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재료공학부 재료공학과 3학년 9749896 이상일* 한국 광고 100년 사에 대해광고는 사회의 거울이며, 경제, 사회, 문화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를 알고, 사회의 변화에 따른 광고의 특성을 알아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는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 제 4호에 실린 아쉽게도 광고주가 독일 무역상인 세창양행 광고였는데, 광고라는 말 대신 고백이라고 사용했다. 구한말에 광고는 대한매일 신보나, 독립신문에 실렸는데 1896년에 독립신문에 정기적으로 광고를 했고, 사실적 내용 위주 광고가 특징이다. 당시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을 몰랐고, 자기자랑에 익숙치 못해 광고를 하지 않았다. 다만, 신문을 통해 광고에 대해 접했으나, 대개 나라나 민족을 걱정하는 내용, 개인의 신상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현대에 비해 표현법이 다양치 못해 idea로 광고를 했는데, 광고를 거꾸로 인쇄, 가로로 뉘어서 인쇄, 신문이 접히는 곳에 광고를 한 것이 그것이다. 한일합방 당시는 일본상품이 한국시장과 신문을 독점했다. 일본이 근대적 기업을 설립했는데, 유한양행, 화신백화점, 경성방직이 그것이다. 이렇게 한반도에 공장을 지어 공산품이 증가가 광고가 증가로, 그에 따른 광고 표현법도 증가했다. 선정적이며 대담하고, 멋있는 광고가 많았고, 그 당시 상품으로 지금까지 이름있는 상품도 있다. 광복이후는 정치적 광고가 많아 물건 광고는 뒷전이었고, 6.25이후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러, 광고는 포고문, 공고문이 대부분이어서, 상품광고는 없었고, 민족의 분열로 잃어버린 핏줄을 찾는 광고가 많았다. 그러나, 질병, 영양상태의 악화로 약광고는 더러 있었는데, 원기소, 에비오제 같은 영양제가 그것이다. 60년대는 경제기반 구축시기로 제품이 다양하지 못했고, 양도 적었고, 기업끼리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광고가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으나, 바루산이라는 소화제 광고, 선풍기 광고가 있었다. 또한, 라디오, TV라는 매체가 등장했는데, 광고는 TV가 라디오보다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TV는 그 당시 약 3000여대 정도 밖에 없어 TV를 들고 다니면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광고 효과가 별로 없었고, 화질도 안좋아 광고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배우들 또한 비싸서, 만화를 이용했는데, 이는 소재표현법이 다양하고 강한인상을 주나, 과장, 저속한 것도 있었다. 라디오는 부산 MBC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제품 회사 사장의 요구대로 광고를 해 상품명을 강조하는 윤어식의 광고가 많았다. 얼마 후 최초의 CM송인 진로의 CM송이 나왔는데, 내용은 전쟁 뒤 재건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술을 마시고 달래자는 것이었다. CM송은 광고의 딱딱한 정보를 달콤하고 저항감없게 하는 특징이 있고, 그 당시의 유행가를 모방하기도 했다. 우리마을이라는 유행가를 미싱의 CM송에 사용한 것이 그 예이다. 성우들의 광고에 대한 편견으로 라디오 CM에 어려움이 있었다. 60년대 말 경제 규모가 커져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 외국광고의 기술을 수입하기도 할 만큼 광고계가 활성화됐다. 광고대행사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으며 광고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고, 그래픽디자이너도 생겨 광고의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70년대 초는 수출의 붐이 일어 경제가 커져 광고의 내용 표현방식도 다양했고, 서구문명을 거르지 않고 받아들여, 소비풍조를 조장했고, 백화점, 슈퍼가 생겨 사람들이 광고의 필요성에 대해 더 높은 관심을 가졌다. 표현법도 다양해져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고기가 말을 하는 등의 방식도 사용했다. 70년대 말 기업들의 경쟁으로 과장광고, 사회적 혐오감을 주는 광고가 생기고, 형태 또한 다양해져 광고의 규제가 시작되었다. 대기업의 등장과 함께 단순한 상품광고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기업들이 기업광고를 시작했고, 고상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기 위해 Humanism을 내세웠다. 80년대 이후, 칼라 TV 시대로 생생한 모습을 광고하고, 시각적 효과도 늘어, 광고계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파는 사람은 효과적 광고를 사는 사람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광고를 원했고, 심리적 광고를 추구했다. 광고란 단순히 사회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되었다. 이를테면, 사회에 활력을 주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광고인과 소비자는 광고의 정확한 이해와 비판으로 올바른 광고가 방송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상대주의와 과학-비과학 구분문제: 창조-진화 논쟁의 경우과학철학 2000년 12월 출간박희주(서울대 강사)19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상대주의 과학관은 그 동안 신성시되어왔던 과학지식의 위상을 근본에서 흔들며 뜨거운 논쟁을 유발했다. 이 글에서는 과학-비과학 구분문제를 둘러싼 창조-진화논쟁을 대상으로 상대주의와 실증주의 과학관이 일으켰던 갈등을 분석한다. 실증주의에 대한 상대주의의 반란에 다시 실증주의의 반동이 거듭되는 최근의 상황은 과학철학의 내부적 논리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며 과학철학이 놓여진 외부적 상황을 감안해야한다. 여기서 창조-진화논쟁은 이러한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외부적 이슈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주제어: 상대주의, 사회구성주의, 창조론, 진화론, 과학-비과학 구분문제70년대 영국 에딘버르 대학의 과학사회학 연구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상대주의 과학관은 과학의 내용자체를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며 기존의 과학관에 대담한 도전장을 던지고 나선다. 전통적으로 과학이론은 실제세계와 일대일 대응하는 지식으로서 이념, 종교, 철학 등과는 구별되며 또한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과학지식은 발견되는 것이지 발명되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 가치중립적, 객관적 지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절연된 과학지식은 따라서 지식사회학의 분석대상에서 제외 되어왔으며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은 과학이론을 제외한 여타의 제도적 측면에 국한되어왔다.{) 전통적인 과학사회학적 접근으로는 Robert K. Merton의 The Sociology of Science: Theoretical and Empirical Investigatio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를 보라.그러나 사회구성주의라고도 불리는 새로운 과학사회학은 과학지식의 이러한 예외적인 지위를 부인하고 이는 발견된다기보다는 여느 지식 체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과정을 거쳐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과학지식의적 분석 자체에도 이상의 원리들이 적용 되어야한다.과학지식의 내용이 사회적 영향이나 가치로부터 완전히 절연되어 중립을 유지한다는 실증주의 과학관 하에서는 그 지식에 담겨진 자연의 실재는 과학 외적인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만큼 왜곡된 것으로 간주된다. 외부 영향에 오염된 과학지식은 부정확한 내지는 틀린 과학이며 이러한 오류의 과학만이 사회학적 요인에 의한 설명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Strong Program 은 어떠한 과학지식의 생성에도 사회적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며 따라서 정상적인 과학도 과학 내적 논리 뿐 만 아니라 과학외적 요인에 의해 그 생성과정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비정상적 과학 혹은 과학적 오류에만 적용되던 사회학적 설명이 정상과학에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설명에 사용되는 과학 외적 요인들 역시 양자에 대칭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칭성의 원리는 한 현상을 두고 다양한 이론이 서로 경쟁하는 과학논쟁에 적용되어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다. 미시적으로는 과학지식의 생산현장인 실험실에서 그 생산과정에 대한 직접적 관찰을 통해 그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개관은 각주 3 에 언급된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7 장을 보라.이뿐만 아니라 Strong Program의 주창자들은 이 접근이 과학 아닌 지식체계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H. M. Collins 같은 보다 극단적인 상대주의자들은 이를 초능력 같은 초월적 현상에 대한 논쟁의 분석에도 적용하여 많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H.M. Collins, "The construction of the paranormal: nothing unscientific is happening," in R. Wallis ed. On the Margins of Science: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jected Ktcher의 다음 글을 인용한다.{) Philip Kitcher, Abusing Science: the Case Against Creationism (MIT Press, 1982)전체 생물 계통을 종으로 세분하는 하나의 객관적 방법은 없다고 나는 믿는 다. 다만 어떤 생물학적 특성은 강조되고 다른 특성은 약화되는 부분적인 해 답을 제공하는 다양한 분류방식들 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종의 문제에 있어 계통을 분류하는 합당한 여러 대안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관점을 채택할 것을 나는 (다시 한번) 제안한다.{) Philip Kitcher, "Some Puzzles About Species" in Michael Ruse (ed.), What the Philosophy of Biology Is. (Dordrecht: Kluwer, 1989) p.204각주 9의 Pluralism, Logical Empiricism, and the Problem of Pseudoscience"에서 재인용.또 다른 생물철학자 John Dupre는 종의 문제에 있어 방법론적 편의주의로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이러한 Kitcher 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물세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때 다원주의적 접근은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관점은 창조과학을 반대하는 그들 자신의 입장과도 결국 상충될 수밖에 없다고 Reisch는 비판한다. 왜냐하면 다원주의적 입장은 사이비 과학을 정상과학으로부터 구분하여 축출하는 엄밀한 과학철학적 기준의 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며 또한 이는 다음에 설명할 창조론자들의 소위 두 모델 접근법 Two-Models Approach" 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과학이 비과학이라기 보다는 저질과학 (bad science) 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Dupre의 입장을 비판하며 미국헌법은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금할 따름이지 저질과학의 진입을 막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Reisch는 창조과학 같은 년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주 의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동등시간법이 통과되자마자 미국시민자유연맹 (ACLU) 이 나서서 이 법의 위헌성을 제소한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1925년 테네시주의 반진화론법에 반대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스코프스논쟁을 연출한 바 있다.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국가공공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도록 규정한 동등시간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제소의 요지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과학성이 재판의 핵심문제로 떠올랐다. 아칸소주에서만 정식 재판이 열렸는데 하일라이트는 창조 진화 양측이 동원한 전문가들의 일주일에 걸친 증언이었다. 양측에서 모두 자기 측을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 신학자, 교육전문가들을 동원하였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진화론 측의 생물철학자 Michael Ruse 였다. 오늘날 대표적 생물철학자중 한사람인 Ruse는 증언에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음 다섯 가지 과학의 요건을 제시하였다.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에 (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가능 해야한다.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Michael Ruse, "Michael Ruse: Witness Testimony Sheet, McLean v. Arkansas," in Michael Ruse (ed.), But Is It Science: The Philosophical Questions in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New York: Prometheus Books, 1988) pp.300-304William Overton 판사는 이상의 요건에 비추어 볼 때 창조과학은 초자연적 설명에 바탕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독단적인 믿음에 근거하므로 과학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렸고 이에 근거해 동등시을 가정한 뉴튼이나 다윈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정리하면 문제의 핵심은 다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과학의 범주를 창조과학 이 만족하느냐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증거가 진화론과 창조과학 어느 쪽에 보다 강력한 논거를 제공해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다고 Laudan은 결론짓는다.{) Ibid. pp.18-19같은 호에 실린 반론에서 Ruse는 창조과학이 저질과학이며 따라서 과학교과과정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Laudan의 접근은 법정논쟁에 적용되기에는 전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미국 헌법은 공립학교에서 종교의 가르침을 금하지 저질과학을 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 측의 전략은 창조과학이 과학의 범주에 전혀 속하지 않음을 보이는 쪽으로 기울었고 Ruse에게 이를 증명하는 역할이 주어졌던 것이다. Ruse의 반론은 창조론자들의 독단성을 지적하는 법정 증거를 되풀이하며 재판결과를 옹호하는 선에서 그쳤다.{) Michael Ruse, "Response to the Commentary: Pro Judice,"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7, Fall 1982, pp.19-23이어 아칸소 법정논쟁에 Ruse와 함께 참여했던 철학자이자 법률가인 Barry R. Gross가 Ruse를 거들며 중재에 나섰다. Gross는 자제가 필요한 몇 가지 이유 라는 글에서 무엇보다 Ruse의 과학-비과학 범주는 철학 토론을 위한 세미나실이 아닌 법정에서 제시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구적 토론의 목표가 끝없는 진리추구라고 한다면 재판의 목표는 제한된 시간 내에 판결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Laudan의 전략은 법정투쟁에서 승리하기에는 순진한 접근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Barry R. Gross, "Commentary: Philosophers at the Bar - Some Reasons for Restra-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