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와 닮아가기(R.J 팔라시오, 천미나, 책과 콩나무, 2012)“만일 요술램프를 찾아서 한 가지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갖게 해달라고 빌겠다. 길거리에서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획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없게 해 달라고.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p.8)만약 내가 한번 보면 충격을 주는 기형을 가진 장애인이라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는 선천적 안면 기형을 갖고 태어난 어거스트가 홈스쿨링을 그만두고 5학년에 들어가면서 그와 주변 인물들이 겪게 되는 1년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스물일곱 번의 안면수술을 거치고도 한번 보면 누구나 놀라게 하는 외모.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2여년간 헬맷을 쓰고 다니던 어거스트는 부모의 권유로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외모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참아야 하는 어거스트는 과연 꿋꿋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저자 R.J 팔라시오는 다른 책들의 표지 디자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어거스트와 같은 안면 기형 아이를 보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어거스트의 주변 친구들에 대한 시리즈작을 집필하였다. 미국 대표적 일간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장편동화인 와 그 시리즈는 최근에는 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개봉되기도 하였다.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바라볼 때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특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치 외모를 평가하듯 자기 외모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안도감이나 연민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장애가 전염병은 아니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 것이다. 비단 장애가 아니라 하더라도 심하게 못생기거나 가난하면 알게 모르게 피하거나 자신보다 낮게 본다. 사람을 구분 짓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해줘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순간순간 구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많은 사람들은 남보다 우월하길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거스트는 타인의 시선은 가능한 애써 외면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유머감각 있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어거스트로 성장한다.“자신만의 매력으로, 그의 힘으로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자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p.462)없는 것에 대한 동경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계발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그리고 남보다 우월하려는 마음에서 그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나누고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역시 위대해질 수 있다.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 타고난 능력은 다르다.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자기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노력한다면 남의 기준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는 있다.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행복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비교는 줄어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기준이 있고 그에 맞춰 산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이렇게 개개인의 노력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 주변엔 더 좋은 이웃들이 늘어나 지금보다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의사소통의 중요성(마틴 피스토리우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이유진 옮김, 푸른산, 2017)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12살에 원인 모를 뇌막염을 앓고 의식불명에 빠져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4년 뒤 기적적으로 의식은 돌아오지만 그의 부모조차 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나서야 사려깊은 요양사 버나가 의식을 되찾았음이 발견한다. 그 뒤 의료진에 의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고, 기적적으로 점차 건강이 좋아져, 컴퓨터를 익히고 언어를 배우고 일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애나를 만나 결혼을 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된다.이 책의 제목은 아들이 의식이 돌아왔음을 모른 상태에서 그의 어머니가 자살시도를 하고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의식이 돌아온 이후 자신의 몸에 갇힌 채 10여년 동안 ‘유령 소년’으로 살면서 일부 요양사들로부터 언어적,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를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해준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그래서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점차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고 자신을 위해 헌신한 가족과 타인이 보여준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이 책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다. 언어가 없이는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고 의사소통이 되어야만 타인과 감정을 더 친밀히 나눌 수 있다. 마틴은 여전히 말을 할 순 없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으로써 사랑하며 살고 싶은 마틴의 욕구에 대해 책의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사랑하고 사랑받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이다.“인생은 흑백이 아니라 무수한 회색 그림자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때로 틀릴지언정 점차 나의 판단을 믿는 법을 배웠다. 내가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일이었다.”(P.291)
누구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히가시노게이고, 양윤옥, 현대문학, 2012)이 책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에게도 , 등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그동안 써왔던 추리소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추리소설이다.빈집털이에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자동차마저 방전된 세 친구-쇼타, 고헤이, 아쓰야는 몸을 숨기기 위해 들어간 집에서 우연히 누군가가 우편함에 넣고 간 편지를 보게 되었고 그곳이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나미야 잡화점’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들 스스로 제 앞가림도 못한다고 여기지만,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답장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답장 이후 계속해서 편지가 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그들은 그곳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고 바깥 시간과 달리 시간이 흐르지 않는 신기한 공간인 것을 알게 되는데......이 소설은 전체 5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은 한 명의 주인공과 그의 사연을 중심으로 편지가 오가는 형식은 동일하며 그 사연들은 모두 아동복지시설인 환광원과 연결이 된다. 그래선지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하다. 사연들은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내용이 복잡하다거나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이것이 이 작품의 최고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편하게 써서 처음 이 책이 500페이지 가량 되는 두꺼움에 놀라더라도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편지의 사연들은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일들이다. 과업과 사랑, 현실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괴리, 원치 않은 임신, 부모로부터의 독립(또는 부모와의 이별),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 등. 그래선지 독자는 작가가 나미야씨의 편지를 통해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는 사연의 주인공 한명 한명이 서로 연결되고 그 가운데 환광원이라는 장소가 있어 스토리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할아버지나 세 친구의 기발한 답변들은 탄복할만하고 살면서 기억해두면 좋을 조언들도 많다.“특별한 빛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봐주는 거에요”(p.132)"내 답장이 도움이 된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야. 스스로 착실히 살자, 열심히 살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내 답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p.199)"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여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p.269)"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일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p.447)
I. 들어가는 말오랜만에 절두산 성지의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방문했을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수많은 한문서적들이었다. 그런 한문 서적들을 보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살펴보고 신앙 선조들이 조선으로 성직자를 모셔오고자 했던 노력들을 살펴보는 것은 신앙생활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떤 서적부터 봐야할지 몰라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최근 발간된 최석우 몬시뇰의 《조선에서의 첫 대목구 설정과 가톨릭교의 기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은 최석우 몬시뇰이 독일의 본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한국어로 다시 옮겨놓은 것으로 조선 천주교회사의 주요 사건을 상세하게 기록한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II. 한국 천주교회의 시발점과 조선 대목구의 의미이 책의 후기에도 밝혔지만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보통 달레(Dallet) 신부의 견해대로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평신도 사도직을 시작한 것을 원년으로 보지만, 최 몬시뇰은 교계제도가 설정된 1831년 조선 대목구 설립을 조선 교회의 공식적인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고려대 조광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 대목구의 설정은 조선 교회가 세계교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는 의미로, 교황 직속 선교회로 현지인 성직자를 양성하려했던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교회에 파견된 것은 조선교회가 세계 카톨릭 질서로 본격적으로 편입을 촉진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III. 조선에 천주교를 도입하려는 초기 시도들(1592~1783)1784년 이전에도 조선에는 이미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지만 1784년 이전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천주교회가 조선으로 흘러들어온 것은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일부 다이묘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예수회의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체류하며 병사들을 돌보며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이 일본에서 가져온 한문교리서로 신앙을 전파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사이에서 조선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어 1660년 로마는 남경 대목구를 설치하면서 조선을 포함시켰고 1702년 북경 주교가 조선에 대해 교황의 대리자로 재치권을 행사하도록 승인하였다.소현세자에 의해 들어온 천주교 서적은 전부 왕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지식인들이 널리 열람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이 부처나 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상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에서 천주교는 처음에는 서양학으로 간주되다가 유교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가르침이면서 도덕철학 내지는 실천철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IV. 조선의 평신도 공동체(1784~1790)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이승훈은 친구인 이벽에 간청에 의해 북경의 천주당에 가서 세례를 받는다.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승훈은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세례를 받고 천주교 서적과 수학서적을 얻어 조선으로 돌아와 이벽 등과 함께 연구에 몰두하여 천주교에 참된 이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북경에서 본대로 세례를 집행하고 10명의 신부를 임명하기까지 하였으나 곧 자신의 행위가 독성죄임을 알게 되었고 윤유일을 시켜 북경에 서한을 전하였다. 이 서한은 북경 교구장이었던 구베아주교에게 전해졌고 주교는 선교사가 들어간 적 없는 왕국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이후 조선의 신자들은 자기들에게 성직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북당의 선교사들에게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청하는 서신을 다시 구베아주교에게 보내었다. 1790년 10월 구베아주교는 포교성성 장관에게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되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카오교구 소속의 후안 도스 레메디오스 사제를 선교사로 임명하였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선 선교지 관리에 대해 장상이나 대리자가 필요한데 이것을 북경 교구가 아닌 포교성성이 지정하는 곳에서 맡아주길 건의하였다.V. 박해들(1791~1802)1791년과 1795년에 일어나 처음의 두 박해는 국지적이었지만 1801년과 1802년의나뉘었다. 남인 역시 채파와 시남(홍파)로 나뉘었다. 당시 재상 채제공의 성을 딴 채파의 인물들 대부분이 천주교를 믿었다. 당시 채파는 권력을 갖고 정조를 섬겼고 정조는 채파를 총애하여 중책을 맡겼다. 반대편인 홍낙안의 홍파는 채파를 싫어해 천주교에 대한 비방을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윤지충 사건은 홍파에게 공격할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홍낙안은 여론을 자극하여 유생들로 하여금 천주교가 백성을 타락시키고 인륜을 해치고 중국 반란처럼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비방의 글을 발표하게 하였다. 이렇게 소문이 공론화되고 정치적 대립이 집중되자 정조는 채제공에게 지시하여 윤지충을 사형시켰다. 다시 홍파는 이승훈이 북경에서 천주교 서적을 들여왔다고 고발한다. 이 일로 이승훈은 천주교에 반대하는 글을 짓고 천주교 서적을 불태워 북경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근거를 없앴다. 이렇게 배교까지 한 이승훈은 혐의를 피할 수 없어 결구 유죄선고를 받고 1791년 직위에서 물러났다.두 번째 박해는 주문모 야고보 벨로조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계기로 일어났다. 선교사 후안 도스 레메디오스가 조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북경으로 돌아온 이후 북경 교구장 구베아주교는 조선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내다가 조선사신의 수행원들에 의해 조선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해박해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간청에 구베아주교는 중국인 사제 야고보 벨로즈를 선발하였고 그는 중국과의 국경을 통해 한양에 도착하여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지내며 조선어를 공부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795년 한 배교자가 중국인 신부가 도착하고 입국을 도운 자들을 밀고 하여 급히 최인길 마티아의 집을 급습하였다. 다행히 강완숙 골롬바의 집으로 피신하였지만 입국을 도운 이들은 고문 끝에 순교하였다. 이후 반대 당파는 중국인 신부가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해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의 탓으로 돌렸다. 이가환 정약용은 노론 벽파로 결국 이승훈은 충청도로 유배가고 이가환 정약용은 파직당하였다. 강완숙 골롬바,해가 터졌을 때 충청도로 피신하여 거기서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쓰고 북경으로 보낼 방도를 모색하다 발각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1801년의 ?백서?이다. 편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일 먼저 이번 박해의 초기 순교자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고 두 번째 부분은 황사영이 북경 주교에게 조선 교회의 비극적인 상태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종교의 자유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는 계획들을 제시한 것이다. 4가지 계획은 1) 국경 통과시 언어가 장애물이므로 선교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조선 사람을 북경에 보내고 열성적인 중국인 신자 1명이 국경 지대에 주막을 차린다. 2) 교황이 중국황제에게 편지를 써 중국황제가 조선 임금에게 명하여 신자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도록 한다. 3) 조선왕국을 중화제국에 합병시키도록 한다. 4) 이 계획들이 난관에 부딪힐 경우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수백 척의 전함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이다. 황시영 알렉시오와 벨로조 선교사는 평화적 개입이 최선인 동시에 가장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피력하였지만 어쩌면 대박해와 그 가혹함이 신자들로 하여금 군사적인 개입이라는 생각마저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1802년 1월 25일 순조는 사실상 천주교 금지령을 반포하여 전국적 박해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반적인 양상으로 볼 때 1801년과 1802년에 일어난 박해는 1791년과 1795년에 벌어진 박해들과 달리 전국적 박해였고 수도에서만도 3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으며 왕족부터 노비까지 모든 계급에 걸친 것이었고 무엇보다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VI. 조선 교회를 재조직하기 위한 시도들(1802~1831)대박해로 선교사는 물론 공동체를 이끌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잃었다. 천주교 서적과 성물들은 거의 전부 없어졌다. 다행히 1804년 포교성성에서 1801년 신유박해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또한 1807년 구베아주교가 교황청의 각계 인사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조선에서 벌어진 박해에 관하여 알렸다.교성성에 도착하였고 포교성성은 이 편지들을 검토하였다. 그들은 조선 신자들의 정신력에 크게 경탄하여 그들에게 영적 지도의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시급한 필요성에 납득하였다. 포교성성은 마카오에 상주하던 마르키니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선교사 한명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817년 2명의 중국인 신부-신벨로조 신부와 밤 요한 신부를 조선에 보내고자 하였다. 그들은 주문모 신부가 택했던 장소를 거쳐 입국할 계획을 세웠으나 조선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신벨로조 신부는 조선의 관문에서 사망하였고 조선 총대리인 밤신부는 다시 남경으로 가 활동하다 병에 걸렸다.1824년 포교성성에서는 다양한 수도회 책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조선에 신부를 보내달라고 간청하기로 계획하였다. 1827년 포교성성은 1824년의 계획을 실행하여 외방전교회 신학교의 랑글루아 장상에게 서한을 보내 북경교구가 도와준다면 현 상황에서 조선 신자들을 맡을 수 있겠는지 문의하였다. 1828년 조선인 청년이 신부가 되려는 목적으로 마카오에 도착하였고 이 조선청년에게 조선교회는 많은 희망을 걸었고 포교성성 역시 그에게 큰 기대를 걸며 잘 교육시켜 장애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최대한 빨리 서품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돌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1829년 방콕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파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으로 들어가겠다고 새로 지원하였다. 1831년 포교성성은 조선에 가겠다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계획에 호의적으로 반응하여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에 확실히 성공하면 새로운 대목구를 조선에 세우는 문제에 찬성하였다. 하지만 조선 선교지를 파리 외방전교회가 맡을지 포교성성이 직접 관할할 것인지의 결정은 유보하였다.이 시기에 대박해라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조선 신자들이 직접 끊임없이 올리는 호소와 마침내 듣게 된 포교성성의 그 호소가 없었다면 조선교회는 사라졌을 것이다.VII. 조선 대목구의 초창기(1831~1837)1831년 9월 9일 교황 칙서를 통해 조선에 대목구가 설립되었다. 조선대목었다.
심종문 《변방의 도시》심종문 《변방의 도시》도 중문학을 처음 접한 2002년에 읽었었다. 당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없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고 쉽게 소화해내지 못했다. 또한 미사여구나 수식을 싫어하는 당시 내 특성상 심종문의 글은 어렵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레포트를 쓰기 위해 다시 읽고 심종문 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좀 살펴보니 이 소설도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소설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시골의 모습이나 등장인물 등의 묘사가 뛰어났던 게 생각이 나 다시 읽으면서 내용과 향토적인 풍경 등을 차근차근히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었다. 소설의 내용은 호남성 서쪽 변방지역의 `다동` 마을에서 사천성 사이의 강에서 나룻배로 사람을 나르는 사공 할아버지, 그의 어린 외손녀 취취, 호탕한 성격의 부두 관리자 순순, 그의 두 아들 천보, 둘째 아들 나송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품 속에 나온 취취와 두 형제의 삼각관계도 흥미로웠지만 소설 속에서 나오는 단오의 풍습 그리고 매년 단오라는 시점을 통해 변하는 인물간의 심리 변화를 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주변 환경에 대한 단순한 묘사이겠거니 했던 것들이 점점 일어나는 사건들과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중국에 있을 때 감명 깊게 본 ‘소재봉’이라는 영화로 그 영화에서 처음 등장인물이 하방되어 산속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이 이 소설의 묘사와 비슷했고, 그리고 할아버지와 사는 여주인공이 두 청년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 등이 이 소설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재봉’에서는 여주인공이 떠나 두 청년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이 소설에서는 취취가 나송을 기다리는 게 다르다. 이 소설처럼 풍경의 묘사나 등장인물 간의 삼각관계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