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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철학] 최후의 13일을 읽고..
    Ⅰ. 들어가는 글많은 사람들은 왜 25세기 전에 쓰여진 소크라테스의 글들이 불후의 저작으로 많은 사상 전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다루었던 문제들이 21세기 현실정치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들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하면 나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죽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 그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도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죽음을 그렇게 쉽게 받아 들였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죽음에 다가가는 존재지만 그 어떤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대의 아테네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내세관이 확립되지 못했던 시기의 아테네를 살고 있었다. 그는 많은 아테네인들이 죽음 후에는 자신의 존재가 無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러한 환경이 그를 더욱더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내세관은 윤회를 설명한 우파니샤드 철학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는 영혼의 불멸을 믿었고 환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단순히 종교가로서가 아니라 철학자로 더 알려진 것은 그의 선과 정의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이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본 소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가 신봉하는 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 후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된지 17일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본 책은 그가 보낸 최후의 13일을 매우 심도있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그가 믿고 있던 자신의 사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이에 따라 본 감상문은 소크라테스가 확신한 자신의 사명,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의 방법, 마지막으로 그가 죽음을 통해 보여준 용기의 의미로 구분하여 정리한 뒤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겠다.Ⅱ. 소크라테스의 사명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다른 이들의 ‘혼(魂)’을 드러나게 해주는 산파라 자처했다. 그리고 이는 신이 그에게 부여한 일종의 사명이라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魂이란 무엇이며 魂을 드러내는 것이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소크라테스가 말하는 魂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神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는 魂이란 육체이외의 것, 즉 육체 안에 갇혀진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魂 자체는 神의 완전성을 쫓는 존재이지만 육체와 주변의 현실에 갇혀 불완전한 존재로 남아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한하고 완전하지 못한 육체가 아닌 영원하며 완전성을 내포한 魂을 갈고 닦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명이 다른 이들이 魂을 가꾸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고, 이는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신성, 즉 신과 마찬가지로 선과 정의를 사랑하는 인간의 魂에 대한 그의 접근방법이다. 그는 철저하게 ‘로고스’(이성)를 신봉한 사람이다. 따라서 모든 신의 존재와 가치체계는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다른 이와의 대화에 있어서 문답법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이러한 방법이 상대방의 魂을 이끌어주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책에서 그가 우파니샤드의 선각자와는 달리 언어를 마음과 동등한 위치에 두었던 것도 그가 로고스를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것이 그를 종교가이기 이전에 철학자로 남게 해준 이유이기도 하다.Ⅲ.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인식소크라테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魂의 존재를 믿었다. 그는 魂을 영원불멸의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는 그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선과 정의에 관한 신념은 魂이 추구하는 본성적인 것이고 이는 魂이 불생불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 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이지 아테네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혼까지 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는 오히려 죽음을 육체라는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기회로 생각하였다. 그는 존재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누어서 보이지 것을 ‘유한한 것’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한한 것’의 쪽에 두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육체는 보이며 유한한 것이고 魂, 즉 정신은 보이지 않으며 무한한 것이다. 사후에는 육체는 滅하지만 정신은 남아 새로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다고 그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인도의 윤회사상과 굉장히 유사한 것으로서 작가는 이에 근거하여 그가 인도의 ‘우파니샤드’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하여 극중에 인도의 수도자와의 만남을 그려 넣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魂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다. 그는 이성을 바탕으로 관념체계를 포함한 모든 사물을 정의 내리려 하였고 이는 보다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였다.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그의 이성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된 ‘무지의 지’일 뿐이었다. 그는 결국 魂의 끝간 곳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魂의 근본이 지성이라는 그의 믿음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에게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였던 것일까?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뒤에 정리하도록 하겠다.Ⅳ.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남겨준 것소크라테스는 아니투스에 의해 ‘아테네의 신을 신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타락 시킨다’라는 죄목으로 고발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려지고 있지 않지만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변론보다는 무지한 아테네인들의 魂을 일깨우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그에게는 사형이 구형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아테네는 테세우스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정숙의 의미로 사형 집행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30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그의 죽음이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 의해서 회자되는 것은 바로 이 한달 동안의 일들이 그의 친구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친구 크리톤의 집요한 탈옥권유에도 응하지 않고 결국엔 독배를 드는 길을 택하였다. 여기서 우리에겐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그는 왜 탈옥하지 않았는가?”와 “그는 어찌하여 죽음을 그렇듯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하는 것이다.◈ 그는 왜 탈옥하지 않았는가그가 크리톤의 탈옥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의 정의관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달리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관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法이란 항상 지켜야만 하는 것이고 이 것이 자신을 부당하게 얽매이고 있다고 해서 犯法을 행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정의관에 관한 크라튀로스와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강물의 예를 들며 강물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대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과는 달리 유전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한 뒤 그는 불변하는 진리를 평생추구하며 따라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말한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아테네의 法律을 위반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에게는 목숨에 우선한 자신의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찌하여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그렇다면 “그는 어찌하여 죽음을 그렇듯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앞서 말한 그의 죽음에 관한 인식에 기인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는 죽음에 관한 막연한 공포 때문인데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30일의 시간동안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는 魂의 불사를 믿었고 쇠락해가는 자신의 육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기뻐하였다.
    사회과학| 2003.07.03| 5페이지| 1,5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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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소설 소크라테스를 읽고..
    Ⅰ. 들어가는 글우리는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논리적인 이들이게 곧잘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그리고 이는 그의 지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그의 원칙주의적인 고지식함을 비웃는 측면에서 이해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가 알고있는 소크라테스의 논리적이며 원칙을 중시하는 고지식함은 과연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과연 소크라테스 그 자체인가? 정치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창피함을 느끼었지만 이러한 궁금증들은 본 책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 하나 해소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어서 다 읽기까지 책을 한번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필자는 본 보고서를 소크라테스의 간단한 약력, 진리에 대한 그의 접근 방법, 죽음을 통해 보여준 선에 대한 그의 믿음으로 문단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보고서를 마치려한다.Ⅱ.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사람인가?소크라테스(B.C469-B.C399)는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막 꽃피어나는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도시국가보다 나은 조건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은 사람들에게 사색의 여유를 주어 철학, 과학 및 여타 예술분야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철학자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또한 소크라테스는 조각일을 하는 아버지와 마을의 산파역할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평범한 중류가정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아테네의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지 않았고 이는 그가 신이 그에게 부여한 진정한 사명 을 깨달은 것에 기인한다.(이 사명에 대한 언급은 뒤에서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출신배경은 그가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게 하여 그의 철학이 정립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그의 신념을 전파하는데 보다 수월한 방법을 제시하여 주기도 한다. 그가 시장이든 길 한가운데서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선을 설파하는 장면이 본 책에서도 여러번 그려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더더욱 명확해진다.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의 아테네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집권기를 거쳐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동란을 겪었으며, 혁명과 독재의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인생이 그다지 순탄치 못했던 것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는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전하여 전과를 올리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생의 모든 과정이 그를 담금질 시켜, 현실을 뛰어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하여 탐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소크라테스는 BC 339년 젊은이를 현혹시키고 아테네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죄로 재판에 회부되어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러하였듯이 죽는 순간에도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선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였다. 그의 삶의 행적은 그가 어떠한 저서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해지지 못할 뻔했지만 그를 주변에서 지켜보았던 많은 이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Ⅲ.진리에 대한 그의 접근 방법소크라테스는 모든 만물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여 왔다. 그는 아낙사고라스 같은 자연과학자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만큼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환경에 대한 물질적 접근법을 가지고 그가 찾고 있는 절대적 진리 라는 대명제를 증명해 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神의 존재에서 그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여기서 神이란 절대적으로 善한 존재로서 인간을 지배하는 정신은 근본적으로 신을 사랑하여 善을 쫓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그가 神에게서 부여받은 사명과 절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神이 부여한 사명 이란 모든 동기를 인간 내면의 본성인 善에 의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동양식을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까지의 낡은 규칙이나 관습을 善의 가치관에서 완전히 벌거벗겨 놓았고 그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는 망설임 없이 비판하였다.또한 그는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 고쳐주기 위해서 문답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상대방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릇된 가치관의 잘못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의 소피스트들과는 차별이 된다. 소피스트란 그리스 전체에 퍼져 지식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들을 일컫는 말로써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상대성과 개인의 이성을 중시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상대방의 논리를 비판하기를 즐겼는데 이들의 이러한 논리는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절대적인 기준(굳이 따지자면 이들은 자신의 이성을 그 기준으로 삼았다)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논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神과 善으로 대표되는 正義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소피스트 자신의 이성만으로 물리치기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Ⅳ.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본 그의 신념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 의해서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에 우선한 신념에 대한 원칙을 그가 끝까지 고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친구들이 적어 내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서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신봉하는 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게 된다. 왜, 그처럼 신을 섬기고 선을 사랑한 이가 그러한 죄목을 달게 되었을까? 여기서 당시의 원고와 소크라테스 간의 사소한 문제는 중요치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무엇인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삶을 통하여 선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자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선을 이끌어 내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생각은 변화를 싫어하는 상당수의 보수주의자들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위험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 가 그토록 바랬던 소크라테스의 세계 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는 휴지조각과 다름이 없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신에 대한 믿음은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포함한 당시의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3.07.03| 4페이지| 1,500원|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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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귀계수가 BLUE가 되기 위한 조건
    ※회귀계수가 BLUE가 되기 위한 조건회귀분석이란 두 변수간의 함수관계에 대하여 회귀식으로 추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정량적 변인(연속형 변인: continuous/quantitative variables)간의 선형적(linear)관계를 추적함으로써 인과적 설명능력과 예측능력을 지닌 모형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회귀계수가 BLUE(Best linear Unbiased Estimates)가 된다는 것은 독립변인들과 종속변인 간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최적의 선형 회귀함수, 즉 회귀선을 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중회귀분석을 이용하여 각 독립변인들의 회귀계수를 계산하거나 종속변인의 값을 예측하기 이전에 연구자들은 반드시 설정된 예측모델의 적합성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측모델이 다중 회귀분석의 기본 가정들을 만족하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본 가정에 위반되는 데이터나 모델을 사용할 경우 그 결과의 해석은 많은 오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회귀계수가 BLUE일 경우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회귀계수가 BLUE가 되기 위한 조건을 알아보도록 하자.첫 번째로 회귀분석의 이론적 모형에 적합성 여부와 회귀식의 올바른 추정이다. 이는 즉 예측 값과 실제관측 값 사이에 오차가 작음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방정식에 있어서 오차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차항의 제곱의 합이 최소가 되는 기준에서 하나의 직선을 나타내는 1차 방정식을 구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피어슨에 의해 고안된 최소제곱법(ordinary least squares method)이며 이 떼 구한 직선을 회귀선(regression line)이라 부른다.두 번째로 R(Pearson's product-moment correlation coefficient, 피어슨의 상관계수)을 검증하는 것이다. 선형적 강도(liner intensity)가 바로 상관관계인 것이다. 한마디로 상관관계란 두 변인간의 함수관계를 직선으로 상정하고 분산도상의 점들이 이 직선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분포되어 있는가 하는 선형적 강도를 나타낸다. 피어슨의 상관계수란 이러한 경향을 평가하는 것으로 두 변인간의 관계가 선형적임을 가정하고 그 선형적 강도를 나태 내는 지수라는 것이다. R값의 부호는 관계의 방향을 그리고 R값의 절대치는 관계의 정도를 나타낸다. 상관계수의 목적은 두 변인간의 단순한 상호관련성을 알기 위해 이용되며 측정도구의 신뢰도(reliability)나 타당도(validity) 검증에 이용되기도 한다.세 번째로 연구자들은 추정회귀식이 얼마나 적합한 것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추정회귀식의 적합도는 R²(coefficient of determination, 결정계수)으로 측정할 수 있다. 결정계수 독립변수의 종속변수에 대한 설명력(explanatory power)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즉, 독립변인들이 종속변인의 변량 가운데 어느 정도를 설명해 주는가(%)를 판단하는 척도다. 이러한 개념을 회귀분석모형에 적용시킨다면 결정계수는 전체변동량에서 회구변동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할 것이다. 결정계수는 독립변인의 종속변수에 대한 설명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이기 때문에 0≤ R²≤1의 범위를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결정계수 R²의 값이 1에 가까울수록 독립변수의 설명력이 크고 추정된 회귀식의 적합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네 번째로 F를 검증해야한다. R²의 지표들은 구해진 회귀식의 통계적 유의도 수준을 직접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제약을 지닌다. 이들 지표가 얼마 이상의 값을 나타내면 추정된 회귀식에 총계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활용하기는 곤란하다. 추정된 회귀식에 대한 통계적 의미의 부여는 회귀모형에 포함된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에 직선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영가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 영가설은 분산분석표를 작성하여 F값을 구하는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다. F는 모형이 어느 정도의 통계적 신뢰성(statistical significance)을 지나는가를 판단하는 척도로써 회귀분석을 수행함으로써 어느 정도 예측오차를 줄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다섯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B다. B(regression coefficient, 회귀계수)는 각 독립변인과 종속변인간의 관계양상을 보여주는 계수(기울기)이다. 각 회귀계수가 의미하는 바는 부분계수로서, 즉 다른 독립변인들의 효과를 통제한 상태에서 각 독립변인의 매 단위 증가에 따는 종속변인의 증가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가설이 t-test에 의한 검증결과가 기각되었을 경우 독립변인이 종속변인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비표준화회귀계수는 독립변수의 측정척도에 따라 좌우되는 불안정성을 지닌다. 비표준화회귀계수의 이같은 불안정성은 중다회귀모형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독립변수가 둘 이상이 회귀식에서 종속 변수에 대한 독립변수의 상대적인 영향력을 비표준화회귀게수의 값의 크기에 근거하여 판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여섯 번째로 회귀계수의 이런 문제점을 해결 해줄 수 있는 Beta(standard regression coefficient)를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시키는 방안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모두 Z점(z-score)로 표준화시키는 것이다. z-score로 표준화 된 회귀계수를 우리는 Beta라고 불른다. Beta를 사용하면 상수항이 항상 0의 값을 갖게 되어 회귀식에서 빠지므로 간단해지고, 독립변수가 2개 이상인 경우 독립변수의 종속변인에 대한 상대적인 영향력의 크기는 표준화회귀계수에 비례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일곱 번째로 자동회귀현상을 고려해야한다. 회귀분석에서 시계열의 관측값이 선행된 관측값에 의존하여 자기상관을 보일 때, 즉 관측 값이 선행 관측 값들의 회귀관계를 갖는 현상을 자기회귀(autoregression)라 한다. 회귀분석 과정에서 일단 회귀식이 추정되고 나면 자기회귀현상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동회귀 현상의 임재는 교란항(오차항)간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가정한다. 오차항 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종속 변인들 사이에 체계적인 상호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속변수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면 특정한 독립변인의 값을 가지고 종속변수를 추정할 때 발생하는 오차가 추정점에서만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Geary 검증은 가장 간단하고 빠르고 쉽게 자기회귀 현상이 존재하는가를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다. Geary 검증은 단순히 회귀 잔차들의 부호가 +에서 -로 또는 -에서 +로 바뀌는 횟수를 세는 것이다. 정적 자기상관이 존재하면 잔차분호의 변화횟수가 적을 것이다. 반면에 부적 자기상관의 경우는 부호의 변화 횟수가 많아지게 된다. Habibagahi와 Pratschke의 잔차 부호의 변화 횟수로 통계적 검증이 가능한 수표로 확인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중다회귀모형에서는 독립변수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표본의 크기도 충분히 크고, 아울러 독립변수간에 다중공선성(multicollinearity)의 부재가 되어야한다. 중다공선성이란 2개의 이상의 독립변인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이 존재할 경우에는 다중 회귀분석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정계수(R²)의 크기를 제한하게 되어 다른 독립변인들을 회귀모델에 추가함으로써 추가된 독립변인들로부터 기인될 것으로 기대되는 예측력의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고 각 독립변인들의 기여 정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가 독립변인들의 효과가 중다공선성에 의해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다공선성은 colinarity statistic 가운데 tolerance 값으로 판단한다. Tolerance 값은 다른 나머지 독립변인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하나의 선택된 독립변인의 변량을 나타내므로 작은 tolerance 값일수록 높은 중다공선성이 존재함을 나타낸다.(0<T<1) 중다공선성의 존재로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으로는 독립변수간의 상관계수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간의 상관관계보다 높을 경우, 회귀계수의 표준오차 값이 매우 큰 경우, 회귀등식에 독립변수가 추가되거나 삭제될 때 회귀계수에 큰 변화가 있는 경우 또 Beta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값인 1보다 크거나 -1보다 작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경영/경제| 2003.07.03| 3페이지| 5,000원| 조회(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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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CD의 부패 논의
    Ⅰ. 緖 論부패는 인류 역사가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했으며 계속 존재할 사회적 암(癌)이다. 지난 달 서울에서 제11차 반부패국제회의와 제3차 반부패세계포럼이 처음으로 통합개최 되었는데 이는 ‘부패’라는 것이 국제정치경제에 있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1990년대 들어서 부패 현상 및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전 세계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대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97~98 ‘IMF 위기’가 고질적인 정격유착과 부패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일종의 통념으로 되면서 폭발적으로 증대하였다.) ‘IMF 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부패는 경제와 치밀한 연관이 있다. ‘그럼 과연 경제에 있어서의 부패는 부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부패현상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잇다. 부패를 ’필요악(necesary evil)‘으로 보는 경우와 ’자기파괴(self-destruction)적‘ 현상으로 보는 견해이다. 2002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40위, 일본은 20위, 또 중국은 59위에 랭킹 되었다. 이 수치를 보면 부패의 정도가 한?중?일의 경제수준과 비례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일본은 부패의 정도가 제일 낮고 반대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중국이 가장 부패한 것을 볼 수 있다. 부패가 경제발전에 영향을 준다면 부패가 우리나라와 치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어떠한 경제적 효과를 미쳤는지 알아보고자한다. 필자는 부패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언급하고 부패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한?중?일을 비교하여 알아본 후, 필자의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Ⅱ. 부패의 정의부패란 공무원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권위를 오용 및 남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공직자에 의해 행해지는 일체의 불법 부당 행위’)는 부패에 속한다. (국제은행, 세계투명성기구) 부정은 타당치 않은 행위. 불법은 위법행위. 부패는 포괄적인 용어로 불법 행위, 부정 행위 뿐만 아니라 사회적 公益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즉, 사회적 공인을 위반하거나 불법적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한 행위로 공직을 남용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며 특정한 이익을 도모하는 등 국민들의 대표자로서 공무를 수행할 의무의 책임 있는 자가 그 기대가능성을 일탈하는 모든 적극적, 소극적 행위의 총체적 개념을 의미한다.Ⅲ. 부패의 효과부패의 순기능과 역기늠 문제는 학자들에 따라서 종종 대립된 논의를 거쳐왔다. 부패가 자본축적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없다. 부패가 자원배분을 왜곡하여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성장저해론과 오히려 경제활동의 윤활유로서 자원의 흐름을 촉진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성장촉진론이 대립되고 있다.)성장저해론은 부패거래로 인한 실질적인 소유권의 침해, 이권추구와 이권창출의 폐해를 강조한다. David H. Bayles는 부패의 역기능으로서) 다양한 계층에 대한 객관적 정치지도가 불가능하게 되고, 생산적 노력의 상실과 공신력의 감퇴, 개인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부정한 방법의 횡행, 정부의 신뢰성과 권위의 추락과 국가들의 불신감 증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의 쇠퇴, 행정의 업무가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결정대신 화폐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불공정한 행정공급의 성립이 되기 쉽다는 점 등이다.반면에 성장촉진론은 부패가 관료주의적 경직성과 제도의 비효율성을 완화시키는 윤활유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J. S. Nye는 부패의 순기능으로서 자본의 형성과 번문욕례(red tape)를 제거하고, 기업가정신에 인요소를 부여함으로써 경제발전을 도모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통적 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어서 부패는 엘리트의 새로운 상류층의 계층으로 승계하는 역학관계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고 한다.)Ⅳ. 부패의 경제적 효과 (한?중?일 중심으로)앞에서는 부패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에 대해 알아봤다. 그럼 한국, 중국, 일본에서 부패는 순기능을 했는지 역기능을 했는지 비교?분석 해보도록 하자.비교적 많이 알려진 견해에 따르면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에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패가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순기능을 한다"가 아니라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대체로 국민소득이 3천불 이하의 국가에서는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관료들이나, 여타 실권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 경제시스템의 원활한 진행을 가로막는 제 장애요소를 뛰어 넘거나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불필요한 규제나 비합리적인 시스템, 악법 등으로 인해 지연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제반 투자나 경제 등이 뇌물이나, 급행료 등으로 회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의 대표적인 예로는 대체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중국이다.하지만 부패가 경제발전에 순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견해마저도 경제시스템이 비교적 원활하게 작동하고, 국민소득이 1만 불이 넘어서면 부패가 개연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이러한 순기능은 오히려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부패가 시장의 기능에 장애를 조성하고, 뇌물이나 부패로 투입으로 나타나는 output이 input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때는 부패가 단순한 기능장애를 넘어서 구조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를 겪었던 97년에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막 넘어섰다고 샴페인을 터뜨렸었다. 즉, 우리나라는 IMF 때 부패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전환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나라에서 부패는 경제발전을 촉진시켰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 반대로 현재 중국이 왜 저발전상태에 있는가에 대해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부패와 경제발전문제는 다각적으로 보아야할 문제이다. 우선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는 경제체제와 발전전략의 차이가 존재했었고, 중국이 우리나라의 70, 80년대와 같이 수출 지향적, 대외개방형 발전전략을 채택한 이후로 나타나는 모습은 이전 우리나라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같은 문화권 안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부패의 효과는 같으나 발전의 시기적 차이 때문에 효과가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또한 부패가 그 사회를 움직여나가는 시스템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으며, 그 사회의 부패에 대한 인내, 합리적 사회문화의 정착 정도 등이 각 나라의 부패에 대한 차이를 나타내는 주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가령 같은 아시아 계통이라 하더라도 인도와 중국의 부패 문제는 상당히 다르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인도사람들은 부패가 시스템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시스템이 개선되면 부패는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시스템 자체가 갖추어져 있지 못해서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새롭게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현재 중국은 과거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본적적인 경제발전의 장애요소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관쯔"(관계)라는 전형적인 중국의 '미덕'이 심각한 부패 친화적 문화의 대표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서부터 중국이 본격적인 반부패운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부패사범에 대한 인민재판과 공개처형 등은 심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내외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부패를 억제하겠다는 중국당국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부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GDP의 15~16% 정도라고 한다.그럼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일본의 경우는 과연 어떤가?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룩한 일본과 우리나라의 부패에 대한 시각의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같은 경우 시민사회의 발전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보다 급속하고 광범위하지 못한 이유로 부패가 공직사회와 정경유착에 많이 몰려 있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보다 청렴도에서 앞서있는 일본은 1990년대에 심각한 경제침체를 경험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홍콩의 한 경제전문지는 일본이 이러한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원인이 부패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각종 게이트와 조직폭력에 의해 발생한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함에 따라 1990년 이후 10년 이상 ‘게이트 침체(Gate Recession)’ 혹은 ‘야쿠자 침체(Yakuza Recession)’를 겪고 있다.”라고까지 묘사했다.) 국내 한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만약 우리나라의 청렴도가 일본 수준으로 개선된다면 경제 성장률이 약 1.4%-1.5% 정도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사회과학| 2003.07.03| 5페이지| 5,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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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정치에 대한 입장 비교 평가B괜찮아요
    Ⅰ. 緖論한국의 민주주의는 서양 민주주의의 자발적, 강제적 수용에서 출발하며, 우리의 서양 민주주의의 이해는 고대 그리스 정치사상의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이해는 대단히 평면적이고 정태적이다. 여자, 어린이, 외국인, 노예를 배제한 민주주의, 식민지 개척에 기반을 둔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이를 다시 실현하려고 하는 사상가들의 노력 등이 우리 이해의 대강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민주주의 자체의 역동성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와 갖는 역동성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많은 사람들은 왜 25세기 전에 쓰여진 플라톤의 『국가』가 불후의 저작으로 많은 사상 전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이는 『국가』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21세기 현실정치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들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질문의 대답을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정치학』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 체계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욱 많으며,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은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플라톤 철학에서 지성 개념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국가』편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성을 지녀야만 하고, 지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참된 인식이 아니라 단순히 의견(doxa)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가 『국가』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철인 치자는 바로 지성을 최대한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정치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자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있어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유에서 여유로움이 나오고, 여유로움의 사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대한 입장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도록 하겠다.Ⅱ. Plato and Demokratiaⅰ. 민주정체의 등장배경과두정체에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무절제하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 돈벌이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 일부는 무위도식하는 반면, 일부는 빚을 지고, 시민권을 박탈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돈벌이를 제외한 다른 것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훌륭함(덕)에 대해서도 마음 쓰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소유하게 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 있는 나라는 사소한 핑계로, 외부에서 과두 정치하는 동맹세력을 끌어들이거나, 다른 쪽이 민주 정치하는 동맹세력을 끌어 들여 내란을 치르거나 아무런 외부 영향 없이 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민주정체가 생기게 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다른 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추방한 다음,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하게 되고, 또한 이정체에서 관직들이 대체로 추첨에 의해서 할당될 때')에 민주정체가 수립되는 것이다.ⅱ. 민주정체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최대의 제자이며 소크라테스의 학문을 조직화하고 발전시켰다.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것과는 달리 최고선이 존재하며, 학문의 이성적인 절차를 밟으면 최고선은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우선 교육이 없고 학문 연구와 인연이 없는 일반 시민이나 시민의 여론이 정치의 담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성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한 정치, 즉 귀족정치의 주장자로서의 터전이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정치 밑에서 사형을 받고 난 뒤에 플라톤이 시민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우민(愚民)정치로 간주했다는 데서도 명백한 것이다.플라톤의 청년기는 아테네의 패배로 끝난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시기로, 전쟁의 패배,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처형으로 극에 달한 지도력, 도덕성, 법의 타락상에 환멸감을 느낀 플라톤은 정치적 통제는 소수의 매력적으로 다양한 사회가 형성될 것이나 결국은 욕망의 탐닉과 정치적, 도덕적 권위에 대한 존경을 붕괴시키는 자유방임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플라톤에게 참주 자체는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안정성 있는 해결책이 아니었고 철인왕의 지배가 유일의, 그리고 최고의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단정하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영혼의 삼분설’에서 영혼을 활동에 따라 이성, 의지, 그리고 욕망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영혼이 추구하는 덕은 각각 지성, 용기, 절제이고 이것들이 합하여 정의를 이룬다. 즉, 정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성의 덕이 뛰어난 사람이 통치를, 용기의 덕이 발단된 사람이 수호를 그리고 절제하면서 살아가는 다수의 시민들이 존재하는 국가가 이상국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플라톤은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를 ‘각자가 자기 맡은 일을 하는 것’으로 내리고 있다. 이는 즉, 한 국가의 정의는 가각의 계급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기의 직분에 충실했을 때 달성된다는 것이다.플라톤은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완벽한 정체로 보지 않으며, 나아가 민주 정체적인 인간도 정의로운 인가의 표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두정체 내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을 겪었던 대중들의 승리로 얻어진 정체는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두게 되었고, 이는 플라톤이 4덕목중 하나로 꼽았던 ‘절제’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자유는 사회의 절제를 담보하는 법체계 등을 무너뜨리며, 지나친 평등이 통치의 비전문성을 가지고 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면들은 차츰 자유와 평등을 방종과 만용, 중우(衆愚)등으로 변질시키게 된다.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적대시했으며, 아테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는 정치적 무능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고, 아테네 민주정치가 화폐적 부에 좌우되는 금전적인 것이며 극단적인 폭력성과 당파성을 나타낸다고 비난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있어서 헌신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특정 계급의 정치지배에 사실상 가담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재산의 차이로 말미암은 당파적 대립과 무능은적 정치 신념을 부정하는 데 성립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시민은 그들의 능력의 범위 내에서 정치상의 의무와 특권을 분유한다는 것이 아테네의 정치적 신념이었으며, 아테네 민주제에 있어서 압력과 부담을 경험하고 경험의 표현으로서 여론의 가치가 인정되고 있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과두정치의 정반대의 정치형태이며 빈민대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형태로 보았다.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가 있지 않겠나?”)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정치에서는 불평등이 평등으로 간주되고 자유가 남용된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플라톤에 있어서 민주정치는 빈민정치였다. 플라톤은 민주정체와 그 인간형은 ’만족할 줄 모르는 자유‘로 인해서 무너지게 된다고 마무리 짓고 있다.Ⅲ. Aristotle and Demokratia?민주정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아리스토텔레스는 정체를 6가지로 분류하는데 이 기준은 국가의 통치권이 어디에 있느냐, 즉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어느 계층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민주제는 과연 어떤 형태의 정체인가?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치계층에 따라 통치권의 소유자가 일인인 경우 군주제, 소수 계층일 경우, 귀족제, 그리고 공화제로 나눈다. 공화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본 것이다. 공화제는 내용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권력분배의 원리로 삼되 중산계층이 다수가 되고 이 다수의 중산층에 의해 지배되는 안정적 국가를 지칭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진정한 공동체는 거래하고, 방어하고, 욕구 또는 결여를 교환하는 신체의 공동체가 아니라 다에서 일로,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적 존재로서의 영혼의 공동체이다. 국가는 인간의 신체적 존재 조건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 조건이다. 국가의 삶은 인간의 삶의 핵심이고 훌륭한 삶의 내용은 도덕적이고 지적인 삶의 영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제안한 정체, 그리고 현대의 민주주의은 집단의 능력과 동일하지 않고 다수자는 1인보다 타락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었고 현실의 국가에 있어서는 법치적 민주정치가 최선의 것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법치적 민주정치는 근대의 민주정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정치형태는 혼합정치에 해당하며 그에 있어서도 과두정치와 민주정치의 혼합형태인 것이었다. 법치적 민주정치에서는 시민이 집행장관을 선출하는 것이나 주권적 시민 위에 법의 주권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법치적 민주정치는 경제적으로 과도히 부유하지도 않고, 또 빈곤하지도 않음으로써 완전무장할 수 있는 다수의 중산계급의 정권인 것이다. 중산계급은 빈곤 때문에 타락하지도 않고 부유하기 때문에 당파를 만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러한 시민계급이 존재하는 경우 국가의 민주적 기초는 성립하게 되고, 행정관의 책임을 공평하게 추궁할 수 있고 대중에 의한 정치적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우수한 인물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민주정치와 과두정치가 혼합해서 존립할 수 있는 기초가 있다는 것이며, 정치적 민주정치가 행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떠한 정치형태도 절대적인 정당성을 갖는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결론은 이상국가의 정치는 ‘입헌적 지배가 가장 정당하다는 이론’이 정당하다는 그의 견해를 재확인 한 것이었다.또 하나의 기준을 도입하여. 각 통치 집단이 국가의 올바른 목적을 성취하려 하느냐, 즉 그 집단이 국가 구성원 모두의 이익 증대를 도모하느냐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통치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하려고 할 때 그릇된 정체가 탄생하는데 그 것은 위 세 가지 정체에 상응해 각각 참주제, 과두제, 민주제이다. 이렇게 볼 때 민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두 가지의 기준에 의해 분류해 낸 여섯 개 중 하나로 아테네 전체 시민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증대시키는 편파적 당파적 정치 형태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통치자 수에 따른 분류는 국가의 본질에 관계해 볼다.
    사회과학| 2003.07.03| 7페이지| 5,000원| 조회(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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