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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이란
    1.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써보자.교육철학에 대하여 정의하기 전에 철학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철학에 대하여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은 철학을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비단 강단 철학자들의 사색놀음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사주관상을 보는 이들이 철학관이라고 간판붙인 것을 보고 철학이라 오해 할 수도 있다. 철학은 사물의 본질과 기본이 되는 원칙을 탐구하고 포괄적이며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규범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알려지고 발견된 사실들을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교육철학이 무엇인지 그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교육철학은 교육에 관한 철학적인 연구라 할 수 있으며 교육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철학적인 태도 또는 방법에 의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교육철학은 일반철학의 적용과 응용이 아니라 교육현실 그 자체를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교육현실을 올바르고 교육적인 장면으로 논리적,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것을 숙고하여 탐구하는 것이다.나의 교육철학적 배경은 진보주의 이론에 바탕을 둔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낭만주의와 문화전수주의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고 절충한 이론이다. 낭만주의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의 가치를 과대평가 하였다면 문화전수주의는 상대적으로 환경이 가지는 중요성을 지나치게 크게 평가하였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유아의 발달은 유기체가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갖게 되는 경험의 재구성에 의해 진행된다고 보고 있다. 진보주의 교육목적은 유아에게 인지적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유아의 발달을 조력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따라서 유아의 경험들을 조직하고 발달시키는 힘은 유아의 창조적 사고이며 이러한 사고활동은 문제 상황 및 인지적 갈등장면 등에서 보다 활성화, 적극화된다고 보고 있다. 문화전수주의와 같이 지식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지식은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정보의 기억 내지 암기가 아니라 문제해결 상황이나 인지적 갈등 상황 하에서 유아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지식이 획득된다고 보는 것이다. 듀이가 말하는 교육은 성장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장에는 목적이 없으며 그것이 곧 방향이며 교육이라 본 것이다. 그는 아동을 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아동은 성장할 잠재력과 힘을 갖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이 어른이 되기까지 갖고 있는 의존기간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미성숙이란 발전할 수 있는 힘, 가능성, 잠재력이라고 상정했다. 따라서 미성숙은 어떤 계기가 있다면 그 잠재력과 가능성이 발현될 것으로 본다.그렇다면 이러한 아동들에게 교사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듀이는 아동들이 스스로 교육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사는 아동의 최대의 성장을 위한, 즉 그들의 잠재적인 능력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한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성장하기 위해서 유전적인 요소와 함께 환경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육철학은 교육현실을 보다 더 바르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현재 가장 숙고해야 할 부분은 획일적인 교육방법과 측정이다.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일률적으로 의무 교육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을 가장 극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집에서 컴퓨터나 각종 매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나 굳이 학교라는 기관에 모여 학업을 하는 것 중 가장 큰 목적은 사회화와 도덕적인 품성을 도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교수자가 지식만 알고 있고 가르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으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으나 이와 같은 정의적 영역의 전수는 교수자가 그러한 품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전달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육을 위한 방법을 고안하기 전에 교수자의 자질을 철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교사들은 자신이 단지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학교에 다니는 노동자는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인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이와 같은 교육을 이루기 위해 교육의 평가 방법의 변화가 시급하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창의력과 협동심을 신장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수업하고 평가하는 방법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대입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가 끝까지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방법들도 무용지물이다. 시험하나로 모든 이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능시험이 가진 위력을 크다. 하지만 수능시험에서 평가하는 것과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다르다고 생각된다면 사교육 문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학교는 신뢰할 수 없는 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확실하게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유리하고 학생들을 점수대로 줄 세워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조심스럽게나마 수능시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대학은 고등수학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고 예를 들자면 프랑스와 같이 지적 능력과 상식의 풍부함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논술시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교육이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감는 순간까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평생을 함께하는 일이다. 언제나 늘 곁에 존재하기 때문에 고마움을 모르는 공기처럼 어쩌면 교육도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기에 그 중요함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교육이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별 흥미도 관심도 없던 나에게 교육의 중요성과 힘을 자각할 수 있게 되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린시절 부모님들의 생각 없는 교육방법이 얼마나 사람의 성격과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교육을 통해 불가능이라는 것도 가능으로 이끌어내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교육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 교육은 사람이 서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2. 교사와 학생관계를 철학적으로 근거 짖기-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는 (나 자신)과 (거울)의 관계와 흡사하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즉 학교의 교육활동은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교사다. 교사는 직업의 차원을 넘어 모든 직업을 만들어 내고 직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며 앞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기 이전에 올바른 교육을 위해 교사가 학생사이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우선 가장 첫 번째로 교사는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상호 인격적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상호 인격적 관계는 교사와 학생 둘 다 자유로이 활동하는 인격체로서 각각의 인격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는 학생을 항상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며 수단시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교육의 일차 목적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 학생을 책임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이끌어 주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학생을 수단시 하였을 때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나와 그것의 비인격적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인격적 상호 관계는 단순한 반응 관계가 아니다. 자동판매기도 반응을 하지만, 사람과 같은 감정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인격적 친교작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생간의 인격적 친교 작용이 없다면, 그 관계는 동전을 집어넣으면 기계적으로 반응을 하는 자동판매기와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교육학| 2006.12.21| 3페이지| 1,000원| 조회(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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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과 소설교육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 머리말1975년 발표되기 시작해 1978년에 완결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난쏘공〉으로 줄임- 연작은 1970년대 후반의 노동문제를 문학적 관심사로 삼은 거의 최초의 작품이다. 여기서 ‘거의’라는 한정을 둔 까닭은 황석영의 〈객지〉(1971)가 앞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지〉가 일용노동자를 다룬데 비해 〈난쏘공〉은 공장 노동자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1970년대 현실을 좀더 전형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1977)을 필두로 한 노동자 수기, 1980년대 용솟음친 노동문학을 예고하는 신호탄 구실을 하기도 했다.우리 현대 소설이 등장시켜 온 주인공들의 직업은 거의 예외 없이 주로 농민이거나 고등 실업자들이었다. 또 1970년대에 〈별들의 고향〉(최인호) 이후 소위 호스티스 소설이란 것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양산되었음을 상기해 볼 때 이 연작에서 난쟁이 일가의 직업이 일용노동자에서 공장 노동자로 넘어간다는 점이 쉽게 눈에 띈다. 카프 해산 이후 또는 1948년 단정 수립 이후 거의 단절되었던 노동과 문학의 연결고리를 훌륭히 이어 내는 것이다. 1970년대를 연 전태일의 분신 이후 6년 만에 이 정도의 문학적 응답을 얻어 낼 수 있었음은 우리 문학사의 큰 행복일 것이다. 〈난쏘공〉과 〈객지〉가 없었더라면 그리하여 호스티스 소설만이 남았더라면, 1970년대 우리 문학은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된다.2. 작가 조세희조세희(趙世熙 1942- ) 소설가. 경기도 가평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나, 이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에 ?칼날?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이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을 쓰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했듯이 인간의 죄의 근원이 어디 있으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의 권을 판다.그 동안 난쟁이 아버지가 채권 매매, 칼갈이, 건물 유리 닦기, 수도 고치기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어느 날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머니는 인쇄 제본 공장에 나가고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그만둔다.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입주권의 값이 뛰어 오르고 영수네도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에게 입주권을 판다. 그러나 명희 어머니에게 전세 값을 갚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영희는 집을 나간다. 영희는 승용차를 타고 온 그 투기업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에게 순결을 빼앗긴 영희는 투기업자가 자기에게 했듯이 그의 얼굴에 마취를 하고 가방 속에 있는 입주권과 돈을 가지고 행복동 동사무소로 향한다. 서류 신청을 마치고 가족을 찾으러 이웃에 살던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골뚝에서 자살했음을 알게 된 영희는 큰오빠인 영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1) 작품에 나타난 상징성)의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도시화로 인해 벼랑으로 몰리는 최하층민의 처참한 생활상과 노동환경, 주거문제, 노동운동의 한 에피소드 등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언어로 담겨 있다는 점이다.(ㄱ) - 열린 세계로의 인식“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제군은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입학시험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주기를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면 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 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이 작품의 변별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생명을 경시하는 건 사랑이 없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며,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폭력 역시 삶의 풍요를 향한 사랑 없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이처럼 환경 문제를 작품에 담아낼 수 있었던 건 노동이나 부의 배분 문제 등을 계급간의 대립 차원으로만 보지 않고 사랑이란 보다 근원적인 주제와 연관 지어 풀어나갔기에 가능했으며 그 해결점 역시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하겠다.이처럼 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도덕적 책무의 재고라는 개인적? 시대적 요청에 답한 결과물이면서, 현재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와 같은 사회적 위기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응 방향에 대해서도 여전히 현실적인 효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2)현실의 입체적 조망을 위한 시점의 변화은 인식의 전환을 꾀하면서 여러 계층의 삶의 현장과 의식을 탐색해 나가는데 각 계급이 속성을 밀도 있게 그려내기 위해 시점을 이동하면서 작중 인물과의 심미적인 거리를 좁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난장이인 한 가족의 이야기가 큰아들 영수(1장), 작은아들 영호(2장), 딸 영희(3장)의 눈을 통해 전개되는데, 중간계층인 수학교사나 신애, 윤호의 시선은 작가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반면 대립의 양 끝에 서 있는 난장이 가족과 자본가 계급인 경훈의 모습은 주인공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이는 중간 계급보다는 다른 두 계급의 입장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적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문제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스스로를 대변하게 하고 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중간 계급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서술케 하여 두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도모하려는 것이다.여기에 연작 작품에 따라 시점은 변하지만, 대체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견지하고 있기에 작품은 독자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힘을 갖는다. 그 결과 독자는 주인공인 ‘나’와 쉽게 동일시된다. 이 경우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이나 어 양상을 그리기보다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이 관념화와 대립화이다.연작에서 보인 조세희의 대립적인 세계관은 한 마디로 말해 가진 자는 타락해 있고 못 가진 자는 선량하다는, 경제적 역할이 도덕적 차원에서는 역비례한다는 것으로 「503호 남자의 희망 공장」에 소개되는 부유한 아파트 입주자들과 「저금 통장」의 아내, 그리고 「모두 네잎토끼풀」의 윤호 아버지가 가진 자들의 악덕을,「솜씨 좋은 도둑」과 은강의 근로자들이 가난하고 학대받으면서도 윤리적으로 죄가 없는 사람들의 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대립적 세계관으로 둘로 쪼개진 세계를 하나의 통일체로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꿈이자 현실에서 부딪히는 한계이다.대립의 통해 지향하고 있는 것은「뫼비우스의 띠」와「클라인씨의 병」으로 시도된 과학과 문학과의 연계, 혹은 그것들이 보여 주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인 세계로의 탐구이다. 그러나 3차원의 공간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클라인씨의 병처럼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 에서 제시하고 있는 문제해결방법은 ‘도덕적 각성을 통한 사랑의 회복’이지만 사회는 이미 도덕률로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공고하게 조직화되어 있다. 게다가 자본과 권력이 상호 유착하고 있던 70년대 한국사회는 더욱 그러했다.은 중간계급에 있는 인물들을 통해 소외 계급에게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대립으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라고 지도하고 있지만 난장이의 아들 영수는 은강그룹의 총수를 살해하는 것으로 해결점을 찾고 있다. 다소 어이없는 이 끝맺음은 당시의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행태로 인해 노동 운동을 통한 개혁이 불가능함을 말해 준다. 노사 간의 화합은 기득권층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나 실질적으로 기득권층의 의식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이렇게 볼 때 처음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탈출구는 없었던 것이다. 현실 변혁의 꿈이 좌절되고 그것이 더군다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도 써 표현하기 때문에 긴축미가 있고 선명한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어, 현실의 아픔을 보여주는 데도 효과적이다.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간결한 문체는 문체를 통해 감정의 분출이 절제 되다보니 작품에 풍겨야 하는 심층적 사고와 감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를 잃은 난장이가족들이 인간적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는 듯한 장면이 그러한 지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ㄴ)자유연상의 서술에서는 현재 상황과 과거기억이 겹치며 현실과 꿈이 경계 없이 섞이고 그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의 세계가 현실의 시공간과 우주를 넘나들며 펼쳐진다.서사의 시간적 측면에서 볼 때 에는 현재 서술의 흐름이 정지하고 과거의 한 순간이 끼어드는 서술양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서술의 흐름이 정지하는 것은 주로 하나의 단어를 매개로 하여 연상된 전혀 다른 시간의 한 순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의 노사간의 회의시간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접속사의 사용 없이 연속 배치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제의 혼란은 표면적으로는 단절감을 주어 지루할 수 있는 내용전개에 긴장감을 부여하면서도 의식상으로는 의식의 흐름기법을 이용해 연속적 심리과정을 묘사하는 일관성을 지닌다.조세희의 작품들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사회성이 높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기법이나 결론 도출 방법에 있어 극히 환상적이며 비현실성을 지닌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가시고기 떼의 공격,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서 영호가 심어 놓은 지뢰가 터지고 아버지를 놀리던 사람들이 탄 자동차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과 같이 꿈을 통한 환상성으로 인해 현실극복과 해방을 맛보고 있기도 하다.에서는 작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하여 과거와 현실이 중첩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현실을 탈피하여 ‘달나라’등의 환상적 공간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때문에 조세희 작품의 동화적 환상성이 현실을 도외시하는 자기불만의 분출구나 현실도피밖에 되지 않는 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6.12.06| 10페이지| 2,000원| 조회(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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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사설시조
    사설시조2065305 최원미1. 사설시조시조는 평시조 ? 엇시조 ? 사설시조 세 가지로, 또는 평시조 ? 사설시조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형식에서 조금 벗어나 둘째 줄이 네 토막에서 여섯 토막으로 늘어나면 엇시조라 하고, 변형의 정도가 더욱 심해서 두 줄 이상이 여섯 토막으로, 어느 한 줄이 여덟 토막으로 늘어난 것을 사설시조라 한다. 평시조의 양반 사대부들의 한정 ? 애정 ? 탈속에서 벗어나 자수에 구애 없이 인간생활을 사실적으로 읊은 것이 많다.2. 사설시조에로의 전성시조는 조선 왕조의 지배 계급으로 군림한 유학도들의 지도 이념인 주자학에 의해 구현된 가장 정제된 시형이다. 그리하여 이들 유학도는 정체적 경제적 문화적인 우위를 누리는 당대의 상위 계층에 위치하면서, 그러한 사회의 안정과 영원성을 굳게 신봉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은 시대의 격변을 거치면서도 그러한 역사의 추이를 날카로운 현실 감각에 의해 포착하려 들지 않고, 그저 시종일관 유학적인 충의 사상으로 주제를 정착시키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학도의 일방적인 문학의식은, 그들이 구축한 사회 체제가 그 확고한 기반을 자랑하던 약 1세기 동안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그대로 계승될 수 있었으나, 16 ? 17세기의 임진, 병자 양란을 기점으로 그들의 사회 체제가 여러 가지 면에서 모순과 허점을 노정하기에 이르러서는 도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 하나는 ‘유학도 자체 내의 비판적 지성’에 의한 도전이요 다른 하나는 미미하나마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서민 의식’의 저항이 그것이다. 즉 조선 왕조의 유학도들이 그들 사회의 안정과 영구성의 필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현한 바 있는 시조의 미학이 시대적인 격변을 거치면서 점차 그 권위를 상실하기에 이르자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에 의해 새로운 미학으로 전성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러한 역사적 기능을 가지고 등장한 것이 곧 사설시조이다.그러면 ‘유학도의 자체 내의 비판적 지성’과 ‘서민 의식의 성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 실학사상은 시조 문학에도 필연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실학사상의 후광으로 등장한 사설시조였다. 즉 일부 비판적 유학도는 시조의 정형률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사설시조를 창작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그러나 사설시조는 이와 같은 일부 비판적인 유학도보다는 ‘서민’에 의한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들 서민의 존재는 조선 왕조라는 지배 계급 일변도의 폐쇄된 사회에서는 그 존재 가치조차 의심할 정도로 억압되고 무시되어 왔었지만, 16 ? 17세기를 기점으로 지배 계급 위주의 일방적인 사회 체제가 점차 해이되기 시작하면서 그들 지배 계급의 모순과 부조리가 더욱 가중되고 누적되어 갈수록 이에 비례하여 그러한 모순과 부조리에 항거하고 도전하는 서민의식은 미미하고 소극적이나마 차차 상승해 갔던 것이다. 이들 서민들은 유학도와는 생활 감정, 사고 체계, 가치관을 달리하기 때문에 사설시조에로의 필연적인 전환을 이룩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일부 비판적인 유학도에 못지않게 날카로운 현실의식으로 시조의 전통적인 미학을 변혁하고 극복해 간 것이다.이처럼 시조는 한편으로는 유학도 자체 내의 일부 비판적인 지성에 의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 의식의 성장에 의하여 사설시조로 전환되어 갔던 것이다.3. 사설시조 작가적 주류현전하는 사설시조 400여 수 가운데 그 작자가 밝혀져 있는 작품은 불과 70여 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80%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설시조 작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에 대한 신원을 파악하기란 현전하는 문헌상의 기록을 통하여는 불가능하므로 사설시저의 작가적 주류를 단정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고정옥은 일찍이 사설시조의 작가 계층에 대해서 중인 계급을 그 주류로 보면서 그들을 분류하여 ① 신진 중인 작가 ② 창곡가 ③ 부녀자 ④ 기녀 ⑤ 민요 시창자 ⑥ 몰락한 양반 이라 추정한 바 ‘계열Ⅰ’은 조선 왕조의 유학도 자체 내의 비판적 지성이라 할 수 있고 ‘계열 Ⅱ’는 모두 서민 의식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가객들인 것이다. 이처럼 사설시조의 창작에는 ‘계열Ⅱ’의 평민 작가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Ⅰ’과 같이 일부의 지배 계급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들은 결코 몰락한 양반이 아니라 당대의 중신으로서 활약하던 지배 계급의 핵심적인 인물들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즉 정철이 우의정을, 채유후가 이조판서를, 이정보가 예조판서를, 김화진이 이조판서를, 김영이 형조판서를 역임한 당대의 핵심적인 인물이며 이 가운데 이정보 같은 이는 14수나 되는 왕성한 사설시조의 창작을 보임은 유학도 자체 내의 일부 비판적 지성의 참여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그 당시의 사정을 더욱 명백히 해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계열 Ⅱ’의 53수가 ‘계열 Ⅰ’의 22수보다 훨씬 왕성한 창작을 보임은 사설시조의 작가적 주류가 ‘평민 가객’임을 말해 주는 좋은 예증이 된다 하겠다. 또한 위의 표에서 확인되듯이 김수장(36수), 이정보(14수), 김두성(11수) 등 가장 왕성한 창작을 보이고 있는 작가가 모두 18세기 인물임을 미루어 사설시조의 최전성기가 18세기임을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고 본다.이처럼 사설시조의 작가적 주류는 ‘평민가객’으로 볼 수 있으며, 유학도 가운데 일부 비판적이고 진취적인 일군의 작가들도 상당히 참여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본다.4. 사설시조 미의식 체계시조의 미의식 체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사설시조의 작가적 주류를 이루는 ‘가객’의 신분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조선 왕조의 ‘평민 가객’은 위로는 지존지엄한 군주의 앞에서 아래로는 기방에 이르기까지 그 생활 무대가 넓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 구조와 사고 체계는 지배 계급의 그것과 피지배 계급의 그것이 공존한다. 따라서 그들은 한편에서는 지배 계층인 유학도의 이념들과 통치 방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유학도적인 행동을 취하자적인 미의식을 창조하기도 한다. 사설시조의 미의식 체계는 이와 같이 시조 미의식의 수용 또는 변용 양상에 따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학도 자체 내의 일부 비판적 지성이 사설시조를 창작할 때 그들은 유학도 자신의 미의식을 긍정적으로 연장 수용하기도 하지만 대로는 그들 신분 구조에 반동적이고 부정적인 미의식을 담아 시조 미의식을 극복하고 변용하는 데에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1) 시조 미의식의 연장조선 왕조의 지배 계급으로 군림한 유학도들은 정치적 ? 문화적 ? 지적인 발전을 완성하기에 이르자 그러한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위하여 그들이 발견한 문학 양식인 ‘시조’를 철저히 고전화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즉 그들은 시조를 통해 어떤 생명 있는 개성적인 표현보다는 그네들과 그 주변의 인물들(지배 계층의 의식에 동화된 중인 또는 기녀)이 나눌 수 있는 공통적인 정서와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의 세계에 보편타당한 진실성을 지닌 미의식을 담기에 급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세계의 ‘질서’와 ‘안정’을 해치는 주제와 소재는 애초부터 염두 해 두지 않고 시조를 창작해 갔던 것이다. 따라서 시조는 어떤 도식화되고 한정된 주제와 소재를 다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사회의 안정과 영구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고집하려 했으며, 그 주변의 인물들에 그들의 윤리적 타당성을 강요하려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학도들은 ‘질서’와 ‘안정’이라는 두 가지 측면의 요구에 의하여 시조 문학을 창조해 갔으니 즉 ‘질서’의 요구에 의하여 숭고미와 비장미를 구현하고 ‘안정’의 요구에 의하여 우아미를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조’가 구현하는 미의식은 실로 이 세 가지 - 숭고미 ? 비장미 ? 우아미 - 미적 체계로 파악될 수 있다.2) 새로운 미학의 창조사설시조는 선행하는 시조의 미학을 그대로 답습 연장하거나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변용 또는 극복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사설시조는 시조와는 다른 역사적 상황 아래에서 다른 작가적 주류에 의 통한 그들 독자의 미의식을 창조하고 구현한다. 다시 말하면 사설시조는 초현실적 소재에 의해 숭고미를 구현하거나 현실 체념적인 주제에 의한 비장미를 구현하거나, ‘현실도피적’인 주제에 의한 우아미를 구현하기보다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소재에 의한 희극미를 창조한다.5. 사설시조의 형태와 구조사설시조의 형태를 흔히 산문적 시형이라거나 장시조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만 운문에 대한 대칭 개념이거나 평시조에 비해 길어진 형태라는 뜻으로 사설시조 자체의 형태 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설시조의 형태는 지금까지의 주로 음률적 구성을 중심으로 한 연구였기에 막연한 개념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반구 단위의 설정으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으나 형태구조의 온전한 해명에는 미흡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사설시조의 형태를 규정하는 개념은 대개 ①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 또는 각 장이 길어진 것 ② 각 장의 의미의 율격으로 형성된 것 ③ 각 장이 2개의 반구형식으로 구조된 것 ④ 각 장이 2개의 구로 이루어진 3장 6구의 산문적 시형인 것 ⑤ 각 장이 7음보 이상 길어진 형태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여기에서는 시조 전반에 걸쳐 내적 의미구조의 규명에 통용될 수 있는 ‘구절’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설정하기로 한다. 이에 앞서 기존의 논의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1) 음수율에 의한 관점음수율에 의한 관점은 평시조의 정형을 3장 6구 44자 내외의 자수율로 파악하고 각 장의 자수를 15자 내외로 규정하며 사설시조의 말 부피를 이 기준에 의하여 그 신장장태로 구분하는 관점이다. 조윤제, 김종식, 서원섭 등은 어절 수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받지 않는 시조 형식을 사설시조로 규정하고, 형식상 자유로운 시형이나 초중종장의 불절성을 형식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조의 3분단성을 규명한 것은 커다란 성과이지만 그것이 의미상의 분단인가 음률상의 분단인가에 대한 해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각 장이 자유롭게 길어진다고 했을 때 엇시조와의 구분과 .
    인문/어학| 2006.12.06| 6페이지| 1,000원| 조회(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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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판소리
    판소리2065305최원미1. 판소리의 개념조선 영조이후 서민들의 창극에 붙여 부르던 노래. 극가, 극창, 창극, 창악, 창극조등의 이름으로 불려졌으며, 예전에는 창우회라고도 하였다. 판소리란 한사람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서사적인 긴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을 곁들여 청중들 앞에서 구연하는 공연예술이다. 한국음악의 갖가지 음악언어와 표현방법이 총결집된 민속음악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이며 연극적인 표현요소까지 구사하는 종합적 예술이다. 전통적으로 광대라고 불려진 전문예능인들에 의해서 전승되어 왔으며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는 장터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주로 공연되었고, 때로는 양반청중들을 위해 관아 뜰이나 양반집 뜰에서 공연되기도 하였다. 애초에 평민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발전되었던 판소리는 청중이 점차 상위계층으로 확산되어 가는 추세를 보였다. 판소리의 근본을 보면 평민예술의 바탕을 지니면서도 탈춤이나 남사당놀이 등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의 청중들을 널리 포용할 수 있는 폭과 유연성을 지녔다.2. 판소리의 형성기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의 심층에 뿌리박고, 오랜 세월에 걸친 자기 변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해 내려온 전승예술이기 때문에, 발생의 근원을 따진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의 근원에 까지 소급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정노식같은 사람은 판소리의 근원을 신라시대의 화랑의 음악에까지 소급하지고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판소리로 알고 있는 형태로까지 발전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문헌을 통해서 판소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은 영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때 사람인 만화재(晩華齋) 유진한의 문집인 [만화집] 가운데 가 실려 있는데, 이것이 현재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판소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것이다. 작자인 유진한은 [어우야담]의 작자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의 6대 종손으로, 영조 때 충청도 천안을 중심으로물에 있어서는 현재의 것과 차이가 없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보아 판소리는 이미 18세기 중반 이전, 그러니까 대체로 17세기 말 경에는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초기의 판소리는 민중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르는 사람도 민중이고 청중도 주로 민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판소리는 서서히 양반 지식층으로 침투하게 되어 기록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모를 겪게 되는데, 는 그러한 과정의 한 산물로 보인다. 1810년경에 씌어진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라는 총 50수로 된 한시에는 판소리 열두 바탕이 등장하며, 우춘대, 권삼득, 모흥갑, 의 소리꾼의 이름도 나타난다.장안에선 많이들 우춘대를 말하지만오늘날 누가 능히 그 소리 이어갈까?한 곡조가 끝나면 술동이 앞에는 천 필의 비단이 쌓이는데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이름 있구나.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1810년경에 이미 우춘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창이었으며, 이제는 후계자가 누가 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사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벌써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을 요한다. 1824년에 된 이라는, 광대들의 집단 민원을 적은 글에는 하은담(혹은 하한담)이라는 광대가 등장하는데, 하은담의 이름이 이 문서의 맨 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제일 연장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조선창극사]에는 판소리를 맨 처음 부른 사람들로 최선달과 하은담의 이름이 나와 있다.이 시기의 판소리의 존재 양식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역시 송만재가 를 쓰게 된 연유를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 재인 들을 불러 노래와 재주를 구경하는 풍속이 있는데, 금년 봄 우리 아이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안이 가난하여 한 바탕의 놀이를 베풀 수 없으므로 이 시를 짓는다.'라고 밝힌 부분이 다. 이를 보면 초기의 판소리는 과거 급제와 같은 잔치에 초대되어 가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라기보다는 다양한 판소리를 구분하여 유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관념적으로 구성되니 참조의 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에는 동편제(東便制),서편제(西便制),중고제(中高制),강산제 가 있다.1) 동편제(東便制)송홍록·정춘풍·권삼득 등의 법제를 뼈대로 하여, 운봉·구례·순창·홍덕 등지에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구분은 후대에 와서 동·서 양쪽 가객들이 서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큰 의의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 대화에 있어서 호령을 한다거나 호걸스럽게 의사를 표시할 때에는 어세(語勢)가 강렬해지고 활발해지는데 판소리에서 이와 같은 흐름으로 노래한 유파가 동편제이다.2) 서편제철종 때의 명창인 박유전에 의해 창시된 판소리 양대 산맥의 하나로,광주·나주·보성·강진·해남 등지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 지역이 전라도 서쪽에 있다 하여 서편제라 일컬어지는 것이다.3) 중고제김성옥으로부터 시작되어 김정근·김창룡 등이 계승한 것으로 경기도남부와 충청도지역에 전승된 소리인데, 그 개념이 모호하여‘비동비서(非東非西)’로 표현된다.4) 강산제서편제의 수령 박유전이 만년에 전남 보성군 강산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창시한 유파로, 체계가 정연하고 범위가 넓다. 박유전은 젊었을 때 고운 목소리와 뛰어난 기량으로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그의 사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곳에 묵고 있는 많은 유생들과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다. 유생 중에는 판소리에 대한 높은 견식과 일가견을 가진 이들이 있어, 그들이 피력한 조언을 바탕으로 창시한 것이 바로 강산제이다.4. 판소리의 종류판소리가 하나의 민속음악으로서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완성의 단계에 이른 시기는 대체로 조선왕조 숙종로부터 영조까지의 시기라 본다. 또한 판소리의 전성 시기는 대개 정조로부터 철종시기로 보는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조선 순조 때 송만재라는 선비가 쓴 ?관우회?라는 글에는 창우의 판놀음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창우들이 줄을 타는 것이며 땅 재주 하는 것이며 죽방을 하는 것도 보이고, 소리하는 가객구성으로 말미암아 전판에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극적 구성으로 보면, 심청가는 '어린 시절의 심청' '처녀가 된 심청' '황후로 환생한 심청'으로 나누어지는데, 음악적으로 가장 잘 짜여진 부분은 '처녀가 된 심청' 부분이다. 이 부분은 심청이 시비를 따라서 장승상댁을 찾아가는 대목에서 "가곡성 우조"라는 음악어법으로 시작되어 뱃사람들에게 팔려간 뒤에 물에 빠져 죽는 데까지이다."가곡성 우조"는 진양조장단과 우조길, 그리고 전통 가곡의 발성법(성음)이 한데 어우러진 서정적인 가락인데 앞부분에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면 전환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가곡성 우조의 '시비 따라 가다' 다음에 판소리에서 매우 드물게 쓰이는 (춘향가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음) 엇모리장단으로 나오는 '중타령'에서 심청의 죽음이 예고된다. 죽음을 각오한 뒤에 심청의 노래들은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인 자신이 오히려 '눈먼 부친을 위한 기도'를 하는 내용이어서 감상자로 하여금 더욱 숭고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특히 심청이 선인들을 따라가는 대목부터 "범피중류"를 거쳐서 물에 빠지는 대목까지가 비극의 정점이 되니, 이 부분이 심청가의 눈으로 알려져 있다."따라간다, 따라간다, ..."로 시작하는 이 대목에서는 계면조의 음악 어법이 늦은 중모리 장단과 어우러져 비극성이 최대한도로 표출되고 있으며, 평조길과 진양조장단으로 짜여진 "범피중류"는 극치에 이른 서글픔의 감정이 내면에 승화되어 있다. "한 곳을 당도하니..."로 이어지는 다음 부분에서는 자진모리와 엇모리장단의 기교적인 리듬구조로 판소리의 묘미와 멋을 최대한으로 구사한 다음에 "풍" 하고 심청이 물에 빠진다.이 심청가의 눈은 판소리 다섯 판을 통틀어서 말해도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인식되어 있을 만큼 판소리의 기교적인 음악 어법이 그 안에 망라되어 있다 . 그래서 토막소리로 판소리를 부를 때에 자주 부르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꼽힌다.2) 춘향가판소리 춘향가의 음악적 짜임새를 극적 구성과 연관시켜서 살펴보면 춘향의 사랑, 춘향의가'와 중중모리와 자진모리장단에 얹혀진 '자진사랑가'로 나누어져 있어서 느리고 빠른 노래가 짝으로 구성되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노래 형식과 같다.'춘향의 이별'은 본관사또가 서울로 가는 아니리 대목부터 이도령이 서울로 떠나는 대목까지인데, 전체가 설움으로 가득 찬 계면조(슬프고 애처롭게)의 음악어법으로 짜여진 판이 대부분이고 경드름(경조, 경기 지방의 음악 스타일을 닮은 가락)으로 처리된 부분이 있는 유파도 있다. 극적 전개로 볼 때에는 단순한 이별 장면에 불과하지만, 사랑의 기쁨은 순간적이고 이별의 슬픔은 영원하다는 통념을 상징하듯이 , 그 심경을 노래로 표현 하는 데에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춘향의 시련'은 신임 사또 도임 장면부터 '옥중가'까지인데, '신연맞이''기생점고''춘향 잡으러 가는 대목'과 같은 희극적인 노래와 '십장가''옥중가' 같은비극적인 노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춘향의 시련'부분은 각 유파가 극적 전개의 동기 유발에서는 대동소이하지만 그 음악적 짜임새에서는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기생점고'의 장단 구성이 다르기도 하고 유파에 따라서 '쑥대머리'와 '귀곡성'이 첨가되기도 한다.'춘향의 재회'는 이도령이 과거 보는 대목부터 끝까지인데 ,'과거장' '서리역졸분발', '농부가' '박석고개', '어사또 춘향모 상봉','어사또와 춘향의 옥중 상면', '어사 출도','어사와 춘향의 재회'같은 노래가 포함된다. 이 부분 역시 각 유파가 극적 전개는 비슷하지만 음악의 짜임새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박석고개"에서 이 도령의 심경이 어떤 유파에서는 호기 있고 의협심이 강한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고, 어떤 유파에서는 침착하면서도 회한에 차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면의 표현은 평조, 우조하는 발성법과 평조길, 우조길 같은 선율형태에 따라 그려지고 있다.이와 같이 춘향가의 음악적 짜임새를 네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둘째 대목 곧 '춘향의 이별'이다. 왜냐하면 이 대목은 극적전개로 볼 때에 변화가 다.
    인문/어학| 2006.12.06| 6페이지| 1,0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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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균여향가 - 보현십원가
    1.균여전<균여전>은 고려시대의 승려 균여의 전기(傳記)로 향가집은 아니지만 균여 대사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보현십원가라는 향가 11마디가 실려 있어 [삼국유사]에 적힌 향가와 함께 한국 고전시가의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문학 상 논의도 활발했다. 본래의 책명은 《대화엄수좌원통량중대사균여전(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이다. 책머리와 끝에 각각 저자의 서문(序文)과 후서(後書)가 있으며, 본문은 10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출생과 성장기에 관한 <강탄영험분(降誕靈驗分)>, 출가와 수도에 관한 <출가청익분(出家請益分)>, 누이와의 일화에 관한 <자매제현분>, 화엄종 통합에 관한 <입의정종분(立義定宗分)>, 저술에 관한<해석제장분(解釋諸章分)>, 신이(神異)한 설화에 관한 <감통신이분(感通神異分)>,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균여전>에 수록된 "보현십원가 11수" → 균여 대사가 고려 광종 때, 10구체 향가의 형식으로, 불교의 교리를 대중에게 널리 펴기 위해 지은 노래이다.>에 관한 <가행화세분(歌行化世分)>, <보현십원가>의 번역문에 관한 <역가현덕분(譯歌現德分)>, 정수(正秀)와의 대립에 관한 <감응항마분(感應降魔分)>, 균여의 죽음에 관한 <변역생사분(變易生死分)> 등이다. 희귀한 향가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 《삼국유사》와 함께 고대 국어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해인사(海印寺) 소장의 대장경보판(大藏經補板) 중《석화엄교분기원통초(釋華嚴敎分記圓通)》 권10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2. 균여 (923~973) 균여(923~973)는 고려 초기의 승려로 성은 변씨, 본관은 황주로서 보통 균여 대사라고 부른다. 신라 말기 신덕왕 때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15세 때 부흥사로 들어가 식현 화상에게 불법을 배우고 불도를 닦았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스승을 넘어설 정도로 그의 학문이 뛰어났으므로, 그는 부흥사를 떠나 당시 유명한 영통사의 의순공을 찾아가 그의 밑에서 불도를 계속 닦았다. 그는 불도를 닦는데 힘쓰는 한편, 불교의 보급에도 힘써, <보현 십종 원생가>라는 향가 11수를 지어 그 노래 안에 불교의 교리를 일반인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향가의 형태를 빌려 표현한 것으로서,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또 불교의 종파 통일에도 힘을 기울여, 남악파와 북악파의 통합을 위해 큰 절의 중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종파간의 분쟁을 없앴다. 958년(광종 9년) 시관이 되어 유능한 중들을 많이 뽑았으며, 법계는 대화엄 수좌원통양중 대사에 이르렀다. 963년에 광종이 그를 위해 세워 준 귀법사의 주지로 있다가,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공목장기><오십요 문답기>등이 있다.
    인문/어학| 2006.12.06| 9페이지| 1,500원| 조회(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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