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본은 어떤 일본입니까-『국화와 칼』과『일본의 재구성』을 읽고 -들어가며“일본 문화의 특징에 대해 말해보세요.” 일본교환학생 면접에서 내가 받은 질문이다.“일본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일에 철저하고, 전통을 중요시해 다도나 꽃꽂이를 소중히 하고…” 나의 촌스러운 대답이다. 촌스럽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 한 번도 묻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소위 일본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내가 생각하는 일본인양 말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본을 경험해보지 않아 일본문화의 특징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나처럼 어디선가 주워들은 일본에 대한 특징을 일본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 일본이 정말 실재하는 일본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듣고 책으로 보아 알고 있는 일본은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고 만들어진 이미지, 즉 담론이다.일본의 과거는 어떠했고 현재는 어떠하고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하기 위해 일본 사회전반을 다루는 책이 일본론이다. 일본론은 ‘일본은 어떤 나라이다!’라고 일본의 특징을 간결하게 설명해주는 이점을 가진다. 이런 일본론은 일본을 배우기 위해, 견제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하지만 이런 포괄적인 일반화 방식은 다양성과 예외성을 묵과하는 위험을 동시에 가진다. 어떤 사실은 고의적으로 누락되기도 하고 부각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론이라 할지라도 실재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일본론에 관한 책을 읽고자한다면 두 권 이상의 책을 읽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일본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이런 이유로, 일본론으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책들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과 패트릭 스미스의 『일본의 재구성』 이 두 권을 선택해, 어떤 일본을 그려내고 있는지 그 공통점과 차이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두 책은 일본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본에 대해 큰 차이를 보인다.누가 언제 왜 썼는가.이 두 책은 시대적으로 다른 일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국화와 칼이 집필된 것은 태평양 전쟁 시 일본의 패전을 앞둔 상황인 1943년부터 패전직후까지이다. 미국인 인류학자인 베네딕트는 종전 후 미국정부가 일본을 어떤 식으로 점령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일본사회를 연구할 것을 부탁받고 국화와 칼을 저술하게 되었다. 때문에 국화와 칼이 다루고 있는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까지의 일본이며 현대의 일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알기는 어렵다.이에 반해 일본의 재구성은 약 10년 전인 1990년대 후반에 쓰인 책으로 국화와 칼에 비해 현대의 일본을 담고 있다. 그는 20년 이상 일본과 아시아에서 생활한 언론인으로 현대 일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일본의 재구성을 쓰게되었다.누가 왜 썼는가의 차이는 글의 서술방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인류학자였던 루스 베네딕트는 각 민족은 각 민족만의 고유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렌즈를 다른 민족이 쓰려 해도 원래의 주인과 같은 세상을 볼 수는 없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각 민족 고유의 문화는 어느 한 문화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될 수도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자로서 베네딕트는 일본 사회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을 밝혀내, 미국이 전후의 일본을 대함에 있어 이런 일본문화의 특징을 이해하고 일본사회에 맞는 점령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일본에 대해 서술했기 때문에 미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는 방식이 자주 드러나며,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일본의 카스트제도적 사회구조를 비교하는 등 서양의 다른 지역에 대한 식민지경험과 일본을 자주 비교하기도 한다. 국화와 칼은 전쟁 중에 쓰였기 때문에 베네딕트는 일본을 직접 방문할 수 없었다. 대신 기존의 연구를 종합하고 일의 문화를 외국에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문화우월주의를 경계한다는 점 또한 베네딕트와 닮아있다. 하지만 베네딕트가 일본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미국이 일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을 가정한 반면, 스미스는 미국이 일본에 영향을 미치려 했기 때문에 현재 일본이 정체성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베네딕트가 일본사회의 전반을 살펴보며 일본 사회가 다른 사회와 어떤 점이 다른지 한마디로 특징화하려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스미스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이 자신들의 주체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떻게 왜곡되었는가하는 문제의식을을 중심으로, 종전이후 미국이 일본과 맺은 협정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그 영향이 현대의 일본에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을 취한다.일본은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 전통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베네딕트는 일본은 서구와 다른, 동양 내에서도 중국 등 다른 국가와 다른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태평양 전쟁 시 포로가 되느니 자살을 선택하는 일본인을 서구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인의 천황에 대한 ‘온’과 ‘기무’의 관념을 알지 못했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 사회가 가지는 계층적 구조 내에서의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의 중요성과 그것에 충실했는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시 하는 일본사회의 특징은 서구의 의무, 책임개념과 다르다. 일본인은 개인의 가치관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며 개성이 눈에 않는 국가라고 평가한다. 베네딕트는 일본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베네딕트는 제목인 국화와 칼처럼 일본인은 가을의 국화를 즐기고 가꾸는 전통을 가진 섬세한 민족인 동시에 국화를 든 손 아래 차가운 칼을 차고 있는 냉정함을 동시에 가진 ‘이중성’으로 대표되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국화는 황실을 의미하므로 천황에 대한 외부에 보이는 충성심과 칼이 녹슬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닦는 내부적인 자기수양의 이중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스미스 또한 일로 가지고 있는 점이라고 본다. 다만 일본의 이런 특성은 미국인에 의해 지나치게 부각되어 일본이 유난히 다른 나라에 비해 특징화되어 인식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으로 악화되어있는 일본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판적인 평가를 축소화하기 위해 일본정부의 군국주의적 행동은 은폐시키고, 대신 일본의 문화적 측면 다도나 꽃꽂이와 같은 문화와 순종성을 부각시켜 세계의 이목을 끌려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자기들만의 오리엔탈리즘 버전을 개발해 일본과 일본인이 어떤 종류의 나라에 사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창작된 일본의 이미지는 아직도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일본 국민들은 자신들의 고정된 전통과 이미지에 벗어나는 개성을 보여주는 것에 주저하게 되어 압박을 느끼고 자신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감춰야하는 이중적인 심리갈등을 겪게 되었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에게 결여된 것은 남한테 보여주는 측면의 개성이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다. 패트릭 스미스는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통에 대해 대전통과 소전통을 구분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재규정해 숨겨져 있던 개성이 훤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말한다베네딕트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실패한 것은 일본이 일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동양의 다른 국가에 무리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애초부터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잇을 것이라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평가한다. 일본은 대동아단결을 통해 동양인 대 서양인의 싸움으로 태평양전쟁을 규정하고 동양이 단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이 다른 동양국가에게 요구한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체계는 다른 어느 곳에도 기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이 간과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동양의 다른 국가들의 충분한 협조를 얻어낼 없었으며 이로 인해 실패했다. 인류학자다운 해석이다. 일본인은 천황에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 또다른 특성은, 일본이 ‘실패로 끝났다’라고 인정한 일에 대해 그 뒤로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쟁중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으므로 그 방향을 포기할 수 있었다. 스스로 긍정적인 방향전환을 이룬 것이다.스미스는 여느 국가가 그러하듯 일본은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목적을 최선으로 삼았으며, 그 방법으로 제국주의 팽창을 택했다고 말한다. 일본이 패전이후 전쟁이 끝나 천황을 위해 죽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 미국이 자신들을 죽이러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미국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일본이 군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나, 미국은 일본을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이미지화하기 위해 이런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전쟁을 일본인의 성향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해 축소시키려 노력했다. 미국은 일본을 원래 평화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 사랑하는 국가이나 이 시기 소수의 지도자들에 빚어진 하나의 오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일본이 군사적 행동을 취했던 과거를 덮으려 해서도 안 되고 다른 나라가 그러하듯 일본 또한 공격적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 국가임을 억지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일본은 재무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베네딕트와 스미스는 둘 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패전 이후 악화된 일본에 대한 세계의 분위기상 당장 침략전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언젠가 세계의 분위기가 갖춰지면 예전의 군국주의 침략을 다시 꺼내 그것이 실패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일본의 우익세력이 여전히 건재하고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미국에 의해 평화헌법이 만들어져 최소한의 자위대를 가지고 있으나, 이는 일본의 충분한 의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평화헌법에 대한 회의와 개정의식한다.
< 중국사회문화 9조 >중국의 인구정책과 소황제경제학부 4학년 이상준영어영문 4학년 김민정국제관계 3학년 최솔이목 차Ⅰ. 서 론특정 이름으로 규정지어진 세대들의 등장 : 왜 소황제인가?Ⅱ. 본 론1. 소황제의 등장 배경2. 소황제는 누구인가?3. 소황제의 특징적 요소1) 중국교환학생과의 인터뷰2) 신문기사에 그려진 소황제 현상4. 소황제 계층이 중국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1) 경제적 파급효과- 소황제의 막대한 자본력과 구매력- 소황제 계층의 소비패턴2) 새로운 문화코드의 등장3)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 부의 편중 -> 사회적 위화감 조성- 사교육비 지출과다- 남녀 성비 불균형과 낙태의 문제- 4-2-1 현상 -> 노인 부양비 증가- 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4) 중국 외교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Ⅲ. 결 론Ⅰ. 서 론특정 이름으로 규정지어진 세대들의 등장 : 왜 소황제인가?우리나라에는 386세대로 일컬어지는 특정세대가 있다. 1990년대 30대의 나이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이들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이끈 학생운동 제 1 세대로서 정치적 격변기의 집단적 승리를 함께 경험하였다. 이처럼 특정 이름으로 규정지어진 세대들의 등장은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정치, 문화, 경제적 환경에 노출되어 자랐다면, 그들이 나중에 사회의 주도층으로 성장했을 때 어떤 공통적인 성향을 나타낼 것이고, 그것을 통해 그 사회의 현재를 통찰하며, 더 나아가서는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중국에서도 거대 중국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메커니즘으로써 특정세대들이 존재한다. 세대야 말로 중국 공산당의 거시적 정책과 중국인들의 미시적 행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인데, 중국에서는 시기마다 터져 나왔던 정치적 격변을 기준으로 해서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세대로 구분된다.청소년50년에 이미 북경대학의 한 교수가 인구를 방치할 경우 1970년 후반이 되면 10억을 넘어설 것이라며 출산 제한 정책을 주장하였지만, 중국의 힘이 많은 인구에 있다고 생각하던 모택동의 입장과 상반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970년대 후반 10억 명을 넘어서자, 등소평 정권은 더욱 극단화된 한 자녀 정책을 시행 하였다.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은 ‘만혼만육’, ‘소생우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늦게 결혼하고 늦게, 적게 낳아 잘 기르자는 내용이지만, 이 정책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크게 도시와 농촌 간, 민족에 따라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도시에 살고 있는 한족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 자녀만 출산할 수 있지만, 농촌에 살고 있는 한족은 첫째 아이가 여아인 경우 둘째까지 출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농촌지역의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 소수 민족의 경우에는 도, 농을 불문하고 둘째까지는 허용되는데 이는 민족 말살 등의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어길 시 정부는 주거, 직업 선택, 의료, 세제 등의 혜택을 박탈하고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여 강력하게 제어함으로써 산아제한정책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소황제를 등장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2. 소황제는 누구인가?소황제란 중국어로 샤오황띠, 즉 작은 황제라는 말이다. 소황제를 넓은 의미로 보면 중국정부가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한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을 8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이라 하여 80後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전체 중국인구 13억 명 중 16%를 차지하는 2억 명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좁은 의미로 소황제의 범위를 규정하고자 한다. 8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 중 부를 바탕으로 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독생 자녀를 소황제로 정의할 것이며, 이렇게 우리 조가 생각하는 범위의 소황제는 16개 대도시를 중심으로 약 4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은 한 명의 아살방지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아이들이 실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필요가 있고, 중국 정부의 도움이 없다면 어떠한 좋은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2) 신문기사에 그려진 소황제 현상사례1.올해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 하나를 둔 자오쥔(37)은 월수입 2800위안(약 36만원) 가운데 3분의 1을 아이에게 쏟아붓는다. 자오는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을 과외시킨다"면서 "4월에는 1600위안짜리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월 생활비 지출에서 아파트 대출상환금과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크다"면서도 "아이에게만은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싶다"고 말했다사례2.상하이 대외무역 경제학원을 졸업한 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웬(24)은 주말이면 여자친구와 여행다니기에 바쁘다. 그는 한달에 3700위안(약 47만원)을 번다. 임금이 높은 상하이나 베이징의 월 평균 임금이 1500위안(19만원) 전후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이다. 하지만 그는 월말이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기에 바쁘다.웬은 중국 젊은층을 대변하는 이른바 ‘월광족’이다. 월광족이란 ‘월급을 월말이면 모두 써버리는 중국의 신세대 젊은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모 덕에 어렵지 않게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의 수입이 생겼지만 그들 부모는 여전히 감싸고 돌기만 한다. 결국 그들은 주거와 생활에 대한 고려 없이 펑펑 써대며 월말이면 빈털터리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사례3.지난 9월 ‘베이징 고등교육기관 안전교육공작회의’가 공개한 통계를 보면, 올 상반기 베이징에서만 15명 이상의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국의 ‘천재’들이 모여든다는 베이징대의 경우, 상반기에만 6명이 자살한 것으로 학생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중국 청년들 사이에 자살이 유행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울’이다. 베이징 대학가에는 ‘위먼’(우울)이란 낱말이 하나의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 자살이 유행하는 가장 큰 원내수시장의 파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소황제 계층의 소비패턴중국 소황제 계층의 소비패턴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가정에서 3대(代)의 소비주도권을 쥐고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영점조사(零點調査)는 최근 도시지역에서 13세부터 18세 자녀가 가정 내 소비 관련 의사결정권의 44%를 행사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메킨지도 작년에 10대를 위한 지출이 한해 2,900억 위안(약 35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또한 중국 소황제 계층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별명은 ATM세대, 즉 축적부족(Accumulation shorten), 소비열중(Tingled on consumption), 계획성 없음(Making no plan)으로 대변되는 세대라는 것이다. 2006년 6월, 영점조사(零點調査)가 80後 세대 중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축은 전혀 안 한다’라고 응답한 자가 28.7%에 달했다. 이런 현재중심의 즉흥적인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월광족(月光族 : 한 달 월급을 단기간에 몽땅 소비해버리는 사람)은 가정으로부터 집중적인 ‘경제원조’를 갖고 있으며, 미래 소득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어 마음껏 현재를 위한 소비에 열중한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돈을 버는 목적은 소비’ 이러한 형태의 구매가 그들의 소비 철학이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내일의 돈도 신용카드와 대출을 통해 겁 없이 미리 쓰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앞으로는 지금의 소황제 계층이 결혼적령기가 되는 향후 10년 내에 주택구입, 그리고 이에 따른 내구재 소비에도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비록 주택이나 내구성 소비재를 사기에 80後의 구매력이 충분치 않지만 이들을 통한 대체구매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베이징 주택구입자 중 38.8%가 21~30세의 젊은 층이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의 주택소껴보려는 일반 중국 사람들의 소비심리는 중국 사회에 ‘명품 시장’과 ‘짝퉁 시장’이라는 서로 상반된 모습의 문화 코드를 정착시켰다.3)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 부의 편중 -> 사회적 위화감 조성여느 개발도상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 사회도 서구 자본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이면서 부의 편중화 현상이 심해졌다. 그 사회의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그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것을 뜻하며, 보통 0.4가 넘으면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으로 본다.이러한 지니계수 통계를 따르면, 중국은 개혁개방 이전에는 그 수치가 0.2로 상당히 평등한 수준이었으나, 개혁개방이후 2005년에는 0.417 수준으로 상승하여 0.31을 기록한 우리나라 보다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이미 위험경계선을 넘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부의 편중화 현상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부유하게 생활하는 소황제에 비하여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호적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 즉, 헤이하이즈 [黑孩子(흑해자)]들의 인권 유린과 같은 문제도 발생시킴으로써 거대 중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사교육비 지출과다병적으로 뜨거운 중국의 입시 열풍은 문화혁명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소황제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피해를 자녀들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이들의 부모들은 문화혁명 시절 학교를 떠나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농촌으로 내려가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지속해 학업의 기회를 잃어버린 세대다. 따라서 이러한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은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의 형태로 표출되기 시작했는데, 중국의 조사기구인 ‘영점조사 및 지표통계(零點調査與指標數據)’ 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8개 대중소 도시의 유치원 혹은 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2004년10월부터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