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이념 및 역사적 전통과 외교정책외교정책의 개념 : 정책결정자들의 마음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가 과거의 경험(역사적 전통이나 관습)과 수 년에 걸쳐 받아 들인 특정한 정치적 신념과 이념의 산물이다.1. 신념체계의 기능국가의 신념체계가 이념에서 비롯되었든 그 민족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그같은 신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교정책의 수립과 운용에 영향을 미친다.첫째, 신념체계는 국제체제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즉 신념체계는 어떤 국제적 사건을 인식함에 있어 기존의 신념체계와 양립할 수 있도록 그 사건을 거부하거나 혹은 재해석하게 만든다. (신념체계를 프리즘 비유)둘째, 국가의 신념체계는 외교정책의 선택범위를 규정한다. (ex:1939년 소련과 독일간의 불가침 조약, 2차세계대전중 소련과 자유진영 국가들간의 잠정적 동맹==>실패셋째, 국가의 신념체계는 외교정책의 지속성을 제공한다.(역사적 전통을 가진 국가의 지속성↑ ↔ 신생국가 지속성↓)넷째, 국가의 신념체계는 외교정책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수단을 제공한다.(소련은 맑스주의 미국은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다섯째, 국가의 신념은 결정된 정책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도 하지만 그것을 국내외적으로 선전할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된다.(대중매체를 통한 자국민과 다른국가들에 대해 자국의 이념의 정당함을 확산)여섯째, 국가의 신념체계는 주어진 신념을 추종하는 국민들 사이에 단결을 강화시킨다.(민족주의 혹은 독자적인 민족적 일체성의 확립)2. 소련의 신념체계맑스?레닌주의와 러시아의 역사와 전통이 소련 신념체계의 근원○ 맑스?레닌주의가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친 이념이라고 보는 이유맑스?레닌주의를 소련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합리화 시키는 수단으로 보거나, 혹은 대내외적 선전체제로 간주 하기 때문1>맑스주의 이론의 가장 중요한 원칙들 중의 하나는 사회 내에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라는 두 기본계급이 존재한다는 신념→계급간의 영구적 혁명에 대한 신념 때문에 국제체제에서 계급갈등이 존재하는 한 소련은 전세계적 안정을 외교정책의 목표로서 추구하기 어려움→ 미-소 간의 갈등은 존속~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생존전쟁으로 이해2>맑스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 결정주의와 경제적 결정주의? 역사적 결정주의 :사회는 봉건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역사적 단계로 진행된다는 신념은 사회주의 혁명의 발생에 대한 예측과 이미 부르주아 혁명이 봉건주의를 대치했던 서구유럽에서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경제적 결정주의 :경제는 사회적 행위의 기본적 결정요인이며, 정치는 단지 상부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 국가의 외적행위를 경제적 동기로만 해석하려는 경향→ 서구국가들의 외교정책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경제적 역할, 경제적 제국주의, 군산복합체의 개념들에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모든 전쟁도 경제적 결정요인으로 설명 →공산주의의 필연적 승리에 관한 믿음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험적인 정책들을 추구하도록 유도○ 러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기인한 신념1>제정 러시아의 외교정책 : 주변지역으로의 팽창정책은 부동항과 소련의 안보를 위하여 완충지역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영토적 야심)2> 전통적 경쟁국의 존재 : 국경분쟁이나 무력침공을 동반한 영토 영유권 분쟁중국과의 국경분쟁 나폴레옹의 침공 독일의 제1차 2차 세계대전시 침공 으로 인하여 소련 지도자들의 안보의식에 큰 영향을 미침소련이 국제무대에서 하나의 행위자로서 경험을 쌓기 시작하면서 소련 나름의 외교정책적 전통을 구축하였다. 일반적으로 정권의 교체시 민주주의 체제보다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단절현상을 보여주지만, 소련의 경우 상당한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3. 미국의 신념체계미국의 신념체계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근거한 많은 저작들과 경험을 통하여 발전되었다.미국 외교정책에서 부각되는 주제는 고립주의 개념과 자유주의적 간섭주의★고립주의★자국의 이익이나 안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 타국과 동맹관계를 맺지 않고 개입을 꺼리는 외교정책 (워싱턴은 타국과 잠정적 동맹도 수용, 유럽의 경제적 지적 문제 간섭)‘※고립주의정책을 유지할수 있었던 요인①두 대양에 둘러싸인 미국의 지리적 잇점②당시 지배적 해양세력이었던 영국이 타유럽국가들의 미국내 영토획득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미국을 보호해 주었던 점③미국이 서반구지역에서 우월한 위치를 가졌다는 점과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했던 점④신생국이었던 미국이 국제체제 내의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정치의 개입이 강요되지 않았던 점★간섭주의★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정책 ↔ 불간섭주의※자유주의적 간섭주의의 대표적 예① 19세기 말 중국 문호개방정책→ 유럽의 열강들과 중국침탈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② 미국 내 많은 이익집단의 열망에 따라 남미지역에 대의정부 발전에 미국이 원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내정간섭(군사력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 ex:1912년 니카라과 군대 파병, 1915년 하이티 파병 1958년 레바논 파병 1965년 도미니카 공화국 파병, 그 외 세계 도처의 많은 내전 개입=> 대의정부를 지원한다는 구실)※군사개입이 보여준 문제점: 냉전체제 하에서 비민주적 정권이 미국을 지지하는 한 그들 정권을 지원함 (ex 월남전 개입)이러한 자유주의적 간섭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에 있어 정책의 선택을 합리화시키는 법적, 도덕적 주장의 경향을 낳았다.③ 세1차 세계대전의 미국의 개입→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세계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전쟁이라 주장④ 국제연맹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정작 미국은 참가거부결국 제2차세계 대전 이전까지 또다시 고립주의적 전통으로 복귀했으며,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경찰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야 다시 간섭주의로 바뀌게 되었다.4. 중국의 신념체계1)맑스?레닌주의2)모택동사상3)전통적 중국(유교)가치관① 맑스?레닌주의중국에서의 맑스?레닌주의는 혁명적 이념으로서 당시의 타락적 상황을 설명하는 도구로, 또 전쟁과 기아의 시련을 견디고 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로 이용→모택동의 사상보다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음. (소련은 중국이 사실상 반맑스주의 국가였다고 비판)② 모택동사상중국 외교정책을 결정짓는 신념체계는 공산주의 이념 및 역사의 산물일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지도해 왔던 모택동의 신념의 산물이기도 하다.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었던 것은 맑스?레닌주의적 슬로건이 설득력을 가졌던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라, 농업의 개혁에 대한 공약과 장개석 정권의 부정과 타락이 공산화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정리)습관1 주도적이 되어라(Be proactive)자신의 삶에 책임을 가져라.습관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사명과 삶의 목표를 정하라.습관3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Put first Things First)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라.습관4 상호이익을 모색하라(Think Win-Win)모든 사람이 이길 수 있다는 태도를 가져라.습관5 경청한 다음 이해 시켜라(Seek first to understand, Then to be understood)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 주어라.습관6 시너지를 활용하라(Synergize)더 많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함께 협력하라.습관7 끊임없이 쇄신하라.(Sharpen the saw)자신을 새롭게 하라.습관1 주도적이 되어라(Be proactive)자아의식이란 우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서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해 준다.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가진 패러다임이고, 이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다. 사회적 거울은 주변환경 내지는 사회적 패러다임을 말한다. 어떤 것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투사를 하고 있다.사람들을 실제대로 정확하게 반영하는 대신 그들에 관한 우려와 걱정이나 그들이 가진 약점을 지적하고 우리의 생각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수용되는 이론에는 세 가지 결정론, 즉 세 가지 사회적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유전적 결정론 - 기본적으로 조상이 우리를 결정했다고 말한다.▶ 심리적 결정론 - 부모가 우리를 기본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환경적 결정론 - 내 주변의 상사, 배우자, 동료 등으로 인해 현재의 나의 모습에 영향을 받는 이다.주도성(proactivity)이란 단순히 솔선해서 사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 이것은 우리가 전혀 통제력을 갖지 않는 것과 또 통제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이처럼 통제력, 즉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상들을 더 작은 “영향력의 원”내에 둠으로써 전자와 구별할 수 있다.영향력의 원이란 사람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들을 포함하는 영역이다.사람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때, 그들의 지식과 경험은 늘어나게 되고 신뢰성은 더욱 증진된다. 그 결과, 영향력의원은 더욱 넓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노력을 집중하게 되면, 영향력 행사를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게 된다. 그 결과 영향력의 원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영역 중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집중시키는가를 살펴보면, 자신의주도성의 정도가 어떠한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영향력의 원’에 집중시킨다. 이들은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일을 중점적으로 한다. 또 이들이 가진 에너지의 본질은 영향력의 원을 증가시키는 긍정적, 적극적, 확장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이와 반대로 대응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관심의 원’에 집중시킨다. 이들은 자기의 관심을 다른 사람이 갖는 약점, 환경상의 문제, 그리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여건 등에 집중시킨다. 주도적인 사람은 우선 순위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최소한 ‘관심의 원’과 같은 크기의 ‘영향력의 원’을 가지고 있다.습관 1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응적인 태도를 버리고 주도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영향력의 원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화자가 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신중하게 선택하여 인간이 지닌 천부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습관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습관 2는 다양한 상황과재하는 기준이다.‘지혜’는 인생을 보는 시각과 균형유지의 감각에서 나오며, 다양한 개체들과 원칙이 어떻게 상호 관련되고 적용되는지에 대한 이해력이다. 지혜는 판단하고, 분별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다 포함한다.‘역량’이란 어떤 것을 성취하는 잠재력 및 정신력, 행동하는 능력과 자질을 의미한다.역량은 선택과 결정을 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수단이다. 또 역량에는 물들어 버릇이 되어버린 습관을 개선하여, 더 낫고 효과적인 새로운 습관을 개발하는 능력도 포함된다.안정감, 지침, 지혜, 역량 이상의 네 가지 요소는 상호의존적이다. 이 네 요소가 다 존재하고, 조화되고, 활성화될 때 이것은 멋진 성격, 균형잡힌 성품, 그리고 매우 성실한 개인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습관 2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의 사명서를 만들어 일상생활의 지침서로 삼고, 모든 활동과 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원하는 결과와 중요한 가치들을 먼저마음속에 그려보는 태도다 필요하다.습관3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Put first Things First)삶을 성공적으로 살려면 중요한 인간관계, 주요 역할, 각종 활동들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쓸데없는 일들로 인하여 가장 중요한 일들이 미뤄지지 않아야 한다. 효과적 관리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이다.순간적인 충동이나 욕구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에 입각해서 행동하는 독립 의지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필요한 것이라면 그 일을 해내는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대상과 시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관계의 유지와 증진 그리고 결과의 달성을 강조한다.이를 간단히 말하면 생산/생산능력 간의 균형 유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제 1상한에 속하는 것은 모두 급하고 중요한 것들이다.이것은 즉각적인 처리가 요구되고, 그 결과도 중대한 사안들을 다룬다.1상의 비중이 높을 경우에는,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스트레스, 피로한 심신, 위기 관기, 문제 수습에만 매달리게 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 모색하라(Think Win-Win)‘나도 이기고, 상대방도 이기는’ 승/승의 패러다임은 모든 대인관계에서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다.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만큼 모든 것이 넉넉하다고 믿는 데서 출발하며, 제 3의 대안이 있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다시 말하면, 당신이 하는 방식이나 내가 하는 방식이 아닌 더 나은 방식, 즉 더 높은 차원의 방식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승/승의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은 동시에 상대도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승/승의 사고에 대한 하나의 대안은 승/패적 사고방식이다. 승/패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항상 자기가 이기고 상대가 저 주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희생시키거나 배제시키고 자기의 성공을 이룬다.승/패적 사고는 우리가 보아오고 배워 온 대부분의 사고방식이다. 승/패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하기 위해 지위나 권력, 자격이나 재산, 또는 배경 등을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승/패 사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운동시합니다.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하는 운동시합이야말로 이 같은 사고를 강화시킨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종종 인생을 하나의 커다란 게임으로 보는 페러다임을 배우게 되고, 누군가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한다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사고를 터득한다. 즉, ‘승리’란 경기장에서 상대를 ‘패배’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인생살이는 경쟁이 아니다. 결혼 생활에서 둘 다 이기지 않으면 둘 다 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독립적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실체이다. 이 경우 승/패의 사고방식은 이같은 협력에 대해 역기능적인 요소가 된다.패/승적 사고는 승/패 보다 더 나쁘다. 아무런 비전이나 요구나 기대도 없기 때문이다.패/승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높으나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 등을 표현하거나 실천하는 용기가 부족하다. 그들은 쉽게 굴복하며 인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가진 준거틀에 입각하여 질문하는 것이다.셋째, 우리는 충고한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조언을 하는 것이다.마지막 방식인 넷째, 우리는 해석한다. 이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근거하여, 사람들의 동기와 행동을 유추하고 설명하려고 한다.경청기술은 공감적 경청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지만, 다음과 같은 4가지 발달단계가 있다.첫째 번 단계로는 효과면에서는 가장 약하지만 내용을 흉내내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적극적'경청, 혹은 '반사적' 경청에서 가르치는 기술이다. 내용을 흉내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즉,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반복만 하면 된다. 이때 우리는 거의 머리를 쓰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탐사하거나, 충고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공감적 경청의 둘째 번 단계는 그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약간은 더 효과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머물고 있다. 상대방이 말한 의미를 자신의 말로 요약하는 것이다.셋째 번 단계는 오른쪽 뇌를 작동시켜 감정을 나타낸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는 주의를 하지만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주의 깊게 보고 자신의 말로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감정을 나타내주는 말의 이면에 있는 몸짓이나 어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넷째 번 단계는 둘째 번 및 셋째 번 단계를 포함한다. 즉, 내용을 재구성하고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의 말로 상대방의 감정을 표현한다. 대화를 하는 경우에 외부의 조언 없이도 변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다른 관점이나 조언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당사자로 하여금 문제를 찾아내게 하여 자기 스스로의 페이스와 시간을 들여서 해답을 얻게 하는 것이다.공감적 경청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우리가 인생 길을 잘못 들어 수킬로를 간 뒤에 되돌아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또 드러나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은 문제들을 안고 지내는 데 걸있다.
제4장 국제기구와 환경문제Ⅰ. 서론(1) 환경문제의 중요성1) 냉전기 : 냉전기에는 국제체계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군사력의 증강이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군사력의 증강이나 동맹의 결성 등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려 하며 환경문제에 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음.2) 탈냉전기 :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나화, 해수면의 상승, 생물다양성의 멸종위기등 국제적 위기의식이 고조 되면서 국가안보란 군사적인 안보에 한정 될 수 없다는 의식하에 안보 개념이 환경까지 확대 되었다.(2) 환경문제에 있어서 국제기구의 중요성환경보호 활동은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개별 국가에 의한 보호활동, 두 개의 국가간에 쌍무적으로 이루어지는 보호활동, 다국간의 협력에 의한 보호활동, 국제기구 등에 의한 전세계적인 보호활동을 들 수 있다.◆환경문제가 다른 국제문제와 달리 가지는 특성◆첫째, 환경파괴가 확실히 진행되면 그 이후 회복이 불가능하며 영향이 광대하게 전 지구에 미쳐 국지적인 대응으로는 해결 할 수 없다는 점둘째, 환경문제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 보다도 필요하다.셋째,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정보의 수집과 정보의 과학적 분석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이루 어져야 하며 이러한 활동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한다.↓이러한 환경문제의 특성으로 인해 환경문제는 국제사회의 거의 모든 국가를 포함하고 있는 국제기구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기구는 NGO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국가들은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또 다른 한편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문제의 해결을 정부의 차원에 의존하다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갖기 때문에 NGO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NGO의 또 다른 이유는 비록 NGO들마다 문화적 요인이나 개별적인 특성에 의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남반구 국가와 북반구 국가들의 견해차이를 좁히는 가교역활2. 국제문제로서의 환경문제의 연혁(1) 2차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국제연합이 설립된 이후에도 환경문제는 주목을 크게 끌지 못했으며 국제연합 밖에서 주로 NGO에 의해서 논의가 되었다.1948년 UNESCO에 의해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라는 정부와 NGO가 결합된 국제기구가 설립1961년 세계야생생물기금(WWF) 창설 → 환경과 관련된 NGO의 수는 증가하였으나 역할은 미비 !!※ 환경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의 저조는 국제문제에 대한 현실주의접근의 적실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국가의 안보와 권력의 요소로서 전략적인 자연자원이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있었고, 많은 국가들이 보유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업화와 경제발전을 달성하는데 일차적인 우선권을 두었기 때문에 역할이 미비 할 수 밖에 없었음.(2) 1970년대환경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다루어지기 시작→ 1972년 국제연합인간환경회의(UNCHE)라는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환경문제가 의제로서 채택되고 선언까지 이룸.◆국제연합인간환경회의가 가능 할 수 있었던 요인◆첫째, 선진국의 환경에 대한 관심의 고조둘째, 과학의 발달로 인해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확산( 과학적인 지식은 환경문제의 해결이란 일국의 노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으로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고양시켰다.)셋째, 개도국의 개발에 대한 관심 역시 국제연합인간환경회의의 개최를 도왔다. (환경문제가 선진국들만에 의해 개도국의 이익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논의 되는 것에 대한 우려)↓↓↓↓↓↓↓UNCHE는 ‘스톡홀름선언’이라고도 불리는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함으로써 국제사회가 환경과 관련하여 합의한 국가행동과 책임의 원칙을 처음으로 제시하는 등 환경보호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했다.(3) 1980년대미국정부의 ‘2000년의 지구’라는 보고서를 발표 →환경문제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인간환경’만이 아닌 지구의 생태계 전체를 중요시하는 ‘지구환경’으로 바뀌기 시작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1987년 국제연합 총회에 제출한 일명 ‘브룬트란트 보고서’라고 불리는 ‘우리의 공동미래’라는 보고서로 인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선진국과 개도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미래 세대의 필요를 손상시키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4) 1990년대 (탈냉전시대)1970년대와 1980년대가 양극체제가 주는 구조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었던 반면 탈냉전과 더불어 인류 공동의 문제로서의 환경문제의 중요성과 이러한 환경문제의 시급한 해결 필요성이 크게 부각 되었다.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제연합환경개발회의(UNCED)가 개최되었고, 환경과 개발 모두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환경과 개발의 문제의 결합을 시도했으며 이 회의를 통해 환경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지구정상회담이라 불림) BUT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대립이 부각개도국의 입장 : 선진국들이 환경보호를 구실로 개도국의 개발을 저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여전히 지구 환경의 파괴에 대해 역사적인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일차적인 환경규제의 부담을 질 것을 요구하며 개도국에 대한 재정지원 및 필요한 기술의 이전을 요구 (개발권 보장, 재정지원,기술 이전)선진국의 입장: 환경파괴는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개도국의 협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UNCED에는 정부대표 이외에 비국가적 행위자로서 국제연합체계에 속하는 17개의 국제연합직속기구(UNDP,UNEP,UNCTAD외)와 16개 국제연합 전문기구(ILO,IMO,WMO,UNIDO외)와 IAEA와GATT가 참여했으며 국제연합체계 밖에서는 ADB,AALCC,OAU 등 33개의 정부간 기구가 참여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약 8,000개의 NGO가 이곳에 모여 사상 처음으로 ‘NGO조약’을 기초하여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시민의연계망을 구성하는데 합의했다.3. 환경문제와 정부간기구(IGO)(1) 개 론환경문제와 관련된 정부간기구는 다양하며 환경보호가 주된 기구의 과업은 아니지만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국제연합 전문기구와 같은 국제기구, 환경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해서 설립된 국제기구, 그리고 환경문제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지역적 기구 등이 있다.(2) 대표적인 정부간기구들1) 국제연합환경계획(UNEP)① 창설 :1972년 국제연합인간 환경회의(UNCHE)에서 채택된 행동계획의 실시기관으로서 설립.② 역할 :환경보호 활동,보호활동에 관심을 높이는 촉매역할,NGO의 활동도 조정 이외에 환경실태의 평가, 환경의 관리, 환경보호를 위한 지원조치를 수행지구환경감시시스템,세계자원정보 데이터베이스 , 국제환경정보조회시스템, 국제 유해화학물등록제도를 운영③ 조직 : 경제사회이사회를 통해 국제연합 총회에 보고하는 집행이사회UNEP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환경기금집행이사회를 보좌하고 환경기금을 관리하는 사무국국제연합에서의 환경관련 활동을 조종하기 위한 조정위원회로 구성④ 특징: 개도국의 압력에 의해 제네바가 아닌 개도국 (케냐의 나이로비)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연합 기구-경제개발을 추구하는 개도국 중심의 운영과 선진국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환경분야에 있어서 주변적인 역할만 하고 있다. (선진국의 견제의 대상으로 국제기구 역할이 ↓ )2) 환경에관한 국제개발기구위원회(CIDIE)① 창설 : 1980년 뉴욕에서 UNEP의 주최로 8개의 국제개발기구들의 회의를 통해 채택② 역할 : 환경보존에 대한 정책협조에 대한 합의 → 개도국에 대한 개발원조를 제공할 때 환경에 대한 배려를 한다는 것에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이 선언의 실시를 위한 기관으로서 설치.③ 조직 : 사무국은 UNEP 본부 내에 설치 ⇒ 활동을 UNEP 자금에 의존 !3)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① 창설 : 1983년 지구환경 보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환경보호와 개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여 설립② 역할 : 개인의 자격으로 선출된 21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현인회의 형식을 취함→ 환경보호와 개발을 동시에 달성 할 수 있는 방안 모색③ 특징 : 1987년에 향후 지구환경 보호의 기본적인 이념이 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주제로 한 ‘우리의 공동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UNEP와 국제연합 총회의 지지를 얻어 국제연합 제 기관 및 각국의 행동에 관한 결의로서 채택되었다.4) 기후변화에 관한정부간패널(IPCC)① 창설 : 1988년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주로 다루기 위해 UNEP와 세계기상기구(WMO)에 의해 설치② 역할 : 국제연합 산하의 연구기관으로서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안을 통해 설립되었으며 기후변화에 관한 연구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종합보고서 등을 작성③ 특징 : 1992년 UNCED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 협약 당사국 회의가1995년 1차로 베를린에서 개최 →1996년에는 본에서 제2차 회의 개최 → 1997년 12월 일본의 교토에서 제 3차회의 개최 ⇒ 이 과정에서 IPCC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
제15장 정당정치와 민주주의1.정당과 정당정치: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과 정당정치는 민주정치의 본질을 구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정치 기구로서 정당정치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완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1)정당정치① 개별정당 차원 : 개별정당 단위에서 정당 내외의 환경과 조건등을 검토하는 것② 정당체계 차원(복수정당이 존재함을 전제) : 정당간 선거경쟁의 결과 나타나는 일국 내의 정당체계 단위에서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2. 정당의 개념과 기능1) 정치학에서의 정당① 원론적 의미(상론적) :정당은 동일한 이념적 지향을 가진 시민들이 정치권력 획득을 통 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려는 집단으로 보 는 것(서유럽 국가)으로 사회전체적 균열구조의 정치적 표현이라 고 할 수 있다.② 현실적 의미 : 정당은 합리적으로 정치권력의 확대를 추구하는 합리적 정치인들이 자신 들의 권력추구에 사용하고자 만든 것이 정당이다는 의미 (정당의 목적은 그 구성원을 위한 이상론적 또는 물질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권력을 확 보하는 것)2) 정당과 정당체계의 역할Ⅰ.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시민들의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수렴하고 대표하는 기능을 수행Ⅱ.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 ? 행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Ⅲ. 정부의 공식기구를 구성하는 공직자를 충원 ? 정치체제 유지?발전시키는 기능* 이렇듯 시민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적 요구를 조직화함으로써 정치엘리트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제를 제공 함으로 정당과 정당체계는 민주적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Ⅳ. 정당과 정당체계는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동시적 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한다.3.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관계? 정당과 정당체계 그리구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민주주의의 정의 : 통치자가 시민에 의해 통치활동을 수행하는 권한을 부여받고 시민의 선 거에 의해 선출된 시민의 대표가 상호간의 경쟁과 협조를 통해 정치활동 을 하는 정치체제①구조적 민주주의 : 헌법과 법률에 의해 개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것②절차적 민주주의 : 최소한의 포용과 경쟁을 통해 정치경기의 규칙으로서 사회에 자리잡은 것⇒ 민주주의 또는 민주정치는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와 활동이 보장되고, 나아가 집단적 참여와 경쟁이 보장되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개별국가간에 민주주의의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완벽한 의미의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대두민주주의의 공고화 : 일반시민과 집단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와 활동이 보장되고 경쟁이 존중 되며, 이를 위한 제도적 환경이 보장된 절차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 사회 문화적으로도 확고하게 성립된 것을 의미(최소 요건 : 민주적 경쟁의 제도화 ← 정당정치의 역할)* 제도화된 정당정치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질을 강화하고 강력한 정당정치는 정당과 정당체계의 제도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4. 정당정치의 의미와 분석정당정치의 개념화- 사르토리 : 정당과 정당체계는 엄격히 구별돼야 하는 것으로 정당체계는 정당간 선거경쟁 에 의해 나타나는 정당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정당정치의 두가지 측면(1)개별정당 측면ⅰ 어느정도 선거적 경쟁성을 제도적?환경적으로 확보하고 있느냐 하는 측면ⅱ 제도적? 법률적 환경뿐 아니라 자유로운 정당설립과 활동이 실질적인 의미에서 보장되 는가 하는 측면ⅲ 정당 자체의 활동과 관련된 측면 :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제도화 가 필요하고 이 중에서 정당의 제도화가 이뤄져야 하며 정당의 제도화는 “정당이 내적 조직.대중동원,지도부의 구성과 승계 등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정당의 적응성,복잡성,자율성,응집성의 측면)(2) 정당체계의 측면정당체계 : 복수의 정당간에 이뤄지는 경쟁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상호작용① 정당간 경쟁을 규정하는 규칙의 안정성② 정당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발전③ 통치자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대한 정당성 부여
자기 소개서저는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서 전형적인 시골농촌을 배경에 두고 1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항상 근면성실을 강조하셨던 공무원이신 아버님과 가사일을 돌보시며 저에게 참을성과 끈기를 가르쳐 주신 어머니 밑에서 한살 터울인 누나와 함께 구김살 없이 성장 하였습니다. ‘항상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라’는 가훈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한번 시킨 일은 반드시 책임을 지고 끝까지 마무리를 지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인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장이나 전교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려 최대한 노력했고 한번 시킨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고 마는 끈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저의 장점은 너무 활달하여 처음 보는 사람과도 몇분만 이야기를 하면 금방 친해져서 절친한 친구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잘 웃고 친구들과 장난 치기를 잘 하여 어린시절에 시골에서는 골목대장이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리더가 되려 했던 유년 시절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것 같습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너무나 직설적이라는 것입니다. 싫은것과 좋은것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마음에 들 지 않는 것은 바로바로 표현을 하는 성격이 단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가끔 교우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저의 진심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표현하면 친구들이 쉽게 이해를 해주어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될 수 있으면 말을 아끼고 또 한번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많이 노력 중입니다.저의 특기는 운동인데 그 중에서 축구를 가장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축구선수를 하였고, 고등학교때는 축구가 너무 좋아 교내 체육대회때 시합도중 오버헤드킥을 하다가 팔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다가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저에게 축구는 또 다른 저를 발견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특기입니다. 취미는 음악감상이며, 좋아하는 장르는 발라드와 팝을 즐겨 듣는 편입니다.저의 학창시절에 대해 말을 하자면 아버지께서 도청 으로 발령을 받으셔서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93년 경남 창원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사교성이 좋아서 졸업할 때에는 전교생 모두를 다 알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에는 웅변대회에 나가서 장려상을 타기도 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한때 잠시나마 방황을 하였었는데 사춘기가 오고부터 부모님과 갈등도 생기고, 이유도 없이 괜히 짜증도 부리며 말썽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3학년때 담임선생님께서 항상 저를 옆에 두시며 좋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시면서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으신 덕분에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경남대학교 정치언론 학부에 입학을 하였고, 좀 더 자유분방한 대학 생활을 즐기면서 1학년때 학생회 간부로서 활동을 함과 동시에 여행동아리 기장과 축구동아리 주장을 맡아서 교내 활동을 했습니다. 2학년을 마친 후 의무경찰에 자원입대 하여 경남3기동대에서 2년간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의 에피소드를 몇가지 이야기 하자면 데모를 진압하러 갔던 대치 상황에서 운동권이었던 과 선배를 바로 눈앞에서 만났는데 서로가 서로를 막지 않으면 내가 다친다는 생각에 서로 눈에 불을 켜고 몸싸움을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 한곳에 남아 있고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또한가지는 그 시절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 닥쳐 왔었습니다. 출장을 가셨던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는 정말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너지면 저만 믿고 계셨던 어머니와 누나 마저 의지 할 곳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 물고 흐트러지던 저를 바로 잡고 어머니와 누나를 옆에서 다독거려 주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주저 앉으면 우리 식구의 미래는 없다’ 오직 그 생각 밖에 나지 않았었고, 내가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며 대들보라는 생각이 그 때 현실로 다가 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