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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상] 크릴교수가 본 공자사상 평가B괜찮아요
    I 서공자에 대한 책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시간적으로 볼 때 그에 대한 연구는 그가 살았던 춘추 전국 시대이후로 계속 이루어 졌고, 공자에 대한 크릴 교수의 책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지역적으로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중국 역사에 대한 중국인의 시각과 한국인의 시각이 다르듯이 서양에서 바라본 시각 또한 다르다고 생각한다. 크릴교수에 공자에 대한 시각도 동양에서 본 공자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공자가 이룬 업적 중에서 공자에 대한 사상을 깊이 고찰 했다기 보다는 그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공자의 사상이 서양 민주주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언젠가 서양에서 쓴 도가 사상에 대한 글을 읽었다. 외국에서 본 노자에 대한 글에서도 크릴교수의 글과 같이 도가 사상에 대한 깊은 고찰보다는 도가 사상에 대한 평가와 그 것이 미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 더 중심적으로 기술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해 두고 공자에 대한 크릴 교수의 견해들을 읽으면서 나의 짧은 지식과 빗대어 습득해 나가기 시작 했다.II.공자가 살았던 시대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B.C 722-481)로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극악 무도의 시대로 표현한다. 즉 인격 존중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일반 민중들은 전쟁을 위한 병사,부국을 위한 농사도구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제철기술의 발달로 농기구 수공구 등 일반적인 생사 용구들이 철 제품으로 사용되어 농업과 수공업이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고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서서히 붕괴하게 되었다.크고 작은 제후 국가들은 명목상으로는 주나라 천자의 속국이었으나 실제로는 자주적 또는 반자주적인 독립국이었다.사회 경제의 발달과 함께 각 구의 귀족들은 서로 토지를 탈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이러한 전쟁으로 많은 나라가 멸망하고 많은 귀족들이 몰락하였다.이러한 가운데 천인으로부터 해방된 자나 몰락한 귀족이나 하층 귀족 출신들이 서서히 士라는 사회계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이들 士계층은 빈번한 전쟁속에서 군사 외교 정치 활동을 통하여 널리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포착하였다.그들은 당시 사회변혁의 시세에 적응하면서 사회변혁의 추진 작용을 수행하였다.III.공자의 사상1.예공자에게서 예 개념은 춘추시대 일반적인 예의 개념과 거의 비슷하다. 즉 두 가지 측면에서 예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논어』「팔일」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제사나 가옥의 건축양식을 신분에 걸맞지 않게 한 것이 봉건적 계급 구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여 이것을 예를 거스른 행위로 보았다. 당시 봉건사회는 계급적 차별 자체가 예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오늘날로 말하면 사회를 규제하는 규칙을 예라고 했던 것이다.「좌전」에서 보이는 나라의 근본으로서의 예란 바로 이런 경우의 예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논어』「향당」편에서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공자는 생활의 모든 면이 예에 의해 규정받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2.인공자는 인의 개념을 여러가지 윤리적인 덕의 기초가 되는 심적 상태라고 정의했다.이를테면 「논어」에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이는 다시 말하면 “자기의 사욕을 꾹 억누르고 예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바로 인이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인의 근본은 심적 상태를 말한 것이므로 인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해주고 있다.인(仁)의 의미는 ‘인’과 같으며 ‘인내’를 뜻한다.여기서 ‘인’은 ‘자기자신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즉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으면 남의 뜻을 먼저 이루도록 해주는 람이 인한 사람인 것이다.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기 때문에 타인이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이런 것을 맹자는 ‘차마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표현했고,또 이것을 인이라고 정의했다.따라서 인에는 양측면 즉 자기에 대한 측면과 타인에 대한 측면이 있다.이때 인은 자기에 대해서는 인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불인할 것을 요구한다.3.신이 개념은 인간의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신’이란 ‘허위가 없다.’는 뜻이다.이것은 『중용』에서의 ‘성’과 같은 개념으로 쓰여졌었다.인간에게 부여된 도덕성의 본질은 신(信)이다.그것은 인간 내심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밖에서 본다든지 엿들을 수 없으며 희노애락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완전한 덕의 상태이다.따라서 사람들마다 이와같이 진실된 덕의 상태를 손상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이것이 외부의 것에 움직여져 희노애락을 일으키고 감정이 발한 정도가 절도에 합치할 때 그것을 화(和)의 상태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인간의 도에는 다섯 가지(君臣,父子,夫婦,長幼,朋友)가 있고 덕에는 세 가지(知,仁,勇)가 있으며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수신을 비롯하여 아홉 가지의 도가 있으나 궁극에 가서는 신(信) 하나로 귀착된다.그러한 신은 하늘의 도이고 이를 실현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성인이란 신의 도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IV.크릴 교수가 본공자의 사상1.민주주의적 사상공자는 정부의 목적이 백성의 복리와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목적은 정치에 가장 유능한 사람이 국정을 담당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위정자의 능력은 가문, 재산 지위와는 관련성이 없고 오직 인격과 지식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존재가 전체 국민에게 선발되어 져야 한다고 하였다.공자는 군주에게 특히 유덕함을 요구 하였다. 세습귀족의 전제정치 대신 유덕하고 능력 는 사람이 민중의 이익을 위해 정치해야 한다고 하였다.그는 약탈이 아닌 모든 사람의 화로써 협동하는 사회를 구현 하고자 하였다.공자는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력 는 제자들을 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공자가 제자를 뽑는데 있어 능력과 덕이 있는 사람을 고르고 그렇지 못한 제자에 대해서는 비난도 했다고 하는 데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제자들을 양성함으로써 실제적인 개혁을 달성하고자 하였을 것이다.공자의 사상을 민주주위와 이렇게 접목시킨것에 대한 해석이 과연 옳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있다. 물론 크릴 교수가 맞다!라고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빙글빙글 돌려서 말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분명한 것은 현재 서양은 민주주의가 발달되어 있고 크릴 교수 또한 이런부분에서 공자의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음이다.2.계몽적 사상공자가 당시 다른 사상가들과 비교하여 특히 뛰어났던 것은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교과로 사용하면서도 이를 전통적 의미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사상적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3년의 상복의례는 누구든 어렸을 때 3년 동안 부모님의 품안에 안겨서 자라게 되는데 이것에 대한 보은의 행위라고 설명한 것이나,또한 당시에 일반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효는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에 대해,‘공경’의 정신이 없는 인간의 효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쳤던 공자의 태도에서 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공자는 계몽적 태도를 가지고 고전에 대해 심오하게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이와같은 공자로부터 비롯된 고전에 대한 계몽적 태도는 그 이후 유학자들의 기본적인 경향이 되었다.3.개혁적 사상개혁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크게 바꾸었다는 것을 말한다. 과학으로 말하자면 패러다임을 깨드린 것이 될 것이고 사상으로 말하자면 기존 사상을 뒤집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크릴 교수가 본 공자는 개혁가이다. 즉 진리관으로써 개혁을 달성했다고 보고 있다. 공자는 패색한 사회에서 군주중심의 사회에서 평민들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환원을 원했다.그래서 유덕한 선행의도로 돌아가라고 권고했다.그 시대에 공자의 사회적 지위는 높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고위 관직자에게 직접적은 비난의 발언도 하였다는 일면을 볼 때,그의 주장을 잘 볼 수 있다.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짧은 지식으로 볼 때 공자를 그렇게 개혁가라고 생각하는 건 크릴 교수의 오버된 견해가 조금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를 칭송해야 하는 건 그의 사상이고 그의 사상적 기본인 도는 도가 사상의 도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무제시대 이후로 유교가 근본을 잡고 도교 사상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것을 생각한다면 유교 사상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기 보다는 왕권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더 많이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에 민주주의적 측면이 많음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말이다.
    인문/어학| 2001.12.09| 7페이지| 1,0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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