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우리는 흔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종교 등의 축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구분한다. 이러한 계통분류는 상당히 모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계(系) 들은 완벽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거대한 사회를 돌아가게 한다.이러한 유기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하나의 사회구성요소가 특정한 한 분야에만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령 TV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면, 이것은 문화이지만 경제이기도 하고 또한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욘사마 열풍을 볼 때 외교, 즉 정치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상당히 큰 축을 이루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 라는 영상매체는 어떠한가? 우선 영화는 문화이자 경제이고,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상기해 보면 정치이자 군사이기도 하다. 또한 교육영화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종교영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기록영화를 보면 영화없는 우리 사회를 상상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우리사회와 영화의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모두 살펴본다거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영화를 싫어하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알게 모르게 영화에 영향을 받아 나 자신의 가치관이 생겨났다는 명제를 부정할 수 없는 법학도로서 현대사회와 영화의 관계를 고찰해 보는것은 상당히 흥미로울 듯 하다.영화가 우리자신의 반영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무수히 많다. 최근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업영화가 난무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황금만능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고도의 산업화된 사회의 희망없는 우리 톱니바퀴 들은 일탈을 주제로 한 영화들의 유행을 불러왔다.물론 그 반대로 영화도 우리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된다. 옛날 어떤 똑똑한 독재자들은 이러한 영화의 학습효과를 알고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화의 이러한 학습효과는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많거나 적거나 영화에 영인권은 이미 무시해버렸다. 어쨌거나 일어나선 안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혹자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청소년들의 음란물 노출이 이러한 사건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가해자들이 얼마나 일본 음란 비디오를 많이 보아왔는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포르노 접촉횟수의 증가, 그리고 그 내용의 단조로움은 보는이로 하여금 식상함을 가져왔다. 이는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하였고 경제논리에 따라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영상들이 제작되게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스너프 필름이나 일본식 집단강간 영상은 인격이 확실히 성립되지 못한 청소년의 도덕적 가치관을 쉽사리 흔들어 놓는다. 이로 인해 정말로 밀양사건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영화는 금지된 것을 보려는 충동, 교과서가 가르치는 보편적인 윤리관에서 이탈해 있는 것을 조금씩 확인하는 쾌감이다. 그 위반의 쾌감 가운데 으뜸은 性이다. 영화와 性의 관계는 뗄 레야 뗄 수가 없다.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주인공 노먼이 여자의 나신을 훔쳐보는 방의 열쇠 구멍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 관람 체험의 본질을 가리키는 은유이다.밥을 먹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행위처럼 性은 생물학적 본능에 따른 쾌락이지만 다른 어떤 본능보다 더 많은 사회의 제재를 받는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금욕적인 윤리관을 교육시킨다. 일단 성이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사회는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다. 만약 성의 쾌락을 사외가 용인해 주면 대중의 쾌락의 욕구는 더 큰 욕구를 낳고 그것은 사회의 큰 혼란을 몰고 올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도덕의 이름으로 자유로운 성을, 성 표현을 금지한다. 그러니까 성은 영화에서 어떻게 미학적으로 표현하려 해도 늘 도덕과 부딪히게 마련이다. 자유분방한 성 표현은 자본주의의 이성애, 가부장제의 존속 기간인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성을 즐겨도 좋다고 은근히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성은 정치와 권력에 치중해 있다. 남자들은 혼전의 동정을 잃어도 에 따라 조직하고 관리하려 든다. 대다수 사람들은 성을 내면화된 도덕에 따라 억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성을 드러냈을 때 제일 먼저 부각되는 것은 사회의 권력 관계이다. 우리는 성을 인간관계의 소통 양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권력과 돈의 유무에 따라 성의 지배 피지배 관계를 사회적으로 위계화 시키는데 익숙하고 또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가부장적인 성 의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포르노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훔쳐보고 싶은 염탐꾼의 욕망을 유혹하면서 솔직한 척 하면서 비겁하게 꾸미는 장르가 포르노다. 포르노 속의 풍경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도 일반 극영화도 이런 성애 묘사를 노골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어쨌든 포르노도 위반의 쾌감과 연관돼 있는 판타지 인 것이다. 그런데 포르노의 중독성이란 지금 보는 것에 실망하고 더 괜찮은 것, 진정으로 감각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을까, 라고 기대하는 심리에서 나오는 듯 하다. 대부분의 포르노는 남녀가 만나 눈이 맞으면 곧바로 남녀의 성기 주변으로 화면이 클로즈업되는 상상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치한 화면으로 이루어진 것이다.2. 영화와 폭력주유소습격사건의 주인공들은 단지 심심하기 때문에 주유소에 가서 흉기로 사람을 위협하고 금품을 빼앗는다. 심지어 경찰을 감금하고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임을 인질들에게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관객의 친구이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되어 주유소를 턴다. 이러니 주유소습격사건 을 보고 식칼을 들고 주유소를 습격했다는 어느 젊은이의 뉴스가 당연하다고 까지 느껴진다.하지만 이게 폭력영화의 현실화 라는 명목에서 1위는 차지하지 못할듯 싶다. 지존파가 있지 않은가!우리나라의 조폭 영화의 시작은 게임의 법칙 (94년)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넘버3 초록물고기 비트 친구 파이란 신라의 달밤 이 흥행하면서 10년 가까이 흥행 장르로서의 지위를 누려 왔다.조폭 영화는 고전적인 활극(活劇)영화와는 활보하는 공간은 음모와 폭력이 판치는 도시의 뒷골목이며 이들은 오직 세속의 욕망, 즉 돈과 권력을 위해 부하들을 조직하고 폭력을 이용한다. 넘버3 의 불사파 두목이 벤츠 타고 룸살롱 안방 드나들 듯 할거야 라고 호언하는 장면은 조폭 영화의 등장 인물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준다.영화평론가 곽한주씨는 90년대 조폭 영화가 융성하게 된 토양을 한국 사회가 급격히 소비 사회로 전환한 것에서 찾았다. 정치적으로는 군부 독재가 사라지고 경제적으로는 단군이후 처음 으로 풍요를 누리게 된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남성의 소외가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화 의 뒤안에서 직장에서는 컴퓨터, 영어 등 생존기술을 터득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권신장으로 가부장적 기득권이 흔들리는 사태를 맞아 무력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조폭 영화는 이처럼 위축된 남성이 허구적으로나마 스크린에서 폭발하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안식처의 구실을 했다.조폭 영화는 장르적 유사성을 볼 때 할리우드의 갱스터무비나 홍콩 누아르, 일본의 야쿠자 영화와 닿아 있다. 이 중에서도 야쿠자 영화와 친화성이 강하다. 야쿠자 영화는 보스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명에를 중시하는 사무라이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60년대와 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주인공들은 조직을 위해 검과 주먹으로 상대 패와 일대 격전을 벌였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개 주인공의 비장한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야쿠자 영화는 시대착오적인 탐미주의와 함께 나름대로의 폭력 미학을 구축했다. 야쿠자 영화 덕에 일본 영화는 쇠퇴의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작년 한국에서 개봉한 철도원 의 주인공 다카쿠라 켄 같은 야쿠자 영화의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던 이 장르는 최근에는 소나티네 하나비 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를 통해 맥을 잇고 있다.최근 우리 사회에서 조폭 영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지나치게 많이 제작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등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에 잇따라 성공, 우리 사회에 조같은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대중매체, 특히 영화의 사회적 파급효과는 크다. 따라서 영상 물에서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 모방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3. 헐리우드 영화와 문화종속어릴적에 누이가 고등학생 시절에 함께 TV를 보다가 한 얘기가 떠오른다. 멕가이버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누이의 선생님이 그랬단다. 이게 미국에서 백인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주입하려고 만든 드라마라고. 실제로 제작사에서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한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고 이야기 한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헐리웃문화의 문화지배현상을 걱정해서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한국전쟁 이후 국내 외화 시장을 68%나 점유해 온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의 정신문화에 끼친 악 영향을 수치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지배적인 현상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수용자인 관객과 한국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수용자인 관객의 측면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국내 외화 시장의 장악이라는 표면적 현상 외에도 왜곡된 시각을 관객에게 심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 속의 일상적 모습들, 즉 자동차나 의상, 음식, 집, 각종 상품 등이 맹목적 동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멋진 차를 본 관객은 그 차를 갖고 싶다는 문화적 동화 과정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욕구는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비적인 경우가 많으며, 실제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그 차를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그러한 차를 갖고 있는 계층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자동차는 미국 차이며 관객의 미국 차에 대한 동경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자국 차에 대한 불신감을 의미한다. 또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삶이 'good life'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킴과 동시에 소비 지향적 성향과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객에게 직접 주입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한다.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