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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 인터넷 윤리에 대한 고찰
    주제 : 인터넷 윤리에 대한 고찰1.서론정보전달의 핵심은 그 매개체의 변화에 따라 진화했는데 이러한 매개체를 미디어라고 부르며 초기의 음성, 기호, 문자 등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물의 발달로 커다란 변모를 겪었으며 벨의 전신전화로 두 번째 변화를 맞이했었다. 현대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통신이 미디어가 되는 제 3의 변화의 시대이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구현은 사회, 문화적인 성숙 외에 기술적 기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러 가지 요소기술들이 꿈틀대다가 최근에 와서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았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출현이다. 현재 인터넷은 전세계 154개국 380만 호스트 컴퓨터가 연결되어있고, 약 4,000여 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지구촌네트워크로 성장하였다. 현재도 매년 6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10년 후에는 3억 여명이 사용할 것이라는 통계자료가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인터넷 문화 충격을 완충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인터넷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인류문화의 전 분야에 걸쳐 미래 정보화사회의 중추적인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인류는 정보화사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문화에 적응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문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대비를 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네티켓이란 무엇인가와 몇 가지 네티켓의 유형들과 간과해서는 안 될 사례들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인터넷 윤리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에 있어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과 이해를 더하고자 한다.2.본론학교에서 "네티즌 윤리"를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컴퓨터와 인터넷만 가르칠게 아니라 인터넷을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네티켓'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다룰 줄은 알면서도 인터넷 이용예절을 몰라 사이버 공간에서 폭언과 불법, 비리를 일삼는 네티즌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네티즌서 일어나는 이러한 Flaming의 대표적인 실제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자 Flame (Spelling Flame)의 예는 매일 일어나는 빈번한 예이다.어떤 사람이 공개되는 메시지에 철자를 잘못 쓴 글을 올리면 다른 몇 명이 이를 꼬집어 지적하고 고쳐준다. 예를 들어 "I went her home..." 이라고 써야 될 글을 "I want her home..."으로 쓴 글을 보면 누구나 한마디하고 싶어 질 것이다. 마치 영어나, 국어 선생님 수 만 명이 싸이버 세계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철자 Flame의 글 안에는 거의 항상 철자 오류가 다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철자오류에 대해서 Flame 을 보내는 것은 나쁜 네티켓이다. 만약 꼭 철자법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개인적인 전자메일로 하는 것이 네티켓이다. 만약에 자기자신이 이러한 Flame을 공개적으로 받았다면 이를 무시하시고, 개인적으로 받았다면 보낸 이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2.문법 Flame (Grammer Flame)철자와 비슷하게 문법에 대해서도 Flame이 있다.특히 인터넷에서의 통용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권이 아닌 나라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보안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SATAN 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의문점이 있어서 SATAN프로그램을 만든 Venema에게 직접 전자메일을 띄운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영어실력이 딸려서 "제가 사탄프로그램을 실행시켜보았는데..." 라는 말을 "I had SATAN execute.." 라고 써야하는데 "I am SATAN executive..."라고 써서 보냈다.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면 "나는 사탄의 왕초다..." 라는 말인데 Venema 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의중을 짐작하여 "이런 식으로 실행시켜보십시오.." 라는 짤막하고 훌륭한 답장을 보내왔다.3.대역폭 Flame (Bandwidth Flame)이다. 이 Flame은 여러 가지 벌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쓰고 있는 컴퓨터가 더 좋다는 類의 Flame이 많이 등장했었다. 내 컴퓨터가 더 좋다는 이러한 Flame이 많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컴퓨터를 진정 사랑하는 것 같다. 이런 유의 발언은 확실하게 Flame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발화점이다. 예를 들어 Macintosh 뉴스그룹에 들어가서 자기자신의 PC가 어떤 Mac제품보다 좋다고 포스팅 해보자. Flame의 정식코스로 들어가도 전에 다른 사람이 Mac이나 PC 사용자가 간과하는 Amiga의 멋진 사양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컴퓨터들의 상품들에 대한 비교에 대한 옹호나 지지의 글을 올리고 싶거나 혹은 다른 기술들에 대한 상대적인 장점을 알고 싶다면 "advocacy"라는 "comp"밑의 여러 뉴스그룹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comp.sys.mac.advocacy", "omp.sys.next.advocacy" 등이 있다.7.실생활에 정신차려 Flame (Get a Life Flame)이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생활을 배제하고 싸이버세계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실생활을 찾으세요!" , "실제로 해봐요", "정신차려라!" 는 등의 말들은 좋은 네티켓이 아니다. 이러한 예기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들 자체가 더욱 그렇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떠한 Flame에 자신은 실제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답장은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이다.8.정치적 Flame 이다. 이 Flame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섹스주의자, 민족주의자, 인종 차별 자거나, 동성연애자,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수많은 구경꾼들이 이 발언에 참견하고 Flame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발언을 하려거든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가치관과 감정을 가지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Flame을 통해서 무지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꿀 같은 이러한 메세지가 명백히 허락되어 있는 장소를 빼고는 이러한 Flame은 가장 나쁜 네티켓이다.한국경제신문이 "사이버 컬처 21"이란 이름의 인터넷 문화 캠페인의 일환으로 최근 코리아메트릭스와 공동으로 네티즌 1천5백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5%가 학교에서 네티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답변했다. 네티즌 윤리 교육의 시급성은 통계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금년 1,4분기중 한국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접수된 불건전정보 신고건수는 2천2백62건.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접수된 9백63건의 두배를 넘는다고 한다. 바이러스 유포나 해킹, 사이버 성폭력과 같은 사이버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98년 3백97건에 그쳤던 사이버범죄가 작년엔 1천6백93건에 달했다. 1년새 4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사이버범죄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대전에 사는 한 고등학생은 최근 트로이목마형 바이러스를 이용해 타인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다음 이 사람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냈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 마포에 사는 청년은 집에서 PC로 타인의 도메인을 훔쳐 사용한 혐의로 사이버범죄 수사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네티즌 윤리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나 관련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인터넷 공간이 폭언과 불법, 비리가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법제를 고쳐 학교에서 네티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컴퓨터를 다룰 줄만 알지 기본적인 예절 조차 지키지 않는 네티즌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저지른 잘못도 현실세계와 똑같이 범죄가 될 수 있고 재미로 하는 해킹이나 바이러스 유포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인터넷이 초고속으로 보급되고 있는데도 관련 행정은 초저속 행보를 계속하는 것도 문제다.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사설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고 교육부는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더 자극적인 내용을 싣고 있기 때문에 국내단속의 방법이 없다.정보통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효율성의 원리가 커뮤니케이션을 평가하는 원리가 된다. 따라서 직접커뮤니케이션에 중요시되었던 진실성이나 감정의 공유, 상호간의 신뢰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며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는 밀접해지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다 또한 정보통신상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참여하고 있지만 상대방과의 친밀하고 긴밀한 피드백의 교류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 표현하지 못한 채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즉 커뮤니케이션 상황면에서 볼 때 사람의 만남 없이 기계와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비인간화된 상황을 유발하여 상대방을 실제로 의식할 수 없는 거리감을 조성한다. 또한 의사 교환시 상대방을 의식하며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심리적 또는 생리적 인식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상실되어 상호간의 인간적 관심이 소멸하기 때문에 고독감은 여전히 남으며 대면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참가자들간에 형성되는 유대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비인간화된 커뮤니케이션을 초래한다. 또한 상대방과 의 신체적 접촉이나 만남이 배제된 상태에서 컴퓨터를 통해 의사교환을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써 인식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기계와의 교류라는 인식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고려를 감소시키며 자신들의 독단적인 주장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컴퓨터와 통신망에 지나치게 몰두해 현실사회에서 대인기피증을 보이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위험성역시 간과할 수 없다.정보통신기술은 과거와는 달리 정보제공자와 정보이용자 간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따라서 정보원의 신원 및 정보신뢰성 확인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디지털화 된 정보의 조작이나 수정이 용이해서 정보의 출처파악이 쉽지 않다. 이는 정보제공시 제공자의 주관적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정보의 선택적, 임의적 제공이 이다.
    사회과학| 2002.10.22| 12페이지| 1,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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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흐르지 않는 세월을 읽고
    제목 : 끝없는 물음...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과 여러 가지 대립이 생길 수 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의 생각이 똑같다면, 대립이나 마찰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사고하는 것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인 이상 겪어야 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좀 더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최상의 이익이 될 만한 결론에 도달할 때 우리는 만족한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사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고뇌 속에 서서히 자리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철학적 의미가 포함된다. '흐르지 않는 세월' 이라는 이 책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근본 문제들과 동서고금을 통하여 근본이 비슷한 인간적인 소망들을 소재로 하여 스승과 제자가 대화로써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문답형식의 글이다. 그 속에는 물론 철학적 내용이 주가 되고 있지만, 생활 속에 가질 수 있는 의문과 문제들에 대한 것도 적지 않다. '세상의 양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도 현저한 변화가 오고 있다.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두터운 벽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한 가지 측면일 따름이며, 그와는 정반대로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나라를 보면 정말 많이 변하긴 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크나큰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으며, 이제는 세계화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것도 없지 않다. "흐르지 않는 세월"이라는 표제가 이 이유 때문에 지어졌다고 작가는 전한다. 이 책에는 어느 분야라는 특정함이 없이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가질 수 있는 의문점과 문제들을 다루데 이제 각 장마다 살펴보기로 하겠다.1장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無心先生과 작가와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자가 무심선생의 아호에 대해 질의하던 부분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느냐, 안 알려지느냐가 문제가 아니지요. 그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요. 모르긴 해도, 내가 스스로를 명사가 될 만하다고 인정할 날은 졸연히 올 것 같지 않군요." 라고 무심선생이 말했다. 옛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명예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 내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정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가... 지금도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로 나를 신뢰할 수 있는지 그것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편리하겠지만, 아무튼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데서 바로 자신감이라는 것이 표출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볼 때 자신감이 좀 부족한 것 같다. 바로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정말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의지가 부족한 것, 이것이 '지금의 나'이다.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사람은 가끔 자신에 의하여 배반을 당한다고 무심선생은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배반당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신을 신뢰하는 맘이 격감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자신을 불신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빨리 나를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또한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무심선생은 말한다. 이것은 비단 철학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곳에도 적용되어야 할 명제라고 생각한다. 의미에싣고 있다. 구체적으로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의제를 놓고, 부모를 학대하던 형을 동생이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어 토론하였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자-인간의 본성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혈연의 정이다. 그러므로 제일 나쁜 것은 형이고, 그 담으로 나쁜 것은 동생이다. 동생의 동기는 좋았으나, 방법이 나빴다는 결론이다.-는 의견도 있었고, 종교적 시각-죽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동생이 나빴다.-으로 본 의견도 있었고, 과학적 방법-과학의 방법을 인간학에도 적용하자. 심리학, 사회학, 고고 인류학 등을 통해서 파악된 인간성을 토대로 삼고 윤리학적 문제를 풀자-으로 접근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머리로는 죽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동생이 나빴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가슴으로는 형이 나쁘다고 느낀다. 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확실하고 시원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시도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평가를 하며 살도록 본래부터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위의 사건을 놓고 인간이 잘잘못을 평가한다는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기가 매울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주장하는 '객관적 타당성'에는 설득적 성질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윤리나 가치관이 인간 스스로의 평가를 통하여 내일을 위한 새로운 윤리 내지 가치관으로 발전하며, 내일의 가치관 역시 다음 날의 인간들의 평가를 통하여 또다시 수정됨으로써 그 다음 날을 위한 새로운 윤리 내지 가치관으로서의 발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당위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이라고 봐도 좋을지 묻고 싶다. 인간의 주관이 어느 정도나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나 당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는 존재하기 마련 아닐까?3장과 4장에서는 대학생의 최대의 관심사라고 할 수 고지식한 면이 보인다. 연애결혼이 좋으냐, 중매결혼이 좋으냐하는 것은 왈가왈부할 바가 못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애결혼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중매를 통해 만난 사람이 바로 결혼하는 게 아니고 어느 기간 사귀어본 후에 결혼하는 것이지만, 배우자의 진실된 면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연애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궁합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으므로,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작가는 첫사랑에 실패하였는데, 그래서 장제로 붙인 것이 '사랑을 위한 최고의 미덕은 속이지 아니함이요, 그 최선의 지혜는 속지 아니함이라.' 라고 하였다. 약간은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엿보이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한 사랑에 관한 말로 정을 언급하였다. '情. 그것으로 말미암아 삶이 다사롭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이 괴롭다. 정의 문을 닫으면 마음은 편한 가운데 외롭고, 그 문을 열면 마음은 보람찬 가운데 괴롭다.' 확실히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게 바로 이성간의 관계인가보다. 확실히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다. 맘이 여리다라고 해석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많고, 너그럽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삭힌다. 사랑이라는 것이 겉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라면 정이라는 것은 바로 마음으로 간직해야하는 것이 아닐까?5장에서는 '나와 우리'라는 주제이다.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절대적 세력을 가진 오늘날, 나와 우리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개념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라는 것도 결국은 확대된 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의 '나'들이 합쳐서 하나의 '우리'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상식이며, 또 실제에 있어서도, 적어도 현대의 문명 사회에 관한한 우리에 앞서서 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처음부터 나를 그토록 절실하게 의식한 것이 아니며, 나보다도 오히려 우리를 더욱 강하게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인간 사회에 여, 순전히 '나'로서만 살 수 없음은, 인간 존재의 피치 못할 제약이다. 그러면 우리의 전통적 가족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들의 전통적인 가족 및 가족주의에는 세 가지의 심각한 결함이 있다. 첫째로, 개인의 자주성이 억압된다는 것과, 둘째로 가족에 있어서 단합하는 우리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사실이며, 셋째는 가족주의 적 이기주의가 있다. 한국의 현실은 적어도 국가적 규모의 대동 단결을 요청하고 있는데, 우리의 느낌을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경향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적 가족주의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폐단은 개인이 자주성을 고집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보다 큰 우리를 배반하고 작은 나에게 집착함에서 생기는 것이다. 자기의 주체성을 굳게 지키면서도, 작고 좁은 나를 넘어 서서, 보다 큰 우리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개인의 탄생, 이것은 현대가 당면한 인류의 과제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것의 하나라고 무심선생은 말한다. 현재 우리는 서양의 발전된 문화를 앞다투어 수입하고 있다. 개인주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개인주의의 폐단을 인식하고 수정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그냥 여과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현재 세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동양적인 '우리'와 서양적인 '나'가 종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6장에서는 무심선생의 비교적 가벼운 다방면의 주제를 다룬 글들이 소개되었다. 여기 몇 개를 적어본다. '제목을 붙이기 어려운 산문' 에서는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기회를 잘 잡아라, 통찰력을 길러라, 권력을 경계하라, 겸손하라, 용기를 가져라 등등 사회 현실에 관계되는 글들도 있고, 시사성을 가진 글들도 있었는데, 어떠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근본적인 원칙에 연결시켜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가자미의 눈'에서는 가자미의 눈이 한쪽으로만 볼 수 있는 것에 착안하여 편견을 갖고 있는 인간을 풍자하고 있다. 가자미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간는다.
    독후감/창작| 2002.10.22| 5페이지| 1,000원| 조회(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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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에 대한 정의
    주제: 교육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내리고, 그 근거를 제시하시오.교육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는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학습하였던 것이 고작이다. 교육은 역사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이루어져 왔다. 언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게 되면서 "교육"이란 개념에 점차 접근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 후로 오늘날까지 교육은 이루어져왔고 앞으로도 점점 발전된 형태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교육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교육이 단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가정, 각종 단체, 대중 매체, 인터넷 등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개념이 막연하기도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과정' 이며 '보다 나은 사회개조를 위한 수단으로 가정·학교·사회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을 말한다. 그러나 교육은 광범한 현상으로 넓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학자에 따라 그리고 관점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내려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통일된 정의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선적으로 교육의 어원적 기원에 대해서부터 알아보자. 동양에서는 敎育이란 한자를 쓰고 있다. 이 교육이란 말은 "가르치다", "기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敎라는 말은 윗사람이 베푸는 것을 아랫사람이 본받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育은 어린이를 착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말에서 한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과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에서의 교육은 'Education'으로 표현한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서 '밖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하여 "교육은 바람직한 정신상태를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실현하는 일" 이라고 하였다. 또한 교육을 '인간의 성장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신장시키도록 돕는 일' 혹은 '최대한의 자기 실현을 돕는 일'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다. 교육자는 하나의 조력자로 머물고 어떤 인간으로 자라고 무엇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그 주체가 학습자임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정의이다. 공자는 성인군자로 만드는 덕치주의를 주장하면서 인격의 완성을 교육의 목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한 교육은 바로 인격을 수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루소, 듀이, 엘렌 케이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한 정의가 많이 있다.이상에서 다양하게 교육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으나, 공통적인 견해는 "교육이란 인간을 대상으로 그들의 성장을 도와 가치적 방향으로 인도하는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작용 또는 그러한 과정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의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우리가 먼저 교육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교육의 대상을 정의 내리거나 그 성격을 명백히 함으로서 교육의 정의와 성격을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선행조건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럼 교육의 대상이 누구인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교육의 대상이 인간이지 그 누가 또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반문은 물론 타당성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의 획일화를 가짐으로서 교육의 방향과 목적 내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단편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육의 대상을 좀더 신중하게 정의 내리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루소는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력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출생 시에는 아무런 판단력이 없지만 교육을 통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획득하게 된다."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교육은 필요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서 인간은 교육의 대상으로서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스프링거는 교육을 문화 "믿음은 들음으로서 나고"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언어적 인간이야말로 교육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을 정의 내리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교육의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은 인간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없이 자명하다.그 다음으로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여태까지 교육의 목적에 대한 수많은 해답이 제시되었으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칸트에 의한 『개인의 능력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개발하는 것』이라는 정의와 둘째로 『개인을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찾는 도구로 만드는 일』이라는 공리주의적 정의가 있다. 이 정의들은 이상적인 완전한 교육이 실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보편 유일한 교육을 정의한 것이나 역사상 교육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 왔다. 인간에게는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라는 두 가지 존재가 있는데 사회적 존재란 본래 유전적으로나 자연적 발달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는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일 때마다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인 존재들에게 '사회적 존재'를 형성시켜 주어야 한다. 인간은 오직 그가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인간이며 도덕·지식·과학·종교·언어 등의 모든 것들이 사회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숨은 본성을 다만 개발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존재'를 창조하여 인간에게 부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교육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교육의 의미는 참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문화에의 적응과 새로운 문화창조를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참된 인간이란 인간 본래의 선한 품성을 보존하며 내면적 의지를 실현해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문화는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것으로서, 교육을 통해서 그 문화를 보존하거나, 또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여기 그 근거가 있다. 먼저 맹자에 대하여 알아보자. 맹자는 우리가 알다시피 孟母三遷之敎라는 말로 잘 알고 있다. 맹자의 어머님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3번이나 이사는 영재를 얻어 교육함을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에서 한가지라고 보고 있다. 이 말로부터 이끌어 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가 주장했던 성선설이나 인의사상을 기초로 한다면 교육의 의도성을 보여주는 말로서 해석할 수도 있고, 인간의 유전적 특성 또한 언급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여기에서 교육의 의도성이나 유전적 특성이 교육의 성격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은 교육의 특성이나 정의를 규정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된다. 다음으로는 칸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칸트를 언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실천이성이다. 실천이성이란 것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칸트가 말한 선의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칸트는 인간내면에 나오는 자유의지와 자율적인 도덕법칙을 규정하려고 하였다. 이런 인간의 내면적 자율의지를 칸트는 선의지라고 하였으며 때로는 인간은 이런 의지에 나쁜 영향이 끼어 들어올 수 있으며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선의지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하며 또한 올바른 행동은 내면적 의무 의식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듯 도덕률을 지키려 하는 것을 실천이성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칸트의 사상은 의지적인 면을 강조하였으며 이런 의지는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이며 교육을 통해서 내면적 의지인 실천의지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이런 내면적 실천의지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받는 주체는 인간이란 것을,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교육은 인간의 고유 특성임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교육이란 어떠한 목적(실천이성)을 위해 받아야 하는 과정과 필수의 요건이라는 것과 계획적인 형성의 수단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선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다시 말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세번째로 루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중시하였다. 그러나 사물의 교육은 내적인 도덕성에 대한 성장은 가져오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루소는 이러한 문제를 교사의 역할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사는 선과 악을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사는 선과 악의 구분을 확실히 해주어야 하며 만약 교육을 받는 당사자들이 이 구분을 하고 있다면 교사의 역할은 관찰자의 역할로 축소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완성은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사회의 관습과 습관은 타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사회의 타락한 관습과 습관으로부터 교육의 대상을 보호해야 하며 인간의 본성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을 루소는 선으로 보고있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지켜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칸트가 말한 실천이성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칸트는 교육을 통해서 이성을 키워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루소는 인간의 본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기점을 잡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교육방법은 재래의 교육의 인위적인 면과 계획적인 부분에 대한 공격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로는 스프링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교육이란 성숙한 사람이 미숙한 사람에게 문화재를 통하여 자연의 상태에서 문화적 이상 상태로 끌어올리는 작용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이란 문화전달과 문화창조에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문화란 말이다. 문화란 인간사회에서만 존재하며 끊임없이 그 형태나 모양 또는 무형적인 사고 내지 도덕적 판단기준조차 변한다. 따라서 교육이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며 또한 범위나 도구조차 바뀐다. 이런 문화적 인간에게서 교육은 끊임없이 인간의 문화적 창조성을 요구할 것이며 그로부터 교육의 모습도 바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객관성과것이다.
    사회과학| 2002.10.22| 4페이지| 1,000원| 조회(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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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윤리고찰 평가A좋아요
    R E P O R T-현대사회와 윤리-{학과실과교육과담당교수조 찬 석 교수님제출일자2001년4월 일학번011-41122이름윤 교 진주제 : 인터넷 윤리에 대한 고찰1.서론정보전달의 핵심은 그 매개체의 변화에 따라 진화했는데 이러한 매개체를 미디어라고 부르며 초기의 음성, 기호, 문자 등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물의 발달로 커다란 변모를 겪었으며 벨의 전신전화로 두 번째 변화를 맞이했었다. 현대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통신이 미디어가 되는 제 3의 변화의 시대이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구현은 사회, 문화적인 성숙 외에 기술적 기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러 가지 요소기술들이 꿈틀대다가 최근에 와서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았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출현이다. 현재 인터넷은 전세계 154개국 380만 호스트 컴퓨터가 연결되어있고, 약 4,000여 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지구촌네트워크로 성장하였다. 현재도 매년 6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10년 후에는 3억 여명이 사용할 것이라는 통계자료가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인터넷 문화 충격을 완충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인터넷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인류문화의 전 분야에 걸쳐 미래 정보화사회의 중추적인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인류는 정보화사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문화에 적응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문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대비를 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네티켓이란 무엇인가와 몇 가지 네티켓의 유형들과 간과해서는 안 될 사례들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인터넷 윤리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에 있어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과 이해를 더하고자 한다.2.본론학교에서 "네티즌 윤리"를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컴퓨터와 인터넷만 가르칠게 아니라 인터넷을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네티켓'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다룰 줄은 알면서도 인터넷 이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자 Flame (Spelling Flame)의 예는 매일 일어나는 빈번한 예이다.어떤 사람이 공개되는 메시지에 철자를 잘못 쓴 글을 올리면 다른 몇 명이 이를 꼬집어 지적하고 고쳐준다. 예를 들어 "I went her home..." 이라고 써야 될 글을 "I want her home..."으로 쓴 글을 보면 누구나 한마디하고 싶어 질 것이다. 마치 영어나, 국어 선생님 수 만 명이 싸이버 세계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철자 Flame의 글 안에는 거의 항상 철자 오류가 다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철자오류에 대해서 Flame 을 보내는 것은 나쁜 네티켓이다. 만약 꼭 철자법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개인적인 전자메일로 하는 것이 네티켓이다. 만약에 자기자신이 이러한 Flame을 공개적으로 받았다면 이를 무시하시고, 개인적으로 받았다면 보낸 이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2.문법 Flame (Grammer Flame)철자와 비슷하게 문법에 대해서도 Flame이 있다.특히 인터넷에서의 통용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권이 아닌 나라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보안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SATAN 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의문점이 있어서 SATAN프로그램을 만든 Venema에게 직접 전자메일을 띄운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영어실력이 딸려서 "제가 사탄프로그램을 실행시켜보았는데..." 라는 말을 "I had SATAN execute.." 라고 써야하는데 "I am SATAN executive..."라고 써서 보냈다.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면 "나는 사탄의 왕초다..." 라는 말인데 Venema 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의중을 짐작하여 "이런 식으로 실행시켜보십시오.." 라는 짤막하고 훌륭한 답장을 보내왔다.3.대역폭 Flame (Bandwidth Flame)이다. 이 Flame은 여러 가지 배경에서 일어난다. 잘못된 그룹에 보낸 뉴스 기사런 유의 발언은 확실하게 Flame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발화점이다. 예를 들어 Macintosh 뉴스그룹에 들어가서 자기자신의 PC가 어떤 Mac제품보다 좋다고 포스팅 해보자. Flame의 정식코스로 들어가도 전에 다른 사람이 Mac이나 PC 사용자가 간과하는 Amiga의 멋진 사양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컴퓨터들의 상품들에 대한 비교에 대한 옹호나 지지의 글을 올리고 싶거나 혹은 다른 기술들에 대한 상대적인 장점을 알고 싶다면 "advocacy"라는 "comp"밑의 여러 뉴스그룹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comp.sys.mac.advocacy", "omp.sys.next.advocacy" 등이 있다.7.실생활에 정신차려 Flame (Get a Life Flame)이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생활을 배제하고 싸이버세계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실생활을 찾으세요!" , "실제로 해봐요", "정신차려라!" 는 등의 말들은 좋은 네티켓이 아니다. 이러한 예기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들 자체가 더욱 그렇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떠한 Flame에 자신은 실제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답장은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이다.8.정치적 Flame 이다. 이 Flame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섹스주의자, 민족주의자, 인종 차별 자거나, 동성연애자,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수많은 구경꾼들이 이 발언에 참견하고 Flame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발언을 하려거든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가치관과 감정을 가지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Flame을 통해서 무지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금물이다. 사실, 이러한 글에 대해서 답장으로 보내는 Flame은 섹스주의자나 민족주의자 등이 첫 번째로 원하는 바로 그것 일 수 있다. 자기자신이 감각적인 사람이라면 정략적으로 틀린 글에 대해서 무심 하는 것이 위원회에 접수된 불건전정보 신고건수는 2천2백62건.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접수된 9백63건의 두배를 넘는다고 한다. 바이러스 유포나 해킹, 사이버 성폭력과 같은 사이버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98년 3백97건에 그쳤던 사이버범죄가 작년엔 1천6백93건에 달했다. 1년새 4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사이버범죄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대전에 사는 한 고등학생은 최근 트로이목마형 바이러스를 이용해 타인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다음 이 사람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냈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 마포에 사는 청년은 집에서 PC로 타인의 도메인을 훔쳐 사용한 혐의로 사이버범죄 수사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네티즌 윤리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나 관련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인터넷 공간이 폭언과 불법, 비리가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법제를 고쳐 학교에서 네티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컴퓨터를 다룰 줄만 알지 기본적인 예절 조차 지키지 않는 네티즌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저지른 잘못도 현실세계와 똑같이 범죄가 될 수 있고 재미로 하는 해킹이나 바이러스 유포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인터넷이 초고속으로 보급되고 있는데도 관련 행정은 초저속 행보를 계속하는 것도 문제다.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사설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고 교육부는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네티즌 윤리 교육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정보통신기술교육시간에 정보윤리를 다루게 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학교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네티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면에 있어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알아보자.이 분야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배척되어야 할 내용으로 크게 음란물이나 폭력물, 정치적 극단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다양하게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비인간화된 상황을 유발하여 상대방을 실제로 의식할 수 없는 거리감을 조성한다. 또한 의사 교환시 상대방을 의식하며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심리적 또는 생리적 인식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상실되어 상호간의 인간적 관심이 소멸하기 때문에 고독감은 여전히 남으며 대면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참가자들간에 형성되는 유대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비인간화된 커뮤니케이션을 초래한다. 또한 상대방과 의 신체적 접촉이나 만남이 배제된 상태에서 컴퓨터를 통해 의사교환을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써 인식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기계와의 교류라는 인식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고려를 감소시키며 자신들의 독단적인 주장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컴퓨터와 통신망에 지나치게 몰두해 현실사회에서 대인기피증을 보이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위험성역시 간과할 수 없다.정보통신기술은 과거와는 달리 정보제공자와 정보이용자 간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따라서 정보원의 신원 및 정보신뢰성 확인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디지털화 된 정보의 조작이나 수정이 용이해서 정보의 출처파악이 쉽지 않다. 이는 정보제공시 제공자의 주관적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정보의 선택적, 임의적 제공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자칫하면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주장들이 정보라는 이름아래 보급될 것이다.사회적 실재감이란 매체 이용시 그 매체가 사용자에게 의사교환하고 있는 상대방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느냐의 문제이다. 즉 매체가 어느 정도로 사용자에게 대화 상대자가 심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게끔 하느냐 하는 것이며 보통 커뮤니케이터의 존재함과 그에 따른 비언어적 요소의 허용정도와 관련된다. 정보통신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비언어적 신호와 사회 규범적 요소의 결여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비해 훨씬 사회적 실재감이 낮다. 이처럼 실재감이 없고 익명을 사용할 경우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한다.
    사회과학| 2002.10.04| 13페이지| 1,000원| 조회(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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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르지 않는 세월
    R E P O R T-교육의 이해-{학과실과교육과담당교수김 규 환 교수님제출일자2001년 4월 23일학번011-41122이름윤 교 진제목 : 끝없는 물음...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과 여러 가지 대립이 생길 수 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의 생각이 똑같다면, 대립이나 마찰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사고하는 것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인 이상 겪어야 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좀 더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최상의 이익이 될 만한 결론에 도달할 때 우리는 만족한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사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고뇌 속에 서서히 자리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철학적 의미가 포함된다. 흐르지 않는 세월 이라는 이 책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근본 문제들과 동서고금을 통하여 근본이 비슷한 인간적인 소망들을 소재로 하여 스승과 제자가 대화로써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문답형식의 글이다. 그 속에는 물론 철학적 내용이 주가 되고 있지만, 생활 속에 가질 수 있는 의문과 문제들에 대한 것도 적지 않다. 세상의 양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도 현저한 변화가 오고 있다.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두터운 벽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한 가지 측면일 따름이며, 그와는 정반대로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나라를 보면 정말 많이 변하긴 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크나큰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으며, 이제는 세계화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것도 없지 않다. 흐르지 않는 세월 이라는 표제가 이 이유 때문에 참다운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흐르지 않는 세월 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제 각 장마다 살펴보기로 하겠다.1장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無心先生과 작가와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자가 무심선생의 아호에 대해 질의하던 부분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느냐, 안 알려지느냐가 문제가 아니지요. 그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요. 모르긴 해도, 내가 스스로를 명사가 될 만하다고 인정할 날은 졸연히 올 것 같지 않군요. 라고 무심선생이 말했다. 옛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명예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 내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정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가... 지금도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로 나를 신뢰할 수 있는지 그것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편리하겠지만, 아무튼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데서 바로 자신감이라는 것이 표출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볼 때 자신감이 좀 부족한 것 같다. 바로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정말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의지가 부족한 것, 이것이 지금의 나 이다.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사람은 가끔 자신에 의하여 배반을 당한다고 무심선생은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배반당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신을 신뢰하는 맘이 격감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자신을 불신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빨리 나를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또한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무심선생은 말한다.록 해야 할 것이다.2장에서는 도덕에 관하여 무심선생과 그 세 제자들의 토론을 싣고 있다. 구체적으로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라는 의제를 놓고, 부모를 학대하던 형을 동생이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어 토론하였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자-인간의 본성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혈연의 정이다. 그러므로 제일 나쁜 것은 형이고, 그 담으로 나쁜 것은 동생이다. 동생의 동기는 좋았으나, 방법이 나빴다는 결론이다.-는 의견도 있었고, 종교적 시각-죽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동생이 나빴다.-으로 본 의견도 있었고, 과학적 방법-과학의 방법을 인간학에도 적용하자. 심리학, 사회학, 고고 인류학 등을 통해서 파악된 인간성을 토대로 삼고 윤리학적 문제를 풀자-으로 접근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머리로는 죽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동생이 나빴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가슴으로는 형이 나쁘다고 느낀다. 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확실하고 시원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시도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평가를 하며 살도록 본래부터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위의 사건을 놓고 인간이 잘잘못을 평가한다는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기가 매울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주장하는 객관적 타당성 에는 설득적 성질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윤리나 가치관이 인간 스스로의 평가를 통하여 내일을 위한 새로운 윤리 내지 가치관으로 발전하며, 내일의 가치관 역시 다음 날의 인간들의 평가를 통하여 또다시 수정됨으로써 그 다음 날을 위한 새로운 윤리 내지 가치관으로서의 발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당위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이라고 봐도 좋을지 묻고 싶다. 인간의 주관이 어느 정도나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나 당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는 결혼했기 때문에 이성과 사귀는 과정도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고지식한 면이 보인다. 연애결혼이 좋으냐, 중매결혼이 좋으냐하는 것은 왈가왈부할 바가 못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애결혼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중매를 통해 만난 사람이 바로 결혼하는 게 아니고 어느 기간 사귀어본 후에 결혼하는 것이지만, 배우자의 진실된 면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연애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궁합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으므로,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작가는 첫사랑에 실패하였는데, 그래서 장제로 붙인 것이 사랑을 위한 최고의 미덕은 속이지 아니함이요, 그 최선의 지혜는 속지 아니함이라. 라고 하였다. 약간은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엿보이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한 사랑에 관한 말로 정을 언급하였다. 情. 그것으로 말미암아 삶이 다사롭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이 괴롭다. 정의 문을 닫으면 마음은 편한 가운데 외롭고, 그 문을 열면 마음은 보람찬 가운데 괴롭다. 확실히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게 바로 이성간의 관계인가보다. 확실히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다. 맘이 여리다라고 해석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많고, 너그럽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삭힌다. 사랑이라는 것이 겉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라면 정이라는 것은 바로 마음으로 간직해야하는 것이 아닐까?5장에서는 나와 우리 라는 주제이다.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절대적 세력을 가진 오늘날, 나와 우리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개념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라는 것도 결국은 확대된 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의 나 들이 합쳐서 하나의 우리 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상식이며, 또 실제에 있어서도, 적어도 현대의 문명 사회에 관한한 우리에 앞서서 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처음부터 나를 그토록 절실하게 의식한 것이 아니며, 나보다도 오히려 우리를 더욱 강는다. 우리 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순전히 나 로서만 살 수 없음은, 인간 존재의 피치 못할 제약이다. 그러면 우리의 전통적 가족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들의 전통적인 가족 및 가족주의에는 세 가지의 심각한 결함이 있다. 첫째로, 개인의 자주성이 억압된다는 것과, 둘째로 가족에 있어서 단합하는 우리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사실이며, 셋째는 가족주의 적 이기주의가 있다. 한국의 현실은 적어도 국가적 규모의 대동 단결을 요청하고 있는데, 우리의 느낌을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경향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적 가족주의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폐단은 개인이 자주성을 고집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보다 큰 우리를 배반하고 작은 나에게 집착함에서 생기는 것이다. 자기의 주체성을 굳게 지키면서도, 작고 좁은 나를 넘어 서서, 보다 큰 우리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개인의 탄생, 이것은 현대가 당면한 인류의 과제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것의 하나라고 무심선생은 말한다. 현재 우리는 서양의 발전된 문화를 앞다투어 수입하고 있다. 개인주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개인주의의 폐단을 인식하고 수정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그냥 여과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현재 세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동양적인 우리 와 서양적인 나 가 종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6장에서는 무심선생의 비교적 가벼운 다방면의 주제를 다룬 글들이 소개되었다. 여기 몇 개를 적어본다. 제목을 붙이기 어려운 산문 에서는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기회를 잘 잡아라, 통찰력을 길러라, 권력을 경계하라, 겸손하라, 용기를 가져라 등등 사회 현실에 관계되는 글들도 있고, 시사성을 가진 글들도 있었는데, 어떠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근본적인 원칙에 연결시켜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가자미의 눈 에서는 가자미의 눈이 한쪽으로만 볼 수 있는 것에 착안하여 편견을 갖고 있는 인간을 풍자하고 있다. 가자미와 닿는다.
    인문/어학| 2001.09.26| 6페이지| 1,000원| 조회(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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