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우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과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설명하여 주십시오.“새로운 도전과 교훈”2년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평소 관심이 많던 법원 경매에 투자하였습니다.권리분석은 법학 전공이라 어려움이 없었으나, 투자수익분석은 주위의 조언을 얻어서 하였습니다. 당시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등록금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서 1학기 등록금을 운용해서 1년 등록금을 만들고자 부푼 꿈을 안고 낙찰 받았지만, 경기침체로 상가의 수요가 적어서 투자가치가 예상보다 낮고, 실질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문가의 충고를 받았습니다.고민 끝에 “매몰비용에 미련을 갖지 말고, 현재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생활신조를 되새기며, 낙찰을 포기하고, 입찰보증금 250만원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였고, 개인적으로 힘든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철저히 분석하고 투자해서 손해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먼저 실패 원인을 분석한 결과, 상가는 경기불황의 영향이 크고, 충분한 시간동안 시장성을 파악해야 하며, 입지조건을 분석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서 앞으로는 인구유입지역의 다세대주택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2006년 가을이 되어 친구와 함께 투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마침 구로공단에서 시화공단으로 이전하는 업체가 많다는 정보를 얻어 직접 경기도 시흥에 현지답사를 반복하였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분석을 한 후, 다세대주택을 감정가의 70%에 낙찰 받았습니다. 투자 원금의 70%를 회수하였으며, 15%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학자금 대출도 상환하고 수익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섣부른 투자로 얻은 값진 교훈을 명심하며 매사에 철저한 준비와 분석에 기초한 끝없는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2. 타인을 위하여 봉사한 경험과 이를 통해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주십시오.“따뜻한 관심을 생활화”수화동아리 "OOO"에서 3년간 청각장애인의 집 정기적인 방문과 일일찻집 수익금으로 생활용품 지원, 군 전역 후 혈액원에 등록헌혈자가 되어 2달 간격으로 2년 정도 헌혈을 하고, 지금도 틈틈이 헌혈한 것, "새서울자원봉사센터"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세계 등 축제'와 같은 2002월드컵 부대행사를 하면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배울 수 있던 경험이 있습니다.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 충남 아산에서 “2001년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한 것입니다. 기부금을 내는 사회공헌활동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혼자 참가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어색함도 있었지만, 아침에 “HABITAT OH-YE”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일을 시작하고, 끝날 때 한 번 더 모두 함께 외치면서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 서로 흘리는 땀을 닦아주며 나누는 사랑의 기쁨은 몸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온 몸이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더구나 입주자 가족들도 함께 일을 하기에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쉬는 시간조차 아까웠고 점점 집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설레던 기억이 납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무주택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었다는 것이 보람 있었습니다. 집이 완성되던 날 입주자 가족의 얼굴에 가득한 행복, 봉사자들의 성취감이 분출되어 외치던 탄성은 아직도 귓전에 아른거립니다. 젊음과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고자 노력한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사랑하는 마음과 따뜻한 관심을 생활화하고, 서로 나누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3. 자신이 손해 볼 것을 감수하면서 정직하게 행동했던 경험을 설명하여 주십시오.“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다.”저 역시 이 말을 공감하며 항상 실천하고 있습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심하게 저조한 수능 성적으로 충격과 실망에 가득 차 있던 중 대학입시학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새로 개원하면서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장학생제도를 시행하는데 특별장학생으로 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1996년도 대학입시에서는 내신과 본고사의 비중이 높았기에 낮은 수능 성적이었지만 장학생이 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방문해보니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학원측에 과장된 성적자료를 보내어 혜택을 받도록 조치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장학생 혜택은 1년간 종합반 수강료 전액과 교재 일체를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나이에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부모님께 1년 더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것도 죄스러운데 경제적인 부담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혼자 몇 일을 고민하다가 학원측에 정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경제적인 혜택보다 정직하고 떳떳하게 지내고 싶었습니다.결국 장학생의 명단에서 제외되어 수강료를 지불하고, 교재도 직접 구입하였습니다. 그 금액이 적지 않아서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정직했다는 사실에 만족하였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고3 시절 모의고사 점수를 넘어 전국 상위 1% 이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2학기가 되자 종합반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시며 특별장학생 혜택은 포기하였지만 2학기 교재 일체를 챙겨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했고,정직했던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4. 귀하가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세가지 유산을 물려준다면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자서전, 장학사업, 운동하는 습관”첫째, 자서전. 성공신화를 기록한 자서전이 아니라 저의 삶을 통해 겪은 성공과 실패, 시행착오의 경험과 그 당시의 느낌, 생각을 바탕으로 기록한 자녀들에게만 전해주는 진솔한 자서전을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사고방식이 비슷하므로 유사한 상황에서 똑같은 고민에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고민과 방황, 극복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바라본 느낌이 담긴 자서전을 보면서 자녀들은 더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갖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들은 60세 이후에, 그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살리면서, 60년을 살아오면서 정립된 신념을 그 안에 녹여내며 정리할 것입니다.둘째, 장학사업. 아버지는 거주지인 OO시 교육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 고등학생을 추천 받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복지제도가 미흡한 한국에서 개인의 장학금지원 같은 조그만 사회공헌 활동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감명 깊었고, 저 또한 장학사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더욱이 자녀에게도 물려주어 자손 대대로 장학사업을 계승하게 하고 싶습니다.셋째, 운동하는 습관. 저는 등산, 수영 등을 좋아하는 편이고,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편이지만, 바쁠 때에는 간단히 하면서 습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습관은 평생의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몸에 배인 습관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고, 운동하는 습관은 자녀의 건강에 대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도 전할 수 있습니다.외환은행에 지원한 동기와 귀하가 외환은행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금융의 중심에 서다.”국제화 흐름 속에서 모든 분야를 선도하는 금융분야의 성장과 발전은 반드시 필요하며 금융의 중심인 은행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러한 성장과 발전의 중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특히, 1인당 수익률이 가장 높고, 좋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외환, 무역금융에서 강점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에서 해외 진출을 통해 앞서 나갈 수 있는 외환은행에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저의 역량은첫째, 2005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법학능력 입니다. 최종합격은 못하였지만 심도 깊은 법학공부를 하였으므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비롯한 채권보전, 채권회수 등 실무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금융관련 법률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둘째, “OPEN MIND”입니다. 조직 내 화합과 고객 만족을 위한 탄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세를 함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셋째, 2002년 현대증권 “모의증권투자대회” 참가경험 입니다. 기업분석에 어려움을 느껴서 회계원리, 중급회계를 공부하였고, 금융에 관한 관심을 깊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넷째, 법원경매 투자경험을 통한 실전감각 입니다. 실전경험을 통해 부동산관련 대출 및 소송 업무에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외환은행에 입사하여 기회가 된다면 투자금융업무 중 부동산거래관련 PF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투자수익 중심으로의 부동산 시장 변화에 따라 부동산 PF에 관심이 커졌고, 외환은행의 강점을 살려서 해외PF 진출도 하고 싶습니다. 법원경매 투자경험은 PF의 핵심인 사업성 평가에 도움이 되고, 법적 능력은 이해관계인이 많은 대형사업의 법률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CCIM(상업용 부동산 실무처리능력 인증자격)도 취득할 계획입니다.
障碍人 差別에 관한 槪括的 檢討Ⅰ. 序說Ⅱ. 障碍人 一般1. 障碍人 現況2. 政府의 障碍人福祉施策의 基本方向 및 施行事項3. 障碍人관련 立法 沿革Ⅲ. 障碍人 差別禁止에 관한 憲法上 原理1. 憲法 제10조와 障碍人福祉法 제3조 제1항2. 平等權3. 社會保障을 받을 權利Ⅳ. 障碍人 雇傭에 관한 문제1. 旣存雇傭의 安定性 問題2. 新規雇傭 創出의 問題 및 障碍人 雇傭差別 禁止의 問題Ⅴ. 其他 差別 問題1. 障碍人 移動權 (接近權)2. 敎育權Ⅵ. 結語Ⅰ. 序說필자가 한번은 ‘障碍人’이라는 용어의 문제로 장애단체 관계자들의 항의와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통상 장애인이 아닌 ‘非障碍人’들은 장애인들을 지칭함에 있어서 그 용어를 별다른 생각없이 무심코 쓰기 쉽다. 장애인 이외에 ‘障碍者’라는 말도 쓰며 비장애인을 ‘正常人’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결론부터 말하면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장애자’나 혹은 ‘장애인’의 상대적인 의미로 ‘정상인’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비장애인을 정상인으로 지칭하여 부를 때, 장애인들은 단지 신체의 불편한 점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닌 문자 그대로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자신들이 칭하여 지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며 ‘장애자’라는 용어도 의존명사인 놈 ‘者’를 써서 비교적 사람을 얕잡아보는 늬앙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애자’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따로 정의되어 있지 않으며,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장애인’은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바이다. 실제로 좀 더 주의깊게 언론이나 관련 단체들을 돌아 본다면 우리가 쉽게 칭하던 ‘장애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잘못된 용어를 쓰는 매체나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엄연히 잘못된 용어사용의 유형일 것이다.글의 시작에서 새삼스레 장애인에 대한 용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의 비장애인들이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고 그러다 못해 장애인에 대한 개념의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심한 현실에 살고 있다는 현 포함하면 약 147만2천여명으로 전체인구의 3.09%에 이르고 있다).[등록장애인 현황]) 02.9월 현재. (단위 : 명)구분장애인복지법상 등록장애인산재장해자국가유공상이자계지 체뇌병변시 각청각?언어정신지체발달(자폐)정 신신 장심장계1,255,855(100)736,702(58.6)85,657(6.8)136,693(10.4)119,271(9.5).101,872(8.1)3,505(0.3)38,583(3.1)31,191(2.5)8,411(0.7)172,75767,544남850,379527,17851,92686,88473,25963,1332,88722,46417,4995,149여405,560209,52433,73143,80946,01238,73961816,11913,6923,262※ 산재장해자 통계는 ‘96~‘01간 발생한 숫자의 합계임한편,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약 108만2천원으로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2000. 2/4분기 233.1만원)의 46.4%에 불과하고 또한 이러한 소득구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장애치료, 재활서비스, 교통수단 이용, 특수교육 등으로 월 평균 15만8천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있어 장애가 빈곤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 政府의 障碍人福祉施策의 基本方向 및 施行事項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보건복지백서」에 따르면 장애인 복지의 기본목표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를 달상하기 위한 장애인복지정책의 중점추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첫째, 장애인복지정책의 장기전략을 수립하여 장애인의 복지수요를 예측하고 시대의 변천에 따른 복지수요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서비스의 제공을 확대하고 정부 및 민간단체의 상호협력관계를 조성해 나간다.둘째, 장애인의 사회참여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일반인이 장애인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부정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가며, 장애인의 사회활동촉진을 위해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한다.셋째, 장애인복지시책의 내실화를 위 10년’으로 선포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이에 우리나라에도 1981년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고, 1987년부터 장애인등록 시범사업을 실시하여 그 이듬해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1988년에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를 개최하는 등 장애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되었다.또한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 개정하였고,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 1994년에 특수교육진흥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1997년에는 장애인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을 제정하였다.그리고 1997년에는 정부 각 부처별로 시행중이던 장애인복지사업을 총망라한 종합계획인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였으며 1998년 12월에는 장애인인권헌장을 선포하였다. 한편 1999년에는 장애인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였고 2000.1월에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을 개정하였으며 편의시설확충 5개년 계획(2000~2004)의 실시. 2003년부터는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을 수립하였다.Ⅲ. 障碍人 差別禁止에 관한 憲法上 原理1. 憲法 제10조와 障碍人福祉法 제3조 제1항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나타내는 조항으로 제10조 전단에 분명히 ‘모든 국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장애인복지법 제3조 제1항은 ‘장애인은 개인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이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은 엄연한 국민의 일부를 구성하는 ‘모든 국민’에 속하며 이로 인해 헌법상 규정에 나타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권리의 주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헌법상 기본권이 장애라는 이유로 제약받을 이유는 없으며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의 동등한 주체가 되는 것이다.2. 平等權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인간은 법앞에 평등하다.’라고 하고 있다.장애인 문제에 있어 평등의 개념은 과연 무로서 이 ‘상대적’이라는 의미를 이해함이 옳은 것이라 본다.3. 社會保障을 받을 權利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국가는 이를 위한 보장적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고 헌법 제34조 제2항을 근거로 하여 역으로 그러한 권리를 수혜받을 자격이 있는 자, 즉 국민 모두는 이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 및 그 증진책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부분에서 장애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협의적으로 장애인이라는 특성 상 받을 수 있는 각종 차별의 유형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요구할 수 있고, 한편 생활에 있어 그 수준에 대한 동등한 결과적 측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또한 취득하는 것이다. 이로서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Ⅳ. 障碍人 雇傭에 관한 문제이상 장애인 정책에 관한 개략적인 사항과 그 차별의 근본적인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그 어느부분보다도 가장 체감적 차별이 두드러지는 장애인의 고용 문제에 관해서 살펴보려 한다. 장애인의 고용 문제는 그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국민으로서 자신들이 이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 더불어 살아간다는 관념에 대한 인식문제와 함께 그들의 생존권을 지향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의 육체적 핸디캡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그들이 종사할 수 있는 노동의 종류에 한정이 있게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핸디캡이 전혀 직무의 성격이나 특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가 되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들에 대한 차별과 배척은 그간 장애인 문제에 대한 수많은 고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용에 관해 장애와 관련된 문제점은 차별과 부정적 태도, 구직에서의 어려움, 사회적 네트워크상의 문제에서 기인한다).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규정에 의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간은 해고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여 이에 대한 근로자의 보호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단서에서 ‘사용자가 제87조에 규정된 일시보상)을 행하였을 경우 또는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발생시에 사용자측이 이에 대한 금전적 책임 이외에 근본적인 삶의 영유에 대한 대책 마련에 대한 보완책을 그 어디에서도 보호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 생존권을 위한 신규고용의 창출의 노력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 장애 유발에 대한 사용자 측의 사회적 책임 및 도의적 책임의식을 들어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 하겠다.2. 新規雇傭 創出의 問題 및 障碍人 雇傭差別 禁止의 問題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에 근거하여 정부는 300인 이상 사업체에 대해 2%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토록 하는 장애인의무고용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도 소속공무원의 2%이상에 해당하는 장애인이 채용될 수 있는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상반기 말 현재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84곳의 평균 장애인 근로자 고용률은 전체 공무원의 1.48%에 지나지 않았으며 민간기업의 경우 1천925개 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전체의 0.91%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이 잘 지켜지느냐 지켜지지 않느냐의 문제는 조차해 두겠다. 물론 법령상 이러한 제도적 조치는 부담금 징수와 같은 불이익을 통하여 어느정도 효과성을 띌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정책에 일치하지 않는 개입, 노동력을 ‘정상’과 ‘비정상’적인 측면으로의 원치 않는 구분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한편 일반고용시장하에서의 평등한 기회의 보장이라는 측면은 어떻게 보면 매우 바람직한 제도라고 할 수 있으나 매우 이상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여하튼 고용시장하에서의 장애인 취업에 대한 부분이 평등해야 하는 것은 꼭 추구해야 할 사항인 만큼 이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직무유형분석 및 프로그램 제공등의 국가적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를 읽은 감상우선 이 책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삶과 문화이야기’, ‘사람과 사회이야기’, ‘정치와 경제이야기’로 구성된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는 형식으로 서술되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딱한 교과서가 아닌 마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흥미를 돋구어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고, 같은 사실이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된 부분도 있다.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담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과 책에 서술되지 않은 다른 관점(본인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들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겠다. 구성은 책의 편제와 마찬가지로 삶과 문화, 사람과 사회, 정치와 경제 순이다.우리는 “한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이다.”라고 항상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통이 다듬어지고, 확립되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퇴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갑작스런 문화적 충격 속에서 외래문화를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강압에 의하여 도입되고 적응되어졌기 때문이다. 흔히 서양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가 진행되었다고 말을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전기와 전화, 서양식 의학과 교육 등이 도입되었지만, 우리 전통문화의 그 것과 경합, 갈등하여 융화되는 과정없이 대체해버리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자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이 표출되기 쉬웠다. 특히, 일본은 전기를 보급하고, 서양식 의학을 보급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는데 그들은 그것을 시혜적인 것으로 강조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통치에 유리한 방향이었고, 이를 알고 있었던 조선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반발심을 표출하면서 배척하는 모습을 나 일변도의 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다. 대중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화, 연극, 대중가요, 베스트셀러 등이다. 흔히, “주중에는 학교에서, 회사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고, 주말에는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말하는데 영화, 연극을 보거나 콘서트 공연장에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초기에는 수많은 저항과 희생이 있었던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점차 일반대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의식주에서는 외국의 음식문화가 들어오면서 식생활이 다양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고유 음식들이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Fast food에 밀려 명맥만 유지할 정도라고 하는 것은 반성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명동이나 종로 거리를 둘러보면 중식, 양식, 일식 식당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전통적인 한식 식당은 찾기 어렵다. 물론 ‘퓨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시도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직은 미미하고, 그것 역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김치보다 스파게티를, 부침개보다 피자를,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에게 우리의 전통음식들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의복에서는 한복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명절 때만 입는 옷이 되어버렸다. ‘생활한복’이라는 것이 나와서 한 때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성복에만 익숙해져서 한복에 대한 인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한복은 역사책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역사드라마에서 밖에 볼 수 없게 될지 모르겠다. 한복에도 양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편리함이나 예술미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계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주거지를 보면, 한옥은 계급에 따라 그 규모와 형태가 정해졌고, 풍수지리가 유행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구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서양식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집은 단지 잠자리일 뿐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계급적인 차이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각종 호화 아파트와 주택들은결혼식, 장례식, 제사에 해당하는데 전통적인 의식는 경건한 것으로서 절차와 형식도 복잡하고, 다소 허례허식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전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므로 이런 의식들도 시대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군사정권은 효율성만 강조하여 국민적 정서와는 무관하게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여 이에 따를 것을 강요했다. 전통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들은 그 나름의 목적과 가치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깊이 있게 파악하려는 노력도 경주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해버리는 것은 문화적인 단절을 초래하는 일이 될 것이다.사람이 살아가면서 문화를 이루는데 그러한 문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소멸시켜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문화의 주체인 일반대중의 삶의 변화를 반영하여 적합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전통문화를 아는 것은 역사를 아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알고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하듯 전통문화도 그러하다.한국은 ‘서울과 비서울’로 구분할 정도로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도 서울내기와 시골뜨기라는 말로 구분이 있을 정도로, 지역적인 격차가 있었다, 대도시 중심으로 발전을 하다보니 아직 근대화가 되지 않은 지역이 많았고, 근대화라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고, 그 주체가 된다는 것은 미쳐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서울과 비서울의 차이가 더욱 심해졌다. 인구도 전체 인구의 1/4에 이르고, 경제적으로는 돈이 거의 절반이상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서울의 지표는 곧 한국의 지표가 될 정도이다. 하지만 근대와 현대의 차이가 있다면 근대에는 서울내기와 시골뜨기는 마치 신분의 차이처럼 느껴졌다면, 현대에는 누구나 서울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편중된 수도권중심의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방자치를 강조하고, 각 지역의 자립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아직은 그 나타났다. 그 이후 사상운동의 영향 등으로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이 광범위하게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는 노동문제를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드디어 정체성을 갖는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었다. 상대적으로 농촌은 일제의 식량공급지로서 수탈을 당하고,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면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심화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도 군사정권은 성장제일주의, 공업화정책을 부르짖으며 농업에 대한 억압을 계속했다. 저임금과 저곡가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꾀하려 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겉으로만 근대화하는 모습을 갖추려고 하였다. 새마을운동은 농민이 주체가 된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관이 주도하는 타율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오히려 농가 소득은 증가하지 않으면서 부담은 과중하게 부과되며, 소비만 조장하여 농가경제를 압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80년대에는 농가경제가 자급자족에서 상품생산으로 바뀌면서 농민들의 조직이 구성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전국적인 농민조직이 건설되어 정부의 부당한 조치나 농가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외국농산물 수입조치가 있으면 생존권을 주장하며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이다. 물론 효율적이고, 특화된 분야를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농업은 인간의 기본적인 세 가지(의식주) 중의 한 가지로서 자칫 잘못하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분야이다. 한국이 농업을 특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자급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놓을 필요가 있다.요즘에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표현이 너무 많다. 그 만큼 사회의 변화가 빨랐고, 세대차이를 느낄 수 있는 연령차이도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신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흔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을 즐기며, 부모세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대중문화를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장은 엄청나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하게되면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괴리감도 극복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사회가 근대, 현대로 발전해 오면서 일반 대중만큼 탄압과 억압을 받았던 것은 여성이다. 성적인 차별을 극복하는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일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주체는 남성이었고, 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양상은 바뀌게 된다. 한국의 여성들 역시 교육을 통해 의식이 향상되고, 평등을 주장하면서 그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지켜나가고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여성운동에서, 억압을 철폐하는 여성해방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의 이상적인 여성상도 변화하여, 전업주부이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상이었지만, 요즘은 자신의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어 한국에는 각종 여성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정부 기관으로도 ‘여성부’가 신설되어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성운동은 남녀의 평등이라는 목적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자칫 여성운동이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심리로 여성 우월의 사회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성향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한국사회의 고질병으로 드는 것 중에는 ‘지역감정’이 있다. 지역감정의 기원을 언제로 두느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이 책에서는 일제식민지 시기에는 평안도와 삼남지방(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남북감정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기후가 온난한 남쪽지방은 농업중심이고, 기후가 다소 한랭한 북쪽지방은 상업과 광업이 중심이 된다. 북쪽지방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성리학적 질서가 이완되며, 상업과 금광업의 발전으로 경제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반정부적, 반봉건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도 선교지역을 남과 북으로 분할하는 협정이.
북유럽 국가들의 지역별 축제서두자신이 속해있는 문화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현재의 모습은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서 글로벌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나라 고유의 것을 살펴보는 것이 그 나라의 바탕이 되는 문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인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가 매우 유사해서 국가적 축제들도 비슷하다. 어느 한 국가의 축제라기 보다 북유럽 국가들의 축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을 것 같다. 공통적인 국가적 축제로는 '하지축제', '크리스마스', '복싱데이' 등이 있다. 여기서는 북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축제가 아니라 각 지역의 독특한 지역축제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Ⅰ. 노르웨이1. 베르겐(1) 베르겐 국제 페스티발노르웨이의 가장 유명한 축제인 베르겐 국제 페스티발은 고전·현대음악 및 재즈, 민속음악, 연극, 현대 발레무용,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에드바드 그리그를 낳은 명곡의 고향 베르겐에서는 베르겐 국제 페스티발 외에도 크고 작은 음악회나 이벤트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베르겐 국제 페스티발은 세계 각 국에서 참여한 예술가들이 공연을 함께 하고, 나아가 노르웨이 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매년 5월에 개최되어 12일간 축제가 진행된다.(2) 비의 축제 (Regnfestival/Rain Festival)베르겐은 노르웨이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물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베르겐은 그런 특성을 잘 반영하듯 유명한 비의 축제 를 매년 개최한다. 대개 10월 초 3일에 걸쳐 진행된다. 이 축제의 절정은 베르겐의 국경일인 우산의 날(Paraplyens Dag/Umbrella Day) 로 이어지게 된다. 각종의 놀이와 퍼레이드가 시내에 돌연한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어린이들도 무리를 이루어 행진을 한다. 특히 어린이들은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비의 축제에 참가한다(3) 여성축제 (Jentefestival/Girls Festival)주로 4월에 개금은 서투른 초등학교의 브라스밴드, 이제 곧 졸업하는 고등학생들도 붉은 옷이나 푸른 옷을 입고, 거리의 사람들은 환성을 지른다. 마지막에는 왕실의 악대가 씩씩하게 행진한다. 겨울잠에서 깬 동물이 줄지어 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행진을 보러 간다. 오슬로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 왕궁 앞에서 왕이 국민에게 답례를 하고 식은 끝난다. 시끄러울 정도의 환호성으로 온 국민이 열광하는 이 행사가 끝나면 여름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1869년 처음 이런 행진이 시작되었고, 그 후 열정적인 문인들의 도움으로 곧 전국적으로 번진 행사가 되었다고 한다.(2) 바이킹 페스티발 (The Viking Period)바이킹 페스티발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제라 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용맹 무쌍한 바이킹 족 후예가 세운 나라로, 유럽 각 국과 러시아 내륙의 키예프공국까지 영향을 미쳤다. 바이킹은 해적·침략자와 같은 나쁜 인상을 남겼지만, 뛰어난 항해술로 후세에 남긴 공헌은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콜럼버스보다 무려 500년이나 앞선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 축제는 이런 바이킹의 개척정신과 용맹성 및 뛰어난 항해술을 기리는 축제로 스키장으로도 유명한 홀멘콜렌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바이킹 시대의 복장을 한 남녀들이 호수 위에 띄워 놓은 배 위에서 벌이는 연기는, 바다를 무대로 세계를 개척한 바이킹들의 굳센 저항력이 그대로 배어있다. 모든 시민들은 이 축제를 통하여 민족적 일체감을 공유한다. 그 모습들이 약간은 포악스러워 보이기도 하나 자존심이 강한 나라 노르웨이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가장 전형적인 것일 할 수 있다.(3) 홀멘콜렌 스키 축제 (Holmenkollen Ski Festival)오슬로의 겨울은 어느 계절보다 활기가 넘친다. 오슬로 시민들은 1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춥고 긴 겨울을 스키나 크로스컨트리 스키, 바이애슬론 등을 통해 이겨낸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재빨리 귀가해서 스키를 메고 숲 속으로. 울라프는 사후 트론헤임의 성인이 되었고 니다로스 대성당은 시신의 기적적인 보존과 관련된 전설 때문에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북유럽은 물론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성 울라프 축제는 트론헤임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울라프 왕을 기리기 위한 축제이다. 교회 - 문화적 축제로 울라프의 성전을 찾는 중세 순례여행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실내·옥외 콘서트, 오페라, 오르간 리싸이틀, 순례여행, 역사적 시장, 아이들의 활동거리 등등 많은 행사들로 꾸며진다. 이 축제의 메인 이벤트는 울라프를 기리는 날인 7월 29(1030년7월 29일 사망)일에 실시된다. 니다로스 대성당을 주축으로 링베 음악사 박물관, 뭉크홀멘, 성모마리아, Tr ndelag 극장, 타운 스퀘어 등지에서 벌어진다.매년 이 날은 대단히 많은 참배객들이 중세기간 내내 대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이 날을 올속(Olsok)이라 불렸다. 울라프의 전통이라 불리는 문화현상이 이 기간 동안에 발달하였는데 종교, 예술, 전설, 음악 등을 망라한 것이었다. 1537년의 종교 개혁으로 올속은 중단되었지만 이미 민간생활에 스며든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19세기에 공시적인 올속의 부활이 논의되었으며, 1963년에 와서 완전히 되살아났다. 지금은 르네상스시대의 음악연주회부터 시작해서 각종의 콘서트와 연극, 춤 등을 포함하는 세계적인 문화축제로 자리잡았다Ⅱ. 덴마크1. 오덴세(1) 안데르센 축제 (Hans Christian Andersen Festival)덴마크의 2대 고전 중 하나인 안데르센은 고향인 오덴세에서는 더욱 특별한 인물이다. 안데르센과 관련된 여러 가지 행사가 시시때때로 열리고 있지만 매년 여름 개최되는 안데르센 축제는 오덴세 사람들의 안데르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 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안데르센이 존경이 대상일 수밖에 없다. 85명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연극공연으로 꾸며지는 이 축제는 퓐 야외 박물관 Den fynske Landsby(The ies, The official opening, Teather등 모두 8가지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Outdoor activities의 행사는 오르후스 대성당으로 뻗어있는 목사의 광장 Bispetorv이라고 하는 광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중국 곡예단의 공연이나 서커스를 볼 수 있다. 오르후스 축제는 한마디로 연극, 영화, 춤, 음악, 재즈, 발레, 문학, 스포츠, 오락 등등 모든 문화가 집결되어 있는 종합예술 축제로 취지나 진행방식 면에서 코펜하겐의 Sommerscene 과도 비견 될 만 하다. 축제의 오프닝은 항상 덴마크 국민들의 우상인 여왕 마가렛 2세 Margrethe Ⅱ의 연설로 시작되고 많은 유럽의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이 펼쳐진다. 덴마크는 물론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배우들이 참여하여 기량을 과시하게 된다.3. 코펜하겐(1)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발 (Copenhagen Jazz Festival)유럽에 재즈열풍을 몰고 온 코펜하겐은 미국의 뉴올리언스와 함께 국제적인 재즈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존 콜드렌, 소니 로린스, 찰리 파커 , 마일스 데이비스 등 재즈 계 거장들의 오랜 기간 본거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특히 코펜하겐) 시민들은 밤에 즐기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들의 Night Life중 가장 대표되는 것이 재즈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거리 곳곳의 재즈하우스나 카페에서는 쉽게 재즈가 흐르곤 한다. 매년 재즈와 관련된 문화축제가 열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는 축제가 바로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발이다. 이 축제는 매년 7월 초 첫 번째 금요일에 시작하여 10일간에 걸쳐 개최된다.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진행되는데 축제 기간 동안 도시의 모든 거리들은 거품이 일 듯이 사람들도 가득 찬다. 음악회는 주요 거리들(Str get), 역사적 장소들, 공원들 그리고 운하(Nyhavn) 등에서 대부분 열린다. 음악회는 재즈의 특성 만큼이나 자유스런 분위기로 진행되며 수준 높은 .(3) 코펜하겐 카니발 (Canival in Copenhagen)세계의 3대 카니발(Canival) 이라 하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 벨기에의 뱅슈 카니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세계적인 축제는 아니지만 코펜하겐에서는 여름을 들끓게 하는 축제 코펜하겐 카니발 이 있다. 직장을 얻지 못한 젊은이들이 그 걱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시작했다고 하는 이 축제는 매년 성령 강림절 Pinsedag의 이틀에 걸쳐 개최된다. 어른들의 카니발은 성령강림제의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어린이들의 카니발은 월요일에 실시된다. 이 무렵(6월 중순경)은 날씨도 제법 따뜻해서 밤낮을 통해 축제가 계속된다. 카니발이라 하지만 화려한 퍼레이드나 컨테스트는 전혀 없다. 단지 시민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치장하고 시내로 몰려나가 흥겨운 기분으로 제멋대로 시내를 활보하는 것이다. 자유스러운 것을 가장 좋아하는 덴마크인 들의 기질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축제라 할 수 있다. 참가조건이나 등록·허락등은 아무것도 필요없다. 축제규칙이 없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데 이 축제는 해를 더해가면서 시민들 사이에 확실히 정착하게 되어 지금은 100만 명이 넘게 참가하는 대규모 축제가 되었다. 6∼8월은 코펜하겐의 가장 화려하고 개방적인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학교와 회사가 휴가에 들어가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스트뢰에Str get거리와 콩겐스 뉘Kongens Nytorv광장은 매우 혼잡해진다. 코펜하겐 카니발과 재즈 페스티발이 이 시기에 열리고 여름을 알리는 코펜하겐 서머축제Copenhagen Summer Festival와 코펜하겐 물 축제Copenhagen Water Festival도 함께 개최된다(4) 로스킬데 락 페스티발 (Roskilde Rock Festival)로스킬데 락 페스티발은 매년 6월말 경에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 축제이다.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발 정도는 아니지만 덴마크는 물론 북유럽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는 축제로 4일간에 걸쳐
제 52회 FM 국악무대 공개방송을 다녀와서Ⅰ. 序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말을 할 때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말을 한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아직 양국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이번 공연은 이런 두 나라의 전통음악이 한자리에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KBS공개홀에 갔을 때 로비에는 한국인 만큼 일본인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일본인들에게도 이번 무대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앞 둔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것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인 교류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번 국악무대도 아마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이번 국악무대에서는 우리의 전통악기인 거문고, 가야금, 대금 연주와 일본의 전통악기인 고토, 샤미센(三味線), 사쿠하치(尺八)연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타악 퍼포먼스 히비끼와 우리나라의 창작 타악그룹 공명의 공연이 있었다.Ⅱ. 本文1. 첫곡은 쓰가루샤미센 독주 ‘쯔가루죠가라부시’였다.일본열도 북쪽에 있는 아오모리현에 쓰가루 지방에서는 특별히 쓰가루샤미센이란 독특한 음색을 지닌 민속악기가 있다고 한다. 특히, ‘쓰가루죤가라부시’는 이 지역에서 축제나 술자리에서 즐겨 불려진다고 한다. 이런 음악은 민속음악에 속해서 노래의 가사에서 해학과 골계가 느껴지며, 개방적인 성 풍속도를 반영한 노래말도 있는데, 이런 내용들이 이 지방 특유의 사투리가 어우러져서 독특하다고 한다. 이번 무대에서 연주된 곡은 쓰가루죠가라부시의 ‘쿄쿠히끼’인데 이것은 본격적으로 민요를 노래하기 전에 연주되는 일종의 전주곡이다. 우리도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다스름을 탄다거나,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서 단가를 부르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연주자는 오노예쯔로라고 하는데 와라비자의 히비끼팀에서 쓰가루샤미센과 와다이꼬 등을 두루 연주한다고 한다. 그의 폭탄머리에 일본 옷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독주라서 그런지 소리의 발생매체는 샤미센뿐이었다. 처음에는 보통빠르기 정도였는데 갈수록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매우 느려지고, 다시 보통빠르기 정도에서 끝이 났다. 뒤에 배경에 뜬 대나무와 달, 난초가 샤미센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샤미센은 우리나라 거문고와 비교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별로 잘 모르겠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우리 거문고가 술대를 쓴다면 샤미센은 양철판으로 치는 정도이다. 양철판 같은 것을 사용해서 그런지 기타 소리 같기도 하고, 음악시간에 본 sitar 소리 같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는데 음색이 통통 튀는 게 마치 오락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같았다. 형식은 A B C B C D 같다. 형식을 파악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곡 연주가 끝나고 윤중강씨와 이금희씨가 나왔다. ‘윤중강의 2030’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대머리인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이 악기와 연주곡에 대해서 말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2. 두 번째 곡은 거문고와 쓰가루샤미센의 ‘출강(出鋼)’이었다.거문고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현악기라고 한다. 쓰가루샤미센과 거문고는 모두 손으로 직접 연주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거문고에서는 술대, 샤미센에서는 바찌라는 것을 사용한다. 이번 곡 ‘출강’은 원래 북한의 작곡가 김용실이 만든 곡으로, 철강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보통 거문고라고 하면 선비의 악기이기에 정적이고 격조있는 가락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곡은 거문고를 통해서 활기있고 약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연주에서는 거무곡와 함께 쓰가루샤미센이 함께 연주를 하였는데 이 악기 특유의 힘이 느껴졌다. 거문고를 연주한 ‘금율학회’는 이세환의 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순수 거문고만의 연주단체로서 그동안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북한의 레퍼토리까지 연주했으며, 특히 작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음악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연주가 시작되었다. 거문고를 틀고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힘차게 보였다. 나는 거리가 좀 멀어서 바찌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술대랑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출강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연주 실황을 구해서 몇 번이나 다시 듣게 되었다. 특히, 북한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또 앞으로 융합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거문고 연주에서 나무소리, 술대가 대모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매우 강하게 났다. 아주 빠른 빠르기에 중간에 독주 그리고 또 아주 빠르게 끝났다. 출강의 특징은 농현이 없다는 점이다. 강약도 전곡을 통털어서 다 강하고, 슬기둥이 많았다. 그리고, 청-청-청을 바람처럼 훝고 지나가는 부분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이 정도면 정말로 검은 학이 내려와서 춤이라도 출듯하다. 휘몰아치는 리듬이 아주 웅장했고, 연주자들 모두 한복을 안입고, 검은티에 금(琴)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강의하실 때 창작국악중에 서양음악을 국악기로 연주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 곡이 많다고 하셨었는데, 출강은 그런 느낌이 없었다. 현대적이지만 그 속에 민요의 가락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또, 거문고 독주부분에는 갑자기 느려지면서 조용한 독백이 나오다가 ‘황’소리를 강조하면서 다시 ‘군주’로 돌아간다.3. 세 번째 곡은 대금과 샤쿠하치를 위한 ‘풍류’였다.샤쿠하치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이고, 대금은 가로로 부는 관악기이다. 이러한 차이가 있으나 두 악기는 모두 대나무를 소재로 해서 만든, 양국을 대표하는 관악기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일본의 세로로 부는 관악기 중에서 가장 긴 샤쿠하치는 이 악기의 길이가 일척팔촌이나 되어, 샤쿠하치(八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실 샤쿠하치는 거문고보다는 퉁소와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퉁소가 잘 연주되고 있지 않으며, 일본에서는 우리의 대금처럼 가로로 부는 긴 관악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금과 샤쿠하치는 가로로 세로라는 차이가 있지만, 대나무로 만든 대표적인 악기로서 비교가 된다고 한다. ‘풍류’는 주로 음악을 매개로 해서 정신적인 고아한 세계를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풍류를 ‘멋’이라는 단어로 나타낸다면, 일본에서는 ‘와비’, ‘사비’라는 말로 풍류의 세계를 표현한다고 한다. 이번 공연은 소리 발생매체가 3개이다. 샤쿠하치와 대금, 그리고 또 하나의 이상한 악기였다. 악기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곡은 헤테로포니였다. 헤테로포니라서 그런지 어떻게 보면 두 악기의 연주가 섞여서 혼동된 느낌도 있었다. 대금소리가 너무 맑고 청명해서, 샤쿠하치의 약간 탁하고 낮은 소리가 묻히는 느낌도 들었다.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악기인 대금 소리는 정말 언제들어도 기분이 좋다. 잘 들리지 않는 샤쿠하치 소리를 들으려고 집중을 해보았는데 정말 트롯트같기도 했다. 이번 곡에서도 장구와 고수가 박자를 잘 끌어나갔다. 박자는 갈수록 빨라졌고, A B C A D 형식인 것 같다. C부분은 대금이 독주를 하였고, D부분은 샤쿠하치가 독주를 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곡이었다. 해테로포니라서 그런지 잘 못 들으면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는 곡이었다.4. 네 번째 곡은 샤쿠하치와 고토 이중주 ‘봄바다’였다.1926년에 작곡된 고토와 샤쿠하치의 2중주곡으로, 일본의 근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미야기 미치오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이 곡은 작곡가가 일본의 세토내해를 여행했을 때의 인상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는 어렸을 때 한국의 인천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을 소재로 해서 소품을 쓰기도 하였는데, 그의 음악속에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 바다의 추억이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는 김리혜라는 무용가가 춤을 췄는데, 제일한국인으로 성장해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라고 한다. 음악시간에 소리만 들어봤던 고토를 직접보게 되니 신기했다. 줄을 기계로 당기는 것이 너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농현이 하나도 없었다. 샤쿠하치는 매우 큰 소리를 내었다. 형식은 A A' A였고, 전반적으로 트롯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악기 연주의 긴장감을 무용의 화려함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5. 다섯 번 째 곡은 고토와 노래 ‘千鳥의 曲’이었다.고토는 순수하게 기악 독주곡으로 연주되기도 하고, 다른 악기와 만나서 중주곡의 형태로 연주되기도 하는데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고토, 사쿠하치, 샤미센과 함께 편성되는 산쿄쿠의 형태가 널리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런 연주 편성은 같은 시대인 조선 후기 영산회상 계통의 방중악이 선비층에게 사랑받은 것과 비교될 수 있다고 한다. 고토는 독주와 중주곡에 쓰이지만, 또한 고토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가야금병창과 비슷하다. 곡의 구성은 앞의 전주, 前歌, 데고토(手事), 後歌의 형태로 이어진다. 전주에서는 아악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고, 데고토는 파도와 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원래 데고토는 단순한 간주적인 역할을 넘어서서 악기의 기교가 최대한 발휘되고, 따라서 고토의 음색이 발휘되는 부분이다.6. 여섯 번째 곡은 가야금 병창, 거문고, 대금, 장구, 와다이코, ‘뱃노래와 한오백년’이었다.뱃노래와 한오백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이지만, 일본에도 널리 알려진 민요이기도 하다. 가야금의 명인 지성자가 공연을 했는데, 역시 대단했다. 연세도 있으신데 가야금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은 소녀같아 보였다. 지성자 명인이 노래를 하자 우리 관객들은 모두 뱃노래와 한오백년의 후렴구를 따라하면서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흥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