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성공의 비밀은 무엇인가?「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 스토리」 읽고목 차◎서 론◎본론1.내 용 요 약2.구 글 의 성 공 요 인3.구 글 의 미 래◎결론◎ 서 론구글은 인터넷 검색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과 함께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동시에 가진 성공한 기업이다. 보통의 구글을 다룬 책들은 그들의 성공과정을 분석하면서 그 영향력을 다룬 반면 이 책은 구글의 성공과 함께 검색(Search)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검색이 가진 파워를 정확히 인식하여 다가올 검색 혁명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그렇지만 본인은 검색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보다는 왜 다른 인터넷 벤처 기업과 달리 구글만이 최고의 위치에 올라왔는지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본론에서는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요약과 함께 구글의 성공요인과 그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본 론1. 내용 요약저자는 우선 검색에 대해 인터넷에 존재하는 최초의 유용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설명하고 있다. 덧붙여 검색은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 차례차례 알아보면서 검색시장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잠재력과 함께 가치창출의 훌륭한 기반이 된다고 표현하였다.검색엔진의 발전과정은 쉽게 구글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 볼 수 있다. 90년대 등장한 최초의 인터넷 검색엔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키(Archie)에서부터 알파칩을 이용해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을 보여 준 알타비스타(AltaVista)를 거쳐 디렉토리 접근방법을 통한 포털로서의 검색을 덧붙여 등장한 야후(YAHOO) 등등 많은 검색엔진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고 등장하였다.그러나, 검색 시장에서의 최후의 승자는 구글이었다. 래리 페이지(Lawrence E.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만나 백럽(BackRub)이라는 역방향 추적이 가능한 혁신적인 검색엔진과 이를 통해 검색된 페이지의 자체 랭킹 시스템을 도입해서 기존의 검색체계에서 몇 단계를 도약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후, 그들은 차고를 개조해서 사업을 시작하였고, 세쿼이아 캐피털과 클라이너 퍼킨스 카우필드&바이어즈에게 2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으면서 명실상부한 기업체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회사의 틀은 갖췄지만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을 만들지 못한 구글은 클릭 당 돈을 받는 고투닷컴의 방식을 차용하여 ‘애드워즈’라는 서비스를 도입해 폭발적인 성장을 기틀을 마련하였고, 전자상거래 검색엔진 ‘프루글’, 새로운 유통네트워크인 ‘애드센스’를 개발해 5년 만에 3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달성함으로써 기존의 IT기업이 해내지 못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화제가 된 기업공개(IPO)를 실시하여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를 넘보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저자는 구글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검색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검색의 중요성을 설파하였고, 미래의 검색은 이동경로를 분석하는 방식이나 시멘틱 웹(Semantic Web)과 같은 지능형 웹을 통한 검색, 특정영역 검색이라는 집중화된 형태의 완벽한 검색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1. 구글의 성공요인첫째, 구글은 검색엔진이라는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이다.스탠포드 대학의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박사학위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을 도입한 검색엔진 백럽(BackRub)을 학내에 운용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고, 그들은 거기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구글은 기존의 검색엔진과는 달리 웹페이지에 랭킹을 매겨 상위 결과 순으로 나열하였고, 이것은 단순한 검색결과 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이용자들이 얻게 되어 검색의 효율성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이전의 기업들 역시 당시에는 혁신적인 방식의 검색방식을 구현해 냈지만, 구태의연한 사업방식에 의해 몰락하였다. 그러나, 구글은 자신들의 검색엔진에 맞는 Gmail, 툴바, 크롬과 같은 사업 아이템들을 계속 개발하면서 다양한 수익모델을 갖추게 되어 명실상부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둘째,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리게이 브린은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방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대부분의 IT 업체들은 외부의 투자 자금을 통해 기업의 규모를 성장시켰지만, 새로운 투자자들의 상업적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의 개발 요구와 같은 경영 간섭으로 인해 기업의 성장동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쉽게 몰락하였다.또한 대부분의 IT업체는 그들의 실질적인 주인인 사용자들 위한 인터페이스 환경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수입원인 광고주의 이익만을 우선시 하여 검색엔진을 운용하였고, 이에 실망한 사용자들의 이탈은 광고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어 성장이 멈추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이에 반해 구글은 “악해지지 말자”라는 슬로건 아래 투자자들의 입김을 최소화시킴으로써 단순히 검색과 광고를 연결시키는 방식이 아닌 사용자 위주의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이용자를 위한 검색엔진과 관련 툴들을 설정함으로써 호평을 얻게 되고 이는 결국 질적 성장과 함께 양적 팽창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셋째, 구글은 새로운 경영자의 영입을 통해 사업능력의 향상을 가져왔다.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뤄내고 있던 구글도 수익적인 측면에서의 이익창출이 부진하자, 투자자들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CEO 영입에 박차를 가하였다. 당시의 구글은 엔지니어링 방면에 재능을 가짐과 동시에 기존의 경영진들과 투자자들의 주장을 조율하면서 회사를 이끌어 나갈 상당한 관리 및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였는데 경영진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심사한 끝에 기업의 이념과 성장방향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라는 대형 IT업체 노벨의 CEO를 영입하였다.이 선택은 최초로 분기 흑자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후 단 한 번도 분기 실적이 악화된 적이 없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넷째, 사내 구조를 수평적 구조로 변화시켜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였다.구글은 분권화된 수평 조직을 통해 관료주의를 없애고, 대학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작고 자율적인 팀을 만들의 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창립자 상’ 이라는 인센티브를 도입해 누구든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였다.이러한 혁신적인 기술 도입과 사업목표의 달성을 위한 초지일관된 모습 그리고, 개방구조 형태의 회사로 구축하면서 구글은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으로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하였다.3. 구글의 미래첫째, 다양한 상황에 빨리 그리고 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더 이상 구글은 다양한 기능만을 갖춘 검색 업체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모든 산업을 바꿀 수 있는 거대 미디어 업체가 되었다. 소상공인들은 구글을 통해 기존의 마케팅 방식과는 다른 검색이라는 방법을 통해 수익을 얻게 되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였지만, 한 번의 최적화 업데이트로 인해 그러한 시장이 일순간에 붕괴되는 현상도 목격하게 되었다.이것은 구글의 긍정적인 미래임과 동시에 부정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이어주는 콘텐츠가 조그마한 변화에도 쉽게 부셔져 버리는 모습은 구글이 사용자와 광고주,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자로서 나아가야 할 바를 설명해 준다.
1. JIT(Just In Time)의 개념JIT는 적시생산으로 번역되는데, 글자그대로 적시에 생산하는 것을 말하며 도요타 자동차의 TPS(Toyota Productivity System){) TPS(Toyota Productivity System) : 생산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생산시스템으로 인력과 설비 등의 생산능력을 필요한 만큼만 유지하면서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작업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하는 협동적인 생산시스템이다. TPS는 2차대전 이후 일본의 자동차 산업의 부 흥을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로서 현장에서 고안되고 개선되어 완성된 새로운 생산방식이다.의 하나이다. 즉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JIT는 원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서 재고수준을 줄이기 위해 시도된 생산관리 시스템으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종합적인 경영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JIT는 고객에게 보다 나은 품질 및 가격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기업으로부터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낭비를 제거하고 지속적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의미하게 되었다.이것은 불필요한 재고를 없앰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켜 준다는 이른바 재고 제로화 (perftct zero stock)' 관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생산시스템의 낭비요소를 7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는데 과잉생산, 대기, 운반, 불필요한 생산과정, 불필요한 재고, 불필요한 행동, 불량품의 생산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낭비요소들을 제거하면 생산에 필요한 인력, 공간, 재고, 시간과 불량품 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JIT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서 최초로 실시되고 성공적으로 적용된 이후 일본 기업들이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는 가와사키 USA가 처음 도입한 이후 포드, 모토로라, HP, IBM 등에서 도입하여 적용하였다. 그 결과 노동생산성은 20∼50% 증대, 실패 손실율의 40∼50% 감소, 재료구매 유지비용의 8∼15% 감소, 재고비용의 50∼90% 로 자체 품질관리의 강화를 통해 불량률을 대폭 낮추어야 하는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되었다. JIT 이전의 평균 부품 불량율은 0.4%였으나 크라이슬러는 부품 불량율이 0.05%이하인 협력업체만 JIT 파트너로 선정하는 기준을 마련하여 부품의 품질관리를 한층 강화하였다. 또한 운송중 발생가능한 부품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JIT 협력업체는 특별한 포장방법을 사용하도록 요구했다.둘째, 생산일정의 안정화이다조립공장 내에서 생산계획이 자주 수정되면 JIT의 도입이 어렵게 된다. 크라이슬러는 CIM (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을 사용하여 딜러에게 받은 주문정보로부터 생산계획을 자동적으로 수립하는 체계를 확립하고 자동차 판매예측을 위한 분석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가능하면 정확한 수요에 근거한 생산계획의 수립을 꾀하였다. 잘못된 수요예측이 생산계획의 잦은 변경을 초래할 경우 JIT의 실현이 어렵기 될 뿐만 아니라 조립공장 내에 "순차적 생산 (In-sequence Production)"{) 순차적 생산(In-sequence Production)이란, 일단 조립라인에 들어간 자동차 모델은 조립이 끝 날 때까지 조립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다.이라 불리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여 생산일정의 안정화를 기하였다. JIT이전에는 생산일정의 변경으로 조립중인 자동차의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다른 모델을 조립라인에 끼워 넣는 경우가 빈번하였는데, 이러한 조립라인상의 변화가 잦을 경우 JIT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정확한 수요예측에 근거한 생산일정의 안정화가 병행되어야만 JIT의 도입은 성공할 수 있다.셋째, JIT 협력업체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대부분의 공급업체에게 크라이슬러는 대형 고객이었으므로 강력한 협상력을 가진 크라이슬러는 공급업체들에게 JIT를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는 JIT를 강요하기보다는 JIT에 대한 홍보와 교육, 그리고 JIT와 관련된 다양한 지원을 통하여 동기부여를 제공함으로써 협력업체들업능력의 다양성을 가미한 임금제 도의 개편도 필요하다.(6) 공급업자공급업자는 공장의 연장이며 생산팀의 일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가급적 공장 근처에 입 지해야 하고 소롯트 다회분할납품{) 다회분할납품 : 여러업자가 협의하여 교대로 납품하는 방법이다.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공급일자와 공급시간을 지정하 여 공급부품의 검사를 거치지 않고 생산라인으로 직접 투입한다. 이에 따라 JIT 생산방식 의 공장은 가급적 공급업자의 수를 줄여서 한 사람의 공급업자의 이용을 원하게 되고, 장 기공급계약과 유리한 가격조건 등을 통해 부품의 품질을 보장받으려 하다.5. JIT의 세부적 사고방법 및 세부용어(1) 생산기술생산기술이란 물건을 만드는 방법의 기술, 작업(공정)의 흐름이다. 말하자면 소재의 선택 방법, LINE설계, 가공방법, 작업순서, 설비 등 모든 기술을 종합한, 즉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생산현장의 기술로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에 대하여 COST로 도전할 것인가라는 것, 예를 들면 제품을 만드는 경우 타사와 같은 설비로 같은 재료, 같은 작업방법으로는 다른 기업과 싸워서 이기기 힘들다. 그렇지만 같은 기계라도 MAKER의 사양서 대로 사용하지 않고 기업 독자적인 금형이나 공구를 연구하거나 준비시간을 단축하여 가동률을 높이거나 효율이 좋은 생산설비로 개조하는 것은 그 결과로 하여금 경영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 된 다.(2) 움직인다.움직이는 것과 일(작업)을 하는 것에는 구별이 필요하다. 현장의 작업에서는 물건의 운반, 적재변경, 물건 찾기 등의 동작은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동작을 단순히 움직인다 라고 말하고 가치 있는 일과 구별하고 있다.(3) 일을 한다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인간의 동작만을 일을 한다고 본다. 공장에서는 일만 한다면 "무 익함"이 줄어 들고 효율이 좋아지는 것, 또한 "움직임 + 인간의 지혜 = 일"이라고 말한다.(4) [왜] (WHY)를 다섯번 반복(5W)직장의 문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5W1H(WHEM, WHY, W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제조현장에서 불필요한 원가만을 높이는 모든 요소 를 말한다. JIT 생산 방식에서는 불필요를 제거해 나가고 있다.(16) LEAD TIME물건을 생산할 때 일반적으로 질, 량, 비용 등을 생각하지만, 도요타에서는 질, 량, 타이밍 을 중시한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이 필요한 때를 놓치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늦어져도 버린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빨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손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정체를 가져오고 남아도는 불합리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만들어 버린다. JIT 생산방식에는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은 늦어져 버리 는 것 이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경고하고 의식개혁으로 결부시켰다. 그래서 재료를 입고 에서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생산의 LEAD TIME 이라 부르고 고객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생각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17) 밀어넣는 방식(Push System)JIT 생산방식을 도입하고 있지 않은 각 현장에서 생산계획에 의해서 각 현장에서 일정 계획대로 생산하는 일반적인 생산 방식. 이 방식은 예측차질, 관리미스, 불량발생과 수리, 설비고장, 출근상황에 따라서 생산 계획대로 생산하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생산 현장에서 는 재공이 생기더라도 어떻게 해서던지 후 공정에 맞추어 갈려고 하는 심리가 발생한다. 이것이 여러 가지 낭비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또 테일러, 길브레이스의 소위 과학적 관리법이 적용되는 고능율 현장임에도 더 이상 생산성 향상이 어려운 현상을 낳고 있다.(18) 끌어 당기는 방식(Pull System)각 공정에서 계획에 따라 후 공정에 관계없이 부품을 만들면 다른 공정쪽에는 결품이 되 기도 하고, 또 다른 공정쪽에는 부품의 재고가 쌓이면 필요한 조립부품의 물건이 갖추어 지는 것이 어려워 진다. 그래서 생산 현장에서도 후 공정이 필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이 필 요한 만큼 가져오게 해보면 물건을 미리 많이 갖추어 둘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Turco(1089)가 보여주는 생산성에 관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JIT는 보조재료와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생산시스템의 거 의 모든 부문의 생산성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총생산성투입요소.재료와 에너지.자본.노동.직접재료.고정자본.직접노동.보조재료유동자본.간접노동.에너지지원.산출(생산량과 원가)원자재.재공품.완제품..적시생산에 의해 영향받는 변수(그림 1) Bartezzaghi and Turco(1989)의 생산성 향상도JIT는 재고비, 리드타임, 준비시간의 감소, 품질의 향상 등으로 생산량이 투입량에 비해 상단히 빠르게 증가하므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표 2)는 JIT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산성을 보여준다.{생 산 성 비 율노 동 생 산 성재 고 회 전 율투 자 수 익 성영 업 이 익 율적 시 생 산 에영 향 받 는변 수직접노동비완제품간접노동비재공품자본경영성과경영지원비원자재(표 2) 적시생산에 의해 영향받는 생산성 비율(2) 품질JIT는 품질향상을 가져온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 어떠한 품질에 영향을 주는지는 밝혀 지지 않았다. 그런데, Bartezzaghi and Turco(1089)는 품질을 다음의 네 가지 차원으로 분 류하고 JIT에 의해 영향받는 품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디자인의 품질, 규격 및 설계 적합성, 신뢰성과 내구성, 기술성 등이다. 그들은 JIT는 규격적합성 품질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들은 JIT에 의해 영향받는 품질을 (그림 2)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품 질디자인 품질*적합품질.신뢰, 내구성기술성공장내.공장외.불량률품질보증비불량으로 인한 재작업비. 적시생산에 의해 영향받는 품질변수* 적시생산에 의해 영향받는 품질변수 (일부 특정제품에 한함)(그림 2) Bartezzaghi and Turco(1989)의 품질 향상도(3) 유연성(Flexibility)유연성에는 제품유연성, 수량유연성, 제품의 혼합유연성, 신속성 등이 있다. 적시생산은 리 드타임과 준비시간, 빈번한 배달 등으로 제품혼합 다단다.
목 차1. 서 론2. 식민지 공업화에 대한 관점의 출발3. 식민지 공업화 정책의 전개과정1) 공업화 정책의 실시배경2) 공업화 정책의 내용4. 식민지 공업화의 전개5. 결 론1. 서 론일제 식민지하에 대한 공업화 문제는 해방 이전까지 일본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해방 이후 우리 역사학자들에 의해 등장한 원시적 수탈론과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대립되는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1980년대 들어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나게 되었고, 현 시점에서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한 시각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그럼, 지금까지의 식민지 공업화에 대한 관점은 어떤 것이었고, 식민지 공업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양립하는 두 개념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고방식이 필요한지에 대해 서술해 보겠다.2. 식민지 공업화에 대한 관점의 출발식민지 공업화에 대한 해방 이전의 일반적인 논의는 「조선산업혁명론」이다. 일본학자 스즈키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1930년대의 조선의 공업성장을 산업혁명으로 규제하고 있다. 철도의 건설, 풍부한 수력자원의 확보를 통한 안정적인 전력공급, 만주국의 독립에 수반한 배후 상품시장의 등장, 금수출 재금지에 수반된 광산개발의 활성화 등이 그러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조선의 공업화를 위해 총독부가 전면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 다름 아닌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식민사관에 기인한 것으로 일제를 문명의 시혜자로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해방 이후 대표적인 논의는 식민지공업비지론(植民地功業飛地論){) 대표적인 논자는 김철이다.과 민족경제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식민지공업비지론(植民地功業飛地論)은 조선의 공업화는 일본 자본주의 분업시스템의 한 축으로 진행된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일본본토와의 분업연관에 따라 일본대자본의 직접진출에 의한 공업화였으며, 그 주요한 진출형태는 분공장(分工場)이었고, 만주 혹은 중국시장을 겨냥한 생산주의화 과정의 귀결은 공업구조의 파생성, 민족자본의 소멸이었고, 이는 식민지 초과이윤을 위한 일본자본의 운동, 곧 식민지 수탈과정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다.이 두 가지 관점은 분석대상과 식민지 조선의 사회성격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해방후 한국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논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내재적 발전론 계열에 속하는 원시적 수탈론이다.{) 박현채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연구성과가 대표적이다. 박현채 「한국자본주의와 민족 운동」 한길사, 1984이러한 주장은 조선사회내부에서 내재적 발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하며, 이러한 발전의 경향과 추세가 오히려 일제에 의한 식민지 수탈에 의해 저지되거나 왜곡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식민지 공업화는 일본독점자본에 의한 군수공업의 이식, 이러한 일본으로부터의 자본진출은 조선 재래의 경제와 산업적 연관을 갖지 않는 것이며, 이로 인해 산업의 불균등성장, 지역적 불균등 성장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전과 그에 대한 이해를 둘러싼 사회구성의 성격에 관한 논쟁을 통해 내재적 발전론을 비롯한 기존 논의의 방법론적 재검토가 대두되었고, 그 대표적인 연구성과가 식민지 공업화론 이다{) 논자에 따라 근대화론 으로 혹은 성장론적 경제사 연구 로 구분하기도 한다. 배성준, 「1930년대 일제의 조선공업화론 비판」『역사비평』 계간 28호. 그 인식의 출발점은 한국경제의 역사적 경험이 세계사적으로 매우 새로운 현상이며, 따라서 종래의 한국의 역사인식을 새로운 역사현상에 기초하여 근본적으로 다시 고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경제를 후진적으로 평가하고, 그 식민지성이나 반봉건성을 중점에 두어 분석해 온 종래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중진국으로서의 한국경제의 기초는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어 왔는가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의 반동성과 역동성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전제한 광범위한 실증연구의 성과는 내재적 발본의 독점조직의 확대·강화를 통해 독점자본의 성숙으로 귀 결되었다, 이러한 독점자본의 성숙은 과잉자본의 축적과 투자기회의 급속한 감소를 동반한 것이었으며, 과잉자본의 투자지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둘째, 미가의 지속적인 하락은 조선의 농민경영을 파탄시키고 사회불안을 증대시킴으로써 조선통치의 중농정책의 한계는 총독부로 하여금 조선에서의 공업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 식, 산업정책을 전환시키는 또 다른 배경이 되었다.셋째, 세계공황을 계기로 국제무역이 현저히 축소됨으로써 수출부진이 초래되었고, 이는 수입억제정책의 보편화 속에서 자국산업의 보호와 자급자족을 위한 경제적 제국주의를 팽 배시켰다. 이는 일본으로 하여금 대동아 공영권의 건설로 나아가게 하였고, 급기야 만주사 변을 시작으로 하는 침략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점자본을 추진주체 로 하는 군수공업화가 시작되었고, 식민지 조선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따라서, 일본 자본주의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식민지 통치의 모순을 완화 하고자 한 정책적 전환이 식민지 공업화 정책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식민지 공업 화 정책의 추진은 일본정부, 일본 독점자본, 식민지 권력,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사정 등의 제조건과 일치한 것이었다. 따라서 총독부의 공업화 정책 역시 일본정부와 일본 독점자본 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즉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일본독점자본 의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2) 공업화 정책의 내용1930년대에 실시된 공업정책을 크게 나누면 자금정책, 원료정책, 노동정책, 토지정책 등으 로 구분할 수 있다. 자금정책은 양질의 국내자금의 동원과 배분을 목적으로 하는 저축 조 성운동, 저금리 정책, 임시자금조정법 등과 국제적 지불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산금정책 등 이 포함된다. 원료정책은 공업원료확보와 전력의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남면북양 (南綿北羊), 북선개척(北鮮開拓)사업, 중요광물 증산정책, 그리고 전기사업통제정책이 여기 에 의 조선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는 방향으로 집중되었 다.이러한 1930년대 전반의 공업화 정책과는 달리 1936년을 기점으로 조선의 공업화 정책은 체계를 갖추어 일관되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먼저 1936년의 조선산업경제조사회(朝鮮産業 經濟調査會)는 일본제국 경제권의 강화를 당면 목적으로 하여 조선경제에 대한 일정한 기 준과 역할을 부여하였다. 조사회는 원시산업 중심의 공업성장에서 다종의 광범위한 산업의 전면적인 발전으로 전환하여, 농공병진 , 특히 광공업의 비약적인 진흥을 주장하였다.1936년의 조선산업경제조사회 의 결정이 기존 공업화 정책을 총괄하는 것이었다면, 1938 년 시국대책조사회 에서는 조선 공업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체계적으로 제 시되었다. 중일전쟁 확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조사회의 결정은 1조선의 산업구성을 재편성하여 시국산업 을 보호·육성하고, 2거액의 자본을 집중하여 대륙병참기지로서의 조선을 건설하며, 3이러한 목적에 맞는 노동자를 양성함과 동시에, 4중소기업을 재편성하 여 하청화 시킬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시국산업 부문의 보호·확대가 강조 됨과 동시에 노동력의 양적 확보와 양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1936년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은 일본의 생산력 확충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며, 특 정화 산업, 특히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자원의 정책적인 배분으로, 여타 부문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전시기의 공업화는 결과적으로 단순히 전쟁목적을 위한 자원 의 강제적인 재분배에 불과하였음을 뜻한다.4. 식민지 공업화의 전개내재적 발전론적 관점에서 공업화의 전개과정은 조선인의 주체적인 참여와 적응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공업화의 과정에서 조선은 자본은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성장하여 가고 있었다. 조선인 공장수의 변화추세는 양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인 공장수의 변화추세, 근대공업부문에 속하는 공장의 확산 전도 및 가내공업에서 공장공업으로의 상승이라는 질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소자본에 의해 지속되었다.그러나, 1932∼37년에 조선인 공장수는 2,492개에서 3,754개로 증가하였다. 다른 시기에 비해 공장수가 많이 증가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진출 업종의 성격이나 중·대규모 공장수의 증가 속도면에서는 이전 시기와 구별된다. 온유 제조업에서 조선인 공장수가 441개에서 957개로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정곡업에서는 741개에서 827개로, 양조업에서는 380개에서 429개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조선인 공장은 밑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분출을 통해 중소공업이 가능한 근대적 업종을 중심으로 보다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나감으로써 일본인 공장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며, 강인하게 생존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식민지 공업화는 조선인 자본의 적응과 성장뿐만 아니라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의 양적·질적 성장을 동반한 것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자의 성장은 단순한 양적인 성장과 함께 식민지 공업화의 전개과정 속에서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를 동반하는 것으로 공장노동자의 집중도가 상승하는 것이었다.이상의 분석결과는 식민지 시기에 진행된 광의의 공업화에 주목하면서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도 일본자본에 의해서 주도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1930년대 초를 기점으로 공업화가 활발히 전개되어 갔고, 단순히 전시하 일제의 정책이 아닌 조선내의 조건에 의해서 주도되었으며, 조선내의 산업연관을 창출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인도 민족자본이든 노동자이든 자본주의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 성장해 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원시적 수탈론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1920년대에 들어 일본은 산미증식계획의 실시와 병행하여 소위 공업화 를 추진하였다. 세계적 공황 이후 과잉자본의 투하로 조선에서의 중화학 공업이 촉진되게 되었다. 이는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대륙에 대한 군사적 침략계획과도 밀접히 결부되어 행해졌다.1917년의 조선내 공업회사의 공칭자본금 구성을 민족별로 살펴보면 일본인 자본이 7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