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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CRM 완성
    CRM 완성
    ◆ 목 차1. CRM의 개념1.1. CRM의 정의1.2. CRM의 필요성1.3. CRM의 중요성2. CRM의 역사2.1. CRM의 등장배경2.2. CRM의 시대적 변천3. CRM의 특징3.1. CRM과 DBM과의 차이점3.2. CRM의 e-CRM의 비교 및 차이점3.3. CRM의 구성요소 및 구축4. CRM의 구축사례4.1 일반구축사례4.2 구체적 기업 사례5. CRM의 문제점 및 향후전망5.1 CRM 문제점5.2 향후전망1. CRM의 개념CRM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CRM은 다양한 정의와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정의와 개념들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또 다시 정의와 개념에 대한 재정리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인 CRM의 특징과 구축에 앞서 여기서는 CRM의 정의, CRM의 등장배경, CRM의 시대적 변천,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1.1. CRM의 정의지금까지 CRM에 대해 관련 업체나 연구기관에서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CRM이란 신규고객 획득, 기존고객 유지 및 고객 수익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 행동을 이해하고, 영향을 주기 위한 광범위한 접근이다(가트너 그룹)CRM은 고객에 관한 지식을 지속적으로 듣고, 추출하고, 대응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들로서, 기업이 고객의 needs, 기대치 및 행동을 더 잘 이해하게 하고, 이를 통해 dynamical하게 사업기회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Meta Group)CRM은 기업이 고객을 발굴하고, 선정하고, 획득하고, 개발하고, 유지하는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이다(IBM)위의 정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CRM은 기존의 DBM이나 1to1 marketing에서 이야기되던 것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첫째로 솔루션 측면에서는 CRM은 데이터웨어하우징, 데이터마트, 데이터마이닝등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DBM보다 진보된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마케팅 정보시스템과 Sales Force Automation(이상 SFA), C 두고 수없이 많은 기업이 경쟁하고, 언제 새로이 등장할지 모르는 신규 진입자와 언제 상품을 대체해 버릴지 모르는 대체상품까지 고려해야만 하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은 고객을 더욱 많이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 들어가게 되었다.2.1.2. 고객중심으로의 변화◈다양해진 고객의 요구고객의 요구는 더욱 복잡해지고 애매해져, 다양한 방식의 대응을 요구하게 되었다. 고객을 이해하고, 유지하고, 신규고객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 기업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Economic Intelligence의 1998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활동이 1998년 현재제품, 서비스중심의 활동(44%) 에서 5년 후 고객중심의 활동(51%)으로 바뀌어 간다고 한다.국내에도 외국의 선진기업들이 다수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며, 국내기업들도 더 이상 획일적인 조직운영과 대량생산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선진 외국기업들의 오랜 기간 축적된 마케팅 노하우와 고객 데이터베이스 등의 고객중심 경영기법은 국내 기업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객 가치의 변화-“실제로 기업에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은 20%의 고객이다. 나머지 80%의 고객은 잠재 수익력이 20%이하에 불과하다.” (AMR RESEARCH)-"새로운 고객을 획득하는 비용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의 3~5배가 소요된다."-"미국의 기업들은 5년마다 자사 고객의 절반을 잃는다”(Havard business Review)-"만족한 고객은 그 경험을 새로운 5명의 고객에게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고객은 그렇지 않은 고객에 비해 6배 정도 기업에 이익을 준다."-"만족한 고객은 일반 고객에 비해 50% 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한다."위와 같은 일련의 연구결과들을 통해, 수익이 되지 않는 고객에게 많은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가 기업들은 깨닫게 되었다. 고객 중 기업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은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것이다.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란 용어를 쓰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가 일개 부서 차원이 아닌 전사적으로 전개해야 함과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개되야 함과 일방향적이 아니라 양방향적으로 서로 주고 받아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3. CRM의 특징3.1. CRM과 DBM과의 차이점◈ 공통점 : CRM, DBM 모두 고객에 대한 기업 내·외부의 데이터와 정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차이점 : 시대적 흐름에 있어 CRM은 DBM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CRM은 기존의 DBM이나 1to1 marketing에서 야기되던 것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DBM - 1 마케팅 부서의 몫, 상품 홍보가 필요한 시기에 진행되고 그 반응에 대한 평가 나 관련 데이터 축적 등은 일회적이고 일개 부서 차원에서 머물러 있음.2 예를들어, 영업부에서 얻어진 소비자에 대한 인적 사항이나 선호도, 구매데이타 는 상품기획이나 생산계획에서 공유되지 않고 영업사원 머릿속이나 서류에 정리 되어있음.CRM - 1 CRM은 데이터웨어하우징, 데이터마트, 데이터마이닝 등으로 포괄한다는 점에 서 DBM보다 진보된 기술 포함.2 마케팅 정보시스템과 Sales Force Automation(SFA), Call Center를 모두 망 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업, 마케팅, 서비스의 고객관리 프로세스를 모두 포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DBM이 주로 IT부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relationship marketing이 마케팅 부서차원 에서 이루어지던 것과 달리, CRM은 CEO 혹은 CCO(chief of customer office)의 주도 하에 전 사원이 고객지향의 마인드로 무장하고, 전사적 프로세스가 고객지향으로 개선 되고, 전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구축된 전제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3.2. CRM의 e-CRM의 비교 및 통합전략3.2.1. 공통점CRM과 e-CRM의 공통점은 고객과의 축하지 않고, 필요한 것부터 구축하면 많은 돈을 절감할 수 있다.주방 기구 일체를 갖춘다고 좋은 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기구의 사용법을 익히느라, 정작 요리 솜씨를 가다듬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주방 기구는 요리 솜씨가 늘어가는 만큼 차근차근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CRM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고객 데이터 분석 능력이나, 고객 대응 스킬이 낮은 상황에서 시스템만 좋다고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bottom-up 방식(고객정보를 먼저 수집)Bottom-up 방식은 데이터를 정비하고 통합시키기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CRM 패키지 구현보다는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먼저 구현한다.여기에 필요 이상 많은 데이터가 들어가게 되거나 구축 후에 필요한 데이터는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CRM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실제 마켓팅에 활용되기 보다는 조회용으로 사용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CRM 프로세스를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bottom-up 방식으로 구축한 회사의 고민은 구축된 CRM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에 집중되어 있다. CRM 시스템의 용도를 찾지 못하고 CRM을 구축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top-down방식(프로세서를 먼저 구축)아니다, 그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정비를 하는가, 먼저 CRM 비젼을 도출하고 비지니스 프로세스를 정의하여 타켓 마켓팅의 방향을 설정하고, 여기에서 요구되는 데이터 항목들을 뽑아서 이것을 중심으로 데이터 정비를 하자. 라는 주장이 있다.이것은 top-down 방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부터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다.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CRM 프로세스라는 것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분화된 고객군(customer segmentation)에 근거한 기업 내부의 고객 관리 프로세스가 없다는 것이다. 우수 고객에 대한 고객 접점에서의 프로세스, 이탈 고객에 대한 이탈 방지 프로세스, 일반 고객에 대한 충성도 강화 프로세스등이 존재하지 않는비해서 훨씬 크다. 따라서 그만큼 수주 금액도 높아지게 된다.또 다른 이유는 프론트 엔드 시스템은 단기적인 효과를 내기 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콜센터 솔루션 같은 것을 도입하면 콜센터의 효율성은 쉽게 올라간다. 따라서 CRM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 고객을 설득하기도 쉽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효과를 CRM의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CRM의 주된 효과라면, 고객과의 관계가 강화되어 이탈률의 감소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마케팅 코스트 절감도 CRM의 효과 중의 하나다. 그러나 CRM에서 목표로 하는 마케팅 코스트 절감은 우량 고객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전체적인 마케팅 자원의 투입량을 적게 하겠다는 의미다. 즉, 모든 고객에 대한 관리의 기계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은 CRM 효과로 보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고객 관리(CM : Customer Management)의 효과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프론트 엔드 CRM 시스템의 많은 부분은 CRM이라기보다는 CM 솔루션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백 엔드 시스템이 없는 프론트 엔드 시스템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CRM은 지능형 마케팅/영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머리 없는 손발이 어떻게 지능형 마케팅/영업을 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CM이 아닌 CRM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백 엔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프로젝트의 생성(데이터 마이닝을 통해서){관리자가 부여한 조건에 따라서 선정된 고객데이타를 특정 프로젝트에 배정하는 것을 말하며 Segment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0명의 고객을 9704(4월DM프로젝트) 라는 프로젝트에 소속시키는 경우를 말하며, Segment라는 용어 대신에 굳이 프로젝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프로젝트의 결과(Response)값을 소속되었던 고객과 대응시켜 분석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3.3.4 활용- 활용은 분석 항목과 병행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활용에 앞서 전략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활용 방안(1) Outb 등
    경영/경제| 2007.10.02| 38페이지| 7,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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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신라향가] 서동요
    [신라향가] 서동요
    薯童謠1. 序서동요는 신라 진평왕 때(599년 이전)에 백제 무왕이 지은 4구체 형식의 향가로 향찰로 표기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현존하는 신라향가 14수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의 하나인 서동요는 가장 오래된 향가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소창진평 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다각도로 解讀 ·解釋이 이루어졌다. 서동요는 백제 第三十代 武王(小名 薯童)이 어릴 적에 신라 진평왕의 第三公主 선화를 얻고자 짐짓 동요를 지어 마을의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노래로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는 『三國遺事』의 제2권에 수록되어있는 서동설화와 함께 전해진다.1-1. 서동요에 대한 개관{[원문][삼국유사]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 乙 抱遣去如第三十 武王名璋 母寡居 築室於京師南池邊 池龍交通而生 小 命薯童 器量難測 常掘薯 賣爲活業 國人因以爲名 聞新羅眞平 王第三公主善花(一作 善化)美艶無雙 剃髮來京師 以薯 餉閭里 童 童親附之 乃作謠 誘 童而唱之云 善花公主主隱 他密只 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 乙抱遣去如童謠滿京達於宮禁 百官極 諫 竄流公主於遠方 將行 王后以純金一斗贈行 公主將至竄所 薯 童出拜途中 將欲侍衛而行 公主雖不識基從來偶爾信悅 因此隨行 潛通焉然後知薯童名 乃信童謠之驗 同至百濟 出母后所贈金 將 謨計活(「三國遺事」卷第二 武王條)* 배경설화:제 30대 무왕은 이름이 璋이다. 그 어머니는 과부로서 백제의 서울 南池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璋을 낳고 어렸을 때 이름을 서동이라 하였다. 그의 기량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는 늘 마를 캐어 파는 것으로 생활을 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善花가 아름답기 비할 데 없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경주)로 가서 마를 여러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친해서 따르게 되니 이에 서동은 노래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니 이르되,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 乙抱遣去如 라 하였다. 동요가 서울에 퍼져서 궁중에까지 빠졌더라면 그 설화의 서사적 신비감이나 운치가 없었을 것이다.다음 「署童謠」는 그 설화 속에서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따지고 보면, 그 설화가 출약되어 이 노래로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이 노래가 확대·부연되어 그 설화로 형성된 것인지를 속단할 수가 없다. 이 노래의 기능과 결부시켜 볼 때에, 이 노래는 그 설화가 구성될 단계에 전체 구조의 핵점으로서 동시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분명한 것은, 그 설화가 서사구조의 필연성에 의하여 이 노래로 응집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그 가사의 일부라도 삭제된다면, 그대로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이 노래에는 善化(花)公主와 署童이 실제적으로 등장하여 획기적인 사랑을 맺는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그 설화와는 달리, 善化公主가 능동적으로 主人公役을 맡고 있다. 男性主動의 그 설화 속에 女性主動의 이 노래가 결부됨으로써, 다시 말하면 당시의 관례와 상식을 벗어나 여성주동의 연애사건이 벌어짐으로써, 이 노래는 파격적인 충격을 던져준다. 즉 이 노래가 公主主動型으로 정립되었기에, 그 설화의 전개는 필연적으로 서사적 효과를 내게 되었다고 보아진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善化公主가 주역이 되었다는 점에서, 善化謠 라 하거나 善化公主謠 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2. 本{[양주동][소창진평]善化公主니믄 선화공주님은다 그힝지 얼어두고 남 몰래 통하여 두고맛둥바잎 맛둥방을바밑 몰 안고가다 밤에 몰래 안고가다善化公主니잎 선화공주님은남(애) 그힝기 얼어두고 남몰래 시집갔었는데,薯童房을 薯童을밤애 몰내 안고가다 밤에 몰래 안고 가더라1. 「署童謠」의 表現美學「署童謠」는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다지만, 단순한 직설이 아니다. 이 노래는 무엇인가 감추는 표현으로 일관되어 있다.善化(花)公主主隱(善化公主님은)에서 ∼主隱 (님은)으로 하여 公主는 주격, 절대격으로 승화되었다. 공주는 주인공으로 절대자적 위치에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 시집갈 것인가. 그녀의 아름답고 값진 모실상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薯童謠」를 감춤의 시 로 만든다.이 공주는 무엇 을 抱遣 (안고) 가는 것이다. 이 안고 는 반드시 가슴에 소중한 무엇을 감추어 지니는 듯한 상태다. 이것은 감춤의 극치로서 이 노래의 무엇 을 조화롭게 숨기고 있는 것이다.드디어 공주의 去如 (가다)로 이 노래는 끝난다. 그것은 공주가 간다 는 긍정형 종결이 아니고 가는가 라는 의문형 종결이다. 마지막 어미를 의문형으로 애매모호한 여운을 남김으로써, 그 무엇 의 실체를 끝까지 감추고 있다.2-1 서동요의 해독 · 독해○ 제 1 구 : 善化公主主隱善化公主니믄(양주동, 최학선) / 선화곰쥐니믄(정렬모)/ 산과콩츄님은(김선기) / 善化公主니리믄(김완진)/ 션화공쥬니믄(김상억) / 잘도리 앗날님은(홍재휴) / 사랑가(善化) 公主니림은(강길운) / 인딪외 님빛딪님 님은(양희철) 등의 해독이 있다.▶ 「主隱 」의 해독은 그 형태에서 두 종류를 보이는데 하나는 主 를 님 으로 읽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主 를 니림 으로 읽은 것이다. 이는 김완진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主 의 고대형을 니림 으로 추정한 것이다.○ 제 2 구 : 他密只嫁良置古다 그힝지 얼어두고 (양주동) / 다 그힝기 얼어두고 (홍기문) / 다 그힝 어러 두고(김완진) / 남 그스기 얼아두고 (김선기) / 남 그슥 어라 두고(강길운) / 넘넌즈기 얼아(ㄹ) 두고(홍재휴) / 남 몰기 어리라 두고(정인보) / 남 몰래 얼어 두고(엄국현) 등의 해독이 있다.▶ 「嫁良」에 대해서는 양주동의 얼- 의 원뜻을 交, 合 으로 본 이후, 본 단어에 대해 [서동을]사귀어 두고, 붙어두고 (지헌영·이탁) , 交合해 두고 (김준영· 서재극) , 짝 맞추어 두고 (김완진) , 결혼 관계해 두고 (강길운) 등으로 풀이하였다. 또한 交合 의 의미를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시집 가서 (홍기문) , 정드려 놓고(정렬모) , 몸바쳐 두고 (김선기) , 정을 두고 (유창균) , 더 나아가 어린 아이 사생아를 두고 (양희철)까지로 해석하였다. 이에 다르.2-2 관련설화에 대한 논쟁1) 서동요의 작자문제서동요의 작자 武王 을 두고 여러 이설이 있다.서동요를 역사적 사실로 해석할 것인가? 설화 자체로 해석할 것인가?서동요를 역사적 사실로 해석할 경우, 서동과 선화공주의 정체는 무엇인가?무왕으로 보는 견해 : 이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그러하며 상황이 그러하며 시대와 장소 가 그러니까 당연히 서동이 무왕이라는 것이다 무왕의 유명(어릴 때 이름) 이 말자(末子) 의 뜻인 밑둥(막둥, 마퉁) 이므로 속명 말통(末通: 末 義字 音借는 맛 이요 通 자는 古音은 퉁 )으로 기사되었고, 薯 의 훈인 마 에 의하여 이런 전설이 생기 것이다. (양주동)부정하는 견해: 백제 무왕설은 시대는 맞음직하나 선화공주와 결혼한 사실이 확인되 지 않고 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무강왕을 백제의 무왕으로 수정해 놓아 의심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무왕은 분명히 법왕의 아들인데도 삼국유사의 기사에는 과댁의 아들이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통대왕 이라는 보장도 없어서 더욱 믿기 어렵다. (강길운)백제 동성왕과 신라 이찬 비지의 딸로 보는 견해 : 무왕- 진평왕대는 양국이 구수관계 시대였던 만큼 두 남녀의 혼인관계가 성립될 수 없었다는 점, 동성왕의 이름이 모대 마제 모도 말다 로써 어음 상 마동 말통 과 근사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간 의 혼인관계가 역사상에 나타난 유일한 예로서 백제 23대 동성왕 때에 신라 이찬 비지의 딸 과 결혼한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단서로 하여 무왕조에 나타나는 서동이 바로 동성왕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병도)부정하는 견해: 신라녀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치점이 없다. 동성왕은 태자 시절에 마를 판 적도 없고, 절을 지은 적도 없다. 동요를 지은 적도 없음은 물론이 다. 그리고 신라 진평왕의 딸이 선화공주가 틀림이 없다면 진평왕 때와 동성왕이 등극하 기 전과의 사이에 약 100년이란 세월의 격차가 있고, 여주인공의 이름이 전혀 다른 비지 이고 또한 공주가 아닌 이찬의 딸일 뿐이다.무녕왕으로 람이니 관음의 우보처인 해상 용왕과 인연을 가진 여인이라 추정할 수 있다.(김종우)부정하는 견해: 이렇게 되면, 선화 공주가 주인공이 된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서동이다. 그리고 차라리 서동은 남순동자보다 미륵 에 가깝다.서동을 직업 명칭으로 보고 신분상승 욕구의 설화로 보는 견해 : 목동 채동 처럼 서동 을 집단 명칭이나 직업명칭으로 보고, 이들의 신분이 낮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욕망하는 젊은이들 인 바 서민들의 꿈으로서 이 서동설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마를 캐면서 살아간 서동들의 대 표적인 영웅적 상징인물이 되는 것이다.. 설화 자체로 볼 경우 다른 설화와의 연관성설화에는 비슷한 유형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설화가 다른 설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의미한다. 서동설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음과 같이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서동설화 에피소드서동이 서울 남지의 지룡의 아들로 태어난다.서동은 기량이 난측하다.서동은 마를 캐어 파는 것으로 활업을 삼는다.서동은 공주가 미염하다는 소문을 듣고 삭발하고 서울로 온다서동은 서동요를 지어 군동에게 마를 주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선화 공주가 궁중에서 내침을 당한다.선화공주가 귀양가는 도중에 서동을 만나 잠통한다.서동의 마 파던 구덩이에서 금을 발견한다.서동이 지명법사를 시켜 하룻밤에 신라궁으로 금을 운반한다.진평왕이 서동을 존경하고 서신으로 안부를 묻는다.서동은 이로 인해 인심을 얻는다.무왕 부부가 용화산 밑 큰 못가에서 미륵 삼존이 출현함을 본다.무왕의 청에 따라 지명이 신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못을 평지로 만든다.무왕은 용화산 밑에 미륵사를 창건한다.영웅담 에피소드고귀한 혈통의 부모를 갖는다.잉태나 탄생에 비정상적인 경로가 따른다.범인과는 다른 탁월한 능력을 지닌다.유아기에 버림을 받거나 박해를 받는다.짐승이나 사람에 의해 구출 양육된다.시련을 극복하고 이적을 행한다.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에 오른다.신이로운 죽음을 맞거나 죽어 신격이 된다.쫓겨난 막내딸의 에피소드부자 애비가 딸들의 효성을 시험이다.
    인문/어학| 2003.06.04| 9페이지| 1,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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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국문학] 우화와 풍자
    [국문학] 우화와 풍자
    우화와 풍자 서사기술로식민주의 담론 비판하기- 금수회의록 과 절영신화제1장. 식민주의 담론 형성1. 문제제기개화계몽시대에 한국사회에는 대내적인 면에서 반봉건운동을, 대외적으로는 반외세운동을 주축으로 하는 계몽운동이 사회 전체적인 근대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커다란 힘으로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화의 대립에 의한 내부적인 갈등을 겪어야 했고, 침략적인 외세의 위협 앞에서 민족과 국가를 지켜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채 혼란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화계몽시대는 새로운 담론의 양식들이 구성되고 그것이 가장 치열하게 서로 부딪히면서 갈등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갈등을 말해주는 개화와 척사의 논리도 그렇고, 주체적인 지식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개화계몽운동도 모두 각각의 위상과 세력을 드러내는 담론의 공간을 형성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담론의 구조가 바로 주체와 타자의 구획, 신구의 대립적 표상이다. 이 시기의 모든 담론들은 새로운 시대변화를 인정하고 그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에는 일단 동조한다. 그런데 이 같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체로서의 민족을 바로 세우고 침략세력으로서의 타자를 명확하게 구획하는 일이다. 무엇이 낡은 것이며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이 담론의 주체의 정립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매우 예민한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인 판단이라기 보다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다. 당시 집권충의 권력갈등에는 바로 이 같은 주체와 타자의 구획과 신구의 인식에 따른 세력균형이 잘 드러나고 있다.2. 연구대상과 연구방법개화계몽시대에 일본을 통해 만들어진 조선에 대한 모든 관심은 일정한 경향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헤게모니의 지속과 확대를 추구한다는 목표에 의해 타자로서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전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선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정치적 문화적 전략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이 우화와 결합되거나, 우화에 빗대어 비판하기 방법이 풍자의 기술 방법 속에 숨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설정방식에서 볼 수 있는 우의성과 각각의 주인공이 진술하는 주제와 가치와 관념의 대립에 의한 지적인 갈등과 그 해소과정이 흥미와 초점을 이룬다.우화는 사회 윤리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지적 도덕적 요구에 의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강렬하게 대변하는 문학양식으로써 당대의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인간행동의 규범이나 도덕적 명제를 중심으로 성립된 서사양식이다. 외세의 침략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거나 부패한 관료들을 비판하고 타락한 현실을 경계하는 데에 있어서 우화의 교훈적 기능이 중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화의 주인공은 모두 동물이다. 동물들의 세계가 보여주는 미개와 야만이 오히려 그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을 풍자함으로써, 특히 약육강식의 논리와 우승열패의 주장으로 제국주의적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했던 식민주의의 논리가 이들 우화를 통해 여지없이 허구임을 드러내게 된다. 예컨대, 뎨국신문의 한탄스런 우리나라 사람 (1898.12.24)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우리나라 사람의 성향과 기질을 우물 밑의 개구리, 꾀도 없고 겁만 많은 새, 어리석은 까마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여우, 고목나무만을 쪼고 있는 딱따구리, 냄새나는 곳만 찾아 다니는 파리 등에 비유하여 풍자하고 있다.한편 풍자는 어떤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거기에 대한 멸시, 분노, 냉소 등의 태도를 환기시킴으로써 그것을 격하시키는 하나의 문학적 기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사양식의 하위장르로서 풍자는 풍자적 이라는 관형적인 의미나 풍자하다 와 같은 서술적인 뜻을 넘어서는 하나의 문학형식을 말한다. 행위의 구조를 따지기 어려운 가장 느슨한 구조의 서사양식이며, 이야기의 줄거리도 구분하기 어려운 산만한 형태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일련의 논쟁이 중심을 이루며, 그 논쟁자체가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등장하는 인물은 어떤 이념의 대변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행새로운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 는 개인적인 정치적 경륜을 논리적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새로운 담론의 방법이다.이라는 새로운 담론 형식을 채용하고 있는 점이다. 우화라는 서사양식에 연설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방법을 채용함으로써 계몽적 담론으로써의 정치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계몽적 정치활동으로서의 연설장면은 신소설의 경우-이광수의 무정 등에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 같은 방법은 개화계몽시대의 계몽적인 정치활동으로서의 연설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형식을 서사양식으로 패러디한 것으로 볼 수 있다.사회비판의식을 주로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반포지효의 부모에 대한효도, 무장공자의 지조와 절개, 영영지극의 형제동포간의 우애, 쌍거쌍래의 부부화목 등은 전통적인 윤리관과도 상통하고 있다.또한 재판이라는 제도와 형식이 사용한 금수재판 (흠흠자, 1910)는 재판이라는 근대적인 사회제도의 정착과정을 사회적 정의와 도덕적 규범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과 법과 질서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되는 과정과 일치시키고 있다. 이는 개화계몽시대에 사회적 정의와 도덕적 규범에 대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인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동물세계의 화목과 협동, 상호 신뢰의 중요성 강조. 스스로 실력을 양성하고 단합하여 상대방의 약탈과 횡포를 방어해야 한다고 판결내리는 결론을 취하고 있다. 식민주의 담론의 야만성에 대한 지성적이고도 문화적 주장이라는 점에서 공동사회의 구현을 지향하는 의미 있는 목소리이다.즉, 돌려말하기 식으로 설정된 우화적 이야기의 창작은 제도적 근대로서의 소설이 발전되지 않은 미분화적인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식민주의적 사상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사상을 표출하고 독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지하기 위해 문학적 의장을 빌려 서사-문학적인 글을 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3. 훼손된 삶의 가치와 풍자개화계몽시대 풍자는 행위와 성격, 사건과 배경에 의해 의미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서사와는 구별된다. 인물이 등장을 꿈꾼다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종 이 지니는 풍자로서의 담론의 정치성을 중시해야 한다.병인간친회록 에서는 허구적인 서사공간으로서 연설회장을 설정하고 육체적인 불구라는 특수한 조건에 얽혀 있는 신체장애인들을 연사로 등장시키고 있는 특이한 풍자양식이 보인다.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이 사회적 집단으로 세력화하고 자기각성과 현실인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서도 풍자양식이 드러내는 담론의 정치성이 강조된다. 특히, 이 작품의 전체내용은 연설과정을 장면화한 것으로써 풍자의 서사적 요건을 유지한다. 육체적 정상인들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불구에 대한 육체적 불구자의 비판이 담론의 핵심이다.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는 국가와 사회는 모두 몸을 지탱하기 어려운 심각한 신체적인 불구와 대조된다. 또, 당면현실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관료층의 무능과 지식층의 몰주체적인 형태 역시 사물을 제대로 헤아려 볼 수 없고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위험에 대응하기 어려운 심각한 육체적 불구로 규정한다. 비유와 일반화의 논리를 담론의 구조로 활용한 예이다. 불구와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풍자양식을 빌어 무너진 도덕의식을 바로 보고 반성하며, 훼손된 민족공동체의 구현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라 사료된다.제3장. 금수회의록 과 절영신화 에서 나타난 '드러내기'1. 금수회의록금수회의록 은 융회 2년 즉 1908년 2월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발행처는 황성서적업조합(皇城書籍業組合)이다. 독자들에게 받았던 호응과는 달리 당시 치안 담당자들로부터 1909년 5월 5일 금서처분을 받게 된다. 당시 치안 담당자들이 먼저 애국 계몽적 저술이었던 『20세기 조선론』의 금서 처분을 결정하고, 그 책에 필자로 들어가 있는 안국선의 독립된 저서인 금수회의록 까지 금서 처분을 확대해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금수회의록 은 작가의 세계관 및 인간관을 철저하게 대조(對照)와 역설(逆說)적 표현에 의존하여 기술해낸 작품이다. 이러한 대조와 역설의교훈적인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토론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화소설에 나타나는 동물들의 경우 각각의 동물들이 지닌 성격은 그 동물의 속성과 무관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금수회의록의 경우 동물들의 속성이 작중 캐릭터를 구축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이 동물과 연관되는 고사성어를 빌어 오고 있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인데, 동물을 소재로 한 고상성어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것임을 밝히고 그 고사성어를 역이용하면서 주로 인간들의 윤리적 타락과 대비되는 동물들의 미덕을 부각시키고 있다. 제시되고 있는 고사성어는 크게 인간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대비되는 동물들의 지고지순한 미덕이 구현되어 있는 부류(反哺之孝, 雙去雙來)와 부패, 타락한 인간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특성을 지니는 부류(狐假虎威, 井蛙語海, 口蜜腹劒, 無腸公子, 營營之極, 苛政猛於虎)로 나뉠 수 있다. 동물담이 소재가 된 고사성어라는 일종의 알레고리를 소설양식화의 방법론으로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우리말로 寓意로 번역되는 알레고리는 다르게 말한다 는 그리스어의 allegoria에서 나온 것으로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 이야기 유형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금수회의록에 나타난 고사성어의 경우 훌륭한 알레고리 소설들이 담당하고 있는 알레고리로서의 몫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구체적 현실에 대한 천착과 탐구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기보다는, 고사성어가 담고 있는 우의적 메시지를 통해 현실의 모습이 반추되고 이를 통해 재구성된 현실이 비판의 대상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때문에 고사성어가 담고 있는 세계상에 대한 탐구가 있을 수 없고, 또 알레고리로서의 고사성어가 담지하고 있는 이념적 성격에 대한 반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작품의 각 장에 등장하는 고사성어와 그 장에서 담고 있는 인간 세계 비판의 내용이 논리적 일관성이나 주제적 통일성의 측면에서 상호연관성을 상실하게 다.
    인문/어학| 2003.05.10| 15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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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비문학] 충청도앉은굿
    앉은굿1. 앉은굿의 개념과 특성1) 앉은굿이란· 독경(讀經)을 주로 하는 법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굿을 말한다. 이는 서울지방의 굿이 무당에 의해 춤과 노래로써 주로 선채로 굿을 하는데 반해 법사가 앉아서 북이나 꽹가리, 징을 두드리면서 독경을 하기 때문에 생겨난 충청지역의 무속 용어이다.2) 특성· 앉은굿에서는 선굿에서처럼 무당이 각 거리마다 갈아입는 화려한 의장이나 장고, 징, 제금 등을 연주하는 잽이들의 반주, 각 거리마다 달리 모셔지는 다양한 신령들, 각 신령들 몫으로 차려지는 음식상의 푸짐함이 없다. 이러한 차이점들이 생기는 것은 서울지방의 굿과 달리 법사가 혼자서 징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반주에 맞추어 경을 읽기 때문이다.· 굿의 이름을 서울굿처럼 무슨무슨 굿 이라 하지 않고, 경을 읽는다 라는 말로 표현되며, 안택경(安宅經)·우환경(優患經)·병경(病經)·미친경 등과 같이 경 으로 이름짓는다. 이때 경(經)이란 의례에서 읽혀지는 경의 종류를 나열할 때 쓰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굿의 종류를 표현하거나 굿의 각 거리를 표현할 때도 쓰인다. 그 이유는 서울굿처럼 무당이 각 거리마다 달리 신령들을 모셔놓고 놀리다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굿의 목적에 따라 그 목적에 합당한 경(經)을 읽으며 의례를 진행해 나가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2. 앉은굿 문화의 특성1) 법사· 법사란 앉은굿에서 경을 읽는 이들을 가리킨다.· 강신무라 불리는 무당들과 똑같이 신내림을 받아서 법사가 된 경우도 있지만 경(經)을 배우고 외어내야 하는 특성상 스승 법사에게 배우는 과정인 학습을 통해 법사가 된 경우도 많다.· 학습 : 경의 학습은 법사들에게는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 법사들의 경 학습은 무리없이 앉은굿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을 요한다. 대부분의 법사들이 꼽는 그 정도의 수준이란 우선 법사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옥추경(玉樞經)을 비롯하여 불설천지팔양경(佛設天地八陽經)·귀문옥갑경(鬼問玉甲經)·천수경(千手經)·고왕경(高王經)·조상경(祖相經)·당산경(堂山經)·성조경(成造經) 등의 학습이다. 경들은 대부분 그 내용이 한문구에 토만 단 것이다. 음성을 통해 들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한문 그대로 학습할 수도 있지만 한문 실력이 모자랄 경우 한자로 씌어진 경을 한글로 옮긴 것을 가지고 배운다.· 이러한 전통적인 법사와는 달리 요즈음 법사가 되는 사람들은 신내림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법사로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전통적인 법사들 가운데는 경을 읽는 것 이외에도 택일(擇日)·사주(四柱)·작명(作名)·풍수(風水)·지관(地觀) 일을 겸해서 하는 이들이 많다.2) 보살·충청도 앉은굿에서 현재 법사들과 짝을 이루는 여자 점장이들은 대개 보살이라 불린다.·이들의 주업은 점치는 일만이 아니고, 대부분이 신내림 현상을 체험하여 다른 지역의 무당들이 단골들을 위하여 굿을 하듯 불공(佛功) 을 드린다.·이들은 점치는 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수강료 형식의 돈을 주고 철학관 등지에서 점치는 것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점을 치는 법을 배우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한 자를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주로 강신체험이 있기 때문에 즉석에서 아무런 도구 없이 점을 치기도 한다.·불공을 드리는 일이나 법사들과 함께 하는 앉은굿에서 보살은 단골{) 법사나 보살을 찾아가서 점을 치거나 굿을 의뢰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들과 굿비용에 대해 의논하고 전체적인 굿의 진행을 담당한다. 그리고 신장대를 잡고 공수{) 강신한 신령에게 축원하는 것를 내리는 거리를 맡는다.3) 법사와 보살의 관계·법사 김요천의 진술에 따르면, 법사와 보살이 짝을 이루어 앉은굿을 치루어 내는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일어난 농촌사회의 변화로 대잡이{) 굿할 때 대를 잡고 있는 사람. 이 대가 흔들려야만 신령이 제대로 강신했음을 알 수 있다.가 사라져간 것보다 훨씬 전으로 소급된다.·현재 법사와 보살의 관계는 공생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대 대부분의 법사의 집에 단골들이 직접 점을 보러오는 경우는 보살집에 비하여 훨씬 적다. 또한, 법사가 오지 않고 보살이 간단하게 굿을 할 경우보다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법사가 와서 앉은굿을 해야만 단골은 더 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4) 설경·설경이란 앉은 굿에서 쓰는 일종의 지화류(紙花類: 이는 신령의 모습을 종이에 표현하여 걸 수 있도록 만든 장식으 하나)이다. 창호지에 보살의 모습과 꽃무늬등을 오려서 만든 것으로 굿이 열리는 장소의 천장에 줄을 걸어 매단다. 이 설경의 기는은 나쁜 귀신들을 막아서 감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이 설경은 법사가 직접 작은 손칼을 가지고 종이를 파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주로 설경을 준비하는 법사는 다른 준비에 손이 가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3. 앉은 굿의 의례1) 분류 (김영진 1976, )* 기복 제의 : 안택(安宅), 고사(告祀), 삼신(三神)굿, 용왕(龍王)굿, 삼재(三災)풀이, 살풀이* 구병(救病)제의 : 병(病)굿* 강신(降神)제의 : 신명(神命)굿, 신(神)굿{) 신이 내렸을때의 입무식(入巫式)이다.* 위령(慰靈)제의 : 넋굿, 진오기, 오구굿이러한 분류는 의례를 행하는 시기에 따라 정기적 의례와 임시적 의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기적 의례에 속하는 것으로는 안택·고사·용왕굿·삼재풀이 등이 있다. 임시적 의례에 속하는 것으로는 삼신굿·신명굿·위령굿·진오굿·오구굿 등을 들 수 있다.·이러한 의례는 현재 크게 변화되어서, 안택경을 읽으면서 삼재풀이를 함께 끼워서 하고 조상 길닦음에 삼재풀이를 함께 끼워 넣는 등, 여러 목적을 한번에 달성하기 위한 합동의례 형식으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2) 구조·청신(請神)-빌기[祝願]-송신(送神)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이러한 구조는 각각의 경에도 해당된다. 각각의 경마다 비는 대상이 되는 신령이 다르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는 여러개의 청신-빌기-송신의 구조가 모여서 이루어 지게 되는 것이다.3) 의례 순서 예시- 안택경{) 여기서는 앉은굿의 여러 형태중 안택경의 순서에 대해서만 알아보기로 한다.(김요천, 1994년 4월 16일)은 가신종합제(家神綜合祭)로서 가정의 평안과 풍년을 빌고, 장래 가정의 번창을 기원하는 것이다. 보통 춘추로 정월과 시월에 하며, 대개 하루가 걸린다.1 부정경(부정풀이): 법사가 경을 읽기 전에 행한다. 부정풀이의 목적은 경을 읽는 장소에 있는 모든 부정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부엌 입구에 부정상을 차리는데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마른 고추 3개, 숯 3개를 넣는다. 준비가 끝나면 법사는 부정풀이를 읽는다.
    인문/어학| 2003.02.14| 3페이지| 1,000원| 조회(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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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구비문학] 충청북도(구비문학)
    [구비문학] 충청북도(구비문학)
    충청북도의 민속담당교수 : 이정재구비문학개론 3조남찬원, 박정빈, 박은정, 박성희, 박다은, 박경진, 김화자-INDEX-INDEXpage -1-1. 충청북도의 민요………(1)충북의 개관………page -2-(2)충북민요의 배경………page -7-(3)충북민요의 분류와 분포………page -10-(4)충북민요의 음악적 특징………page -18-………2. 옥천군………page -22-………3. 영동군page -31-………4. 단양군page -35-………5. 보은군page -41-………6. 청원군………page -50-7. 괴산군………page -55-8. 청주시………page -59-9. 충주시………page -62-10. 기타(금산군, 제천군, 음성군)page -157-11. 충북의 민요 직접듣기주소………page - 162-참고 ** 각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관련 사이트 주소가 기재되어 있습니다.1. 충청북도의 민속(1) 충북의 개관[충북의 역사]삼한시대 삼한정립시대에는 마한지역에 속하였음.삼국시대 백제가 중부를 점령하였고, 신라는 남방, 고구려는 동부를 점유하였으나 4세기에는 전역을 백제가 차지함.[고려시대]995 성종14년 전국을 10도로 구획하였을때 본도를 중원도라 칭하고 13군, 42현을 관할하게 하였음.1106 예종원년에는 하남도를 합쳐서 충청도라 칭함.1171 명종원년 양광도와 경상도(보은,영동,옥천)로 다시 분할.1315 충숙왕 원년에 2개도를 합쳐서 양광도라 칭함.1356 공민왕 5년에 충청도로 개칭.[조선시대]1395 태조 4년에 양광도 소속군,현을 경기도에 이속 관리하게 하고 충주, 청주, 공주, 홍주 소속 령에 있는 군,현을 합쳐 다시 충청도라 칭하면서 충주에 관찰사를 둠.1413 태종13년 여홍(여주군), 안성,양성(안성군의 일부), 양지(용인군의 일부)를 경기도에 이관시 켰으며, 경상북도로 부터 옥천, 청산, 황간, 영동, 보은의 각 군, 현을 편입.1895. 5.26 고종 32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본도는 충주부 관할로 관찰사를 둠.1896. 신세타령류 곡의 경우 박(拍)에 구애됨없이 자유스럽게 불러나가는 자유리듬(rhythm) 곡이 다수있다.가창방식은 선후창(멕이고 받는) 방식이 주를 이루며, 교환창 방식과 독창이 있다. 교환창의 경우 앞짝 한사람이 부른 절(節)을 뒷짝 여럿이 그대로 반복 제창하는, 특이한 경우가 보이기도 한다.http://urisori.co.kr/main.html2.옥천군(1) 전설, 민담, 설화[돌사자상]옥천읍 죽향리(竹香里)는 지금 동성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해서 죽동(竹洞)이라 했고 그 아랫마을을 향동(香洞)이라 했는데 이 두 동네를 합하여 죽향리라고 한다.이 죽향리와 문정리(門井里)는 옛날 옥천군청 소재지로 관공서와 민가가 밀집되어 있었던 고장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금은 구읍(舊邑)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엽에 이 고장에서는 크고 작은 재앙이 연이어 일어나는 관계로 모든 주민들이 매우 불안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또 관가에서도 군수의 덕망이 없어서 그렇다는 등 지세가 사나와서 그렇다는 등 소위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그러는 중에도 돌림병(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이 죽고, 또 살인 사건이 나고 또 화재가 있고 하여 민심이 매우 흉흉하였다.뜻있는 주민들과 목민관은 매우 걱정을 하고 좋은 해결책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에 어떤 이름없는 선비 하나가 이 동네에 들어왔다. 원래 영남에 사는데 서울가는 도중 숙식차 잠시 들렀다는 이 선비의 말에 온 동네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이 동네는 서쪽이 훤하게 뚫려서 보다시피 허술하기 때문에 동네 서쪽으로부터 재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돌사람과 돌짐승을 만들어 동네 서쪽에 튼튼히 세우고 제(祭)를 올리면 동네가 언제나 편안하고 모든일이 순조로울 것입니다."동네 사람들은 이 선비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의론을 모아서 즉시 돌사람과 돌사자를 만들어 세우고 제를 올렸다. 그랬더니 매우 신기하게도 재앙이 서서히 물러가고 평온을 되찾아 모두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 돌사람과 돌사자는 그 규모는 작지만 지금도 동네 놓아두었던 도끼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 보았더니 어느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나무꾼이 집으로 달아왔으나 아내는 온데 간데 없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고 기가막혀 따져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난 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일이 있은 후부터 바둑을 둔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구소리]충북 문의(文義:淸原郡)에서 회인(懷仁:報恩郡)으로 가는 도중에는누현 [ 漏峴 ] 이라는 고개 있는데 이 고개에 있는 동네 이름을 구소리(九巢里)라 하여 그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즉, 이 동네에 있는 크고 작은 2개의 돌구멍에서 솟아나는 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것은 그 돌구멍 속에 9마리의 용(龍)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 믿어, 동네이름을 구소리라 하였다는 것이다.http://100.naver.com/search.naver?adflag=1&cid=AD*************&where=100&command=show&mode=m&id=40333&sec=1(2) 민요, 굿, 탈놀이, 가면극[보은 나물노래](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오창리/김점례(77세)/1993)행주치마 둘러 입고뒷동산에 올라가서개감추1) 미역추2)너 얼매나 잘났걸래우리네 손질에 놀아 나나오콤조콤 뜯어 가주안치매를3) 담아 가주집에라구나 돌아와서설렁설렁에 추려 가주벌어졌다 벌가매에4)설설 끓는 물에다가두적뒤적도 해 가주구살라쿵 살라쿵 힝궈 가주동동 뜨는 참지름에오물조물에 무쳐 가주네모번듯 두레상에5)은저붐을 맞춰 놓고소담하게두 담아 놓고노인네는 참진미라6)젊으신네는 감식이라7)뒷동산에 올라가서멍구럭대래키8) 둘러 차고고사리를 꺾어 가주줌짐이두9) 꺾어 가주요놈의 고사리 가시원하게 넘실거리는 강가에 앉아 발을 물에다 담그고 있는데 수려한 산봉 여덟 개가 물 속에 비치고 기암절벽 밑에는 수달이 왔다 갔다 하는 꿈이었다.왕은 영의정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혹 그와 같은 장소가 있는가 찾아 보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궁내 재상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하며 그런 장소를 탐지하였는데 이조 판서가 말하기를 "그런 장소란 충주 수주 팔봉이라는 곳이 있는 줄로 압니다"라고 하지 즉시 충주목사를 시켜 수주 팔봉의 형상을 그려 올리라고 했더니 한 폭의 그림이 올라왔다. 왕이 그 그림을 보고는 꿈에서 본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 드디어 행차를 하게 되었다. 유주막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팔봉으로 들어가는데 그 경치가 자못 신비스러울 정도로 수려하므로 왕은 몇 번이나 감탄을 하면서 칼바위 밑에 이르러 주위를 살피더니 "바로 이곳이다"하며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꿈에 본 곳과 똑같은 위치를 찾아 발을 담그고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다시 주변산천을 돌아보며 참으로 절경이라고 칭찬하였다는 것이다.따라서 왕이 밟고 다닌 곳을 왕답이라 불렀고 올라가서 경치를 전망한 산은 왕답산이라 불렀으며 왕이 발을 담그던 곳을 어림포라고 불러온다.(6) 장수죽인 명마재골그는 자기 꿈에서 말을 타고 들어온장수아이의 그 얼굴 그대로였다.두 내외는 자못 당황하다가...상모면 문강리 문라산 기슭에 명마재라고 부르기도 하고 용마곡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골짜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때는 조선 말엽이었다.자손을 못 두고 명산(문라산)을 찾아 치성을 올리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짓고 사는 내외가 있었는데 괴산면 소리실에서 이사를 왔으므로 소리실 집으로 불리우고 있었다.치성의 덕분인지 어느덧 임신이 되어 크게 기뻐하고 있었는데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었고 두 내외도 몹시 고민하였다. 어느 날 밤에 그 아내가 꿈을 꾸었는데 문밖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자기가 낳은 아이의 얼굴이 희고 몸집이 거대한 장수라고 하며 구경을 하고 있년시절에 죽었다며 이제 그 소원풀이를 하자는 것이니 데려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때 신랑도 필사적인 용기를 냈다.전생은 이미 끝난 것이고 이승에선 전생이 연장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사미승은 인간과 타협이 있을 수 없다며 눈물을 머금고 사라지고 말았다. 신랑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신부있던 곳으로 찾아가보니 신부는 어디 가고 다른 일행들만 고개마루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다신 신부를 찾아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신부는 안장 위에 올라 앉은채 돌로 변해 있었다. 신랑은 그녀의 영혼이 어디가 있는지 알기 때문에 조용히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고 한다.그 후 이 산에서 말의 볼기를 쳐서 몰았다고 해서 질마박산이라고 했고 고개이름은 질마재라고 부르고, 신부모양의 바위를 족두리바위라 부르고 있다. 그후 유총각이 혼인하던 날이면 이곳 고개에서 애달픈 남녀의 소리가 났다고 한다.(9) 천하의 악고개바로 그 때 뒤를 쫑던 산적 두 놈이흉칙스런 웃음으로 위협하며 다가서는 것이었다.신니면 문락리에서 노은 법동으로 넘어가는 험준한 고개를 악고개 또는 오현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조선초기 고려사관을 지내던 후예들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정에 충성맹세에 급급하던 자도 있었지만 대개는 적소를 찾아 낙향을 하게 되었다. 그 낙향 장소로서는 아무래도 충주고을이 적지로 알려지고 있었으므로 준령을 넘고 강을 건너 이 고을 찾는 전관들이 꼬리를 물었다.이 무렵 충주고을에 낙향을 한 윤교리를 찾아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 조씨부인이 있었다. 그는 오는 도중 날이 저물어서 양짓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여자의 몸으로 험한 산길를 백여리씩이나 걷고 나니 피로가 일시에 밀어 닥쳐 저녁상을 물리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조씨부인은 비록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여자이므로 제반 몸가짐에 깊은 주의를 하고 있었다.밤이 깊었는지 단잠에 한숨을 넘고 나니 비몽사몽간에 말소리가 귓전에 거슬렸다. 남성들의 음성임을 인식하자 잠자리를 차고 일어나 수군대
    인문/어학| 2002.12.01| 163페이지| 10,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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