묘사도 뛰어나다. 1인칭의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모든 사건을 생생히 겪을 수 있는 것이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특별한 신분이나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닌 양초 제조공 아들, 초장이 후보 일 뿐이다. 또한 대부분 판타지 소설의 뼈대가 되는 영웅 소설식의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다. 많은 판타지 소설이 재미와 흥미에만 초점을 맞춰 영웅 소설의 이야기 전개를 답습해 왔다. 무협소설 식의 읽기 편한 단순한 전개와 등장인물의 유아기적 행동과 고민들, 분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도륙하고 복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강함에 집착하는 주인공에 모든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기존의 판타지 소설이었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 의 경우 모든 이야기 전개와 등장인물의 대사, 벌어지는 사건들이 인간성 탐구 라는 작가의 주제 의식과 관련이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등장인물과 종족에 독특한 개성이 주어진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과 등장인물에 빠져들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작가가 하고자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한편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감정 표현들-농담을 주고받고, 웃고, 울고, 싸우고 재치 넘치고 위트 있는 말들-로 독자는 부담에서 벗어난다. 독자가 주제에 대한 고민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이 소설의 중심 아이디어는 드래곤 라자 라는 특별한 존재다. 작가는 라자 라는 특별한 존재를 통해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세계에는 7개의 종족이 존재한다. 그 중 드래곤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이며 그러므로 드래곤은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드래곤과 인간이 교류하기 위해서는 드래곤과 인간을 이어주는 라자 라는 특별한 종류의 인간이 필요하며 이 인간을 드래곤 라자 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돼도 아직 독자는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왜 드래곤 라자 만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 던져지며, 드래곤과 드래곤 라자와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드래곤과 라자는 정신적 유대가 이뤄지고 있으며 둘 사이의 관계는 혈연보다도 가까운 정신적 끈으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는 하나의 존재(아니 하나의 존재가 아닌 라자와 동화된 드래곤과 라자)로 이야기된다.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하는 엘프족 이루릴과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또 다시 이야기를 던진다. 엘프는 자연과 공생하는 종족이다. 공생을 넘어서 모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가장 순수한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가까이 하는 모든 것과 동화되어 버리는 종족 자체로서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는 존재이다. "이런 옛이야기가 있지. 엘프가 숲을 걸으면 그는 나무가 된다. 인간이 숲을 걸으면 오솔길이 생긴다. 엘프가 별을 바라보면 그는 별빛이 된다. 인간이 별을 바라보면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엘프와 인간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지."감춰져 있는 이루릴의 사명은 엘프족의 멸망에 대한 방책을 찾는 것이다. 엘프족은 점차 멸족의 길을 걷고 있다. 라고 말한다. 멸족의 길을 걷는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연과의 동화 모든 생명체와의 동화 속에서 살아가는 엘프족의 특성에 있다. 인간은 도시를 확장하고 숲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은 엘프족이 숲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인간과 같이 공생할 날이 올 것인가? 엘프족이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화 한다. 그러나 엘프족은 모든 것에 동화된다. 그렇다면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엘프는 인간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소설 중간에 영원의 숲 이 라는 곳이 등장한다. 넥슨 휴리첼을 쫓아 영원의 숲으로 들어간 일행은 똑같은 일행을 만난다.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분열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이것을 도플갱어로 생각해서 죽이려 하지만 이 일행은 이 들이 모두가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마법은 풀리게 된다. 들어가는 사람은 있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다는 영원의 숲이 가지고 있는 전설이 밝혀진다. 영원의 숲에서 자신을 죽이게 되면 죽인 만큼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기억 속의 사람들 역시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영원의 숲 의 의미는 후반부 드래곤 로드와의 대화 속에서 다시 한번 나온다.드래곤 로드와 7개의 종족의 7개의 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6개의 별은 깨어지고 오직 드래곤의 별만이 존재한다. 드래곤은 그 별을 간직했기 때문에 완전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린 것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드래곤은 별을 간직했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별을 깨뜨리는 것은 사회성을 얻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6개의 종족은 별이 깨어지면서 불완전한 존재가 되며 사회성을 가지고 같이 생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래곤은 별을 간직함으로서 완전한 존재에 가깝지만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인간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멸족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글의 후반부에서 주인공 후치가 드래곤 로드와 하는 대화 속에서 작가는 결정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그것은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의 말 중 인간은 단수가 아니다. 라는 얘기 속에 있다. 주인공 후치는 드래곤에게 얘기한다. 인간은 단수가 아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